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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베 개
2013년 10월 11일 10시 33분  조회:1055  추천:10  작성자: 안수복
팔 베 개

창문으로 부드러운 달빛이 비쳐들어오는 포근한 밤입니다. 밤하늘의 별무리들도 깜박깜박 조으는 깊은 밤 우리 부부는 팔베개를 하고 별처럼 소곤거립니다.

잠자리라야 겨우 성냥갑만한 가게 한쪽 구석을 차지한 칼날(길이 2메터, 너비 1메터)만한 좁은 침대에 누웠어도 출국꿈 한번, 출세 한번 모른채 행복을 꿈꾸는 우리 부부랍니다. 남들은 돈을 벌면 번쩍번쩍 자가용을 굴리고 별장도 척척 사지만 그냥 푼돈벌이에 목을 맨 우리 부부랍니다.

남편의 팔베개를 베고 자야만 잠이 온다는 행복한 비명에 친구들은 닭살이 돋는다며 같은 침대를 쓰면 좋은 점이 있지만 불편한 점이 더 많다고 야단을 칩니다. 코골이, 이갈기, 이불쟁탈전, 몸부림, 자다가 화장실 가기, 상대방 밀어내기 등등 리유를 들면서 말입니다.

솔직히 남편 얼굴 맞대고 남편이 내여준 팔베개를 베고 한치의 틈도 없이 꼭 붙어서 자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부부는 팔베개를 해준 고마운 대가로  목과 팔이 뻣뻣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날 때도 있지만 사랑병인지 치료베개인지 인젠 팔베개가 없으면 한시도 잠들지 못합니다.

때론 부부의 청청한 하늘에 까닭모를 흑구름도 몰아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별이 빛나고 무지개가 비낀 하늘만을 선사하는 팔베개, 흐르는 세월속에서 자리지킴이나 하는 침대우의 베개는 색이 날고 수명을 다한데서 바뀌기를 반복했지만 결혼 20여년간 더 살뜰하고 더 폭신해진 팔베개, 여직 각방하거나 침대를 따로 쓴적이 없습니다. 뜨개소처럼 뿔이 빠지게 싸운  날에도, 빚더미에 눌리워 기를 펴지 못할 때에도, 억울함에 죽고만 싶을 때에도…

손꼽아보니 당신의 팔베개와 함께 보낸 나날도 어느덧 2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당신의 팔베개는 묵묵히 자신을 헌신하며 타박 한번, 불평 한번 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로 높아가는 인간의 채울수 없는 욕망과 탐욕때문에 당신의 팔베개는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때는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별장과 자가용이 딸린 지체 높은 팔베개나, 벼슬과 권력을 겸비한 품위 높은 팔베개가 각광을 받을 때였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당신의 팔베개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매서운 비난을 받을대로 받았지만 자라처럼 움츠러들거나 게걸음칠 대신 자기만의 소유한 잠재력과 한낱 꾸미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열심히 노력을 경주하여 드디여 자신을 과시하고 인정을 받게 되였습니다.

당신, 기억하세요? 그날은 찬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을씨년스러운 날이였습니다. 전 그날을 영원히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당장 도시인이 된것처럼 시골에 있던 밭과 집을 헐값으로 처분하고 시장바닥에서 닥치는대로 김치장사도 하고 락화생이나 해바라기따위들을 되넘겨 팔던 우리 부부가 요행 찾은 직업―우리 가족의 희망이고 명줄이던 몸담고있던 백년대계 대기업―쇠줄공장이 파산을 고하는 날이자 당신과 내가 아빠, 엄마가 되는 성스러운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직 팔베개를 해주는것외에는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당신은 새 생명의 탄생으로 생기를 띠는 병실의 축하분위기와는 달리 침울한 기분으로 출입문을 향해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떼였습니다. 홀연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발길을 돌려 안해를 병실벽쪽을 향해 돌려눕혔습니다.

그날, 안해는 병실의 차가운 벽만 바라보며 서럽게 서럽게 울었습니다. 당신이 병실문을 나서서야 안해는 꿈에서 깬듯 당신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차가운 벽은 안해를 고독하고 쓸쓸하게 만들었지만 안해가 혹 상처를 받을가 문을 나서는 그 순간에도 안해의 마음을 배려한 당신의 자상함은 안해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사실 당신은 그 시각에도 바보같이 길바닥에서 인력거를 끌어야만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수 있는 밑바닥인생을 살고있는 처지였지만 대신 병실이 떠나갈듯 황후마냥 떠받들리우는 다른 산모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볼 안해의 서글픈 마음을 상하게 하고싶지 않았을뿐이였습니다. 홀로 병실에 쓸쓸히 남겨질 안해가 상처를 받을가 왼심을 쓰는 남편이 있어서 안해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습니다. 비록 권세도, 재부도 없는 당신이지만 당신한테는 샘처럼 퐁퐁 솟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과 이글거리는 용암처럼 뜨거운 팔배개가 있어 지금까지 우리 부부가 무난히 삶의 길을 헤쳐왔나봅니다.

솔직히 별로 이쁜데가 없는 투박하고 목석같은 당신의 팔베개는 시대와는 많이 처진 한낱 보잘것없는 때지난 “고물”에 지나지 않지만 진실과 충성, 사랑과 의무라는 매력을 지니고있어 부부 수면질을 한결 높여주고 부부정을 더 돈독히 합니다. 어찌 보면 팔베개는 가정행복의 모티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가정을 이루는것은 자고 깨고 나가고 들어오는것이 아니라 애정의 속삭임과 리해의 만남이기때문입니다.

우리 주위를 두루 살펴보면 팔베개가 있는 가정들은  팔베개를 “출국”시킨 가정보다 더 삶의 질이 높을뿐더러 리혼률, 리산률이  낮습니다. 상처와 아픔은 팔베개에서 사라지고 왕궁도 부럽지 않고 돈도 그다지 위세를 못 부리는 그렇게 좋은것이 팔베개이기때문입니다.

팔베개에는 또한 부부의 희노애락(喜怒哀乐)이 담겨져있어 부부가 한통속이 되는 “부부일심동체”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아무리 전면적인 교육기관이나 각종 보호시설이 잘되여있다 해도 가정―가족의 기능을 대체할 팔베개보다 더 좋은 기관은 없을것입니다. 팔베개는 또한 금전으로 환산할수 없는 생산성을 지니고있어 부부의 팔베개 한번이면 모든것이 원상복구되는 신비한 힘과 신통력도 지니고있어 부부금슬이 더 윤택해집니다. 아마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것이 팔베개의 원동력일것입니다. 힘들 때, 지칠 때 어디 한번 팔베개를 해보세요! 모든 번뇌와 근심은 구름처럼 밀려가고 기쁨, 환희, 즐거움이 배로 넘칩니다.

팔베개는 또  바다와도 같은 너그러움을 지니고있어서 오막살이 초가에 사는 농부에게도 고층빌딩에서 으시대는 신사에게도 또는 광산에서 석탄캐는 광부에게도 똑같이 사랑을 주고 애정을 키워주며 짙은 가족향기를 물씬 풍겨줍니다. 오늘날에 집은 더 커지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되려 가족은 더 적어지고 이웃을 만나기가 더 힘들어진것은 다 팔베개가 “출국품”으로 둔갑했기때문입니다. 진정 팔베개가 있는 가정이란 손을 꼽을수 있는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살다보면 “궁전속을 거닐지라도 내 집만한곳은 없다”고 세상 그 누구를 막론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귀속은 가족이며 팔베개는 부부의 특혜이고 통행증입니다.

지나온 세월, 돌이켜보니 당신의 팔베개는 비바람에 삐걱거리는 우리 가족에 단비를 뿌려주고 평화와 행운을 가져다주었을뿐만아니라 애정밭에 피여난 부부꽃을 더 아름답게, 더 찬란하게 가꿔갑니다.

만약 이 세상에 금산, 은산을 가져다주는 베개가 태여난다 해도 부부의 팔베개와는 비기지 못할것입니다.

신비한 치료와 신통한 효험을 가지고있는 만병통치 팔베개, 팔베개에는 부부의 청춘과 정열, 사랑과 애정, 분투와 희망, 노력과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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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우미공주
날자:2013-11-10 19:05:07

이 세상에 금베개,은베개보다 더 좋은 < 팔베개 >가 있다는것을

녀사님이 고은 글에서 감명깊게 느꼈습니다.ㅎㅎㅎㅎㅋㅋㅋㅋㅋ

고운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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