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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거미줄 - 안수복
2019년 07월 11일 14시 16분  조회:27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안수복  

거미줄
 
해마다 여름에 접어들면 가게주방의 남쪽으로 난 창문가 공터에 거미가 집을 짓고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마치 꽃피는 봄이 오면 처마밑 제비둥지에 어김없이 날아드는 제비들처럼 말이다.
 
처음 내가 발견했을 때는 몸뚱이가 겨우 쌀알만 했었는데 그게 차츰 자라 어느새 살이 통통하게 올라 팥알만 해지더니 나중에는 제법 땅콩만한 거미로 자라나있었다. 거미의 몸집이 클수록 집도 어찌나 크게 지었는지 털실로 지은 것마냥 엄청 두꺼워 아침이슬이 보석마냥 거미줄 우에 화려하게 내려앉았다. 
 
 
 
거미줄과 친분을 맺은 것은 3년 전부터이다. 어느 날 아침시장에 다녀오려고 거울에 마주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직 여드름인 줄로 알고 무시해왔는데 어느 사이 좁쌀알만한 크기로부터 수수쌀알만큼 크기로 자라났는지 턱밑 목 한복판에 밉살스런 ‘사마귀’인지 ‘쥐젖’인지 통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이 골려주기라도 하듯 껌딱지처럼 찰싹 들어붙어 날 보란 듯이 시위하고 있었다. 졸지에 흥이 깨졌다. 그렇다고 짚신에 국화 그리듯 삼복염천에 새삼스레 스카프를 목에 두르거나 밴댕이만한 일을 가지고 괜히 호들갑을 떨며 병원이나 미용원을 들락거릴 수도 없는 일이였다. 
 
“여보, 나에게 밀방이 있소.”
 
놀랍게도 남편 손에는 섬유처럼 가늘고 긴 모양의 거미줄이 쥐여있었다.
 
“밤낮 거울에 붙어사는 음식점사장님의 이쁜 목에 밉살스런 ‘쥐젖’이 자라서야 되겠소? 사장님을 위해 이 주방장이 새벽부터 참빗질하듯 온동네를 돌며 거미줄이란 거미줄을 싹쓸이했다오.” 
 
남편은 투박한 생김새와는 달리 유난히 너스레를 떨며 심란한 나의 마음을 달래느라 무던히도 애쓰는 눈치였다. 
 
물에 빠진 놈 지푸래기라도 잡는다고 하루빨리 ‘사마귀’인지 ‘쥐젖’인지를 ‘숙청’하기 위해 난 온순한 양처럼 거미줄로 그 밉살스러운 것을 꽁꽁 감도록 얌전히 남편한테 몸을 내맡겼다. 기적이 생겼다. 목부위가 따끔하고 당기우며 조여드는가 싶더니 하루의 낮과 밤이 지나자 피가 안 통하는지 ‘쥐젖’의 색갈이 황색으로부터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나중에는 점차 몸통이 작아지고 미라처럼 말라들더니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듯 사흗날째 되는 날에는  ‘시체’가 되여 허물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히 내 몸에서 톡 떨어져나갔다.
 
 
 
 
 
곤충세계에서도 거미줄은 매우 가는 편이지만 그 강도는 매우 강하다. 일반적으로 왕거미의 직경은 누에가 만드는 실의 직경보다 10배나 작다. 하지만 거미줄의 강도는 누에의 실보다 2배 이상 강할 뿐만 아니라 강철보다도 5배나 강하다. 게다가 거미줄의 탄성은 나일론보다 2배나 좋다. 한마디로 거미줄은 가늘고 잘 늘어나지만 강철보다 강하다. 거미줄은 인체에 무해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거미는 누에처럼 따로 고치를 만들지 않으며 독을 가지고 있어 거미로부터 거미줄만을 추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미는 타고난 건축가이다.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3차원을 2차원에서 고도의 원근법 계산으로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보이지만 단 한곳의 시점에서만 완전한 형태의 모양을 볼 수 있는 마술과 같은 놀라운 건축디자인, 거미줄은 그들 생존과 번식에서 가장 중요하다. 
 
신민들은 거미를 자상하고 거룩한 창조신으로 여겼고 거미의 기하학적 모양에 근거하여 첫 문자를 창조했으며 언어와 문자의 수호신이라 믿었으며 또 거미라는 말을 총명함의 뜻으로 여겨 지혜와 인내의 상징이자 의식적인 존재로 믿고 거미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다고 한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귀찮아하는 거미줄을 실생활에 리용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가 거미줄에 집중하는 리유는 거미줄이라는 신소재의 적용범위 때문이다. 굵기가 머리카락의 수천분의 일에 불과하면서도 탁월한 끈기와 신축성을 가지고 있는 거미줄은 이미 측량장비, 현미경, 총의 망원조준기에 필요한 광학물질의 중요한 원료로  쓰이고 있다. 선진국들은 가볍고 원형회복력이 뛰여나고 친환경적, 인체무해, 강철보다 5배나 강한 강도로 바다에서 사용이 가능한 생분해성, 어망, 인공장기, 인공인대, 항공우주소재, 방탄조끼, 락하산, 스포츠의류, 헬멧, 방탄피부 등을 만드는 연구를 이미 진행하고 있다.
 
거미는 진정한 글로벌 시민이다. 지구상에는 4만여종의 거미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의 거미들은 엄청난 량의 거미줄을 사용하고 있다. 거미줄은 거미의 생존 필수 아이템으로서 그들 생존과 번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루이틀 한달두달 거미줄에 걸린 곳에서 다음 거미줄 걸린 곳까지 거리를 가늠하며 거미를 관찰하면서 보니 매일 먹을거리가 충분하게 잡히는 게 아니였다. 비가 여러 날 오게 되면 공치는 날이 많았고 또 바람이 몹시 불면 거미줄이 휩쓸려 날아가기도 했다. 어쩌다가 큰 나비나 잠자리 같은 것이 걸리면 그 엄청난 몸뚱이를 얽어매느라고 죽을힘을 다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살펴보면 거미에게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노력과 인내, 치밀함이 있었다. 집을 짓는데 몇시간, 먹이감을 기다리는데 기나긴 시간, 먹이를 독으로 죽이고 소화시키는 시간, 거미의 인생에서 그만큼 한시간을 투자했기에 거미들은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미의 치밀함, 빈틈없는 거미의 사냥솜씨를 피해가지 못한 곤충들의 말로가 비참하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가? 옳바른 목표와 행동에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과 완성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마친 후 자신의 인생설계, 삶의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나 자신의 목표는 사회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거미의 치밀함이 보여주다 싶이 내 안에서 발견하는 목표가 되여야 하지 않을가?  
 
요즈음 길거리에 나서면 턱턱 걸리는 게 너무 많다. 고개를 숙이고 걷다 보면 길게 늘어지면서 감겨오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너무 싫다. 머리에 얼굴에 몸에 징그럽게 달라붙고 엉켜붙는다. 거미줄보다도 더 미세하여 아예 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눈에 거슬리는 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 몸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거미처럼 목숨을 잇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저 즉흥적이다. 자기만의 리익을 위한다거나 거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편의와 만족을 위해서라면 남이야 어떻든지 당장만을 고집한다. 배려라고는 털끝만치도 찾아볼 수 없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얻어내려 한다. 노력이나 땀 흘림이라고는 없이 빨리빨리 욕망을 채우려 한다. 어쨌든 내가 좀 앞서야 직성이 풀리니 허풍이 득세를 한다. 가는 곳마다 알게 모르게 쳐놓은 줄에 걸려든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 자신도 사회가 제시하고 조장하는 삶을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은 아닌지…  
 
외가닥 같은 거미줄에 벌써 애벌레가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곡예라도 하는 듯싶다. 그물에 맺힌 이슬이 반짝거렸다. 이슬방울 옆에 어쩐지 내 마음을 살짝 걸어놓고 싶다. 
 
기다림이라는 인고의 시간 속에서 ‘치밀함’이라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거미, 그 어떤 실보다 가늘게 반짝이는 ‘덫’을 놓고 수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 거미줄너머로 포식자가 아닌 기다림을 느낄 줄 아는 생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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