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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깥공기는 차가운 겨울이지만 며칠 전부터 가로수 버드나무 새 순이 몽글몽글 달리는 게 보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출근하다 말고 버드나무와 말을 걸고 있는데 곁에 작은 화단에도 뽀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싹이 막 움을 트고 있는게 보였다. 봄이 살금살금 어느새 내 곁에 오고 있었다.
봄은 계절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곁에 온 봄은 축복만은 아니였다. 새삼 봄이구나 하는 생각에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번진다. 내 마음의 봄은 언제 올가? 몸을 바짝 움츠리며 봄이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건만 봄의 서정과는 달리 재작년 봄 갑작스럽게 우리의 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코로나19가 여전히 종식되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콕’ 때문에 가게는 여전히 썰렁하고 거리는 차량과 마스크를 낀 사람들 뿐이다. 설마설마 했던 ‘코로나 봄’이 해마다 다시 온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확진자수가 날로 늘어나면서 작년처럼 음력설을 계기로 음식점들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뒤로하고 열심히 출근하지만 붙는 불에 키질이랄가 걸려오는 전화마다 “가게 문을 열었냐”가 아니면 “언제 닫느냐”였다. 가뜩이나 가게 문을 닫게 될가봐 뒤죽박죽인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얼마나 기다렸던 음력설이고 얼마나 설레였던 새봄인데. 그러지 않아도 가뜩이나 살얼음을 걷듯 하루하루 버티는 음식점영업이라 작년처럼 가게문을 닫을가봐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 터였다. 매일 가뭄에 콩 나듯 많지 않은 고객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도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데 만약의 경우에 재작년처럼 음력설련휴를 계기로 가게 문을 닫게 되면 그 엄청난 손실은 막을 수 없을 것이였다. 이미 재작년 봄 40여일이나 가게운영을 못했기에 대출금은 고슴도치 외 따 지 듯 줄어들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늘어난 터이다.
뒤숭숭한 세월인데다 뜬소문까지 겹쳐 한창 손님들이 북적거려야 할 저녁시간대인데도 콩나물시루처럼 빼꼭히 들어앉은 음식점 가게들은 텅텅 비고 거리는 행인 하나 얼씬하지 않고 가로등불빛만이 거리를 비출 뿐이다. 그 와중에도 대출금을 갚아야 할 날자는 어김없이 돌아오고 집세는 꼬박꼬박 갚아야 하니 가게주인들의 속은 타서 재가 될 지경이다.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 잡는다고 갖은 방법을 다 써가며 아등바등 하지만 결과는 불 보듯 빤하다. 몇개월에 한번씩 바뀌는 영업간판, 하나하나 무너지는 영업집, 행여나 하는 요행심리로 희망의 돛을 달아보지만 죄다 물거품이 되거나 허사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직 음식업종은 통보는 받지 않았지만 언제부터 문을 닫아야 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다 보니 음력설예약 음식주문마저 마음 놓고 받을 수 없었다.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반갑지 않은 ‘코로나 봄’이 다시 오니 꽃샘추위에 새봄을 맞을 준비로 용암처럼 끓어번지던 희망과 열정이 저도 모르게 죄다 사그라지고 마음마저 시려난다. 언제 가야 오는 봄이 반갑고 설레 이고 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활짝 웃을 수 있을가?
솔직히 대출금은 목을 조이고 가게들은 엉망진창이다. 어쩔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아래돌을 빼 웃돌을 괴는 식으로 다시 대출을 맡아 대출을 갚다보면 결국 돌탑이 무너지는 악성순환에 시달릴게 뻔하다. 매일 불안에 떨며 가게 문을 열었으나 수시로 닫을 수도 있다는 허무감에 웃음마저 잃어버린지 오래다. 2차대전 이후 전세계가 공황에 빠진 건 처음이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콕’ 생활을 실천하면서 설사 가게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린다 해도 들어올 손님이 별반 없다. 쫓기며 살아가는 기분이랄가?
금년에는 유별나게 해살이 잘 비추는 가게 안의 남쪽 창턱에 놓인 게발선인장이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겨울은 봄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듯 정월에 꽃들을 활짝 피웠었다. 이전에는 년말쯤에 이미 피였었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에 신기하게도 바다에서 자라는 게의 발처럼 생긴 잎 끝에서 선혈처럼 붉은 꽃이 아름답게 피여나는 게발선인장꽃의 미소를 보노라니 얼음 같은 내 마음에도 꽃피는 봄이 소리없이 잠시 내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해본다. 내 삶도 그랬으면 한다. 고단하지만 찌들지 않는, 그래서 조용히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집안에서 키운 화초에 꽃이 피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화사하게 웃는 매력적인 게발선인장꽃을 바라보다 얼결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수만원의 거금을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액정화면에 떴다. 잘못 봤나 하며 몇번이고 확인해도 현실이였다.
“밥값, 술값으로 저축”이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받아놓고 한번씩 가 밥 먹을 때마다 거기서 까면 된다”는 설명도 따랐다. 우리 가게 메뉴로 볼 때 한번에 백여원씩 소비해도 백번이나 되는 거금이였다. 일년에 열번을 오신다 해도 십년도 더 넘어 소비할 가격이라 어마지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의 어려움을 헤아려 고객들이 앞다투어 소비권을 사용하지 않고 현찰로 소비한다는 말과 글은 보았지만 신문과 방송에서나 보고 들었을 뿐이였다. 가뭄에 단비처럼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을 갚고도 꽤 여유가 있는 액수였다. 너무 뜻밖이여서 그만 돌처럼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언제 한번 입금해주신 지인 앞에서 어려움을 호소한 적도, 내비친 적도 없었다. 더우기 식사초대 한번 살갑게 한 적 없는, 8개월이나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한 평범한 작가의 가게에 따스한 손길을 보내준 명망 높은 교수라는 것을 알았을 때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저 창턱에 화려하게 피여난 게발선인장꽃처럼 내 곁에 피여난 한떨기 아름다운 ‘꽃’, 하지만 인정밭에 피여난 그 아름다운 ‘꽃’은 묵묵히 지켜볼 뿐 뽐내지 않았다. 진정한 봄은 이미 벌써 내 곁에 와 있었다. 비록 코로나는 물러가지 않았지만 새봄과 더불어 더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요즈음 밤은 령하권으로 내려가지만 한낮의 기온은 따스하기만 하다. 봄은 내 등뒤로 어느새 와 있었구나. 이제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새싹이 돋아나고 울긋불긋 산과 들에 꽃들의 잔치가 분주하고 여기저기서 꽃소식이 줄을 잇고 정원에 핀 꽃 잔디도 자태를 뽐내며 제몫을 다하고 날마다 풍성한 꽃 잔치 열리리라.
계절은 단 한번도 례외없이 순서 대로 온다. 봄이 윙크하니 차갑던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느껴진다. 두꺼운 패딩은 갑옷같이 답답하다. 삶의 균형을 맞추려 오늘도 집과 가게 사이의 공원을 걸으며 나의 마음 길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봄은 진작 내 곁에 와서 속삭였던 것 같다. 어서 기지개 켜고 일어나 훨훨 날아보라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따스한 해살에 녹여보라고. 찬찬히 주위를 눈여겨보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내 곁에 와 있다. 이름 모를 꽃들 역시 봄을 알려주는데 동참했고 봄내음에 움을 틔운 나무들, 아빠트정원의 꽃망울을 하나씩 터뜨린 꽃봉오리들 봄은 봄이다. 마침내 내 곁에 다가온 봄, 온 세상이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생의 의미를 되찾게 하는 민초 같은 민들레덕분에 나의 가슴 속에도 노란 웃음꽃이 피여난다.
봄은 내 곁에 팔짱을 끼고 생글생글 웃는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길이 힘들고 고되지만 언젠가는 피워낼 내 안의 꽃들을 위해서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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