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의 봄은 버드나무가 푸르고 분홍색 살구꽃이 활짝 핀다. 그래서인지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버드나무와 살구꽃 가로수가 특징적이다. 일찍 봄을 알리고 늦은 가을까지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버드나무, 유구한 역사와 애환을 품고 있는 버드나무, 마을의 안녕과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버드나무는 고향을 떠올리는 향수의 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하루 새에 고목이 된 버드나무와 살구나무가 뿌리 채 뽑혀 파랗게 쑥이 돋아나는 봄날의 화단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꽃망울이 한창 부푼 가지들은 댕강댕강 잘려나가 휑뎅그레해졌다. 그나마 뿌리 부분을 흙 채로 비닐주머니에 넣고 꽁꽁 싸놓은 걸 보면 여기에서의 가로수 사명을 다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모양이다. 난 그만 우두망찰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출퇴근할 때마다 늘 쫓기듯 달음박질하는 나에게 쉬어가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던 가지 휘늘어진 수양버들과 기품 있고 당당하던 살구나무 가로수였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가지에 살짝 가려 제법 운치가 있고 품위가 있어 보이던 시내버스 정거장마저 삽시에 벌거숭이가 된 채로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좀만 있으면 살구꽃이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하고 연녹색 버드나무가 실실이 드리워져 산책로와 정거장을 풍성하게 만들 텐데 말이다.
물이 조금만 있어도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 부드럽게 가닥가닥 풀어지면서도 껍질 속으로 무섭게 내공(内功)을 쌓아가는 버드나무,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이 보아온 나무가 버드나무가 아닌가싶다. 봄이면 화사한 연두 빛을 선사하는 버드나무는 가로수 또는 풍치수로 많이 심는다. 파릇하게 새순을 올리고 커튼처럼 가지를 땅으로 내리는 모습이 참 너무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파랗게 늘어진 버드나무와 일정한 간격으로 엇갈아 심어놓은 살구나무는 분홍색 꽃이 만발할 때면 화단의 파란 잔디나 꽃나무와 잘 어울려, 그 거리를 활보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고 살구꽃이 피어나던, 가슴 깊이 간직한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나는 고향마을이 눈앞에 떠오르며 눈물이 핑 도는 걸 어쩔 수 없다. 어릴 적 마을 동구 밖의 그 큰 수양버드나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하학 후 버들이 우거진 해란강 둑으로 나가 암기숙제 할 때 보았던 신나게 버들피리를 불던 옆집 오빠는 지금 그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 십 년 전 고향마을을 떠나 진소재지에서 음식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야외가 아니고서는 버드나무를 볼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도심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4년 전, 음식가게를 도시로 옮기면서부터 출퇴근길에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가로수였다.
그런데 그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마치 고향을 만난 듯 반갑고, 수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출퇴근길에 맞아주고 바래주며 삶의 욕구와 에너지를 심어주고, 생의 희열과 보람을 느끼게 하던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가로수를 다시 볼 수 없다니? 너무 허무하고 맹랑했다. 뿐더러 출퇴근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버드나무나 살구나무가 살짝 가린 골목시장에서 머리에 이고 온 줄당콩이나 무말랭이 같은 채소들로 노천난전을 벌린 시골의 할머니들이나, 휠체어에 노모를 모시고 시원한 버드나무 그늘을 찾아 산책 나온 아저씨들도 더는 만날 수 없다. 게다가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를 지지는 통에 출퇴근길의 그 가슴 부풀던 설렘도 죄다 무의미해진다.
버드나무는 빨리 자라고 정수작용이 있어서 예로부터 우물가에 많이 심어왔다. 그리고 햇빛을 전부 가리지 않기에 밑에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 아버지는 붉은 수수 울바자를 두른 집 앞 터전머리에 구기자나 앵두나무 외에도 해마다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먹을거리가 없던 지난날 살구는 더없는 풍성함을 안겨주는 맛 나는 과일이었다. 여름이면 우리 조무래기들은 오구구 모여들어 엄마와 두 언니가 뜯어주는 앵두랑 살구랑 실컷 먹으며 풍성한 푸른 가지를 땅에까지 드리운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그네도 타고 공기놀이, 고무줄뛰기, 숨바꼭질에 정신이 팔려 날이 어둑어둑 저무는 것도 몰랐다.
살구나무는 열매도 좋지만 봄이 오면 화사한 꽃을 보기 위해 가로수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버드나무 가지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내는 살구나무는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하기 전에는 바라보는 것도 더없는 사치다. 살구꽃은 처음 필 때는 연분홍색을 띠다가 차츰 옅어져, 활짝 필 때면 거의 하얗게 변한다. 꽃잎 다 떠나보내고도 끄떡없이 서 있는 살구나무, 상큼한 봄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로 가득한 거리를 걷노라면 진짜 여왕이 따로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살구나무의 꽃이 열매로 되어 우리 곁에 다가서기 전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봉변을 당하였다. 상큼한 봄 내음, 지저귀는 새소리 등으로 하여 실로 자연음악회가 따로 없었는데……
버드나무는 의학적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강인한 생명력과 유용성은 물론, 부드러움까지 가지고 있어 그야말로 외유내강(外柔内刚), 유용지물(有用之物)의 나무이다. 꽃샘추위는 봄을 시샘해도 버드나무는 천만 가지를 거느리고 봄 마중을 한다고, 연둣빛의 길고 풍성한 가지들은 부드럽고 끈질겨 세찬 비바람을 맞아도 휘어질지언정 좀처럼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소쿠리나 바구니, 고리짝 같은 생활용품은 물론, 지어 조각 작품의 재료로까지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쉼터가 되고 그늘이 되는, 고난을 잘 견디어 내는 신기한 버드나무는 맨 먼저 봄을 알려준다. 고향의 큰 나무 밑은 마을사람들의 안식처였다. 시냇가에는 아직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지만 버들강아지는 입춘만 지나면 양지쪽에서 눈을 뜨기 시작한다. 낙엽도 가장 늦게 지는 버드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잎이 먼저 나온다. 또한 부드러운 가지로 세월을 이겨간다. 그래서인지 버드나무처럼 허리가 가늘고 버들개지처럼 오동통한 엄마의 고운 얼굴을 상기시킨다. 하여 고향을 떠올릴 때면 버드나무와 함께 있는 한 폭의 고향풍경이 머리를 스치고 지난다.
버드나무와 살구나무는 많은 문학의 소재에서도 등장한다. 적어도 우리 시대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리는 대상으로 생각하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고향의 풍경이 담긴 나무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낀다.
잘 가라, 푸른 하늘을 떠이고 도시의 예술작품으로 도시의 품격과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하고 푸른 가로수로 행인들에게 꿈과 안녕, 끝없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게 하던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야!우리 언제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든지 내 삶의 쉼터가 되고 고향을 닮은 내 마음의 풍경이 될 것이다.
<송화강> 2021년 5호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음이미지가 보여집니다.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