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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었다
●안수복(화룡)
이른아침,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여났다. 무의식중에 손으로 더듬어보았더니 남편자리는 비여 있었다. 잠을 확 깬 나는 소리나는 쪽에 귀를 귀울리며 잠옷바람으로 살금살금 도적발을 옮겼다. 남편은 2층 베란다에서 붙어 겨우내 창문을 봉했던 비닐박막을 뜯어내고있었다.
아, 라이라크향기! 나는 취한듯 바깥풍경에 푹 빠졌다. 늘 보는 풍경이였지만 5월을 맞은 봄날은 어딘가 달랐다.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타래치던 보이라 굴뚝은 숨을 죽이고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으며 행인들의 옷차림은 울긋불긋해졌다. 파란색 학생복을 떨쳐입은 학생들은 웃고 떠들며 파란 뒤산언덕에 자리잡은 학교로 줄달음친다.… 넋없이 창문에 마주서있노라니 거의 감금된 생활이나 다름없던 지난 3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난 3월초, 음식점에서 한창 바삐 돌던 나는 기름투성이로 흥건한 주방바닥에 미끌면서 어쩔사이없이 뒤로 넘어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손가락도 움직일수 없는데다가 손등이며 손가락, 손목부위가 팅팅 부어 가뜩이나 침울한 내 심신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거죽은 날로 거멓게 죽어갔는데 꼭 마치 터실터실한 소나무껍질 같았고 손목은 축 처져 폭설에 부러진 나무가지를 련상시켰다.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 시누렇게 찌뜬 손톱과 손가락마디들은 저리고 아픈데다가 까딱 잘못하면 종신불구로 될수도 있다는 주위의 사람들의 뒤공론에 처량한 손목을 부여잡고 안타까운 눈물만 홀로 흘렸다.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나는 뒤늦게야 이웃의 권고로 골과에 용하다는 병원을 찾았다. 손등의 타박상외에는 별 이상이 없다던 지방병원의 진단과는 판판 달리 손등의 뼈가 금이 간외에도 세손가락뼈를 상하고 탈골까지 했다는 무서운 진단이다. 의사는 이미 황금치료시간을 많이 늦추었지만 천만다행이라면서 뼈마디를 주물러 탈골, 골절된 부위를 다시 고정하고 중약을 떼준다. 뼈를 주물러 맞출 때의 그 숨넘어가는 고통과는 달리 그날부터 죽은 사람의 손처럼 뻣뻣한 손가락을 좀씩 움직일수 있게 되였다. 실로 다행이였다.
오늘 창문을 열어서야 저 앞뒤집 꼼지락거리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바라볼수 있듯이 나는 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였다. 저 이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떨어질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라는것을 느꼈다.
갑자기 거리가 북적거린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쏟아져나온 인파와 차량들이 더 늘어나더니 장터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을 물샐틈없이 메운다. 그제야 오늘이 큰 장날이라는것이 생각났다. 그동안 (이제 손을 못 쓰면 종신불구가 될터인데 돈을 해선 뭐하랴)는 짧은 소견에 가슴앞에 드리운 붕대에 감긴 손이 창피하다는 구실로 영업시간에만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고는 들이구실 하다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또는 장날인지,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를 통 모르고 지내왔던것이다.
《갓 캐온 민들레와 쇠투리입니다. 곰취, 들잎, 냉이. 달래, 물쑥도 있습니다.》
소리나는 쪽을 내다보니 한 농촌아주머니가 음식점문앞에 봄냄새 물씬 풍기는 먹음직한 산나물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사구려를 부르고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푸르러지는 가로수처럼 황페해지고 얼었던 내 마음의 밭에도 새들이 우짖고 새순이 돋아나고 촐랑촐랑 시내물이 흐르고있었다.
(오십고개가 달라. 넘어져도 뼈부터 상하니. 식당을 해서 20년동안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쳐도 아무 탈 없고 기껏해야 파스로 에때울뿐 병원을 모르고 감기약 한알 안 먹고도 잘 버텼는데…) 기실 난 모든것을 나에겐 영영 오지 않을것 같던 오십고개에 돌렸고 원망하고 저주했으며 좋은 세월이 다 지났다고 저도모르게 슬그머니 삶의 동아줄을 놓았었다. 그 누가 나의 신상을 알가봐 전화두절, 출입금지하고 죄없는 남편만 달달 볶았다. 덕분에 2개월이 다 가도록 병만 키웠을뿐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만약 마음의 문을 꽁꽁 닫지 않고 저 열린 창문처럼 활짝 열어놓았더라면 파란 하늘이 비낀 세계를 내다보았을것이다. 화창한 5월은 나한테 인생 50은 다만 인생 후반전의 시작일뿐 아직도 꿈꾸는 청년이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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