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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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랜 추억의 색채
2014년 08월 06일 19시 38분  조회:5579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색바랜 추억의 색채…
 
                                                           최 균 선
 
    흔히들 아름다운 추억의 언덕이라고들 하더라만 추억이란 장미빛이기만 하던가? 인생길이 미만하기만 한것이 아니거늘 추억도 얼룩덜룩하지 않으랴!그런데도 사람은 늙으면 왜 추억에 잘 매달릴가? 잡초우거진 산등성이에서 먼 하늘을 바라볼 때처럼 초점없이 느슨히 풀리는 시선, 그 시선끝에 추억을 매달고 꿈을꾸듯 생각에 잠겨있는 로옹의 양자는 결코 돋보일수는 없으리라. 마치나 시골의 칠흑같은 원두막 마른풀위에 누워 하염없이 바라보던 별빛과도 다른 그런 상념의 잔광일뿐이다.
   
                          뜬구름은 바람에 흘러가고
                          허무한 내인생 세월에 가네
                          저무는 언덕에 부르는 노래
                          아롱다롱 밝지만 않더란다.
                   
     인간은 하루에 적어도 5만가지 념두가 산생되며 한시간에 5천가지 념두가 산생된다던가, 더구나 늙으면 마음이 여리여지고 눈물이 헤퍼진다던가? 그래서인지 내마음의 호수에서는 시도 때도없이 비애의 잔물결이 일고 또 잦는다. 잡초무성한 기억 의 언덕을 에돌아 아득히 흘러가버린 세월을 마음에 떠올려보아도 가슴이 클클해지고 할일없어 망향의 설음을 쏟아내는 흘러간 옛노래를 들어도 가슴은 알수 없는 정한으로 뭉클해지면서 눈굽이 절로 축축해진다.
    주어진 내생명의 저축소에 얼마남지 않은 목숨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속절없이 저물어간 한생이 너무도 하찮고 서러워서만이 아니다. 따스한 정을 가지고있는 늙은이들이면 다 그러하듯 이래저래 슬프기만 한 가슴이다. 그러나 벙어리 랭가슴앓듯 말 못하고 끙끙 속으로 끓이는 내비애를 누가 아랑곳이나할가? 혼자의 슬픔은 그저 슬픔일뿐으로서 위로의 약은 없고 그저 시간만이 약이 되여 흐지부지 해질것인데…
    별빛같은 그리움 타향살이 긴 여울에도 흩어지지 않는 한줄기 그윽한 상념, 청량한 달빛 이슬방울로 맺히는 밤이면 안개처럼 잦아드는 그리움, 파아란 여름의 땡볕에 시달렸던 대지에 성급한 가을이 물감을 들이기 시작할 때, 무서리에 시들해진 들판은 서둘러 누르끼레한 색갈에 묻히고있는데 내추억의 언덕에는 잡초만 무성하여 썰렁한 바람이 스쳐간다. 수확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나는 서글픈 추억을 단채로 묶을뿐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것이니 인생만사의 조화라는것도 요것뿐인가싶다. 꽃이 피고지는데 어제는 꽃이 핀 마을에서 자고 오늘 아침꽃이 지는 냇물을 건너네. 인생은 락화류수요 세월은 강물이라더니 인생은 오가는 봄이라 피는 꽃을 보고나서 또 지는 꽃을 보니 머리에도 서리가 한가득 내렸구나.
    내가  하루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내고싶은 공간은 경쟁사회에서 계산되고 기계화되여 고달프고 인정머리 없는 시간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자신을 찾는 시간이다. 잠못이루고 이리뒤척 저리뒤척할 때에 돌아누우면 창밖에 외로운 귀뚜라미소리,가을은 그리움이 고향집 추녀밑 달빛에 휩싸였으리,…숫귀뚜라미만 소리내여 우는 그 사연을 그 누가 알소냐? 귀를 열고 듣는다하여도 다 터득할수 없는일이고 들어도 마음에 새겨두지 않으면 얼핏 불고가는 밤바람같이 허황한것이다.
    한치앞도 모르는 사람인지라 그 남은 시간이 감히 얼마라고 단정지을수는 없지만 지나간 무수한 시간들을 어찌 그리도 허비했는지 무엇을 위해 지금껏 그렇게 죽으라고 일에 매달려 살아왔는지 그러면서도 과연 내가 지금 무엇을 일구워놓았는지 혼란과 허무함 그리고 자괴감마저 들지도 모른다. 시간은 또 어쩌면 그리 무심히도 빨리 앞으로만 가는지 초조해지기까지 할것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 보면 내삶의 주체는 분명 나인데 오히려 시간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며 여기까지 온것만같다. 그런 사실을 늦어서나마 인식하게 되였지만 앞으로의 삶이 과연 달라질수 있을가?  이제라도 정말 붙잡아야 할것을 붙잡고 놓아야만 하는것들을 과감히 놓을수 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가도 생각해 본다.
    꿈과 목적이 있는 삶은 단연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일것이다. 그것이 거창한던 소박하던 그리고 비록 시작이 늦었더라도 무엇인가에 열심한 삶만큼 감미로운것은 없을것이다. 꿈이 있는한 하루하루의 삶이 지겹고 더디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든,  또 이루려고 하든 결국에는 그 만족감도 어쩌면 잠시 잠깐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취감은 어쩌면 또 다른 허무감을 동반할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오랜 세월을 노력하고 또 노력한것이 이것이였나하는 반성이 수반되고…
    가장 의미로운 삶은 나누는 삶일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알고는 있는것일까? 무엇이든 다른 사람과 나눌수 있는것일가? 남을 진정으로 배려한다는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가? 내가 아닌 상대방의 립장에서 다른 사람을  리해하려 하는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나의 허물로 감싸안을수 있을까? 최선이니 최고니 하는 말들을 믿지 않는다. 최고는 바라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세상에는 그런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한토막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전 영국수상이였던 로허 죠지는 문에 들어서면 꼭꼭 닫는 괴이한 습관이 있었다. 어느 하루, 죠지와 친구가 정원에서 산책하는데 매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등뒤로 하나 하나의 문을 닫는것이였다. 친구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곧 돌아나갈 텐데 뺴놓지 않고 닫는 리유가 뭔가? ”
  “응, 이러는건 나에게 당연히 필요하다네”죠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한평생 내뒤에 문을 닫는 습관을 지켰다네. 자네아는가? 자네가 하나의 문을 닫으면 과거도 뒤에 남게되지. 그게 자랑스러운 성과이든 고통스러운 과오이든 말이네. 문을 닫고나서 새롭게 시작되는게 아니겠나?” 친구는 그래도 의아해 하였다. 로허 죠지는 지나간것은 다 돌이킬수도 없고 무의미하다는것을 실천으로 행하고있었던것이다.
    설사 어떤 절실하였던 체험이나 경험이 추억거리로 된다고 해도 결국 오래전에 읽은 책의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것과 별로 차이가 없다. 아무쓸데없는 추억에 련련하여 한사코 매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궁상떨고 있는것이다. 발전적이고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은 미래만 바라보지 추억놀음에 궁상떨지 않는다.
    “첫번째 기차를 놓친것을 후회막급해 하는 사람은 긍정코 다음 기차도 놓치고만다”는 경구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역시 과거에 매달려서는 아무리익도 없다는 뜻을 담고있다. 밖으로, 위로만 팔던 시선을 거둬들이고 한창때는 “범을 잡았다는 호기”도 접어버리고 날마다 늘어나고 깊어가는 주름살에 신경을 쓸 일도없이, 흘러가버린 그 좋은 시절을 새삼스레 애석해 할것도 없이 남은 길이나 굳건히 가보소.
    더없이 비참해진 다음에야 자기 생활을 개선하려 한다면 너무 늦은때이다. 세상에 원래부터 평탄한 길이란 없듯이 끝까지 울퉁불퉁한 길이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노상 이것도 저것도 눈에 거슬려하며 자기를 학대한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 삶의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분명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며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않았다는것을 씁쓸히 느끼게 될것이다. 김삿갓어른이 이렇게 읊었다. “(萬事皆有情, 만사개유정-온갖 일이 모두 운명에 정해져 있거늘) / (浮生空自忙, 부생공자망-덧없는 인생은 부질없이 헤매는도다)”              

                                  2012년 8월 10일           <동방문학> 2014년 8월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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