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사회 경제운행의 기본모식인 상품경제의 단맛을 톡톡히 보고있는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를 재론한다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린다고 힐난할것이다. 그럴수도 있겠다. “가난한 사회주의”는 요구할지언정 잘사는 자본주의는 요구하지 않는다던 그 시대를 겪어온 사람들로 말하면 사유의 관성이 없을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입비뚤이중이 틀리게 읽는다해서 경이 나쁘다고 할수는 없다. 가난한 사회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발전의 더딤이 사회주의 운행법칙이 아니지 않는가?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마치 뒤떨어진 락후민족을 진보와 독립발전의 길로 이끄는 문명화의 사도로 생각하고 그렇게 묘사해왔다. 그리고 그것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여있다. 실제 그런가?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인민의 심각한 사회,경제적후진성은 그들이 렬등인종에 속해있기때문이라며 거짓되게 선동해왔다. 그네들이 간주하고있는 렬등인종은 외국인의 지도가 없이는 독립적으로 현대의 문화나 과학기술의 성과를 받아들일 능력이 선천적으로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제국주의자들이 락후한 민족에게 참으로 지상락원을 세워주었던가?
이런 의문점에서 사회주의 본질을 그 누구네들의 목적에 의해 비틀고 조작한것으로가 아니라 원본 그대로 다시 검토해보는것도 부질없는 짓은 아닐듯싶다. 비록 “때 지난 리론”이지만 다시 복습하면서 심사숙고하게 된다. 사회주의제도라하면 우리가 대체적으로 알고있듯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소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청산, 사회주의사회의 로력자들의 동지적협조 및 사회주의주적호상원조에 기초한 사회적 및 국가적제도이다. 궁극적목표로 볼 때 그 얼마나 좋은 사회제도인가?
사회주의제도는 사회주의혁명에 의하여 자본주의를 뒤엎고 무산계급독재를 수립한후에 발생한다고 쓰고있다. 그러나 명칭이 곧 사물의 본질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리념이 사심을 채우기 위해 운행된다면 사람들이 실망할수 있다. 이것은 력사의 유모아이지 결코 사회주의 자체의 아이러니가 아니다. 리론적으로 자본주의제도보다 높은 형태의 사회적관계를 실현한다는 목적자체에는 잘못이 있을수 없다.
프랑스집권당인 사회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의 길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에 만족하지 않는것이다. 사회주의적리상은 불공정한것에 대한 반항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사회주의적행위의 목적은 완전한 인간해방과 지구의 환경보전에 있다”고 밝히고있다. 착취가 없고 빈부의 격차를 소멸한다는 사회주의의 종지에서 오늘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과 현대자본과 착취가 공공연히 진행형인 사회실태를 살펴볼 때 우리가 굳혀온 사회의식형태가 얼마나 외곡되고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주의의 본질 혹은 정신은 자연의 진리라고 한다. 사회주의의 목적은 자연의 원리, 실제로 필요한것만을 가지고 삶을 충분히 영위함으로써 의식,무의식적으로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사는것이다. 이 지구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하지않는 사물들의 생존상태를 살펴보면 어떤 물종도 자기몫 이상의것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것, 많이 가져야 한다는 탐욕성으로 말하면 고급령장은 미물들의 생존수단보다 더 사이비하다.
인간사회에서 누군가 제일 먼저 남을 궁핍하게 만들정도로 량식이나 기타 생활필수품들을 쌓아둘 생각을 했을때부터 모든 문제가 생겼고 인류의 비극의 서막이 열리였다. 이 문제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복잡해졌다. 지난날 이런 불평등한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를 썩을대로 썩어빠진 암흑의 구사회라고 저주하였더랬다.
그것은 평등하게 만민이 잘사는 사회ㅡ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구사회를 뒤엎는데 리론의거로 되였고 못가진자들을 동원하는데 가장 유혹적인 동력으로 되였다. 지구촌 많은곳에 그 리상이 실현되였다. 사회주의는 먼저 일종의 고상한 념원이고 연후에 일종의 사상리론으로 부상되고 나중에 제도적장치로 되여졌다.
고금중외에 무수한 성현들이 이런 고상한 념원을 품고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고귀한 “사회주의자”들이였다. 이렇듯 사회주의는 인류문명의 근본적특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것이다. 학자들은 사회주의는 점진적과정이지 격식화의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시행착오로 “실패한 사회주의”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옹호자들이다. 그들로부터 더없이 좋은 주의가 오도,외곡되고있는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는 사적리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자유경쟁을 수단으로 삼고있는 제도로서 결국 개인의 소유, 개인의 경쟁으로 되여있는 경제적개인주의의 제도이다. 그런데 19세기 사회사상가들은 자본주의사회의 여러 모순과 병폐들 즉 생산의 무정부성 ,자본의 집중 ,자원의 랑비,실업과 빈곤의 심화, 주기적공황, 제국주의와 전쟁 등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개인주의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불합리하다고 판단한것이다. 맞는가? 딱맞고 똑 떨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개인주의를 폐지하고 반대원리로 대치해야만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사회주의란 명제가 개인주의의 반대말로서 새로 만들어져 나오게 되였다. 이리하여, 사회주의는 처음에 생산수단의 사회적소유와 사회적관리의 수단에 의하여 자유,평등,사회정의를 실현할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 또는 운동으로 출발한것은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합목적인 주의, 주장인가?
주지하다싶이 오늘날에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는 천방백계로 더욱 많은것을 소유 (독점) 하기 위한 각축전에서 발생한다. 인간이 살고있는 자연이라는 이 공간은 원래 우리들 각자가 실제로 필요한것만을 쓰게 주어졌다. 만약 가지고 있는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부담스럽다면 소유욕의 쟁투가 이처럼 살벌하지 않을수도 있으리라.
공동생산, 공동분배리론을 근간으로 하는 념원이 왜 나쁜가? 더 가지려고, 남의 로동을 착취하려고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약자를 억눌러가면서 일을 시키려고도 하지 않을것일진대 왜 나쁜가? 문제는 얼마만큼이면 소유욕을 충족하는가이다. 충족에 기준이 없는것이 문제이다. 인간이 “만족”이란 단어는 만들어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만족은 아직 만족의 함량을 체현해보지 못하고있다.
불교에는 "금으로 된 산이 두개가 있어도 한사람의 욕망을 채우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이 가르침은 타자와 사회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얼마나 계속해서 늘려갈수 있는지를 설명할수 없음을 제시하고있다. 사람들마다 필요이상의것을 가지지 않으면서 많이 가진것을 심리부담으로 느낄때만이 그것이 공허한 리상이 아니라는것이 증명되여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기차가 틀린 방향으로 달린것은 레루의 잘못이 아니다.“민주, 평등, 해방의 세상”이라는 말에 무엇이 문제란말인가? 그게 껄끄러워서 “자주, 평등, 인간해방”이라고 고쳐 말하던들 무슨 다름이 있단말인가? 자본주의가 낳은 불가극복의 모순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추구는 기실 인류공동의 숙망이며 말그대로 아름다운 꿈세계이다.
굳이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달지 않더라도 약세군체도 공평하게 잘사는 그런 사회가 진정 복지사회이다. 자본의 횡포아래 “대동세계”란 있을수 없다. 사회주의는 사유의 기초상에서 사회물질재부를 공동으로 향수해야 한다는 사상, 주의이며 량자의 동태적평형의 추구이기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주의시대를 기대하고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꿈이면서도 전 세계의 꿈이기도하다.
2013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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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독자
날자:2014-10-03 17:39:01
뮨인한테는 사회적리상이나 현살 비판정신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칼럼은 시세의 관념에 맹종하지 않고 리념이나 체제의 우렬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는데 인상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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