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토사구팽과 같은일을 겪어 볼때가 있다.
(兎死狗烹)을 우리말로 풀의하면 토끼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으로 일이 성공된후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을 버리거나 공로자를 죽인다는 뜻이다.
<사기 월왕구천 세가>에 의하면 춘추말기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패권쟁탈을 하다가 결국은 월나라가 오나라에 패하여 굴복하고말았다.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대부 문종과 범수의 도움을 받으면서 20년동안 고심참담한 노력을 하여 마침내 월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건설하고서 오나라와 싸워 오나라를 멸망시키고야말았다.
오왕 부차는 패망하여 도주하면서 련속 7차나 월나라에 강화담판을 제기 했으나 문종과 범수가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부차는 편지 한통을 화살에 감아 범수의 병영에 쏘았다. 그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토끼를 잡은 다음에 사냥군은 사냥개가 쓸모없으면 잡아먹습니다. 적국이 소멸되여 그 적국을 전승할 때 계책을 대준 모신들이 쓸모없게 되면 임금도 그들을 버리거나 제거할것입니다. 두 대부께서는 어찌하여 오나라를 보존시켜 자기들에게 여지를 남겨놓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문종과 범수가 끝내 강화담판에 동의하지 않으니 부차는 막무가내로 자살할수밖에 없었다.
월왕 구천은 범수의 공로가 현저하므로 범수를 상장군으로 봉하였다. 그러나 범수는 그 관직을 받을 마음이 없고 직접 말하기도 불편하여 몰래 자취를 감추었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오나라왕궁에서 경축연을 베풀었다. 그런데 범수가 보이지 않아 어찌된 영문인가고 물었다. 그 이튼날 태호가에서 범수의 겉옷을 찾게 되자 모두들 범수가 호수에 뛰여들어 자살했다고 여기게 되였다.
미구에 문종에게 편지 한통이 전해졌다. 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새를 다 잡으면 새총을 갈무리하고 들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군은 사냥개를 잡아먹습니다. 적국이 멸망되였으니 모신들은 버림을 받거나 살해될것입니다. 월왕은 환난을 함께 겪기만 바라고 안락한 생활은 함께 누리려 하지 않는 위인입니다. 그런데도 대부께서는 아직도 월왕한테서 떠나지 않고있으니 미구에 죽음을 면치 못할것입니다.”
편지를 받고서야 문종은 범수가 죽은것이 아니라 은거해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편지에 적힌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지만 그때로부터 병을 빙자하고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시일이 오래되니 월왕 구천이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구천이 불시에 문종네 집을 방문하고 돌아갈 때 검 한자루를 남겨놓았다. 문종이 그 검을 보니 검자루에 <속루>라는 두글자가 새겨져있는것이 바로 당년에 오왕 부차가 충신 오자서를 자결하게 한 검이였다. 구천의 의사를 알게된 문종은 범수의 권고를 듣지 않은것을 후회하면서 자결할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관찰하여 보면 우에서 말한 “토사구팽”과 같은 사실은 많고도 많다. 력대로 부터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자기의 정치 리익을 위하여 자기에게 수요되는 인재들을 등용하다가도 자기의 정치리익에 위롭지 않을때에는 모신들을 배척하거나 제거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력사의 흐름을 보면 통치자들은 적군과 싸울때에는 무인들을 등용하고 정권을 잡게 되면 적군과의 싸움에서 용맹을 떨친 무인들을 배척하고 대신 문인들을 등용하여 자기의 권력을 보지하려고 하였다.
정치인들이 대개 이러할진대 민간인도 마찬가지이다. 창업할때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그들과 동맹을 맺고 상호 협력한다. 하지만 일단 사업에 성공하고 나면 함께 사업했던 사람을 배척하게 되며 새로운 동반자를 물색하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이다. 사람마다 성과물을 놓고 더 많이 찾이하려고 한다. 누구나 더 많은 지분을 가지기 위하여 경쟁하며 싸우게 된다. 결국은 지분의 많은 사람이 승자로 되여 독점하게 된다. 독점하게 되면 동업자들을 배척하게 된다.
나에게는 “부자”란 소리를 들을만한 조카가 한 명이 있다. 그 조카는 서른다섯살에 절강성 이우시에다 모 무역회사를 꾸리였다. 알심들여 회사를 꾸려 경쟁이 치렬한 이우시에서도 이름있는 유명인사로 되였다.
도리켜 보면 조카의 인생로정도 그렇게 순리로운 것은 아니였다. 그는 스무다섯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 저축소에 취직하였다. 취직하여 얼마안되여 우연히 한국 상인 김사장을 알게되였다. 김사장을 알게된후 직장을 단호이 버리고 무작정 김사장을 따라 나섯다.
그가 따라간곳은 산설고 물설은 절강성 동양시 교외에있는 시골 마을이였다. 그 시골마을에 거처를 잡고 김사장을 따라 상업무역을 시작하였다.
동양시는 이우시와 상해시, 항주시사이에 있는 도시로서 교통이 편리하고 상업무역을 하기에 좋은 도시였다. 동양시의 이런 좋은 지리적 위치를 알게된 김사장은 동양시를 거점으로 기반을 닦아 나가기로 했다. 상업무역을 하려면 중국의 실정을 잘알고 중국어와 외국어에 능통한 조력자가 있어야 했다. 김사장이 이런 인재를 물색하던중 나의 조카를 알게되였다. 김사장은 조카와 대면하여 보면서 조카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젊은 패기가 있으며 조선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였기에 잘만 인도하여 주면 좋은 인재로 될수 있다는 싹수를 보아냈다.
아니나 다를가 김사장의 예측과 같이 조카는 책임성있게 일을 잘 하였다. 조카는 김사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가 가리켜 준대로 맡은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였다. 조카는 김사장에게 있어서 마치 용에게 날개를 다라준 격이였다.
그때 조카가 하는일은 절강성 일대에서 생산되는 참대제품과 같은 진귀하고 값싼 소상품들을 구매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엄무를 맡아 하였다. 그는 부지런히 소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소를 찾아가 계약을 맺었으며 대외무역 부분을 찾아다니며 수출수속을 밟았다. 그가 열심히 뛰여다닌 보람으로 무역수출은 많아지고 회사의 경영도 잘 되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김사장을 만나 10년이 지나자 조카가 그렇게 믿어오던 김사장이 조카를 대하는 태도가 일변할줄은 몰랐다. 많이 성숙된 조카를 보면서 김사장은 탈권의 위기감을 느끼였던지 차츰 조카를 경게하며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형식상에서는 조카의 로임을 올려주고 승급시키였으나 실제상에서는 그의 엄무량은 줄이였다. 조카가 하던 구체 엄무를 신입사원이 대처 하게 하였다. 더 한심한것은 며달간 로임조차 발급하지 않았다.
자신을 불심하는 김사장의 태도를 보면서 조카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김사장은 회사가 잘 돌아가자 회사의 창설에 힘이 되여주던 조카가 모든분야에서 자기를 초과할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자기를 배척하고 있다는 감이 들었다. 자기를 멀리 하는 리유는 자기 스스로 알아차리고 회사를 떠나라는 암시라고 생각되였다.
이렇게 판단이 내리자 조카는 더는 참을수 없어 단호히 그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온후 조카는 이우시에다 자그만한 무역회사를 꾸리였다. 다년래 그가 쌓아온 경험과 파트너들의지지와 인맥으로 그가 꾸린 무역회사는 작던데로 부터 크게 발전하였다. 대신 김사장이 꾸린 그 회사는 파산의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조카와 김사장에 대한 글을쓰고 보니 다시 한번 문종이 범수에게 보냈던 글이 떠 올랐다.
“월왕 구천이 환난을 함께 겪기만 바라고 안락한 생활은 함께 누리려 하지 않는 위인입니다.”
혹시 나도 월왕 구천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을가 도리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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