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출신인 조금화는 대학을 졸업하고 청도, 위해, 심수 등지로 돌아다니다가 상해의 한국독자기업에 취직한지 4년이 된다. 그 동안 그녀는 사업에서 끈질기게 노력한 덕분으로 업무능력이 사장님의 긍정을 받아 기획부문의 경리로 승직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문제만은 미루고 미루다보니 늦어져서 35살이 되도록 처녀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있었다.
35살이면 로처녀라도 늙은 로처녀다. 10년전까지만해도 그 나이에 시집을 아니 갔으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며 《저 나이에 시집 못간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다니까.》하고 뒤에서 수군거리였을것이다. 24~25살부터 로처녀라는 이름을 달아주던 세월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30대의 로처녀들이 적지 않아서 사람들이 이전처럼 더는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다. 그녀들이 시집을 못간것이 아니라 아니 간것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남자가 나이 들면 장가가고 녀자가 나이 차면 시집가기 마련인 세상에서 배우자는 찾아둬야 할께 아니겠는가. 다른 로처녀들은 말이 로처녀지 대부분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있는 상태이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서 잠시 처녀라는 이름을 달고있을뿐이지 실제는 언녕 아줌마행렬에 가담했던것이다. 그런데 조금화에게는 남자친구마저 없으니 이 문제는 당면에 서둘러 해결해야 할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녀를 관심하는 사람들이 이 로처녀를 시집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중매를 서주었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사업이 바쁘다는 리유로 미루기만 할뿐 소개해주는 남자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제일 급해난것은 그녀의 고모였다. 그녀의 부모들은 먼 연변에 있으니 급해도 마음뿐이지만 그녀의 옆에서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있는 그녀의 고모는 더는 참을수 없었다. 문화대혁명전부터 상해에서 살아온 고모는 과학기술연구소에서 사업하다보니 지식있고 재간있는 청년들을 많이 알고있었다. 어느날 고모는 그녀를 불러놓고 말했다.
《사업도 중요하지만 녀자는 시집을 잘 가야 한다. 우리 연구소에 남개대학을 졸업한 끌끌한 조선족청년이 있는데 널 소개했더니 흡족해하면서 만나보겠단다.》
《아니 고모는 또…난 아직…》
《얘, 너 지금 나이가 얼마냐? 서른하고도 다섯살이란 말이다!》
《어머,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나?》
《그래 네가 아직도 스물다섯살인줄 알았느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마흔살 로처녀로 늙는다.》
조금화 자신도 급하지 않은건 아니였다. 선배고 후배고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빨리 시집가라는 인사밖에 없지, 아래 동생이 사돈보기까지 했지만 언니먼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있는 상황이니까 급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시집을 가고싶은 마음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이때 고모의 말에 그녀는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나, 하면서 새삼스레 놀랐다. 어디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올해엔 시집을 가야지. 조건이 웬만하면 시집을 가놓고 보자. 로처녀라는 모자부터 벗고 보자.
그리하여 그녀는 고모가 소개해주는 그 총각을 만났다. 약속한 장소에서 그 총각을 처음 보는 순간 그녀는《이 남자다, 이 남자를 기다리느라고 여태껏 시집을 안 갔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녀는 그 남자앞에서 사춘기소녀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떨려서 그 남자와 어떻게 인사를 나누고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 남자가 물어보는 말만 대답했던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남자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남자가 떠난 5분후에 다방을 나오면서 그녀는 너무 바보처럼 못나게 행동한 자신이 밉살스러웠다. 고모가 《그 남자가 어땠어?》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 남자에 대해 《박춘길》이란 이름 석자밖에 아는것이 없음을 깨닫고 바보처럼 웃었다. 비록 명함장을 교환했으나 그녀는 그 남자가 다시는 자신을 찾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흘후 그남자한테서 다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그 전화를 받은 그녀는 사춘기소녀처럼 가슴이 활랑거렸다.
두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그 남자에 대해 궁금한것을 주동적으로 물었다. 그 남자는 첫사랑에 실패하고 그후에도 약혼까지 했던 처녀가 여럿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련애경력에 대해 물었다. 사실 그녀는 련애경력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몸매나 용모나 빠진데가 없었기에 중학교때부터 여러 남자애들의 추구를 받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련애에 머리를 쓰지 않고 공부만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련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련애를 걸어오는 남자들을 모두 거절해버렸었다. 그후엔 사업이 바빠서 종신대사를 미루었고 또 어지간한 남자들은 그녀의 눈이 높다고 생각되여 감히 그녀에게 접근할 엄두도 못했던것이다. 곁에서 소개해주는 남자 몇몇을 만난적이 있으나 한번 만나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자리에서 빠이빠이 하고 두번 다시 만나지 않았으니 서른 다섯살을 먹도록 련애다운 련애를 한번도 못했던것이다. 그녀가 련애를 한번도 못해봤다고 하자 그 남자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여러번의 만남에서 서로 정이 들고 그 남자가 먼저 《우리 결혼합시다》하고 말해서 그녀도 선선히 동의했다. 어느날 밀회에서 그 남자가 자연스럽게 키스하면서 요구했다. 그녀가 거절하자 남자는 《우린 결혼할 사이인데 뭘 망설여?》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튼 결혼하면 그에게 바칠 몸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가 하자는대로 맡겨버렸다. 하지만 그가 거칠게 달려들자 그녀는 《난 처음이예요.》했다. 그는《뭐가 처음이란 말이야?》하면서 그녀가 아픔을 호소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성급하고 조폭하게 행동했다.
일이 끝난후 침대시트에 빨갛게 피여난 작은 꽃잎을 보자 그 남자는 놀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이건 뭐야?》했다. 그녀는 몹시 섭섭했다. 《몰라서 묻나요? 난 당신이 첫 남자예요.》
《뭐? 서른다섯살인 너에게 내가 첫 남자라구? 허허허. 내가 어떤 녀잘 제일 깔보고 멸시하는지 알아? 바로 너같은 녀자야! 과거가 없는것처럼 순결한체 꾸미는 너같은…》
《난 정말 당신이 처음이야요. 이 빨간것을 보면 모르겠어요?》
《너 정말 가소롭구나. 과거를 숨기려고 처녀막회복수술까지 다해놓고 내 앞에서 연극을 꾸미려고?》
《난 수술한게 아니예요. 정말 처음인데!》
그녀는 정말로 억울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믿으려 하지 않고 그녀의 뺨까지 찰싹 하고 갈겨댔다.
《야, 요즘 네 나이에 숫처녀가 어디 있니? 그리고 너처럼 이쁜 꽃을 남자들이 뭐라고 지금까지 꺾지 않고 곱게 나뒀겠어? 더구나 지금 세월에 숫처녀는 유치원에나 가서 찾아라 했겠다. 차라리 과거가 있으면 있다고 떳떳하게 나서는 녀자가 좋지 너처럼 거짓말쟁이하고는 결혼할수 없어!》
그날 그녀는 몹시 울었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런 남자에게 처녀몸을 바친것이 통분해서 운것이였다.
그리고 그해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또 재벌2세이고 복단대학을 졸업한 37살의 로총각을 만났는데 두 사람은 서로 정이 들어 사랑이 무르익었다. 그녀는 그 총각에게 《난 처녀몸이 아니예요. 과거가 있어요.》하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랬더니 그 총각은 빙그레 웃으며 《허허, 그 나이에 과거가 없다면 이상하지.》하면서 그녀를 뜨겁게 포옹해주었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숫처녀일 때는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는데 과거가 있다고 하니까 오히려 시집도 더 잘 갈수 있으니 말이였다.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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