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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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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가짜인가
2013년 11월 10일 22시 01분  조회:2197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이 세상은 가짜인가


콩트/ 이야기

김희수
 
 
연길시 신원아파트에 살고있는 동호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세살짜리 딸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그의 품에 안겼다. 동호는 딸아이에게 뽀뽀해주고 나서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상을 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허허, 오늘은 무슨 날이기에 진수성찬이지?》
《아빠, 오늘은 아빠 생일이야.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가 맛있는걸 많이많이 사왔어.》
《그래? 아빤 깜빡 잊었는걸.》

동호는 생일상을 버젓이 차려놓고 손님을 청하는것을 반대해서 해마다 생일은 집식구끼리 간단하게 쇠곤 했다.

《아이참, 무슨 일이 그리 바빠서 자기의 생일마저 잊었어요? 당신이 쇠고기를 반가워한다고 어머닌 쇠고기볶음료리를 세가지나 했어요.》

안해 숙희가 그를 보고 눈을 곱게 흘기더니 새옷 한벌을 내놓은것이였다.

《오늘은 당신의 생일선물로 양복 한벌을 샀어요. 난전에서 파는 외제인데 다른 곳 보다 가격이 저렴하기에 샀어요.》

동호는 가정의 따사로움을 한껏 느끼며 생일상에 마주앉았다. 방금 숟가락을 들었는데 TV에서 뉴스가 방송되고있었다. 서시장 소고기가게에서 대부분 장사군들이 오늘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여서 소비자들에게 팔았다고 했다. 가짜소고기를 판 장사군들속에서 특히 뚱보녀인이 클로즈업되여 나오고있었다.

《에그 야!》

TV화면에 나온 뚱보녀인을 본 어머니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질렀다.

《내 오늘 사온 쇠고기도 저 엠네한테서 사온건데…》

《허허, 가짜쇠고기군.》

동호가 어이없어 웃고있는데 잇달아 가짜 외제양복을 판 난전장사군을 단속하는 장면이 보도되고있었다. 이번엔 안해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어마나! 난 어쩌라나요. 매화 아빠 양복도 저기서 산건데요.》

《또 가짜!》

동호는 기분이 잡쳤다. 하지만 어머니의 성의를 생각해서 가짜소고기를 맛있게 먹었고 안해의 성의를 고맙게 여겨서 날마다 가짜외제양복을 입고 출근했다.

어느날, 동호는 저녁에 거래처의 김과장과 한잔 한다는것이 3차까지 하다나니 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머니를 깨울가봐 취중에도 열쇠를 꺼내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안방에서 어머니와 안해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미야, 매화 아비는 왜 아직도 안 들어오는거냐?》

《어머니, 매화 아빠는 아까 거래처의 손님이 와서 늦게 들어온다고 전화했잖아요. 그런데 어머니, 낮에 왔던 어머니 고향친구라는 그 할머니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

《응, 그게…》

《매화 아빠가 정말 어머니의 친아들이 아닙니까?》

《쉿! 누가 듣겠다.》

갑자기 안방의 말소리가 낮아졌다. 동호는 갑자기 굳어진듯 서있다가 살금살금 다가가 안방 문에 바싹 귀를 갖다댔다.

《어미야, 매화 아비한테 말하지 말아라. 사실 매화 아빈 불쌍한 사람이야. 어미,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지. 30여년전 대문 앞에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기에 나가보았더니 포대기에 애를 잘 키워달라는 쪽지가 나왔어. 버려진 애가 분명한데 후날 찾지 않을 예산이였는지 이름도 생년월일도 없었어. 에그, 그게 불쌍해서 동호란 이름을 지어주고 지금까지 친자식처럼 키워왔어.》
《그럼 매화 아빠 생일도 가짜…》
《그래. 령감과 상의해서 어림짐작으로 정해준게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동호는 술이 확 깨는것 같았다.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니…자기는 성씨도 생일도 모르는 버림받은 아이라니?! 그는 쓰러질듯 비칠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침실로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동호는 아무 일도 없은듯 태연했다. 어머니는 비록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친어머니만 못지 않게 자신을 키워주었고 게다가 사랑스러운 안해와 귀여운 딸아이가 있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출근하려고 하는데 뜻밖에 웬 낯선 사내가 찾아왔다. 그 사내가 안해의 이름을 부르자 거실에 있던 안해가 나왔다. 그 사내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안해는 온몸을 떨면서 낯색이 새파랗게 질리는것이였다.

《으흐흐, 숙희야, 끝내 널 찾았구나! 어제 거리에서 너의 친구 춘화를 만나서 너의 거처를 알아냈지. 숙희야, 어서 나하고 함께 가자!》

사내는 무작정 안해의 손목을 잡아끈다. 안해는 사내를 뿌리치며 뒤걸음친다. 사내의 무례한 행동에 화가 치민 동호는 사내를 막아서며 비수와도 같은 눈길로 쏘아본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왜 이러는거요?!》
《내가 누구냐 묻는거요? 허허, 난 숙희의 남편이요!》

사내가 너털웃음을 치더니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서 숙희는 나의 안해란 말이요. 난 나의 안해를 데려가려고 온거요. 왜 잘못됐소?》
《당신 무슨 헛소리를 치는거요? 숙희와 난 결혼한 부부사이요! 숙흰 나의 안해란 말이요. 당신 뭔데 나의 안해를 데려가겠다는거요? 어서 물러가오. 나가지 않으면 110을 부르겠소.》

동호가 핸드폰을 꺼내자 사내가 다시 너털웃음을 웃었다.

《으흐흐! 110을 부르겠으면 부르오. 아무튼 숙희와 나는 결혼등기까지 한 합법적 부부이기에 두렵지 않소. 믿지 못하겠으면 이걸 보오!》

사내는 결혼등록증을 꺼내여 동호 앞에 내밀었다. 동호가 받아보니 그건 틀림없는 사내와 숙희의 결혼등록증이였다. 등기날자를 보니 자기와 숙희가 결혼하기 1년전이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동호는 놀란 눈길로 숙희를 바라보았다. 숙희는 머리를 푹 숙일뿐 아무 말도 못했다. 사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숙희와 나는 결혼등기까지 한 진짜 부부간이였소. 그런데 내가 탐오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자 숙희는 가출하여 나하고 리혼도 하지 않고 당신과 함께 산거요. 난 탐오한 돈을 다 갚고 석방되자 곧 숙희를 찾아 동서남북을 헤맸던거요. 그러다가 어제 거리에서 내가 잘 아는 숙희의 친구 춘화를 만나서 숙희의 근황과 숙희의 거처를 알게 된거요. 어떻소? 이젠 내가 나의 안해 숙희를 데려가도 되겠지?》

사내는 또 숙희의 손목을 잡아끈다. 동호는 사내를 밀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되오. 나에게도 숙희와 등기한 결혼등록증이 있소. 그러니 숙희는 나의 합법적인 안해란 말이요!》

《뭐요? 당신과 숙희가 결혼등록증을 냈단 말이요? 그건 위법이요! 숙희야, 너 두 사람과 결혼등기를 하면 중혼죄란 걸 알지? 널 중혼죄로 고발할까.》

《아…아니, 그건 가짜야!》

숙희는 그만 질겁하여 부들부들 떨면서 진실을 말했다.

《동호씨, 우리의 결혼증은 가짜예요. 돈을 내고 만든…》

동호는 그제야 생각났다. 숙희와 만나자마자 정이 든 동호는 숙희와 함께 동거하면서 결혼등기를 하러 가자고 졸랐다. 그때 숙희는 결혼등록처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 혼자 가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해당증명서와 결혼사진을 숙희한테 맡겨버렸는데 숙희가 돈을 내고 가짜 결혼증을 샀을 줄이야…

《으하하!》

사내가 득의양양하여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보오. 당신은 가짜란 말이요. 나야말로 진짜 숙희의 남편이요!》

동호는 멍해졌다. 안해가 가짜라니? 자기의 안해인줄 알았던 안해가 남의 안해라니?!

《엄마!》

그때 침실에서 잠을 자고있던 아이가 깨여나자바람으로 달려나와 숙희에게 안겼다.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사내가 갑자기 씽긋 웃으며 아이를 안으려고 두팔을 벌렸다.

《아이구나, 요 귀여운 내 딸아, 어서 이 아빠가 안아보자!》
《당신 뭐라는거요?》

동호는 분통이 터지여 사내 앞을 막아서며 고함쳤다.

《내 아이한테 손을 대지 마오! 숙희는 당신의 안해였다지만 이 아이만은 진짜 내 딸이란 말이요!》
《이 아이가 당신의 딸이라구?》

사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동호의 어깨를 툭툭 친다.

《당신 또 틀렸소! 이 아이는 진짜 내 아이란 말이요. 당신이 숙희와 만나서 몇달만에 아이를 낳소?》

사내의 물음에 동호는 떨떠름해서 대답했다.

《이 아이는 팔삭둥이요. 숙희가 조산하는 바람에…》
《하하하!》

사내는 또 한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이는 정상적인 열달배기요! 숙희가 당신을 만날 때 이미 배속에 나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요. 이건 숙희의 친구인 춘화가 나한테 알려준 말이요. 숙흰 임신한 몸으로 당신한테 시집을 갔다구.》
《숙희, 이게 정말이요?》

동호는 절망적인 눈길로 숙희를 바라본다. 숙희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떨군다.

《죄송해요, 동호씨! 그땐 동호씨가 절 받아들이지 않을가봐 임신한 사실을 속였던거예요.》
《아아!》

동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동안 넋나간 사람처럼 멍해있던 동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부모도 가짜고 안해도 가짜고 자식도 가짜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세상이란 말인가! 붐비는 인파속에서 걸어가고있는 동호는 사람도 차량도 고층건물도 모두 가짜로 돼 보였다. 이 세상 모든것이 가짜로 돼 보였다. 그래, 이 도시는 가짜야! 이 세상도 가짜고! 난 가짜 세상에서 살고있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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