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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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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이 만든 경국지색
2014년 08월 17일 10시 18분  조회:9569  추천:2  작성자: 넉두리

폭군이 만든 경국지색




 
 
력사는 반복된다. 상조(商朝)에 폭군 주왕(纣王)이 있었다면 주나라엔 유왕(幽王)이 있었다. 주왕에게는 달기(妲己)라는 희첩이 있었고 유왕에게는 포사(褒姒)라는 희첩이 있었다. 달기와 포사는 모두 나라를 멸망시킨 희대의 요녀라고 불리운다.

 
 
주왕을 주지육림에 빠지게 한 소달기
 
 
소달기(苏妲己)는 기주후(冀州侯) 소후(苏护)의 딸로서 은(殷)나라(상조를 은상이라고도 불렀다)의 유소 소장 (有苏苏庄—지금의 하남성 초작시 온현 소왕촌)에서 출생했다. 달기는 용모가 선녀와 같고 노래와 춤에 능했는데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애비(爱妃)가 되였다고 전해진다.
주왕이 소유씨(有苏氏—지금의 하남성 무척동)를 정복했을 때 소유씨는 주왕에게 미녀 달기를 바쳤다.
주왕은 원래 문무를 겸비한 현명한 군주여서 동남을 통일한후 동이(东夷)와 평원통일을 공고히 하였고 사회진보와 경제발전을 추진하였지만 재위말기에 자고자대하며 폭군으로 되였다. 주왕은 천하의 절색인 달기를 보자 한눈에 반하고말았다. 달기는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주왕은 달기에게 완전히 넋을 잃었다. 갸름한 얼굴과 신비스럽게 반짝이는 눈, 도화처럼 붉은 입술, 봉긋한 유방과 버들가지처럼 하늘거리는 허리, 풍만한 둔부는 주왕이 그동안 본 어떤 미인보다 백배나 더 아름다왔다.
주왕은 밤마다 달기에게 달려들었고 달기는 기기묘묘한 방중술로 주왕을 사로잡았다. 달기는 사내를 녹일 요부의 기질을 갖고있었다. 주왕은 달기와 음락에 빠져 석달이나 조회에 나오지 않았다.
“달기는 지상의 녀자가 아니라 하늘이 내게 보낸 선녀이다!”
주왕은 달기에게 깊이 빠져들어갔다. 주왕은 달기가 기뻐하는 일이면 무슨 짓이든 서슴치 않았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 길렀다. 그는 또 위주(卫州—지금의 하남성 기현)에 술로 못을 만들어 주지(酒池)라 하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어 육림(肉林)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다. 그는 이 주지육림에서 매일 연회를 차렸놓고 즐겼는데 많을 때에는 3000명의 남녀가 발가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는데 눈을 뜨고 볼수 없을 지경이였다고 한다.
봉지가 지금의 하남성 림장현에 있는 구후(九侯)에게는 매우 예쁜 딸이 있었는데 입궁하여 궁녀로 되였다. 구후의 딸은 달기의 음탕한 행위를 보다못해 몇마디 했다가 당장에서 죽음을 당했다. 주왕은 달기가 시키는대로 궁녀의 아버지 구후도 죽인후 고기를 잘게 썰어 젓갈을 만들어 제후들어게 나누어주었다.
주왕은 폭정(暴政)을 그만두도록 간하는 충신들의 말은 듣지 않고 달기의 말만 잘 들었다. 달기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형벌을 가하는것을 즐겼는데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우에 걸쳐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우를 걷게 하여 미끄러져서 타죽게 하는 포락의 형(炮烙之刑)을 구경하면서 즐기거나 너비 10메터, 깊이 3메터 되는 구뎅이를 파놓고 독사와 전갈을 집어넣은후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그 구뎅이에 떨어뜨리는 돈분(趸盆)이란 형을 구경하기를 즐겼다. 달기가 사람들이 타죽거나 독사에게 물려 괴로워하며 죽는것을 보고 웃었다. 그후 주왕은 달기가 웃는것을 보기 위해 아무 사람이나 불러서 포락의 형이거나 돈분의 형에 처했다.
충신 비간(比干)이 여러번이나 간언했지만 주왕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비간은 승상에 해당되는 관직소사(官职少师)였으며 주왕의 숙부이기도 했다. 주왕이 간언을 듣지 않았지만 비간은 “신하는 죽더라도 임금께 충간해야 한다”며 계속 주왕에게 간언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달기는 주왕에게 자신의 심장병이 나으려면 비간의 심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후 비간이 또 간언을 하자 주왕은 화를 내며 “성인(圣人)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개나 있다고 들었다. 너의 충심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겠다”고 하며 그를 해부하여 심장을 꺼내 달기에게 주었다.
주무왕(周武王)이 조가(朝歌)를 공격해오자 주왕은 록대(鹿台)에서 뛰여내려 분신자살했다. 달기는 주무왕에 의해 살해되였다는 설도 있고 주무왕이 달기를 취하여 시녀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주유왕에게 거짓봉화를 올리게 한 포사
 
 
주선왕(周宣王)은 재위 46년동안 주나라를 반석에 올렸지만 그의 아들 주유왕(기원전 795년~기원전 771년)의 대에 와서 주나라가 망하고말았다. 주선왕이 죽고 주유왕 희궁열(姬宫涅)이 즉위한지 2년째 되던 어느날에 지진이 일어나자 당시 백양보(伯阳甫)란 대부가 “양기가 자리를 잃고 음기아래에 있으면 반드시 근원이 막히고 그 근원이 막히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면서 방법을 대지 않으면 10년내에 주나라가 멸망된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폭군의 기질이 다분했던 유왕은 그런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재위 3년이 되던 해에 포사라는 천하절색의 희첩이 생기자 그는 주지육림에 빠져들었다. 포사는 포나라(褒国)의 미인이다. 이 미인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계기에 대해 사마천은 매우 신비적으로 그려냈다.
하왕조의 뒤를 이어 은나라가 등장하고 다시 주나라의 주려왕(周厉王)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전해내려온 한 상자가 있었는데 그 속에는 소장하고있으면 나라에 길조가 든다는 룡의 침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함부로 열어보아서는 안된다는 금기사안이 있었다. 그런데 서주의 제10대 왕(재위기간 기원전878년~841년)이였던 주려왕 희호(姬胡)가 말년에 이 상자를 열었다. 려왕이 상자를 여는 순간 룡의 침이 궁궐의 뜰로 흘러들어왔는데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것에 개의할 려왕이 아니였다. 려왕이 녀자들을 발가벗겨 큰 소리로 떠들게 하자 침이 문득 검은 자라로 변해 후궁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후궁에 있던 17살가량의 어린 계집이 그 검은 자라와 마주쳤는데 시집갈 나이가 되여 남자도 없이 아이를 잉태했다. 그때는 려왕이 죽고 그의 아들 주선왕 희정(姬静)이 왕위에 올랐을 때였다. 그후 아이를 낳은 후궁은 두려워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내다버렸다.
그 무렵에 선왕은 어린 녀자애들이 부르는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콩대로 만든 화살통이 주나라를 망하게 하리라”는 동요를 듣게 되였다. 뒤이어 길에서 활과 화살통을 파는 부부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왕은 신하들을 불러 그들을 즉시 죽이라고 명령했다. 활과 화살통을 파는 부부는 도망을 치다가 우연히 길에서 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들 부부는 그 녀자아이를 불쌍하게 여겨 업어다가 길렀다. 그 아이가 바로 후궁이 버린 아이였다.
그후 그들 부부는 포나라에 숨어살면서 녀자아이의 이름을 포나라에서 성장했다고 하여 “포사”라고 지었다. 포사가 자색이 뛰여난 처녀로 자랐을 때는 주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 주유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였다. 어느날에 포사의 양부모는 자신들이 지은 죄값으로 포사를 유왕에게 바쳤다.
녀색을 특별히 좋아한 유왕은 포사를 보자마자 반하여 넋을 잃을 지경이였다. 밤낮으로 포사와 붙어살다가 어느새 백복(伯服)이란 아들을 얻었다. 기쁜 마음에 왕후를 페위하고 포사를 왕후로 삼더니 태자 의구(宜臼)마저 페위하고 백복을 태자 자리에 두었다. 이에 주나라 태사인 백양(伯阳)이 력사책의 기록을 들어가며 주나라가 망할것이라고 탄식했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포사는 잘 웃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려고 유왕은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끝내 웃길수 없었다. 유왕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거짓으로 봉화를 올리고 북을 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자 사방의 제후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헛걸음을 쳤다. 그런 장면을 본 포사는 마침내 웃었다. 포사의 웃는 모습에 넋을 잃은 유왕은 이런 짓을 여러차례나 일삼았다. 더구나 유왕은 아첨만 일삼는 괵석보에게 나라의 정사를 맡기고 밤낮 포사를 안고 즐겼다. 그러자 민심이 들끓었다.
결국 무너진 민심을 등에 업고 신후가 적국인 증나라(缯国),서이(西夷),견융족과 함께 유왕을 공격했다. 급해난 유왕이 봉화를 올리고 북을 쳐 군대를 소집했으나 제후들은 유왕이 또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올리는 줄로 알고 도우러 오지 않았다. 결국 신후는 려산(骊山)아래에서 유왕을 살해하고 포사를 사로잡았으며 페위된 태자 의구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의구가 바로 평왕(平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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