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야, 엄마가 왔다. 서울에서 심양, 다시 심양에서 연길,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엄마는 널 보러 왔단다. 네가 보고싶어 1년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왔단다!
공항에서 나온 경자는 한달음에 아들한테로 달려가고싶은 마음이였다.
“누나!”
마중나온 동생 경수가 목메여 부르며 달려와 얼싸안았을 때 경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생이 짐을 받아들고 택시에 올라탔을 때에야 경자는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어떠시냐?”
“그냥 그렇소.”
“호, 네가 고생이구나.”
경자의 어머니는 2년전에 반신불수가 되여 운신을 못했다. 명의란 명의는 다 찾아보고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으나 지금까지 그 본새로 차도가 없었다. 경수는 그런 어머니를 돌보느라고 대학교기숙사에도 들지 못하고 집에서 통학하고있었다.
“훈이는…”
경자는 가장 알고싶은 소식을 나중에야 물었다.
“그애가 제 애비를 찾아간 후에는 소식을 모르고있소. 나도 공부와 집일이 바빠서 그애를 찾아가보지 못했소. 미안하오. 누나…”
경수는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친정집에 도착한 경자는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나서 짐도 풀지 않고 총망히 택시를 잡아타고 철남으로 향했다. 단층집들이 늘어선 낯익은 골목에서 내린 경자는 총총걸음으로 다가가더니 어느 한 집문앞에 멈춰섰다.
전남편과 함께 여러해를 살던 집, 남들처럼 아기자기하게 살았더라면 그녀는 결코 이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을것이다. 전남편은 지독한 술주정뱅이에 도박군이였다. 로임한푼 내놓지 않고도 끼니마다 음식타발하며 쩍하면 녀편네한테 손찌검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경자는 아이를 위해 불평 한마디 없이 참고 지냈다. 하지만 남편의 행패는 점점 더 심해졌다. 더는 참을수 없게 된 그녀는 결국 천정에 피해가서 리혼을 제기했다.
그런데 화불단행이라고 경자가 정식으로 리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날에 청상과부로 고생속에 살아온 친정어머니가 몸져눕게 되였다. 난전을 벌려 금방 대학에 입학한 경수의 뒤를 대주던 어머니가 운신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남동생의 뒤바라지, 어머니의 치료비, 아들의 학비 등 경제부담과 가정의 중임이 가냘픈 경자의 어깨에 지워지게 되였다. 어머니의 난전을 이어받은 그녀는 목쉬도록 사구려를 웨쳤으나 그 수입으로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기에도 태반부족이였다. 날이 갈수록 빚더미만 앃일뿐.
“여기서 아무리 버둥거려도 살구멍이 있을것 같지 않다. 출국하면 돈을 번다던데…”
어느날, 어머니의 병문안을 온 이모가 한숨섞인 어조로 말했다. 출국? 경자는 한가닥 희망의 빛을 보는듯 했다. 그래서 사처에 연줄을 달아보았으나 남들에겐 활짝 열려있는 출국의 문이 그녀에게만 꽁꽁 닫겨져있는것 같았다.
“지름길이 있단다.”
두번째로 병문안을 온 이모가 경자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 지름길이란 한국인에게 시집가는 길이란다.
“싫어요!”
처음에 단호히 거절하던 경자는 이모의 거듭되는 설복에 넘어가 마침내 머리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이 한몸 내 던져 가족을 살리자!”
이것이 이를 악문 그녀의 비장한 결심이였다. 얼마후 이모가 결혼상대를 물색해왔다. 교통사고로 마누라를 잃은 50세의 한국사장님이란다.
“나이가 좀 많지만 사람이 진국이란다. 네 사진을 보더니 마음에 드는 처녀라며 흡족해하더라.”
“처녀라니요?”
“난 그 사람에게 네가 처녀라고 소개했단다.”
“이모두 참, 사실대로 리혼녀라고 할게지 왜 거짓말을 했나요?”
“리혼한 녀자라면 아이가 있는것이 드러날거야. 그 사람은 몸의 순결여부는 따지지 않지만 아이가 있는 녀성은 싫다고 했단다.”
“그렇다고 어찌…”
그러나 경자는 그 한국인과 대면할 때 아이를 이모집에 숨겨놓고 울며겨자먹기로 처녀행세를 했다. 그녀한테 반한 한국사장님은 “어머니의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에 보태오”라고 하면서 목돈을 내놓았다. 가짜로 미혼공증을 하며 결혼다보니 남들보다 갑절이나 되는 거액의 돈을 9개월이나 되는 마라손식수속에 밀어넣고 마침내 비자 내고 항공권을 손에 쥐게 되였다.
“훈이야, 엄마가 먼데 간단다.”
한국신랑 몰래 아들애와 작별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인차 올게!”
“엄마, 가지 마!”
그때 눈물이 글썽해서 애원하며 매달리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그녀의 눈앞에 삼삼하다.
“훈이야, 엄마가 왔단다. 엄마는 1년을 10년맞잡이로 밤낮 너를 그려왔단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치면서 경자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것은 낯선 사내였다.
“저, 이 집 주인은요?”
“무슨 일입니까? 내가 이 집 주인인데…”
“네?! 그럼 이 집에 있던…”
“아, 원 주인말입니까? 그는 한달전에 이 집을 나한테 팔고 북대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세방을 얻어 이사를 간다고 하던데요.”
“네?!”
낯선 사내가 문을 닫자 실망한 경자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옆집문이 열리면서 “이게 훈이에미 아니요?”하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이웃에서 사이좋게 지내던 강녀인이였다.
“훈이 아빠는 왜 집을 팔고 세방으로 이사를 갔는지 아시나요?”
강녀인의 집에서 인사말이 오간 뒤 경자가 물었다.
“에그, 훈이애비는 사람질을 못하다가 죽겠습데. 곰같은 나그네들이 와서 도박빚을 물라는 성화에 못이겨 집을 팔았다오.”
“아니, 제가 부쳐보낸 돈 2000딸라도 있겠는데요.”
“아이구, 그런 돈이 있었길래 글쎄 한때는 부지런히 술집녀자들을 끌어들였지. 훈이에미도 그렇지, 그 버릇을 알면서 그 나그네 손에 돈을 쥐여줄건 뭐요?”
“글쎄. 나도 훈이를 위해서…”
리혼할 때 경자는 아들을 데리고 몸만 빠져나왔다. 집이고 가장집물이고 일체 재산은 모두 전 남편한테 줘버리고 빈몸으로 나왔지만 지옥에서 빠져나온듯 숨이 활 나오면서 살것 같았다.
경자가 한국에 시집간지 반년남아 되였을 때 아이는 외할머니의 대소변냄새가 싫었던지 아버지한테로 가겠다고 했다. 그때 경자는 한국에서 남편 몰래 전 남편과 전화로 통화하면서 부탁했다. 아이를 잘 보살펴달라고. 그랬더니 전 남편은 자기는 술버릇과 도박버릇을 깨끗이 떼고 엄마없는 불쌍한 아이만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고있다고 했다. 그저 경제적으로 힘이 미약한것이 한스러울뿐이라고 부언하면서.
경자는 물론 그 말을 다는 믿지 않았지만 범도 제 새끼를 중히 여긴다는데 사람가죽을 쓴 전 남편이 간대로 그러랴싶어 훈이의 학비와 생활비로 쓰라고 2000딸라를 부쳐보냈던것이다. 그런데 제 새끼의 생활비를 술집계집의 사타구니에 밀어넣다니?! 그것도 부족해서 집까지 도박에 말아먹다니?! 그런 망나니와 함께 있은 훈이가 근심되였다.
“그 나그네 훈이를 잘 보살피던가요?”
“말두 마오. 한달인가 같이 있다가 제 할미한테 쫓아버렸다오.”
“네?!”
흥안의 시골에서 살고있던 아이의 친할머니는 오금을 바로 쓰지 못하여 바깥출입도 겨우하는 80세의 로인이였다. 그런 로인이 어떻게 아이를 잘 돌볼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먼곳에서 학교는 어떻게 다닌단 말인가?
“내 전번 주일에 시내에서 그애를 만났는데 뻐스를 탈 돈도 없어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고 하던데 불쌍해서 못보겠습데.”
경자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경자는 얼굴을 돌리고 강녀인의 집에서 나왔다.
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려있었다. 마음같아서는 흥안으로 달려가고싶었으나 친정어머니가 기다릴것 같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경자는 아침을 대충 먹고 훈이가 다니는 학교로 향했다.
“엄마, 빨리와. 난 엄마가 보고싶어!”
한국에서 남편 몰래 전화로 통화할 때 아들애가 부르짓던 애절한 음성이 또다시 귀전에 들려온다. 아들애가 당금이라도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올것만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훈이가 입원했어요.”
학교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의 말에 경자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학교에서 갑자기…집에 알렸지만 훈이의 할머니는 오금이 굼뜨지, 아부지, 어머니는 찾을수 없지, 훈이의 외가집에 알리자고 해도 주소를 모르지…”
“훈이가 무슨 병으로…”
“그애가 글쎄 학교쓰레기통에서 변질된 음식을 뒤져먹고…식물중독에…”
경자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았다. 아이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애들이 먹다버린 찌꺼기를 주어먹었을가?! 애비, 에미가 퍼렇게 살아있는 애가 거지로 되여버리다니!
“훈이의 증세가 어때요?”
“위험하대요.”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담임선생님이 안내하는 병실로 달려들어가는 경자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훈이야, 이 에미가 모질어 널 이지경으로 만들었구나.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너만은 버리지 말아야 했어. 흐흑…훈이야, 눈뜨고 봐, 엄마가 널 보러 왔단다!”
한 어머니의 처절한 울부짖음에 하늘도 슬퍼서인지 “우르릉 꽝!”하고 통곡했다…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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