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낯선 사나이가 또 나타났어요. 제가 아들 창호를 학교에 보내려고 문을 열었을 때 저의 집을 기웃거리며 살피던 그 사나이는 도적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화뜰 놀라며 황급히 물러갔어요. 화상을 입은 얼굴이 불그데데하고 거무죽죽하게 얼룩얼룩한 모습이 여간만 험상궂지 않았어요.
벌써 사흘째 아침마다 도적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여들어 두리번거리는 품이 도적놈이 틀림없었어요. 저의 치부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터라 그 사내가 십중팔구는 저의 재물을 노린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엉큼한 사내들이 가끔 방중에 문을 두드리는 시달림도 용케 이겨낸 저는 별로 겁나지 않았어요.
그러데 아들애의 신상에서 일이 벌어지리라곤 천만 뜻밖이였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창호의 손엔 놀이감권총이 쥐여져있었고 책가방엔 새 필통과 새 학습장이 들어있었으며 호주머니엔 그애가 가장 즐겨먹는 대추가 불룩하게 차있었어요.
“창호야, 너 이걸 어디서?”
“어떤 아저씨가 줬어요. 영 무섭게 생긴…”
“뭐라구?!”
순간 가슴이 섬찍해지며 불길한 예감이 파고들었어요. 그 험상궂은 사나이가 아들애를 유인하여 랍치하려는게 아닐가요? 삽시에 근심과 걱정이 가슴속에서 첩첩한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저는 저의 생명보다 귀중한 창호를 가슴에 꼭 껴안았어요. 아들을 위해 전 시집도 가지 않고 10년세월을 굳세게 살아왔어요.
실로 돌이켜보기에도 힘겨운 추억, 가슴아픈 추억, 고통스러운 추억이지요.
어머닌 저를 낳고 난산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진 이듬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의지가지없는 고아인 저를 룡암골의 바보아들을 둔 량주가 키워줬어요. 이처럼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저에게 하느님은 가혹하게도 소아마비후유증에 쌍지팽신세를 져야 하는 시련까지 안겨주었어요.
다행히 양부모가 저를 살뜰히 대해주고 뒤집오빠 춘남이가 따뜻한 손길을 뻗쳐주었길래 저는 삶의 용기를 가질수가 있었어요. 소꿉동무로 함께 자란 춘남오빠는 늘 보호자로 되여 저와 바보오빠를 업신여기는 애들을 혼내주었어요. 저는 이런 춘남오빠가 미더웠고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히 그에게 호감이 갔어요. 근육질이 탄탄한 의젓한 총각으로 자란 그에게서 전 이성의 강렬한 흡인력을 느꼈어요.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애써 털어버렸어요.
춘남오빠가 종전과는 달리 절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간 그날은 정말 꿈과 같았어요. 춘남오빠는 청춘의 정열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손을 꼭 잡고 고백하는것이였어요.
“금자! 꽃인듯 꽃보다도 어여쁘고 달인듯 달보다도 환한 금자! 아름다운 금자, 선녀같은 금자, 내 각시가 되여주오!”
전 가슴이 막 활랑거리며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껴었어요. 이어 춘남오빠는 저를 품속에 와락 끌어안고 마구 키스를 퍼부었어요. 전 지나친 흥분으로 어깨를 들먹였어요.
우리의 사랑은 정말로 달콤했어요. 춘남오빠에게 처녀를 잃었을 때 전 울었어요. 웬 영문인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더군요.
“춘남오빠, 변하면 안돼요. 네? 절 버리고가면…”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요! 내가 금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거요!”
춘남오빠는 손수건을 꺼내 저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저를 꼭 껴안았어요. 전 춘남오빠의 품에서 행복을 느꼈고 미래의 희망을 내다보았어요.
열광적인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 시간가는줄 모르던 저는 어느날에 배속에서 새 생명이 꿈틀거리고있음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또 잇달아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했어요. 양부모는 저를 민며느리로 데려왔다면서 바보아들과 잔치날까지 정해놨어요.
잔치를 사흘 앞둔 날밤에 저는 늘 만나던 장소에서 춘남오빠를 만났어요. 춘남오빠는 저를 꼭 끌어안고 미칠듯이 키스를 퍼부었어요. 가슴속에서 근심이 여울치고있는 저는 그럴 여유가 없어서 춘남오빠를 살며시 밀쳤어요.
“오빠, 어떻게 해요? 이제 잔치날이 막 닥쳐오는데…”
“글쎄, 골치아픈 일이요.”
“아이참, 우리 둘이 결혼하면 되잖아요? 전 당장 오빠네 집에 가서 살겠어요!”
“허참, 결혼이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이요?”
“그럼 무슨 방법이 있나요?”
“글쎄, 낸들 무슨 방법이…”
춘남오빠는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아댔어요. 저는 주대가 없는 그가 얄미워났어요. 전 그의 입에서 담배대를 확 나꿔채여 저만큼 던져버렸어요.
“배속의 아이는 어떻게 해요?”
“떨궈버리우!”
“뭐라구요?”
전 저의 귀를 의심했어요. 그의 입에서 주저없이 이런 말이 튀여나오다니?
“왜 떨궈비리겠어요? 우리 결혼하면 해결될 일인데…”
“금자, 우린 결합될수 없소!”
“왜요?”
우리 부모는 장애자며느리를 삼을수 없다오!”
“네?!”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환멸의 비애가 가슴에 차고넘쳤어요. 스무살 처녀의 순정이 이렇게 한줄기 연기로, 한줌의 재로 되여버렸어요.
“제가 장애자이기때문이라구요?”
울분이 가슴가득 괴여올랐어요. 피눈물이 솟구쳤어요.
“그래요. 전 장애자예요! 하하하! 오빤 제가 장애자인걸 몰랐어요? 저도 그만 잊고있었군요. 하하하! 전 장애자예요!”
그렇게 히스테리적으로 웃으면서 저는 춘남오빠와 헤여졌어요. 그날밤에 저는 아무도 모르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룡암골을 떠나 도망의 길을 다그쳤어요. 그러다가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저는 시가지의 어느 시계방앞에 쓰러졌어요. 마음씨 고운 시계방의 난쟁이가 저를 구하여 조수로 받아주었어요. 저는 지나간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착실히 일만 했어요.
제가 출산했을 때 난쟁이는 영양가있는 음식을 먹여준다, 빨래를 해준다 하며 정성껏 시중을 들었어요. 전 인간세상의 따사로움을 한껏 느꼈어요.
난쟁이는 아이를 기막히게 고와했어요. 짬만 있으면 애를 데리고놀았어요. 애가 세살되던 해의 어느날에 저는 난쟁이가 애를 데리고놀면서 하는 말을 엿듣게 되였어요.
“창호야, 아저씨 곱니?”
“곱다.”
“엄마, 곱니?”
“곱다.”
“나도 창호의 엄마가 곱다. 아저씨가 창호의 아부지가 될가?”
“아부지? 해해. 아부지! …”
난쟁이는 창호의 보동보동한 볼을 빨아주었어요. 저는 더 보고만 있을수 없어 아이를 빼앗아가지고 거실로 돌아갔어요. 그날밤에 저는 오만가지 착잡한 생각에 빠져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 일이 있은후 저와 난쟁이사이는 어색해졌어요. 난쟁이는 더는 아이한테 접근할 엄두를 못했어요. 전 어쩐지 그가 측은해났어요. 마음씨 곱고 손재간이 출중한 그가 생리적결함때문에 여태껏 로총각으로 있었어요. 전 그와 가정을 이루려고 작심했어요. 그런데 우리의 아름다운 연분이 맺어지기도전에 그가 인간세상과 하직할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난쟁이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난후 저는 시계수리를 그만두고 옷장사에 나섰어요. 끈질기게 한덕에 원근에 이름난 치부장원이 되였더니 청혼자도 많았어요. 하지만 전 아들을 위해 사랑의 창문을 꽁꽁 닫아버렸어요. 아들은 저의 생명보다도 귀중해요. 그런데 지금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아들을 해치려들고있으니 제가 어찌 불안하지 않을수 있겠어요.
“창호야, 그 무섭게 생긴 사람이 널 보고 어찌던?”
“이름과 나이를 물어봤어요.”
“이후부터 주의해야 한다. 낯선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지 말고. 알겠니? 래일부터 엄마와 함께 학교가자. 돌아올 때도 마중갈께.”
다음날 아침에 저는 아이와 함께 학교가는 길에 나섰어요. 거리에는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과 오가는 차량들로 붐비였어요. 아이는 저의 앞에서 재롱을 피우며 깡충깡충 뛰여갔어요. 바로 그때 저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멀지 않은 앞에 서있는것을 발견했어요. 학교가는 아이의 길목을 지키고있어던게 틀림없었어요. 아이는 어느새 저한테서 멀어져 그 낯선 사내쪽으로 가까이 가고있었어요.
“창호야!”
제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던 아이는 다가오는 자전거를 피하여 길복판에 들어섰어요. 공교롭게도 그 시각에 해방패자동차 한대가 아이를 향해 질주해왔어요. 쏜살같이 덮쳐드는 자동차앞에서 혼비백산한 아이는 어쩔바를 몰라 가만히 서있기만 했어요.
“창호야, 창호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 눈앞이 캄캄했어요. 아이가 자동차밑으로 빨려들어갈 아슬아슬하고 위기일발의 순간이였어요. 갑자기 그 험상궂게 생긴 낯선 사나이가 번개같이 달려가며 아이를 밀어던졌어요!
아이는 구원되였어요. 하지만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는 영영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이를 해친다고 의심했던 사나이가 아들을 구하다가 생명을 바쳤어요.
후에 그 사나이의 호주머니에서 저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편지가 나왔어요. 그 편지를 펼쳐든 저의 손은 심하게 떨렸어요.
“금자! 손꼽아 세여보니 꼭 십년이요. 십년전에 금자를 차버린 내가 십년후인 오늘 버림받은 몸이 되였소. 뜻밖의 사고로 화상을 입은 나를 안해는 헌신짝같이 차버렸소. 응당한 보응이요! 나는 신문에 실린 금자의 사적을 읽고 금자가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그처럼 꿋꿋이 살아가고있다는것을 알았소. 금자는 장애자가 아니요. 진정한 장애자는 나같은 인간이요. 나는 아이가 나의 아이라는것을 확인했으나 아이앞에서 아버지라고 밝힐 면목이 없었소. 나는 아버지로 될 자격마저 없는 인간이요. 아이와 더물어 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오. 영원히 용서받을수 없는 춘남으로부터.”
“애 아버지!”
저는 피타게 부르짖었어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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