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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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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전용렬차 피습사건
2015년 05월 10일 16시 14분  조회:5995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모택동의 전용렬차 피습사건 
 
(번역)



 
1955년에 소산현(萧山县)에서 모택동의 전용렬차피습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당시에 “통천대안(通天大案)”이라고 불리웠다.
1955년 6월 18일 19시 10분에 모택동주석과 중국남방을 방문하던 구쏘련의 부장회의 주석 마린꼬브(马林科夫)를 태운 전용렬차는 천천히 항주기차역에서 출발했다. 19시 45분에 렬차가 소산현의 서문도구(西门道口)를 지날 때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울렸다. 모택동을 수행하면서 안전을 책임지고있던 성공안청의 왕방(王芳)청장은 깜짝 놀라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전용렬차를 신속히 검사했다. 그는 놀랍게도 여섯번째 차량칸의 오른쪽의 유리창에 구멍이 하나 나있는것을 발견했다. 구멍의 크기는 엄지손가락정도였다. 왕방과 경호일군들은 모두 식은 땀을 흘렸다. 렬차가 제기현(诸暨县)기차역에 정차했을 때 즉시 기차에서 내린 왕방은 기차역장실로 가서 성공안청 부청장 려검광(吕剑光)과 통화를 하여 전용렬차에서 발생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 사건의 심각성은 이미 하늘끝에 닿을 정도였다. 려검광은 즉시 소산현공안국의 반진탁(潘振铎)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용렬차가 피습된 상황을 알려주고 소산현공안국에서 즉시 사건을 해결하도록 지시한다. 전화를 마친 려검광은 즉시 밤을 새워 소산까지 갔다. 려검광은 반진탁과 함께 사건을 조사한후 함께 항주로 가서 절강성당위서기 강화(江华)와 담진림(谭震林)에게 보고하려고 했다. 담진림은 당시 중공중앙 정치위원이고 국무원 부총리 겸 화동국 제1서기직을 맡고있었는데 항주에 시찰을 내려왔던것이다. 강화서기의 거처에 도착한후에야 그들은 객실의 쏘파에 앉아있는분이 공안부 부부장 허건국(许建国)인것을 발견했다. 허건국은 담진림과 함께 왔던것이다. 려검광은 즉시 사건을 허건국에게 상세하게 보고했고 반국장이 보충하여 보고했다.
허건국은 다음날 아침에 담진림에게 이 사건을 보고한후 즉시 제기현기차역으로 가서 전용렬차에 뚫린 구멍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조사한후 하건국은 이 구멍이 총격으로 생긴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총격이라면 렬차의 다른쪽 유리체도 구멍이 나야 할것이기때문이였다. 이를 기초로 적이 모주석과 마린꼬브를 암살하려 했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고 보았다. 오히려 현지민중들이 던진 돌이 전용렬차에 잘못 맞아서 그 구멍이 생것을 가능성이 컸다. 허건국은 수사의 중점을 안교향의 조가교촌으로 할것을 제안하였다. 왜냐하면 이곳의 철로는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가기때문에 사건이 아마도 그 곳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은 그 곳의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나쁜분자, 력사문제가 복잡한 분자들이 그날 저녁 19시부터 20시사이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자세히 조사했다. 하지만 그 사건은 4류분자가 저지른것이 아니였다.
1955년 6월 23일 오후에 소산현공안국에서는 수사상황을 종합하여 분석한 결과 촌민 조문생(曹文生)을 혐의자로 인정하고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예상했던대로 조가교촌의 시골농민 조문생은 공안국으로 잡혀와서 사실을 그대로 실토했다:
“기차가 오기전인 6월 18일 저녁에 우리 5~6명은 철로서쪽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있었습니다. 나는 철로에서 주운 돌을 손안에 쥐고 놀고있었는데 그때 아주 멋있는 렬차가 달려오고있었습니다. 나는 그냥 돌을 던졌는데 기차의 차창유리에 맞았습니다.”
조문생이 한 말은 현장에 있던 다른 농민 조배흥의 증언과도 일치했다. 진상이 규명되자 수사에 참가했던 모든 일군들은 큰 짐을 벗은것 같았다. 려검광은 현장에 있던 공안일군들에게 말했다:
“이 사건이 마침내 해결되였습니다. 왜 허건국부부장이 이렇게 중시했고 친히 현장까지 나와서 살펴봤겠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날 그 전용렬차에 누가 타고있었는지 압니까? 바로 모주석과 쏘련부장회의주석 마린꼬브입니다. 이런 렬차가 피습받았으니 전국에서 최대의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자리에 있던 공안일군들은 모두 놀라서 혀를 내밀었다.
사건은 해결되였는데 이 “통천대안”을 저지른 자를 어떻게 처리할것인가를 놓고 소산현공안국의 지도자들은 어찌 할지를 모르고있었다. 현공안국에서는 성공안국으로 사건기록을 보냈고 성공안국에서는 그 사건기록을 공안부로 보냈다. 진술록음자료와 증언진술기록도 모조리 함께 보냈다. 허건국은 보고를 받은후 “조문생이 철로교통안전을 파괴한것은 범죄행위이다. 조문생이 빈곤농민인 점을 감안하여 철저히 교육하고 경하게 처리하라. 집행유예면 괜찮겠다”고 지시했다. 중앙의 지시는 성으로 내려왔다. 성공안청 왕방청장은 조문생의 사건기록에 친히 처리의견을 적었다. 조문생은 구금된지 23일후에 석방되여 가족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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