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한무제와 리부인의 사랑
서한때에는 황제와 항후의 릉을 나란히 배치를 하였는데 황제릉은 서쪽에 황후릉은 동쪽에 위치했다. 그런데 무릉(한무제의 무덤)만은 동쪽에 있어야 할 황후의 릉이 없다. 한무제에게 진황후와 위황후 두명의 황후가 있었다. 하지만 진황후는 페위되였고 위황후는 억울한 고소를 당해 자살하고말았다. 이런 까닭에 황후의 릉이 없고 대신에 한무제가 말년에 의지했던 리부인의 묘가 있다. 그런데 리부인은 황후의 서렬에 오르지 못했기에 그녀의 무덤은 동쪽에 위치하지 못하고 무릉의 서북쪽에 위치해있다.
리부인은 비천한 출신이였다. 그녀의 오빠인 리연년(李延年)은 노래와 춤에 뛰여난 배우였다. 작곡에 뛰여난 자질이 있어서 감미로운 선률로 변주곡을 만들어 불렀는데 한무제는 물론 신하들이 모두 좋아했다. 어느날에 리연년은 한무제앞에서 춤추며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겼다.
북방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어(北方有佳人) // 세상 제일의 미모를 독차지 했구나(絶世而獨立) // 한번 웃음 지으면 온 성이 무너지고(一顧傾人城) // 두번 웃음 지으면 온 나라가 기울어지네(再顧傾人國) // 성과 나라가 기우는것을 어찌 모르랴마는(寧不知傾城與傾國) // 천하의 아름다운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려운 법(佳人難再得).
이 노래를 들은 한무제는 리연년의 누이동생이 노래의 주인공임을 알고 탄복하여 그날부터 리부인을 애첩으로 삼았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라는 말처럼 리부인은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리부인은 입궁한지 몇년이 되지 않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 병이 더이상 치료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리부인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한무제는 리부인을 보러 찾아왔다. 경국지색에 대한 황제의 사랑은 식을줄 몰랐는데 사랑하는 녀인을 보내야 했으니 황제의 가슴은 얼마나 미여졌겠는가? 어여쁜 얼굴을 한번 보고싶어 찾아왔으나 리부인은 보여주지 않았다. 황제가 온것을 본 리부인은 급히 이불로 얼굴을 가리우고 말했다.
“첩이 병으로 얼굴이 망가져 페하를 뵙지 못하겠나이다. 제가 죽은후 저의 식구들을 보살펴주십시오.”
“부인이 병이 위중하지만 약으로 치료할수 있는데 어찌 짐을 다시 보지 못한단 말이요?”
한무제는 기어코 리부인의 얼굴을 보려고 이불을 들어올렸다. 리부인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영원한 리별을 앞두고 한무제는 얼굴을 보여달라고 거듭 사정했지만 리부인은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황제는 속상해하며 떠났다. 그 자리에 있던 리부인의 누이동생이 리부인을 탓했다. 그러자 리부인이 말했다.
“페하께서 알고계신 얼굴은 예전의 내 모습이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면 황제는 놀라서 우리 식구들을 절대로 보살펴주시지 않을것이다.”
며칠후 리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일의 결과는 과연 리부인이 예상대로 되였다. 리부인이 한무제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은것은 그녀에 대한 황제의 무한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그리하여 황제는 명화가를 청하여 그녀의 화상을 그려 감천궁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리부인이 죽자 한무제는 리연년을 악부의 장관인 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오빠인 리광리(李廣利)를 이사장군(貳師將軍)으로 삼았다. 리부인에 대한 한무제의 애틋한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나라의 방사 소옹(少翁)을 시켜 리부인의 혼령을 불러오게 하고 황제는 애절함에 겨워 노래까지 불렀다.
“부인이오, 아니오?(是邪非邪) // 내 멍하니 서서 그대만을 바라보노니(立而望之) // 어이 이다지 나폴나폴 더디게만 오시는가(偏何姗姗其來遲).
뛰여난 문인이였던 한무제였기에 리부인의 죽음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총희(寵姬) 리부인에 대한 한무제의 애타는 마음이 한편의 부(賦)에서 절절하게 나타났다.
저토록 밝은 세상 두고(去彼昭昭) // 어둠의 세계로 떠나갔구려(就冥冥兮) // 신궁으로 내려가면(旣下新宮) // 다시는 옛터로 돌아오지 못하나니(不復故庭兮) // 아아, 애달프도다!(嗚呼哀哉) // 그리운 혼령이 이토록 아른 하거늘(想魂靈兮).
사랑은 권력보다 강하다. 권력은 처음 잡을 때에는 무한한 힘을 가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진다. 사랑은 다르다. 처음엔 밋밋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틋한 그리움이 수시로 요동쳐 보고픈 마음은 한시도 식을줄을 모른다. 권력은 사랑을 버릴수 있지만 사랑은 권력마저도 포기하게 만든다. 가장 아름다운것이 사랑이지만 가장 두려운것도 사랑이다. 천하의 제왕 한무제도 평생 많은 녀인을 거느렸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그리웠다. 많은 녀인들속에서 한무제가 원하는 사랑은 리부인이였다. 하지만 정들 무렵에 리별이라면 그 사랑은 애가 끊어지는 처절함이 된다. 천하의 권력을 다 가졌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크지 않은 리부인의 묘가 광활한 벌판에 홀로 다소곳하게 누워있다. 한무제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여 황후에 준하는 장례를 치르고 그녀의 묘를 “영릉(英陵)”으로 불렀다. “꽃”처럼 어여쁘고 “옥”처럼 귀한 녀인이 잠든 곳이라는 의미이다. 한무제의 애끊는 사랑이 최고의 례우를 해준것이다. 그러나 리부인묘는 그러한 례우에 개의치 않고 일편단심 동남쪽의 무릉만 바라보고있다. 산같은 무릉도 고적한 동풍이 싫어 서북쪽의 영릉을 향해 앉았다. 525메터의 오작교가 없는 벌판엔 철책이 가로막고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손잡고 있을수 없어 애틋한 그리움으로 오늘도 영원히 마주보아야만 하는 사랑, 그 사이를 오가는 바람만이 흐느낌과 애절함으로 사랑의 언어를 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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