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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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과학기술과 녀성교육
2010년 12월 07일 11시 09분  조회:4622  추천:40  작성자: 강순화

          연변의 과학기술과 녀성교육


                    중국 연변대학 녀성연구중심   강순화

       
    一. 연변지구와 연변의 과학기술 

   연변은 중국조선족의 주요 집거구이며 조선족인민들이 민족구역자치를 실행하고 있는 지방이다. 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200만 연변인민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 땅에서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며 세세대대로 살아 왔다. 지금 자치주의 총인구는 217만7126명인데 그중 녀성인구는 109만2343명으로 전주 총인구의 50.17%를 차지한다. 전 자치주의 조선족인구는 37.69% (82.0481만명), 한족 59.29% (129.0868만명), 만족 2.6% (5.6523만명), 회족 0.3% (6633명), 몽고족 0.09% (1935명)기타소수민족 0.031% (686명) 등이 있다. (2005년 연변통계년감 자료) 자치주에는 6개시와 두개 현이 있는데 총 면적은 42700km로서 중국 길림성의1/4, 대만성의1.2배, 한국(99393.81km)의 약 43%가 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력사는 유구한바 일찍 26000년 이전 구석기 말기에 연변에는 이미《안도인》이 생존하고 있었고《연변》이라는 명칭은 1920년 전후 이 땅이 3국교제의 변연에 있고 또 연길변무공서 관할에 있다고 하여 연변이라고 하였다 한다. 1930년대 중기에 일제와 괴뢰만주국이 연길시에 세운《간도성 전농 모범장》이 당시 연변지구에 있어서 처음으로 되는 과학연구기구로 칠수 있었지만 기술일군은 겨우 12명밖에 안 되었다. 이밖에 몇 개의 중요한 공장, 광산에 그저 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분석실 혹은 실험실을 설치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한 후 연변에는 인민정권이 건립 되였으며 간도성 정부를 설립하였다. 1952년9월3일에는 민주구역자치를 실시하고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성립했으며 1955년12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이름을 고쳤다. 

    해방 후 특히는 건국이후 공 농업 생산과 문화교육사업이 발전됨에 따라 과학기술사업도 상응하게 제고되고 발전 되였다. 연변의 과학기술사업은 농업과학실험으로부터 시작 되었는데 일찍 룡정, 연길 등지에 세운 연변수전실험장, 연변수토류실방지실험소, 수리관개실험소들에서는 농업과학기술을 널리 보급 시켰으며 1956년 10월에 이르러서는 1200여명의 과학기술보급 선전원을 가지고 있는 연변과학기술보급협회가 정식으로 성립 되였다. 1958년 초에 연변과학기술협회로 개칭하고 그 산하에 농학, 수리학, 림학, 화학, 지질지리 등 14개 학회를 두었는데 회원 5000명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기술이 보급됨에 따라 50년대 이후에 와서는《민간전문가》들이 나타나고 중요한 과학성과들이 이룩 되였는데 안도현 농촌 귀향지식청년 류창은은 장백고산지대에 알맞은《만보11호》,《만보21호》벼 우량종을 배육하여 벼농사 산량을 2-3할(20-30%) 증산할 수 있었고 연길시 장백향의 최죽송은 벼 다수확기술을 모색해 냈는데 그 경험은 전국에 보급 되여 그 본인은 중국농업과학원 특별 초빙연구원으로 초빙 되였다. 조선족 농민 김상욱, 최일선이 길러낸 연변《사과배》는 그 맛과 향기로 전국에 소문을 놓았다. 

   과학기술보급사업이 생기발랄하게 발전함에 따라 전문과학연구기구가 련이여 세워졌는데 1959년 자치주의 첫 과학연구기구-연변농업과학연구소(과학연구일군 249명, 조선족 74명, 9개 연구실 한개 과학정보실)가 설립 되였고 뒤이어 1962년부터 1973년까지 연변잠업연구소(연구일군62명, 조선족30명), 연변림업과학연구소(연구일군34명, 조선족27명), 연변농업기계연구소(연구일군55명, 조선족41명), 연변과학기술정보연구소(연구일군21명, 조선족19명) 연변과학기술연구소(연구일군38명, 조선족34명)등 32개 자연과학연구소가 세워졌으며 1963년부터 연변조선민족언어연구소, 연변력사연구소 등 10여개 사회과학 연구기구들도 잇달아 설립 되였다. 1978년 3월 북경에서 소집된 전국과학대회에서 연변의 13가지 과학연구성과가 영예롭게 우수성과상을 탔으며 두 개 단위가 전국 과학기술 선진단위로 평의 되였다. 

   개혁개방 이후 나라의 사업 중점이 경제건설에로 옮겨지면서 연변의 과학기술사업은 우후죽순마냥 생기를 띠게 되였다. 1991년에는《과학기술로 자치주를 진흥 시킨다》는 전략적 지도사상을 세우고 과학기술 진보와 로동자소질 제고에 의거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침을 실천하였다. 자치주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대오를 확대하고 과학연구 환경을 개선했으며 공헌이 있는 과학기술 일군들을 장례하는 등 정책을 실시함으로서 광범한 과학자들의 적극성과 창조성을 불러 일으켰다. 각항, 각 전업의 과학연구기구들도 육속 보충 건립 되였는데 농업기계, 장백산 특산(인삼, 모기버섯, 더덕 등의 규모화 기지건립), 야생동물, 민족의학, 식품과학, 림업 양봉, 응용과학 등 21개 전민소유의 자연과학 연구기구들을 건립하였고 력사, 문학, 예술 등 사회과학 연구기구들도 새롭게 세워졌다. 목전 전 자치주 8개 시현에 모두 과학기술 부현장、시장이 있고 55개 향정부와 97개 향진에 과학기술 부향장、진장, 과학기술조리 등을 배치하였다. 

    연변대학교를 위수로 한 각 고등학교들에서도 1957년부터 육속 과학연구실을 설립하였는데 현재 사회과학분야에만 50여개 연구소와 20여개 연구실에 1000여명의 전직 연구일군들을 두었다. 연변의과대학에는 천연약물연구소、생물면역연구소、기생충연구소、환경의학연구소、식품건강연구소、심혈관、유전우생(遺傳優生)、소화생리、종양생화、유기물、간염、약물제조(藥物製劑)등 연구소와 연구실이 있는데 전직 연구원만 250여명이 있다.

    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1978년)이후 연변에서는 여러 가지 형식의 과학연구 도급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과학연구 기구와 과학연구일군을 합리하게 이동시키는 것으로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결합을 다그쳐 나갔다. 인재 이동 체제를 개혁한 후 국가의 분배에 의해 피동적 운명에 순종하던 낡은 관념은 환영받는 인재로 되려고 분투하는 새 관념으로 전환 되였다. 1986년부터 1987년 2년 사이 전문기술일군 이동수는 4259명에 달하였다. 민영과학연구기구들도 과감히 성급과 국가급 연구항목 70여개를 맡아 나섰는데 그중 4개 항목이 성급 감정에 통과 되였고 13개 항목이 국가 전매특허권을 신청하였다. 

    연변의 과학기술발전과 경제건설을 위하여 자치주 정부에서는 과감히 외지 인재들을 청해 들였는데 지금까지 2300여명의 과학기술일군들이 연변에 초빙되여  국외의 자금을 들여오고 연변의 풍부한 자원 우세를 이용하여 새 특산품종을 개발하는 등 좋은 성과들을 거두어왔다. 인재의 합리적 이동은 공장과 농촌의 과학연구사업에 새로운 진척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자치주 내의 30여개 기업에 과학연구기구들을 세웠는데 이는 기술의 인입, 소화, 흡수 및 기술개조와 내부기술 발굴 등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고 있다.  

    농촌의 과학기술사업도 초보적인 체계를 이루었다. 전 자치주에 이미 인삼, 모기버섯, 포도, 잎담배 등에 대한 연구기구가 81개 있으며 그 연구인원은 만여명에 달한다. 

    지금 자치주는 전국의 38개 대중도시, 80여개 대학 전문학교, 140여개 과학연구단위, 300여개 기업들과 경제기술 협조관계를 맺고 200여가지 새 제품과 새 기술을 들여오고 있으며 국외의 10여 가지 항목의 새 기술도 받아들이고 있다. 건국 이래 자치주에서 거둔 과학기술연구성과는 885개 항목이 되며 그중 42개 항목은 세계선진수준에 도달하였고 130개항목은 국가급 표준에 이르렀으며 253개 항목의 성과는 성내 선진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 모든 연구 성과 가운데서 85%는 이미 생산에 투입되여 경제적 효과를 거둠으로서 연변경제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목전 전 자치주 과학기술일군은 도합 109052명(자연과학-63563명, 사회과학-45489명)인데 이는 전 자치주 총 인구의 5%로서 전국 평균 수평 (중국과학기술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목전 중국의 과학기술인원은 도합 2639만명으로 전국 총 인구의 2.12%를 점한다.) 인 2.12%보다 훨씬 높다. 광범한 기술 일군들은 각 분야의 과학연구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과학기술을 보급 제고하고 공 농업 생산의 발전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놀고 있다. 전 자치주에 민반 과학기구도 83개소가 있으며 각종 민반 과학협회, 학회, 연구회는 80여개소가 있고 향급 과학보급협회 105개소, 공장광산기업의 과학협회 조직도 34개소가 있어 성시와 향촌이 결합되고 전업성과 군중성이 결합 되였으며 연구와 보급추광이 결합된 과학기술 체계를 이루어 비교적 강대한 과학기술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二. 중국의 과학기술 정책과 연변의 경제문화

    중국 개혁개방의 통수이시며 총 설계사였던 등소평동지는 일찍《과학기술은 제일생산력이다》,《과학기술과 교육으로 나라를 부강시켜야 한다.》라고 호소 하셨다. 중공중앙、국무원의 과학기술진보를 가속화 할 데 관한 결정에는 과학기술은 경제와 사회발전의 우선적인 추동 역량이며 국가 강성(强盛)의 결정적인 인소라고 했으며 또한 과학기술 실력은 이미 국가 종합국력의 강약과 국제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늠하는 중요한 인소라고 강조 하였다. 

    2006년에 공포한《중화인민공화국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제11차5개년(2006-2010)계획요강》에도《과학기술과 교육에 의한 국가진흥전략과 인재에 의한 강국전략을 실시한다》고 공포하였다.《과학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경제와 사회발전의 중요한 추진력으로 삼고 교육의 발전과 재덕을 겸비한 자질 높은 인재의 양성을 보다 두드러진 전략적 위치에 두고 체제개혁을 심화하고 투자를 늘이며 과학기술과 교육의 발전을 가속화하여 혁신형 국가와 인적자원 강국건설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계획요강》에는 또《국가 중、장기 과학기술발전계획을 실시하여 자주적 혁신과 중점적 도약 발전후원, 미래지향의 방침에 따라 국가 혁신체계를 서둘러 구축하고 기업의 혁신능력을 끊임없이 높이며 과학기술의 경제 및 교육과의 긴밀한 결합을 강화함으로서 과학기술의 총체적 실력과 산업기술수준을 전면적으로 높인다》고 강조하였다. 

    2002년 6월 29일《중화인민공화국 과학기술 보급법》이 정식으로 반포되여 중국의 과학기술보급사업은 법제화 건설과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전 사회적으로 과학을 지향하고 사랑하며 과학을 배우고 활용하는 새로운 풍기를 형성했으며 매년 9월의 세번째 공휴일을《전국 과학기술 보급일》로 정하고 전국 방방곳곳에서 과학정신을 선양하고 과학지식을 전파하며 과학 발전관을 수립하는 유익하고 다채로운 활동들을 활발히 벌리고 있다. 

    2004년 7월 북경 중국과학기술관에서는《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편--대자연의 경보와 깨우침》이라는 전람회를 열었는데 이 전람은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을 중점으로《록색GDP》,《순환경제》,《절약형 농업》과《록색 제조업》등 새로운 관념에 치중하였다. 이번 전람을 통하여 전국 인민들이 자연생태환경 보호의식을 한층 높이고 순환경제, 절약형 농업과 록색제조업을 추진해 인류와 대자연의 조화로운 발전을 진일보 추진하였다.      

    지난 2006년 1월 중국과학원사 사무국에서는 570명 중국과학원 원사와 중국공정원 원사들이 투표형식으로 중국과학기술 발전의 10대 뉴스를 평의 하였는데 그 항목에는 : 1. 신주호 탑인 우주비행선 우주비행성공  2. 청장철로 전부개통  3. 64위 고성능 통용 CPU칩(芯片) 고안  4. 중국과학고찰대 첫번째로 남국 최고점에 도달  5. 기록된 종류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중국식물지》출판  6. 첫번째 단분자자선태(單分子自旋態)의 통제를 실현  7. 쵸몰랑마봉의 해발 새 높이 8844.33메터를 측정  8. 중국 대륙 과학시추가 지하 5158메터까지 뚫고 들어감  9. 혈관속에서 운행하는 미형《나미약물분자운수차》를 연구제조  10. 분별률이 최고로되는《중국 디지털 남1호》가 탄생 등을 선택하였다.
       
    과학기술의 제고와 더불어 연변의 경제상황도 많은 발전을 보였는데 2004년 자치주생산총치는 194.3억원으로 연속10년간 10%이상 속도로 상승하였고 일인당 생산총치는 8906원으로 처음으로 인당 GDP가 1000달러를 초과하였다. 2004년 전 자치주 재정수입은 24.3억원으로 전해만 16.1%나 증장하였다.     

    문화교육사업도 커다란 발전을 보이고 있는데 지금 주내에는 19개 학원을 가진 종합대학교인 연변대학교(학생수는 2만2458만명)가 있고, 9개 중등전업학교가 있으며(학생수는6280명), 중학교와 고등학교 193개소(학생수14만3481명), 그중 조선족학교 74개소(5만1109명), 초등학교 407개소(12만7511명), 그중 조선족학교 183개소(5만2164명), 유아원 455개소(3만4972명), 그중 조선족유아원 261개소(1만5319명) 등이 있으며 기타학교도 41개소가 있다.  전 자치주 학령아동 입학률은 99.9%이다.
    자치주에는 8개의 예술표연단체와 4개의 박물관, 8개의 문화관, 70개의 문화짬과 9개의 도서관이 있으며 8개소의 라디오방송국과 9개소의 텔레비방송국이 있다. 이런 문화기구에서 현재 사업하고 있는 일군은 도합 2200여명이다. 전 자치주에서 한해(2004년)에 출판되는 도서는 2020종(조문-740종), 3012만책(조문-4931만책)이며 잡지는 21가지(조문-12종 56만책)종류로 66만책, 신문 11가지 종류로(조문-6종 7444만부) 도합 31108만부를 발행하고 있다.    
 
    三. 연변지구 녀성교육의 기본상황 

   《2005년 연변통계년감》자료에 의하면 전주 총인구는 217만7126명인데 그중 녀성인구는 109만2343명으로 전주 총인구의 50.17%를 차지한다. 전 자치주 인구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녀성군체를 볼 때 다수의 녀성들이 개혁개방의 동풍을 빌어 과감히 사회에 진출하고 있으면 사회 제 분야에서 홀시할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사회의 변천은 부단히 사람들에게 압력과 도전을 가하고 있지만 녀성들은 이속에서도 재능을 늘이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연변지구 녀성들의 문화정도를 보면 대학, 전문학교와 고중, 중등전업 및 초중이상 수준에 도달한 숫자가 매천명당 각각 22명, 224명, 332명으로서 전국평균수준 보다 (전국은 각각 14명, 79명, 233명) 훨씬 높다. 이 외에도 각종 성인교육과 직업교육의 녀성수는 남성을 초과한다. 이는 우리 연변녀성들이 문화교육을 중시하고 힘써 배우는 교육전통, 교육열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녀성의 교육수준은 사회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능력, 수입수준, 생활정황의 중요한 요소로 되며 여성의 사회지위를 결정하는데 있어 관건적인 역할을 한다. 

    2000년 말까지의 연변지구 녀성의 평균 교육년한은 10.8년으로 1995년의 6.8년보다 58.8% 제고되었으며 2004년말에 와서는 11.3년으로 2000년보다도 4.6% 제고되었다. 녀자애들의 소학교 입학률이 99.94%에 달하여 남자애들과 동등한 교육기회를 향수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중, 고등교육의 비율이 점차 제고되고 있는바 전주 보통고등학교의 재학 녀학생은 1,566명으로 총 학생수의 52.1%를 차지한다. 상세한 정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연변 조선족 녀학생 재학상황

 

학교별

    학생수

1990년

1996년

2002년

소학교

학생 총수(명)

80.762

67.384

36.122

녀학생수(명)

39.595

33.330

18.154

녀학생비례(%)

49.03

49.46

50.26

초급중학교

학생 총수

30.441

30.442

32.868

녀학생수

15.072

15.145

16.710

녀학생비례

49.51

49.75

50.84

고급중학교

학생 총수

10.189

9.001

12.555

녀학생수

4.823

4.005

6.424

녀학생비례

47.34

44.50

51.17

중등전문학교

학생 총수

4.957

7.968

7.477

녀학생수

3.028

5.051

4.666

녀학생비례

61.09

63.39

62.40

대학교

학생 총수

5.621

7.172

5.229

녀학생수

2.547

3.553

2.795

녀학생비례

45.31

49.54

53.45

합계

학생 총수

132.129

121.966

94.321

녀학생수

65.065

61.144

48.749

녀학생비례

49.24

50.13

51.68




  최근 10년간 녀학생 재학인수는 기복이 있지만 전체 학생수에서 차지하는 비례는 지속적인 상승선을 긋고 있었다. 1990년에 유독 중등전문학교만 녀학생비례가 61.09%로 절반을 넘었고 그 외 소학교, 중학교와 대학교의 녀학생 비례는 모두 반수가 못 되었다. 하지만 2002년에 와서는 소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녀학생의 비례가 모두 50%이상을 차지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족 녀학생 재학 상황이 말해주다시피 현재 조선족 녀성의 교육은 초등학교는 물론 고중, 심지어 대학교를 포함한 고등교육에서의 남녀차이를 줄이고 큰 발전을 가져왔음을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전국의 평균수준과 비교해볼 때 2002년 전국의 년말통계를 보면, 전국의 녀학생의 재학인수는 평균 학생총수의 47.45%를 차지하지만 조선족의 경우, 평균 51.68%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녀교원의 비례도 많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데 이는 현행 국가교육체제에서 녀성이 차지하는 지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이다. 
  
표2 연변 조선족녀성 교원의 재직상황

학교별

 

1990년

1996년

2002년

소학교

교원총수(명)

3.720

3.988

3.052

녀교원수(명)

2.568

2.964

2.247

녀교원비례(%)

69.03

74.32

73.62

초급중학교

교원총수(명)

2.455

2.320

2.245

녀교원수(명)

996

1.308

1.321

녀교원비례(%)

40.57

56.38

58.84

고급중학교

교원총수(명)

953

832

933

녀교원수(명)

334

336

457

녀교원비례(%)

35.05

40.38

48.98

중등전문학교

교원총수(명)

477

612

녀교원수(명)

201

301

녀교원비례(%)

42.14

49.18

대학교

교원총수(명)

1.346

1.453

1.510

녀교원수(명)

286

379

552

녀교원비례(%)

21.25

26.08

36.56

합계

교원총수(명)

8.951

9.181

7.740

녀교원수(명)

4.385

5.270

4.577

녀교원비례(%)

48.99

57.40

59.13

   소학교의 경우 1990년에 이미 녀교원의 비례가 69.03%를 차지하였고 1996년과 2002년에는 74.32%와 73.62%로 늘어나 현재 소학교의 교원은 거의 대부분이 녀성교원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중등전문학교와 사범학교에 녀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한 상황을 보면 금후에도 소학교의 녀교원수는 계속 증가될 것으로 예산된다.
 고등교육에서의 녀교원의 수도 부단히 늘어나고 있으며 평균년령도 점차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고등교육에서의 녀대생의 증가, 특히는 녀 연구생수의 지속적인 증가에 있다. 고등학교 녀교원수와 그 차지하는 비례는 녀성들이 고등교육에 참여하는 정황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중의 하나이다.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1990년에는 대학교의 녀교원 비례가 21.25%로 5분의1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2002년에는 36.56%로 15.3%나 증가되었다. 녀교원들은 실제교학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교학심리에 비교적 높은 교학능력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과 조화로운 교류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四. 연변의 녀성교육에 존재하는 문제점

  상기의 표1과 표2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교육에서의 녀성의 지위는 전시기에 비해 많은 제고를 가져왔다. 하지만 질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학교에서의 녀교원비례가 상승하였다 하여 순수하게 교학과 학술방면에서의 녀성들의 우세로만 볼 수 없으며 새로운 형세하에 남성교원들의 유실 등 여러 가지 원인들도 배제할 수 없다. 녀대생들의 취업난도 엄중한 문제로 나서고 있는데 국가에서 남녀평등을 원칙으로 제정한 국가정책이 실시과정에서 일부 남성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가게 되여 결국 녀성들에게 더욱 많은 곤난을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녀성 지식인들에게 존재하는 돌출한 문제는:

  1) 높은 차원의 교육일수록 녀성이 적은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경제발달과 사회의 보편적인 정신문화수준의 향상은 녀성의 교육수준도 따라서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술한 녀성의 절대적 교육수준과 문화소질의 제고보다도 남성과의 비교에서 본 상대적 교육수준과 문화수준의 제고가 더욱 중요하다. 고등교육이 귀족(精英)교육으로부터 대중화한 교육으로 전변된 후 대학교 교육도 사회보급교육으로 전변되어 대학모집인수는 대대적으로 확대되였다. 이 기회를 빌어 녀학생들에게도 많은 고등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었으며 녀대생의 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보인다. 상기의 표1, 표2에서 보다시피 대학교에서 차지하는 녀학생 비례가 53.45%로 남학생수를 훨씬 초과하였다. 하지만 교육의 차원이 높아질수록 녀학생수가 점차 감소되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데 석사, 박사 등 높은 학력에서의 녀학생 비례는 상대적으로 낮으며 대학교 녀교원의 비례도 절반을 차지하지 못한다. 특히 대학교 녀교원의 경우, 교수나 박사생 지도교사와 같이 높은 직함을 가진 녀성학자나 녀성전문가는 10%도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녀학생이 적은 리공과류의 전업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녀성간부의 참정, 의정 수준은 45.8%로 제고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층간부이고 지(地), 청(厅)급 등 고위급의 녀성간부는 겨우 5명 정도밖에 안되며 그나마도 “남정녀부(男正女副)”의 경우가 보편적인 현상이다.

 2) 과학문화소질방면에서 녀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부분에서도 간단히 언급하였었는데 대학교의 경우, 전공분야에 따라 남성과 녀성의 차이가 뚜렷하다. 문과류의 전업은 한 개 반에 1,2명의 남학생을 제외하고는 절대다수가 녀학생이지만 리공과의 경우는 완전히 반대다. 교원들도 마찬가지로 리공과는 남성교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문과류는 녀교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양상을 보인다. 주요한 원인은 아직도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낡은 관념과 선입견에 있다. 즉 녀성은 전업성이 강한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남성보다 못하다는 관념이 아직도 많은 정도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며 더욱 엄중한 것은 이러한 낡은 고정관념의 지배하에 녀성 스스로가 자신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력은 비슷하지만 과학문화소질방면에서의 남녀차이가 현저하다. 전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과학소질에 대한 조사연구를 보면 2001년과 2003년에 거쳐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 녀성은 과학지식, 과학방법, 과학과 사회의 관계 등 방면에 대한 요해가 남성보다 많이 부족하다고 나타나고 있다. 2001년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과학기술, 체육, 정치, 경제 등 분야의 뉴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녀성은 새로운 영화거나 드라마에 대하여 더욱 큰 흥취를 가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2003년의 조사는 또 새로운 과학기술 발견에 대한 흥취도는 남성이 녀성보다 6%좌우나 높으며 녀성이 새로운 과학발견에 대한 흥취는 보통이라거나 흥취가 없는 경우가 남성보다 16.5%가 높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과학소질의 제고는 경제, 사회, 문화수준의 제고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교육권리와 기회에 대한 향유정도가 어떠한가, 그리고 과학정보자원과 휴가시간을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아직도 조선족녀성들은 전통적 관념의 지배하에 대부분의 가사일과 자녀교육을 맡고 있기 때문에 직업과 가사가 주는 이중부담으로 인해 자신에게만 속하는 휴식시간을 자유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녀성들, 특히는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녀성들은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교육을 마친 후 재교육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적으며 시간을 들여 과학기술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여유는 더구나 적다. 그 외 일부 녀성들은 전문적인 과학지식을 학습하거나 기술을 습득하는데 별 흥취가 없고 그저 초등교육을 받은 정황 하에서 기초적인 직업을 선택하려고 하는데서 그 의식이거나 취향이 남성들과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 

 상술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전통사회에서 형성된 남녀성별의 배역과 역할에 대한 고루한 관념이 녀성의 진일보 발전과 제고를 엄중하게 저애하고 있는데서 그 주요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2004년 10월 인터넷을 통해 진행한 성별기대(性別期待)에 대한 조사를 보면 아직도 상당한 부분의 사람들이 성별의 형상과 역할에 대한 경직된 전통 관념을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70%나 되는 사람들이 “남편의 수입은 반드시 아내의 수입보다 많아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반면에 “아내의 수입이 남편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는 항목에 대해서는 896명의 조사대상중  한명도 선택한 사람이 없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녀성의 발전에 있어서 유리한 사회 환경과 사회여론의 지지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 환경과 낡은 관념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녀성자신의 자비의식과 심리장애 및 이러한 것들로 기인된 경쟁의식의 결핍이다. 법률상 제정된 남녀평등방침과 책략은 단지 녀성들에게 평등한 조건과 기회를 제공하고 녀성들이 정상적인 발전을 가져오도록 유리한 환경과 가능성을 마련해줄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녀성들의 발전은 오직 자신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五 . 연변지구 녀성들의 변화와 전망

    개혁개방이래 연변지구 녀성들의 현황을 고찰하면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특점을 보아 낼수 있다.  

    첫째는 녀성들의 자아위주의 사상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현대녀성들의 자아가치 척도는 과거의 자아희생으로 부터 현재의 자아성취에로 전변되였다. 그리하여 단순 취직형으로부터 사업형으로 전변되고 녀성들은 과감히 자신의 개성적 특징을 발휘하여 창발적으로 사업을 벌리며 아이를 적게 낳고 가정부담을 감소하는 것으로 자아의 성취를 이룩하며 자신의 인생가치를 높히려 한다. 이런 녀성들에게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항상 노력 분투하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에서의 성공률도 높다. 이것이 최근 10여년간 녀기업가, 녀장원, 녀박사, 녀교수 등이 용솟음쳐 나오게 된 내재적 원인이다.  

   둘째는 다방면적 추구다. 현대 녀성들의 애호는 광범하며 그 추구도 다양하다. 그들은 가정에서 경제상의 평등은 물론 정신상의 평등도 추구하여 부부가 인격상 호상 존중하고 가정의무를 공동히 부담하고 책임질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복잡한 환경에도 아주 잘 적응하며 대담히 시장경제의 충격에 뛰여들어 경쟁을 벌리고 능력을 비기며 어려움을 두려워 하지 않고 분발 노력하며 악전고투한다. 자기가 맡은 일은 전력을 다 하며 똑 부러지게 해내려 한다.《지금 세상에는 게으른 놈이 못산다》는 것이 그들 생계의 좌우명이다. 

   셋째는 녀성들의 미에 대한 표준이 변한 것이다. 오랜 시기를 두고 여성매력의 표준은 오직 예쁘고 온순하며 선량한데 두었다. 그러나 현시대는 독특한 개성이 있고 품위가 있으며 현대감각이 나는 녀성이 더 매력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녀성들은 지식을 부단히 넓히고 문화수양을 제고함으로서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높혀 내적인 미를 살리려 한다. 최근 몇 년 간 우리학교와 사회 각지 녀성학원의 새로운 학습 붐은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시대적 변혁에 적응하는 현대인의 심미가치의 변화라고 본다.

   넷째는 감정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대녀성들은 경제상독립은 물론 인격상에서도 독립하려한다. 오늘날 지식녀성들은 자신이 우선 사회의 한 성원임을 인식하였기에 가사나 자녀양육보다 더욱 광범하고 더욱 중요한 사회적 책임을 느끼게 되였다.  이리하여 《독신귀족》이나《두사람의 세계》현상이 늘고 또 가정에서 과거 감정상 남편이나 자식에게만 의뢰하던 것이 현재는 광범한 사회적 교제를 벌리고 집단활동을 즐기며 사업의 성공에 취미를 붙이면서 감정상 독립하려 한다.  

   다섯째 지식인 녀성들의 새로운 번뇌이다. 고층차의 지식인 녀성일수록 남성과의 동등한 목표를 추구하려 한다. 그들은 사업의 성과로 사회의 승인을 받으려면 모든 면에서 남성들과의 거리를 단축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자신을 자연적 녀성에서 사회적 녀성에로 변화시키려 하기에 사업성공의 기쁨 뒤에는 다방면으로부터 오는 생활의 억제감과 감정의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상 녀성의 남성화로 남녀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력사적 착오인 것이다.

    위에서 렬거한  연변녀성들의 변화특징과 문제점들은 일정한 의식형태의 발전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녀성자신이 자신을 해방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부단히 제고 하려면 목전에는 우선 아래의 몇 가지에 그 착안점을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필자는 인정한다. 

   첫째로 녀성 자신의 문화자질을 재빨리 제고 하여야한다. 녀성교육을 중시하여 고학력층의 녀성수 증가는 물론 전반 녀성의 문화적 자질을 높히는 여러가지 도경을 부단히 창출하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교육부문과 각 학교의 구체조치도 있어야 하거니와 더욱이는 녀성자신의 자각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로 녀성자신이 자기의 약점을 알고 적극적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 중국녀성들이 장기간 습관되여 온 국가와 직장에 대한 의뢰성, 남성보다 못하다는 나약성, 큰일을 할수 없다는 자비감 그리고 또 일부 녀성들의 현 상태에 만족하고 분발상승하려 하지 않는 등 단점들은 왕왕 자신들의 전진을 저애하고 있음으로 제때에 인식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는 사회적으로 제3산업을 계속 발전시켜 가사 로동의 사회화를 실현함으로서 녀성들의 이중부담을 경감하고 그들이 사회생활에서의 적극성과 창조성을 고무 추동하여야 한다. 법적으로 남녀가 공평하게 취업하는 권리를 제정하고 보장해 주어야 하며 생육보상 제도를 건립하고 생육의 사회성을 승인하여야 한다.  

   넷째로 녀성권리의 법적보증을 강화해야 한다. 나라의 헌법으로부터 혼인법, 상송법, 형법, 형사소송법 및 로동법 등 기본 법률법규에 모두 남녀평등과 부녀의 합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규정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아직 구체화, 완선화 되지 못했다. 우선 기본적인 부녀법이 없으며 부녀를 보호하는 일부 법률과 원칙적 규정일 뿐 구체조치가 적다. 이는 부녀립법의 새 과제로 보아진다. 
 
    다섯째, 녀성자신부터 전통사회에서 형성된 성별 역할과 형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낡은 관념이 녀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차례진 기회와 권리를 충분히 이용할 수 없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인재를 판단하는 기준은 “제2의 성”이 없으며 녀성이 사회발전의 수요에 부합되는 우수한 인재로 되자면 자주의식, 경쟁의식, 진취의식, 독창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강자의 심태(心態)로 자아를 초월하여 자신의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나가면서
    이상으로 연변의 과학기술 현황과 녀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연변 녀성들의 현황을 검토하고 존재하는 문제점과 원인을 분석하여 보았다. 목전 중국 조선민족은 출생률의 하강과 청장년인재의 유실 등 문제로 인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는 글로벌시대에 직면한 발전도상 나라들의 필연적인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격변하는 시대에 녀성들이 진정 자신이 처한 환경과 도전하여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고 녀성의 발전을 이룩하려면 자신의 교육수준과 과학문화소질 양성에 모든 마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현시대 녀성들이 꿋꿋이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이 틀림없다.     

    맑스께서는 일찍 사회의 진보는 녀성의 사회적 지위여하로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인류의 반수을 차지하는 녀성의 문제는 곧 천가만호의 사회적 문제이므로 온 사회가 공동히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야할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녀성자신의 정신면모를 크게 개변시켰으며 녀성들의 개성특징을 완선화 하고 그들의 진취심을 불러 일으켜 각항, 각 업종에서의 녀성들의 무궁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 하였다. 이런 역사적 변혁은 녀성군체의 존재와 그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다시금 새로운 시대적 평가를 내리게 할 것이며 사회의 부단한 진보와 물질문명의 발전 및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가치관의 진보 및 완선화에 따라 시대적 특성을 띤 녀성문제들도 점차 해결될 것으로 보아진다. 
                                          
(한국전남대학교《녀성과학자네트워크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론문 2008.8)
 

  참고문헌
 
   1.《오늘의 연변》  왕정원 외    연변인민출판사   1992년 8월
   2.《중화인민공화국 국민경제와 사회 발전 제11차5개년계획 요강(초안)》길림일보(조문판)    2006년 4월 29일
   3.《연변통계년감》  연변주통계국 편   길림인민출판사   2005년 8월
   4.《동북과학기술신문》(조문판)   2005년 1월--12월
   5.《중국조선족여성 현황 연구》 채미화  <여성과 조화로운 사회 학술론문집>     2006년 1월
   6.《연변조선족 녀성형황》 강순화   <중국조선족 문화와 녀성문제 연구>  한국 학술정보 출판  2005년 1월 
   7.《연변통계년감》  연변주통계국 편   연변인민출판사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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