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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0) 수림 속 바위돌밭 김장혁
2024년 06월 05일 11시 39분  조회:51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015년 08월 28일 16시 43분  조회:2159  추천:1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제2권)
                                    
              김장혁 저
                         
                                  
       제7장 흑야
 
        1. 수림 속 바위돌밭
 
    먹물을 뿌려 놓은듯 한 칠칠흑야, 서쪽 밤하늘에 걸려 있는 가냘픈 눈섭달이 봄바람에 스쳐 바르르 떨고 있었다. 한줄기 달빛은 먹장구름을 아득바득 밀어내려고 애를 쓰건만 온 누리의 어둠을 밀어내기는 힘겨웠다.
   잔설이 뒤덮인 아득히 먼 기운봉 아래 뭇산들은 검은 장막 속에 파묻혀 거뭇거뭇한 몸뚱이를 웅크린 채 취한 듯이 굳잠에 빠져 있었다. 늦잠을 자던 기운봉 기슭의 산발들이 무섭게 내리누르는 어둠을 털어버리고 창공을 떠받고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둠의 장막은 걷힐줄 모르고 점점 더 어둡게 고향의 산발들을 감쌌다. 어찌나 어두컴컴한 밤인지 주먹으로 불시에 얼굴을 들이쳐도 눈치 채지 못할 캄캄하고 갑갑한 흑야였다.
    어둠에 짓눌린 방안에서 병완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담, 가담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겨우내 길닦이를 하지 않은 동안이나마 집에서 조용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지만 근심스러운 일은 태산 같았다.
     끼무라는 그가 총 도감이라고 영월동이나 운주동에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였고 그의 아내 성희나 며느리 하옥을 옥에서 풀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지리 지루한 이태 사이에 그는 집에서 잠시나마  한집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는  이태나 인부들을 데리고 경성으로 통하는 큰길 닦기에 나섰다. 하지만 끼무라가 인부들의 삯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제대로 주지 않아 골치 아팠다.
    (삯전을 주지 않으면 인부들이 뭘 먹고 산단 말인가? 원삼이네 삼형제가 길닦이 공지에서 빠져 집으로 잘 달아났지. 일본 놈들을 믿다간 한지에 방아를 걸 지경이야. 언제 삯전을 줄지 알 턱이 있느냐? 쳇, 일본 놈들은 이젠 사냥도 하지 못한다지 않는가. 성칠과 숱한 사냥꾼들을 체포하려고 미쳐 날뛰지! 성칠은 어데 가서 헤매는지? 그 놈이 무사해야 되겠는데. 자식, 이태 동안이나 종무소식이니 속이 타서 이거 원 어디 살겠는가? 자식이 상호와 동욱이랑 숱한 마을 청년들을 데리고 갔잖은가. 기별이라도 할 게지. 원, 서른도 넘은 놈이 이젠 부모들 심정도좀 알아야겠는데. 참, 애를 낳아 길러 보지 못한 놈이 돼서 저럴까. 쯧쯧.)
    병완은 너무 답답해 자리에서 일어나 성희를 깨울세라 조심조심 담배통을 당겨다놓고 담배를 한 대 말아 물었다. 부시까지 손더듬질해 찾아 쥔 그는 부시를 척척 켜서 겨우 담배를 붙였다.
    속이 탄 그는 담배를 길게 빨았다 후- 내뿜었다.
   (일본 놈들의 경찰국 사무 청사는 무너지지도 않고 아직도 보기 싫게 서있지 않는가. 나무벌레들이 몇 해 지붕틀과 대들보, 기둥이랑 구멍을 뚫어 무너지게 만들까? 확실히 나무벌레가 기둥뿌리를 파먹는 소리가 까닥까닥 났는데. 언제 쾅 무너지겠냐?)
   후~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일본 놈들이 이 고향에 있는 한 배불리 먹고 살 날은 없어. 그런데 무슨 힘으로 일본 놈들을 몰아낸단 말인가!)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엔 황무지에 일군 밭에마저 나무를 심어라고 지랄이지 않는가? 어떻게 일군 밭이라고 그래. 이건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뭔가?)
   병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살 길이 막막했다. 온밤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자리에 누워 눈을 조금 붙였다.
동녘이 푸름해지자 그는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바깥에 나가 지게에 재를 퍼 담아 메고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그는 지게의 재를 쏟아 바위와 바위 사이에 가면서 삽으로 펴놓았다.
    싸늘한 해가 뜨자 성희가 문을 열고 나와 재를 버리려다가 삽으로 재를 지게에 퍼 담는 병완을 발견했다.
   “여보, 신 새벽부터 어쩌자고 이래요?”
   병완은 삽으로 재를 지게에 퍼 담으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밭에 나무를 심으라는데 어디 입에 풀칠이나 하겠소? 바위 돌 틈에라도 재를 펴놓고 메밀이라도 심어야겠소.”
   성희는 함지의 재를 버리려다가 말고 땅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바위돌 틈새에 메밀을 심어서야 몇 알 거둔다고 그래요?”
   “그래도 어쩌겠소. 한 마대라도 거두면 얼마나 좋겠소?”
   그때 하옥이도 밥을 지어놓고 나와 시부모를 따라 함지에 재를 담아 이여다가 바위돌 틈새에 폈다.
    병완은 십여 일 동안 낮에는 마을 앞에 가서 길을 닦는 일을 감독하고 이른 아침이면 재를 지게에 져다가 바위돌 틈새에 펴놓았다.      그 덕에 한헥타르나 되는 새 “바위돌 밭”을 일구었다.
   한달 푼히 지나니 기운봉 기슭의 뭇 산에 드문드문 뒤덮였던 잔설이 녹고 봄바람이 훈훈히 불어왔다.
   서산의 수림 속 어디선가 뻐꾸기가 “뻐꾹" "뻐꾹” 봄소식을 알리고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제창 좋은 파종 계절이 왔다고 기별을 전했다.
   봄은 농사꾼들에게는 희망의 계절이었다.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올해는 풍작을 거둬들여 배불리 먹고 살리라는 희망이 가슴을  부풀게 했다. 그러나 일제 놈들에게 짓밟힌 가을에는 농사군들의 봄에 싹튼 희망과는 달리 실망을 안겨 주군 하였다.
   (올해는 어떨지?)
   병완 일가는 몽땅 동원돼 바위 돌 틈새에 재를 펴고 나무꼬챙이로 재를 찔러 구멍을 낸 후 메밀 씨를 뿌려 넣고 잘 파묻어놓았다.
  병완은 쉼에 나무꼬챙이를 너럭바위에 놓고 셋째 며느리 잔등에서 넷째 손자 상순을 뽑아 높이 쳐들었다가 품에 꼭 끌어안고 볼을 자기 얼굴에 대고 비볐다.
   “낯이 길쭉한 게 제 애비를 똑 떼 닮았구나. 이 쌍까풀눈을 봐라.”
   기준은 옆에서 허리 쉼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거 세 귀 눈을 보시오. 딱 아버지 안질 같지 않은가.”
  그 말에 병완은 밭고랑 같은 주름살을 쫙 펴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래? 어디 보자. 이 놈이 정말 세 귀 눈이구나. 허허허. 한대 건너 날 닮았구나. 이 놈이. 정말 고와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
  “할아버지, 앵~코, 앵~코 하자.”
  “그래, 그래. 앵~코 하자.”
  병완은 상순을 안고 너럭바위에 누워 발우에 상순을 올려놓고 “앵~코-” “앵코-” 하면서 다리를 올렸다 내리웠다 했다.
  상순은 좋다고 야단쳤다.
  그 모습을 보고 기준과 사련은 마주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한참 후 병완은 상순을 안고 일어났다.
  사련이 상순을 안아갔다.
  병완은 기준과 창준을 불렀다.
  “얘들아, 너희들도 운주동 산기슭 바위돌 틈에 재를 펴고 메밀을 심어라.”
  기준은 볼 부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바위틈에 메밀을 심어 몇 알 거두겠습둥?”
  병완은 눈을 흘겼다.
  “한 마대라도 거둬 보리고개를 넘는데 보태야지. 새해부터 일본 놈 새끼들이 밭에 나무를 심으라는데 뭘 먹구 살겠냐?”
  기준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거 일본 놈들 성화에 어디 견디겠습니까? 일본 놈들을 몰아내지 못할 바에야 아버지 말씀대로 만주에 가면 어떻습둥?”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말이다. 헌데 한평생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어떻게 만주로 간단 말이냐? 려생 할아버지 대부터 조상들의 산소가 모두 여기 명천에 모셔졌는데 어떻게 버리고 가? 불효자식이라고야.”
  그때 성희가 끼어들었다.
  “난 안가. 남쪽 충청도 한산면에 둔 고향을 떠나 입북한 것만 해도 그런데 또 두 번째 고향 같은 명천을 버리고 만주로 가? 안가, 난 안가!”
   그 말에 병완은 눈을 흘기었다.
   “또, 또 그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애들이 당신 한산 리씬 걸 몰라 줄까 봐 그러오? 쳇, 지금 충청도나 서울엔 여기보다 일본 놈들이 더 욱실거린다오. 거기 가 살겠으면 살아보우.”
   성희는 독기어린 영감의 눈길을 피하더니 굽은 허리를 쭉 펴면서 기준과 창준에게 손으로 삿대질 했다.
  “너거(너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다신 만주로 간단 말 하지 마! 만주에 가 아내를 되놈들에게 빼앗기려고 기래? 애들도 몽땅 되놈 색시 얻으려고 기래? 안 된다. 안 돼!”
   무두들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다.
  한참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거 총 도감이 아닌가? 길닦이는 하잖고 여기서 뭘 하는가?”
  바위돌 틈새에서 기어 나왔나. 능구렁이 같은 한길수가 야마모도 소장과 함께 일본 헌병들과 자위대 놈들을 끌고 이 깊은 야산에까지 나타날 줄이야.
  “여기서 뭘 해?”
  병완은 너럭바위에서 일어나 손바닥의 먼지를 툭툭 쳤다.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메밀을 심네.”
  야마모도 소장이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수건으로 닦아 다시 눈에 걸었다.
  “으흠, 조선 사람 말이 아냐. 산에 나무를 심지 않고 자꾸 곡식 심어?”
  뒤이어 야마모도는 손사래를 쳐댔다.
  “안 돼, 안 돼. 몽땅 나무를 심어야 돼!”
  그러자 괭이자루를 꽉 틀어쥔 병완의 소발쪽 같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괭이로 야마모도 놈을 콱 찍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애들의 장래를 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용케도 참아 냈다.
  “당신 말대로 밭에 나무를 다 심구 그래 우리 굶어 죽으래? 되지도 않을 소릴 하지도 말라.”
  기준은 옆에서 황소숨을 몰아쉬더니 참지 못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여긴 내 고향이야. 네깐 일본 놈들이 뭔데 내 고향 땅에 메밀마저 심지 못하게 하느냐?!”
  류강철이 그 말을 통역해주자 야마모도는 군도를 뽑아들고 기준한테 달려들었다.
  “바새끼! 죽어, 죽었소까!”
  기준은 병완의 손에서 괭이를 빼앗아 쥐고 날아드는 군도를 막아냈다.
  “그만 둿!”
  이때 등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모두 머리를 돌려보니 끼무라가 경찰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기준과 야마모도는 괭이와 군도를 거두었다.
  끼무라는 군도자루를 잡고 헐금씨금 병완의 앞에 다가왔다.
  “총도감, 근심하지 말게나. 여기에 메밀을 심어 먹었소. 길만 잘 닦으면 돼.”
  그러나 병완은 오히려 오만상을 찡그렸다.
  (내 굶어 죽어도 네 놈들 쌀을 먹을 것 같으냐?)
  교활한 끼무라는 야마모도 소장을 책망하는 척 했다.
  “자넨, 림장이나 잘 지키라고. 하필 총도감이 묵밭을 일구는 걸 가지고 시비할건 뭔가? 빨랑빨랑 림장에 가.”
  이번엔 몸뚱이를 한길수에게 돌렸다.
  “한 대장, 자꾸 총도감과 이러지 말게나. 둘이 힘을 합쳐 대일본 제국의 일을 많이많이 도우란 말이야.”
  “하이!”
  한길수가 일본 말로 대답하면서 군례까지 척 붙이었다.
  병완은 구역질이 나 침을 “퉤!” 뱉었다.
  “원, 더러워서 못살겠어.”
  병완은 떠나가 버리는 일본 놈들과 발발이 같은 한길수 뒤에 대고 줄 욕을 퍼부었다.
  “흥!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총 도감? 길만 다 닦으면 헌 신짝 버리듯 할 게 뻔하다. 쳇, 저 놈들이 보기 싫어서 만주국에 가버려야겠다.”
  성희는 병완을 말리였다.
  “만주에 간다고 잘 살 것 같아요? 전번에 본가 집에 가보니 서울이나 충청도 한산은 몽땅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됐더구먼요. 오랍동생이 말하던데요. 우리 고향 마을에서 만주로 간 사람들이 그러더라나요. 만주에선 만족과 되놈 강도들이 여편네를 마구 빼앗아 간다던데요. 괜히 만주로 가서…”
   병원은 단마디로 노친의 말을 잘라버리었다.
  “됐소, 됐어. 물론 여기서 저 놈들의 비위를 맞춰 주면 그럭저럭 살 수는 있소. 그러나 만주의 개나 돼지처럼 살지언정 일본 놈들의 총 도감이나 하면서 살진 못하겠소.”
  병완은 얼굴을 기준에게 돌리었다.
  “기준아, 내 먼저 만주로 들어가 어떤가 두루 돌아보고 오마.”
  기준은 말려 나섰다.
  “아버지, 내 들어가 보겠습꾸마. 아무래도 여기 고향에서 살 것 같지 못합꾸마. 아버지가 한길수를 외눈깔을 만들어놨지. 이태 전에 내 또 영팔과 승만을 때려눕히지 않았습둥? 저 놈들은 우릴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자꾸 걸고들어 못살게 굴게 뻔합꾸마.”
  병완은 한참 먼 남산을 쳐다보면서 묵묵히 고민하더니 머리를 힘없이 끄덕였다.
  갑자기 성희는 바위 돌 사이에 폴싹 물앉더니 엉엉 대성통곡 쳤다.
  “만주에라고 일본 놈들이 없겠느냐? 전번에 고향에 갔다가 들었는데 간도 용드레촌에도 일본 놈들이 득실거린다더라.”
  그래도 병완은 고집을 부렸다.
    “일본 놈들이 만주 산골에까지 갔겠소? 일본 놈들이 없는 산골에 가서 땅굴을 파고 살면 그 놈들인들 어쩐대?”
   말이 쉽지 고향 땅을 버리고 이국의 낯선 타향에 가서 어떻게 살겠는지 기약이 없었다.
  모두들 맥이 풀려 더 일하지 못하고 성희를 부축해 괭이를 메고 메밀 씨 함지랑 이고 안고 집으로 내려갔다.
    소 잔등 같은 바위돌들만이 엉거주춤들 물러 앉아 한숨을 풀풀 쉬면서, 멀어져가는 불쌍한 주인들을 바래고 있었다. 바위돌들은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뭐라고 두덜거리었다. 농사군들의 배불리 먹으려는 그 소박한 소망마저 짓밟는 오랑캐들을 증오해 하늘을 쳐다보며 공소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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