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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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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2)
2016년 02월 14일 17시 19분  조회:171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 망향의
어느 날, 맑게 갠 아침에 기준과 상우가 땔나무를 팡팡 팰 때였다.
상길이 소서구 막치기로 주먹을 쥐고 달려왔다.
“삼촌, 큰 일 났습니다.”
“웬 일이냐?”
기준은 도끼질을 멈추고 팔소매로 얼굴의 후줄근한 땀을 쓱쓱 닦으면서 물었다.
“할머니 불시에 앓아 누었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소리를 듣고 사련과 새금이 밥을 짓다가 행주에 손을 닦으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기준은 사련을 돌아보았다.
      “얼른 가보기요.” 
기준은 그 길로 함흥촌으로 주먹을 쥐고 달려 내려갔다.
그 뒤에 온집 식구들이 따라 달려 내려갔다.
기준이 웃새집에 내려가 보니 아버지랑 창준이랑 집식구들이 위방에 누운 어머니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엄마가 어떻게 된 일이오?”
기준이가 식구들을 헤집고 어머니한테 다가갔다.
병완은 기준을 돌아보면서 “왔니? 성칠을 보낸 후 집에 들어와 자꾸 울더니 드러눕고 말았다. 쿨쿨 자기만 하고 정신을 못 차린다.” 하고 목이 메 말하였다.
그러자 기준은 어머니 얼굴을 매만지다가 손을 잡고 “엄마! 이게 웬 일입둥? 어제까지 형님을 보고 반가워하던 엄마가? 엄마, 정신 차리오.” 하고 애타게 불렀다.
그제야 사련은 겨우 눈을 스르르 뜨더니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기준아, 우린 언제 고, 고향으로 가니?”
“엄마, 힘내 일어나시오. 이제 성칠 형님이랑 조선에서 일본 놈을 몰아내면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엄마를 꼭 고향에 모셔 가겠습니다.”
기준의 말에 뒤이어 창준이도 동을 달았다.
“광복의 날에 엄마를 수레에 모시고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성희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그럼 얼마나 좋겠어? 본가 집 오라버니캉 조카, 손, 손자들을 언제 보겠니? 본가 집 부모, 조상들의 산소를 보고 싶어.”
그 간곡한 말에 창준과 기준은 태산 같은 어깨를 들먹였다.
“엄마, 꼭 외가집 식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이 있을 겁니다.”
성희는 머리를 가늘게 끄덕이는 것 같더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천정 어디엔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몇 천리 밖에 둔 고향을 그리워서이리라.
창준은 기준을 보며 “우리 이러고 있을 때 아니다. 빨리 엄마를 모시고 천수해 일본 놈들의 병원에라도 가자.” 하고 말했다.
“옳소. 빨리 가기요.”
기준은 황급히 누워있는 엄마에게 등을 들이댔다.
“엄마를 업기우.”
창준은 어머니를 안아 일으켰다.
그때 성희가 눈을 맥없이 떴다.
“나, 나를 가, 가만 놔, 놔둬라. 죽어도 일본, 일본 놈들의 병원에 안, 안 가.”
“어떻게 앓는 엄마를 집에 눕혀 둔다고 그럽둥?”
성희는 말라서 겨릅대 같은 손으로 기준의 얼굴을 매만지었다.
“얘들아, 사람의 명, 명은 하, 하늘에 달, 달렸어. 난 갈 때, 됐, 됐어.”
기준은 어머니를 형님에게서 받아 안고 눈물을 텀벙텀벙 쏟았다.
“엄마, 엄마 일흔이 갓 넘었는데 갈 때라니요? 병원에 가서 치료하기요.”
그러나 성희는 기준과 창준의 애원을 받아주지 않고 문 밖을 맥없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러지 말, 말고 바깥에 나, 나자.”
창준은 “예, 그러기요.” 하고 말하더니 기준과 함께 어머니를 안아 모시고 마루에 나갔다.
성희는 두 아들에게 안기어 맥없는 눈길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가지들이 모진 봄바람에 몸부림치고 백양나무가 쏴쏴 소리치면서 굽어본다. 비술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숙이고 구슬픈 이 장면에 흐느끼고 있다.
성희는 머나먼 남쪽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으로 뭘 매만지려는 듯이 휘저으면서 나직이 소리쳤다.
“내 고, 고향 언제 갈, 갈까? 아버지, 어머니~, 성군 오빠, 명호야, 병수야~”
뒤이어 성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엄마, 엄마!”
“엄마!”
창준과 기준이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를 안고 애타게 불렀다.
“여보!”
병완은 무릎을 꿇고 앉아 노친을 목 메여 애타게 불렀다.
성희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두루 살피다가 병완을 찾아보고 가는 목소리로 겨우 띄염띄염 말하였다.
“여보, 미, 미안해요.”
병완은 아들의 품에서 노친을 빼앗다시피 하여 와락 끌어안고 얼굴을 대고 맞비비면서 울었다.
“안 되오. 난 당신을 먼저 보낼 수 없소. 아무리 고향이 그립고 본가 집 부모형제가 그리워도 화병에 갈 거까지야 없지 않소? 으흐흑, 흑흑.”
며느리들과 손비들이 어깨를 들먹이면서 동전으로 눈시울을 닦았고 손자들은 주먹으로 뜨거운 눈물을 닦으면서 흐느껴 울었다. 기준은 창준과 귀속 말을 주고받았다. 뒤이어 창준은 수레를 메우고 기준은 위방에 들어가 농짝 위에서 이불을 안아다가 수레 위에 폈다.
병완은 말리였다.
“얘들아, 사람의 명은 하늘이 정해준거다. 엄마를 편안히 가게 해라.”
창준은 아버지를 피뜩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엄마를 무슨 병으로 돌아가려는지 치료도 하지 않고 보내겠습둥?”
병완은 숨이 넘어가고 있는 노친을 안고 말하였다.
“얘들아, 엄마를 일본 놈들의 병원에 싣고 갔다가 너희들도 못 살고 나앉자고 그러니?”
그 말에 기준도 수레 위에 이불을 펴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인차 계속 폈다.
“간대로 일본 놈들의 의사가 환자 가속을 어찌겠습둥?”
병완은 혀를 끌끌 찼다.
“너네 잘 못 되는 날엔 엄마도 저세상에 가면서두 눈을 감지 못한다. 어째 애비 어미 말을 듣지 않니?”
기준은 기어이 어머니를 안아 수레에 모셔 안고 창준이가 수레를 울바자 바깥으로 몰고 나갔다. 온 집안이 수레를 따라나섰다.
병완은 고집을 부리는 아들들을 어쩔 수 없어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수레 위에서 이불에 어머니를 싸안은 기준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창준은 수레를 몰면서도 자꾸 어머니를 뒤돌아보았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걸었다. 하옥도 수레에 올라와 이불깃을 여며주었다.
수레가 덜커덩거리면서 조개덕을 내려서서 늙은 비술나무 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형님, 엄마 안 되겠소.”
기준의 황급한 소리에 창준은 수레를 멈춰 세우고 뒤돌아보았다.
“뭐라니?”
“엄마, 엄마, 숨이, 으흐흑.”
“엄마!”
창준은 목 메여 소리치며 수레 우에 뛰어 올라갔다.
“엄마!”
병완도 뒤따라오다가 소리쳤다.
“여보, 이게 웬 일이요? 성칠이네 일본 놈들을 몰아내면 고향에 가자고 했는데.”
성희는 영감과 아들며느리들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눈을 꼭 감고 바쁜 숨을 몰아쉬었다.
“얘들아, 빨리 집으로 수레를 몰아라.”
성희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뒤이어 목에서 뭔가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성칠 형님을 어제 산에 보내지 않을 걸 그랬소.”
기준의 말에 창준은 수레를 집 쪽으로 돌려 몰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아무런 병도 앓지 않은 엄마가 이럴 줄 꿈엔들 생각했니?”
병완은 “고향이 너무 그립고 본가집식구들이 그리워 화병에 앓아 누운 거야. 이럴 때 관준 조카라도 있으면 저 노친을 살려내겠는데.” 하고 한탄하였다.
기준은 엄마 얼굴에 얼굴을 맞비비면서 아무말두 못하고 흑흑 흐느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상순은 수레를 따라가면서 “할머니!” 하고 부르면서 대성통곡 쳤다.
병완은 애들에게 일렀다.
“엄마를 조용히 가게 소리 내 울지 말라.”
기준은 흑흑 흐느끼면서 왼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창준은 어머니를 모신 수레를 몰고 눈물바다 속에서 웃새집 울안으로 서서히 들어섰다.
기준과 창준이 위방을 치우고 어머니를 스르르 눕혔다. 별 일이였다. 집에 돌아가자 성희는 시름을 놓았는지 길게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영영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손비들의 애탄 울부짖음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병완은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여보, 이게 웬 일이요?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약속하지 않았소. 나를 버리고 이렇게 가면 어쩌오? 으흐흑!”
“엄마!”
“어머님!”
아들과 며느리들이 대성통곡 쳤다.
“할머니!”
손자들과 손비들도 흑흑 흐느껴 울었다.
하옥은 한심한 소리를 하였다.
“어머님, 손자 하나 안겨드리지 못한 이 불효 며느리도 데리고 가세요. 이 죄 많은 며느리를 먼저 데려가세요~ 엉~ 엉. 흐 흐 흑 흑.”
병완은 시어머니 팔을 매만지면서 대성통곡치는 하옥을 뜯어 한쪽으로 밀어내면서 말리였다.
“아가야, 이러지 말라. 이게 무슨 소리냐?”
그러나 하옥은 머리까지 마구 집어 뜯으면서 대성통곡 쳤다.
“어머님, 나를 데리고 가세요. 꼭 나를 데리고 가세요. 칠거지악중 대를 끊은 죄 제일 크다고 들었습니다. 나를 꼭 데리고 가세요. 저승에 가서라도 대를 끊은 죄를 속죄하면서 어머님을 효성 다해 모시겠습니다. 엉~ 엉~ ”
병완은 수월을 돌아보면서 “큰며느리를 데려 내가오.” 하고 분부하였다.
수월과 사련은 눈물을 닦으면서 정신을 잃고 대성통곡치는 하옥을 부축해 고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창준은 어머니 옷 견지를 들고 나가 사다리를 놓고 지붕 우에 올라가 “옥보!” “옥보!” 하고 떠나가는 어머니 혼을 불렀다.
혼이야 불러 무엇 하랴. 어머니는 이젠 모든 시름 놓고 혼이라도 넋이라도 훨훨 날아 부르하통하를 넘고 해란강을 날아 지나 두만강을 훌쩍 건너 뛰어 명천으로 가고 있으리라. 임진강을 넘고 한강을 넘어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한산면의 고향으로 날아갔으리라. 그렇게 꿈에도 보고 싶던 고향 산천과 본가 집 부모의 산소에 날아가서 철새들처럼 지저귀며 성군 오라버니, 명호 조카, 병수 손자를 만나 그간 하지 못한 말을 한창 하고 있으리라.
며칠 후 천지꽃산 동쪽 양지바른 산 중턱에는 커다란 봉분 하나가 생겼다. 그 봉분에는 생전에 그렇게도 고향을 그리던 착한 어머니 리성희가 망향의 한을 품은 채 쓸쓸하게 묻혔다. 사망해서도 고향산천을 바라볼 수 있게 높은 산중턱 양지바른 곳에 자녀들의 눈물과 함께 고이고이 모셨다.
병완은 합장하고 눈물이 글썽해 노친을 묻은 봉분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여보, 외로운 대로 먼저 가서 기다리오. 이제 몇 해 아니면 당신을 동무 하러 올게.”
그 불길한 말씀에 창준과 기준은 도리머리 질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봉분 남쪽에 하늘을 찌르며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몇 대 백양나무의 가지들에서 까마귀 몇 마리가 까욱~ 까욱~ 을씨년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5. 중국 지주
한전 밭갈이를 다하고 희망의 씨앗까지 다 뿌리자 기준은 인삼의 말처럼 벼농사를 지으려고 상우와 상순, 금옥까지 데리고 패용천산 앞에 있는 조지주네 황무지로 갔다.
무인지경인 황야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우중충하게 들어앉아있었는데 까마귀들이 버드나무 위에 앉아 까욱 까욱 애처롭게 울면서 놀라 날아났다.
황야를 바라보는 그들은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버드나무들을 뿌리 채로 뽑아내고 논을 풀려고 서둘렀다.
그때 패용천산 앞마을의 지학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눈 흰자위를 굴렸다.
“너희들 이거 뭐 하는 짓이야?”
열여섯 살 난 상순은 조 지주와 장 지주네 애들과 휩쓸려 놀다나니 이젠 중국말을 꽤나 했다.
“여기다 논을 풀려고 그러오.”
상순이 하는 중국말에 지학사는 기준과 상우에게 눈알을 부라리었다.
“너희들 정신 있냐? 여긴 물도 없는데 어떻게 벼농사를 한다고 이 지랄이냐? 남의 배추 밭 옆에 이렇게 황무지를 일구면 이담 큰물이 지면 내 배추밭이 쓰게 되겠는가?”
상순이가 기준에게 통역하자 기준은 괭이를 짚고 서서 웃는 얼굴로 지학사를 바라보았다.
“우린 조개덕 조덕림네 황무지에 논을 풀지 지 씨의 밭에 논을 푸는 게 아니오. 절대 그 집 밭에 물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게 할 테니 근심하지 마오.”
상순이 통역해주자 지학사는 기준에게 삿대질해댔다.
“여기 밭 지경에 이렇게 물도랑을 빼는 게 우리 밭에 물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 기준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근심하지 마오. 우리 잘 지킬 테니까.”
지학사는 텃세를 믿고 호통 쳤다.
“네놈들이 여기다 논을 일구는가 봐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장학산 동생한테 말해서 그 집 밭을 부치지 못하게 하겠다.”
그래도 기준과 상우는 계속 괭이로 버드나무뿌리를 파내고 모래땅을 골고루 펴면서 논판을 만들었다.
며칠 후 이른 아침에 장학산이 정말 소서구 기준이네 집에 찾아왔다.
그는 밥을 먹는 기준을 보고 위방문턱에 걸터앉아 건 가래를 문 밖으로 퉤 내뱉으면서 볼 부은 소리를 쳐댔다.
“자넨 이젠 우리 밭을 붙이지 않을 작정인가? 무슨 놈의 논을 푼다고 그래?”
기준은 구들에서 일어나 웃는 얼굴로 “주인님, 올라와 밥이나 함께 먹기요.” 하고 인사부터 했다.
사련과 새금은 옥수수 죽을 무룩이 뜬 그릇까지 밥상 우에 올려놓으며 올라와 들라고 수저를 쳐들어 보였다.
장학사는 도리머리 질 하면서 볼 부은 소리만 했다.
“우리 밭을 잘 다루면 됐지. 여기서 져도 보지 못한 벼농사를 짓자고 그럴 게 있는가? 우리 형님네 어떤 사람이라고 그 옆에 물도랑을 빼오? 여기서 살자고 그러오? 어쩌자고 그래?”
기준은 수저를 놓고 장학산을 위방에 이끌고 들어갔다.
“주인님, 우리 어찌 주인님의 구명은혜를 잊겠소? 주인집 밭도 잘 붙이고 조덕림 네 황무지두 개간해 입에 풀칠하자고 그러오. 널리 양해하오.”
장학산은 금방 찾아왔을 때만은 달리 조금 노기가 사그라졌다. 그러나 말 속에 위협공갈이 잔뜩 담겼다.
“우리 형님을 어설프게 작작 건드리게나. 자칫하면 여기서 살려니 하지 말게. 우리 형님네 집을 보았지? 높다란 토성 네 귀 망루에 사냥총을 가진 머슴들이 일여덟이나 지키고 있네. 정신 있소? 호랑이 코 구멍을 잘못 건드리면 호랑이에게 물리어 뼈다귀도 추리지 못 할 줄 아오.”
장학산은 독기어린 눈길로 기준을 쏘아보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훌쩍 떠나 가버렸다.
어진 상우는 아버지를 보고 “논을 풀지 맙시다. 괜히 장학산이나 노엽혀서 애나게 일궈 놓은 여기 밭도 붙이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상순은 세 귀 눈을 번뜩였다.
“형님은 겁도 많소. 인삼 삼촌이랑 있는데 무서울 게 뭐요? 지학사 개새끼 정 못 살게 굴면 성칠 큰아버지한테 말해 총으로 다 쏴죽이면 다지 뭐.”
기준은 상순을 말리였다.
“그럼 안 된다. 할아버지 말씀을 듣지 못했느냐? 우린 여기서 새로 원수를 맺지 말고 살아야 해. 일본 놈들과 한길수한테 쫓기어 간도로 왔는데 여기서 또 쫓기면 어데 가서 살겠느냐?”
그래도 상순은 불 부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중국 땅이 넓고도 넓은데 어데 가면 살지 못하리라고 그러오?”
기준은 상우와 상순을 보고 말했다.
“지학사와 장학산은 고모사촌형제 간이야. 지학사를 건드리면 우린 살 터전도 잃을 거야.”
그때 상순은 “조덕림이나 인삼 삼촌한테 물어보고 그만 두는 게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다.”
이날은 온 집식구들이 논을 풀러 가지 못했다.
기준은 중국말을 잘 하는 상순을 데리고 먼저 조개덕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묵은 비술나무아래를 지나가는데 맞은편에서 낯익은 사람이 다가왔다.
“아니, 이게 누구요?”
기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주 인사하는 사람은 글쎄 사돈어른 최경숙이 아니겠는가!
“사돈어른,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상순은 허리 굽혀 큰누나의 시형에게 인사를 올렸다.
최경숙은 알아보지 못하게 큰 상순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막내사돈 아니오?”
“예, 막내아들앱니다.”
경숙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야, 정말 잘 생긴 총각이구나.”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돼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사돈어른은 편안히 계시오?”
경숙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하소연했다.
“앓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젠 고향에선 살기 어렵게 됐습니다. 조선말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일본 놈들의 엄령에 아버진 서당 훈장도 못합니다. 일본 통역 질 하는 강철한테서 일어를 배우긴 배웠는데 아버진 일본 놈의 말을 배워주는 훈장질을 하기 싫어 그만 뒀습니다. 밭은 없지 훈장질은 못하지 어떻게 살겠습니까? 여기서 농사나 지을까 해 함흥촌의 큰 매형을 찾아 가는 길입니다.”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잘 왔습니다. 우리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삽시다.”
최경숙은 뜨겁게 손을 잡아주는 사돈이 고마웠다.
기준은 조개덕 버드나무숲속 높다란 토성 안에 우뚝 솟아있는 한족 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 조지주네 집에 가서 밭이나 얻어보면 어떻습니까?”
"거 온바하곤 가봅시다."
경숙은 기준을 따라 조지주네 집으로 갔다.
일여덟 길이나 되게 높디높은 토성은 보기만 해도 위엄 있었다. 대문짝은 어찌나 큰지 사람이 한쪽대문짝에 둘씩 달려들어야 열 것만 같이 우둔해보였다. 큰 대문짝에 난 자그마한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신짝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삐꺼덕 문이 열리더니 머슴이 길쭉한 얼굴을 내밀었다.
“웬 일이오?”
상순은 순통한 중국말로 “지금 지학사가 패용천산 앞에 논을 풀지 못하게 해서 찾아왔다고 전하오.” 하고 말했다.
이윽고 조지주가 황급히 마중까지 나왔다.
“어서 들어오게나.”
코 수염을 기르고 너부죽하게 생긴 조덕림은 사람이 좋아보였다.
그는 경숙을 피뜩 보더니 기준에게 물었다.
“이 양반은 누구요?”
기준은 경숙을 가리키면서 중국말로 “조선에서 금방 온 내 사돈이오.” 하고 말했다.
경숙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조덕림은 인사를 받으면서 경숙의 손까지 잡아주었다.
경숙은 기준을 따라 들어가면서 보니 넓은 토성 안에는 정면에 고래등 같은 기와를 얹은 덩실하게 높다란 몸채가 으리으리하게 들어앉아있었고 서쪽과 동쪽에 머슴과 자식들이 사는 사랑채가 들어앉아있었다.
몸채와 사랑채 문들은 문살이 조각처럼 눈부시게 멋있었다. 적송으로 짠지 오랜 문은 검붉어서 한결 위엄이 있어보였다.
검둥개는 짓다가 주인과 함께 웃으면서 몸채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꼬리를 저으면서 반기였다.
조덕림의 몸채에 들어가니 맞은쪽에 고풍스러운 맞은편에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남쪽구들과 북쪽구들 사이 방바닥 맞은쪽에 놓인 상 량옆에 위엄스런 검 뻘건 의자 서너 개씩 놓여있었다.
“자, 앉게나.”
조덕림은 오른쪽의자에 가서 척 틀스레 앉았다. 여자 머슴들이 차 잔과 물주전자를 들고 들어오더니 김이 몰, 몰 피어오르는 차물을 부어 올렸다.
조덕림은 “차물을 마시게나.” 하고 권하고 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지학사가 어쩌던가?”
기준은 차물을 마시면서 사실대로 말했다.
조덕림은 차 잔을 상우에 탕 놓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지학사가 언감! 개를 쳐도 주인을 보고 치랬다. 내 가만 놔두는가 봐라!”
기준은 노발대발하는 조덕림이 일이나 칠까 봐 말리였다.
“우리 논을 풀지 않으면 다지. 괜히 사냥총을 쥔 그 집 보초꾼들에게 다치겠습니다.”
조덕림은 벽에 걸린 군관복색을 한 사진을 가리키면서 우쭐거렸다.
“흥! 내 저 조덕산 동생이 뭘 하는지 아는가? 신경에서 한다하는 국민당 군에서 단장 질하오. 조까짓 지학사 사병 몇이 다 뭔가? 내 동생 군대 한개 패만 오면 지학사네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시골 놈의 하루 강아지 정말 범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날뛰여. 내 이제 그 놈 새끼를 찾아가서 혼방 내놓을 테니 근심하지 말고 논을 풀게나.”
상순은 대뜸 입이 함박만 해졌다.
“우리 기어이 논을 풉시다.”
조덕림은 다가와 상순의 어깨까지 다독여주었다.
“이 놈 자식이 어려도 사내 숫기 있어. 됨직한 아들놈을 두었구먼.”
기준은 조덕림을 보고 “밭이 있으면 우리 이 사돈이 붙이게 좀 주오. 조선에서 금방 들어오는 길인데 살길을 열어주오.” 하고 말했다.
조덕림은 그 자리에서 통쾌하게 대답했다.
“좋소. 우리 집 뒤에 황무지가 가득하오. 개간한 첫해에 8할을 주고 이듬해부터 절반 줄게. 어떻소?”
기준이 조 지주의 말을 경숙에게 통역해주자 경숙은 인차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까지 했다.
“고맙소. 그런데 이제 와서 황무지를 개간해서야 농사철을 놓칠 거 같소. 그러니 황무지는 명년에 개간하기로 하고 올해엔 인차 심어먹을 밭을 줬으면 좋겠소.”
조덕림은 경숙이가 뭐라는지 알아듣지 못해 기준과 상순을 쳐다보았다.
기준이도 이젠 중국말을 제법 잘해 경숙의 말을 전해주고 뒤 말을 이었다.
“주인, 올해 농사철을 늦추지 말게 묵밭이 있으면 주오.”
조덕림은 눈을 지그시 감고 궁리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있소. 이 뒤에 몇 짐 되지 않지만 줄게. 조덕산 동생네 밭이 있소. 그 동생이 국민당 군대에 간 후 묵어빠졌소. 그 밭에 먼저 농사를 지으면서 여가에 우리 집 황무지도 일구란 말이오. 올해부터 일구면 명년에야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고 뭐요.”
“예, 그렇게 하기요.”
기준은 경숙이네 밭까지 얻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덕림은 보리 고개를 넘는데 보태라고 좁쌀 반주머니씩 경숙과 기준에게 주었다.
기준과 경숙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높다란 토성안집에서 나와 거뿐한 심정으로 함흥촌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에서 아름드리비술나무들이 봄바람에 무섭게 아우성쳤다.
6. 무함
부르하통하의 봄 물결은 겨우내 얼었던 황야를 누비며 무섭게 사품 쳐 흘렀다.
기준의 온 집식구들은 조덕림과 인삼까지 두둔해나서는 바람에 지학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르하통하로부터 칼산과 패용천산 앞의 논밭에까지 3 리나 되는 가느다란 물도랑을 팠다. 생명수와 같은 부르하통하의 봄물은 물도랑을 따라 누런 모래땅을 적시면서 논밭에 흘러들어갔다. 기준은 논물이 물도랑을 넘어 길 건너 지학사네 배추밭에 들어갈 까봐 무척 신경을 썼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먼저 물도랑의 물이 새지 않나 살피곤 했다. 기준은 인삼과 유격대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희망의 벼 씨를 간도의 황야 논밭에 뿌렸다. 모를 키우지도 않고 산종을 뿌려 거두는 만큼 먹을 예산이었다.
그런데 기준이네 집에 사달이 생겼다.
상순은 웃새집 상훈형님네 큰아주머니가 소를 쓴다고 어찌나 말하는지 화가 나서 세길 네길 뛰었다.
그는 씽 달려 나가더니 시퍼런 작두날을 뽑아들고 우사간으로 달려 들어가 웃새집 소 궁둥이를 팍 내리찍었다.
구유에 대가리를 틀어박고 먹이를 먹던 소는 난데없는 작두날에 궁둥이를 찍혀 어찌나 아팠던지 뒤발로 상순을 걷어찼다.
“아이고, 이놈 소 새끼 썩어 지기 전에도 찬다.”
상순은 고함치면서 재차 작두날을 들어 소 궁둥이를 또 내리찍었다.
소 궁둥이는 쩍 갈라져 피가 줄줄 흘렀다. 순간 소는 그만 몸뚱이를 지탱하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그때 기준이가 달려 나와 작두날을 빼앗아내면서 고함쳤다.
“이놈 새끼야, 말하지 못하는 소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니? 아이고, 형님을 무슨 낯으로 볼가?”
기준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소가 불쌍해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눈물까지 흘리었다.
그래도 상순은 고함을 쳐대면서 아주머니를 욕했다.
“큰집이란 게 그 잘난 소를 쓴다고 계속 짹짹거린단 말이요. 어디 형제간 같소? 원, 밸이 나서 어디 살겠습둥?”
기준은 상순의 귀쌈을 찰싹 갈겼다.
“이놈새끼,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뒤이어 넉두리를 해댔다.
“에이, 참대 그루에서 참대 자라지 버드나무 자라겠냐? 이놈새끼도 어쩜 울뚝 밸을 똑 떼 닮았을까!
기준은 어이없어 도리머리 질 하면서 우사에서 나가버렸다.
이때 사련이 밥을 짓다가 말고 부엌에서 나와 우사로 들어왔다.
그는 재를 물에 이겨서 갈라터진 소 엉덩이에 붙이였다.
“이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느냐?”
사련은 막내아들을 쳐다보면서 나무랐다.
“큰집 큰며느리 말을 잘못했지만 농사를 지을 부림소를 이게 뭐냐? 이젠 누굴 믿고 농사를 짓겠느냐? 응? 원. 저런 못된 놈을 어쩌겠니?”
어머니 말을 듣고 안 됐는지 상순은 쓰러진 둥글 소를 흘끔 내려다보더니 머리를 숙였다.
며칠 후에도 소는 기준과 창준이 토 방법으로 오줌 약을 조금 써 효과를 보았는지 다행히 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의 아주머니 지새금이 조개턱을 쳐들고 세 귀 눈을 흘기면서 상순을 나무랐다.
“생원이, 이후엔 그 울뚝 밸을 좀 작작 쓰오. 소가 죽었으면 어찌 하겠소?”
“아주머니 뭐라오?!”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세 귀 눈을 부라리더니 와락 달려들어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한창 불을 피우는 화로를 들어 지붕에 활 뿌렸다.
대번에 지붕에 불이 확 달렸다. 다행히 기준과 사련이 인차 물을 퍼치고 마을 사람들이 지붕에 올라가 화로를 내리 던졌기에 큰 화재는 입지 않았다.
기준은 상순을 붙들어 귀쌈을 호되게 치면서 꾸짖었다.
“어째 쩍하면 이렇게 울뚝 밸을 쓰니?”
상순은 오른손으로 맞은 귀쌈을 만지면서 내리떴던 눈을 치뜨며 아버지를 쏘아보았다.
“친구들은 진수해에 있는 일본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공부도 시키지 못하는 거 무슨, 밸이 나 죽겠습구마.”
그 말에 기준은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 가난해 너를 공부를 시키지 못했다. 이젠 너도 어린애가 아니니까 너 절로 돈을 벌어 공부해라.”
기준은 눈을 흘기면서 일 밭으로 나갔다.
어느 날 그날 오전에도 패랑천산 앞 논밭에서 일하고 상순은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돌아가게 됐다. 그는 논밭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처럼 논물이 혹시 물도랑을 넘어 지학사네 배추밭으로 흘러들어갈 까봐 물도랑을 따라 올라가면서 쭉 살폈다.
(터질 위험이 없구나.)
상순은 한숨을 호 내쉬고는 패용천산과 칼산 사이 골짜기를 거쳐 소서구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가 일 밭으로 떠나가자 상순이도 뒤따랐다. 그런데 패용천산과 칼산 사이 골짜기 사이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뒤가 마려워 뒤떨어지게 됐다.
그런데 저게 뭔가? 상순이가 먼발치에서 보니 지학사가 괭이로 물도랑을 터치워 자기 배추밭에 물을 대지 않는가!
“저 놈 새끼 무슨 꿍꿍인가?”
상순이가 황급히 뛰어 내려갈 때다. 지학사란 놈이 일하러 상순보다 밭에 간 기준의 멱살을 틀어쥐어 흔들더니 다짜고짜로 괭이로 옆구리를 찍었다.
준비 없는 틈에 찍는 바람에 명천에 이름난 울뚝밸 기준은 그저 당하고 말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옆구리 늑골이 세대나 끊어졌다.
기준은 옆구리를 찍혀가지고서도 재차 찍는 괭이를 틀어쥐고 놓지 않았다.
그때 상순이 달려와 지학사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놈새끼, 어째 우리 아버지를 괭이로 찍었느냐?”
지학사는 텃세를 믿고 물이 들어간 자기 배추밭을 가리키면서 호통 쳤다.
“보면 몰라? 네 애비 우리 배추밭에 물을 댔어!”
그러자 상순도 마주 호통 쳤다.
“이 놈 새끼, 금방 네놈이 물도랑을 괭이로 터치우는 거 다 보았어.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고 들씌워?!”
상순이 주먹을 쳐들자 옆에서 기준이 급히 막았다.
“얘, 그만둬라. 중국 지주를 때리고 여기서 어떻게 살자고 그러니?”
그 말에 상순은 붉으락푸르락 하면서도 쳐들었던 주먹을 겨우 내리웠다.
“야~ 이놈 새끼들이 아무리 지주라고 해도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말라!”
기준은 옆구리를 괭이에 찍혀가지고서도 괭이로 터진 물도랑을 막았다.
그러자 지학사는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면서 상순과 기준의 코를 번갈아 삿대질하면서 빈정거렸다.
“네놈들이 언감 나와 걸고 들어?”
이때 미리 버들방천에 숨어있던 지학사의 졸개들이 우르르 쓸어 나왔다. 미리 짜고 든 게 불 보듯 뻔했다. 자기 주인이 열세에 처한 것 같아 졸개들이 미리 획책한대로 역성을 들려고 덮쳐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사냥총이며 낫이며 칼을 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처음부터 이 광경을 보던 송학정은 질겁해 버드나무숲속에 몸을 감춰버렸다.
졸개들을 본 지학사는 상순을 손가락질해대며 더 광기를 부렸다.
“개자식, 어디 주먹으로 쳐봐라! 썩어지지 못해. 흥!”
상순은 숱한 졸개들 앞에서도 겁기라고는 없이 쏘아보았다. 그러자 기준은 상순을 마구 끌고 집으로 향했다.
상순은 꼭뒤까지 치민 성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아버지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기준은 옆구리가 너무 아파 구들에 털썩 드러누웠다.
“상순아, 네 오줌을 받아다가 내 옆구리에 발라 달라.”
“예. 아버지.”
이윽고 상순은 대야에 오줌을 받아가지고 들어와 신음소리를 내는 아버지 옆구리에 오줌을 발라주었다.
그때 천지꽃산 동쪽 상우지에 가서 일하던 상우와 사련이 그리고 지새금과 금옥도도 상서롭지 못한 감이 들었던지 집으로 돌아왔다.
상우는 위방에 누워 운신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무릎을 꿇고 엎디면서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 이게 무슨 일입둥?”
상순은 금방 있은 일을 형님에게 죽 이야기하고 나서 씩씩거렸다.
“내 식칼을 가지고 가서 지학사 지주 옆구리를 콱 찔러놓겠다.”
그러자 기준은 상순이쪽 허공에 대고 손을 겨우 허우적거리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상순아, 그만둬라. 그러는 날엔 우린 간도에서도 살 길이 없다.”
그때 정주간 문턱너머에 서서 보던 지새금이 길쭉한 얼굴을 돌리면서 넉두리를 해댔다.
“우린 저 밸 때기 더러운 생원 때문에 못 살구 나앉겠다. 쯧쯧.”
“뭐라오? 내 때문에 못 산다고? 그거 말이라고 하오? 양?!”
지새금도 어린 시동생이 붉으락푸르락 해도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들을라니 지학사는 총을 가진 졸개만 해도 일여덟이나 되고 밭이 백무도 넘는다오. 그런 지주를 잘못 건드렸다간 살기나 하겠소?”
상순은 상순이 대로 도리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 옆에서 일어나 정지로 쫓아 나오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놈한테 맞고서도 내내 머리 숙이고 살아야 한단 말이오?”
새금은 열 살이나 어린 상순을 꾸짖었다.
“생원이, 좀 그 밸을 참지 못하오? 생원 때문에 집안이 망하겠소.”
상순이가 또 뭐라고 하려는데 위방에서 아버지가 불러서 올라갔다.
기준은 상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절대 지학사를 뜨지 말라. 부탁이다. 우리 온 집안 식구들을 생각해서 내 부탁을 들어다우. 일본 놈들과 지주들이 살판 치는 세상에 자칫하면 우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상순은 아버지 말에 머리를 숙이고 꼭뒤까지 올리 치민 노기를 참느라고 거친 황소숨만 씩씩거렸다.
그때 상순은 머리에 피뜩 함흥촌의 웃새집 상길형님과 토성안집의 인삼형님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 손을 놓고 정지에 나가 짚신을 찾아 신자 주먹을 쥐고 바깥으로 씽 뛰어나갔다.
등 뒤에서는 어머니 사련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상순아, 절대 날뛰지 말라.”
상순은 뛰어가다가 머리를 돌려 소리쳤다.
“엄마, 근심하지 마오. 내 인삼 삼촌과 상길 형님과 토론해 보겠습구마. 어쩜 좋겠는가고.”
상순이가 함흥촌에 가서 웃새집에 긴급한 정황을 알리자 창준은 처자들을 데리고 소서구로 올라갔다.
다만 상길이만은 상순과 함께 토성안집으로 인삼형님을 찾아갔다.
인삼은 그때 마당에서 유격대원들과 함께 쌀을 한창 버치로 지다가 토성 안에 뛰어 들어오는 그들을 보고 대견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장차 우리 집안 기둥들이 왔구먼. 무슨 일에 이렇게 성급한 게냐?”
상순은 바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후에 있은 일을 죽 이야기하고 나서 대책을 물었다.
“어찌 하면 좋겠소?”
그러자 인삼은 놀라했다.
“작은 형님이 상하다니? 그 놈 지학사 놈을 어쩌면 원수를 갚겠니?”
인삼은 버치를 놓고 담배를 물고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지학사 같은 놈을 처단하자면 우리 토성안의 유격대원들이면 족하다. 그러나 풀을 건드려 뱀을 놀래면 함흥촌 근거지는 일본 놈들과 지방 중국지주토호들의 성화에 끝장날게 아닌가? 그럼 유격대의 쌀을 어데서 구해오겠는가?)
그리하여 인삼은 상길과 상순을 위방에 데리고 가서 조용히 타일렀다.
“우린 여기서 참으면서 살아야 한다. 절대 여기 중국지주들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알만하니?”
상순은 뒤 덜미를 쓱쓱 극적이었다.
“에이, 삼촌을 믿고 왔더니. 고작 참으라는 게요?”
인삼은 유격대의 비밀도 있고 하여 어린 상순과 상길에게 속심의 말을 다 할 수 없어 갑갑했다.
“법으로 해도 지학사한테 질 게다. 참고 형님의 상처나 치료해보자.”
상순은 “흥! 됐소, 돼. 삼촌도 그저 그렇구먼.” 하고 볼 부은 소리를 하더니 상길의 손을 잡아끌고 토성 바깥으로 나갔다.
대문 옆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흔들거리는 실실이 늘어진 수양나무가지들을 보자 상순은 슬그머니 밸이 울컥 치밀었다.
“에이, 지학사 개새끼를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까?”
상순은 꼭뒤까지 치민 노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우물덮개를 탁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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