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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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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4)
2016년 03월 02일 16시 01분  조회:168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 안보촌에서 울린 총소리
       고기비늘구름 속으로 서글픈 하현달이 흘러가며 쓸쓸한 달빛을 흘린다. 그 희미한 달빛이 외롭게 우는 고방 창살과 싸늘한 하옥의 이불깃을 마음이 아프게 스치면서 흘러간다. 고독과 적막, 쓸쓸함이 달빛이 깔린 고방구석에서 유령처럼 슬금슬금 기어 나와 외로운 하옥을 괴롭힌다.
       후시어머니를 모신 후 고방에 홀로 쪼그리고 자던 하옥은 남편생각이 나 이불을 푹 덮고 어깨를 들먹였다.
       (그림자처럼 동무해주던 시어머니도 세상 떠났어. 이젠 누구와 동무하면서 산단 말인가? 십여 년이나 과부가 아닌 과부로 보내지 않았던가? 이젠 진절머리 나.)
       하옥은 뒤 고방 문을 살며시 열고 바깥으로 나가 샛별이 깜빡거리는 새벽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호~ 내쉬었다.
      그는 이전에 성칠이 불쑥 나타났을 때 김치 움에서 오래간만에 운우지정을 나누던 일을 떠올리자 가슴을 붙안고 어깨를 들먹였다.
(안 돼! 나도 남편을 찾아가야지. 유격대 밥을 지으면서라도 남편과 함께 살아야 해. 안 될게 뭐야? 은녀와 진달래도 거기 있잖아. 유격대에도 여자들이 할 일이 많지.)
하옥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농궤를 들춰 입을만한 옷 견지를 들춰내 보따리를 꾸렸다.
병완은 고방에서 덜컥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지만 새벽이어서 며느리와 묻지 않았다.
하옥은 옷에 로비까지 몇 푼 찔러 넣고 싼 보따리를 뒤 고방 문을 살며시 열고 나가 미리 바깥 울바자 밑에 가져다 놓았다.
동녘이 푸름 해지자 하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소변보러 나가는 척 하면서 울바자 바깥으로 나가 바자를 벌리고 보따리를 꺼냈다.
그는 옷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번개같이 속궁리를 굴렸다.
(시아버지 알면 보내지 않을 건 불 보듯 빤한 일이야. 허망 어떻게 유격대를 찾아가? 혹시 시동생은 전번에 쌀 수레를 몰고 가면서 유격대가 어데 있는지를 알지 않을까? 시동생을 찾아갈까? )
하옥은 인삼을 찾아갈까도 하다가 주춤 멈춰 섰다.
(유격대 어디 있는지 나 같은 아낙네한테 알려주겠어? 안 돼. 믿음직한 셋째시동생을 찾아가야지.)
하옥은 웃새집 식구가 누구라도 따라 나와 말릴까봐 치마 자락에서 비파 소리 나게 소서구 쪽으로 반달음 쳐갔다.
소서구 막바지에 이르니 성남집 마당에서 상우가 도끼를 휘둘러 땔나무를 팡팡 패는 것이 보였다.
“둘째조카!”
상우는 쪼개진 나무토막을 주어 무지에 쌓으려다가 허리를 펴면서 인사하였다.
“맏아매(큰어머니)!”
기준은 큰어머니가 보따리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해 하였다.
“내 일이 있어 급히 왔소. 아버지 어떻소?”
상우는 큰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들어갔다.
사련은 하옥의 손을 잡고 “형님, 어떻게 돼 왔소?” 하고 반갑게 맞았다.
지새금도 가마목에서 바삐 돌아치다가 행주에 손을 닦으면서 허리 굽혀 인사하였다.
하옥은 사련의 귀에 대고 뭐라고 귀속 말을 하였다. 그러자 사련은 하옥을 데리고 위방으로 들어갔다.
기준은 베개를 받치고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다가 하옥을 보자 일어나면서 인사하였다.
“아주머니, 어떻게 돼 이렇게?”
하옥은 위방에 올라가 정주 문 곁에 앉으면서 물었다.
“생원이 어떻소?”
기준은 바로 앉으면서 “괜찮소. 조상이 물려준 오줌 약을 바르고 상순이 져다준 약을 달여 먹고 많이 낫소.” 하고 대답하였다.
하옥은 앞으로 좀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귀속 말을 하였다.
“생원이, 생원은 유격대가 어데 있는걸 알지 않고 뭐요? 날 큰형님한테 데려다주오.”
기준은 아주머니를 바라보더니 육중한 몸을 움찔거렸다.
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입을 떼였다.
“아주머니, 형님이랑 동삼에도 집도 없이 행군하면서 일본 놈들과 싸우는데 거길 가서 뭘 하오? 괜히 형님에게 짐이 되겠소.”
그 말에 하옥은 슬픈 나머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생원이, 난 이젠 더는 혼자 살지 못하겠소. 과부 아닌 과부로 못 살겠단 말이오. 흐흑.”
통곡 치는 아주머니를 마주 보면서 기준 같은 사내대장부도 염통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황차 나도 형님네 유격대가 어데 있는지 딱히 모른단 말이오.”
하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아무리 여자 몸이라고 해도 은녀보다 못하겠소? 장백산 어디라 없이 찾아다니노라면 찾아낼 날이 있겠지.”
하옥이가 바깥으로 나가자 바빠 맞은 기준은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말리였다.
“아주머니, 가지 마오. 어데 가 찾는다고 그러오?”
“찾든 말든 도와주지 않겠으면 그만두세요.”
하옥은 노여워 뒤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소서구 아래쪽으로 되 내려갔다.
그가 소서구 어귀까지 내려갔을 때였다.
“아주머니, 나와 함께 가기요.”
하옥이가 뒤돌아보니 기준이가 목수도구까지 지고 씨엉씨엉 걸어 내려왔다.
하옥은 기준이가 옆으로 오자 “옆구리를 상해 가지고 갈만 하오?” 하고 근심하였다.
기준은 목수도구를 춰 업으면서 “일없소. 먼저 인삼 동생과 물어보고 가기요.” 하고 말하였다.
“글쎄, 허망 찾아다닌다는 것도 그렇소.”
하옥은 기준을 따라 함흥촌으로 되돌아가 토성안집으로 들어갔다.
심부름꾼인척 하면서 대문을 보초 서던 유격대원은 기준과 하옥을 알아보고 인차 토성안집 위방으로 안내하였다.
인삼은 마루에까지 마중 나왔다.
“어떻게 돼 왔소? 어서 안으로 들어오오.”
기준과 하옥은 인삼을 따라 위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기준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칠 형님이랑 어데 있는지 알려주오. 내 아주머니를 데리고 만나봐야겠소. 갔던 바에 통나무집도 져줄까 하오.”
인삼은 기준과 하옥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주머니 어떻게 찾아가겠소?”
하옥은 머리를 숙이더니 어깨들 들먹이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기준이가 대신 말해주었다.
“아주머닌 십여 년이나 형님과 떨어져 살았소. 빨리 알려주오. 형님이 어데 있는지?”
인삼은 한참이나 궁리하더니 무겁게 입을 떼였다.
“형님과 아주머니를 믿고 알려줍네. 헌데 누구한테도 유격대 행방을 말해선 안 되오.”
기준과 하옥은 이구동성으로 다짐하였다.
“그러지 않고.”
인삼은 목소리를 죽이더니 귀속 말을 하였다.
“성칠 대장이랑 전번에 쌀을 가지고 의란구근거지로 갔소. 의란근거지가 일본 놈들의 소탕을 받은 후 소왕청으로 전이했다가 다시 영월구에서도 몇 백 리 떨어진 장백산 밀림 속으로 들어갔소. 내 말해 줘도 찾아가기 힘드오. 우리 유격대원들 보고 두 분을 모셔가게 하겠소. 가는 길에 조선의 이민으로 꾸미고 쌀두 얼마간 가져다주오.”
제일간 하옥이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생원이, 고맙소. 내 쉰이 넘었으나 쌀 쉰 근은 이고 갈만 하오.”
인삼은 도리머리 질 하였다.
“어이고, 거 무슨 소리요? 천수해만 하면 괜찮겠으나 몇 백 리 산길을 어떻게 이구 간다고 그러오? 우리 유격대원들이 지고 가면 되오.”
인삼은 마루에 나가 유격대원 둘을 불러 뭐라고 분부하더니 유격대원들을 이끌고 기준과 하옥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꺽다리유격대원부터 인사시켰다.
“여기 온지 며칠 안 되는 유격대 반장 리억복이요.”
그리고 이쪽 탄탄한 유격대원을 인사시키면서 "우리 토성안집에서 제일 날랜 유격대원 리철석이요. 우리 성칠 대장네 셋째동생과 아주머님이네."라고 일일이 소개하였다.
억복과 철석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처음 뵙습니다.”
“항일유격대 김 대장께 안전하게 모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기준과 하옥은 이구동성으로 “수고하겠소.” 하고 인사를 받았다.
기준이가 억복이란 유격대원을 본적이 없었다. 훤칠한 키에 얼굴이 철색이여서 쇠기둥같이 생긴데다가 쩍 벌어진 어깨를 보니 힘깨나 쓸 것 같았다.
기준과 하옥은 쌀 주머니를 진 유격대원 둘을 따라 길을 떠났다.
인삼은 토성 대문 밖에까지 따라 나왔다.
“형님과 아주머니, 몸조심하면서 편안히 갔다가 오십시요.”
기준과 하옥은 자그마한 쌀 주머니를 이고 지고 인삼과 작별하고 유격대원들을 따라 서쪽을 바라고 패용천산 앞으로 떠났다.
유격대원들은 쌀 주머니 속에 권총을 숨기고 종아리에 친 각반에 비수를 차고 앞뒤에서 기준과 하옥을 호위하면서 걸었다.
그들은 풍찬노숙하면서 거의 이틀 걸어서야 해질녘에 영월구에 이르렀다.
기준은 영월구에 오면서 일본 놈들이 도문으로부터 영월구를 지나 철길을 닦은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영월구에도 일본 놈들의 분주소를 들여앉혔는데 분주소에는 벌써 전등불이 환하고 일본 경찰 놈들이 총창을 비껴들고 대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분주소 앞으로 한복차림의 조선족사내가 지게를 지고 이쪽을 두리번거리면서 지나갔다. 그 뒤에 한 아줌마가 함지를 이고 검정치마자락을 휘날리며 지나갔다. 보초병은 분주소 대문 앞에서 지나가는 조선 사람들과 한족사람들을 불러 세워 몸수색을 하고 있었다.
기준과 하옥은 유격대원들이 이끄는 대로 분주소를 피해 영월구를 벗어났다. 그 뒤에는 지게군이 뒤따라왔다.
그들은 온밤 걸어 영월구에서 몇 십리 떨어진 한 산기슭에 이르렀다. 그들은 쌀 짐을 벗어놓고 주먹밥을 꺼내 대충 저녁이라고 먹었다. 지게꾼은 그들에게 눈길 하나 팔지도 않고 스적스적 걸어 지나갔다.
그들이 한참 걸어 산을 에돌아가니 초가집이 게딱지처럼 늘어앉은 마을이 나졌다.
키꺽다리 리억복은 머리를 들어 산정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여름 해를 쳐다보더니 기준의 옆에 다가와 귀속 말로 말하였다.
“해도 져 가는데 이 마을에서 한밤 자구 가깁소.”
기준은 “아직도 머오?” 하고 물었다.
“아직도 한날 부지런히 가야 될 거 같습니다.”
기준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목수도구상자를 둘러메고 억복을 따라갔다.
그들은 마을 서남쪽 제일 마지막집 울안에 들어섰다.
집 주인 나그네는 낯선 사내 셋에 아낙네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적이 놀라 하였다.
“주인님, 지나가던 길손들인데 하루 밤 자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철석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앞장서 나가면서 사정하였다.
주인은 하옥이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안심됐든지 “해 넘어가는데 어데 가서 쉬겠소. 들어오오.” 하고 대답하였다.
주인은 장승 같은 억복을 보는 순간 위압감을 느낀 것 같기도 했다.
“귀한 손님들이 비좁아 어떻게 쉬겠소?”
철석은 주인을 따라 위방에 들어가면서 “괜찮습니다. 쉬게만 해줘도 감사합구마.” 하고 인사말을 하였다.
기준은 주인을 보고 “이 마을은 뭐라고 부르는 동네요?” 하고 물었다.
주인은 “영월구 안보촌이라고 부르오.”라고 대답했다.
기준은 “오, 안보촌이구먼.” 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 넷이 금방 위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때 바깥에서 집주인과 웬 사내가 바깥에서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요?”
“이 집에서 하루 밤 자고 가면 안 되오?”
억복이가 위방 문을 살며시 열고 내다보고 깜짝 놀랐다.  영월구로부터 그들의 뒤를 따라오던 지게꾼이 아니겠는가.
(저 자는 마을 동북쪽 산기슭에서 앞서 지나가더니!)
지게꾼은 수상하게 이 집 울안에 들어와 흘끔거리는 것이었다.
주인은 “위방에 금방 길손 넷이나 들어갔소. 아래 집에 가보오.” 하고 딱해 하였다.
“별수 없구먼. 아래 집에 가보지. 에헴.”
억복이 철석에게 바깥으로 눈짓하였다. 철석은 바깥에 나가 옷을 툭툭 털면서 아랫집 쪽을 살폈다.
지게꾼이 아래 집 울안에 들어가 주인가 뭐라고 말을 주고받더니 위방 쪽에 지게를 벗어놓고 위방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옥은 고방에 들어가 이 집 열서너설 되는 딸애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억복은 철석과 번갈아 바깥 울바자 안에 숨어 보초를 서기로 하고 기준과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기준은 곤해서 벌써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통잠에 빠져버렸다.
한밤중에 갑자기 바깥에서 부엉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났다.
억복은 본능적으로 와닥닥 일어나 앉았다.
(야밤삼경에 무슨 사람이 올까?)
유격대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내면 어떤 사람이 오는 일반신호였고 부엉이나 뻐꾹새 울음소리가 울리면 좀 위험하거나 서로를 확인하는 긴급신호였던 것이다.
이때 바깥에서 발자국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더니 “주인 계시오? 나 십가장이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예~ 십가장어른.”
집주인이 나가는 덜커덩 문소리에 뒤이어 신발을 짝짝 끄는 소리가 바깥에서 들리었다.
“무슨 일이오?”
“이 집에 무슨 손님들이 왔소?”
“양, 사내 셋에 아주머니 한분이 지나가다가 하루 밤만 쉬고 가자고 들어왔소.”
“나한테 손님신고를 해야지 뭐요? 사람두 원, 쯧쯧. 일본 분주소에서 알면 집단부락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고 벌 받을게 아니요? 정 그러면 일본 경찰들은 우리 마을도 다른 집단부락처럼 마을에 토성을 쌓고 가둬 넣고 말게요.”
“에이, 무슨 일이 있다고 그러오? 처음엔 나도 낯선 사내들을 보고 겁이 났는데 농촌 아낙네가 끼어 있는지라 집에 들였소.”
억복이가 벽에 붙어 서서 문을 살며시 열고 내다보았다.
달빛아래 추녀 밑에서 두 그림자가 마주 서 있었다.
그런데 불시에 목소리가 낮아졌다.
“요즘 일본 놈들이 저쪽 산골짜기에서 유격대 매복습격을 받았다네.”
“양?! 거 시원한 노릇을 했구먼.”
“소릴 낮추게. 자동차에 탄 놈들이 길 양쪽 산기슭에 매복해있던 유격대한테 자동차는 폭파되고 숱한 일본 놈들이 몰살당했다네. 또 김 대장이 한 매복습격전이라오. 그래서 요즘 일본 분주소에서 장백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행인들 검문이 심하네. 길손들을 훌훌 받아들이지 말게. 혹시 길손들 속에 유격대나 있는 날엔 괜히 봉변당할게 아니요?”
“양. 알았소. 유격대를 도와주면 뭐라오? 그 놈 일본 놈들 등살에 어디 살겠소?”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억복은 시름을 놓고 제자리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이윽고 집주인이 끌신을 작작 끌고 집으로 들어와 문을 덜커덩 닫는 소리가 들리었다.
(참, 수상하다. 이 집에 든 걸 본 사람이 없는데.)
억복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번개같이 생각을 굴렸다.
(야밤에 집주인을 불러 물어보는 수도 없고. 어쩐다? 옳다. 철석과 보초 교대도 하면서 토론해보자.)
억복은 옆에서 코를 드렁드렁 고는 기준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왜 그러오?”
기준이가 돌아누우면서 물었다.
억복은 “바깥이 심상치 않습니구마.” 하고 일깨워주고 방문을 살며시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울바자 밑에 서서 소변보는 척 하면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철석이 굴뚝 부근에서 보초를 서다가 다가왔다. 그들은 집 서쪽 굴뚝 밑으로 갔다.
“바깥에 수상한 동정이 없소?”
“그 십가장이란 사람은 아래 집 주인인 거 같소. 십가장이 아까 아랫집 마당에서 그 지게꾼과 쑤군거리더니 여길 왔소.”
그 말에 불길한 징조가 피뜩 억복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아차, 그 지게군은 영월구로부터 우리 뒤를 밟은 거 같소.  빨리 이 자릴 떠야겠소.”
“양~ 빨리 뜨기요.”
이때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벽에 붙어 울 밖을 살펴보니 한 무리 검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쓸어오고 있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몽땅 붙잡아라!”
“일본 어른들께 바치고 상 타라!”
억복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철석을 돌아보았다.
“저 놈들부터 쓸어 눕히자.”
검은 그림자 서넛이 바로 위방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찰나였다.
“앗!”
비명 소리와 함께 문을 열던 놈이 대갈통을 싸쥐고 쿵 썩박나무 넘어지듯 쓰러졌다. 문 뒤에 숨었던 기준이 도끼로 대갈통을 찍었던 것이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또 두 놈이 쓰러졌다. 뒤따르던 놈들은 꼬리 빳빳해 울 밖으로 도망쳤다.
아래 방에서 놀란 소리가 웅성거렸다.
억복은 집안에 뛰어 들어 갔다.
“아주머니, 빨리 이 곳을 떠납시다!”
기준은 문 뒤에 숨어 도끼를 쳐들었다가 내리웠다. 억복과 철석은 쌀 짐을 지고 기준은 목수도구상자를 둘러메고 아주머니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억복은 문 앞에 쓰러진 시체를 발길로 툭툭 차 넘기고 살펴보더니 “자위대 놈들이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까지 집주인 식솔들은 질겁하여 이불을 들쓰고 어둠속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억복은 정지에 들어가 지고 가려던 쌀 주머니를 내리워놓으면서 조용히 말하였다.
“겁 내지 마오. 우린 장백산 항일유격대오. 간밤에 폐를 끼쳐 미안하오.”
집주인은 억복의 팔을 잡고 “필요 없소. 가지고 가오. 당신들이 가면 우린 어쩌오. 십가장이 분주소 일본 놈들에게 고발하는 날엔 우린 끝장이오.” 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오, 십가장과 지게꾼 놈이 남았지.”
억복은 그 길로 아래 집으로 뛰어가 문을 쾅 박차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랫집 안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릴 뿐 총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인차 뛰어나온 억복은 기준과 하옥이가 나온 것을 보고 권총을 홱 휘둘렀다.
“두 놈은 달아났소.”
억복은 집주인을 돌아보고 “이후에 일본 놈들이 뭐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오. 만약 십가장 놈이 당신을 털끝 하나 다치는 날엔” 하고 말하면서 권총을 쳐들어보였다.
“이걸로 그 놈의 허파에 바람구멍을 뚫어놓을 테요.”
뒤이어 그는 기준과 하옥을 보고 “분주소 놈들이 추격해 올게요. 빨리 이 자리를 뜨기요.” 하고 말하였다.
억복은 철석의 쌀 주머니 쌀을 빈 주머니를 꺼내 갈라 넣은 후 잔등에 졌다. 이윽고 앞에서 억복이가 권총을 들고 기준과 하옥을 데리고 나가고 철석이가 뒤를 살피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이 꽉 들어찬 울바자 안에서 허리를 치는 옥수수가 잎사귀를 너펄거리며 그들을 바래였다.

                            3.  항일 유격대거지
 
      하늘을 찌르는 몇 십 길씩 되는 미인 송들이 꽉 박아 들어선 원시림 속에 해 빛이 들지 않아 음침했다. 간혹 하늘을 가린 나무 잎 새로 실오리 같은 몇 가닥 해 빛이 축축하고 이끼 낀 땅바닥을 비추었다.
억복 등은 안보촌에서 일본 놈들의 추격을 간신히 벗어나 산등성이를 타고 며칠 동안 걸어서야 원시림 속에 들어섰다.
기준은 푸른 주단을 깐 듯이 푸른 이끼로 깔린 푹신푹신한 수림 바닥을 밟으면서 이 비옥한 부식토 땅을 파재끼고 곡식을 심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궁리했다.
(야, 이 밋밋한 미인 송을 베다가 고향 땅에 팔간대청을 짓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하늘을 찌른 미츨한 나무들을 보고 감탄했던 것이다.
하옥은 가시덤불에 얼굴을 긁히고 치마 자락이 나무 가지에 걸려 미여졌건만 남편의 신변으로 다가간다는 일념으로 하여 곤기가 가득한 얼굴에는 숨은 미소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뻐꾹새가 뻐꾹뻐꾹 우는 소리가 고즈넉한 원시림의 정적을 깨웠다.
억복은 뒤를 돌아보면서 “철석이 암호를 보내오.” 하고 말했다.
철석이가 입에 손을 모아대고 “뻐꾹뻐꾹” 하자 원시림 속 여기저기에서도 “뻐꾹뻐꾹” 울음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원시림 속에서 총을 든 유격대원 몇이 나타났다.
“억복 반장이 왔구먼.”
“철석도 오고.”
그들은 다가와 억복과 철석의 잔등에서 쌀 주머니를 받아 메였다.
“도구상자를 메게나.”
그중 한 유격대원이 기준의 목수도구상자를 벗겨 메고 하옥을 보더니 억복과 철석에게 눈길을 보냈다.
억복은 “김 대장네 아주머니와 동생이네.” 하고 알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습니다.”
유격대원들은 모두 채양 밑에 거수경례를 척 붙이였다.
억복은 짐을 메지 않은 꼬마를 보고 “리 꼬마, 빨리 달아가서 김 대장께 전하게나. 아주머니와 동생 왔다고.” 하고 분부했다.
“옛!”
리 꼬마는 날래게 앞으로 달려갔다.
기준 등이 얼마 가지 않아 원시림 속에서 한패의 유격대원들이 나타났다. 그 속에는 성칠 대장도 보이었다.
“아니, 기준아,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니?”
성칠 대장은 눈길을 기준에게서 하옥한테 돌리더니 “당신은 어째 왔소?” 하고 물었다.
“남편 찾아오면 안 되는 건가요?”
하옥은 몸을 돌려 어깨를 들먹였다.
성칠 대장은 “양, 잘 왔소. 여기는 싸움터라 위험하다고 그러오.” 하고 안심시켰다.
하옥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때 억복은 성칠 대장을 조용히 불러 한쪽으로 가서 영월구 부근에서 자위대원 세 놈을 쏴 죽인 경과를 죽 이야기했다.
“참 잘 했소. 후에 일본 앞잡이 놈들을 하나하나 처단해 버리기요. 영월구의 그 십가장 놈과 용정 부근 성지촌의 허팔기란 놈을 우선 처단하고 지게꾼이 누군가 밝혀내 처단해야 하오. 지게꾼 같은 놈들이 더 위험하오. 그 놈들은 신분을 속이고 밀정이 돼 우리를 해칠 수 있소.”
성칠은 말을 마치자 기준과 하옥의 옆으로 다가왔다.
성칠은 기준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으면서 “부모들께서 무사하시니?” 하고 물었다.
기준은 “엄마께선 삼 년 전에 사망하셨소.” 하고 대답했다.
성칠은 주춤 멈춰 섰다.
“아니, 무슨 소리야? 내 갔을 때만 해도 반가워하던 엄마가 사망하다니? 엉?!”
성칠은 양 눈썹이 한데 모일 지경으로 놀란 눈길로 기준을 바라보았다.
하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어머닌 돌아가기 전에 당신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알아요? 흐 흐 흑. 고향으로 언제 가겠냐면서, 흑, 흑, 명천과 충청도 한산면을 그리고 또 그리었어요. 어머니~”
성칠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드디어 그는 소서구가 있는 동북 쪽을 향해 털썩 주저앉으면서 무릎을 꿇고 절을 꾸벅꾸벅 올렸다. 기준과 하옥이도 꿇어 엎드려 함께 꾸벅꾸벅 절을 올렸다.
성칠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대성통곡 쳤다.
“엄마~ 이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불효자를 콱 욕하십시오. 엉~ 엉~, 엄마가 세상을 떴는데도 이 불효자는 장례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고향에 모셔가겠다고 어머님께 약속드렸건만 엄마는 어이하여 이 아들을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빨리 돌아갔습니까?”
유격대원 모두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성칠은 기준을 보고 욕했다.
“이 못난 놈아, 어째 엄마 세상 떴는데 알리지 않았느냐?”
기준은 머리를 숙이었다.
“잘못했소. 그때 불시에 당한 일인데다가 형님이 어데 있는지 찾을 거 같지 못해 알리지 못했소.”
성칠은 기준에게 성난 눈길을 보냈다.
“그래 엄마를 어데 모셨느냐?”
기준은 그제야 머리를 들고 나직이 대답했다.
“함흥촌 서쪽 천지꽃산 양지바란 산중턱에 모셨소. 아버지가 고향을 볼 수 있는데 모신다구 거기에 모셨소.”
성칠은 미인 송에 가리여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는 일어나 기준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물었다.
“엄마 무슨 병으로 그렇게 갑작스레 돌아갔니?”
그때 하옥이가 대신 대답했다.
“두 생원이 수레에 모시고 병원으로 가다가 시어머님이 편안히 가시겠다고 집으로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기준은 “딱 무슨 병인지 모르겠소. 고향을 그렇게도 그리었고 형님을 그렇게도 외우시겠소?” 하고 입귀를 실룩였다.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내 언젠가 함흥촌 부근에 가면 꼭 산소에 찾아가 엄마께 사죄드려야겠다. 아버님은 얼마나 고독하겠느냐?”
 하옥은 “그래서 우리 쉰 고개를 갓 넘은 새 시어머니를 모셨어요.” 하고 알려주었다.
성칠은 또 주춤 멈춰서더니 중얼거렸다.
“엄마 3년제가 지났으니 괜찮겠구나. 아버지 말동무를 해도 좋지.”
그들을 앞서 재빨리 하늘이 보이지 않는 원시림속의 숙영지로 갔다.
기준이가 하늘을 덮어버리게 몇 십 길씩이나 되게 쭉쭉 빠진 미인 송들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좋은 나무면 유격대 통나무집은 실컷 짓겠군.”
이때 원시림 쪽에서 나뭇잎을 헤가르는 와스락, 와스락 소리 들리더니 한패 사람들이 나타났다. 성칠과 기준이네는 나무 뒤에 숨었다가 마주 나갔다.
제일 앞에서 중년 여성이 총을 든 전사들을 거느리고 마주 오면서 웃음 지었다.
“형님과 사돈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기준은 양태머리를 기른 그 여성이 퍽 낯에 익어보였다.
성칠은 기준을 돌아보면서 인사시켰다.
“진달래 중대장이다."
기준은 진달래를 마주나가 인사하면서 진달래의 철색얼굴에서 하옥의 눈치를 보는 것을 눈치 챘다.
“형님,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어요? 여기는 유격대 전투장이여서 위험한데요.”
하옥은 진달래의 철색얼굴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똑똑히 말했다.
“자네가 총을 쥐고 싸울 수 있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나요? 나도 유격대에서 밥을 짓고 제 남정 옷을 씻어주겠소. 총 쏘기도 배워 이제 내 손으로 일본 놈들을 쏴 죽일 테요.”
진달래는 하옥의 당당한 그 표정에 머리를 끄덕였다.
“예, 형님, 환영해요. 우리 유격대에는 여성들이 적지 않아요.”
그들은 담소하면서 유격대 숙영지에 이르렀다.
원시림 속에 자그마한 통나무집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한 통나무집 앞에서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노인 한분이 사냥총을 쥔 채 나오더니 인사했다.
“사돈어른 안녕하세요?”
기준이가 보니 최구장의 동생 최구철이었다.
“어이구, 사돈어른, 무사합니까? 산속에 계신단 말은 들었습니다만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최구장은 “참, 오래간만이군요. 큰 사돈어른님 무사한가요?” 하고 문안인사를 하면서 자기 통나무집으로 안내했다.
최구장네 통나무집은 지은 지 몇 십 년이 돼서 이젠 낡아보였다. 반토굴이나 다름없는 통나무집 지붕 위에 머루대래넝쿨이 푹 덮여있어서 피뜩 보아서는 통나무집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출입문으로 드나드는 다래넝쿨 틈이 있어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감이 들 뿐이었다.
어두운 통나무집에 들어가 보니 호랑이 가죽으로 사슴 가죽을 깐 구들은 대여섯 사람을 들이기는 너무나도 비좁아보이었다.
기준은 최구철과 진달래에게 어머니가 사망한 일로, 막내아들 상순이가 지학사 지주를 소송해 이긴 일로, 며칠 전에 이곳으로 오면서 안보촌에서 자위대 놈들과 싸우던 일을 죽 이야기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에이, 참, 조선 지주나 중국 지주나 속은 통 검다니까. 지주들보다 더 검은 놈은 일본 놈들이요. 지주는 소작료나 많이 받아먹지만 일본 놈들은 우리 조선을 통 채로 빼앗아갔단 말이요.”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밸 같으면 나도 일가식솔들을 데리고 유격대에 들어와 총을 잡구 일본 놈들을 통쾌하게 족치고 싶습니다. 오면서 보니까 그 놈들이 저기 도문으로부터 진수해를 지나 영월구에로 죽 철길을 놓느라고 숱한 조선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습디다. 그 놈 새끼들이 조선에서도 우릴 못 살게 굴더니 여기까지 쫓아와서 우리를 못 살게 군단 말입니다. 이번 기회에 항일 유격대를 돌아보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옆에서 성칠은 “거 무슨 소리야. 소서구에서 아버지를 잘 모시고 농사를 지어라. 유격대에 쌀을 지원하는 것도 일본 놈들과 싸우는 게야. 이전에 말해줬는데도 또 그 말이야.” 하고 핀잔을 주었다.
기준은 뒷덜미를 긁적이면서 “도리는 그런데 어떻게 중국 지주들의 눈치 밥을 먹고 살겠소?” 하고 두덜거렸다.
성칠은 기준을 못마땅한 눈길로 흘겨보더니 하옥을 데리고 자기 헌 통나무집으로 갔다.
기준은 최구장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우리 고향 명천에서 온 칠백이랑 동욱이랑 용천이랑 다 잘 있습니까? 어째 보이지 않습니까?”
최구장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슬슬 만지더니 진달래의 눈치를 보았다.
진달래가 입을 떼였다.
“다 잘 있어요. 용천 대장은 항일 투쟁의 수요에 의해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길림과 북만 일대로 갔고요, 칠백 오빠나 동욱 오빠네는 모두 중대장이 됐어요. 그들도 쌀 얻으러 무송현 쪽으로 나간 지 일주일이 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최구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고향 명천에 있는 구장 형님이랑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 속이 답답해 죽겠소.”
기준은 무릎을 탁 쳤다.
“아차, 잊을 번했구먼. 경숙 사돈이 우리 함흥촌 큰매형네 집에 들어와 있으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최구철과 진달래는 아주 반가워했다.
“큰조카 함흥촌에 왔구먼. 언제 가 봐야지.”
“큰오빠 왔다고? 언제 성칠 오빠와 함께 가 봐야겠어요.”
최구장은 엉덩이걸음으로 기준한테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래, 형님은 명천에서 무사히 있소?”
기준은 경숙에게서 들은 말을 대충 전해주었다.
“일본 놈들이 우리 고향 명천에 득실거리는 판에 허리를 펴고 살겠습둥? 일본 놈들은 최구장 사돈어른을 보고 서당을 그만 두고 일본 놈 말을 배워 일본 학교에서 훈장질을 하라고 하였습구마. 창씨개명인지 뭔지 하라고 일본 놈들이 야단이랍더구마. 조선 사람들이 모두 천황페하의 백성이 됐기에 성도 일본 놈들의 성을 따라 고치라고 못살게 군답구마.”
최구장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한뉘 서당 훈장을 하시던 분을 훈장을 하지 말라니까. 입을 기워 매고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니고 뭐요? 언제 저 섬나라 오랑캐 놈들을 다 몰아내구 편안히 살겠소?”
속이 탄 한숨 소리가 적막한 통나무집안의 정적을 톱질했다.
한참 후 최구장이 납덩이 같은 침묵을 깨였다.
“우리 여기 유격대두 쌀 고생을 모질게 하오. 여름에는 산나물이랑 캐먹으면 괜찮은데 겨울엔 정말 풀뿌리도 얻어먹기 힘드네. 일본 놈들이 항일유격대를 압살하려고 봉쇄가 어찌나 심한지 쌀이 극난이오. 김 대장 말처럼 사돈어른이랑 농사를 잘 지어 우리 유격대에 쌀을 대주는 것도 항일투쟁이고 일본 놈들과 싸우는 거요.”
“글쎄 성칠 형님과 토성안집 인삼 아저씨도 다 그러더군요.”
기준은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온 바에 통나무집이나 여러 채 져주고 갈까 합니다.”
최구철과 진달래는 눈길을 마주치며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최구철도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 머루다래 넝쿨 속을 나가더니 하늘을 찌를 듯 한 미인 송을 올리다보면서 뒤따라 나온 기준에게 말했다.
“이 미인송이면야 숱한 통나무집을 지을 수 있지. 헌데 너무 많이 통나무집을 지으면 일본 놈들의 비행기에 발각될 수도 있네. 황차 유격대는 말 그대로 유격전을 위주로 하기에 이 곳에 오래 머물지 않지.”
기준은 자기 생각을 돌리지 않았다.
“토끼도 굴을 여러 개 파놓고 산다 하지 않습니까? 여기 저기 숱한 통나무집을 지어 놓으면 이 부근에 오면 들려서 잘 데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난 형님이랑 유격대원들이 추운 겨울에 들 집도 없어 허허벌판에서 나무이파리를 덮고 잔다는 말을 듣고 잠이 다 오지 않습디다. 하다못해 비를 끊고 추위를 막아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말에 진달래는 따라 나와 지지했다.
“사돈 말씀이 옳아요. 한곳이 아니라 몇 백 미터 사이에 여기 저기 드문드문 통나무집을 지어놓으면 좋겠어요.”
“사돈 새 애기 말이 옳소.”
기준은 당장 통나무집을 지으려는 듯이 통나무집안으로 들어가더니 목수도구상자를 메고 나와 한 아름씩 되는 통나무들을 쳐다보았다.
이때 성칠 대장이 하옥과 함께 걸어왔다.
“형님, 내 온바 하곤 통나무집을 지어줄게.”
하옥은 미소를 지으면서 반겼다.
“생원이, 나도 이젠 여기서 살게 통나무집을 하나 져 주세요.”
성칠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움찔해보였다.
“아낙네들이란 참 코 막고 답답하다. 전쟁터에서 아낙네들이 뭘 한다고 여기 눌러 있어? 바로 살림을 차릴 예산이요?”
그러자 진달래가 통나무집으로부터 머루넝쿨을 쳐들면서 나오더니 끼어들었다.
“형님 말이 맞아요. 여기가 통나무집을 짓고 저쪽에 밭까지 일궈 놓고 오빠와 함께 있으세요.”
하옥은 때를 만났다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여보, 당신 들었어요? 유격대에도 여성들이 필요해요. 밥도 짓고 빨래도 해드릴게요. 저를 받아주세요. 네? 절대 유격대 짐이 되지 않을게요.”
진달래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은녀랑 형님이랑 있으면 저도 고독하지 않을 거 같아요.”
하옥은 제꺽 “은녀랑 어데 있어요?” 하고 물었다.
진달래는 병수 소대장과 함께 “통화 쪽으로 잠시 임무를 집행하러 나갔어요.” 하고 말했다.
성칠은 “에헴.” 하고 마른기침을 했다.
진달래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원래 유격대 종적은 비밀에 부치기로 됐던 것이다. 그러나 진달래는 성칠의 동생과 아내 앞인지라 구애 없이 말했던 것이다.
성칠은 기준과 최구철과 함께 풀숲을 헤치면서 원시림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해가 원시림에서 사라지고 어둠의 장막이 우중충한 미인 송들을 덮을 때까지 그들은 이산 저산 넘어 다니면서 통나무집을 지을 일을 토론했다.
4. 지게꾼 처단
하늘이 보이지 않는 원시림 속은 기준의 지휘아래 미인 송을 베여 통나무집을 짓는 억복, 바위 돌 등 유격대원들로 한창 법석이었다.
성칠과 최구장의 주장대로 기준은 한곳의 미인송을 베 내지 않고 여기저기서 아름드리나무 밑에 있는 대야밑굽만한 미인 송을 드문드문 톱으로 베 냈다. 그리고 유격대원들을 시켜 천연적으로 은폐하기 좋은 나무숲속의 경사진 곳을 괭이로 파고 통나무를 쌓은 다음 위 갓을 씌웠다. 통나무 틈에는 원시림속의 풀과 흙을 이겨 발라놓았고 지붕 위에 싸리나무와 단풍나무를 촘촘히 얹고 흙을 이겨 바른 다음 그 위에 흙을 두툼히 발라놓았다. 얼핏 보면 그저 둔덕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 속은 10여 명씩 잘 수 있는 동굴이나 다름없는 통나무집이었다. 성칠은 유격대원들을 조직해 통나무집과 통나무집 사이를 동굴을 파 이어놓았다. 동굴을 파서 나온 흙은 커다란 통나무집 사이에 통나무로 만든 동굴 위에 쌓아올렸다. 그리고 키 넘는 나무들을 송두리 채 파다가 옮겨놓았다. 하여 가산 같은 커다란 흙무지 사이에 통나무집들이 가려져 유사시에 이런 가산의 동굴을 리용해 통나무집을 습격하는 적들을 매복습격하고 통나무사이 동굴을 이용해 침략자들을 사격할 수 있고 철퇴할 수도 있었다. 기준은 형님에게 특별히 세 칸 들이 통나무집을 지어주었다. 경사진 둔덕으로부터 동굴을 파고 첫 칸은 부엌이자 경위원이 자는 칸이고 뒤 칸에는 성칠 부부간이 자는 칸이었다. 부엌 천정에는 공기통이자 피신구멍을 냈는데 그 구멍문을 열고 올라가면 천정이 있었다. 바깥으로 삐뚤게 낸 공기구멍은 잔 나무에 가리어져 은폐가 잘 된데다 바깥이 환히 내다보여 돌변사태에서도 적정을 정찰하고 사격할 수도 있었다. 동굴에는 두 칸이 있었다. 하나는 성칠의 부부간의 침실이고 다른 칸은 경위원의 침실로 쓰기로 했다. 두 침실 뒤로 동굴을 파서 다른 통나무집과 가산의 동굴과 이어놓았다.
둬달 전에 기준이 원시림 속 유격대 숙영지에 들어섰을 때는 녹음이 짙었건만 벌써 나무숲과 풀들이 누런색을 띄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기준은 성칠의 통나무집 경위원 실에서 경위원과 함께 일어나자마자 성칠의 칸을 찾아가 조용히 말했다.
“가을걷이를 하러 집으로 돌아가야겠소.”
“옳다. 돌아가라. 농사를 잘 지어 우리 유격대를 도와주는 것도 항일투쟁을 지지하는 게다. 이번에 와서 큰 수고를 했다.”
기준은 성칠에게 목수도구를 내놓으면서 “이걸 유격대에 두고 가겠소. 후에 유격대에서 이걸로 통나무집을 짓소.” 하고 말했다.
성칠은 목수도구들을 두루 들여다보면서 잠간 궁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통나무집을 지어놔서 올 겨울에는 유격전을 벌리다가도 여기 와서 잠복해 있으면 덜 얼겠다. 건데 톱과 도끼, 작은 자귀하구 끌만 두고 대패랑 큰 자귀랑 가져가라. 빤빤하게 대패질한 문보다도 통나무 문이 위장하기엔 나을 거 같아.”
기준은 대패와 자귀만 가지고 가기로 했다.
성칠은 머리를 훔치고 나서 기준을 연이하려는 하옥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당신두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부모나 잘 모시오.”
하옥은 단통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앵돌아져 성칠을 외면하면서 두두 거렸다.
“안 가. 집에 있는 동서 둘이 시부모를 모시면 돼. 여기서 유격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겠어요.”
성칠은 도리머리 질까지 했다.
“여보, 여긴 싸움터이지 살림을 차리라는 곳이 아니오. 얼른 따라가오.”
하옥은 외까풀 눈으로 성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게도 총 주세요. 나도 은녀처럼 애를 업고 여성유격대원들처럼 싸울 수 있어요.”
“쳇, 남자들도 어려워하는데. 당신이?”
성칠은 코웃음 쳤다.
“꼭 내 손으로 일본 놈을 쏴 죽여 보여야겠어요.”
성칠은 별수 없이 하옥을 남겨두기로 했다.
그는 경위원의 귀에 대고 뭐라고 분부했다.
경위원이 나가 얼마 되지 않아 최구장과 진달래가 나무집 문을 떼고 들어왔다.
진달래는 하옥이가 남아 있게 됐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성칠의 눈치를 곁눈질하면서 인차 표정을 정리했다.
“형님이 남으면 내 동무돼 좋겠어요.”
하옥은 진달래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나 했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그래요. 후에 사돈새기와 동무하면서 유격대를 잘 받들 예산이라요.”
이윽고 억복과 철석이가 성칠의 통나무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이 두 달 사이에 함흥촌의 토성안집과 장백산 원시림 속 유격대 숙영지를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임무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성칠은 억복과 철석을 경위원 침실에 불러 조용히 물었다.
“영월구 지게꾼과 십가장을 정찰해봤소?”
억복이가 회보했다.
“십가장 놈은 전번에 일루 겁을 집어먹고 집에 잘 들지 않고 어떤 때엔 밤중에 돌아오는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지게군 놈은 영월구에서 사라졌습니다.”
“알았소. 그 놈들을 즉시 처단해버리오. 팔기란 놈을 심문해 적정을 알아낸 후 좋기는 그 놈을 미끼로 일본 놈이거나 개다리 놈들을 몇이라도 으슥한 곳에 데려다가 처단하면 좋을 거 같소.”
“옛, 명령을 집행하겠습니다.”
성칠은 억복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분부했다.
“영월구나 송강의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동생하구 앞뒤에 거리를 띄워두고 령 길로 돌아가오.”
“예, 알았습니다.”
기준은 경위원 침실에서 나오는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형님, 부디 주의하면서 일본 놈들을 많이 족치오.” 하고 말하고 나서 긴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언제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구 고향 명천으로 돌아가 형님이랑 함께 마음 놓고 살가?”
성칠은 기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돌아가 농사를 많이 져서 여기에 쌀을 많이 보내라. 그럼 고향으로 돌아갈 날도 멀지 않을게다.”
기준은 큰 자귀와 대패를 묶어 메고 나서 하옥에게 허리를 굽혀 작별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형님을 모시고 잘 있소.”
하옥은 생글 웃음지었다.
“집에 돌아가면 시부모님과 동서들에게 안부를 전해주세요. 올 때 알리지 않고 가만히 와서 미안하다고 시아버님께 사과를 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알았소. 부부간이 함께 있자는데 아버지도 양해할 거요.”
기준은 옆에 선 최구장과 진달래에게도 작별인사를 드렸다.
“사돈어른, 무사히 계십시오. 사돈 새기 잔치 술은 언제 마시겠는지 알리십시오.”
진달래는 몸을 돌리면서 외면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혁명을 하느라고 시집갈 새 어디 있어야죠.”
성칠과 진달래, 최구장 등은 기준이네를 원시림 속에서 한참 걸어 나오면서 바래였다.
원시림에서 폭풍이나 불어칠 듯이 무섭게 설레면서 휴~ 휴~ 소리 냈다.
기준이네 셋은 련 이틀이나 주먹밥을 먹으면서 걸어서야 영월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 마을 앞산에 이르렀다.
억복이가 하늘을 쳐다보니 서늘한 가을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뒤에서 터벅터벅 다가오는 기준을 보고 “삼촌은 여기 숨어 있으십시오. 우리 둘이 내려가 십가장 놈을 처단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기준은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그까짓 놈 새끼를 죽이는데 자네들까지 필요 없네. 내 내려가서 자귀로 푹 찍어죽일게.”
억복은 자귀를 메고 산 아래를 막 내려가려는 기준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됩니다. 마을에 정황이 복잡합니다. 전번에 자위대 놈들이 셋이나 처단당한 일로 놈들은 보초를 강화했습니다. 혼자 십가장 놈은 죽일 순 있겠지만 몸을 빼기 힘듭니다.”
기준은 숨을 길게 몰아쉬면서 궁리하더니 “그럼 자네 말을 따르겠네.” 하고 자귀를 내려 자루를 짚고 멈춰 섰다.
기준은 한참 궁리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래도 자네들이 총을 쏘면 자위대 놈들이 달려들 거 같네. 내 십가장 놈을 찍어 죽일 테니 자네들이 덮쳐드는 자위대 놈들을 족치게.”
억복은 철석이가 다가오자 작전을 꾸몄다.
“내가 십가장 놈을 처단할 테니 삼촌과 자넨 뒤를 막소.”
“예, 이 분대장!”
억복 등은 해가 지기를 기다려 산에서 내려 마을로 다가갔다. 어둠의 장막이 그들의 행동을 감춰주었다.
그런데 마을에 다가가자 개들이 “컹컹” 요란하게 짖어댔다.
마을 동서남북에 보초를 서던 자위대 놈들이 개가 짓는 것을 듣고 떠들어댔다.
“웬 놈이 오지 않았어?”
“글쎄 말이야.”
“가 봐라!”
“싫어. 전번에도 죽다가 살았어.”
“에이, 겁쟁이 같은 게 우리 둘이 가 보자.”
“왕왕!”
억복이 제꺽 주먹밥 한 덩이 꺼내 뿌렸다.
요란하게 짖으면서 덮쳐오던 개가 짖지 않고 주먹밥 덩이가 떨어진 곳에 달려와 밥덩이를 먹는 것이 달빛에 보이었다. 이때 버드나무숲속에서 꿩인지 까마귄지 푸르릉 날아났다.
“에이 씨, 깜짝이야. 꿩이구먼. 괜히 놀랐다.”
자위대 놈들 둘은 개를 불러 가지고 마을 쪽으로 돌아갔다.
엎드렸던 억복이 버드나무숲속에서 일어나 앉으면서 머리를 숙이고 궁리했다.
“인차 이 곳을 옮기기요. 놈들이 우릴 발견하고서도 모르는 척 할 수도 있습니다.”
기준은 “자네들은 개울가로 에돌아 그 죽일 놈의 십가장 집으로 가오. 내 이쪽으로 나갈게. 목수인 나를 어찌 하겠소.” 하고 말하면서 큰자귀를 짚고 일어서려고 했다.
억복은 황급히 기준의 팔을 잡았다.
“안 됩니다. 전번에 살아남은 자위대 놈이 있습니다. 그 놈은 삼촌을 알아 볼 겁니다.”
“그래 어찌 하겠단 말이오?”
“저와 함께 개울가로 에돌아 마을 서남쪽으로 해서 들어갑시다. 철석은 북쪽으로 해서 마을에 들어가 일단 일이 일어나면 뒤를 차단하오. 우린 십가장을 처단한 후 회합하기요.”
“옛!”
이리하여 억복과 기준은 버드나무숲을 헤가르면서 개울가로 하여 마을 서남쪽을 에돌아나갔다. 가을바람에 버드나무들이 쏴~쏴~ 소리 내면서 몸부림쳤다. 바람소리가 그들의 발자국소리를 감싸 안고 날아가 버렸다.
마을 동남쪽으로 하여 역시 자위대 보초 놈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서성거리고 있었다.
억복은 기준과 뭐라고 귀속 말을 하더니 함께 허리를 구부정하고 제일 서남쪽 집으로 슬렁슬렁 달려갔다. 그들은 울바자 안에 슬쩍 뛰어들어가 허리를 치는 터 밭 강냉이 속을 헤집으면서 십가장의 집 앞으로 접근했다. 서럭서럭 옥수수 이파리들이 팔소매를 스치었다. 옥수수이파리들이 밤 가을바람에 너펄너펄 몸부림을 쳤다.
이때 집 북쪽에서 뻐꾹새 울음소리가 “뻐꾹뻐꾹” 들려왔다.
억복은 기준에게 다가와 “철석이가 예정한 자리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삼촌은 옥수수 밭에 숨어 있으시오. 내 집안에 들어가 십가장 놈을 처단하겠습니다.” 하고 귀속 말을 했다.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억복의 팔을 잡아당겼다.
“십가장 놈이 있는가 보고 들어가게나.”
억복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억대우 같은 몸을 날려 아래 집 울바자 안으로 훌쩍 뛰어넘어갔다. 그러나 평소에 어찌나 연습하였던지 고양이가 나무 우에서 살짝 뛰어내리듯이 아무런 자취도 들리지 않았다. 황차 밤 가을바람이 와스랑와스랑 터 밭의 옥수수 밭을 들춰놓아서 아무런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십가장의 집에는 등잔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굴뚝으로 하여 벽에 붙어 슬슬 윗방 문으로 다가갔다. 억복은 혀끝의 침으로 창호지를 살짝 젖혀놓고 손가락으로 살랑 구멍 냈다. 창호지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등잔불 밑에서 술상을 마주하고 십가장과 낯모를 사람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전번 네 놈은 유격대 옳지?”
십가장의 말에 맞은쪽의 사람이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 내 약재 캐는 사람으로 가장해 령 길을 따라 그 놈들의 뒤를 밟아보았는데 장백산 원시림으로 들어갔소. 그 놈들은 원시림에 통나무집을 짓고 야단입데. 목수도구를 멘 놈이 유격대 두목의 형제인 거 같았소.”
(이 놈이 바로 그 지게꾼 놈이구나.)
억복이가 문을 차고 쳐들어가려는데 십가장이 또 지껄였다.
“그럼 빨리 헌병대나 경찰국에 알려야지.”
“내일 영월구파출소에 가서 알려야겠소. 파출소 소장이 용정 조일파출소나 용정통감부 간도파출소에 알릴 게요. 놈들의 꼬리를 밟았으니 일본 관동군이 장백산에 숨은 유격대를 놔두지 않을 게오.”
(밀정 놈, 어디 죽어봐라!)
억복이 비수를 빼들더니 문을 탁 차고 뛰어 들어 갈 때였다. 어느새 기준이도 뛰어 들어갔다.
“에이쿠, 당신들은?”
억복은 비수로 두 놈을 번갈아 겨누면서 을러멨다.
“우린 항일 유격대다! 인민을 대표해 일본 놈 개다리들을 처단한다!”
땅!
그때 지게꾼 놈이 어느 결에 술상 밑에서 권총을 들어 억복을 쏘았다.
억복의 왼팔을 꿰뚫고 벽에 박힌 총알은 불꽃을 튕기며 윙- 죽음의 노래를 울렸다.
억복이 왼팔을 붙잡고 비틀거렸다. 순간 기준이 큰 자귀를 번쩍 휘둘러 지게꾼 놈의 대갈통을 콱 찍었다. 지게꾼 놈은 대갈통이 뻐개져 푹 꼬꾸라졌다. 억복이 아픔을 참고 비수로 십가장 놈의 목을 썩뚝 도려냈다.
정지에서 아낙네와 애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억복과 기준이 문을 열고 바깥에 나왔을 때였다. 자위대 놈들이 이쪽으로 뛰어오는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고함소리 요란했다.
“웬 총소리냐?!”
“십가장 집 쪽이야!”
“지게꾼이 잘못 됐겠어.”
그때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제일 앞에서 뛰어오던 자위대 놈이 꺼꾸러졌다. 억복이가 뛰어나오면서 총을 쏘았다.
자위대 놈들도 맞불질했다.
땅! 땅!
뒤울 안에 숨었던 철석이가 자위대 놈들을 요격했다.
땅!
뒤울 안에서도 총알이 날아오자 맞불질하던 자위대 놈들은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유격대다!”
억복은 권총을 쥔 손으로 왼팔을 싸쥐고 기준과 함께 뒤울안 쪽으로 뛰어갔다. 그들이 뒷집 울바자 안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였다. 북쪽에서 뛰어온 자위대 놈들은 남쪽으로 달아나는 자위대 놈들을 유격대인가고 총을 쏘아댔다. 그러자 남쪽으로 달아난 자위대 놈들은 동쪽에서 뛰어온 놈들과 합세하자 북쪽의 자위대 놈들을 유격대인가고 맞불질했다.
      그 틈을 타 억복과 기준 등은 뒷집 굴뚝을 에돌아 그 뒷집 울안을 넘어 북산 쪽으로 몸을 뺐다. 그들이 뒤 산으로 올라간 후에야 자위대 놈들의 총소리가 멎었다. 아마 그제야 자기들끼리 싸운 것을 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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