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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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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112)
2018년 07월 29일 11시 08분  조회:164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4. 하늘땅이 노호한다

      춘삼월이라고 하지만 옛 만주 하늘은 초봄에 눈을 퍼부으려는지 흐리터분해지며 두터운 구름이 깔리며 총총하던 별을 가리어갔다.
흥수는 신경질이 나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토성 동쪽에 있는 집으로 갔다.
어쩐지 요즘 세월이 뒤바뀐 후 흥수는 신경질이 나면서 모든 일이 잘 되지 않았다.
혁명위원회도 취소했지. 이전에 자기가 혁명해버린 이계삼과 허영주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한 모자를 썼다고 해명돼 모자를 벗고 현인민정부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또 허백호도 무죄로 판결돼 감옥에서 나온다는 여론이 돌고 있다.
게다가 “문화대혁명” 때 일만 수걱수걱 하던 상순이 또 머리를 쳐들더니 자기와 시비를 걸지 않겠는가?
흥수는 생각할수록 신경질이 나고 속으로 뭔가 울컥거렸다.
(마을 사람들도 상순이 양봉장이랑 인삼장이랑 벽돌공장이랑 과수원이랑 꾸린 것이 옳다고 해. 그래, “문화대혁명” 기간에 비판하던 “생산력유일론”이 맞는단 말인기여? “계급투쟁”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고? 뭐? “3자1포”나 도급제가 맞아? 마음대로 장을 보고 밭도 개인에게 떼 주면 또 새로운 지주가 생기지 않겠노? 자본주의 싹이 온 마을에 무럭무럭 자랄 게 아닌교?)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되지 않아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정치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미련과 오입이라도 하면서 삼검불 같은 정신을 위안 받으려고 했다.
울안에 들어서자마자 불을 켜지 않은 집 안에서 개목을 다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아이유, 아, 아악, 죽여준다야.”
“개새끼, 오늘!”
흥수는 팔을 걷고 씩씩거리더니 문을 쾅 차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전등불이 잘칵 켜지더니 정지에서 춘실이 황급히 발딱 일어났다.
“어째 이제야 왔소?”
“고방에서 개지랄 하는데 넌 뭘 하니?”
흥수가 고방에 뛰어들려는데 춘실이 두 팔을 벌리고 막아 나섰다.
“쑤어놓은 죽을 어쩌겠소? 이젠 애까지 낳았는데. 그 에미에 그 딸이구나.”
흥수는 춘실의 팔을 탁 쳤다.
“뭐라오? 당신.”
“네년, 어려서 상순이하구 콩밭에서 개짓을 해 첫애를 낳았잖아.에이, 디러운 년.”
“창피해 어떻게 살아? 그래 지주에게 딸을 짓밟게 놔 둬?”
춘실도 한발작도 물러서지 않았다.
“검정개 돼지 흉을 보지 마오. 당신은 왜 지주 딸을 한밤중까지 간음했소? 흥!”
“무슨 생이 부러질 소리야? 생사람을 작작 잡으라고.”
“모르는 거 같아? 덕돌이네 집부터 뒤따라 왔는데도 시치미를 딸 예산이오? 내 입이 터지면 당신 대대당지부 서기겠소? 투쟁 받다가 감옥에 가…”
흥수는 황급히 생강같이 마른 손으로 여편네 입을 마구 틀어막았다.
“그만, 그만!”
춘실은 손을 탁 쳐버리며 “어째 무서워?”라고 했다.
흥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위방에 올라가 이불을 들쓰고 드러누웠다.
이때 고방 문이 열리더니 해월이 실 한 오리도 걸치지 않고 뛰어 나와 춤을 덩실덩실 췄다.
“아하, 좋다! 우리 신랑 좋고 좋다!”
“아이고, 이거 동네 창피해 어떻게 살겠니? 고방에 들어가라!”
춘실은 애를 깔까봐 끌어안으며 해월을 고방에 마구 떠밀었다.
이때 충국이 괴춤을 춰올리며 고방에서 나와 때물이 괴죄죄 흐르는 낯을 쓱 닦으며 벌쭉거리었다.
“가시 아버지, 언제 우리 잔치하오?”
“가라! 썩 꺼지지 못해?! 꼴도 보기 싫어!”
“아무리 늙은 사위라도 이럼 못쓰지. 내 당신보다 이상인데.”
충국은 너스레를 떨어댔다.
“난 벽돌공장 춥다. 고방 참 따뜻해 좋다. 안 가겠다.”
“썩 가지 못하겐?!”
흥수는 주먹을 쳐들었다.
허나 충국은 겁기라고는 꼬물만치도 없이 헤헤 웃으며 흥수의 쳐든 주먹을 내리었다.
“권투! 당신, 안 돼! 난 상순 양형님에게서 무술 배웠어.”
흥수는 주먹으로 충국의 낯을 내질렀다.
충국은 잽싸게 주먹을 받아 쥐어 탁 밀었다.
흥수는 저쪽 벽 구석에 가서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충국은 기세등등해 지껄였다.
“당신 내 여동생 했다. 이 치보, 당신 매부야? 가시아버지야? 허허허.”
흥수는 그 소리에 억이 막혀 멍청히 앉아 상을 찡그리며 미치광이 같은 충국을 쳐다보기만 했다.
충국은 춘실의 품에 안겨 “앙, 앙~”우는 애기 머리를 쓰다듬더니 고방으로 해 뒷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다 벌어진 뒤울안 바자를 꿰질러 조개덕으로 내려갔다.
한편 흥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충국을 놔두었다간 동네 창피해 살 것 같지 못했다.
새벽까지 이리 궁실 저리 궁실 하며 고민에 잠겼던 흥수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소변보러 나가는 척 하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구새 목에 가서 벽에 걸어두었던 호미를 벗겨 들고 조개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동구 둔덕 아래에 있는 벽돌공장이 가까워질수록 흥수는 손에 쥔 호미자루를 더욱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그가 벽돌공장 당직실에 다가가 벽에 기대 구멍이 펑 뚫린 안을 들여다보았다. 말이 당직실이지 문 쪽도 다 빠지고 창문 옆에 커다란 구멍까지 나서 우사보다도 못했다. 게다가 이불이 없어 충국은 당직실 안에 북데기를 들쓰고 자는 것이었다. 쿨쿨 자는 그 모습 딱 검정 돼지 같았다.
“개 새끼, 다신 내 딸을 짓밟지 못하게 병신을 만들어주마!”
흥수는 이를 악물고 슬금슬금 당직실 문께로 다가가 문꼬리를 쥐어 당겨보았다. 문을 걸지 않아 삐꺼덕 열렸다.
술을 잔뜩 처먹은 충국은 그 추운 당직실에서 곯아떨어진 채 코를 드렁드렁 구르며 자고 있었다. 그는 흉악한 검은 그림자가 슬금슬금 다가드는 것도 아무런 기미도 차리지 못하고 잠에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흥수는 호미를 쳐들고 슬금슬금 다가가 어둠 속에서 북데기를 들쓴 충국의 머리를 겨누고 힘껏 내리찍었다.
“아이쿠! 발이야. 누구야?!”
충국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발을 주무르며 땔, 땔 굴렀다.
흥수는 충국의 머리를 힘껏 내리찍었다.
“앗!”
충국은 푹 꼬꾸라졌다.
흥수는 충국의 괴춤을 깐 후 불 중태를 더듬어 쥐고 호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 째고 불알 한쪽을 베 내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순간 복수의 이발이 무섭게 맞쪼아댔다.
(화근을 남기지 말아야지.)
흥수는 한쪽 불알마저 마저 썩 베 내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꿀떡 삼켰다.
(이젠 네놈이 우리 해월을 더 밟아봐라! 흥! 네 불알을 먹고 이젠 미련을 죽여주마. 으흐흐.)
흥수는 충국의 괴춤을 춰올리고 발길로 툭 걷어찼다.
충국이 후- 한숨인지 뭔지 숨을 길게 내 쉬더니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흥수가 충국의 코에 귀를 대보니 숨은 가늘게 쉬고 있었다.
그러나 더럭 겁이 났다.
(이 놈이 정말 죽으면 어떻게 해? 제발 죽진 말라.)
흥수는 북데기를 왈왈 덮어놓고 황급히 문 밖으로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마을 동구 샘물터에 가서 옷과 손에 묻은 피를 샘물에 씻었다.
(아차, 당직실에 호미를 두고 나왔구나. 단서로 될 수도 있어.)
그는 벽돌공장에 되돌아가 동정을 살피다가 당직실에 기어들어 어둠 속에서 호미를 더듬어 쥐고 나오려다가 주춤 멈춰 섰다.
(혹시 죽지나 않았을까?)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북데기 속에서 충국을 더듬어 흔들어보았다.
“음~”
충국은 죽지 않았었다. 허나 정신을 아직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개 놈 새끼, 불알도 없는 주제에 이제 또 우리 해월을 희롱해?)
흥수는 침을 퉥 뱉고 당직실 문을 나섰다. 그는 샘물터로 슬금슬금 가서 피 묻은 호미마저 샘물에 말끔히 씻어들고 어둠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날씨가 훈훈해지자 상순의 포치에 따라 벽돌을 구워내려고 허동원은 숭길과 성욱을 데리고 벽돌공장에 왔다.
그들은 당직실에 들어가 북데기 속의 충국을 깨우려고 흔들었다. 그런데 충국이 꿋꿋이 굳어져 있지 않겠는가!
“아니, 죽었어?”
성욱이 눈이 떼꾼해 소리쳤다.
허동원이 북데기를 와락와락 헤치자 상을 찡그린 충국의 낯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수리에 피 터져 있었다.
“빨리, 이 치보에게 알려라!”
허동원이 소리치자 성욱은 부랴부랴 당직실에서 뛰어나가 곧추 함흥 촌으로 달려 올라갔다.
이윽고 이흥수가 당직실에 들어섰다.
그는 충국의 피와 먼지가 덕지덕지 한데 엉켜 붙은 머리랑 두루 여겨보는 척 하더니 능청을 떨었다.
“죽은 지 며칠 되는 거 같구먼. 이걸 봐.”
그는 북데기에 토한 고기랑 보고 중얼거렸다.
“뭔 술 이따위로 처먹어? 아마 덕돌이 대학에 가는 날 술을 가득 처먹고 집에 와서 넘어지면서 벽에 머리를 쪼은 거 같아.”
허동원은 도리머리를 흔들며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세게 벽에 부딪친들 죽기까지야 하겠소?”
흥수는 손가락으로 조개턱을 고이고 한참 궁리하더니 또 다른 결론을 내렸다.
“아마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가 얼어 죽은 거 같아. 구들이 찬 거 봐.”
동원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거 같지 않소. 그 추운 동삼에도 얼어 죽지 않았는데 봄에 얼어 죽었겠소? 파출소에 알리기요.”
흥수는 콧방귀를 뀌었다.
“지주 아들, 국민당 특무 잘 죽었어. 파출소에 알려 뭘 해? 시체가 썩은 내 나는데 얼른 파묻어 버려.”
“아무리 지주라 해도 인명사고인데 알리지 않아 되겠소?”
흥수는 엉거주춤 물앉으면서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파묻고 보지.”라고 했다.
허동원은 충국의 시체를 북데기 속에서 들어 내가다가 바지에도 피가 발린 것을 발견했다.
“허, 괴춤에 이 피를 보오.”
성욱은 북데기를 번지며 황급히 소리쳤다.
“북데기에도 피가 발리었소.”
동원은 벽을 만지며 “이 벽에도 피가 묻어 있소.”라고 했다.
그러자 흥수는 황급히 “아무래도 머리의 피가 흘러내려 묻은 거 같아.”라고 했다.
허동원과 성욱, 숭길은 흥수의 말대로 지주라고 충국의 시체를 관을 짜서 넣지도 않고 건치에 둘둘 말아 수레에 실어 가지고 장개골 안에 올라갔다.
흥수는 고의로 시체가 빨리 썩어라고 동원과 성욱 등과 함께 장개골 안 습개에 구덩이를 파고 파묻어버렸다.
만사대필이라고 여긴 흥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뒤늦게 오빠가 죽은 소문을 듣고 미련이 팔소매를 걷고 흥수네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치보, 너도 사람이냐?”
“왜 이래?”
흥수는 짐짓 시치미를 땄다.
“오빠가 죽었는데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파묻어버려?!”
미련은 흥수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마구 잡아 끄집어 당겼다.
“이년이!” 흥수가 활 밀어놓자 미련은 저쪽에 나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주 아들놈을 파묻어 줘도 대단하지. 뭐 어쨌다고 지랄이냐?!”
바깥에 숱한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
미련은 단말마적으로 달려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그래 지주네 아들이나 딸이라고 네놈이 마음대로 짓밟고 강간하고 파묻어도 되느냐?! 엉?!”
“이년이, 진짜 환장했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겐!”
미련은 흥수가 또 밀치려고 하자 손을 마구 물어놓았다.
“아! 이년이, 이게.”
흥수는 너무 아파 물린 손을 빼내며 오만상을 찡그렸다.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저 이 치보 미련을 강간했는 모양이오.”
“글세, 강간하지 않았으면 저러겠소?”
흥수는 동네 창피해 문을 열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 삿대질 했다.
“뭘 구경해? 가지 못해? 누가 지주 딸을 비호하면 투쟁 받을 줄 알라.”
이 치보의 위협에 모두들 목을 움츠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흥수는 춘실과 함께 미련의 두 팔을 비틀어 줄줄 끌어 토성 앞에 가져다 훌 던졌다.
미련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길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발버둥질 치며 울며불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이고, 불쌍한 내 오라비야. 아버지 엄마도 불쌍하게 투쟁만 받다가 죽었는데. 흐흐흐, 우리 오라비 장가도 가지 못하고 집도 없이 불쌍하게 죽었구나. 우리 오라비 어데 파묻었는지 날 보이지도 않고 버리느냐? 흥수, 잘 되는가 봐라. 해월이 낳은 애는 내 오라비 아들이야. 우리 오라비 해월을 백번, 천번 했다. 시원하다. 아무리 치보 주임이면 어째? 제 딸을 우리 오라비 했다고 그 승치로 나를 밤마다 찾아와 강간해? 세상에 지주 딸이라고 마음대로 강간해도 되는가? 엉~ 엉~”
온 동네에 소문나자 흥수는 그날부터 동네 창피해 마을에 얼씬하지 못했다.
그런데 집안에서도 야단났다.
“내 서방을 내놔! 아버지가 해쳤어. 엉~엉~”
해월이가 발버둥질을 치면서 야단 쳤다.
바깥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괜찮았다. 허나 해월이가 미쳐 떠들어대자 흥수는 살길마저 막막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이계삼과 허영주가 함흥촌에 공작대로 내려왔다.
그들은 오자마자 토성 안 대대 사무실 앞마당에서 사원대회를 성대히 열었다.
이계삼 부서기는 대대 사무실 마루에 올라서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상급의 정신을 전달했다.
“우리 당에서는 억울한 모자를 쓰고 밥 먹듯 투쟁당하다가 억울하게 사망한 정성해 서기의 억울한 누명과 모자를 벗겨주었고 당과 사회주의를 위해 세운 풍공업적을 높이 평가해주셨습니다. 정성해동지는 일찍 우리 동만지역에서 공산당에 가입했고 지하당조직의 영도아래 조선족을 비롯한 형제 민족 반일투사들을 조직해 목숨을 걸고 간고한 항일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는 당 중앙의 파견을 받고 쏘련에 유학해 정치와 경제, 군사를 배웠으며 중국에 돌아온 후 당시 당 중앙이 자리잡은 연안으로 들어가 연안간부로 됐습니다. 그는 당 중앙의 지시에 따라 조선의용군 3지대를 이끌고 동북에 진출했고 우리 동만에 와서 주요 영도를 협조해 우리 지역 조선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 인민들을 단결하고 영도해 중국 공산당을 따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풍공업적을 쌓았습니다. 그이께서 어찌 반당, 반사회주의 분자란 말입니까? 그이께서 어찌 지방민족주의를 고취하고 민족독립왕국을 꾀한 민족반역자란 말입니까?…”
상순과 학수 등은 모두 군중들 속에 서서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쁨의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들은 그 지겨운 세월에 묵묵히 오늘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상순은 속에서 몇 십 년 응어리 졌던 어혈이 다 풀리는 것 같았고 가슴이 활 열리고 움켜잡혔던 목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허나 흥수는 기분이 엉망이 돼버렸다.
그는 회의가 끝나자 서리를 맞은 뱀처럼 머리를 숙이고 목을 움츠린 채 집으로 돌아와 털썩 들어 누었다.
(뭐? 이계삼은 현 당위 부서기로 복직됐다고? 허영주는 부현장으로? 으흐흐흐.)
그는 이불을 내리어 꼭뒤까지 푹 썼다.
(하긴 잘해. 그들은 모두 나한테 투쟁 당하던 자들이 아닌가! 뭐? 뭐? 또 문화대혁명 기간에 노동개조를 하던 정규상, 김송선, 허백호의 억울한 사건을 해명하고 억울한 우파, 반혁명 모자를 벗겨 준다고 하지 않는가! 지어 항상 횡설수설하면서 처처에서 당의 기본 로선을 비웃던 우파 박성근의 우파모자도 벗겨준다고? 말도 안 돼!)
흥수는 생각할수록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젠 상순이 우쭐하게 됐구나.)
흥수는 낯이 새까매 집에 들어 누어 입에 빗장을 지른 채 두문불출했다.
현에서 내려온 공작대에서는 연일 토성 안 대대 사무실 앞마당에서 대회를 열고 “반 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을 “청산”하기 시작했다.
회의장에는 온 대대 당원과 사원들이 시루 속의 콩나물 대가리처럼 빼곡하게 들어섰다. 회의장에는 우파로 몰리어 20여년이나 억울하게 우파 모자를 쓰고 별의별 모욕과 중상, 갖은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은 정규상과 박성근의 아들 박숭길도 서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감옥에 갔던 허백호 서기와 파출소 허영호 소장도 허영주 부현장의 옆에 서 있었다.
허나 이흥수는 회의장에 계속 보이지도 않았다.
사실 그는 겁을 집어먹고 대회장에 나오기는커녕 아내 지춘실을 시켜 대회장에 가서 동정을 살피게 하고 집에서 이불을 들쓰고 귀를 틀어막고 들어 누워 있었다.
그는 이불 속에서 다른 건 몰라도 충국을 죽인 일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시체 대갈통을 파내 깨진 상처 자국이라도 발견한다면 모든 게 끝장날게 아닌가? 젠장, 진작 대갈통을 잘라 없애버려야 했는데. 후-.)
그는 이불안이 뜨겁도록 한숨을 토해냈다.
(아니야. 대갈통을 파서 잘라 버리면 더 의심받을 수 있어. 하느님께서 충국의 대갈 뼈에 호미에 맞은 상처를 남기지 말아주옵소서.)
흥수가 이런 생각을 하며 속을 끙끙 앓고 있을 때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숭길을 비롯한 허춘, 성욱, 동림 등 민병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다짜고짜 이불 속에서 이흥수를 끌어내 회의장으로 끌고 갔다.
“왜 이래? 이걸 놔!”
흥수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돼지처럼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허영주 부 현장의 지시다. 네놈을 투쟁대회장에 끌어낸다. 걸어!”
민병들은 이흥수를 회의장에 끌고 가 원 공사 혁명위원회 주임 황종연과 함께 숱한 군중들의 앞에 내세웠다.
허나 문화대혁명 때처럼 고깔모자를 씌우지는 않았다.
“왜 이러는 거요?”
황종연은 몸부림치며 고함쳤다.
“넌 문화대혁명시기 반란파 두목이다.”
“억울합니다. 혁명자를 이렇게 억울하게 투쟁합니까?”
그러나 민병들은 황종연의 입에 수건을 틀어막았다.
그때 이계삼이 민병들을 말리었다.
“우린 ‘문화대혁명’시기 이자들처럼 비인간적으로 가혹하게 굴지는 말아야 하오.”
민병들이 수건을 풀어주었다.
대회는 허영주 부현장이 직접 사회했다.
“오늘 대회는 ‘반우파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청산하는 대회입니다. 우선 이계삼 부서기로부터 정치야심가 반란 파 두목들인 황종연과 이흥수의 죄악을 폭로, 비판하겠습니다.”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계삼 부서기는 함흥 대대의 이흥수와 황종연이 반 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시기 죄악을 공개하고 다음과 같이 집중해 비판했다.
“…이흥수는 항일투쟁과 해방전쟁시기 노간부들인 이계삼과 허영주, 정규상 등 동지, 지어 자기를 입당시킨 입당소개인 허백호동지마저 억울하게 우파분자로 몰아 비인간적으로 혹독하게 비판하고 투쟁하고 해쳤다. 허백호 서기 등 노 간부들은 함흥 대대 노 당지부 서기 김병완 동지와 김상순 동지와 함께 황종연과 이흥수의 착오적로선과 만행에 맞서 견결히 투쟁했다. 허백호 서기는 함흥중학교 동쪽 한족묘지 부근에서 김송선 동지를 강간하려고 덤비는 황종연을 돌멩이로 까부셔 황종연의 더러운 야욕을 제지시켰다. 한차례 강간범죄행위를 제지시키고서도 당시 허백호 서기는 황종연과 이흥수에 의해 억울하게 살인혐의를 쓰고 감옥에 가서 5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했다. 박성근 사원이 실사구시하게 말 몇 마디 했다고 이 두 놈은 우파 모자를 씌워 한뉘 고통 속에서 시달리게 했다. 박성근 동지는 20여년 비인간적인 심신타격에 견디지 못하고 폐병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다가 억울하게 사망했다.
반란파 두목 이흥수와 황종연은 청백한 노 간부와 사원들에게 반혁명분자, 우파분자 모자를 마구 들씌워 투쟁하고 박해했다. 이 두 놈은 투기적으로 입당한 정치야심가들이다. 황종연과 이흥수 두 정치야심가들은 정치투기를 일삼으면서 야합해 천방백계로 대대 노 당지부 서기이며 항일 로간부 김병완 그리고 그의 손자 김상순 서기가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해야 한다’는 모주석의 지시에 따라 농업생산을 틀어쥐는 한편 타향 산골에 가서 감자농사와 옥수수 농사를 하고 대대에 인삼장과 양봉장, 벽돌공장을 꾸렸다고 류소기의 ‘생산유일력’과 ‘3자1포’를 집행한다고 억울한 모자를 들씌우고 반란 파들을 선동해 박해했으며 김상순 동지의 대대 당 지부 서기직무를 찬탈했다. 김상순 동지는 황종연과 이흥수의 연합박해를 피해 교하로 이사해 가지 않으면 안됐다. …”
이계삼 서기가 격앙된 목소리로 그들의 죄상을 읽어 내려갈수록 황종연과 이흥수는 평소에 개 턱처럼 쳐들었던 대가리를 툭 떨어뜨리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군중들은 격분한 눈길로 이흥수와 황종연을 쏘아보았다.
이계삼은 계속해 흥수와 종연의 죄악을 폭로했다.
“전임 공안국 국장 김용만과 황종연, 이흥수는 ‘4인무리’ 일파인 반란파 두목 모원신의 수하로서 악질반란파 두목들이다. 반란파 두목 김용만의 지시에 따라 이일룡, 황종연, 이흥수는 노간부들을 박해하고 무리싸움을 주도했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때리고 공공재산을 짓 부신 주범들이며 반당분자, 반혁명분자들이다. 황종연과 이흥수는 남녀작풍도 문란하다. 그들은 하향간부 박윤희를 여러차례 위생소에서 강간하거나 간음했다. 이흥수는 김송선이 자기 야욕을 거절한다고 위생소로부터 몰아내고 여자가 할 수 없는 산비탈 옥수수 실이를 시키면서 혼내려고 들었다.”
사람들은 흥수를 손가락질 하면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이흥수는 사람도 아니다.”
이때 군중들 속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해월이가 젖통을 훌렁 드러낸 채 희희닥거리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우리 아버지는 늙어도 거시기가 대단해! 누가 당해?! 저기 저 미련을 거의 날마다 했다! 허허허. 우리 아빠 정말 대단한 수컷이야! 히히히.”
그 말에 모두 흥수를 쏘아보았다.
허영주는 인차 군중들 속에서 춘실을 불렀다.
“춘실이, 빨리 해월을 데려 가오!”
춘실은 동네 창피해 해월을 마구 끌고 군중들 속을 빠져나가 집 쪽으로 달아났다.
허영주 부현장은 동림이랑 쪽에 대고 “민병들은 대회장 질서를 유지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뒤이어 이계삼이 계속 폭로했다.
“이흥수는 미련을 장시기 강간, 간음했다. 또 후안무치하게도 지주, 국민당 토비, 특무인 장충국을 끌어들여 자기 딸 해월과 살게 해 계획외의 애까지 낳게 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사원들이 흥수를 손가락질하며 코웃음을 쳤다.
허영주 부 현장이 군중들을 안정시키고 계속 대회를 집행했다.
“아래에 함흥대대 간부와 군중들을 대표해 당지부 로서기 김상순동지가 발언하겠습니다.”
그러자 군중들 속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상순은 팔소매를 거두고 군중들 앞으로 나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 목청을 가다듬어 발언했다.
“여러분, 억울한 모자를 쓰고 고생하던 수많은 간부들과 혁명적 군중들이 기다리던 역사적 천지개벽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림표와 ‘4인무리’의 죄악적인 노선과 김용만, 황종연과 이흥수 등 반란파 두목의 박해를 받아 수많은 간부들이 당정부문과 의료위생, 공안국과 파출소 전정기관, 농촌에서 철직 받았고 우파, 반혁명분자 억울한 모자를 쓰고 우리 대대에 와서 이른바 노동개조를 했습니다. 그래 빈농들이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도 죽물도 변변히 먹지 못하는데 들어앉아 간부를 타도하는 반혁명정치투쟁을 하는 것이 옳은 노선인가? 숱한 식구들이 겨우 이불 한 채에 다리나 촘촘히 걷어 넣고 자고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게 하는 것이 이른바 이흥수가 고집하는 계급투쟁, 혁명을 하는 사회주의 우월성인가?”
황종연과 이흥수는 점점 머리를 떨어뜨렸다.
상순의 말은 점점 날카롭게 두 놈의 썩어빠진 사상과 영혼, 죄악을 찌르기 시작했다.
“황종연과 이흥수는 이름난 의학교수 정규상과 전 현을 영도하던 노간부들을 여지없이 박해해 돼지 똥을 모으지 않으면 밭에서 기음을 매게 강요했습니다. 장기적으로 간음하려는 더러운 야욕을 채우지 못하게 되자 한평생 무대에서 활약하던 유명한 무용수를 세상에 몰아도 보지 못한 소 수레를 몰고 옥수수를 실어들이게 했습니다. 위생소 위생원 자리로 여성들을 유혹하고 노동개조를 빌미로 강요하기도 하면서 더러운 야욕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당원 간부로서, 또 대대의 치안을 책임진 치보 주임으로서 이흥수는 암암리에 지주의 딸과 간통하고 강간과 간음을 일삼았습니다.”
상순이 이흥수와 황종연을 손가락질하며 “이흥수도 인간입니까? 저런 자가 당원간부입니까?”라고 소리치자
군중들은 “개새끼다!”라고 소리쳤다.
“이흥수는 산아제한을 책임진 간부로서 딸 해월과 지주 아들 충국과 결혼등록도 하지 않고 간통해 애까지 낳게 했습니까? 이흥수는 정책관념이 있는가?”
흥수는 어찌나 당황했으면 말상은 찌그러지고 우묵눈은 감겨졌다. 박죽코는 거매지고 부르튼듯한 두툼한 입술은 거마리 매달린 같은데 썰어내면 한접시는 실히 될 것 같았다. 더구나 한심하게도 바지 밑으로 누런 오줌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전에 충국의 동생 장미련이 경주의 애를 가졌다고 수술 칼로 수술해보려고 미쳐 날뛴 자입니다. 이게 검정개 돼지 흉을 하는 게 아닙니까?”
“옳습니다.”
“사람을 물러 드는 똥개입니다.”
상순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길로 이흥수와 황종연을 무섭게 쏘아보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흥수와 황종연은 문화대혁명 시기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며 무섭게 정치반란의 칼을 휘둘러 무고한 노간부들을 타도하고 정권을 찬탈해 게바라 올랐습니다. 무고한 백성들을 짓밟고 더러운 야욕을 채우려고 미쳐 날뛰며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역사는 무정합니다. 정의는 승리하고 범죄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하는 법입니다. 당과 인민의 역사적 죄인 황종연과 이흥수는 마땅히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계삼은 상급 정법부문의 처분결정을 공포했다.
“황종연과 이흥수는 당과 인민에게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저질렀다. 상급 당위와 정법 부문의 결정에 따라 반당, 반혁명분자, 반란 파 두목 황종연의 공사 혁명위원회 주임 직을 철직시키고 영원히 공산당 조직에서 출당시키며 정법기관에 넘겨 형사 죄를 철저히 조사해 법에 의해 처리한다.
반당 반혁명분자, 반란 파 두목 이흥수를 영원히 출당시키며 대대 혁명위원회 주임, 치보 주임 직을 철직시키며 정법부문에 넘겨 죄상을 철저히 조사한 후 법에 의해 처리한다.”
모두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저 놈들을 총살해야 한다!”
격분된 군중들은 흥수와 종연에게 주먹을 내휘두르며 고함쳤다.
복직된 허영호 소장은 민병들과 경찰들을 지휘해 황종연과 이흥수를 결박 지어 찌프에 싣고 대회장을 떠나 천수해 쪽으로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달려갔다.
뒤이어 허영주 부 현장이 직접 노 간부들을 해방시키는 상급 당위의 결정을 공포했다.
“억울하게 우파, 반혁명분자 모자를 쓴 이계삼, 허영주, 허백호, 김진욱, 한영수, 박영발, 박윤희, 정규상, 김송선 등 노간부들의 억울한 루명을 몽땅 벗겨 해방시키며 적당한 직위에 복직시킨다. 이미 세상을 떠난 박성근 동지와 조선에 나간 항일투사 진달래 중대장,그리고 오옥선 교원의 억울한 우파 모자와 누명을 몽땅 벗겨주며 해방시킨다. 마반산집할머니는 일제시기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조선 우시장위안소와 만주 진수해위안소에 끌려갔으며 신경과 봉천, 북평, 무한 등지까지 끌려가 갖은 릉욕을 다 당하였다. 그는 일본놈들과 전쟁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억울한 매국역적과 매민족반역자란 억울한 모자를 쓰고 투옥됐었다. 마반산집할머니의 억울한 모자를 벗겨준다. 그에게 억울한 모자를  씨운 반란파 두목 김용만과 황종연, 리흥수는 마반산집할머니에게 억울한 모자를 씌운 범죄자들로서 엄정히 처단해야 한다."
   사람들 속에서 춘실도 진수해위안소에 끌려가 억울한 릉욕을 당한 일과 녀동생 은실을 생각하면서 손으로 비분에 찬 눈물을 닦았다.
허영주 부현장은 계속 상급당위의 결정을 공포했다.
"과거를  ‘문화대혁명’시기 이흥수 반당노선과 맞서 견결히 투쟁한 함흥대대 당지부 노서기 김상순 동지를 중공 함흥대대 당 지부 서기로 임명한다.”
우레 소리와 같은 박수갈채가 장내를 진동했다.
이때 민경들과 민병들이 대대 사무실에서 그간 이흥수와 황종연이 조작한 노간부들의 이른바 검은 자료를 여섯 마대나 내다가 무져 놓고 석유를 치고 불을 콱 질렀다.
순간 삼단 같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 높이 타래치어 올라가는 시꺼먼 연기를 쳐다보며 노 간부들은 하늘이 날아날 지경으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규상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시뻘겋게 타버리는 자료더미를 쏘아보며 치를 떨었다.
(내가 한뉘 무슨 말을 저렇게 많이 했다고 숱한 자료를 했어? 한심한 일이었구나. 사람을 잡자니 못한 짓이 없었구나. 나쁜 놈들! 이 놈의 세상에 깊고도 어두운 동굴이 있었구나. 어쩜 20여년이나 기어서야 오늘 어두운 동굴을 헤쳐 나와 해 빛을 다시 보게 됐구나. 사람의 한뉘에 20년이 몇 번이나 있는가? )
이때 허백호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군중들 앞에 나서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위대한 중국 공산당 만세! 만만세!”
노간부들을 비롯한 군중들은 허백호를 따라 구호를 외쳤다.
“아하하하, 난 오늘에야 해방됐단 말이야! 하하하하.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흥수, 이놈, 널 입당시킨 내가 눈이 멀었지. 어허헉, 헉, 헉. 네놈은 천벌을 면치 못할 거야.”
허백호는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치며 비틀거리더니 상순을 붙안고 대성통곡쳤다.
“상순이, 흥수 편에 서서 자네를 해친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지 마오!”
상순은 허백호 서기를 부축하며 위안시켰다.
“허서기, 웬 말씀입니까? 우린 오늘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허허허허. 승리했소. 우린 승리했소. 승리…”
갑자기 허백호는 뒤통수를 붙잡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허 서기! 허 서기!”
허나 허백호 서기는 게거품을 물고 까무러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정규상이 황급히 뛰어와 상순의 품에 안긴 허백호의 손목을 잡고 진맥해보았다.
“아차, 중풍을 맞았소.”
상순은 민병들 속에서 성욱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빨리, 손잡이트랙터를 몰아오라!”
성욱은 집안 집 할아버지 상순의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조개덕으로 종주먹을 쥐고 뛰어갔다.
이윽고 성욱이가 손잡이 트랙터를 통통통 몰고 달려왔다. 상순은 눈물이 글썽해 허백호 서기를 업어 손잡이 트랙터에 실었다. 그때 허영주가 대대 위생소에 뛰어 들어가 침대에서 요와 이불을 안고 나와 손잡이 트랙터에 폈다.
규상과 상순이 그 위에 허백호를 눕혔다.
허백호 서기는 거품을 물고서도 기쁨에 겨운 미소를 지은 채 상순의 품에 안겨 손잡이 트랙터에 실려 진수해 병원으로 통 통 통 달려갔다.
맑은 하늘에 구름송이들이 바람에 동으로 흩날려 가고 있었다. 한 많은 하늘땅이 서서히 노호하고 있었다.
먹장구름이 덮쳐오더니 번개가 번쩍였다.
꽈르릉 꽝!
천지를 진동하는 봄 우레 소리가 울리더니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 허백호가 덮은 이불을 사납게 때렸다.
상순은 자기 몸으로 허백호의 위를 가리었다.
맑은 하늘에 뜬 커다란 먹장구름에서 떨어지는 비를 막을 길이 없었다. 허나 우르릉 거리던 하늘이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다. 손잡이트랙터가 달리는 길옆의 물기를 머금은 버드나무 가지들이 오동통한 버들개지들을 업고 사납게 불어치는 바람에 설레고 있었다.
             
             5.흉수의 그림자


      먹장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해 빛이 대지를 비추었다. 먹구름이 감돌던 하늘에는 꽃구름이 둥실 뜨고 만물이 기지개를 켜면서 새 싹이 뾰족뾰족 돋아나고 있었다.
조무래기들은 손칼이랑 나무꼬챙이를 가지고 조개덕의 양지바른 둔덕에서 오구작작 모여들어 나물을 캐 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상순의 포치대로 가대기랑 호리랑 창고에서 내리워 손질해 가지고 밭갈이를 나갔다.
그들의 머리 위로 봄을 알리는 제비들이 하늘하늘 날아다닌다. 제비들은 강변에서 진흙을 물어다 지붕과 처마아래에 둥지를 틀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직 초봄이어서 논밭을 깊게 갈수 없었다. 보습 날이 얼어붙은 논바닥 밑으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소가 끄는 보습 날은 언 논바닥 위로 더 잘 미끄러져 나가 밭갈이를 하는 농부들의 기분이 적이 좋았다.
갓 갈아엎어놓은 번뜩번뜩하는 흙덩이들 속에서 흙냄새가 풍겨 올라 코를 찌르며 새해 풍년을 희망하는 상순의 가슴을 사뭇 부풀어 오르게 했다. 저쪽에서는 강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이 패용천산과 칼산 상공을 헤가르며 끼룩끼룩 줄을 지어 훨훨 나래치고 있었다. 진짜 봄을 알리는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았다.
상순은 밭갈이를 하면서도 마을에서 일어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한숨만 자꾸 나왔다.
허백호 서기는 억울한 모자를 벗기고 명예를 회복해주자 너무 기뻐 뇌출혈까지 했다.  공사 병원에 실어갔지만 며칠 안 돼 사망하고 말았다. 게다가 충국이 무슨 감투끈인지 모르게 불시에 죽었다.
상순은 충국의 죽음에 의심이 부쩍 들었다. 젊어서 다년간 공안국 국장 사업을 해 온 그는 숭길과 허동원이 찾아와 충국의 시체에 피가 묻어있더라고 한 말을 그저 스치고 지나갈 수 없었다.
밭갈이를 떠나기 전에 집안 집 손자 성욱마저 찾아와 말했다.
“벽돌공장 당직실에 피비린 냄새 물씬 납디다. 충국의 시체 외에도 덮고 쓰러진 북데기와 벽에도 피가 묻어 있습디다. 지어 바지에도 피가 묻어있습디다.”
상순은 자기가 아껴온 집안 손자 성욱이 불쌍했다. 덕돌처럼 대학에 가지 못하고 아직도 농촌에서 회계 따위나 하면서 흥수와 계급투쟁을 하자고 이를 악물고 달아 다니는 것이 가련했다.
“얘, 넌 이젠 마을 일에 작작 삐치고 공부나 해서 덕돌처럼 대학에나 가라!” 그 말에 성욱은 뒷덜미를 쓱쓱 긁었다.
“대학에 어디 아무나 갑니까?”
사실 성욱은 덕돌을 질투해 옥신각신 싸워왔지만 할아버지 벌 되는 상순은 아주 존경했다. 그가 아무리 덕돌을 헐뜯어도 상순은 넓은 마음으로 그를 아껴주었던 것이다. 상순은 사실 자기 아들은 소몰이를 시켰지만 성욱에게는 회계와 손잡이트랙터 운전수를 시켰던 것이다. 아무리 덕돌과 싸워도 상순의 그 점만은 성욱은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순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런 내색을 내지 않았지만 밭갈이를 하면서도 흥수를 의심했다.
(가능하게 충국을 놔뒀다간 해월을 계속 짓밟고 동네 창피하니깐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허나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충국이 해월을 희롱해 눈꼴사나워도 치보 주임이란 사람이 살인까지 한단 말인가? 지주라고 해도 살인하면 총살당한다는 간단한 도리도 모를 수야 없겠는데. 황차 당 중앙에서는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틀어쥐던 데로부터 경제건설을 중심사업으로 틀어쥐라고 하면서 전국의 지주와 부농의 모자를 다 벗겨주었고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지시하지 않았는가? 흥수는 끝장났다. 만약 충국을 살해했다면 흥수는 …)
“와-”
순간 상순은 밭갈이하는 소를 멈추었다.
그는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말아 붙여 물고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들였다가 후 내 뿜었다.
비록 흥수와 정치상에서 모순은 있었지만 상순은 흥수가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는 싫었다. 아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허나 어쩐지 충국의 죽음이 동상이나 자살로는 생각되지 않고 피살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던 것이다.
밭갈이를 마치고 혹달개소를 풀어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계속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조선에서 조카 동선한테서 편지가 날아왔다.
상순은 소 채찍을 벽에 걸어두고 바삐 신을 벗고 명옥한테서 편지를 받아 바삐 훑어보았다.

존경하는 삼촌, 그간 안녕하십니까?
삼촌댁과 동생들은 모두 무사합니까? 덕돌은 이젠 어엿한 청년이 다 됐겠구나. 그간 삼촌일가에 구체 사항이 있어 편지 한 장 제때에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간 삼촌 일가에서 저의 어머니로 해 수고 많았습니다.
칠순고개에 오른 어머니를 만주벌에 남겨두고 조선에 나와 버린 이 도리깨아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저는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간부 일을 보는 노 항일투사 최진달래 큰할머님의 도움을 받아 항흥역 화물처에서 처장 사업을 줄곧 해왔습니다. 만주에 있을 때 신문사에서 교정을 보던 류정자와 결혼해 딸 애숙이, 애화에 그 아래로 아들 성국이, 성일이, 성춘이 셋이나 줄줄 낳았습니다. 애들이라도 많이 낳아 장차 그 애들끼리라도 조선에서 거래하면서 살라고 많이 낳았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국경을 사이 둔 삼촌과 춘자를 비롯한 여동생들과 덕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덕돌은 이젠 어엿한 청년으로 됐겠구나. 물론 애 때부터 총기 좋던 덕돌은 이젠 대학으로 갔겠지? 얼굴도 보지 못한 이 형님은 네가 퍽 보고 싶구나.
삼촌, 여기 나온 친척들과 항일 노 투사들은 모두 나라 덕분에 잘 보내고 있습니다. 진달래큰할머니가 조선에 데리고 나온 둘째아들 상주도 조선로동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의 현명한 령도아래 잘 나가고 있습니다. 상주의 원래 이름은 경수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조선특무 용천의 아들 경주의 이름자 "경"자를 따르지 않느라고 "상주"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상주는 평양에 가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3대혁명붉은기소조" 소조장으로 돼 잘나가는 정치인물이 됐습니다. 가능하게 함경북도 쪽으로 나가서 어느 군 당위 위원장쯤은 할 것 같습니다. 그저 조선전쟁에서 희생된 성칠 큰할아버지가 불쌍하고 그립습니다. 큰할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함경북도 도당위원회 위원장쯤은 할 뿐이 아닙니까?
    항일 로 투사 은녀 아주머니는 지금 함경북도 한 군에서 부녀사업을 하고 있고 아들도 청진시 한 대학을 졸업하고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근심 없이 보냅니다. 만주에서 우파로 몰리어 갖은 투쟁을 다 받아온 오옥선 선생도 여기 와서 보통 중학교에서 교장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중국에서 우파요, 조선특무요 하고 몰려 투쟁받던 분들은 조선에 나와 모두 잘 됐습니다.
삼촌, 그간 제가 나라에 말해서 중국에 홀로 남겨둔 어머니를 모셔오자고 제기했습니다. 효성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저의 효성에 감복돼 요구를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 외교부를 통해 중국 외사부문의 동의를 거쳐 어머니를 조선에 모셔 내오기로 됐습니다. 그간 삼촌일가와 여동생 순애가 어머니를 모시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삼촌, 옥체 건강하게 오래오래 앉으십시오.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상순은 오랜만에 하나 밖에 없는 조카의 편지를 받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친 혈육의 정은 말리지 못해.
형수를 조선에 내 보내야 하는 순간 상순은 굵다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물론 상순은 큰조카 공혁이 못쓸 부스럼 병에 세상을 떠나가고 동선마저 조선에 나간 후 외롭게 사는 형수를 생각해 집 이영도 해마다 이어드리고 땔나무도 실어주고 했지만 어쩐지 아주머니에게 효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조카들이 다 떠나가고 아주머니까지 조선에 돌아가게 되자 상순은 외롭고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상순은 아내와 토론하고 옷감 세벌을 떼서 조선에 나가는 형수에게 드리기로 했다.
형수가 떠나가는 날 상순은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 변 해관 앞에서 형수의 손목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형수님, 이제 가면 언제 만나겠소? 부디 조선에 가서 옥체 건강히 보내오.”
지새금은 말라 생강 같은 손으로 상순의 얼굴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었다.
“생원이, 그간 나 땜에 수고 많았소. 산 사람이 갈라져도 만나겠지. 난 아들의 효성을 받으러 가니까 좋은 길에 근심하지 마오.”
“예. 예.”
상순은 눈물을 흘리며 형수와 이별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덕돌은 “이제 큰어머니 가면 언제 보겠습니까? 이 조카의 큰 절을 받으십시오.”라고 하며 산이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넙죽 절을 올렸다.
고모사촌 최해옥 누나는 옆에서 보다가 “덕돌은 언제나 보면 어른스럽단 말이오.”라고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명옥은 지새금과 옥신각신 다투며 살아왔지만 미운 정 고운 정 그래도 동서간이라 헤어지게 되자 섭섭한 감정을 모두 잊어버리고 석별의 정을 금치 못했다.
상순은 두만강 저쪽으로 넘어가는 형수를 바래면서 흐느껴 울었다.
아, 두만강이어, 눈보라치던 엄동설한에 형님의 지게에 앉아 두만강 얼음우로 만주벌에 들어서던 일이 어제 그제 일같이 눈앞에 선하지 않는가! 그런데 오늘 또 형수를 피 눈물이 흐르는 이별의 강-두만강을 넘어가게 해야 한단 말인가!
상순의 가슴속에서는 이별의 피눈물이 사품 치며 흐르는 두만강의 푸른 물처럼 굽이쳐 흐르고 또 흘렀다…
형수를 조선에 보낸 후 상순은 아무래도 흥수의 살인혐의를 물리칠 수 없어 정식으로 파출소에 찾아가 신고했다.
복직된 허영호 소장은 상순의 신고를 듣고 뜨거운 물주전자를 들어 상순에게 뜨거운 물을 컵에 부어드리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김 국장의 말씀에 도리가 있습니다. 흥수는 충국이 자기 집에 드나들면서 해월을 희롱하는데 악감을 품었을 수 있습니다. 동네 창피해 살인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이건 추측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살인증거를 수집해야 하겠습니다.”
상순도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그 생각을 했네. 살인증거가 없이 어찌 살인죄를 해명하겠소?”
뒤이어 상순은 그간 자기 고안해낸 해명수를 말했다.
“우선 충국의 시체를 파내 살펴보면 모든 게 해명될 게요. 대퇴골에 상처가 없는지? 술을 많이 먹거나 추위에 얼어 죽을 수는 없다고 보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미 봄이였소. 그보다도 더 추운 엄동설한에도 충국은 벽돌공장 당직실에서 얼어 죽지 않았소. 그런데 봄에 얼어 죽었겠소. 분명 어데 맞아 죽은 거 같소. 북데기와 당직실 벽에 피가 여러 곳에 묻어 있었다오. 그리고 바지 괴춤에도 피가 발리어 있었다오.”
허영호 소장은 그 자리에서 현 공안국 김창남 국장에게 형사 수사 일군들을 보내 사건을 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오후에 찌프 두 대가 함흥 촌에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달려왔다.
김창남 국장과 허영호 소장은 수사 일군들을 데리고 대대 사무실에 와서 당 지부 서기 겸 치보 주임인 상순을 만나본 후 마을의 증인들인 성욱과 허동원, 숭길과 함께 찌프에 앉아 충국의 시체가 매장된 장개골 안으로 곧추 달려갔다.
김창남 국장은 반란 파 두목 김용만이 국장에서 철직돼 감옥으로 들어간 후 국장으로 제발됐고 허영호 소장은 황종연이 철직돼 감옥에 간 후 소장으로 다시 복직됐던 것이다.
10분도 되지 않아 장개골 안 막바지 밑으로 해 찌프들이 멈춰 섰다.
“충국의 시체를 묻은 곳이 어딥니까?”
창남의 물음에 숭길과 성욱은 거의 동시에 잔설이 뒤덮인 장개골 안 막바지 둔덕아래 얼음 강판 쪽을 가리켰다.
“허, 이상하다. 어째 여긴 아직도 눈과 얼음이 녹지 않았지?”
김창남 국장은 모자를 벗어 쥐고 희슥희슥한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시체를 파묻은 곳을 둘러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숭길과 성욱은 상순과 함께 충국의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깐 후 시체를 파냈다. 겨우내 얼음 위에 산골의 샘물이 흘러내리면서 시체 위는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었다. 얼음 밑 샘물에 젖은 흙도 떵떵 얼어붙어 있었다.
놀랍게도 건치를 풀고 충국의 시체를 보니 꽁꽁 얼어 있지 않겠는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요? 시체가 썩지 않고 언 채로 있다니?”
상순은 충국의 일그러진 낯을 보더니 숫구멍으로부터 머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거 보오. 숫구멍에 무슨 둔기에 얻어맞은 상처가 있소.”
수사 일군들이 확대경으로 때와 피가 덕지덕지 묻은 머리를 찬찬히 살펴보니 두피가 무엇에 강하게 얻어맞아 터진 타박상처자국이 남아 있었다.
수사 일군들은 충국의 머리 상처자국을 카메라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바지에는 아직도 얼어붙은 피고드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수사 일꾼들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연이어 샷타를 눌렀다.
그들은 불을 피워 얼어붙은 바지를 녹인 후 조심스레 벗겨냈다.
“아니, 이게 뭔가!”
수사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글쎄 충국의 고환이 둘 다 없어지지 않았겠는가!
“정말 악한 놈이 한 짓이구나. 고환까지 빼가다니!”
김창남 국장은 치를 떨었다.
수사일군들은 녹은 시체에서 흐르는 충국의 혈액을 채취해내고 머리카락을 몇 오리 뽑아냈다. 이제 공안국 과학수사 실에 가져다 혈형과 DNA를 분석할 판이었다.
허영호 소장은 상순과 김창남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꼭 이 고환을 염오하거나 거시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자의 변태적소행입니다.”
상순은 김창남 국장과 허영호 소장을 한쪽으로 불러다가 자기 견해를 나직이 말했다.
“내 보건대 이건 흥수가 범행했을 혐의가 크오.”
창남 국장과 허영호 소장은 동시에 상순의 세 귀 눈을 쳐다보았다.
“충국은 평소에도 흥수네 고방에 기어들어 해월과 그런 관계를 했소. 그러니까 흥수가 동네 창피해 충국이 다신 해월한테 달려들지 못하게 불알을 베 버렸을 수 있소.”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창남 국장은 연세가 들었지만 아직도 예리한 분석을 하는 옛 상전 상순을 속으로 경탄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흥수를 나포해 심문하는 한편 그가 충국을 때려죽인 흉기와 증거를 확보해야 하겠습니다.”
허영호 소장과 창남국장은 찌프를 타고 즉시 감옥에 돌아가서 흥수를 끌어내 직접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흥수, 무슨 죄를 졌는지 아는가?”
흥수는 실눈을 힐금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뻔뻔스레 떠벌였다
.“무슨 죄 있어? 난 위의 지시를 집행했을 뿐이야. 네깐 놈들이 뭘 알아 그래? 정치란 10년에 한 번씩 물곬을 바꾸는 법이야.”
“닥쳐! 누가 장충국을 살해했는지 잘 알지?”
“탄백하라!”
흥수는 덴겁하다가 인차 침착성을 회복했다.
“아니, 지금 누구한테 똥바가지를 씌우려고 들어? 난 충국을 살해한 적이 없어!”
아무리 심문해도 흥수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살인증거를 쥐지 못한 이상 더 용빼는 수가 없었다.
수사 일꾼들은 김창남 국장의 지시에 따라 상순과 함께 흥수네 집을 발칵 뒤지면서 흉기를 찾기 시작했다.
상순은 구새 목의 벽을 살피다가 처마 밑에 걸어놓은 호미에 눈길이 멎었다. 그는 호미를 벗겨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호미 날이나 호미 등에는 아무런 피 흔적도 없이 말끔했다. 상순은 호미를 되걸려다가 호미자루를 살피다가 피뜩 벌건 피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거다!”
흥수가 샘물에 가서 호미 날과 등은 말끔히 씻었지만 호미자루의 피는 스며들어 씻지 못했던 것이다.
수사 일군들은 즉시 호미를 찌프에 실었다.
이때 해월이 집에서 뛰쳐나와 덩실덩실 춤을 춰댔다.
“경찰이 다 우리 집에 왔다. 아하, 재미있다야.”
상순과 수사 일꾼들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집 울안에서 나왔다.
해월은 뒤에서 도라지를 추면서 횡설수설했다.
"경찰아저씨, 가지 마세요. 우리 아빠 건달입니다. 우리 아빠 미련 아줌마 하고 날마다 씹을 했다. 애기까지 낳았다. 초롱에 넣어서 던졌다. 헤헤헤.” 
수사 일꾼들은 해월의 아래 위를 훑어보고 상순에게 물었다.
“저건 무슨 말입니까?”
“저 애는 정신이 좀 나갔소. 허나 흥수가 미련을 간음한 일은 사실이오. 애를 낳았을 수도 있고.”
사실 흥수는 미련을 오랫동안 간음해 임신까지 덜컥 시켰던 것이다.
뒤늦게야 알게 돼 겁을 집어먹은 흥수는 미련의 집을 찾아가 불룩한 아랫배를 보자 전기에라도 붙은 듯이 덴겁했다.
“아니, 이 년아, 어데 가서 바람을 피워 애까지 가졌어?”
“더 물어서 아오? 당신 애요. 적반하장이라고 도적놈이 ‘도적이야’ 아니야? 불 지른 놈이 ‘불이야!’…”
“닥쳐!”
미련이 뭐라고 계속 말하려고 하자 흥수는 손으로 미련의 입을 틀어막으며 바깥에 누가 오지 않는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이년아, 넌 두렵지 않아? 경주가 남조선에 달아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가지 않았느냐? 나그네도 없는데 어떻게 임신했냐? 동네 부끄럽지 않니? 유산해야 해!
미련은 흥수의 손을 쥐어 뿌리쳤다.
“위선자! 네놈도 치보주임이냐? 난 네놈을 쫄딱 망신시키겠다! 네놈의 죄악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 죽여치우지 못하는 게 한이다! 이 원수 놈아!”
흥수는 당황해 미련을 구들바닥에 깔고 들어앉아 벽 밑에 있는 이불을 들씌웠다.
(이년을 이대로 뒀다간 개꼴망신당하겠다. 당장 손을 쓰지 않다간 안 돼!)
흥수가 미련에게 어떻게 손을 쓸 까고 궁리했다. 흥수의 메마른 엉덩이 밑에서 미련은 단말마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발악했다. 그녀는 흥수가 자기를 딱 죽일 것만 같았다. 겨우 이불 밑에서 입을 내민 미련은 숨을 바삐 몰아쉬며 소리쳤다.
“사람 좀 살려다오! 유산할 게.”
“정말 내 말을 들을 테야?!”
“그래. 유산할게.”
그제야 흥수는 미련을 놓아주며 엉덩이를 들었다.
“네 여기 가만있어라. 내 널 유산시킬 때까지.”
흥수는 미련의 집에서 나와 토성 쪽으로 황급히 터벅터벅 걸어갔다. 정규상을 불러 유산시키자니 자칫 미련이 떠들면 발각날 것 같았다.
(어쩐다?)
한참 궁리하다가 그는 토성 안에 있는 위생소에 들어가 정규상한테 가서 수술 칼을 빌려고 했다. 허나 그때 위생소 안에 정규상도 박윤희도 없었다.
그 틈을 타서 흥수는 위생소 주사실에 들어가 수술칼을 하나 훔쳐냈다.
미련의 집으로 돌아온 흥수는 공포에 질린 낯으로 자기를 보는 미련을 슬슬 얼렸다.
“내 약을 가지고 왔다. 누워.”
미련은 흥수의 움츠린 손을 흘금거리며 눕는 수밖에 없었다.
흥수는 집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벽에 걸어놓은 각반에 가서 눈이 멎었다. 그는 각반을 벗겨내 일어나려는 미련을 깔고 들어앉아 두 손을 뒤로 꽁꽁 묶었다.
“왜 이래? 죽이자고 이래?”
“아니야. 네 배때에서 애를 꺼낼게. 이를 악물고 좀 참아라!”
“어떻게 꺼낸다고 이래?”
“걱정 마!”
흥수는 백정처럼 무섭게 미련을 깔고 들어앉아 미련의 배를 수술 칼로 째려고 들었다.
“앗!”
흥수는 미련의 웃옷을 훌 걷어 올리고 수술 칼로 배를 째려고 들었다.
“이러지 마! 애가 나올 거 같아.”
미련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소리에 흥수가 미련의 하신을 여겨보니 진득진득한 양수가 나오고 있었다. 애가 당장 나올 거 같았다.
그제야 흥수는 손을 떼고 미련의 하신을 살폈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해월이 들어왔다.
와들짝 놀란 두 사람은 해월을 보고서야 한숨을 몰아쉬었다.
“또 했소? 히히히. 시퍼런 대낮에 또 했어?”
“주둥이를 다물어!”
흥수는 해월을 붙잡아 앉혔다.
한참 후 미련의 하신에서 진짜 피 터지며 애가 나왔다.
“응아~ 응아~”
“해해해. 애기 나왔구나. 우리 아빠 정말 재간이 있어. 늙은 게 애기까지 낳았어. 이거 내 동생이야. 히히히. 불알이 달린 거 봐라. 얜 내 하구 충국이 낳은 아들의 삼촌이구나. ”
흥수는 바삐 해월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주둥이를 다물어. 누가 듣겠어.”
“응아~ 응아~”
흥수는 해월의 입을 막던 손을 떼 애기 입을 막았다. 그래도 안 되자 바깥을 내다보던 흥수는 애를 내려다 봤다. 고토리 달린 애가 너무나도 희구했다.
(야, 평생 아들, 아들 했는데 얘를 키웠으면 얼마나 좋겠니? 저 정신병자 해월을 믿고 어떻게 살겠니?)
허나 흥수는 인차 냉정성을 회복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지주 딸과 낳은 애를, 바람 써 낳은 애야!)
흥수는 이를 악물고 우는 애를 안고 부엌에 내려가 부엌아궁이에 넣을까 하다가 물 초롱이 피뜩 눈에 띄었다. 그는 제꺽 애를 물 초롱에 담아 바깥에 내가려고 했다. 애가 바둥거리며 초롱 속에서 손으로 뭔가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얼어 죽게 해야지.)
흥수는 애 목을 졸라 죽인 후 부엌아궁이에서 재를 파내 초롱에 마구 담았다. 구들에서 미련은 어린 애처럼 엉엉 울었다.
해월은 “아버지 정말 지독하다!”라고 떠들어댔다.
“주둥이 다물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흥수는 죽은 애가 든 초롱과 괭이를 들고 어둠을 타 장개골 안으로 향했던 것이다…

“붙잡아 가라. 우리 아빠 애기를 죽였어. 내 남동생을 죽였어. 붙잡아 가야해! 내 신랑 충국이 죽어서 나한테 오지 못해요. 헤헤헤. 난 하고 싶어 죽겠다. 우리 아비 정말 미워! 경찰이 어째 붙잡아가지 않아!”
상순과 수사 일꾼들은 정신병자 해월의 말에서도 흥수의 피의를 더욱 느끼면서 살인사건 현지 벽돌공장 당직실로 달려갔다.
당직실은 사원들이 창문과 문을 잘 손질해놓고 불까지 때 놓아서 들어가니 후끈후끈 했다. 그들이 벽을 살펴보니 정말 피 자국이 있었다. 수사일군들은 마른 피 흔적을 채집했다. 하지만 다른 물증은 얻을 수 없었다. 사원들이 북데기를 다 걷어 낸 데다가 구들바닥도 말끔히 손질하고 새 장판까지 펴놓았던 것이다.
당 날로 김창남 국장과 허영호 소장은 과학기술수사과로부터 호미자루의 혈흔과 충국의 시체 피의 흔적의 혈흔과 DNA는 일치하다는 화험 결과를 보고받았다.
혈흔의 DNA에 의해 과학수사를 하리라고는 오래 동안 치보 주임을 해온 흥수었지만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창남 국장과 허영호 소장은 흥수의 호미를 심문 실 사무 상에 꽝 놓으며 심문을 시작했다.
“흥수! 그래도 살인범행을 승인하지 않겠는가!”
“호미, 호미로 어떻게 내가 살인했다고 할 수 있어?”
허나 흥수의 정신방선은 철 같은 증거 앞에서 산산 쪼각이 나고 말았다. 그는 한나절도 뻗치지 못하고 자기 죄행을 시인하고 말았다.
“난 어시로 생겨 충국이 귀여운 딸 해월을 짓밟는 것을 차마 더 볼 수 없어 죽였다! 그 개 불알을 까버리면 끝난다고 생각했어? 허나 죽이까지 하려고 한 적은 없어! 개나 돼지도 불을 까도 사는데 죽을 줄은 몰랐어. 충국이 개 보다 못한 놈 죽어도 싸!”
창남 국장과 허영호 소장은 경멸에 찬 눈길로 흥수를 쏘아보았다.
“인민의 법률은 살인죄를 진 당신, 숱한 노 간부들을 박해한 당신을 호된 징벌을 할 것이다.”
흥수는 단말마적으로 수갑을 찬 손을 쳐들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난 목숨을 내걸고 해방전쟁과 토비숙청전투, 항미원조 전쟁에서 싸운 혁명전사야! 나를 총살해?! 어림도 없어!”
허나 수사 일군들은 쓴 외를 보듯이 쓴 웃음을 지으며 흥수를 철창 속에 처넣었다.
몇 달 후 반 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 시기 못 된 짓이란 못된 짓을 다하면서 로간부들을 박해하고 충국을 살해한 흥수는 인민법률의 호된 징벌을 받아 살인죄로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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