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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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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35)
2019년 09월 14일 10시 42분  조회:1300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5. 출렁이는 꽃서울

별들이 깜빡이는 밤에 명선은 동료 서넛과 함께 강릉의 지긋지긋한 건설현지에서  탈출해 서울에 들어섰다.
오색령롱한 불야성을 이룬 꽃서울의 야경은 진짜 황홀하였다. 깜빡이는  연분홍불빛은 외로운 나그네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야따, 술집에 가서 한잔 마시자.”
한 마을에서 온 정호가 고함치자 종길도 맞장구를 쳤다.
“맞어. 볼게 있어? 푹 마시고 보자.”
명선은 별로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별수 없이 술집에 묻어들어갔다.
명선은 지금도 한해 전에 밀입국하던 일을 생각하면 머리끼 곤두설 지경이였다.
그는 정호와 종길과 함께 야밤삼경에 한국 보스를 따라 대련 교외 해변가 어촌으로 갔다.
해진 검푸른 바다는 파도가 세차게 출렁이며 공포를 몰아왔다.
그들은 조마조마해 사처를 살피며 발판을 타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작은 기동어선에 올랐다.
한국 보스는 저금통장을 내밀었다.
“비밀번호를 대라고.”
명선은 어이없었다.
“아니, 아직 한국 땅을 밟지도 못했는데 비밀번호부터?”
한국 보스는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누가 선전도 안 받고 한국에 데려다줘?”
명선은 눈이 데꾼해졌다.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돈만 떼울게 아닙니까?”
“절대 그럴 수 없어. 저희 함께 배 타. 담보하고 한국 땅에 건네 줄테니까. 근심말라고.”
그제야 그들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보스는 핸드폰으로 자기 짝패들한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입금되는대로 메시지 보내.” 하고 지껄였다.
명선은 종길과 정호한테 한어로 말했다.
“보스를 놓치면 끝장이야.”
“이 놈을 딱 붙잡고 한국까지 가지 뭐.”
한국 보스는 입금이 확인되자 진짜 어선에 올라타는 것이였다. 그제야 명선이네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어선은 어둠을 타 똑딱거리면서 서서히 검푸른 파도가 사납게 치는 대련 항만을 빠져나갔다.
반디불 같은 어촌의 전등불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어선은 파도가 사납게 이는 시꺼면 바다에 들어섰다.
처음 먹물을 퍼부은듯이 시꺼멓고 끝없는 바다로 나간 광산이네는 갑판에 서서 공포에 떨었다.
“여보세요. 추운데 선창에 들어가 술이나 마십세. 술 마시고 한잠 푹 자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어.”
그들 넷은 선창에 들어가 물고기 생회 한사발을 달랑 올려놓은 나무상자에 둘러앉았다.
한국 보스는 술병을 들어 사발에 부어놓았다.
의심이 많은 정호가 한어로 중얼거렸다.
“술에 몽혼약이라도 탔는지 어떻게 알아?”
“보스가 먼저 마시면 마시지.”
명선의 말에 한국 보스가 희죽이 웃었다.
“좀 웃기지 말라고. 내 먼저 마시지.”
원래 한국 보스는 중국통이여서 한어를 다 알아들었던 것이다.
한국 보스가 술사발을 들어 꿀꺽꿀꺽 마시자 모두 허허허 웃으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한국 보스는 술이 얼근하자 말이 많아졌다.
“당신들, 사람 믿어야지. 절대 어진 농사군들의 돈이나 뜯어먹고 사는 놈 아니야. 난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보스 박기철이야. 이제 내 소개한 건설업체에 가면 진짜 한달에 100만원은 벌어. 인민페로 6천여원이면 어딘가? 한달에 중국 한해 농사 절반 벌면 안돼?”
90년대 초에는 6천원이면 천문수자였다.
그들은 술을 폭 마셨다. 뒤이어 긴장과 공포가 스르르 풀리고 대신 목돈을 거머쥘 희망과 피로가 반죽돼 몰려들었다.
밤도 깊었는지라 그들은 세찬 파도에 몸부림치는 선창에 내려가서 새우잠에 곯아떨어졌다.
“어서 상륙준비하라고.”
보스의 소리에 명선이랑 화닥닥 일어났다.
푸르른 바다 상공이 희붐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선은 어느새 한국 해만에 이르렀다.
이때 저쪽에서 쾌속정 한대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쏜살같이 덮쳐왔다.
“해경선이야! 어서 랭장고에 들어가 숨어!”
보스의 다급한 소리에 명선은 황급히 커다란 물고기랭장고 안에 달려 들어갔다. 종길은 커다란 플라스틱물통을 엎어 물을 와르르 쏟아버리고 그 안에 기여들어가 몸을 숨겼다. 정호는 부랴부랴 물고기통 안에 들어갔다.
해경선에서 헤드라이트가 새벽 푸른 바다를 누비며 덮쳐왔다.
“선장은 들으라. 어선을 멈춰세우라. 상선인원은 몽땅 손을 위로 쳐들고 갑판에 나오라.”
“만약 숨긴자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는다!”
경비정의 확성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명선이랑 어쩔가 망설였다.
그때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둘 밖에 없시우.”
“새벽에 뭐 한다고 나왔는가?”
“우리 어부들이야 어디 밤낮을 가릴 새 있시우? 물고기를 잡아야 연명하지요.”
“기다려! 수색해야겠어.”
“마음대로 하시우. 괜히 남의 고기잡이를 방해하지 말라우.”
드디여 경비정의 엔진소리와 물을 헤가르는 소리 점점 다가왔다.
물통을 뒤집어쓰고 숨은 종길은 심장이 두근두근 높뛰였다. 랭장고 안에서 명선은 추운 것보다도 한국행이 물거품으로 돼 몇만원을 떼울가봐 눈 앞이 캄캄해났다.
경비정이 멈춰서더니 해경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은 누구야?”
“전데요.”
“아니, 배 모는 사내를 묻는 거야.”
“오- 그 사람 벙어린데요.”
중국인 선장의 반벙어리 소리가 들렸다.
“고길 얼마 잡았어?”
“얼마 잡지 못했는데요.”
해경들이 갑판에 뛰여올라오는 소리인 것 같았다.
“끝장났구나.”
해경들은 어선조타실에 들어가 여기저기 들췄다.
명선은 숨을 딱 죽이고 귀를 도사렸다.
이윽고 해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민신분등록증을 휴대했지요?”
“네.”
“조타수는?”
“어어, 어어.”
“벙어리여서 말이 통 통하지 않는군. 이후부턴 주민신분등록증을 꼭꼭 가지고 와요.”
“어어.”
“새벽에 고기잡일 하지 말아요. 여긴 NLL과 가까워서 통제구역인데요. 번마다 왜 여기 와서 고기 잡아요? 안전에 주의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부르릉 부르릉.
경비정 엔진소리가 멀어져갔다.
그제야 명선이랑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한참 후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나오게나.”
“어, 살았다.”
명선은 랭장고에서 나와 희붐히 밝아오는 동녘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보스 박씨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빈정거렸다.
“혼났지?”
종길은 솜옷에 묻은 얼음쪼각을 털어버리면서 두덜거렸다.
“남은 심장이 다 밖으로 터져나올 번했는데 웃습니까?”
“이런 일 한두번 겪은 거 아니야. 겁쟁이들이라구야!”
명선은 어선을 둘러보면서 이상해 물었다.
“해경들 눈깔이 멀었어. 중국 어선도 발견하지 못해?”
박씨는 어선에 바꿔댄 한국 어선 번호판을 가리켰다.
“중국 바다에선 중국 어선, 한국 바다에 들어서면 한국 어선이지. 이젠 저 해경들도 날 면목 알고 있어.”
드디여 어선은 천천히 한국 어촌 해변가에 닿았다.
박기철은 주의를 주었다.
“이젠 한국 땅에 왔어. 다 잘 살자고 하는 노릇이잖아. 천신만고 끝에 왔다가 불법체류 딱지 딱 붙어 잡혀가면 얼마나 억울해? 이제부터 주의해야 해. 내 소개한 건축현장에 가서 시키는 일이나 꼽싹꼽싹 해. 누가 신고하면 강제출국당한단 말이야. 알았어?”
“예, 알았습니다.”
명선 등은 박씨를 따라 도적고양이들처럼 어선에서 내려 한국 땅에 살금살금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들은 박씨를 따라 처음에는 한국 강원도 강릉에 가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라는 리유로 한국인들의 기시와 갖은 릉욕을 다 받아야 했다.
명선은 경남이 또래 한국 애들한테 수모를 당하는 것이 제일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한씨라는 한국 청년애가 제일 밉게 놀았다. 고되게 일하고 맥이 없어 쉼에 엉덩이를 붙이고 좀 쉬려고 할 때마다 죄꼬만 애가 별 심부름을 다 시켰다.
“야, 담배 좀 사와!”
“야, 물 좀 퍼와!”
“이 떨거지야, 삽 주어 와!”
성이 꼭뒤까지 치민 명선은 죄꼬만 새끼를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보스 박기철의 말이 떠올라 그만두군 했다.
“건축현지에서 시키는 일이나 꼽싹꼽싹 잘하라고. 안 그러면 누가 신고하면 강제출국당한단 말이야. 알았어?”
(그래, 참아야지. 어떻게 하나 출국수속비를 다 물 때까진 참아야지.)
그렇게 2년 동안이나 참았다. 그간 건축현장에서 일해 겨우 출국수속비를 벌었다.
명선은 로임을 타자마자 정호와 종길과 짜고들었다. 그들은 한씨를 보고 술 사주겠다고 꾀여 음식점으로 데리고 갔다.
음식점에 가서도 한씨는 종놈을 부리듯 하려고 들었다.
“거지새끼들 술 따라!”
“누굴 거지라고 해?”
명선은 벌떡 일어나 단통 한씨의 멱살을 잡고 골받이를 떵 해놓았다. 한씨의 낯이 단통 쥐장마당이 돼버렸다.
“떨거지새끼, 감히 손을 대?”
“개새끼, 주먹 맛 좀 봐!”
종길과 정호까지 합세해 한씨를 죽탕이 되게 치고 밟아주었다.
한국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자 명선이랑 음식점에서 허둥지둥 도망쳐버렸다.
그들은 그 길로 서울로 뿔뿔이 도망쳤다.
그들은 서울에 올라와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한 보름 풍찬로숙하면서 지냈다. 보스 박기철을 다시 찾을가 하다가도 그만두었다. 그의 당부를 어기고 한씨를 패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필경 박씨와 강릉의 건축회사의 사장은 서로 아는 사이여서 뒤끝이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 주변 기중기가 매달린 건축현장을 보기만 하면 무작정하고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여러 건축현장을 찾아다니다가 끝내 한 건축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빚도 다 갚고 한달에 한화로 200여만원씩 벌게 되자 사내들의 마음이 이상하게 싱숭생숭해났다. 본능이라고 할가, 굶으면 밥을 먹듯이 젊은 지하철에서 녀자들만 봐도 가슴이 뭉클 하는 것이 이상야릇했다…
중국 땅에 남아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던 성숙은 어쩐지 남편이 간지 오래되여  그리워났다.
또 혹시 남편이 기생집이랑 많은 서울에서 외도나 하지 않는지 근심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꿈에 남편이 새파란 외간녀자들과 희희닥닥거리는 장면이 나타나군 했다.
그녀는 앓는 본가집 아버지를 병문안하러 왔다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남편이 근심스러워 울고 불고 했다.
“나도 한국에 가야겠어. 남편도 없이 혼자 농사짓기도 힘들지. 경남도 이젠  대학에서 색시감을 얻어놨지. 경춘도 대련외국어학원에 갔지. 내 무슨 혼자 농사를 지으면서 개고생하겠어.”
성숙이 두덜거리는 소리에 성호는 “경남의 녀자는 잘 이쁘오?” 하고 물었다.
“응, 순선이라고 부른다는데 경남과 한 학급 동창생이래. 대학교 문예위원인데 춤도 잘 추고 꽤 이쁘게 생겼더라. 경남은 뽈도 잘 차고 체육위원을 하다나니 서로 눈이 맞았대. 그런데 경남보다 한살 이상이란다.”
성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랑에 뭐 나이 문제요. 처녀 좋으면 좋지.”
“같은 김해 김씨란다. 다 쒀놓은 죽인데 이제 무슨 방법이 있니?”
전통을 중시하는 성호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성숙은 아들과 며느리감 자랑에 잠시나마 남편 근심을 잊은 것만 같았다.
“지금 애들은 부끄러운줄도 몰라. 여름방학에 처음 우리 집에 왔다가 어쩜 시퍼런 대낮에 그 짓을 하니? 에미 정지에 있는데 뒤방에서 그 짓이람? 너무 아짜아짜 해서 집에서 훌 나가 버렸어. 참, 우스워 죽겠다.”
성호는 그저 희죽이 웃었다.
영옥은 듣다가 웃기는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니? 결혼하기 전에 애를 가지면 좋다더라.”
“경춘이 좀 문제요.”
“어째?”
성숙은 궁금해 쳐다보는 성호를 보고 말했다.
“글쎄 한 학급에 다니는 한족녀자앤지 일본녀자앤지 친하는 모양이더라. 사진을 보니 곱긴 곱더라.”
“에이유, 애들 서로 좋아하면 다지. 지금 부모들이 어디 애들 혼인을 결정할 수 있니?”
“엄마는 그저 외손비들이 귀해 뭐나 다 좋다고 합구마. 전통혼인관이 다 무너지면 우리 후대들이 뭐 되겠는지 모르겠습구마. 어쩜 부모들과 사전에 토론도 없이 아무 애들하구 사귄단 말이요?”
성호의 말에 성숙은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저네 좋으면 다지. 애들 일을 너무 간섭해도 좋지 않지. 봅소. 둘째언니네 정춘의 혼인을 너무 간섭하더니 어떻게 됐습둥? 할빈 그 조선족녀자 얼마나 좋았습둥? 그런데 상해녀자와 결혼하지 않았습둥? ”
영옥은 성숙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상해처녀 너무나 곱더구나. 쯧쯧쯧.”
성호는 이전에 둘째누나가 정일 때문에 고민하던 일이 떠올랐다. 춘자는  둘째아들의 색시는 꼭 조선족녀자를 얻어주려고 대학교 때 동창생의 딸을 정일한테 붙여놓았다. 길림사범대학을 졸업했는데 키도 1. 60메터도 넘고 꽤나 곱게 생긴 대학생처녀였다. 처녀애는 량부모의 소개를 받고 상해에 있는 정일의 세집에까지 찾아갔다. 정일과 처녀애는 서로 만나보고 한 집에서 동거했다. 세상에 이상한 일도 다 있었다. 거의 한달 동안이나 한 침대에서 누워 잤지만 정일은 근본 처녀애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춘자는 처녀애 어머니한테서 그 말을 듣고 혹시 정일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지 않는가고 걱정했다. 성호한테 어쩌면 좋겠는가는 자문까지 한 적도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정일은 그 처녀애가 비록 대학졸업생이지만 너무나도 무지해서 장차 후대를 제대로 교양할 것 같지 않아 아예 다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진짜 현대판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처녀총각이 한달동안 한 집에서, 그것도 한 침대에서 자면서 그런 일을 한번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은 현실로 존재하였다. 참말 정일은 정직하고 참된 총각이였다.
성숙은 어머니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손을 잡고 간절히 말했다.
“엄마, 한국에 언제 갈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에 가깁소. 이제 막내딸이가면 언제 엄마를 보겠습니까?”
“저 앓는 아버진 어쩌느냐?”
정희가 나섰다.
“제가 잘 모시겠어요. 근심하지 말고 바람 쏘이러 갔다 오세요.”
성호는 엄마한테 나직이 말했다.
“엄마, 자꾸 여길가? 저길가? 하지 맙소. 그저 막내며느리를 믿고 여기 꾹 눌러 있습소. 괜히 아무데도 지긋이 있지 못하고 떠돌이를 하지 말고.”
“괜찮아. 우리 집에 영 모셔가는 것도 아니고 엄마도 좀 숨을 돌리고 좀 좋아?”
성숙은 기어이 팔순고개를 바라보는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단연히 한국행을 결심하고 여기저기 출국수속을 수소문했다. 두달 후 끝내 수속비 6만원을 낸 후 다른 녀성의 얼굴과 이름을 빌어가지고 한국으로 떠나게 됐다.
어머니를 모시고 성호네 집에 들어선 성숙은 성호를 붙잡고 대성통곡쳤다.
“내 꿈이 맞았다. 한국출국수속이 됐다고 우전국에 가서 나그네한테 전화했더니 뭐겠니. 나그넨 ‘한국에 나와 뭘해?’ 하고 퉁명스럽게 내쏘지 않겠니? 남 같으면 좋아서 어서 나오라고 하지 않겠니? 두번째 전화했을 때는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더라.”
성호는 성숙을 위안해주었다.
“누나, 괜히 매형을 의심하지 마오. 한국에 가서도 싸우지 말고 맞들고 벌어서 양로비나 준비하오.”
성숙은 눈이 데꾼해졌다.
“양로? 언제 양로준비를 다 할 새 있니? 당장 결혼할 황소 같은 아들 둘을 어쩌고? 집을 마련해야지. 혼수준비도 해야지.”
순간 성호는 작달막한 막내누나의 가냘픈 두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상상하고 누나 불쌍했다.
성숙은 심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처음 한국 인천국제공항으로 날아갔다.
남들은 출구에서 부부가 만나 얼싸 안고 춤을 출 지경이였다. 그러나 성숙은 위장신분증이 들통날가봐, 출입국검사에 통과하지 못할가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검사를 마치고 출구로 나갔다.
우두커니 서있던 명선의 얼굴에서는 반기는 표정을 찾아볼 길 없었다.
대신 볼멘 소리부터 했다.
“한국에 나와 뭘 해? 괜히 성가시게.”
“아니, 마누라 나오면 좀 좋아 그래? 손을 맞잡고 돈을 벌어 며느리 둘을 삶으면 좀 좋아서?”
성숙의 말에 명선은 짐을 챙기며 두덜거렸다.
“당신 나오는 바람에 세집을 잡아야지, 이것저것 갖추고나면 뭐가 남는다고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나 찬밥신세였다. 다정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성숙은 애써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고 무등 애썼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면 당연히 첫날밤이 화끈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명선은 세집에서 끌어안는 성숙을 밀쳐내더니 훌 돌아누워 코를 드렁드렁 고르며 자는 척하였다.
이튿날 남편이 건축현장에 나간 후 성숙은 세집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금목걸이를 발견했다. 꽤나 묵직하고 실한 금목걸이였다.
(이건 뭐야? 날 주자고 산 걸가? 그래, 이제껏 아들 둘이나 낳아 기르면서  고생했건만 금반지 하나 사준 적이 있나?)
성숙은 제나름대로 좋은 생각하면서 금목걸이를 건사하려고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어마나, 핸드폰을 두고 갔군.”
성숙은 핸드폰을 찾느라고 남편이 전화 하는가고 받았다.
“여보세요? 사랑해요. 명선씨, 뭘 해요? 호호호. 와이프 온다더니 벌써 푹 빠졌는가요? 왜 요즘 저를 찾지도 않는가요? 벌써 잊었나요?”
젊은 녀성의 목소리였다.
“아니, 뭘? 누굴 찾소?”
“아, 아니예요. 잘못 걸었어요. 미안해요.”
그 녀성은 인차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떤 년일가?”
성숙은 다시 그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야! 네 누군데 내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개쌍년이, 네년을 모를 거 같애. 바다 밑에 가서라도 가랭이를 찢어놓을테야!”
그녀가 욕설을 퍼부어도 상대방은 듣기만 하다가 이윽고 전화를 꺼버렸다.
성숙은 남편이 부쩍 의심이 들어 세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옷호주머니랑 이불이랑 서캐 훑듯 했다. 허연 이불 안에서 길다란 커피색머리카락이 나왔다.
“이놈 나그네새끼, 진짜 그 년과 살았구나.”
화장실에 나가 쓰레기통을 들추다가 월경대를 발견했다. 성숙은 기 딱 막혔다. 자기는 그게 간지 몇해 되지 않았는가.
“더러운 나그네새끼, 진짜 젊은 화냥년 맛보았어? 그러게 오랜만에 만난 조강지처도 랭랭하게 대했지.”
저녁에 명선이 돌아오자 대판 싸움이 붙었다.
성숙은 핸드폰을 활 팽개치면서 걸고들었다.
“더러운 나그네새끼, 서울에 나와서 잘했구나. 나보다 퍽 젊은 년을 끼고 실컷 살았지? 엉?”
그녀는 명선의 멱살을 틀어쥐고 대성통곡치면서 야단쳤다.
“뭐 어째 그래?”
꺽다리 명선은 작달막한 안해한테 쥐여흔들리면서 핸드폰을 빼앗다 싶이 채다가 꾹꾹 눌러보았다.
“무슨 큰 일 났다고?”
명선은 철면피하게 가랑잎을 들어 자기 눈을 가리고 “야옹”했다. 서울에 나와 몇해 있더니 제법 능청스레 연극을 놀줄도 알았다.
“모를 전화구만.”
“뭐? 모를 전화?”
성숙은 철면피하고 허위적인 남편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모를 사람이면, ‘사랑해요, 명선씨. 뭘 해요? 와이프 온다더니 벌써 푹 빠졌는가요? 왜 요즘 저를 찾지도 않는가요? 벌써 잊었나요?’ 이러겠소? 로실히 말해. 그 녀자와 언제부터 살았어?”
명선은 승인할 리 없었다.
“몰라. 왜 제 남정 이렇게 의심해?”
성숙은 피씩 코웃음쳤다.
“의심하지 않게 생겼어? 집에서도 이상한 감촉이 오더라. 자꾸 꿈에 웬 젊은 녀자가 너하고 다니는 게 떠오르더라. 30대 초반 키도 크고 예쁜 녀자더라. 너 정말 소원성취했겠다. 작달막한 녀자를 데리고 살다가 키도 훤칠하고 예쁘고 새파란 녀자 얻어 별재미 다 봤겠지. 이 세집에서 밤낮 딩굴었지?”
명선은 제쪽에서 억울하다고 씩씩거리며 맞장을 떴다.
“왜 이래? 서울에 와서 리혼이라도 하려는 거야? 당신 신경이 좋지 않구만. 전화 한통 때문에 생사람을 잡아먹을 예산인가?”
“리혼하면 했지. 두려워할 것 같애? 혼자라도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명선은 한발작 물러섰다.
“싹 걷어치워. 이제 며느리 삶아야겠는데 리혼은 무슨 리혼이야? 자식들 뭐라겠어?”
“당신도 자식 생각할 때 있어? 이걸 봐?”
성숙은 건사해둔 길다란 커피색머리카락을 쳐들어보였다.
“이건 뭐야? 분명 젊은 녀자 커피색머리카락이 아니야?”
명선은 그래도 발뺌을 하려고 들었다.
“쯧쯧쯧, 정신병 해도 한두가지 아니구먼. 어디서 그런 머리카락 주어다 야단이냐?”
“그래도 내 생사람을 잡는가? 어서 말해봐. 경과를 로실히 말하고 처자들의 처분을 기다려.”
“세집에서 작작 떠드오.”
명선은 세집 창문을 닫아걸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한국인들이 동네 복잡하다고 신고하는 날엔 둘 다 강제출국당한단 말이요. 숱한 돈을 팔고 왔다가 어째 본전도 못하고 쫓겨갈 작정인가?”
그제야 성숙은 그만두었다.
그녀는 금목걸이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명선이 어쩌는가 두고 볼 심산이였다.
이튿날 건축현장에 나가려고 할 때 성숙이 손을 내밀었다.
“당신, 핸드폰을 두고 가오.”
“왜?”
명선은 눈이 데꾼해졌다.
“또 그년과 련계 있는가 봐야겠소.”
“관두오. 팀장과 련계해야 일하겠는데 핸드폰 없이 어떻게 해?”
성숙은 핸드폰을 가지고 가는 명선을 더 붙잡지 않았다.
“저런 나그네를 보자고 숱한 돈을 팔고 한국에 왔어?”
그녀는 세집에서 섧게 울었다. 애들이 아니면 당장 리혼하고 싶었다…
몇해 후 성호는 관광하러 한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제주도와 경주, 대구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성호는 막내누나네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몇해만에 매형과 누나를 서울에서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간 날이 장날이라고 대살 같은 소낙비가 창창 쏟아졌다.
성호는 춤추는 꽃서울에서 홀로 안양으로 찾아가려고 나서니 모든 것이 어려웠다. 압구정에서 3호선을 타려고 했는데 지하철이 어찌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늘어섰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핸드폰도 없어 누나, 매형과 제때에 문의하고 갈 수도 없어 진짜 답답했다.
그는 술병이랑 약이랑 명태랑 넣은 무거운 트렁크를 촌스럽게 끌고 여기저기 물어서야 겨우 용산역에 가서 1호선을 탔다.
지하철에서 여기저기서 커다란 트렁크에 우산까지 들고 오른 중국인 성호를 기시하는 차디찬 눈길이 얼굴을 따겁게 찔렀다.
성호는 코웃음이 픽 나왔다.
안양역에서 내렸지만 누나네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성호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역광장을 내다보노라니 눈 앞이 캄캄해났다.
(매형이 집에서 쉰다니깐. 핸드폰만 있으면 련계하면 되겠는데.)
그는 역출구에 서서 역대합실 여기저기를 살폈다.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다.
혹시나 해 지나가는 숱한 한국인들과 “공중전화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말투만 들어도 중국인인 것을 알아차리고 차디찬 눈총을 보내면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뭐? 이러고도 한국이 례의지국이라구? 흥!”
성호는 별수없이 행인들과 묻기를 포기하고 두덜거리면서 짐을 끌고 역대합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샅샅이 살폈다. 진짜 아는 도적질은 해도 모르는 도적질은 못한다는 말이 맞았다. 숱한 행인들이 붐비는 대합실에서 어디 꼭 공중전화가 있으련만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그는 맥을 버리고 역 출구에 서서 멍하니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내다보았다.
“요놈의 짐만 없어도 우산을 들고 바깥에 공중전화 있는가 찾아보겠는데.)
참 안타깝기만 했다.
그때 성호는 옆에서 숱한 물고기드럼을 쥐고 팔면서 서성거리는 한 아줌마한테 시선이 멈춰섰다.
(순박해보이는 저 아줌마는 알려주지 않을가?)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그 아줌마한테 물었다.
“아줌마, 공중전화 어디 있는지요?”
성호는 극력 조선족이라는 렬등감을 감추려고 한국말씨를 흉내냈다.
그러나 아줌마의 귀를 속이지 못했다. 아줌마는 성호의 아래우를 훑어보면서 피씩 웃었다.
“중국 교포 아닌가요?”
“예, 맞아요. 공중전화로 매형을 찾아야겠는데요. 알려주세요.”
아줌마는 성호를 보고 일어나더니 “물고기드럼을 좀 봐줘요. 내 화장실 갔다와서 알려줄게요.”라고 했다.
공짜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계산이다. 장사군은 장사군이다.
“예. 그러죠.”
성호는 아줌마의 물고기드럼을 쥐고 멀쩡히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 아줌마가 화장실에 갔다가 허둥지둥 이쪽으로 돌아왔다.
“저 2층에 올라가요. 2층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어요.”
아줌마가 알려주는대로 2층에 올라가보니 확실히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어-휴- 살았다, 살았어.”
그는 이제 전화를 치면 매형과 누나와 만날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났다. 그런데  호주머니를 아무리 들춰도 동전 한푼 없었다.
그는 또 물고기장사아줌마한테로 짐을 끌고 돌아갔다.
“왜? 못 찾았어요?”
“아니, 동전 없어 못 쳤어요. 동전 좀 바꿔 줄래요? 전화 어떻게 치는지 알려줄 수 없어요?”
아줌마는 어이없다는듯이 입을 딱 벌렸다.
“아니, 멀쩡하게 생긴 사내가 전화 칠줄도 몰라?”
그래도 성호는 사람좋게 웃으면서 통사정을 들이댔다.
“좋아, 그럼 이 물고기드럼 사라고. 그럼 내 동전도 주고 전화 쳐줄게.”
이번엔 성호가 어이없어 입을 헤 벌리고 서 있었다.
“왜, 안돼? 누가 공짜로 전화 치는 거 가르쳐준대?”
이게 춤추는 꽃서울, 아니, 각박하기로 상상하기 어려운 한국 인심이였다.
“좋아요. 사죠.”
성호는 가릴게 없었다. 물고기 한드럼을 사고 동전도 500원짜리 10개나 바꿔 쥐였다.
(누나네 먹으라고 줄판이지.)
그제야 아줌마는 성호를 데리고 전화박스로 갔다.
성호는 아줌마가 가르쳐주는대로 동전을 전화통에 넣고 막내누나 성숙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구세요?”
“누나, 나요, 나, 성호.”
“아이구머니나. 네가 어떻게 왔니? 지금 어디 있어?”
“안양역에 있소.”
“그게 무슨 전화야?”
“안양역 2층 공중전화요.”
“응, 알았어. 지금 음식점에서 일하니까. 바빠, 매형이 오늘 소낙비 와서 건축현장에 가지 못했어. 전화해 마중 가라고 할게. 역에서 기다려라.”
“알았소. 기다릴게.”
성호는 감사해 아줌마한테 5천원짜리 지페 한장 쥐여주었다.
“감사해요. 아줌마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누날 만나지 못할번 했어요. 한국에 처음 왔는데요. 진짜 아줌마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한발작도 내딛기 힘들었 거요. 고맙습니다.”
“아니, 이래 되겠어? 고맙네.”
아줌마는 얼싸 좋다고 지페를 받아 넣고 물고기드럼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버렸다.
그런데 점심이 지나고 오후 세시까지 애타게 기다려도 매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성호는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매형한테 전화했다.
“오, 처남 왔어? 내 세집 말리느라고 나가지 못하는데 택시 잡아타고 오라고.”
“내 매형네 집도 모르고 어떻게 찾아가오?”
“왜 그리 촌스러워? 택시 타고 여기 덕천시장 입구까지 오라고. 그럼 내 마중 나갈게.”
“알았소. 내 당장 가겠소.”
성호는 택시를 타려고 짐을 끌고 소낙비가 창창 쏟아지는 바깥에 나왔다. 택시가 광장에 줄느런히 서 있었다.
성호는 녀택시기사가 모는 모범택시로 우산을 들고 짐을 끌고 다가갔다.
“택시 탈 수 있죠?”
그가 택시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오르세요.”
성호가 뒤문을 열고 짐을 올리려는 때다.
“아니, 젖은 짐을 좌석에 실으면 어떻게 해요?”
녀택시기사의 새된 소리가 들렸다.
성호는 “미안해요.”라고 하며 짐을 뒤에 실어놓았다.
성호가 택시 뒤좌석에 올라타자 녀택시기사가 핼끔 쳐다보았다.
“중국 동포군요? 봤지요?”
“뭘 말인가요?”
“모범택시예요. 택시료금 낼만 해요?”
“예. 아무리 중국조선족이라고 택시료금도 없는가 해요?”
“어디로 갈래요?”
“덕천시장 입구로!”
녀기사는 택시를 몰면서 도도거렸다.
“중국 조선족이죠? 택시에 타는 조선족 처음 보는데요. 지하철도 공짜로 타려고 출구를 기여나가는 중국아줌마들을 많이 봤는데요. 중국에서 생활하기 퍽 어렵지요?”
성호는 쓸데 없이 말씨름을 하기 싫어 입에 빗장을 꾹 지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중국엔 거지들도 많던데요. 살기 어려운 모양이지. 우리 한국에 와서 막일을 하는 걸 보면.”
“아니, 아줌마, 택시나 잘 모세요. 무슨 말이 그리 많아요?”
“어머, 큰소리 해요? 다른 중국인들과는 판판 틀렸네. 모두 불법체류해서 찍소리도 못하던데요. 누구한테 큰소리 빵빵 쳐요?”
“뭘? 난 중국에서도 한다하는 기자인데요. 과외로 택시업 보스도 해죠. 허나 손님과 문명하지 못하게 대한 적이 없어요.”
“그래요?”
“아줌마, 퍽 살기 힘든 모양이군요. 소낙비 쏟아지는 날에 차 운전하는 걸 보면.”
“이 손님 진짜.”
“안그럼 남편 잘 못 만났네. 요 죄꼬만 안양에서 마누라보고 택시 몰라고 하고. 자기는 술이나 처 마시고. 허허허.”
성호는 녀기사를 골려주고 반격을 가하면서 속이 시원한 감이 들었다.
“기실 우리 중국조선족들의 실제 생활수준은 여기보다 낮은 거 아니죠.”
“그럼 왜 여기 와서 더러운 일, 어지러운 일 다해요?”
“한화와 인민페 차이, 한국과 중국의 로임 차죠. 여기와서 한국돈을 벌어 중국에 가서 쓰면 엄청 돈을 남죠. 여기선 소갈비도 변변히 먹지 못하지만요. 우린 달마다 몇번씩 먹을 수 있어요. 이담 중국에 놀러오세요. 제가 소갈비 한대야 푹 삶아 대접해드릴게요.”
“호호호. 듣기만 해도 배 부른데요.”
“진짜예요. 중국에선 소갈비 한대야라야 한화로 4~5만원이면 실컷 되니깐요.”
“덕천시장 입구에 왔어요. 3천 5백 나왔네요.”
“이담 꼭 중국에 놀러 오세요. 중국에 와보지 못하면 한뉘 중국을 제대로 알 수 없어요.”
녀기사는 무안해 더 말하지 못했다.
(진짜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녀자라구야.)
성호는 코웃음을 치면서 택시에 내려 우산을 들고 짐을 챙겼다.
그는 여기저기 살피다가 소낙비를 피해 덕천시장 입구 부근의 한 약가게 앞에 가서 매형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해질 녘까지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려도, 지나가는 꺽다리마다 다 훑으며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애타게 눈빗질 해도 매형의 바가지처럼 길죽한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약가게에 들어가 전화를 빌어 칠가고 하다가도 오겠지 하고 온 오후 가게   앞에서 소낙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우산을 가졌으니 말이지. 큰 일 날  번했다.
그는 서울 깍쟁이들을 겪어보았는지라 괜히 전화도 빌어 치지 못하고 코를 떼우기 싫었던 것이다.
대살 같은 비가 창창 쏟아져 우산을 들었어도 바지가랭이가 다 젖었다. 가게들에서 우산을 들고 남의 가게 문  앞에 커다란 짐을 쥐고 서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입귀를 비쭉거리며 차디찬 눈길을 보냈다.
(매형은 웬 일일가? 안양역에 마중 나오지 못해도 문 앞에까지 온 날 마중하러 안 나와? 무슨 일이 생겼어?)
해는 져가고 소낙비는 창창 쏟아지는데 성호는 막연한 생각에 속이 재처럼 타버렸다.
(오늘 밤은 어데서 자야 하는가? 비 내리는 바깥에서 온 밤 기다릴 순 없는데. 비만 오지 않아도 하루밤 로숙해도 괜찮겠는데.)
그때 한 소녀애가 가게  앞을 지나갔다. 천진한 소녀는 별로 대가없이도 제대로 알려줄 것 같았다.
“여기 공중전화박스 어디 있어요?”
쌍까풀눈의 소녀애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여기 뒤로 가다가 오른손편으로 굽어들어 좀 가면 있어요.”
“고마워요.”
성호는 헛일 삼아 그 소녀애가 가리켜준대로 찾아갔다. 진짜 웬 상점 앞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이젠 살았다. 살았어.)
그는 호주머니에서 몇개 남지 않은 동전을 황급히 넣고 누나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나!”
“지금 어디 있어?”
“여기 덕천시장 입구요. 매형이 여기 와서 기다리라고 해서 온 오후 기다렸소.”
“뭐라고? 이 나그네새끼. 너 거게 까딱 말고 있어라. 곧 나갈게.”
5분도 되지 않아 누나와 매형이 우산을 들고 달려나왔다. 알고 보니 그 약가게에서 불과 100메터도 되지 않는 곳에 세집이 있었다.
(야, 어쩜 지척에 두고 중국 한끝에서 온 날 마중하러 나오지 않았을가? 화냥년과 논 일이 누나한테 들통났다더니. 내 오는게 달갑잖았는 모양이지. 진짜 색시 고우면 가시집 말뚝에 절도 한다더니 색시가 미우니 처남도 미운게지. 정말 야속해.)
성호는 그런 매형과 함께 마시자고 중국 소주병이랑 무겁게 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숱한 차를 갈아타고 온 것이 후회됐다.
그러나 그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코구멍 같은 세집에 들어가 앉자 다 젖은 트렁크에서 소주병이며 약이며 명태며 잣이며 버섯을 수태 내놓았다.
매형은 그제야 굳어졌던 낯근육이 좀 풀리는 상 싶었다.
열을 받은 성호는 아무 말도 없이 소주병을 들어 매형과 함께 애꿎은 술만 쭉쭉 마셨다.
이튿날 소낙비가 멎자 매형은 건축현장으로 일하러 나갔다.
누나는 매형의 허물을 들춰냈다.
“나그네를 보고 ‘그 녀자와 있은 일을 로실히 말해라. 그럼 량해하고 함께 살 수 있다고 했다. 안 그럼 리혼 밖에 없다’고 야단쳤어. 저 나그네 제대 지하철에서 그 녀자를 만났다고 해. 그날 그 녀자 짐도 들어주면서 면목익혔단다. 계속 1호선을 타고 다니다나니 눈이 맞았다는가. 말로는 세집까지 잡고 반년 밖에 살지 않았다고 하더라. 어쩌겠니? 젊은 남자 안해 없이 혼자 있으니까 한번 실수 했다고 량해하기로 했다. 애들을 보고 놔둔 거야. 그 일 생각하면 집에 돌아와 쿨쿨 곤하게 잘 때 식칼로 목을 썩 베 죽이고 싶더라. 애들 애비라고 놔뒀어.”
성숙은 성호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했다.
“절대 어느 형제한테도 말하지 말라. 창피해서 어떻게 사니?”
성호는 그제야 매형이 마중나오지 않은 진정한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전에 성호는 매형을 도와 그 큰 새 집 매질도 해주고 구들도 놓아주고 벼가을도 도와줬다. 하건만 어쩜 중국 한끝에서 온 처남을 소낙비 쏟아지는 가게 앞에 세워두고 온 오후 마중하지도 않는단 말인가? 그러고도 소낙비 와서 마중 못했다고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성호는 매형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그렇게 믿었던 매형이 원망스러웠다. 어쩜 덕대 같은 아들 둘이나 낳아준 조강지처를 배신하고 동물적인 정욕을 참지 못해 남의 젊은 색시와 세집까지 잡고 살을 섞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 이 세집에서 그 년놈들이 뒹굴었단 말이요?”
“아니야. 내 그 세집에서 눈에 불이 일어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이 세집 15만원 주고 새로 잡았지.”
성숙은 동생을 믿고 다 털어놓았다.
“금목걸이 말을 내지 않고 어쩌는가 기다렸더니 후에 로실히 말하더구나. 그 녀자한테 준 거라고. 그런데 내 온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세집에서 나가면서 그만 가지고 가지 않은 거 같더라. 나그네 주는 거 어찌 목에 칼이 걸리 거 같아 그걸 목에 걸고 다니니? 그래서 팽개쳤지.”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틀만에 성호가 집으로 돌아가는 전날 저녁에 매형 명선이 세집에 돌아왔다.
성호는 가까스로 격분을 누르며 술상에 마주 앉았다.
술이 서너순배 묵묵히 돌아가자 명선은 침울한 표정으로 성호를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처남도 누나한테서 들었으리라 믿소. 사람이란 배고프면 밥을 먹기 마련이지 않소? 녀자 없이 살기 힘들었소. 처음엔 성인테프를 보면서 자위를 했소. 간혹 청량리로 가서 기생집으로 드나들기도 했소. 전 모르지만 서울 기생거리로 가보오. 야, 연분홍네온등이 대낮 같이 비추는 거리에 대문짝 같은 유리 창문들에 선녀 같은 미녀들이 반라체를 하고 비단필처럼 서서 기다린단 말이요.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소? 그러나 돈이 아까와서 몇번 가보지 못했소. 처남도 시간 있으면 청량리로 가보란 말이요. 그 미녀들이 춤추는 서울의 붉은 거리를 그저 지나갈 수 있는가. 병신이 아니곤 구경만 하고 스치고 지나갈 수 없지. 곁에 안해 없어 헤매다가 그 녀자를 지하철에서 만났소.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렇게 됐소. 창피해서 처남 마중을 가지 못했소. 널리 량해하오.”
명선은 술잔을 내밀었다. 성호는 누나가 받은 심리고통을 생각하면 한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이 욱 치밀었다. 그러나 누나의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진짜 울지도 웃지도 못할 노릇이였다.
성호는 세멘트바닥에 쇠덩이를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옛날에 중이 고기맛을 들이면 빈대도 잡아먹는다고 했소. 사내대장부가 어째 정욕이 없겠소? 그러나 정욕이 끓어번질 때마다 아무데나 정욕을 쏟아부어서야 되오? 이번만은 용서하지만 두번 다신 없소.”
“알았소. 다신 실수를 하지 않겠소.”
명선은 목구멍으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처남 앞에서 다짐했다. 그도 성호의 불 같은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내처남을 만나기 싫었고 두려웠다.
성호는 어름장을 놓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춤추는 꽃서울? 흥! 더럽다, 더러워! 맨 바람둥이들과 깍쟁이들 서울이라고 해라!)
이 놈의 서울에는 화장실을 갔다 오는 시간이면 오입할 수 있을 정도로 기생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명선은 성숙과 성호 앞에서 아무리 다짐해도 얼마든지 눈을 피해 기생집에 갈 수도 있고 모텔에 녀성을 데리고 가서 바람을 피울 수 있었다. 속담에 사람 열이 도적 하나 지키기 힘들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어찌 명선이 외도를 했는가 일일이 감시한단 말인가?
서울에 왔다가 보지도 듣지도 못할 일을 알게 된 성호는 속이 미여지는 것처럼 아팠다.
농사일만 하던 순박한 매형을 춤 추는 꽃서울의 색갈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조강지처마저 버리고 인정도 없는 놈으로 만든 죄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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