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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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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55)
2020년 08월 22일 15시 05분  조회:97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85. 버림받은 모성애
       어느 하루, 밤중에 은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성호야, 집을 팔아야겠어.”
        성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무슨 소릴 하오? 집을 팔고 한지에 허망 나앉겠소?”
       “겨울인데 난방이 잘 안되지. 손질하자면 아마 몇백만원 들어가야 해. 집 팔아가지고 아들집에 가서 천륜지락을 누리며 살아야지.”
      “참 답답하오. 지금 어느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살자고 한다고 그러오. 아직 젊었을 때 그 집에서 살면서 양로비나 좀 버오. 절대 그 집을 팔지 마오.”
“그럼 언제 아들과 함께 사니?”
“칠순 중반 됐을 때 가도 실컷 사오.”
그러나 은자는 성호의 말을 듣지 않고 끝내 부산의 2층 집을 헐값으로 7천 5백만원을 받고 부랴부랴 팔았다.
성호는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며느리가 달큼한 말로 신랑한테 베개머리 송사를 해서 그 집을 팔게 충동질을 했다고 한다.
어느날 밤에 잠자리에 들자 송미려는 철수의 옆구리를 파고 들더니 걀죽한 얼굴을 품에 파묻으며 종알거렸다.
“시어머니를 모셔다 함께 살자요.”
“진짜?”
잘칵!
철수는 침대머리 전등불마저 켰다.
그는 환한 전등불빛을 빌어 미려의 걀죽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언제는 엄마 잔소리 많아서 함께 살지 못하겠다더니. 밤중에 해 서산에서 뜨지 않는가?”
“무슨 소린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젠 시어머니도 년세가 있는데 자식 곁에서 천륜지락을 누리며 살아야죠.”
“그럼 오죽 좋겠소? 그런데 가시집 부모는 어쩌고? 한 집에서 복잡해 어떻게 살겠소?”
미려는 철수의 뚱뚱한 볼을 살살 매만지면서 달콤한 말만 주어댔다.
“학교 부근에 자그마한 집 하나 더 사면 어때요? 이담 시어머니 그 집에서 살면서 하군을 공부시키면서 천륜지락도 누리고 일거량득이잖아요?”
철수는 미려를 안고 야들야들한 팔을 매만지면서 궁리했다.
“좋긴 좋은데. 돈이 어디 있소? 이 집 대부금도 아직 채 물지 못했는데.”
미려는 큰 마음을 먹고 무거운 입을 뗐다.
“시어머니 부산 집을 팔면 되잖아요.”
철수는 미려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면서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안될 소릴. 건 엄마 목숨 같은 재산인데. 다치지 못하오.”
미려는 철수를 발로 차놓으면서 치켜보았다. 버들잎 같은 눈섭이 거머리처럼 이마에 올라가 철써덕 붙을 지경이였다.
“좌우간 시어머니한텐 당신 밖에 없는데 뭘 그렇게 따진대요. 이담 시어머니 세상뜨면 다 당신 건데.”
철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집을 내놓으면 엄만 허망 같겠는데. 천하 못할 짓이요.”
미려는 철수의 뚱뚱한 가슴에 얼굴을 들이대며 지청구를 들이댔다.
“그럼 작은 집을 시어머니 이름으로 사도 안돼요?”
“글쎄, 건 괜찮은 거 같소.”
그날 밤중으로 철수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상해 집값이 올라가오. 더 올라가기 전에 어머니 살 집을 사놓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손자도 학교 다니기 편리하고 엄마도 천륜지락을 누리고 얼마나 좋습니까? 부산 집을 팔면 어떻습니까?”
아들의 깨고소한 말에 은자는 두 말 없이 집을 팔았다.
성호는 은자가 근심돼 부산에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내 말을 듣소. 집을 판 돈을 절대 다치지 마오. 누난 내처럼 퇴직금도 없잖고 뭐요? 집을 판 돈만 날아나면 뭘로 양로하겠소? 막내누나를 보오. 애나게 번 돈을 다 떼우고 뭐요? 두 아들한테 다 집을 사주고 차까지 사줬지만 지금 어떻게 됐소? 어느 며느리도 함께 있자고 하지 않잖고 뭐요? 누난 절대 막내누나처럼 되지 마오. 이젠 칠순고개를 바라보는데 일하기도 점점 불편하잖고 뭐요?”
그러나 은자는 개의치 않았다.
“얘, 아들도 믿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살겠느냐? 내 어떻게 기른  아들이냐?”
사실 은자는 만삭이 된 몸으로 시어머니와 남편한테 쫓겨나 홀로 나서 갖은 풍상고초를 다 겪었다. 애비 없는 철수를 아홉살 때까지 본가집에 얹혀 살면서  키웠다. 후에 시내에 들어와 남의 집 보모로 들어가 대소변을 받아낸다, 음식점 주방에서 찬물에 손마디 시리게 그릇을 가신다 하면서 돈을 벌어 철수를 공부시키지 않았던가. 철수가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았건만 입학등록금과 학잡비를 낼 돈마저 없어 성호가 선대해줘 대학에 보내지 않았던가.
은자에게 있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인생의 전부였고 마음의 기둥이였으며 살아가는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성호는 은자의 바다보다 깊은 모성애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철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아닌가.
“글쎄 아들이야 믿어야지. 그렇지만 며느리는 다르잖고 뭐요? 혹시 걔들 무슨 이변이라도 생기면 누난 허망 나앉고 말잖겠소?”
“얘, 그런 불길한 말을 작작 해라. 내 이름으로 집을 사놓는다는데 무슨 일이 있니? 황차 이담 내 죽으면 다 걔들 건데.”
성호는 답답했지만 뭐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충고해주었다.
“절대 집 판 돈을 다 주지 마오.”
“알았다. 알았어. 누나 뭐 네보다 예산이 적은 거 같니? 네나 안해도 없는데 혼자 하루 세끼 잘 끓여먹어라. 절대 삶은 고기랑 사서 먹지 말라. 한족들이 양념 버무려 파는덴 방부제랑 있어서 몸에 해롭다. 식당채랑 먹지 말라. 탄 기름 부어넣고 채를 볶아 술상에 올린다. 그런 거 먹고 모두 암에 걸리잖고 뭐니? 냄비를 부쳐보낼테니 힘든대로 자기절로 남새채를 끓여 먹어라.”
“누나, 애나게 번 돈을 자꾸 없애지 마오. 정희 쓰던 냄비 가득하오.”
“냄비도 너무 오래 쓰면 기름이 타 들어붙은 때 껴서 못 쓴다. 음식이 말째야. 몸 조심하면서 잘 있어라.”
은자는 전화를 덜컥 놓았다.
옆에서 춘애도 말렸다.
“성호 말을 들어라. 날 봐라. 칠순 넘도록 새끼들한테 다 뜯기우고나니 엉덩이 들여놓을만한 집도 없이 허망 나앉잖았니? 우리 세대는 부모를 모신 마지막세대이자 자체로 양로해야 하는 첫세대야. 로년을 자식들한테 의지하지 못해.”
성숙도 말렸다.
“언니, 비오. 절대 집 판 돈을 가져가지 마오. 날 보오. 두 아새끼들한테 입 안 고기도 먹지 않고 다 줘도 함께 살자 하오? 언닌 절대 내처럼 바보 짓 하지 마오.”
허나 은자는 형제자매들의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내 아들은 언니나 성숙네 애들하고는 다르오. 고생스레 키운 애니깐. 꼭 효성  다할 거요.”
한동안 은자한테서 아무런 전화도 없었다. 무소식이 호소식이라고 성호는 시름을 좀 놓았다.
몇달 후 한밤중에 은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성호야, 난 못 살게 됐다.”
“아니, 무슨 일이요?”
은자는 전화에 대고 엉엉 울었다.
“집 판 돈 다 가져다 줬는데 며느리 나하구 함께 살지 못하겠단다.”
성호는 보던 책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내 뭐랍데? 집 판 돈을 절대 다 주지 말라했는데. 누난 왜 남의 충고를 그렇게 귀등으로 듣소?”
“글쎄 말이야. 아들며느리 어찌나 구수하게 말하는지 깜쪽같이 얼리웠구나.”
“어떤 정황이오? 그래 누나 살 집을 사지 않았소?”
“샀지. 몇달 새에 집값이 인민페로 30만원이나 올라갔다. 며느린 집값이 올라갔기에 내 이름으로 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뀌워준 본전만 이후에 주겠단다.”
(인정머리 없는 년, 무서운 핵산골이구나.)
“그래 얼마 뀌워줬소?”
“7500만원 몽땅 줬다.”
“뭐라오? 아니, 왜 다 줬소?”
성호는 목이 꺽 메여 말이 나가지 않았다.
“리자까지 주겠다고 해서 줬다. 한국에 한화를 세워놓았자 리자 몇푼 안되지. 며느리 강남에 사 놓은 집 대부금 리자 높기에 돈을 선대해달라고 하더라. 대부금 리자만큼 나한테 주겠다고 하잖겠니? 아들도 돕고 리자도 가지고 일거량득인 거 같아 그랬다.”
듣고 보니 어느 외자기업에서 부기원을 한다는 며느리 송미려는 진짜 주산알을 잘 튕기는 핵산골임에 틀림없었다.
(높은 리자로 누나를 유혹했구나.)
“저 뚱뚱한 철수 죽는 날엔 난 목숨 같은 돈을 몽땅 떼우고 허망 나앉게 돼. 어쩜 좋니?”
“야, 돈을 몽땅 주지 말라는데. 이 일을 어쩌오?”
은자는 전화에 대고 섧게 울었다.
“글쎄 말이야. 며느리 그런 안속을 차릴줄 알았더라면 왜 줬겠니? 춘애 언니랑 성숙이랑 말리는 거 말을 듣지 않은게 후회된다.”
성호는 너무 답답해 가슴을 꽝꽝 쳤다.
“아니, 며느리 말이면 법이요? 철수 말이 관건이지? 좋은 아들 뒀다가 뭘 하오?”
“도리깨아들 해 어디에 쓰겠느냐? 한족녀편네 떠들어대는데 아들이 어쩌겠니?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잖겠느냐? 내라면 녀편네를 귀쌈이라도 한대 갈겨 줬겠는데. 에이구, 뭐라는지 아니? ‘엄마 돈 꾼 거 본전에 리자까지 주면 되지. 왜 가정분란이 생기게 이럽니까? 설상가상 강남에 사회보험 3년 하지 않았기에 내 이름으로 올리지 못합니다.’ 이러잖겠니? 그럼 사전에 그런 정황 말해야지.  멍청이를 믿은게 잘 못이지. ”
춘자는 위쳇에 은자를 이렇게 충고해주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라. 아들은 장가를 가면 며느리한테 빼앗기기 마련이다. 내 뭐라더니? 아들며느리와 한 집에서 산다는 건 다 옛날 소리야. 내 어지간하면 아들 둘이나 있는 강남에 가서 살지 않겠느냐? 큰아들과 며느리 별장 같은 아빠트 사놓고 한 시내 한 집에서 살자는 것도 가지 않는다. 물론 멀리 떨어져 사니깐 애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느냐? 그러나 난 아들 둘을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으려고 가지 않는다. 더욱이 로년을 마음 편하게 살려고 아들 집으로 이젠 10년째 가지 않았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느냐.
성호한테서 들을라니 넌 철수와 며느리한테 잔소리 많이 하는 모양이더구나. 이젠 걔들도 마흔고개를 바라보는데 그만 잔소리해라. 걔들이 살고 싶은대로 놔둬라. 뭐나 애들 일에 삐치지 말고 잔소리 하지 않는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 걔들이 얼마나 편하게 살겠느냐?
우리도 자식과 일정한 공간을 두고 살면 편안하다. 입 안에 혀도 씹을 때 있다고 자식들과 비좁은 한 집에서 살면 꼭 말썽이 생긴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깐. 서로 그리운 정만 남고 나쁜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아 좋다. 따로 사니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이 서로 자유로워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은자는 위쳇으로 단통 언니 말을 반박했다.
 
언니, 그렇다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하고 함께 살지 못하고 춘애언니 말처럼 자매간이 함께 살겠소? 말도 안되오.
 
춘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너도 춘애 언니와 성숙이 겪은 아픔을 겪어봐야 알겠는 모양이구나. 어쩜 모성애는 저리도 처참하게 될가?)
 
형제들이 말려도 은자는 기어이 철수와 함께 살고 싶었다.
(며느리는 글쎄 들어온 식구니깐. 시어미 싫겠지. 그러나 아들과 손자는 내 피줄이 아닌가. 아들과 손자 얼굴만 쳐다보면서 살면 되지. 숱한 돈을 줬으니깐 아들이야 받아주겠지. 내 어떻게 키운 외동아들인가.)
그녀는 막연한 미련을 품고 숱한 걸 사서 이고 지고 길을 떠났다.
“언니, 무거운데 오이랑 부추랑 두고 가오.”
“얘, 중국 남새는 오염이 많아서 안돼. 한국 유기농 남새를 가져다 내 손으로 끓여 아들 먹이련다. 철수 체중 내리지 않으면 죽어.”
그녀는 이고 지고 들고 부산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해로 날아갔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외동아들을 보는 순간 목이 꺽 막혔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그러나 반가운 기분도 한 순간뿐 뚱뚱한 아들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얘, 진짜 북국곰으로 됐구나. 체중을 내리워야겠구나. 지금 체중이 얼마냐?”
 “그래도 많이 내렸습니다. 112킬로 밖에 안됩니다. 괜찮습니다.”
철수는 대수롭잖게 대답하고는 짐을 챙기러 어정어정 걸어갔다.
은자는 펑퍼짐한 아들의 뒤모습을 보고 뒤따라가며 당부했다.
“얘, 철수야, 아직도 백킬로 넘는데 괜찮아? 야, 정신 차려라. 이제 살 내리우잖으면 죽는다, 죽어. 아이구, 널 어쩌겠냐? 아침이면 일어나 꼭 달리기랑 좀 해라. 밥 먹고는 힌들 들어누워 잠만 자지 말라. 아이구, 너 어쩌겠니?”
(또 시작하는구나. 아이구, 잔소리 싫어 어떻게 삐칠가?)
철수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면서 짐을 챙겨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는 자가용에 어머니를 싣고 달리면서도 어떻게 어머니와 색시 사이에서 시집살이를 하겠는가고 근심이 태산 같았다.
어둑어둑해 아들 집에 이르자 손자 하군이 두 팔을 벌리고 뛰여왔다.
“할머니!”
은자는 하군을 와락 끌어안았다.
“이 자식, 언제 조선말로 할머니를 부르는 걸 듣겠니?”
은자는 짐을 받으러 나오는 며느리한테 눈인사를 하고는 손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군아, 넌 무슨 민족이냐?”
“난 조선족.”
그 말에 며느리는 입귀를 비쭉했다.
은자는 철수를 돌아보며 당부했다.
“얘한테 좀 조선말을 배워줘라. 명색이 조선족이라는 애가 조선말도 모르고서야 어찌 조선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한족며느리는 보짐을 들어들여가면서 중얼거렸다.
“조선말을 배워도 이 곳에선 써먹지도 못해요.”
은자는 조선말로 중얼거렸다.
“저걸 봐라. 시어미 말하는데 첫마디부터 대구질이야.”
툭 싸줄가 하다가 며느리 본가집 부모를 보고 억지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저녁에 며느리는 시어머니 왔다고 부엌에 나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서서 채를 볶느라고 채바퀴 돌듯 바삐 맴돌았다.
“가만, 가만!”
은자는 황급히 부엌에 들어가며 손사래를 쳤다.
“기름을 좀 작작 넣으란 말이요. 전탕 기름에 고기를 볶아 먹여서 우리 아들 저렇게 살지게 만들었지. 오늘부터 내 밥 지을테니 며느린 좀 쉬오.”
그녀는 한국 부산에서 챙겨온 신선한 오이랑 파랑 부추랑 꺼내 수도물에 씼었다.
“이런 파란 남새를 먹어야 살도 안지고 고혈압과 심장병에 좋은 거야.”
은자가 손수 팔을 걷고 정성 들여 몇가지 남새채를 무쳐서 저녁 밥상에 올렸다. 며느리는 저가락을 들고 상을 찡그리는 본가집 부모를 보고 난색을 지었다.
한족들은 여러가지 양념을 넣고 기름에 볶은 고기채를 먹기 좋아했다. 더욱이 남방 한족들은 사탕가루와 식초를 푹푹 떠넣고 끓인 시쿠므레하고 달달한 돼지고기채를 좋아했다.
그런데 은자가 가마목을 맡은 후 며느리 본가집 식구들은 그만 밥맛이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다.
며느리는 보다 못해 시어머니와 통사정을 들이댔다.
“시어머니, 본가집 부모 잡술 채는 제가 하죠.”
은자는 단마디에 거절했다.
“안돼! 네 남편을 잡아먹자고 그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이 집에서 다신 기름채를 먹으려니 하지 마오.”
며느리 부모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였다.
“아니, 고기채를 먹잖고 어떻게 사오? 고기도 적당히 먹어야 빈혈이랑 걸리지 않지.”
은자는 며느리 기름에 볶으려고 가져온 돼지고기를 랭장고에 되넣었다.
“당신들 때문에 내 아들 죽게 생겼소. 렴치 있소? 자기 맛있게 먹겠다고 기름에 볶은 달달한 고기를 잔뜩 먹이면 되오? 내 아들 저게 뭔가요? 뚱뚱한게 오래잖아 죽게 생겼소. 내 아들 죽으면 내 돈으로 산 이 집에서 당신들 새 사위 데려다 잘 살자고? 어림도 없어.”
바깥사돈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안사돈은 은자한테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사돈, 어쩌겠소? 두 민족 음식습관이 달라 이런 걸. 서로 량해하면서 삽시다.”
그런데 이번엔 며느리 야단쳤다.
“하루도 이런 집에서 못 살겠다. 어머니, 갑시다.”
며느리는 어머니 손을 잡고 문을 쾅 차고 나가버렸다.
“어머니! 나도 가겠습니다. 엉, 엉- 날 데리고 가십시오- 엉, 엉-”
며느리는 따라오는 하군을 콱 밀쳐놓았다.
“가라! 할머니랑 살어!”
하군은 발버둥질치며 울었다.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 철수는 따라나가 하군을 안아 일으키며 색시한테 버럭 고함쳤다.
“애를 버리고 어디로 가?! 돌아오지 못해?”
미려는 홱 돌아서더니 손삿대질하며 야단쳤다.
“철수, 이 집에 어머니 있는 한 내 돌아오려니 생각지도 말라.”
“뭐라고? 돌아오지 못해?”
철수가 달려나갔다. 그러나 때마침 달려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망치듯 하는 미려와 가시어머니를 놓치고 말았다.
“가겠으면 싹 가라!”
철수는 하군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하군은 엉엉 울면서 떼를 썼다.
“난 엄마한테 가겠다. 엉, 엉- 외할머니랑 보고 싶어. 엉- 엉- 엉-”
은자는 오이랭채를 버무리다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고 손자를 안으며 얼렸다.
“친할머니 있잖니? 우리 귀여운 하군아, 울지 말아. 저녁에 내 맛있는 한국  오이랭채 해줄게.”
그러나 하군은 “싫어, 싫어. 외할머니하구 엄마 볶은 기름채 좋아. 아빠, 엄마 데려와!” 하고 발버둥질치면서 울었다.
“할머니 한국에 가! 할머니 없을 땐 엄마, 아빠 싸우지 않았어. 할머니 한국에 가! 밉다, 미워! 빨리 가!”
은자는 개의치 않고 철수를 보고 희죽이 웃기까지 했다.
“가겠으면 가라지. 아들을 살리자니 별 수 없구나. 우리 조손 3대가 살면 되지.”
철수는 살진 자라목을 빼들고 천정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하, 이 집을 어쩌오?”
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엄마, 가시부모를 작작 노엽히오. 가시엄마 위암 말기요.”
“뭐라고?”
은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위암 말기라구? 걸 봐라. 그렇게 사탕가루를 푹푹 퍼놓고 기름에 볶아 달달한 걸 먹기 좋아하니깐 뛸 데 있니? 아이구, 널 가시집 식구들한테 맡겨놓으면 영낙없이 고혈압에 심장병, 당뇨병에 걸리겠는데. 네가 암에 걸리면 난 누굴 믿고 살겠느냐?”
은자는 오이랭채랑 부추채랑 밥상에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널 살리기 위해서라도 저것들을 몽땅 몰아내고 내 이 집 부엌을 차지해야겠다.”
철수는 묵묵히 서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며칠이 지나도 미려와 가시부모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철수는 저녁에 퇴근해 밥상에 마주 앉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마,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장구지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미려는 죽어도 엄마하고는 한 집에서 살지 못하겠답니다. 리혼하면 했지 하루도 못 살겠답니다. 불쌍한 아들과 손자를 봐서라도 엄마 좀 양보하겠습니까? 저쪽에 작은 집이 있는데 따로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게 실제적인 거 같습니다. 서로 편하고 좋을 거 같아 말씀 드립니다.”
한국 기업에서 과장까지 하는 철수는 이젠 짜개바지 입고 달아다니던 삼척동자가 아니였다.
은자는 펄쩍 뛰였다.
“뭐라고? 어미를 내쫗겠느냐? 이 도리깨아들아, 내 널 어떻게 길렀는데. 제 어미를 내쫓아? 야, 이 못난 놈아. 아들 하나 보고 여기 왔지. 내가 왜 이 먼 한족곳으로 왔겠느냐? 엉? 녀편네 하나 이기지 못해 늙은 엄마를 내쫓아?”
은자는 행주치마를 활활 벗어 아들의 얼굴에 줴뿌리며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겠다고 야단쳤다…
그러나 은자는 철수 가시어머니가 암에 걸려 오늘일가 래일일가 하는 판에 문안도 하지 않고 활 뿌리치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튿날 아들과 손자가 공장과 학교로 떠나간 후 은자는 뻐스를 타고 며느리 본가집으로 달려가 문안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뻐스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뚱뚱한 아들이 언제 뇌출혈이거나 심장병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었다. 아들의 목숨은 시한부 목숨이였다.
그녀는 근심이 태산 같고 속이 타다못해 재가루로 될 지경이였다.
(아들을 살리려면 내가 옆에서 건강식을 챙겨줘야 하겠는데.)
그러나 철수는 그녀의 권고와 충고를 모두 주책없는 로모의 쓸데없는 잔소리로만 알고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그도 자기 색시, 아들의 어머니 미려를 두고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색시를 두들겨패면서 억지로 어머니와 한 구들에 몰아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도 어머니와 색시 사이에서 눈치를 보면서 무서운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리혼하면 했지 나와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한다. 아들마저 함께 사는 건 장구지책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믿던 아들과 한 집에서 살지 못할 바에야 굳이 이런 한족 곳에 올게 있는가?)
그녀는 독한 마음을 먹고 집이 빈 틈을 타서 조용히 아들 집을 떠났다. 올 때는 이고 지고 들고 힘들게 왔지만 부산에 돌아갈 때는 빈 트렁크 밖에 없었다. 랭혹한 현실은 그녀로 하여금 리별의 뜨거운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리며 쓸쓸히 아들 집을 떠나야만 했다. 상해가 아무리 호화로운 시내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미세먼지 자오록한 무정한 시내로만 보일뿐이였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손자를 믿고 함께 살려던 한줄기 희망마저 절망으로 번졌다. 순간 그녀의 고통은 극도에 달했다. 외면당한 모성애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돈도 며느리한테 다 떼우고 아들한테 모성애도 사기당했다.
그녀는 동지섣달에 한지에 허망 나앉은 것만 같았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한 감을 느겼다. 순간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녀는 무슨 정신에 김해공항 출구로 황망히 나왔는지 몰랐다. 
승용차들이 씽-씽- 눈뿌리 아찔하게 스쳐지나갔다.
(이제 무슨 면목으로 춘애 언니랑 성숙이랑 본단 말인가? 형제자매들이 돈을 아들한테 다 가져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후회막급이 아닌가? 집도 다 팔아먹고 허망 나앉았는데 이젠 어데서 산단 말인가?)
배신감이 희끄므레한 가로등불빛에 매달려 그녀를 조롱한다. 슬픔이 어둠 속에 쫙 펴져 파도치며 노호한다. 천만가지 절망이 눈가루로 둔갑해 요술을 부리며 구슬프게 흩날린다.
(이 세상에서 누굴 믿고 산단 말인가?!)
절망에 빠진 그녀는 황망히 큰길을 건너갔다.
갑자기 달려오던 차가 그녀를 덮쳤다.
버림받은 모성애는 무정한 차바퀴 밑에 처참하게 깔려 사정없이 쭉 미끌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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