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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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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4) 김장혁
2022년 02월 15일 10시 08분  조회:1507  추천:1  작성자: 김장혁






                         8. 친구의 충고
기실 문걸이 리혼하려고 하자 군철은 아주 강경하게 나왔다.
“아버지 리혼하는 날엔 우리 집 호적에서 영원히 긁어버리겠습니다.”
지예는 욕설을 퍼부었다.
“아빠, 제 정신입니까? 당장 죽을지 살지 모르면서도 리혼? 흥! 화실마저 어느 개쌍년 엉덩이에 처넣으려고 그럽니까?”
그러나 문걸은 기어이 리혼했다. 그 정신감옥 같은 가정에서 홀랑 홀몸으로 나오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지 몰랐다. 날마다 아무런 부담도 없어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자식들 하나도 쓸데 없어. 흥!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그 비싼 상해 아빠트까지 사주었지. 퇴직하자마자 늙은 량주 애들까지 길러주지 않았는가. 난 날마다 집을 청소해주고 승용차로 애들을 학교에 데려가고 집에 실어오지 않았던가. 배은망덕한 새끼들이  애비 죽기도 전에 유산상속에 눈이 새빨갛다. 흥! 언제 한번 애비 행복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이젠 며칠 살지 못해도 자유롭게 내 인생을 살테야.)
그는 고향에서 서남쪽 상해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자손들이 들으라는듯이 중얼거렸다.  
“손주들한테 물려줄 유산은 유언 하나뿐이야. 할아버지 교훈을 봐서라도 절대 결혼하지 말라, 결혼해도 자식을 낳을 필요없어. 손주들까지 다 키워주고나면 염라국으로 갈 날이 닥쳐온다.)
이때 베란다에 걸어놓은 초롱에서 하얀 비둘기가 바깥으로 날아나지 못해 구구거렸다. 똑마치 이 놈의 가정에서 해탈되려고 아득바득 리혼하려고 울며불며 덤벼들던 영희 같아 보였다.
“내 같은 주인 믿고 산 너도 불쌍해. 내 이번에 급병에 죽었더라면 넌 초롱 속에 갇힌 채 굶어 죽을 번했잖아. 옆집 아줌마 먹이 주잖았으면 큰일 날 번했잖아.이젠 감옥에서 나가라. 자유를 찾아 날아가라!”
문걸이 초롱문과 창문을 열어주자 집비둘기는 좋아라고 베란다 바깥으로 푸드득 날아나갔다. 구구거리며 아빠트 상공을 몇바퀴 돌더니 아무런 미련도 없이 훨훨 멀리멀리 날아가버렸다.
     문걸은 서로 의지해 살던 하얀 비둘기가 훨훨 날아 흑점으로 변할 때까지 바라보았다.
며칠 후, 정호가 화실로 찾아와서 목에 지렁이 같은 피줄을 세우고 욕했다.
“정신 있니?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리혼하다니? 홀로 무슨 개고생하자고? 홀로 살다가 급병에 걸리면 그래도 옆에 안해 있어야 해. 늘그막엔 그래도 부부가 서로 의지해 살아야 해. 자식들은 다 먼데 있구. 누가 들여다 봐? 봐라. 이번에도 홀로 있다가 쓰러져 얼마나 위험했니? 옆집 아줌마 아니였더라면 너 병원 문앞에 가지도 못하구...헤이, ”
문걸은 친구한테 자기 고충을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내라고 어지간하면 조강지처하고 갈라졌겠니? 가정은 즐겁고 행복한 정신감옥이야. 전통관념과 잔소리, 허위와 정신쇠사슬로 얽맨 감방에서 뛰쳐나오려면 쉽지 않아. 허나 자유를 위해선 목숨도 아깝지 않다."
       정호는 번대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안해는 있어야 해. 제절로 밥 해먹기 그리 쉬운 거 같아?"
       원래 순정과 영희는 다 무용교수 정호의 제자들이였다. 게다가 정호가 영희를  문걸에게  소개해줘 결혼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러는지 정호는 극구 천방백계로 문걸을 보고 영희와 살아라고 한다.

       "너 처제라고 억지로 살아라는 거야?"
       그러나 문걸은 심드렁해했다.
       "보모가 있잖아. 내 교수급화가여서 한달 로임 8천원도 넘어. 재직 땐 만원도 거의 탔어."
"그래두 본댁은 옆에 둬야 해. 보모는 돈 벌려고 순종하는 척하지. 그래두 본댁은 진심이야. 황차 너와 영희는 아들딸이란 공동재산이 있잖니?  이제 얼마 살겠다고 그래? 얼리고 닥치면서라도 영희하구 함께 살아라."  
"누구라구 본댁이 좋은 거 몰라? 영희 자꾸 아프다면서 곁을 주지 않아 석삼년이나 녀자 어떤 건지 모르고 살았다. 소변도 바로 보지 못했어.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전립선염에 다 걸렸더라. 언제 음위가 올지도 몰라.  성을 빼면 부부가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보모를 두자고 함께 살아. 자유와 행복이 없으면 백년 살아도 산게 아니야. 난 하루를 살아도 아무런 구속도 없이 살고 싶다. 아무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만금은 그들이 옥신각신하자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다가 바깥으로 조용히 나가버렸다.
“이걸 봐.”
문걸은 침대 이불 밑에서 녀자생식기모형을 들어 보였다.
“여태껏 이걸로 대충 에따지우면서 죽지 못해 살았어. 이젠 졸혼이야.”
정호는 번대머리를 쓸어넘기면서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았다.
“졸혼이라니?”
“이젠 결혼생활 영원히 졸업이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난다.”
"딱 리혼해야 졸혼이냐? 리혼하지 않고서도 자기만의 생활을 살면 되지."
"난 그렇게 허위적으로 살 순 없어. 깨끗하게 리혼해 정리하고 내 삶을 살려고 해."
정호는 머리 몇대 없는 번대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선생님 진짜 불쌍해요.”
이때 안방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섹시한 30대미녀 사뿐사뿐 걸어나왔다.
“하긴 잘하는구나. 미녀를 숨겨두고. 흥! 저 미녀한테 반해 리혼했구나.”
“미녀를 숨겨두다니요. 전 미녀로봇인데요.”
정호는 그제야 그들의 앞에 다가온 미녀가 어덴가 백화상점 옷매대 앞에 진렬해놓은 마네킥과 같은 감을 느꼈다.
“우리 주인님은 2년 전에 일본에까지 와서 저를 사다가 동무했는데요. 우리 주인 참 고독해요. 불쌍해요. 밤이면 저를 꼭 껴안고 얼마간이라도 위안을 느끼군 하는데요. 뭐가 잘못됐다고 그러는가요?”
미녀로봇은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백길 물 속은 알아도 몇촌 사람 속은 모른다고 정호는 문걸이 이 지경으로 괴짜인줄은 여직껏 몰랐다. 한편 미녀로봇과 동무하면서 고독을 말린 문걸이 불쌍하기도 했다.
“얘, 바깥세상은 얼마나 오색령롱하냐?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이렇게 살겠니? 우리 인젠 동서를 벗어나 형제처럼 친구하면서 황혼을 즐기며 살자.”
문걸은 외까풀눈을 치뜨며 정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호는 미녀로봇이 들을가 봐 문걸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혼인소개소에 가면 젊고 예쁜 녀자들이 줄을 서 있어.”
“흥!”
문걸은 코방귀를 뀌였다.
“조강지처도 뺑덕이에미처럼 홀랑 빠져 달아났잖아. 이제 또 어떤 녀자를 얻어 개고생을 하자고? 설상가상 난 언제 죽을지도 몰라…”
정호는 답답해 손수건으로 번들이마에 돋은 땀을 쓱쓱 닦고나서 뒤말을 이었다.
“그럼 딱 재혼하지 않더라도 녀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저런 생식기기계나 미녀로봇을 가지고 살겠느냐?”
“뭐라고? 미녀로봇이 어떻단 말인가요?”
미녀로봇이 정호의 턱 밑에까지 다가와 콩알눈이 새똥그래 손삿대질하며 바투 들이댔다.
“제가 돈을 달라는가요? 간사한 년들처럼 언제 한번 앙칼진 목소리로 잔소리하고 짜증냈는가요? 저는 언제든 주인이 수요하면 두말 없이 몸과 마음 다 바쳐 만족시켜 줬어요. 남편의 기본욕구마저 만족시켜주지 않는 녀자들이 그래 색시인가요? 사람인가요? 우리 주인 어떻게 그런 녀편네와 살라고 오늘 이래요? 그러고도 친군가요? 형젠가요?”
“모모에야, 삐치지 말라.”
문걸은 일어나 미녀로봇 모모에를 안아다 안방에 데려다넣고 스위치를 꺼버렸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저런 로봇을 믿고 홀애비로 살겠니? 이제 백년을 살아도 허무한 도깨비 인생이야.”
문걸은 정호 앞에서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넌 몰라. 미녀로봇은 진짜 녀자들보다 더 죽여준다. 언제든지 수요되면 순종하지. 아프오, 콘돔 껴라, 윤활유 발라라. 여기저기 애무 더 많이 해달라. 그런 잔소리 하나도 없어. 미녀로봇은 더구나 서비스 최고야. 감각도 진짜 미녀들보다 못잖아. 살결도 따뜻하고 부드럽고 매끌매끌해. 속살  감각도 참 좋아."
"그래? 말을 잘 못 들으면 왕청 같은 짓 하진 않고?"
"아니야. 난 고급일어 수준이니깐. 일본 미녀로봇에게 지령을 정확히 떨구는덴 장애가 없어."
      화가의 모병이라고나 할가. 충동과 격정이 많은 문걸은 정호를 믿고 별 말을 다 했다.
"영희는 어쩌는지 아니? 항상 콘돔 끼고서야 산다. 부부간에 콘돔을 끼고 사는게 어디 있니?"
 "우리도 콘돔 끼고 산다. 그래서 새 자극과 격정을 찾으려고 젊은 녀자들을 쫓아다닌다."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믿는 친구라도 여지를 두고 싶었다.
"부부간에 글쎄 콘돔 끼고 살다니? 그게 뭐야? 뻘꺽뻘꺽 하는게 감각이 령민하지 못해 말짼 건 둘째야. 콘돔 끼라는 건 부부간에 불신의 표현 아니고 뭐야? 바깥에 나가 묻혀온 성병을에 감염될가봐 의심하는게 아니고 뭐냐? 영희 또 어쩌는지 아니? '돼지고기 사다가 구멍 뚫어 줄게. 정 하고 싶으면 돼지고기 구멍에다 해라.' 이런다."
"흐흐흐.  쳇!"
      정호는 문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러나 나 먹어가는 자기 안해와 살던 일을 생각하니 동감이 갔다. 안해가 자꾸 거기 아프다고 부부 생활을  하기 싫어 해 의약상점에 가서 윤활제를 사왔다. 그 윤활제를 바르고 또 정호가 바깥에서 성병에 걸린 적이 있다고 콘돔도 껴야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안해는 젊었을 때보다 무슨 준비가 많아야 했다. 게다가 젊었을 때보다 인차 흥분되지 않아 여기저기 애무도 오래 해주면서 기다리기란 참 지긋지긋하게 질렸다. 안해도 싫어나는데 문걸은 미녀로봇을 장황하게 늘여놓았다.

"미녀로봇은 영원히 늙지 않는 처녀야. 나하구 돈 달라니? 밥 달라니? 진짜 아무런 부담도 없는 미녀, 세상에 둘도 없는 살가운 서비스만 하는 처녀야. 이담 양로도 미녀로봇에게 의지할 예산이야. 우리 점점 늙으면 누가 우릴 돌보려고 하니? 후처? 본댁도 뺑덕이 에미처럼 도망가는데. 자식? 너우! 손자? 건 더 너우! 미녀로봇은 돈 주고 고용한 보모보다 나아!"  
정호는 성이 나서 씩씩거리면서 문걸을 흘겨보며 뒤말을 이었다.
“이 못난 놈아, 어째 정신이 어떻잖니? 사람이 어찌 사람과 살지 않고 로봇과 살아? 세상에 숱한 미녀들을 두고 이래? 글쎄 지금 세월에 남자들이 싫은 녀자들은 개발에 보선을 씌우고 개를 데리구 산다더라. 개는 주인한테 충성하고 재물을 탐내지 않고 주인이 하라는대로 하지. 그래서 어떤 녀자들은 남자 대신 침대에서 개를 안고 잔다더라. 개는 그게 수요될 때면 언제든지 거절하지 않아 마음껏 살 수 있지."
정호의 말에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태잖니? 그래도 개하구야 어떻게 살겠니? 인륜을 해치는 짓이야."
"미녀로봇과 사는 건 변태 아니겠구나. 인륜을 해치는 미친 짓 아니겠구나. 쯔쯔쯧. 재혼하기 싫으면 결혼등록 하지 말란 말이야. 그저 혼인소개소에서 젊고 섹시한 녀자친구를 얻어 살란 말이야. 마음에 들면 그저 데리고 놀면서 살면 되는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녀자를 데려다 살면 되지. 지금 결혼이나 재혼을 하기 싫어하는 독신녀자들도 쌔고 버렸어.”
문걸은 그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재혼이란 미명하에 숱한 녀성들을 사기치는 건 생벼락을 맞을 일이야. 난 절대 못해.”
정호는 목석처럼 멍해 덤덤히 앉아 있다가 문걸한테 또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얘, 그럼 사교무청에 다니면서 녀자친구나 친해라. 사교무청엔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녀자들이 많아. 그런 녀자들은 사교무청에 가서 뽕도 딸겸 님도 볼겸한다더라. 이제 그림 그려서 하늘 찌르겠느냐? 가자, 나가 한바탕 놀자.”
문걸은 정호가 어찌나 볶아대는지 마지못해 따라 나갔다.
정호는 택시를 불러 운전수한테 뭐라고 귀속말로 분부했다.
그는 택시에 앉자 버릇처럼 몇오리 안되는 머리카락을 쓸어 번대머리를 덮어놓더니 문걸을 뒤돌아보며 속심의 말을 했다.
“얘, 친구니깐 말하지만, 순정도 애 하나 낳지 못한 주제에 짜증내면서 곁을 잘 주지 않아. 이젠 서로 육체도 사랑도 다 늙고 매말랐어. 그럴 때면 당장 리혼하고 싶었어. 그러나 내 어째 참겠느냐? 이담 앓거나 늙으면 누가 뒤바라지를 하겠느냐? 그래서 억지로 가정이라는 허울 밑에서 순정하고 살아.”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조강지처를 가장보모로 쓰려고 리혼하지 않다니? 허위로 꽉 찬 그 놈 가정의 허울을 쓰고 순정을 기편하면서 바깥에서 이성을 즐겨? 건 리혼하는 것보다 더 못해. 일종 범죄야.”
문걸은 이렇게 툭 쏴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괜히 정호네까지 리혼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정호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번대머리를 덮으면서 계속 지껄여댔다.
“지금 너네 사는 걸 보면 우리 차라리 애를 하나도 낳지 못한게 잘 됐어. 늘그막에 보모질이나 하면서 짜증나게 잔소리밥을 먹으며 살게 있느냐?”
정다운 밤거리는 오색령롱한 네온등불빛이 명멸하며 유혹했다.
정호는 문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계속 횡설수설했다.
“마사지방에 가자. 젊고 섹시한 아가씨들이 죽여준다. 고 보들보들하고 매끌매끌한 손으로 허벅다리랑 살살 만져줄 땐 온 몸 말초신경까지 쨍해난다. 난 한주일에 둬번씩 마사지방에 찾아가 즐기군 해. 보통 녀자들은 쉰고개를 넘으면 그게(월경) 훌 가면 점점 나그네를 싫어해. 이제 살면 얼마 살겠다고 그래?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아.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에 황혼을 즐기면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 보세. 더 늙어서 음위나 오면 헛되히 보낸 인생 후회막급이야. 흐흐흐.”
문걸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택시를 세워라.”
“왜?”
문걸은 정호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혹시 공중변소로 가는 거 아니냐?”
정호는 대머리를 흔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야, 아니, 이전에 우리 다니던 마사지방이야.”
“날 절대 더러운 공중변소에 데려다 처넣지 말라. 건 범죄야.”
“근심말라.”
그제야 문걸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택시는 커다란 연분홍네온등간판불빛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꿰뚫고 달려 근사한 마사지방 앞에 멈춰섰다.
그들이 마사지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아가씨들의 간을 빼먹을듯 간드러진 목소리가 옆구리를 간질렀다.
“어서 오세요.”
“오빠, 잘 모셔드릴게요.”
어색한 조선말소리는 느끼할 정도였다.
연분홍불빛 아래 대청에 우유빛허벅다리를 다 드러낸 섹시한 아가씨들이 비단필처럼 줄느런히 둘러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아가씨 둘이 사뿐사뿐 다가와 그들의 팔을 끼고 층계로 올라갔다.
그들은 먼저 시원히 샤와하고 각기 독방에 들어갔다.
연분홍불빛 아래 예쁜 아가씨가 머리부터 꿍꿍 마사지를 해주자 문걸은 피곤이 풀리면서 잠이 소르르 왔다.
합판으로 대충 막은 옆방에서 정호와 아가씨가 희희닥거리는 소리마저 다 들렸다. 이윽고 두런두런 말소리 대신 침대가 삐꺽삐꺽하는 소리가 절주맞게 들렸다. 아가씨의 한숨소리에 뒤이어 간혹 간간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문걸은 와닥닥 일어나 앉아 옆방에 귀를 기울였다.
“왜? 마사지 안받겠는가요?”
아가씨가 눈을 곱게 내리깔며 물었다.
문걸은 대답도 하지 않고 옆방에 귀를 도사렸다. 한참 삐꺼덕거리던 옆방이 물 뿌린듯 조용해지지 않겠는가.
(착각인가?)
문걸은 억지로 누워 마사지를 다 받고 일어나 담배를 붙이려고 호주머니를 들췄다.
“여기서 흡연하지 못해요. 다른 마사지 더 받지 않겠어요?”
문걸은 아가씨를 치켜보았다.
“뭘?”
아가씨는 혀를 홀랑 내밀며 쌔무룩이 웃었다. 뒤이어 짧은 치마를 홀랑 들어 백지장처럼 하얀 엉덩이를 살짝 드러내보였다. 눈까지 찔끔 하며 추파를 보내면서 유혹했다.
(쳇, 더러운 년, 누굴 유혹하는 거야.)
“급한 일이 있어 인차 가야 해.”
아가씨는 수건이랑 걷어치우면서 도도거렸다.
“돈을 무져놓고 향수하지 않다간 이담 후회할 걸.”
문걸은 유혹을 혹독하게 물리치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바꿔 입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호는 택시에 앉아 횡설수설했다.
“어때? 재미 좋지?”
문걸은 매서운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았다.
“돈 주고 공중변소에서 금전과 성교역을 해? 돈 주고 산 사랑, 길에서 주은 사랑 따윈 너무 너절해.”
“픽!”
정호는 코웃음쳤다.
“녀자 하나 얻지 못해 꿋꿋한 로본과 사는 주제에. 흥! 사지를 놀릴만할 때 향수해야 해? 아까운 걸 써먹지도 못하고 화장터에 가서 몽땅 타버리면 모든게 끝장나! 후회약도 없어.”
문걸은 옆에 나란히 앉은 정호를 쏘아보며 정색했다.
“동물적인 기본욕구나 채우자고 살 거면 개나 돼지나 다를게 뭐냐? 난 하루를 살아도 참된 사랑을 하는 안해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참된 사랑은 남녀의 사랑으로 펄펄 끓는 심장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령혼의 멜로디야.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참된 사랑이 더 소중한 거야…”
“됐다, 됐어. 네가 정조를 지키면서 참된 사랑을 찾는다고 누가 렬녀비나 홍살문을 세워 줄 거 같니?”
정호는 남이야 듣든 말든 택시 문고리를 쥐고 계속 지지벌거렸다.
“네겐 시간이 많지 않아. 언제 참사랑 따위를 추구하고 기다릴 새 있느냐? 사람이 기본욕구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백년 살아도 허망 산 거야.”
문걸은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글쎄 육체적인 사랑을 버리라는 건 아니야. 그러나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참된 사랑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통일될 때야만이 하루를 살아도 산 보람과 행복이 있는 거야.”
정호는 문걸의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내며 휑 하니 나가버렸다.
문걸은 떠나가려는 정호를 쏘아보며 경고했다.
“야, 임마, 주의해라. 언제 경찰한테 뒤덜미를 잡혀 망신당하겠다.”
정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황혼에 졸혼하고 바른 길을 걸으면서 살자니 이다지도 힘든가?)
문걸은 집에 돌아와 붓을 찾아 들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꾸 도리머리질 하였다.
며칠 후 밤중.
따르릉, 따르릉.
핸드폰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핸드폰을 들고 보니 정호한테서 오는 전화였다.
“얘, 돈 만원 가지고 여기 오라.”
“왜? 무슨 일 쳤니?”
“이전에 우리 둘이 왔던 마사지방 기억나지? 지금 당장 오라. 경찰들이 기다린다.”
“끝내 일을 쳤구나. 내 뭐라 했니?”
“얘, 잔말 말고 빨리 오라. 벌금하지 않으면 로동개조하러 보내겠대. 당장 빨리 오라. 나가면 갚아줄게.”
“개자식! 더러운 엉덩이를 닦으라고?! 흥!”
문걸은 더 욕하려고 했지만 정호 핸드폰이 덜컥 꺼져버렸다…
 
 
                              9. 신비한 눈구덩이
“리선생님, 춤을 추지 않겠어요?”
“그러지. 먼저 화실에 오오.”
이윽고 춘희가 처음 화실에 들어섰다. 그는 처음 네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인체화를 보고 외씨처럼 걀죽한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돼버린 채 몸둘바를 몰라 서성거렸다.
“여기 앉소.”
문걸이 쏘파를 가리켰다.
춘희는 노란 게실모자를 벗고 굽실굽실한 커피색머리를 버릇처럼 어깨 넘어 쓸어넘겼다.
“이게 다 리선생님이 그린 그림인가요?”
“그렇소. 춘희 초상화를 그려줄게. 이전에 등산 가서 말빚을 진게 있잖소.”
“어마나!”
춘희는 처녀들처럼 수줍게 두 손으로 두 볼을 싸쥐였다.
“전 못해요. 어떻게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고,”
문걸은 춘희를 안정시켰다.
“아니, 인체화 말고 초상화를 그려줄게. 오래 걸리지 않소. ”
춘희는 벽에 걸린 그림을 둘러보았다. 한복을 곱게 입은 처녀, 순박해보이는 녀성의 그림도 드문드문 보였다. 거의 몽땅 어글어글한 쌍까풀눈 녀자들이였다.
그녀는 문걸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쌍까풀녀자를 좋아하는 모양인데요. 저 쌍까풀눈 미녀그림들을 가지고 국제전시회에 가게 되는가요?”
“그 녀자?"
문걸은 본처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뒀다.
"아니오. 쌍까풀눈 녀자 이젠 질리오. 이번엔 외까풀눈 녀자를 그려 국제인체화전시회에 가지고 가겠소.”
“왜서요?”
“맨날 쌍까풀녀자만 그려서 그런지. 이젠 보기만 해도 싫증나오. 카리스마 넘치는 외까풀눈이 더 매력적인 것 같소.”
문걸은 춘희를 힐끔 곁눈질하면서 해석했다.
“물론 춘희 쌍까푼눈은 볼수록 곱소. 긴 속눈섭이랑 얼마나 매력적이요?”
춘희는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다행이군요. 리선생님의 외까풀눈이야 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예술인의 눈이여서 매력적이잖아요. 호호호.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돈을 팔아 억지로 쌍겹눈을…”
그녀는 말끝을 흐리우며 혀를 홀랑 내밀었다.
문걸은 카메라를 들고 오다가 주춤 멈춰서 춘희 쌍겹눈을 빤히 쳐다았다. 이윽고 그는 스적스적 다가와 쏘파에 자연스레 앉은 춘희를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찰칵, 찰칵.
조용한 화실에는 숨고르는 소리와 샷타를 누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노란 등산복을 벗고 게내복바람에 쏘파에 앉은 춘희는 여간만 순박한 미가 돋보이지 않았다. 풍만하고 탄력 있는 몸매도 꽤나 매력적이였다.
그러나 문걸은 여느 모델들과는 달리 춘희 보고는 옷을 입힌 채 자세만 여러가지로 취하게 하고 촬영하였다.
웬 일일가?
련이어 샷타를 누르는 문걸의 눈에는 춘희와 영희의 얼굴이 겹쳐보여 마음을 괴롭게 톱질하였다. 이 화실에 왔던 수많은 미녀모델들이 떠올라 서글픔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억지로 웃음짓는 걀죽한 얼굴, 수심에 잠긴 청바위처럼 굳어진 얼굴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수심에 찬 얼굴은 그림을 그릴 때 웃는 얼굴로 바꿔 그리면 되였지만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춘희는 전문모델은 아니지만 꽤나 호응을 잘 하고 자세도 꽤나 잘 취하였다. 그녀 보고 침대에 앉아 하얀 베일로 얼굴을 반쯤 가리우고 몸을 모로 탈라고 하였다.
찰칵, 찰칵!
“참 좋소.”
뒤이어 부더러운 채색조명이 화실을 은은히 비추었다. 문걸은 춘희가 한복을 갈아입기를 기다리며 권연을 붙여 물었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요. 흡연은 심혈관질병과 호흡도질병 환자들한텐 금물인데요.”
“아, 알았소. 녀자들은 다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걸 모르고.”
문걸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춘희한테 꽃너울을 씌워 주었다.
찰칵, 찰칵.
“됐소. 야외에서 촬영하거나 그림 그리면 더 자연스럽소. 언제 백설이 뒤덮인 미인송을 배경으로 촬영했으면 좋겠는데.”
“언제 미인송삼림으로 등산하러 가지요.”
문걸은 옷을 주어입는 춘희한테 다가갔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소.”
그는 돌아서는 춘희의 쌍까풀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내 앓은 거랑 국제인체화전시회에랑 가게 된 거랑 어떻게 알았소?”
“등산하러 다닐 때 핸드폰에 위치공유하지 않았는가요?”
“오-”
그제야 조금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사교무청으로 떠나갈 때에야 만금이 집에 들어섰다.
택시에 나란히 앉아 사교무청으로 달려갈 때였다.
문걸은 나직이 물었다.
“한가지 궁금한게 더 있소.”
춘희는 문걸을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녀자들은 쉰고개 넘으면 다 남자들을 점점 싫어하오?”
“호호호.”
춘희는 코를 싸쥐고 허리까지 굽히며 웃었다.
“그게 다 정상적인 생리반응이죠. 쉰고개 넘은 녀자들이 보편적으로 남자들을 싫어하긴 하죠. 그러나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죠. 교수급화가인 선생님 같은 분은 다를 수 있지요. 행복지수가 높으니깐요.”
문걸은 외까풀눈으로춘희를 힐끔 곁눈질해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40대라, 한창 좋은 나이지. 녀자는 30대는 승냥이 같고 40대는 호랑이라는데.)
사교무청에서는 오색령롱한 샨데리야가 깜빡이고 격쾌한 음악이 격조높이 흘렀다. 꽃단장을 남녀무용수들이 부둥켜 안고 금붕어 지느러미 같은 꽃치마자락을 날리며 쌍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문걸과 춘희도 그 희열에 넘치는 물결 속에 휘말려 들어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비록 문걸의 머리는 허옇게 퇴색했지만 사교무만은 아주 생기발랄하고 멋지게 추었다. 그들의 모든 스트레스, 부담, 고민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훌훌 뿌리워나갔다. 적막과 고독을 훌훌 털어내고 생기와 웃음꽃을 되찾아왔다. 기쁨도 빙글빙글 돌아가고 사랑도 뱅글뱅글 돌아가며 무르익고 있었다…
문걸은 뿔룩한 배낭과 긴 렌쯔를 단 사진기까지 둘러메고 관광뻐스 옆에서 춘희를 마중했다.
 그런데 문걸은 묵직한 배낭을 받아들고 뻐스에 올려준 후 또 뻐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내려갔다.
춘희는 그저 담배를 피우려니 했다. 그런데 문걸은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먼발치를 자꾸 눈빗질하고 있지 않겠는가.
춘희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뻐스가 발동을 걸어서야 마지못해 뻐스에 올라서도 자리에 앉지 않고 자꾸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누굴 기다리는가요?”
문걸은 춘희 옆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전번에 날 구한 녀의사도 가겠다고 했는데, 참.”
춘희는 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문걸을 보고 한숨을 호- 내쉬였다.
 
불시에 일이 있어 가지 못해요. 그러나 제가 바람이 되고 눈꽃이 돼 항상 어데든지 리선생님을 따라 다닌다고 생각하세요. 즐거운 등산의 하루 되세요.
 
문걸은 춘희한테서 온 메시지를 보고서야 한숨을 후- 내쉬였다.
하얀 백설에 뒤덮은 미인송림은 은세계를 방불케 절경을 이루었다.
다른 등산대원들은 뻐스에서 내리자 코스를 따라 희희락락 미인송림을 꿰뚫고 나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문걸과 춘희는 눈꽃너울을 쓴 미인송을 배경으로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코스를 벗어나 림해설원에서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면서 촬영하기도 하였다.
“야호-”
춘희는 너무 기뻐 소녀처럼 입에 두 손을 모아대고 환성을 질렀다.
찰칵.
춘희는 촬영하는 문걸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했다.
“미인송림을 보니 일본 후지산 사망림 생각이 나는데요.”
“일본에 류학 갔댔소?”
“아니, 일하러 갔댔어요.”
“몇년?”
“한 7년 갔댔어요.”
문걸은 머리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교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일본 부자들은 이상해요.”
춘희는 미인송 사이를 걸으면서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향락을 누릴 걸 다 누린 후엔 할 짓이 없어 뭘 하는지 알아요? 오래 살자고  샘물병에 오줌을 받아 들고 다니면서 마셔요.”
문걸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저었다.
“진짜 할 짓도 없구만.”
“건 아무 것도 아니죠. 일본 부자들은 세상 모든 걸 다 먹어보았는데 똥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심지어 소녀의 똥을 다 먹어요.”
“진짜? 하하하.”
문걸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춘희는 그의 미심해하는 표정을 읽으며 뒤말을 이었다.
“일본 일부 부자들은 새로운 자극을 받으려고 진짜 소녀의 똥을 먹어요. 건강한 숫처녀를 숱한 돈 주고 고용한 후 반년 동안 집에 데려다가 영양관리를 해요. 날마다 소녀를 깨끗하게 몸을 씻긴 후 신선한 남새랑 영양가 높은 건과랑 바다 물고기랑 먹이고 신체검사를 하지요. 확실히 영양가 높은 소녀로 가꾼 후 목욕재계시킨 후  컵에 소녀의 똥을 받아 먹지요. 그게 장수약이라고 한대요. 호호호."
       "ㅎㅎㅎ. 진짜 변태들이구먼."
       문걸은 웃으면서도 그것이 일본 일부 변태적인 부자들의 현실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일부 부자들은 세상에서 할 짓을 다 해봤는데요. 아무런 자극이 없어 살 멋이 없다고 어쩌는지 알아요? 죽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됐는지, 죽는 것이 새로운 자극이라고 여기는지, 최후엔 후지산 사망림에 가서 자살해요. 실련했거나 결혼에 실패했거나  패가망신당한 사람들이 해마다 수십명이 사망림에 가서 자살해요. 일본 사람들은 태양신을 믿는데요. 변태적인 사람들은 후지산 사망림에 가서 자살해 태양신으로 승천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대요.”
       문걸은 어깨에 떨어진 눈을 툭툭 털며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태양신이 된다구? 별 바보들을 다 보겠다. 왜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 욕망과 의지는 그렇게도 없다오? ”
“호호호. 그들이 자살하는 방식도 웃겨요. 먼저 죽을 준비를 다 해놓고 차를 몰고 후지산 기슭 사망림에 가죠. 벌써 사망림 령길에 차가 멈춰서 있으면 사람들은 또 누가 자살하려고 왔겠다고 짐작하죠.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살을 말리려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수림에 가만히 들어가죠. 그들은 자기가 자살한 후 신원을 찾기 쉽게 하려고 사망림에 들어가자마자 빨간 천띠를 소나무에 매놓지요. 그리고 수림 속에 들어가 자기 성명과 집 주소를 쓴 천띠를 소나무에 매놓고 목을 매거나 독약을 먹고 자살하죠. 그들은 목숨 걸고 진짜 자살이란 어떤가를 체험하죠. ”
"별 바보들 다 바보겠다. 자살 다 체험해?"
춘희는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
“이제야 제대로 말했어요. 이전에 어떤 분도 좀 앓는다고 삶을 포기하려고 들었다던데요.”
문걸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이제야 춘희가 후지산 사망림 말을 꺼낸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우린 어떤 일이 생겨도 삶의 욕망과 의지를 포기해선 안돼요.”
문걸은 춘희를 또 한번 다른 안목으로 보게 되였다. 일본에 가서 그저 막벌이 일이나 하다가 온 보통녀자라고 보기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춘희 말은 얼마나 삶의 욕망을 안겨주는 말인가.)
그들은 촬영하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나니 다른 등산대원들이 은세계에 사라져버린 것도 다 까맣게  망각하였다.
드디여 그들은 자그마한 눈 덮인 절벽 아래에 이르렀다. 춘희는 눈꽃너울을 쓴 아름드리미인송과 애솔을 보고 환성을 질렀다.
“저걸 보세요. 미인송과 애솔이 련인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있지 않아요?”
문걸도 머리를 들어보았다. 눈가슴 속에서 들쑥날쑥한 바위를 반쯤 드러낸 절벽 틈에 뿌리 박은 애솔은 눈꽃너울을 쓰고 절벽 옆에서 하늘로 치솟아오른 아름드리미인송에 애교를 부리며 안겨 있는 상 싶었다. 진짜 절경을 이루었다. 수십년 동안 미인송과 애솔은 변함없이 포옹한 채 서로 의지하면서 사랑의 힘으로 갖은 풍상고초를 다 이겨내며 굳세게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야, 얼마나 의경이 짙은가!)
춘희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에 푹푹 빠지며 미인송과 애솔에 다가가며 환호했다.
“야- 진짜 멋있다. 저 미인송과 애솔을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세요.”
문걸은 긴 렌쯔를 조절해 노란 등산복을 입고 귤색털실모자를 쓴 춘희를 담았다. 오늘 따라 백설을 배경으로 그녀의 걀죽한 얼굴,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특별히 긴 속눈섭이 유표하게 무언의 매력을 발산했다.
찰칵!
찰칵!
“제가 저 미인송을 안으면 한장 찍어주세요.”
춘희는 눈가슴을 헤치며 그 아름드리 미인송에 다가갔다.
쿵!
“어마나!”
비명소리와 함께 갑자기 춘희가 눈구덩이 속에 사라졌다.
“춘희! 춘희!”
문걸은 춘희가 사라진 눈구덩이 쪽으로 헤쳐나갔다.
이게 웬 일인가? 함정 같은 깊숙한 눈구덩이 속에 춘희가 빠져들어가 허우적거리지 않겠는가.
고드럼이 가득 달린 눈구덩이 밑바닥에서는 물이 찰랑찰랑 흐르기까지 했다.
“춘희, 조급해하지 마오.”
문걸은 황급히 배낭을 내리워놓고 바줄을 꺼내 눈구덩이에 내리드리웠다. 춘희가 바줄을 덥썩 잡기 바쁘게 문걸은 바줄을 있는 힘껏 당겼다.
쿵!
갑자기 눈바닥이 무너지면서 문걸마저 눈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돌연적인 충격에 둘 다 눈구덩이 속에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걸 어쩌는가요?!”
당황해하는 춘희를 보고 어깨 우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주면서 위안했다.
“괜찮소. 우린 꼭 나갈 수 있소.”
그러나 고드름이 줄줄 매달린 세길은 푼이 될 눈구덩이 벽으로 바라올라갈 방도가 없었다. 눈구덩이로 하늘을 쳐다보니 둥그런 하늘이 흐리멍텅하게 흐리면서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리기 시작하였다.
문걸이 둘러보니 그저 눈구덩이 아니였다. 밑바닥에 물이 철철 흐르는 기나긴 계곡이 아니겠는가.
그는 춘희를 물이 없는 바위 우에 세워놓고 폭이 계곡의 웃쪽은 반메터 되나마나하게  벌어졌는데 굳은 눈이 뒤덮여 있어 그들이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람이 올라서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분명하였다. 계곡 밑부분은 서너메터나 되였다. 문걸은 라이타를 켜들고 거머칙칙한 계곡을 따라 아래 쪽으로 내려가면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계곡을 바라올라갈만한 턱은 없었다. 또 어떤 곳은 아예 웃쪽이 밀봉된 지하동굴이였다.
유일하게 지상으로 통한 구멍은 금방 그들이 빠진 눈구멍이였다.
문걸은 춘희 배낭에서 샘물병을 꺼내 바줄끝에 맸다. 뒤이어 샘물병을 눈구멍 우로 힘껏 뿌렸다. 혹시나 샘물병이 나무그루터기에라도 걸릴가 해서였다. 그러나 연신 올리뿌리거 바줄을 쥐여당기면 툭 되떨어져 내려왔다.
“가만!”
그들은 두 말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나 신호가 전혀 없었다. 위쳇도 전화통화도 안됐다. 이젠 유일한 희망은 등산객들이 찾아오는 시각 뿐이였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리시오!”
한식경이 넘도록 아무리 고함쳐도 찾아오는 등산객은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듯이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려 그들의 발자욱이 지워지는 날에는 등산객들이 그들을 찾기 더 어려울 판이였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협곡 밑바닥에 덩그러니 들어누운 너럭바위에 물앉고 말았다. 문걸은 서너길 되는 협곡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빠져 들어온 구멍으로 함박눈송이가 흩날려 들어왔다. 고드름이 더덕더덕한 얼음바람벽은 진짜 수정관 같아보였다.
“절대 포기할 순 없소.”
문걸은 일어나 발길로 고드름을 탁 걷어찼다. 고드름 끝이 박살나 떨어졌다.
춘희가 무릎을 치고 일어났다.
“여기 과일칼이 있어요. 얼음벽에 홈을 파고 올라가면 안될가요?”
“오-”
문걸은 춘희가 배낭에서 꺼낸 과일칼을 받아 협곡 얼음벽에 홈을 파기 시작하였다. 고드름이 덥덥이 얼어붙은 얼음벽에 생존을 위한 희망의 홈이 하나, 둘, 파져나갔다.
“바꿔 팝시다. 앓고난 몸에 무리하지 마세요.”
“괜찮소.”
문걸은 내려오지 않고 계속 과일칼로 얼음꼬치를 찍어냈다.
쿵!
갑자기 문걸이 밟은 발밑의 고드름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어디 상하진 않았는가요?”
춘희는 문걸의 손을 당겨 일으켰다.
“괜찮소.”
쿵!
그때 협곡 천정에서 또 고드름이 무너져내렸다. 굴 어구가 더 커졌다. 직경이 한메터는 될 것 같았다. 다행히 문걸의 배낭도 묻어 떨어졌다.
“아니, 헛수고 했네.”
시간도 퍼그나 흘렀다. 이제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 해 넘어가는 날엔 큰 일이였다. 마구 헤덤벼서는 안되였다. 가능성이 있는 대책을 대야 했다.
“점심때도 지났는데요. 빵이라도 자시세요.”
춘희는 배낭에서 과일이랑 빵이랑 찰떡이랑 꺼냈다. 그들은 찰떡에 김치를 주어 먹으면서 어떻게 하면 협곡에서 빠져나가겠는가 궁리했다.
문걸은 금방 고드름이 무너져내린 협곡 안을 둘러보다가 환성을 질렀다.
“야, 나무 뿌리를 보오. 얼기설기 뒤엉킨게 얼마나 장관이오.”
춘희가 바라보니 곧게 내리뻗은 뿌리에 좀 가는 뿌리가 타래치며 얼기설기 휘감겨 있었다.
문걸은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
“필경 우리 사진 찍던 그 미인송과 소나무 뿌리요. 지상에서는 서로 포옹하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는 뿌리가 저렇게 뒤엉켜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소? 내 이제 나가기만 하면 이 미인송과 소나무 어우러진 멋진 인체화를 그려야겠소. 저 타래치며 휘감긴 뿌리와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포옹하는 미인송과 소나무 형상에 얼기설기 휘감겨 포옹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숱한 신사와 미녀를 그려넣는단 말이요.”
춘희는 생사선에서 헤매는 시각에도 엉뚱한 구상을 펼치는 문걸을 보고 내심으로 탄복하였다.
“우린 여기서 꼭 나가야 하오. 난 마지막으로라도 국제인체화전시회에 꼭 참가해야겠소.”
쿵!
갑자기 뭔가 넘어져 굴 어구를 막아버렸다. 팔뚝만큼한 소나무가 넘어졌다. 아마 함박눈이 내리면서 눈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나무가 넘어진 것 같았다.
“살았소!”
문걸은 환성을 지르며 배낭을 들췄다. 등산용바줄을 꺼냈다. 샘물벙을 바줄에 달아매더니 굴어구에 가로 누운 소나무에 올리뿌렸다. 몇번 올리뿌려 끝내 바줄을 소나무에 휘감았다. 두 손으로 바줄을 꿍꿍 당겨보니 든든해보였다.
“먼저 올라가오.”
“아니, 리선생님, 먼저 올라가야 저를 끌어올리지요.”
“아니요. 저 소나무 너무 가늘어 내 무게를 감당할 거 같지 않소. 가벼운 제 먼저 올라가오.”
그제야 춘희는 바줄을 잡고 매달렸다. 밑에서 문걸이 춘희의 두 다리를 안아 머리 우까지 춰올렸다. 이젠 춘희 혼자 힘으로 바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춘희는 아무리 바줄을 잡고 아득바득 애써도 반메터도 더 올라가지 못하고 주르르 미끌어져내려왔다.
“안되겠어요.”
하는 수 없이 문걸이 두 손으로 바줄을 잡고 두 다리로 바줄을 감으면서 바라올라갔다. 얼마 안돼 당장 굴어구에 가로 누운 소나무대를 잡을가말가 할 때였다.   
뚜두둑!
마른 소나무가지가 무게를 담당하지 못하고 툭 끊어져버렸다. 문걸은 끊어진 소나무와 함께 허망 퉁 떨어졌다. 그 바람에 쳐다보던 춘희도 소나무에 깔리였다.
문걸이 소나무를 치우면서 볼라니 썩박소나무였다.
모든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10. 지하에서 맺은 사랑  
그들은 묵묵히 너럭바위에 마주 앉아 협곡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협곡에는 납덩이 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만 밑바닥에 샘물이 찰랑찰랑 흐르며 공포를 몰아올 뿐이였다.
한참 후 문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오. 괜히 등산하러 오자고 해서 이런 구렁텅이에 빠져서.”
춘희는 굽실굽실한 커피색머리카락을 버릇처럼 어깨 넘어 쓸어넘겼다.
“아니예요. 이것도 운명이겠죠.”
문걸은 춘희의 가녀린 손을 잡고 진정으로 말했다.
“나는 몇달 살지 모르는 암환자니깐 괜찮은데. 전도 창창한 춘희가 여기를 나가지 못하는 날엔 어쩌오?”
춘희도 문걸의 손을 꼭 잡았다.
“리선생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제가 좋아서 등산하러 왔는데요. 우린 절대 여기서 삶을 포기할 순 없어요. ”
순간 그녀의 쌍까풀눈에는 강한 삶의 의지가 반짝였다.
문걸은 머리를 숙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춘희의사 오지 않기를 잘했지. 다만 춘희의사 구명은혜를 갚지 못하는게 한일 뿐이지.”
춘희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내쉬였다.
“혹시 그녀를 좋아하는가요?”
문걸은 진정을 토로했다.
“춘희 살아나가면 전해주오. 내 몸 속에는 한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춘희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춘희는 너무나도 감동됐다.
“진짜 그녀를 사랑하는 거 아닌가요?”
문걸은 춘희 손을 놓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내가 무슨 자격으로 박사의사를 사랑한단 말이요?”
춘희는 문걸을 빤히 마주 보며 물었다.
“아니예요. 누군들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요? 조만간의 차이죠. 사랑은 생명이 길고 짧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시간과 공간을 훌쩍 넘어 한 순간이라도 참다운 사랑만 한다면 그만한 사랑과 행복은 없다고 봐요. 리선생님은 서로 사랑하면 꼭 재혼하고 새 가정을 이뤄야 한다고 보는지요?”
문걸은 피씩 허구푼 웃음을 웃었다.
(조강지처도 날 버리고 가버렸는데 또 재혼해 가정을 차리겠소? 혹시 40대 중반인 춘희는 남자를 싫어하지 않을지 모르겠소만.)
문걸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리고 땅바닥에 널린 소나무껍질을 쥐여들고 보면서 중얼거렸다.
“난 저를 만나면 항상 즐거웠소. 노래를 부르고 사교무를 추고 마사지를 하고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렸소. 참 사는 맛이 났소.”
춘희도 중얼거렸다.
“저는 항상 고독할 때면 리선생님하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즐겁고 좋았어요. 짜증나던 일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속이 후련했어요.”
“남편은 뭘 하오?”
“맨날 술이나 처먹고 지랄하는 것도 남편인가요? 미국에서 돌아와 술중독에 걸렸는데 몇달 전에 한국에 가고 없어요. 혼자 사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문걸은 정색해 물었다.
“40대 한창 나인데 남편을 싫어하오?”
춘희도 정색해 말했다.
“저도 이젠 쉰고개를 바라보는데요. 우리 년령대에 남자를 좋아할 녀자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질려요. 지긋지긋해요. 그저 딸애의 아빠여서 버리지 못하고 억지로 살 뿐인데요.”
문걸은 놀랐다.
(40대 한창 나이 춘희마저 남자를 싫어하다니?!)
춘희 말에 의하면 남편은 대학교 시절의 동창생이라고 한다. 그때만 해도 남편은 학교 축구팀 선수로 활약하는 씩씩한 총각이였다. 그러나 결혼해서야 남편은 술주정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더우기 그녀가 딸애를 본가집에 맡기고 일본으로 간 7년 동안에 숱한 외간 녀자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성병까지 묻혀 들여온 것이였다. 일본 의학박사인 그녀를 속일 순 없었다. 병원에 가서 남편의 병력서류를 열어보니 화험단에 더러운 성병력사가 똑똑히 기록돼 있었다. 그녀는 동료들이 눈치챌가 봐 얼마나 겁나고 창피한지 몰랐다고 한다.
“전 우리 나그네라면 딱 질색이예요. 술을 먹지, 담배를 피우지. 그 알콜중독에 걸려 아무 구실도 못하는 신세에 녀편네 구들을 좀 닦으라면 잔소리한다고 야단치죠. 가정이라면 부부 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죠. 잔소리 좀 했다고 짜증난다고 야단치죠. 좀 도량이 있는 남편이라면 안해 잔소리 하기 전에 뭐나 척척 해야죠. 안해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어야죠. 이 세상에 잔소릴 한다고 짜증내는 남편과 살 녀자 몇이 있는가요? 아직 약혼도 못한 딸애가 이담 혼사말을 할 때 부모 리혼했다는 말을 듣게 할가 봐 억지로 사는 거죠. 알콜중독에 쓰러지면 저한테 얼마나 부담이 돼요. 누굴 한뉘 고생시키자고 술을 하루에도 세때 처먹어요.”
춘희 말을 들으면서 문걸은 고개가 숙여졌다.
(세상 녀자들은 모두 잔소리 하기 좋아하는구나.)
춘희는 문걸의 눈치도 살피잖고 계속 넉두리를 해댔다.
“알콜중독나그네하고 하지 못하는 말을 리선생님한테 하는데요. 널리 량해하세요. 어쩐지 바깥에 나와서 리선생님하고 모든 걸 말하고나면 집에서 답답하던 속이 활 풀려요. 남자들은 안해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여기면 되는 거죠. 그런 도량 있는 남자 몇이나 돼요? 그래서 일본의 적지 않은 독신녀자들은 남자들과 살기 싫어 개하고 산다고 하잖아요. 개는 주인한테 충성하죠.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지요. 남자가 그리우면 개하고 그것까지 하면서 산대요. 남자가 필요하면 그저 친구로 지내면 좋죠. 결혼은 하지 말고 그저 친구로, 애인으로 보내는 것이 제일이죠. 서로 부담거리로 되지 않아 좋지요.”
문걸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였다.
“제 딸애한테도 결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살라고 말할 수 있겠소?”
춘희는 머리를 숙여 협곡바닥에 흐르는 물에 눈길을 돌리며 한숨을 쉬였다.
“거야 딸애 생각에 맡겨야죠. 전 이젠 졸혼했어요. 래세가 있다면 다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래요.”
그녀는 머리를 들더니 불쑥 이런 말도 했다.
“리선생님 같은 분이면 달라요. 지적인 남자고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분이니깐요.”
문걸은 춘희를 빤히 쳐다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졸혼이요. 이젠 진짜 재혼하고픈 마음 꼬물만치도 없소. 이제 며칠 살겠는지, 아니면 여기서 죽을 지조 모르오. 나머지 시간을 그저 즐겁게 보내다가 눈 감으면 되오.”
춘희는 문걸한테 삶의 용기를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기서 꼭 살아나가 춘희의사를 만날 수 있어요. 여기서 나가면 춘희의사하고 친구로 되고 애인이 돼서 날마다 즐겁게 지네세요. 신심을 가지세요. 이젠 해도 거의 넘어가니깐요. 등산대원들이 찾아올거예요.”
그러나 문걸은 어두워지는 협곡 어구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래세가 있다면 춘희의사 구명은혜도 갚고 날마다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소.”
춘희는 문걸의 손을 잡았다.
“래세가 어디 있어요? 금세의 일은 금세에 다 해야 후회없는 인생이죠.”
 
“갱년기에 들어선 녀자들은 남자들이라면 딱 질색이예요. 결혼은 진짜 사랑의 무덤이죠. 그래서 일본의 적지 않은 독신녀자들은 남자들과 가정을 꾸리고 살기 싫어하죠. 가정은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사람들을 정신쇠사슬로 꽁꽁 묶어놓는 감옥인가요? 그래서 일본 독신녀자들은 개하고 산다고 하잖아요. 개는 주인한테 충성하죠.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지요. 남자가 그리우면 개하고 그것까지 하면서 산대요. 남자가 필요하면 그저 친구나 애인으로 지내면 좋죠. 그러나 리선생님 같은 분이면 달라요. 지적인 남자고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분이니깐요. 리선생님이 자기 친구방에 올린 퇴직증을 보니 교수급 설계사더군요.”
문걸은 춘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강지처도 버리고 갔는데 고통지수 밖에 남은게 없소. 남자로서의 기본욕구도 만족을 보지도 못하고 억지로 참으면서 살아야 하오. 이게 바로 예순고개를 넘은 나그네들의 운명이고 숨은 고통이요. 난 아직도 춘희처럼 예쁜 녀자를 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참된 사랑도 하고 싶고 즐겁게 살고 싶소.”
춘희는 삶의 용기를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꼭 살아나갈 수 있어요. 신심을 가지세요. 이젠 해도 거의 넘어가니깐요. 이제 등산팀이 찾아올거예요.”
문걸은 중얼거렸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어도 화가로서의 예술생명은 내 작품과 함께 영생할 것이오. ”
춘희도 감동을 먹고 머리를 끄덕였다.
문걸은 춘희 두 손을 꽉 잡았다.
“이제껏 한가지 궁금한게 있었는데 물어도 괜찮겠소?”
“예. 이런 곤경에 빠졌는데 무엇인들 말하지 못하겠어요?”
“혹시 춘희의사 아닌지?”
“네?”
춘희는 놀랍게 문걸을 마주 보다가 씨무룩이 웃었다.
“저는 쌍까풀눈이고 춘희의사는 외까풀눈에 안경까지 걸지 않았는가요? 머리도 전 긴 커피색머리고 춘희의사는 단발머린데요.”
문걸은 확신에 차서 춘희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화가인 내 눈을 속이지 못하오. 얼마나 찬찬히 관찰했다고. 제 쌍까풀눈과 긴 속눈섭은 모두 해넣은 것 맞지?”
“호호호. 제가 변장술이라도 있는가요? 아니면 요술쟁인가요?”
문걸도 소탈하게 웃었다.
“이젠 속일게 없소.”
그제야 춘희는 커피색가발을 홀랑 벗었다. 헉, 글쎄 단발머리 아닌가. 뒤이어 속눈섭을 떼내고 쌍까풀눈을 내리쓸자 요술이나 부리듯이 외까풀눈으로 변했다.
“춘희의사!”
문걸은 춘희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 어떻게 하나 꼭 살아나가기오.”
춘희는 문걸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힘차게 끄덕였다.
뒤이어 누가 먼저라고 하기 힘들게 서로 볼을 매만지고 비비다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생사선에서 헤매는 시각에 백열화된 사랑의 불길은 그들의 육체를, 혼을 뜨겁게 달구었다. 삶의 욕망과 사랑의 불길은 점점 세차게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문걸은 어두워진 하늘 구멍을 쳐다보더니 품 속의 춘희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배낭을 털어내고 협곡의 졻디졻은 하늘구멍으로 힘껏 올리뿌렸다. 등산대원들이 그 가방을 발견하면 그들을 찾아낼 것이 아닌가.
삶을 향한 그들의 악전고투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춘희의 아이디어에 따라 문걸은 협곡에 끊어져 떨어진 썩박소나무를 토막토막 끊어 무져놓고 자기 등산복 팔소매를 끊어 라이터로 우등불을 지폈다. 송진이 발린 소나무토막에 불이 확 달렸다.
세차게 타오르는 우등불빛은 협곡 벽에얼기설기 타래쳐 올라간 미인송과 소나무 뿌리를 서글프게 비추었다.
문걸의 눈에는 서울 국제인체화전시회에 전시될 “사랑의 불길” 명인체화를 방불히 보는 상 싶었다. 숱한 남녀의 인체로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얽혀 아츠랗게 타래쳐 올라간 미인송과 소나무의 뿌리와 몸뚱이, 어두운 협곡에 세차게 타오르는 삶의 욕망과 사랑의 우등불…
“아, 인체명화가 생사의 협곡에서 태여났다!”
협곡에 실성한듯한 문걸의 환호성이 터졌다.
춘희의 귀에는 소방헬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이 협곡 구멍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 우등불은 삶의 욕망의 불길이였다. 아니, 협곡에서 용암처럼 부글거리며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걸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처럼 덮쳐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문걸이 춘희하구 재혼하면 행복할가? 진짜 황혼의 짜릿한 사랑으로 화학적결합할 수 있을가? 리혼도 하지 않은 춘희가 문걸과 재혼하자고 할가? 그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환자를 살리려고 애정써비스를 한 건 아닌지? 또 그저 유쾌한 친구로 즐기자는건지? 사교무나 추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나 부르고 안마방에 가서 마사지나 하고... 그렇게 즐기자는 걸가?  모든게 분명하지 않다. 그럼 문걸이 짝사랑을 한 건가?
       졸혼이야? 재혼이냐?  나이 들어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사막처럼 말라가면 졸혼하고 싶어하지. 그러나 졸혼하고 오래동안 고독하게 산 홀애비나 과부는 또 재혼할가 말가 하지. 지금 문걸은 그 어려운 문턱에 서서 어느쪽으로 뛰어내릴가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닌가? 
졸혼과 재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문걸의 처지 근심스럽다. 춘희와 영희, 미녀로봇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문걸이 더욱 가엽다.
      어디선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이윽고 구조헬기 엔징소리가 들리는 상 싶었다. 문걸과 춘희는 이젠 살았다고 두 손 모아쥐고 하늘로 펑 뚫린 협곡 구멍을 쳐다보았다...
      문걸이네 하얀 비둘기가 집 유리창문에 날아와 매달려 집으로 들어오려고 날개를 파닥인다.
"왜 또 돌아왔어?"
"바깥이 너무 추워요."
"그래 또 초롱에 갇히고 싶어? 자유롭게 살라고 초롱 안에서 놔주었더니. 바보, 흥!"
비둘기는 유리창문을 부리로 똑똑똑 노크하면서 구구거리는 상 싶었어요.
"초롱 안에 있을 땐 바깥에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요. 정작 바깥에 나오니 주인님 따뜻한 베란다 초롱 안이 생각나요. 더구나 눈풍설에 헤매지 않고 주인이 주는 영양가 높은 먹거리 생각납디다."
       (착각인가? 어허, 세상 우습다.)
      문걸은 자기 처지와 같은 비둘기를 보고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이 집이 옥신각신 할 때마다 항상 평화를 가져다주던 비둘기가 아닌가.
     "비둘기야, 네 처지 불쌍해. 내 마음이 독해 널 받아들이지 않는게 아니야. 널 차마 또다시 초롱 속에 가둬두고 싶지 않구나. 멍청한 생각하지 마."
    그는 부리로 창문을 계속 노크하는 비둘기한테 다가가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비둘기야, 좀 힘들더라도 어서 너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찾아 날아가라."
비둘기는 실망했을가? 아니면 문걸의 말 뜻을 알아들었을가?
하얀 비둘기는 푸드득 저멀리 자유와 평화로 파랗게 물든 푸르른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초롱 안 비둘기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하고 바깥에 나간 비둘기는 초롱 안에 갇히면서라도 따뜻한 주인집 베란다를 그리워 하다니. 아, 참, 주인이 주는 영양가 높은 그 먹거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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