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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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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4권 (56) 김장혁
2022년 11월 03일 10시 54분  조회:140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
 
        66. 부부 공간

      박문은  링컨하이야에 앉아 출근하였다. 그러자 150평방메터나 되는 아파트는 다시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미라씨는 한숨이 후- 나갔다. 어쩐지 남편이 사라지자 홀가분하고 자기만의 세상이 다시 찾아 온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아줌마가 설거지를 하기에 미라씨는 별로 할 일도 없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무연한 맑은 호수를 내다보면서 상념에 빠졌다.
애완견 보라도 심심한지 꼬리를 저으며 다가와 주둥이로 미라씨의 잠옷 자락을 들추며 끼깅거렸다.
“녀주인님, 함께 놀자. 심심해.”
보라는 이렇게 서적을 부리는 것 같았다.
“저리 가.”
미라씨는 손을 쳐들어 칠 상 하면서 보라를 쫓아버렸다. 보라는 끼깅거리며 눈을 흘기며 아줌마 설거지하는 부엌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 이쪽을 흘끔거렸다.
“할 노릇도 없어. 별난 개새끼를 다 데려다 키워.”
그녀는 보라를 쏘아보며 불평을 토로했다.
(저 나그네 어찌나 고독하다고 했으면 저게 뭐야? 녀비서 은희가 글쎄 저런 암캐를 다 친구 하라고 사다 줬겠어? ㅋㅋ.)
그녀는 다시 호수를 내다보며 묵념에 잠겼다.
호수에서는 거위와 물오리가 동동 떠 다니고 비둘기가 호수면을 스치며 날아예고 있었다.
(저 나그네 눈치도 없어. 어쩜 녀비서가 자기를 놀리는 것도 몰라. 분명 자꾸 지껄이니깐. 암캐한테 붙여놓은 거지. 고와서 저 비싼 개를 사다 줬겠어? 은희, 그 년 못된 년, 어쩜 상전을 저렇게 골려줘?)
미라씨는 아예 자그마한 의자를 가져다 창가에 놓고 호수를 구경하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저 나그네 집에 있을 땐 어쨌는가? 회사에 다니면서 돈은 꽤나 벌었지. 허나 마음 속에 가정이란 개념이 있었던가? 안해가 마음 속에 있었던가? 어떻게 보면 안중에 처자가 없은 것 같았어.  날마다 술이나 처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에야 제 굴이라고 집에 돌아오군 했지. 땀에 전 몸에서 물씬 풍기는 분내는 얼마나 괘씸하게 굴었는가? 분명 사창가에 가서 기생들을 끼고 술을 처마시고 안고 돌았지.)
순간 미라씨는 입술을 깨물며 이를 쁙쁙 갈았다.
(부부간에도 공간이 필요해. 그간 졸혼하고 갈라져 있으니 홀가분한게 얼마나 좋았는가. 저 나그네도 내 꽤나 그리웠던 모양이지? 요즘 전에 없이 잘 하는 거 봐. 술도 덜 마시고 퇴근하면 곧추 집으로 돌아온단 말이야.)
그녀는 희쭉 웃어버렸다.
(저 나그네 중국에 총경리로 가게 될 때 내 뭐라고 했어? ‘맨날 한데 붙어 있으니깐. 안해가 얼마나 중한지 모른다고. 이젠 졸혼하고 둘 다 각기 자기만의 삶을 살자. 당신은 당신 술을 마시고 아가씨들을 마음대로 만나 개지랄을 하라고. 난 애들을 데리고 살면서 소설도 쓰고 관광도 하겠다고 했지. ㅎㅎㅎ. 나는 진짜 좋았어. 주정뱅이나그네를 떼버리니 참 좋았어. 때시걱 근심, 빨래근심 할 필요없었지. 나그네를 보지 않으니 마음도 편안했지. 다 자란 애들도 대학에 가서 주숙하고 식사하니 난 굴레 벗은 말처럼 미국 니까라과 폭포에 프랑스 에펠 철탑 구경하고 기행수필도 쓰고 진짜 좋았어. 가을에는 설악산 단풍 구경하고 시도 쓰고 명상에 잠겨 소설도 구상하고. 얼마나 좋았어?)
그녀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건데 중국 관광 말에 홀딱 넘어갔잖아. 중국 명승고적에 폭 빠져 조만간에 중국을 떠날 거 같잖아. 저 나그네와 공간을 두고 살자던 구상도 깨지고 말았잖아. 아마 저 나그네 바라던 바일 수도 있어. 저 나그네와 군철이랑 짜고 들어 날 중국에 얽매두려는 획책일 수도 있어. 어림도 없어. 나그네 하루라도 또다시 술처마시고 아가씨들하고 지분거리기만 해보지. 당장 보짐 싸들고 한국에 날아가 버릴 거야. 진짜 부부간에도 공간이 있어야 해. 드문드문 갈라져 있으면 서로 그립고 만나면 지금처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잖아. 졸혼은 남편 보고 안해와 일정한 공간을 두고 안해와의 리별의 슬픔도 만남의 기쁨도 가슴 아프게 느끼게 할 수 있었잖아. 그런 의미에서 졸혼도 필요해. 저 나그네 중국에 온 천혜의 기회를 리용해 졸혼의 공간적 여백미를 한껏 향수해야지.)
미라씨는 상념에서 깨여나 보라를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는 애완견 보라의 목바를 쥐고 거닐면서 중국에 와서 느낀 긍지감에 가슴이 설레였다.
(여기서 진짜 귀부인 상대접을 받고 있지 않는가.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군철이 안내를 받으면서 무료로 졸정원에 사자림이랑 오원이랑 류원이랑 다 구경했잖아. 주장이랑 동리랑 숱한  수향을 돌면서 명승고적 기행수필과 숱한 시를 쓰지 않았는가. 아무 근심 걱정없이 누리는 귀부인 향수도 쏠쏠해. 마음껏 향수해보고 볼판이야.)

퇴근시간 전에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섰다.
“해 서산에서 돋지 않는기오?”
미라씨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박문은 객실에 들어가면서 아줌마를 보고 말했다.
“저녁 짓지 마세요. 군철 부총경리 자기 집에 청한데이.”
“아이고메. 이젠 몇번 청했는데요. 우리도 언제 집에 아우네를 청해야죠.”
“그래. 그게 형제간에 오가는 정이지. 소주에선 군철 아우 없인 한발작도 내딛기 힘들어.”
미라씨는 남편의 가방과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고 나서 침실에 따라 들어왔다.
“여보시우. 저 개는 왜 길렀어요? 그간 자기 몸도 거두기 힘들었겠는데.”
“말도 말아. 당신 없으니께. 기나긴 밤 보라를 안고 잤지 뭐야.”
“호호호.암캐라도 안고 잤으니깐, 덜 고독했겠군요. 쯧쯧쯧.”
미라씨는 입을 싸쥐고 웃었다.
“아니, 당신 녀편네 없으니 얼마나 좋았겠시우. 저녁에 늦어 들어와도 짜증나는 잔소리 없지. 얼마나 자유스러웠겠어. 그래서 졸혼이 필요한게야.”
박문은 침대에 털썩 들어앉으면서 두덜거렸다.
“졸혼 말 다신 하지도 말아. 졸혼 뭐가 좋다고 그래? 당신 나 같은 짐 뚝 떼버리고 홀가분하게 관광이나 하고 음풍영월하기 딱 좋았겠지. 난 하나도 좋지 않더라구.”
“호호호.”
미라씨는 깨고소해했다.
“보라우. 당신네 경상도 사내들 녀편네들캉(녀편네들과) 떽떽거리면서 대남자주의나 부렸지. 안해를 어디 살뜰히 애무해주는 멋이 있었는가요?”
박문은 아무 대구도 하지 못하며 머리를 숙였다.
미라씨의 공격은 계속 됐다.
“내 뭘했는가요? 부부간에도 공간과 여백이 필요해요. 이렇게 몇달간 졸혼하고 갈라 사니 얼마나 좋았는기오? 당신 대한민국에 계속 함께 있었더라면 안해 중한 거 색각이나 했겠어요?”
박문은 천천히 머리를 들어 녀편네가 눈을 곱게 흘기는 것을 보고 씨무룩이 웃기만 했다.
(그래. 이제야 알겠어. 중국에선 당신 없인 못 살아. 중국에 홀로 오면 녀편네 없으면 술도 질탕하게 마시고 아가씨들도 실컷 놀게 됐다고 기뻐했댔지. 건데 뭐야? 중국은 한국과는 판판 달라. 아가씨들캉 오입하다 잡히면 큰 경을 치뤄. 마음놓고 아가씨를 데리고 놀 수도 없어.)
남편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본듯이 미라씨는 고의로 빈정거렸다.
“소주 구경도 잘했지. 당장 음력설이 되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어. 당신한테 한해 손아귀에서 벗어나 푹 쉴 공간도 주고 자유도 줄테니께.”
박문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안해를 꼭 끌어안았다.
“제발 가지 말라고.”
미라씨는 두 손으로 남편의 가슴을 떠밀었다.
“내 없으면 당신 숱한 아가씨들하구 술도 맘껏 마시고. 얼마나 자유롭겠시우?”
박문은 안해 두 팔을 꽉 잡고 애원했다.
“아니라구. 부부 공간은 잠시 있어야지. 오래동안은 아니야. 부부간에 너무 오래 갈라져 있으면 부부냐? 건 사실 리혼이야. 부부간은 그래도 한데서 살아야 해.”
그러나 미라씨는 일부러 남편을 골탕먹이려고 생똥 같은 말을 했다.
“당신 시대에 너무 떨어졌시우. 부부간에도 공간을 좀 둬야 해요. 지금 일본이나 우리 대한민국 중년녀성들 가운데선  졸혼바람이 불고 있어요. 이젠 애들도 다 컸으니께. 우리도 결혼 생활 졸업하고 부부간에 공간 두고 살자요.”
“아니요. 아니, 난 절대 졸혼인지 뭔지 못해. 공간도 필요없어. 당신과 함께 살래. 그간 내 혼자 살면서 밤이면 얼마나 고독했는지 알아? 밤이 젤 무섭더라구. 기나긴 밤은 공포였어. 다신 그렇게 못 살겠어.”
미라씨는 피씩 코웃음쳤다.
“중국 말에 사람은 황하가에 가지 않고선 말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던데. 당신 정말 이전 잘못 고칠 수 있어?“
”꼭 고치겠어. 믿어다오."
"당신 본명이 도져 바람 피우기만 해 봐.  언제든지 졸혼이야. 그림자도 못 찾게 깜쪽같이 가버릴 거야. 개습관 고치지 않으면 진짜 졸혼이야. 부부간에도 공간을 두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이게 부부 공간의 여백미야. 알만해?”
박문은 미라씨의 앞에 무릎까지 털썩 꿇고 앉아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여보, 다 내 잘못했어. 이제부터 잘못을 고칠게니께. 새 사람 될 기회를 좀 달라고.”
미라씨는 오히려 빈정거렸다.
“당신 뭘 잘 못했어? 돈도 많이 벌어들이지. 안해를 데리고 쏘핑도 잘하지.”
박문은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이전에 밤중까지 술 마시고 집에 가서 주정부리고 당신 때린 거 진짜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당신 제발 날 혼자 두고 가지 마. 응?”
미라씨는 다짐을 땄다.
“경상도 사내가 오늘 이게 뭐야? 무릎까지 꿇고 맹세한대로 할만 하지?”
“오- 그래. 다 해줄게.”
미라씨는 이쯤하면 남편을 혼쌀내줬다고 여기고 남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서 일어나세요. 못난 사람아, 누가 보겠어.”
박문은 쇼를 그만두고 언제 무슨 일 있었더냐 싶이 희쭉 웃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갑세다. 아우 기다리겠어.”
미라씨는 따라 나가면서도 근심했다.
“최총경리 리혼했다면서요? 집에 안해도 없는데 음식을 어떻게 한다고 집에 청해요?”
“가정모 있어.”
그제야 미라씨는 한숨을 호 내쉬더니 걸음을 재우쳤다.
군철이네 집은 수로를 하나 건너 호수가 3층으로 된 으리으리한 별장식 아파트에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군철과 애리싸가 마중 나왔다.
“환영해요.”
애리싸가 서툰 조선말로 인사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형님, 아주머님,”
군철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나서 집 안으로 안내했다.
“고마워요.”
“집에서 하지 말고 음식점에서 간단히 먹으면 될 걸. 고생했어.”
아파트 울안에 푸르른 참대들이 설레이며 마중해 미라씨의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그들이 2층 객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애들이 쫑드르르 달려나오면서 허리굽히며 서투른 조선말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분명 군철이 미리 조선말인사를 훈련시킨 것 같았다.
“호호호. 아유, 귀여워라.”
미라씨는 핸드빽에서 쵸롤리를 몇개 꺼내 애들의 애고사리 손에 쥐워주고 두툼한 빨간 봉투 두개를 꺼내 하나씩 주었다.
“谢谢!”
군철은 깜짝 놀랐다.
“아주머님, 아니, 뭘 애들한테 줘요? 괜히 집에 오라고 해서  부담시켰잖아요?”
그는 애들 손에서 봉투를 찾아 돌려주려고 했다.
미라씨는 되밀어주면서 말했다.
“조카들 주는 걸 받아야죠. 너무 내의하면 형제간 믿음이 파괴돼요.”
그제야 군철은 하는수 없이 봉투를 받아두었다.
“이후에 아주머님과 형님을 모시고 금계호가 소주중심 음식점에 가서 양증호 왕계를 대접하지요. 소주중심을  “동방의 문”이리고도 하는데요. 소주에서 젤 높은 표징건물 중  하나입니다. ”
미라씨는 애들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물었다.
“얘들 중국 말 하잖아? 난 알아도 못 들어.”
군철은 번대머리를 손수건을 꺼내 뚝뚝 찍으며 말했다.
“큰 일 났어요. 애들이 한족 곳에서 자라니 조선말 하나도 할줄 몰라요. 여긴 조선족학교와 유치원도 없지. 한족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나깐요. 자연히 한족말 밖에 몰라요. 집에서 아무리 서당방을 차려놓고 조선말을 배워줘도 고때뿐이죠.”
미라씨는 저도 몰래 한마디 했다.
“장차 한족으로 동화될게 불 보듯 빤하지 않나요? 참.”
“무슨 소릴?! 쯧쯧.”
박문은 못마땅해 안해한테 눈을 흘겼다.
애리싸는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눈치만 살폈다.
군철은 애들 말이 나온바 하고는, 박문 부부간이 기분이 좋을 때 소 뿔을 당긴 김에 빼려고 작심했다.
(회사 직원들을 위해 뭔가 또 챙겨야지.)
“아주머님, 소주 구경 인상 어때요?”
미라씨는 기분나서 화답했다.
“참 좋았어요. 소주에는 어쩜 명승고적이 그렇게도 많은가요? 아저씨 덕분에 유람 잘했어요.”
“이제 북경의 만리장성이랑 의화원이랑 고궁이랑 다 돌아보세요. 북경에는 구경거리 더 많아요.”
“그래요? 점차 중국이 마음에 드네요.”
“그럼 됐어요. 성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세요.”
박문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는 안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진짜 녀편네 중국에 푹 박히고 말았어.)
군철은 번대머리를 손수건으로 슬슬 닦으며 기대에 찬 우멍눈으로 박문 총경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님, 애 둘을 키우기 참 어려워요. 안해 곁에 없는데다가 가까이에 학교나 유치원이 없어 참 힘들어요.”
박문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맞장구를 쳤다.
“그럴테지. 혼자 애들 둘을 키운다는게 어디 쉬워?”
군철은 무거운 입으로 한술 더 떴다.
“우리 회사에 애들을 가진 부모가 많은데요. 모두 유치원이 방정하게 없어서 힘들어 하죠.”
박문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자식, 뭐나 하나, 하나 챙기는 놈이지. 오늘이라고 례외겠나? 오늘은 유치원 문제구나. )
군철은 말을 꺼낸바하고는 내밀었다.
“직원들이 애들 근심하지 않고 출근해 사업에 몰입하게 해야겠는데요. 박총경리님, 우리 회사에 유치원과 탁아소를 차리면 어떨가요?”
박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시에 어떻게 유치원을 차려?”
“회사에서 건축부지만 내놓으면 돼요. 건축자금은 우리 직원들을 동원해 모금하면 될 거 같아요.”
“유치원 부지를 봐둔게 있어?”
“있어요. 우리 회사 창고 앞 마당에 지으면 될 거 같아요. 유치원과 탁아소 경영비용은 근심하지 마세요. 학부모들한테서 사회 비용보다 적게라도 수금하면 돼요.”
“그래?”
박문은 잠간 궁리하더니 군철의 손을 잡았다.
“회사에서도 돈을 대야지. 우리 유치원과 탁아소를 지읍세. 설계는 어떻게 하지?”
군철은 박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설계는 하나가 하면 됩니다. 그는 길림대학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했습니다.”
군철은 박문의 손을 힘있게 잡아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박총경리님, 우리 애들의 부모를 대표해 감사를 드립니다.”
박문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이 사람아, 우린 형제간이 아닌가? 허허허.”
“네, 성님, 고맙습니다. 성님과 말해서 안된 일 없는데요.”
박문은 안해를 돌아보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우는 참 무서운 빨갱이야. 자기 걸 챙기자곤 한마디 말도 안해. 번마다 회사 직원들을 먼저 챙긴단 말이야. 난 아우 같은 빨갱이는 믿고 일할만한 사람이라고 봐.”
미라씨는 옆에서 들으면서 미심쩍은 눈길로 군철을 바라보며 그저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일뿐이였다.
(세상에 어디 공 거 있나? 오늘 공 밥 먹지 않는구먼요.)
그녀는 남편과 군철을 번갈아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여보, 지내보고 말해요. 겉으로 대공무사한 척하는 자들 더 무섭게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덤벼들지도 몰라.)
군철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시름 싹 놓았다. 일이 이렇게 빨리 풀릴줄이야.)
     그는 평소에도 늘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난 절대 아버지처럼 탐관오리로 되지 않을 거야. 절대 아버지처럼 직권을 빌어 재물과 녀색을 도모하지 않을 거야. 자기 노력으로 차례진 돈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한해에 로임총액이 백만원도 넘는데 뭐가 모자라 위법하면서 허비닥질하겠는가! 절대 아버지처럼 도처에서 자기 안속만 차리지 말아야 해. 언제나 3천여명 직원들을 마음에 품고 일하면서 살아야지. 절대 아버지처럼 범죄자로 돼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지 않을 거야. 아버지도 전번에 날 찾아왔을 때  후회하잖았는가.)
     경제시대에 직원을 품고 일하는 간부를 보고  한국에서 온 박총경리 부부는 여간 탐복하지 않았다. 회사 절대 다수직원들도 청렴한 젊은 당간부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군철은 며칠 전에 회사 공회 성립대회를 연 후  공회소조끼리 회의를 열고 직원들의 곤난한 문제와 회사 건설과 경영에 합리적인 건의와 아이디어를 제기할 것을 공회 주석의 명의로 요구하였다. 그런데 애들 유치원문제, 의무실문제, 메모리생산과 공급위기 등 수두룩한 문제가 제기돼 군철은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는 먼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고 이날 박총경리한테 유치원문제부터 제기했던 것이다.
군철은 주방에 내려가 아줌마를 보고 채를 올리라고 하였다. 주방에서는 아줌마와 함께 리나와 지예가 한창 점심 준비에 맴돌고 있었다.
이윽고 애리싸와 아줌마가 밥상을 들여다 놓았다.
미라씨는 엉거주춤 일어나 아줌마한테서 행주를 주어들고 밥상을 닦았다.
“아주머님, 오늘만은 손을 대지 마세요.”
“아니, 아저씨 안해도 없는데요.”
“오늘 주방 일을 할 사람 있어요.”
미라씨는 밥상을 썩썩 닦으면서 애리싸가 나가자 중얼거렸다.
“애리싸야 때시걱 못할 거고. 누가?”
군철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오늘 애들도 보라고 본댁 리나하고 녀동생 지예를 오라고 했어요. 지금 한창 주방에서 일하느라고 미처 인사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그래? 참 잘했어.”
박문 총경리는 안해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제수를 만나면 복혼하라고 잘 권해보라고. 애들을 봐서라도 함께 살아야지. 안 그래?”
그는 군철을 보고 말했다.
“뭐니뭐니 해도 그래도 조강지처가 제일이야. 애들 둘이나 낳고 무슨 놈의 리혼이야? 아우, 쓸데 없는 자존심 버리게나. 어서 복혼하라구. 애리싸는 가만히 보면 오래 함께 살 녀자 아닌 거 같애. 동서방 혼인풍속도 다르고.”
군철은 무람없이 말했다.
“글쎄요. 엄마 없이 자라는 애들을 보면 마음 아파요. 그런데 리나가 애들을 버리고 나갈 때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구요.”
미라씨는 이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뭣 땜에 갈라졌는데요?”
군철은 속임없이 털어놓았다.
“제가 회사 회식 때문에 자주 술을 마시고 밤중에 집에 들어갔지요. 리나는 회사 일만 일이라고 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야단쳤지요. 게다가 저를 따라다니는 녀비서랑 많다고 질투하더니 애들을 버리고 훌 나가버렸지요. 그 일을 생각하면 괘씸해서, 원.”
박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우, 복혼하게나. 안해들 소견머리 졻아서 그래. 회사 부총경리면 회식이 잦을 수도 있지. 리나씨는 우리 회사 인사과 과장으로 일하잖아? 사람을 다루는 사업하는 녀자라면 그런 것 쯤은 리해해야지. 그걸 허물 삼으면 어떻게 살아? 남편 총경리 하지 말게 하고 맨날 집에 붙잡아두겠나? 원, 참. 코막고 답답해.”
박문은 분명 자기 안해한테도 하는 말 같았다.
“아우도 졸혼 좋아하나?”
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졸혼하니 얼마나 좋아요? 금발애인도 마음대로 거느리고 회식도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 같은데요. ㅎㅎㅎ.”
“졸혼 말 내 앞에서 하지도 말라구. 가정이란게 어디 애들 장난이야? 밤 자고나면 리혼하고 재혼하고 졸혼하고… 참, 이놈의 세상 리해 안돼.”
군철은 우멍눈으로 박문의 눈치를 힐끔 곁눈질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윽고 애리싸 뒤를 따라 리나와 지예가 채를 두 접시씩 들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박총경리님, 사모님 주방에서 일하다나니 미처 인사 못해 미안해요.”
박총경리는 씨무룩이 웃으면서 리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아. 리과장, 오늘 수고 많구먼.”
“천만에 말씀을요.”
“안녕하세요? 전 녀동생 지옌데요. 첨 뵙습니다.”
미라씨는 반색했다.
“오, 아저씨한테 저렇게 이쁜 녀동생도 있군요.”
술상을 다 갖춰놓자 군철은 돌아가면서 포도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놓았다.
뒤이어 그는 술상을 둘러보면서 권주사를 했다.
“오늘 가정 분위기에 박총경리 형님과 아주머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게 돼 기쁩니다. 변변히 갖춘 건 없지만요. 많이 드시고 즐거운 저녁 되시기를 바랍니다.”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우리 형제 우정과 앞날의 행복을 위해 잔을 듭시다.”
“위하여!”
술상에는 잔을 부딛치는 소리 딩둥댕 귀맛좋게 들렸다.
애리싸는 술이 서너순배 돌자 우쭐 일어나 하직을 고했다. 아마 리나와 함께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는 아무리 서양 녀자라고 해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군철은 더 말리지 않고 보내버렸다.
미라씨는 리나를 보고 참았던 말을 꺼냈다.
“리나씨, 애들을 봐서라도 최총경리하고 다시 함께 살아요.”
리나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박총경리도 끼여들었다.
“리과장, 최총경리 나 때문에 회식 잦았는데 널리 량해하라구. 다 내 잘못이야. 안해 곁에 없으니깐. 적적해 자꾸 아우를 불러냈지. 그런다고 애들을 버리고 나가버리면 아우는 어떡하고 애들은 어쩌게?”
그 말에 리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쭐 일어나 자리를 떴다.
지예가 따라나갔다.
군철은 지예를 말렸다.
“나둬! 가겠으면 가라지. 졸혼한다고 애들 둘까지 다 버리고 달아난 지독한 년이야.”
“엄마, 가지마! 엄마, 어, 허헉, 흑흑.”
침실 쪽에서 애들의 울음소리, 애원소리가 들렸다.
“엄마, 같이 자자! 엄마야, 가지 마! 흐흑, 흑흑, 엄마!”
객실의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허빈다.
박문은 참다 못해 군철을 타일렀다.
“이 사람아! 뭔 소리야? 이럴 땔수록 흉금이 넓어야지. 그래, 애들을 엄마 없는 자식으로 만들 잡도린기여?! 원, 참.”
그날 저녁 술상은 아주 재미없이 돼버렸다.
     가정분란이 초래한 난장판이다.
     아니, 졸혼이 가져다준 혼란인가?
     졸혼은 가정이란 보금자리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게 되였다. 졸혼은 안개 속에 들어선 것처럼 갈 길을 잃고 아리숭하게 돼버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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