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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력사기념은 어떻게해야?
청명절이 돌아오니 각곳에서 렬사릉원을 찾아 추모활동을 하고있다. 그런데 보면 거의가 학교나 부대, 공안아니면 일부의 행정기관에서나 움직일 뿐 그것이 아직까지도 국민전체의 지속적인 행사로는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내가 보건대 백성들은 거의가 고작 안다는 것이 청명절이 돌아오면 구천에 간 제 조상을 위로해 귀신돈을 태우거나 아니면 절당에 가서 향을 태우고 불공하는 그 몇가지외에 휴식하거나 아니면 가족별유람하는 그것뿐인것 같다.
국가에서는 렬사릉은 왜 세웠는가? 청명절은 국민들에게 사상교육을 함에 두말할것 없이 기회건만 규정된 휴식일을 멋없이 그저 흘려버리게하는지 리해안된다. 그냥 그런다면 이역시 하나의 큰 실책이 아닐가?
남은 국민교육을 위해 기념행사를 어떻게 하고있는가를 한번 살펴보자.... 어느땐가 신문에 소개된 글을 보고 알게된건데 불란서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머릿속에다 력사를 기념하는 의식을 심어 그것이 뿌리를 밖게한다고 한다. 불란서 중소학교에서의 력사, 지리, 공민소질과는 다가 주요하게 제2차대전기념관을 참관하는것과 다른 견학들을 긴밀히 련계시키고있다. 그렇게 하니 학생들의 과외활동은 거의가 그 어떤 무미한 놀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례를 들면 박물관같은데 가면 그저 구경만을 하게되는것이 아니라 해설원의 해설을 귀담아들어야 하니 훌륭한 직관교학이 되는 것이다. 불란서의 어린이들은 그런 방법으로 과당에서 배우지 못한것을 보충하는것이다. 참관을 하거나 견학을 하고와서는 집에서 자기가 보고 들은것들을 그림이나 도표로 표현해내니 무미건조한 피로란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불란서 어린이들의 소시적의 경우다.
가까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은 정부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아세아 여러 나라를 침략해서 남을 해친 죄의식을 되도록 잊어버리게끔 하면서 다른 한면으로는 2차대전에 동경시내가 대폭격을 받고 히로니마, 나까사끼가 원자탄에 의하여 훼멸된 일을 잊지 않게 하느라 해마다 국가에서 전국민이 참가하는 추도식을 륭중히 거행하고있는 것이다. 이때면 수상이 직접 그장소에 나타나 수난자들에게 묵도를 하고는 연설하는데 남을 침략했던 침략자로서의 죄책감보다도 외려 피해자로서의 억울함과 격려로서 국민은 감동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하여 그의 연설을 들은 국민은 반성보다도 자긍심을 더 갖게되는 것이다.
중국은 유구한 력사를 갖고있다. 하기에 그 어디에나 력사를 기념할만한 유물들이 많고도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문화혁명”때 거의다 훼멸되고만 것이다. 다행히 국가가 중시를 돌려 기념비복구를 많이했거니와 기념활동을 더러하고있는 것이다. “918사변”기념일, “77사변”기념일, 그리고 “남경대도살기념일” 등등. 그런데 기념자가 많아봤자 번번히 그런 기념비가있는 도시사람 얼마간에 연구전문가, 학자들이 끼이여 좌담회나 여는 정도에 그치고만다. 중국에서는 1951년도에 벌써 9월 3일을 항일전쟁기념일로 정해놓은것이다. 그런데 그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될가? 필자를 포함해서 모르거나 알아도 얼빤히 아는 사람이 아마 대다수일 것이다. 국가는 이런 기념날마저도 너무나 중시해오지 않았다.
그나마 유적이 제대로있다면 또 모르겠다. 그 어느 나라든 력사를 기념하는 주요방식이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인데 중국은 “문혁(文革)”때 퍼쓰쥬를 하느라 훼멸하다보니 남은유적이란 거의없다싶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어떠한가보자. 독일에서는 수도 백림시를 다시금 복구할 때 본래의 유적지들은 중점으로 보호하면서 2차대전 기념관을 새로세운건데 그들은 시내에 있는, 맹군(盟軍)의 폭격에 허물어진 집에서 탄알구멍이 무수히 난 벽을 골라 그것을 력사기념물로 남겨 후대가 보게함으로써 참혹했던 세계대전의 교훈을 대대손손 잊지않게끔 교육하고있는 것이다. 그려면서 독일에서는 맹군(盟軍)이 백림시가를 함락했을 때 비행기의 폭격에 파괴되였던 드레스덴대교회당을 재건한건데 벽 어느한곳이라도 틀리지 않게끔 원모양대로 복구를 잘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전국각지에서 파괴된 유물은 거의다 찾아내여 원형대로 복구하여 전함으로써 후대가 두고두고 기념하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 비해서 중국은 어떠한가? 훼멸된 고적이라하여 복구를 하여도 원모양대로하지 않고 비슷하면 된다는데서 아무렇게나 옛멋을 내니 꼴불견인 것이다. 그런것을 어떻게 유물로 여기고 력사를 기념한단말인가?
한심한것은 남방 어느 농촌에서는 잘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촌지서가 나서서 촌민들에게서 20만원의 자금을 긁어모아 모택동의 절당을 지은것이다. 시퍼런중산복을입고 앉았으니 모택동이라지 얼굴모양이 어디같기나한가. 우수운건 앞쪽에 돈그릇을 두손으로 받쳐 든 인형이 있어서 례배를 오는 사람들은 먼저 돈부터 내고 절을 하게끔 규정해놓은 그것이다. 그앞에 불공하고 엎드려 빌면 신세가 돌아지고 잘살게된다는가?
국가에서는 모택동의 고향 소산에다 이미 1억3천만원의 자금을 넣어 릉원과 기념관을 크게 건설했고 천안문광장에도 하나 있는건데 구태여 촌구벅에서 따로 그같이 만들어 신으로 믿을건 뭔가? 그러면 기념일가?... 무지한 충성심이 대대로 전해질수는 없는 것이다. 그 후대들은 이제 아무때건 머리를 스스로 깨치게 될 것이다.
내가 알건대 지난 몇해간 연변에서는 우리 민족의 발전력사와 더불어 민족의 자긍심을 키워옴에 노력을 많이해왔다. 그 표현과 증거물인즉 과거에는 없었던 기념비들이 많이 일어선 그것이다. 주덕해의 동상을 비롯하여 간도 이상설관, 윤동주생가와 시비, 일송정, 15만탈취사건비, 청년문사 송몽규묘소.... 이것들은 연변자치주선전부의 지대한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을것이다. 좋은 일을 많이했다. 그런데 한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문화침투를 막아내지 못했으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 침투는 그저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감히 진행하지 못하는 친일행각인 것이다. 나는 그것에 놀라면서 분노한 것이다.
분석해보면 가히 그런일이 발생할수도 있는 여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전적으로 연변문인중 최룡관이와 같은 사람의 작간에 있은걸로 분석된다. 나는 연변작가협회건 주선전부건 그냥 질타만하고싶지 않다. 너나없이 지난때 우리민족 수난의 력사를 잘 모르면 그럴 그럴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그럴수 있다고 말하는건 제민족 수난의 력사를 잘모르면 연변동북아연구원 최룡관의 괴변을 옳은 것으로 믿어줄수있다는 말이지 다른게아니다. 그러니 더 견책하고 싶지도 않은데 유감이라면 왜서 다들 여지껏 흐리멍텅해서 정신을 못차리는가 하는 그것이다.
청마문학제 따위의 명분없는 불결하고 어지러운 행사가 이제다시는 연변땅에서는 벌어지게 말아야 한다. 그것은 국정에 어긋나고 민심에 배반하는 역행위거니와 반동임을 모든 문인들이 알아야 할 바이다. 그러면서 외래의 문화침투를 막는것 또한 우리들 문인 모두의 직책이라는것을 명기해야할것이다.
우리 모두 중화의 부끄럼없는 지식인이 되기위해 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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