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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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협화회의 죄악
2013년 04월 04일 19시 23분  조회:3510  추천:4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협화회의 죄악 

 

 

사건발생지점ㅡ 삼조(三肇)

 

조동(肇东)、조원(肇源)、조주(肇州)를 삼조(三肇)라고 하는데 할빈(哈爾濱)근처에 있다. 만주괴뢰국을 세우고 동북을 완전히 강점한 일제는 북만에 있는 삼조(三肇)의 항일세력을 뿌리채뽑아버리려고 위군, 경찰과 협화회골간으로 이루어진 특공인원들을 전부동원하여 야만적인 토벌을 수차감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독자가 똑똑히 기억해둘것은 그자들의 "특공인원"이란 전부가 "귀순과 투항"선전을 맡은 협화회간부였다는 그것이다. 

 

(1). 인간성을 잃은 만행  

일제침략자들은 산사람을 실험용으로 해부하였거니와 심장을 뜯어 먹기까지 했다.

1938년 2월, 봉천(심양)에서 조원(肇源)에 온 천엽의학박사(千叶医学博士)라는 일본사람 야마다는 경찰손에 붙잡힌 항일분자를 실험용으로 삼아 산채로 배를 갈랐거니와 너는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귀순할줄도 모르느냐 하면서 심장을 뜯어냇던 것이다. 그자는 뜯어낸 심장을울안에 두엇다가 이틑날 이참(二站)에 갔던 참사관(參事官) 하야시가 택시에 앉아 지나던 걸음에 기공서(旗公署)에 들리니 야마다는 자기가 뜯어낸 항일간부의 심장을 줘서 정신병에 걸린 그자의 녀편네를 치료하게 했다. 잔인한 그자 야마다의 손에 그같이 심장이 뜯기운 항일간부가 하나뿐인게 아니라 11명이나 된다. 

같은해의 일이다. 경무과(警務科)의 일본사람 사토의 녀편네역시 그비슷한 병이 걸린건데 할빈(哈爾濱)병원에 가서 의사를 보였더니 그 일본의사역시 병자가 사람의 심장을 먹으면 낳으리라했다. 그리하여 사토는 어떻게 하면 사람의 심장을 얻을건가고 고민하는 판인데 한 경무과(警務科)에 있는 경무 요시노가 도적질을 하다 잡힌 중국사람 셋의 심장을 뜯어내여서는 녀편네의 병을 치료하라고 그에게 주고는 세중국사람의 시체는 강물에 처넣었다.

이같은 일을 조사하고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비일비재였던 것이다.       

(2). 32명지사의 참혹한 죽음  

1940년 9월. 북만의 동북항일련군 제12지대는 극히 간고한속에서 항전을 견지하고 있었다. 일제는 저들의 통치지위가 흔들릴것 같으니 삼조(三肇)에서 다시금 부활한 항일조직을 찾아내려고 위군, 경찰과 협화회골간으로 이루어진 특공인원들을 또다시 동원시켜 수색하면서 대도살을 감행했다. 그자들은 저희들의 눈에 조금만거슬려도 붙잡아 누가 공산당원인지 대라, 너는 항일적극분자아니냐며 따졌거니와 이루형언 할수조차없는 잔혹하고도 야만적인 혹형과 대도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특공인원"인 협화회분자들의 직심스러운 선전ㅡ 간언리설에 끝내 넘어가고 만 변절자의 밀고로 하여 중공룡강공작위원회(中共龙江工作委员会)의 지하실은 끝내 발각되여 파괴되였고 조직인원들의 명단은 적의 손에 들어가고만 것이다. 그때로부터 많은 지하당원, 항일구국회, 항련지대의 전사와 항일군중이 체포되기시작한건데 석달사이에 항련지대제12지대장 서택민(徐澤民), 참모장 리충효(李忠孝ㅡ 후에 반변), 제34대 제1중대장 애청산(艾靑山), 삼조(三肇)지구공작위원회 공작원 양홍걸(楊洪杰 ), 리명수(李明樹) 등 6명의 분회장(分會長)을 비롯하여 항일군중이 292명이나 체포되였던 것이다. 그중에서 32명을 엄중하다면서 일경은 때리고 차고 주리틀고 전기취조를 하는 등...온갖의 고형을 다했지만 굴복시키지 못하겠으니 나중에는 사형을 선고한건데 그 32명렬사는 다가 사형장으로 나가면서 "중국공산당만세!"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구호를 웨치였던 것이다. 그들이 희생된 날이 1942년 2월 3일이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일제침략자들은 애청산(艾青山), 장덕(张德), 조상(趙祥) 등 3렬사의 머리는 떼여 십자가의 중앙포대에 걸어놓았고 그들의 시체는 파놓은 웅덩이에 처넣고는 휘발유를 뿌려 태워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조주(肇州)남문에다 포고를 붙여놓기를 "그누가 시체를 건사하면 같은죄로 취급할것이다"했다. 그러고나서 3일후에는 적들이 조상(趙祥)의 머리는 청강현(靑岡縣)에 가져다 남쪽성문에 높이달아놓았고 애청산(艾靑山)의 머리는 조원현(肇源縣) 동쪽성문에다 높이 달아놓았던 것이다. 적은 이런모양으로 진압성세를 보임으로서 인민들의 반만항일투쟁의지를 꺾어버리고했던것이다. (글래원 <<黑龍江沿革史講稿>>,  <<鐵血网>> ) 

    

아직 쓸글이 많지만 길어지는것 같아 여기서 줄인다.

보다싶히 북만에서 피흘리며 싸웠던 항일용사들의 그 비감한 처처형형의 광경과 인생종말은 여운을 길게 남기면서 사뭇 가슴을 쓰라리게하고있다.

일제침략자에 반항하여 끝까지 싸운 그들의 의지, 그들의 사상. 그들의 죽음, 그들의 그러한 인생이 그래 조소받고 비웃을 받고 놀림을 받아야할 리유가 무었인가? 하건만 같은 그 시대의 사람 류치환은 그렇게 했다. 정직선량해야 할 인간심을 떼여 개를 먹였는지 그는 그들의 죽음을 조소하고 비웃었다. 비웃어도 너무나 지독하게 비웃었다. 그래 그렇게하는것이 옳았단말인가? 시란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그가 왜서 그랬는가를 의문하고 격분을 하게되는 것이다.
류치환이 "특공인원"이 되여 삼조참안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그때 협화회의 골간이되여 협화회 할빈지방사무국에서 사업한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가장 대표적인 반동시 "수"도 그때에 쓴것이다. 내재적인 어떤 관계가없을가?
그것은 시작자인 류치환이 목적하고 바라는 바의 반역선동(叛逆煽動)주제가 너무나도 로골적으로 적라라하게 드러나보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한국평론계에서는 언녕 친일적인 반동시로 정평이 난것이다. 한데 연변의 최룡관이만은 제딴에는 시를 안다면서 평론을 한답시고 뻔뻔스레도 한바탕 추태를 부렸다. 바로 그 시기에 쓴 류치환의 시 수(首)ㅡ 그것은 항일련군을 조롱한것이 아니니 그 표현은 반어적이요 그래서 항일을 부르짖은 대단한 수작(秀作)이 된다는가, 류치환이 반일감정이 있었다는 티끗만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도!  아무리 돈에 환장을 했다해도 아무렴 사람이 어쩌면 그정도가 되는가? 시퍼런 대낮에 대로에 엉치를 까고 뒤를 보면서도 부끄러운줄을 전혀모르는 꼴이니 바로 이런걸두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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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력사공부
날자:2013-04-06 11:45:55
모르는것을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난의 년대 수난의 력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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