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시사론평
대종교와 한국독립운동
대종교(大倧敎)는 20세기 민족수난의 시대에 반제국, 반침략 저항정신의 중책을 이루었으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준 민족종교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직면하여 우리 민족은 국권회복운동의 정신적 기반으로써 국조(國祖) 단군(檀君)을 구심점으로 삼았다. 민족종교인 단군교(檀君敎)를 재건한 다음, 1910년 대종교로 개칭하였다.
대종교는 종교단체이기보다는 독립운동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리하여 종교뿐만 아니라 외교, 교육, 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미(對美), 대일(對日) 외교활동 시도와 “을사5적 처단” 의거 등이 실패하자 교조(敎祖) 나철(羅喆, 羅寅永)과 그의 동지들은 대종교총본사(大倧敎總本司)를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인 중국동북지역(滿洲)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대종교 포교를 위해 각지에 설치한 시교당(施敎堂)은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특히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단체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포교활동을 통한 시교당의 설치도 확대되였다.
그 결과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단체는 중광단(重光團), 정의단(正義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신민부(新民府) 등으로 맥락이 이어졌으며, 대종교도들이 주류를 이룬 독립운동단체의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청산리대첩(靑山裏大捷)이였다.
이와함께 각급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자주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단군을 독립운동세력의 단결과 통합의 중심가치로 삼음으로써, 만주지역의 우리 민족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중국동북군벌의 방해와 일제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