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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족》 월경론(越境论)
14. 黃-趙 정체성 論爭’의 함정
김문학
최근 전개된 황유복 선생님과 조성일 선생님의 ‘조선족 정체성(아이덴티티) 논쟁’, 그 논쟁의 無意味보다도 ‘아이덴티티’를 사고하고 인식하는 우리 지식인의 한계를 재인식하게 한 계기가 된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논쟁의 주인공인 黃 有福 先生님과 趙成日 先生님은 필자에게 있어서는 學問적 대선배이며 同胞의대선배라는 의미에서 모두 다 존경하는 지식인들이다.
황교수님은 조선족연구의 제1인자로서 사회인류학적 방법으로 조선족 연구의 선구자적 업적을 남긴 조선족 연구의 프로패셔널이다. 趙先生님은 비록 문학평론이 전공이지만 특히 7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老益壯하여 전공부문이 아닌 문화연구 領域으로도 진입하여 조선족 文化 의 논진을 펼치는 용기와 그 연찬정신에는 가히 감복할 만 하다. 하여 아마추어도 전공영역 밖에서 연구할수 있다는 케이스를 잘 보여준 인물이시기도 하다.
이런 두분의 개인적 경력을 전제로 하여 필자는 ‘황조논쟁’에 대하여 개인적인 인상적인 담론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족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담론하게 된 것은 개혁개방 후 인구이동과 월경(越境)적 활동, 한국과의 조우를 통해서 새삼스럽게 ‘중국’을 재인식하면서 이 모든 중층(重層)의 他者성을 전제로 하게 된다. 따라서 조선족의 아이덴티티 자각은 이 여러 중층의 他者와의 경계성에서 비롯되며 예전 1,2세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돌출해지고 클로즈업 된다.
黃趙論争의 포인트는 한마디로 이 他者性에 맞춘 (또는 그에 의한 재규명, 규정되기도 하는) 理解, 認識의 차이점에서 기인한것이다. 황교수가 지적했다시피 ‘디아스포라’의 한갈래로서의 조선족이 중국(중국인)과 한국(한국인)이란 어느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족들이 자기 정체성(아이덴티티)을 확보할것이 큰 문제다.
그는 학자로서의 연구경험을 축적하면서 내린 결론은 ‘조선족은 바로 조선족이다’는 ‘100%조선족’설을 주장한다.
“조선족이라는 3글자속에는 우리 선대들이 조선(한국)에서 이민해 왔고, 우리는 조선(한)민족공동체(ethnic group)에 소속되며, 우리는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이라는 내용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헤럴드 고가 말한것처럼 ‘우리는 100% 조선족이다’라고 떳떳하게 말하면 된다.”
그는 미국하버드대에서 ‘한국계미국인”연구업적을 비교분석하면서 한국문화와 차별되는 탈 한국적인 미국 코메리칸 문화의 창출을 ‘한국계미국인’의 독자성으로 인식하고 같은 차원에서 중국의 ‘조선족문화’도 창출 해냈다고 역설한다.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조선족’의 독자적 아이덴티티를 예리하게 석출해냈다. 그리하여 황교수는 ‘우리는 조선족의 정체성(아이덴티티) 때문에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소리높이 주장하기에 이른다.
황교수의 지론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자신과 후대가 주류사회진입을 위한 그런 민족적 조선족적인 아이덴티티가 확고한데 또 무슨 우왕좌왕이 필요한가”는 현재의 조선족의 아이덴티티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석출했다.
조성일선생은 조선족이 과경(跨境)민족으로서 당연히 그 중성민족이고, 또 그 문화는 전통적인 고유의 조선반도에서 온 조선문화와 생활국인 중국문화가 어우러져 그 중성을 띠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요컨대 조선족은 ‘이중성민족’이며 ‘이중성문화’의 민족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디아스포라의 특징으로서 조선생의 지론은 새로운 내용이 없으며 지나치게 조선의 시원(始源)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중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여기서 결락된 것은 시원이 아닌 現代 우리 조선족이 ‘조선족’으로서 수립될수 있는 한국과도 아주 이질된 그런 조선족의 현재의 내실인것이다.
시원을 강조하는 조선생과 시원을 이미 넘어서 새로운 ‘조선족’이 창설됐다는 분기점은 여기서도 서로 대립된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조선생은 조선족의 문화패턴(型) (그것은 문화인류학의 개념으로서 아무리 작은 집단사회에서도 그 독자적 文化를 그 집단 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미국 여류 인류학자 루즈•베네딕트의 이론) 즉 이중성 문화형을 그대로 조선족의 아이덴티티에 적용시켰으나 문화패턴과 아이덴티티는 꼭 100%로 合致하지는 않는다.
아이덴티티는 집단성원내의 무수한 개인의 아이덴티티도 포괄되는데 그 얼굴은 문화의 패턴보다 더 무수히 부수적이고 복잡다단하다.
이밖에 필자가 지적하고싶은 또 한가지는 조선생은 황교수의 ‘100%의 조선족’에 대한 개념에 대해 몰이해 했고 또 착각을 한 측면이 컸다. 황교수의 ‘100% 조선족’은 ‘조선족’개념이기도 하며 아이덴티티에 직결된 카테고리로서 거기에는 조선민족의민족적 특질이 이미 내포된 것을 의미하는 ‘중국속의 조선족’의 정립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논쟁도 확실한 결론이 없이 不毛의 무의미한 논쟁 그것만으로 막을 닫는다.
황교수는 조선생의 그 ‘‘황교수의 논조가 우리 조선족을 이른바 중국을 이탈하는 무엇으로 몰아부치려 하는지 우려를 떨쳐 버릴수가 없다. 문화대혁명기간에 8.2. 8.4의 터무니없는 사건을 조작하여 우리 조선족을 叛国暴乱의 반역자로 매도한 참안이 문득 필자의 눈앞에 떠오른다’’는 말에 질리고 만다.
‘‘왜냐면 조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아직도 조성일선생님께서는 아직도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고 황교수는 한탄분노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말장난보다는 지성인들이 해야할 사회적, 실천적 노력을 힘을 모드자’’고 황교수는 호소하고 있다.
황교수님의 분노는 학술문제를 정치문제로 에스컬레이트 시키는 조선생님의 자세에 대함에서 였다. 필자는 그 분노를 잘 이해하고 있다. ‘조선족 개조론’의 저자를 학문적 견해를 넘어서 왜곡, 중상했던 장본인 역시 조선생님등 좌파지식인들이 였다고 한다.
필자 역시 무차별로 당해야만 한 아픈 드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이런 저질적인 고루한 구습을 21세기에서 다시 근절해야 생각했는데 역시 그 ‘발톱’은 존재하는 한 늘 상습적으로 모습을 나타내고 만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이러한 不毛의 논쟁은 오히려 조선족을 혼란에 빠지는 ‘함정’을 만들고 있다. 깊고 깊은 미스터리의 함정에 빠져 아이덴티티 의식이 미약한 조선족에게 아이덴티티의 커다란 혼란성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황교수님은 그 혜안으로 爭論의 無意味를 간파하고 그뒤 무시한것은 아주 적절한 판단이였다고 사료된다.
‘‘우리 조선족 지식인들이 좀더 학술에 접근한 논쟁이 있어야 되는데…’’
오호! 痛哉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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