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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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년전의 일본 유학붐(김문학)
2010년 07월 15일 08시 49분  조회:6038  추천:32  작성자: 김문학

<장편연재>근대 재발견·100년전 한중일(6)

100년전의 일본 유학붐


김문학

  갑오청일전쟁 이듬해인 1896년 음력 3월, 중국인 일본유학생 13명이 일본에 파견된다. 청국주일공사 유경은 청정부에서 모집한 13명의 청년을 일본문무대신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에게 위탁하였는데 그는 도꾜고등사범학교교장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에게 일임시켜 받아들이게 했다.

  이것이 근대사상 최초의 중국인 일본유학생이였으며 이로부터 중국인의 일본유학사의 첫 페이지를 연다. 기실 1862년경 근대 중국 유학생의 선구자인 용굉의 권유로 1872년 120명의 학동을 미국에 유학생으로 파견했으나 그뒤 1880년대에 중지시키고 유학운동은 좌절당한다.

  13명의 중국청년을 정열적으로 맞아들인 가노 지고로는 저명한 교육자, 유도가로서 중국근대사의 거물인 황흥, 로신, 진독수와 같은 인물을 제자로서 가르쳤던 일화는 유명한데 그가 유학생에게 용의주도한 배려를 한 미담도 많다..

  그뒤 육속 일본에 홍수와 같이 중국유학생이 밀려갔는데 1902년에 500명, 1904년에는 1,300여명, 1905년 과거제도 폐지에 후에 7,000명으로 급증, 1906년에는 7,285명(왕향영(汪向荣)의 통계에는 7285명, 사네토 게이슈의 《중국인 일본유학사》에는 8,600명, 진청지(陈青之)의 《중국교육사》의 통계는 12,000명)의 경이로운 숫자에 이른다.

  이는 당시 세계문명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유학붐이였다. 1896년~1906년사이에 동경에는 중국류학생을 위해 설립한 일본어학교만 해도 홍문학원(弘文学院), 성성학교, 도꾜동문서원 등 20개가 넘었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최초로 중국여자유학생을 받아들인 시모다 우다코(下田歌子)가 설립한 실천여학교는 중국여자교육사에서 참신한 일장을 펼친것으로 특기해야 할 교육기관이다. 유학생들은 중국에서 배울수 없었던 일본어, 수학, 리과, 체조 등 신식과목과 함께 경제학, 교육학, 자연과학 등 근대적 학문, 교육체계를 습득했을뿐만아니라 “국민국가”를 위한 “국민교육”의 관념을 익히게 된다.

일본에서 배운 유학생에는 중국근대, 현대사의 쟁쟁한 거물중진들이 집중돼있다. 그 인물리스트를 간단히 나렬하자. 陈独秀,李大剑,黄兴,蔡锷,章太炎,鄒容,陈天花, 宋孝仁,蒋介石,汪兆铭,周恩来,董必武,周佛海,秘瑾,胡汉民,鲁迅,郭沫若,周作人,郁达夫,成仿吾,胡凤,李叔同,同扬,夏衍,田汉,高冠花,孙平化,李登辉…

그리고 유학생은 아니나,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했거나 일본의 지원을 받은 또는 일본의 서적을 사상의 영향을 깊게 받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갖추었던 인물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를테면 孙文(中山),康有为,梁启超,黄尊宝,戴秀涛,张之洞, 毛泽东, 王周维,罗振玉,溥仪,溥杰…

“모택동도 일본의 영향”하면 고개를 갸웃둥 할것이나 모택동 자신의 말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친중파 지식인 다케우치미노루(竹內實)의 《모택동노트》(1971년 간행)에 의하면 1960년 중국방문중인 일본문학대표단에 대하여 모택동은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파는 일본이 중국보다 앞섰지요. 마르크스주의 저작을 나는 일본으로부터 입수하여 일본책으로 공부했습니다. 교또제국대학의 교수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가 쓴 책은 지금도 우리에게 참고서로 되고있습니다…”

  그런데 100년전 중국은 왜 서구화를 지향하면서 서구가 아닌 일본을 유학지역으로 택했을가? 일본이 같은 동양에서 제일 먼저 서구화에 성공한데도 있지만 또한 큰 이유는 지리적, 문화적 지근거리에 있었으므로 코스트가 쌀뿐만아니라 실용적으로 중국에 대해서 편리했던것이다. 저명한 교육자, 양무파의 리더였던 장지동은 일본류학에 가장 열심히 제창한 인물로서 1898년 3월에 저술한 그의 《권학편》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에 필적하는 명저로 10일간에 3쇄, 대륙에서 2백만부나 불티나게 팔린 롱베스트셀러였다.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있다. “유학이라면 서양보다 동양(일본)이 좋다. 그 이유는 거리가 가깝고 경비도 절약할수 있으며 대량으로 파견할수 있다.”“일년 양행(유학)하는것은 양서를 5년 읽는격이 되고 외국 학당에서 1년 배우면 중국학당에서 3년 배우기보다 낫다.”

  청나라 정부나 식자들은 일본류학의 절박성, 실용성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고 일본유학을 과거로 간주하여 적극적으로 유학정책을 실시했다. 일본측 역시 청국유학생, 조선류학생에 대해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열정적이였고 “청국이 근대화하고 서구렬강에 대항할수 있다면 같은 동양(아시아)에 대해서도, 일본에 대해서도 반가운 일이다”는 사고가 근저에 있었다.

  조선유학생이 일본에 유학하게 된것은 중국보다 20년 앞선 1876년이다. 그해 조선정부가 일본에 파송한 신사유람단과 때를 같이 한다. 류대치, 어윤중 일행과 함께 도일한 유길준(25세)과 류정수, 윤치호(16세) 등이 유학생으로 남는다. 그들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집에 머물면서 케이오의숙에 유학한다. 유길준은 한국근대 일본유학의 제1호이며 또한 미국류학 제1호 인물이기도 하다. 나중에 김옥균과 같이 갑신정변의 주역이 되기도 하는 근대 한국의 대지식인, 정치가 그리고 실업가로 성장한다.

  조선은 1880년대 들어 일본에 유학생을 본격적으로 파견하기 시작, 이들 도일류학생은 한국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전까지 김옥균은 세차례 일본에 다녀오는데 60여명 유학생을 이끌고 갔던적도 있다. 손병희도 일본 망명시 유학생 수십명을 데려갔으며 일제강점 직전에 최남선도 국비유학생의 한사람이였다. 지식인, 작가, 시인으로서 이광수, 이인직, 정지용, 오상순, 윤동주… 쟁쟁한 인물로 이룬 이들은 한국근대의 “일본유학정신사”를 이룩하고있다. 《일본외무성 기록문서》 등 여러 자료에 의하면 한국류학생은 1910년 병합시 420명, 1920년초 2,000명, 1930년대는 5,369명, 그리고 1940년대초에는 29,427명으로 피크에 달했다.

중국과 한국 근대의 일본류학은 근대 량국의 문물, 사상, 정치, 문학, 교육, 예술 등 다분야에서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 자체가 중한일 삼국 “근대사”의 축도이기도 하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일본류학의 붐이 식지 않고있는 “류학정신사”는 물론 100년전보다 파워나 질에서는 떨어진다 해도 어떤 영향이 있을가는 자못 흥미있는 과제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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