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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족》월경론
41. 상실의 시대
김문학
“월경”에 동반되는 조선족의 “월경의 明暗”에 대해서 논술하련다.
세상의 일체 事物, 삼라만상에 그 明과 暗이 존재하듯이 월경에 따른 “明暗”의 양상을 필자는 한마디로 “상실의 시대”로 부른다.
땅의 상실, 고향의 상실, 편부모의 상실, 학교의 상실… “상실”의 단어는 배알처럼 생긴 쇠사슬 같이 조선족사회에 연쇄적으로 핍박해온다.
대저 인구 이동의 월경에는 빈구석이 생기며 이산(離散)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것은 必至의 文化現象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이 아픔은 과거형인 동시에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아픔에 연연하고 통탄하며 아픔을 그냥 고통으로 삭이기보다는 아문 상처자국에서 새로운 생이 탄생하는 현실을 포지티브하게 인식하는 사고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실제로 시야를 세계로 넓혀서 바라보면 근 20년의 세계는 지구적 규모의 “상실의 시대”인것이다. 모든 “상실”은 “변화”하는데서 동반대는 빈 공백, 또는 명암의 暗을 말하는것이기도 하다.
작년 미국 오바마대통령의 선별한 데뷰는 “change!”라는 변하는 교체, 바꿈을 슬로건으로 행사한 미국 정권의 탈바꿈이었다. 일부에서도 하토야마 내각의 신선한 등장으로 장기간 정권의 헤게모니를 독차지했던 자민당으로부터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이루었던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의식이 전세계의 규모로, 세계적 흐름의 중대한 팩터로 나서고 있다. 1989년 베틀린의 장벽이 무너진뒤 20년이 되는 해에 이런 “교체”의 변화가 이룩된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는 이데올리적인 적(敵), 상대를 상실한것이다. 냉전시기 서양과 동양의 자유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의 대적관계가 소련의 붕괴로 대결의 상대, 적이 상실했거나 그 대결의식이 매우 히약해진것이다. 극단적 2분법사고가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다.
두번째는 경계선의 상실, 적아의 경계선, 세계의 경제적 경계선 등이 “월경”의 마술같은 힘에 의해 없어지거나 존재감이 희미하게 됐다는것. 자원, 환경, 인구, 금전 정보가 너무 용이하게 국경, 경계를 넘어서 전달, 전파 수용되고 있는 글러벌 사상(事象)이 그것이다.
세번째는 “권위”의 상실, 월경적인 文化,文明의 이동, 수용과정에서 그 나라나 민족집단에 있던 전통직 권위, 상징적인 권유의식, 인물까지 포함하여 짓부수었다는것이다.
“조선족개조론”에서 필자가 “이제 우상은 없다”라고 역설한것도 우리 조선족의 권위와 우상, 그 고루한 의식을 파괴를 노린것이였는데 그 의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해독의 문제인지 주의를 환기시키지 못했다.
이상 3종의 측면에서의 “상실시대”를 바러미터로 조선족의 “상실”을 바라보면 사실 조선족의 “상실”은 모두가 이 세계적 “상실의 시대”와 同步적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奇하게도 작년 2009년 니카의 “6적”비판사건은 베를린 담벽 붕괴 20주년의 해에 발발하게 된다. 근 10년동안 연변 조선족 문단과 논단의 헤게모니를 독점하고 “조선족개조론”을 빌미로 전조선족지식계와 사회를 적아관계, 계급투쟁의 수준으로 설정해놓은 일부 조선족 극과 지식인들(”6적”이란 라벨붙은 지식인).
이들이 미꾸라지같이 온 연변의 물바닥을 흙탕물로 짓이기면서 살벌한 적아판가름의 필사적 투쟁을 전개할때 “적”이 존재했기때문에 “단합”을 이루었고 “끼리끼리”의 “집합”으로 전례없는 에네르기를 동원할수 있었다.
그런데 같은 에네르기로 반발해온 “6적”비판은 6적이 행사했던 힘만큼이나 용수철같이 “6적”으로 연습을 이루며 전설미담의 역량을 발산한다. 물론 니카 US ”6적”의 공방전은 인신공격, 프라이버시 하반신스캔들 등 저차원의 요소도 가미되긴 하지만 “6적”의 완패로 종결된다.
“6적”이란 명칭 자체에 대하여 필자 개인적으로는 과대하게 “적”(괄호친 ”적”이긴 하지만)으로 핍축하는 방법에도 전면 찬성은 안하지만 그러나 역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바로 “6적”자신들의 과격하게 살벌했던 발호(跋扈)가 자초한것이 아닐까.
결과 “6적”의 붕괴로 그들 자신에게 “적”은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후 그들이 적을 상실하고 “단합”의 원동력이 상실됨으로 말미앎아 그 허상적인 “단합”도 아마 필자의 추측으로는 오래가지 못할것은 불보듯 뻔하다.
상실감과 무력감, 그리고 절망감과 허탈감에서 일종의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의 심연에 빠질 가능성도 십분 예견된다. 그런데 또 한가지 우려는 그런 DNA의 유전자 인소가 본래부터 존재한 인물이라면 연변의 소분지식 문화환경이나 정치의식속에서 지금은 도사리고 있지만 또 적당히 시기를 노렸다가 재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않을가 하는것이다.
필자로서는 “그들”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적아관계로 생각한적이 없으며 우리속의 “그들”로서 사고와 지견의 차이라고만 본다. 작년 니카의 인터뷰에서도 “그들과 친구로도 될수있다”고 했는데 그 귀절이 빠져서 유감스럽다. 흑백의 경계를 넘어 공론, 공생만이 우리 조선족의 방향인 까닭이다.
또하나 필자가 발견한것은 조선족의 탈중심, 탈경계에서 생긴 우상, 권위의 타개로 의한 상실은 사상 최초의 “대중의 탄생”이다.
중국 정치시스템하에서 “조선족” 문화를 유지해온 우리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권위를 넘어선 “대중”을 독자적 사고와 지견을 바탕으로 한 “대중성”을 이룬적이 없었다.
그러나 근 10년래 “조선족개조론”의 포스트현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중이 깃발을 들고 제분야에서 “반역”하는 현대적 의의의 대중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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