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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는가?’, 중국인의 인사말
100년 전 미국 선교사 아더`스미스가 중국 산동성과 하북성에서 26년 동안 체류하면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중국인의 성격을 반영한《중국인의 소질》이란 책을 발표하여 구미문화권에서 일약 중국통 스타로 떠올랐다. 아더·스미스는 책에서 “중국인은 위를 채우고 돈지갑을 채우는 것을 인생의 전부 보람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지적하였다.
확실히 중국인은 먹는 것을 으뜸으로 간주하는 민족임에 틀림없다고 판단되어 아더·스미스의 지적에 공감한다.
이 지구상의 인류는 같은 문화권에 속한 인간도 민족에 따라 인사말이 다르다. 예하면 중국, 일본, 한국은 한문과 유교를 공통분모로 하는 중화문화권에 속한다. 하지만 세 민족의 인사말이 다르다. 그것은 세 민족이 흘러온 역사에 의해 달라지 게 된 것이라 나는 판단한다. 한국인의 전통 인사말은 ‘무사(無事)한가?’인데 이는 서너 차례 모자라는 천 번의 외침을 받아오면서 늘 ‘일(事)’이 생겨 불안했기 때문에 일이 없는가는 뜻으로 ‘무사한가?’가 인사말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인의 인사말은 서양인과 비슷하다. 아침·점심·저녁 인사말이 다르다. 중국인의 인사말은 ‘먹었는가?’인데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인사말이다. 참 특이하다. 이것도 중국식 특색이 있는 인사말이다.
중국판 도올·김용옥 교수, 중국 CCTV 백가강단 프로에서 강펀치를 날리고 있는 역중천(易中天) 교수는 중국인의 ‘먹었는가?’의 인사말 유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유목민족은 초창기부터 짐승을 잡아먹었기에 배고픈 고생이 덜했다. 농경에 의지해 먹고 사는 중국인은 농사시간이 길고 흉년을 만나면 배고픈 고생을 많이 해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지인을 만나면 인사말로 ‘먹었는가?’고 묻는다는 것이다.
나는 ‘먹었는가?’의 인사말 유래를 역중천 교수와 달리 생각하고 있다. 중국문화는 선진시대(先秦)에 이미 성숙되고 완성되었다. 선진시대 중국문화를 살펴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내세와 비슷한 개념이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선진시대 중국문화는 이 현세 지평선 너머에 다른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한 세상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이 없었다. 인간이 신앙이 없으면 현세에 묶여 살 수 밖에 없다. 바로 중국인은 선진시대문화의 영향 때문에 현세밖에 모르는 리얼리즘에 빠져 있었다.
신앙이 없는 현세생활이란 곧 인간은 타고 난 본능에 의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인간이나 동물은 일단 먹어야 생명이 유지된다. 문화고 뭐고 간에 일단 먹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입는 것과 잠자는 것은 모두 먹는 것에 비하면 둘째 셋째 가는 문제이다. 한민족도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란 속담이 있듯이 먹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왔던 것이다.
과학이 창명한 현대사회에서 먹을 것이 풍부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먹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수 있다. 옷은 10년 전 옷을 입어도 무리가 없고 한국 옷이냐, 중국옷이냐 굳이 가릴 필요 없다. 나는 20년 전 중국에 있을 때부터 줄곧 한국 옷을 입어왔지만 몸이 아무 거부반응이 없다. 이에 비해 음식은 한국에 온 지 강산이 한 번 반 바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한식이 습관 되지 않는다. 연 며칠 한식만 먹으면 나의 몸에서 심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아직도 중식이 입에 더 맞는다는 뜻이다. 나의 회사 직원이 한국인과 중국인이 반반인데 정심 때면 조선족의 발길은 저도 모르게 중국음식점에 향하고 한국인은 한식집에 간다. 음식문제 만큼은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 타협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먹고 살기 위한 목적인데 서로 맛없게 먹는 것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석학 임어당은 그의 저서 《중국인》에서 “애국주의란 듣기엔 거창하나 따지고 보면 각자 어릴 적 먹던 음식기호(飮食嗜好)를 지켜내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아~ 이 지구상의 인류는 공통적으로 먹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에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먹는 것이 최우선과제라면 신앙이 없이 현세주의에 빠져 있는 중국인은 당연히 먹는 것이 세상만사 중 으뜸으로 간주하고 인사말도 ‘먹었는가?’로 된 것이 동지섣달에 파리가 얼어 죽는 것이 이상할 것 없는 것처럼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는 본다.
중국인이 식을 세상만사 중 으뜸으로 간주해온 덕분에 중국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발달할 수 있었다. 어느 서양 부자가 배부르고 등 따시니 “프랑스격조로 된 가옥에서 일본마누라 꿰 차고 중국요리를 먹는 것이 꿈이로다.”고 한담을 했다고 한다. 지구촌에 이런 삶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프랑스격조로 된 가옥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말이 되겠고, 마누라는 일본여자가 최고라는 뜻이겠고, 요리는 중국요리가 으뜸이란 의미일 것이다.
중국인이 먹는 것을 으뜸으로 간주해왔다는 증거가 또 있다.
문자결구(文字結構)이다. 한문이 상형문자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문을 상형문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따져보면 상형문자보다 회의문자(會意文字) 글자 수가 엄청 더 많다. 우선 아름다울 ‘미(美)’자가 회의자인데 위에는 ‘양(羊)’이고 양 아래는 사람 ‘인(人)’이 붙어 있다. 양과 사람이 합치면 아름답다는 것이다. 양(羊)이 말(言)하면 착할 ‘선(善)’이 된다. 상서로울 ‘상(祥)’자는 앞에 볼 ‘시(示)’ 변이고 뒤에 양이 붙어 있다. 볼 ‘시(示)’는 갑골문에서 하늘에서 무엇이 내래오는 모습인데 이는 종교적 의미가 있다. 국을 뜻하는 ‘갱(羹)’자는 위에 새끼양이고 아래는 또 양이 들어 있는 아름다울 ‘美’이다. 한 글자에 양이 두 개나 들어 있다. 새끼양으로 음식을 만드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으니 ‘갱(羹)’이 된 것이다. 의로울 ‘의(義)’자는 위에 양이고 아래는 나를 뜻하는 ‘아(我)’이다. 양이 나의 것이면 의로운 의미로 된다. 앞에 사람 ‘인(人)’변이 붙으면 의리라는 의(儀)가 되고 말씀 ‘언(言)’변이 붙으면 의논하는 ‘의(議)’가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양(羊)’이 들어간 글자는 좋은 뜻이다.
상고시대 중국인은 왜 양(羊)을 그토록 미화하였을까? 양은 고기가 많고 맛이 좋다. 음식으로 사용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양가죽을 벗겨 옷으로 입을 수 있고 양털은 여러모로 사용가치가 높다. 양의 특징은 온순하고 행동이 둔해 빨리 달리지 못한다. 다른 짐승에 비해 사람이 다루기가 가장 쉽고 편하다. 양의 이와 같은 실용가치에 의해 고대사회에서 양을 제물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양을 제물로 삼은 것은 동서고금(중국어로 古今中外라 함)이 모두 똑 같았다. ‘희생양’이란 서양 종교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양을 화폐교한 도구로 사용된 역사가 있고 중국에서는 양을 연 중 가장 큰 명절인 춘절(음력설)에 선물용으로 중시 받아왔다. 지금도 중국인은 양을 선물하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다.
중국인이 식(食)을 세상만사 중 으뜸으로 간주했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로서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을 들 수 있다. 먹는 것을 하늘만큼 큰일로 여긴다는 뜻이다. 상고시대 인류는 하늘을 가장 으뜸의 경의로운 대상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서양은 하느님에 목을 맬 만큼 신앙이 발달했고 중국인은 서양인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인 하느님 신앙은 없었으나 아무튼 하늘을 경의롭게 여겨왔던 것만은 사실이다. 무슨 불상사가 생기면 “상제여, 나를 지켜주세요” “하늘이여, 나를 구해주세요”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하늘이 경의의 대상으로 된 것은 하늘은 크고 변화무상하고 지상의 운명은 하늘이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역대황제는 모두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을 진리로 받들어왔고 치국방침을 세웠다.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을 하나같이 받들어왔다면 중국문화는 먹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성립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먹는 것과 관련된 중국문화를 알아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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