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언이설(敢言異說) 하는 김정운 교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3)
조선일보에 <감언이설, 아니면 말고>의 코너가 있는데 연재 기고자는 김정운 교수다.
일단 연재 코너 제목이 특이해서 눈길이 간다. 감언이설이라는 사자성어는 본래 타인의 귀를 솔깃하게 달콤한 말을 한다는 뜻으로서 한문으로 ‘甘言利說’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감히 다른 말을 한다는 의미로 ’敢言異說‘라 제목을 달았다. ’아니면 말고‘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개인 억측이나 추측에 의한 의혹을 사실 확인도 없이 일단 폭로하여 사회적인 이목을 끌고 보자는 심리의 발로의 행위인데 김 교수가 말하는 ’아니면 말고‘는 나의 주장이 독자의 생각에 안 맞을 수 있다는 입장에서 나온 말 같다. 김 교수의 글을 일별해 보면 필자의 사견이 옳을 것이라 믿는다.
김 교수는 다른 말을 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김 교수가 유명해진 것은 다른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교수의 책 제목들을 살펴보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노는 것만큼 성공한다> <남자의 물건> 등인데 내용을 봐도 기존상식과 다른 말들을 하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비결을 물으면 100% 모두 일치하게 하는 대답이 있다.
“비결이 뭐 따로 있어요, 노력한 덕분이죠. 거듭 맞는 실패를 딛고 좌절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죠.”
노력은 성공한 사람들의 미덕으로 간주되어왔다. 이것이 기존상식이다. 게다가 에디슨의 ‘1% 영감에 99% 노력’이란 ‘명언’까지 들먹이면서 노력을 찬양하는 분위기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김 교수는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한 때 일본 작가 사이쇼 히로시가 지은 <아침형 인간>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김 교수는 이를 비정상이라 진단한다.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돌아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면 새벽부터 약수터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 성공했겠네?
노력이 성공의 비결이 되던 시대는 과거 한강기적을 창조하던 시절 죽어라 일만 하던 때의 얘기지 21세기 세상은 노는 놈이 성공한다. ‘외설적’으로 들리지만 그의 저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허망한 외침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일과 삶의 조화를 잘 할 수 있는 휴테크를 전하는 책이다.
김 교수는 외친다.
“한국인이여,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서 벗어나라!”
‘일하는 것’은 세계 최고이나 ‘노는 것’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를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잘 노는 사람이 창의적이고 성공한다는 막연한 주장을 다양한 문화심리학적 개념들을 통해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이 책은, 한국사회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인 의사소통의 부재를 놀이와 재미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재미, 행복, 휴식의 심리학적 가치, 철학적 의미 등을 정립하고, 사소하지만 누구나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진짜 경쟁력 있는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이 책은 100세 시대를 살아갈 인간에게 미리 행복하게 살 준비를 하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일과 삶의 조화, 참 어려운 일이다. 중국문화의 골격이라 말할 수 있는 ‘예악(禮樂)’은 정치, 사회, 문화면의 제도적인 장치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기본 삶의 상식이라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예’는 일이라면 ‘악’은 오락이다. 인간은 일만하고 오락을 모르면 지쳐 병이 나기 십상이고 거꾸로 일을 안 하고 오락(노는 것)에만 빠진다면 곧 타락해버린다.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하게 노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창조는 편집이다’
창조는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편집할 줄 알아야 창조가 생긴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에디톨로지>는 김 교수의 인문학 클래스다. 자신만의 새로움을 창조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가능한 것인가?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서 탄생한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편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에디톨로지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낯설게 보기’를 통해 독창적인 관점을 갖는 법, 암기형 공부가 아닌 주체적 공부로 나만의 이론과 철학을 만들어내는 법 등 실제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에디톨로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이 책은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 심리학으로서 의무와 책임만 있고 재미는 잃어버린, 이 시대 남자들을 위한 심리에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공을 향해 달음질쳐보아도 왠지 행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하다. 위로받고 싶지만 딱히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남자들이다. 이 책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로망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행동해보지 못한 남자들의 심리적 여백을 통렬하게 채워준다. 어느 순간까지는 ‘무작정’ 달려온 남자들, 그들이 왜 어느 순간 자아를 상실한 느낌이 드는지, 권위와 의무감에 탈출구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드는지, 어디서도 지친 영혼을 뉘일 곳을 찾지 못하게 되는지, 그것에 대한 ‘문화심리학적’ 분석서인 셈이다. 남자들의 현실 키워드 ‘아내’로 대별되는 ‘안정과 로망의 경계’를 저자 자신의 경험에 비춰 풀어낸다.
글도 잘 쓰고 강의도 잘하는 남자
한 사람이 글도 잘 쓰고 강의도 잘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이 두 가지를 다 잘한다. 잘할 뿐만 아니라 아주 뛰어나다.
먼저 그의 유머감각이 뛰어난 글쓰기 솜씨 한 대목만 감상해보자.
<자빠지면 꼬인다>의 서두다. 나는 유시민 작가가 몹시 불편하다. TV를 켜면 매번 그가 나온다. 그의 ‘구라’는 갈수록 현란해진다. 게다가 그가 쓴 책까지 모조리 잘 팔린다. 그게 나는 그냥 힘든 거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훨씬 잘생겼다! 그건 누가 봐도 그렇다.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아주 간단히 제쳤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라가면 꼭 새 책을 내서 내 책을 끌어내리는 혜민 스님은 좀 다른 방식으로 따돌렸다. 그는 ‘스님’이고 나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비겁해도 할 수 없다. 내 마음의 평화가 먼저다.
뜬금없지만 요즘은 이상순이라는 사뭇 촌스러운 사내가 날 괴롭힌다. 이효리 남편이란다. 참 선하고 따뜻해 보인다. 모난 성격 탓에 시종일관 부딪치며 살아왔던 나는 ‘부드러운 사내’만 보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다. 그러나 이 경우 내 비장한 ‘인물론’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의 아내는 이효리란다. 그걸로 그냥 ‘게임 끝’이다. 아무리 비겁한 논리를 들이대도 해결되지 않는 이상순에 대한 내 질투는 이제 내 성격적인 열등감을 건드린다.
우리의 인생이 자주 꼬이는 이유는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질투가 외부를 향한다면 열등감은 내부를 향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참 대단한 글 솜씨”
김 교수는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강의를 잘하는 사람 2위라고 말한다. 자신보다 앞서 한 수 위인 강의자가 바로 도올 김용옥 교수란다. 유머 같기도 하고 진담 같기도 하게 들리지만 내가 보기엔 우열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김 교수의 강의 솜씨도 매우 뛰어나다.
저명한 음악가 슈베르트를 닮은 외모, 둥글 형 얼굴에 둥글 안경을 걸고 상의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 한 학생복을 늘 입고 강의에 나선다. 나훈아가 무대에 서면 관객을 확 잡아당기듯 김 교수도 청중이 확 빨려들게 하는 재주가 뛰어나다.
강의 잘하는 삼대 요소 : 아는 것이 많아야 하는 것, 강의자와 수강자 사이 정서교감이 이뤄져야 하는 것, 강약 조절을 잘 할 것. 이것을 나는 김 교수한테서 배웠다.
삐딱한 사람이 인기 높은 세상
앞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 도올 김용옥 교수와 가수 조영남은 둘 다 일반 상식 시각으로 보면 삐딱한 사람들이다. 김 교수도 역시 삐딱한 사람이다. 나는 어쩐지 지식이 태산 같아도 평범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별로다. 요즘 말대로 하면 튀는 사람이 나는 좋다.
김 교수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13년 지내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강사도 했다. 한국에 돌아왔는데 취직이 안 되어 애먹었다. 당시 한국대학들에는 문화심리학과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다가 명지대학교에서 심리학과를 세우면서 취직했다.
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글도 쓰고 TV강의를 비롯해 대중강의 많이 했다. 한창 잘 나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를 세워 연구 활동도 했다. 자신의 고백에 의하면 강의료가 최고로 비쌌다고 한다.
그토록 잘 나가던 김 교수는 어느 날 대학 교수를 때려치운다. 50살 교단을 떠난다. 지천명 문에 들어설 나이이면 교수로서 한창 ‘꽃 필’ 때 그만두다니. 한국에서 교수직은 평생직이다. 웬만한 하자 없는 한 자리보존은 철석같다. 그런데 그 편안하게 노후 보장 되는 교수직을 때려치웠으니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글 쓰고 강의하는 일이 많아서 외롭지도 않고 수입도 좋았겠지만 중국말로 표현하자면 하해(下海)는 모험이다.
대중인기가 절정일 때 김 교수는 어느 날 일본으로 떠난다. 며칠 간 여행이 아니라 일본 지방에 있는 ‘허름한 대학’에 가서 3년 간 그림을 배운다.
일본 사람은 고독하기로 유명하다. 고독한 일본에서 고독하게 지낸 체험을 바탕으로 <때로는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글을 발표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듬해에 김 교수는 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간다. 여수 앞바다 한적한 섬에다 자기만의 공간인 화실이자 글 쓰는 작업실을 만들었다. 이름은 ‘미력고(美力庫)’, 여기서 홀로 생활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특히 그 한적한 곳에 거액을 투자해서 마련한 집이 앞으로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한국 사람들은 집을 교환가치로만 보지 사용가치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집을 매매하는 재테크용으로 여길 뿐 내가 그 집을 사용하면서 얻는 행복에 대해선 고려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불행이다.
김 교수는 이렇듯 여러모로 타인과 대비되게 ‘삐딱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필자가 김 교수를 좋아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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