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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조선족문제연구자료집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행(幸)인가, 불행인가?
김정룡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993년 미국의 샤무엘·헌팅턴 교수는 <<문명의 충돌>>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는 양대 진영의 대결이 사라짐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나는 누구냐?’ 고 묻게 된다. ······사람들은 기존의 이념과 사상을 버리고 본래의 종교나 민족문화에로 회귀하려 할 것이다.”
헌팅턴 교수의 이와 같은 지적은 조선족사회의 변화에도 많은 사색을 던져주고 있다.
조선족은 1980년대 말까지 국적이 있는 중국과 고국인 한반도의 존재에 대해 아무 고민이 없이 오로지 중화인민공화국공민이 되기에 충실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1992년 8월 24일 중한수교를 계기로 조선족이 고국인 한국과의 왕래, 중국에 간 한국인과의 접촉이 빈번해짐에 따라 조선족은 ‘나는 누구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정체성논란이라 말한다.
1990년대 중반, 흑룡강신문에서 조선족정체성문제에 대해 지상토론을 펼쳤는데, 대체로 ‘조선족은 고국인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지만 한국인은 우리를 이방인으로 취급하더라. 우리조선족의 삶의 터전은 역시 중국이다.’라는 인식으로 가닥이 잡혔었다.
그 후 현재까지도 조선족사회정체성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으로 흘러왔으며 요즘 들어 어떤 조선족지성인들은 “차라리 중국인이거나 한국인으로 태어날 것이지 나는 뭔가? 이방인이다. ······정부의 소수민족우대정책은 표면적이다.”라고 말해 타인에게 조선족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심지어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폄하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불행이라는 얘기다.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정말 불행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족은 러시아 까레스끼(고려인)처럼 허허벌판에 추방되어 온갖 고생을 겪은 일도 없고, 재일교포처럼 수십 년을 살아도 국적을 갖지 못하고 참정권도 없는 것이 아니다.
조선족은 만주 땅에서 한반도의 2배 넘는 토지를 개간하여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항일전쟁시기에 공산당이 약속했던 대로 해방 후 토지를 되찾았고(피땀으로 가꾼 땅을 버리기 아쉬워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은 수가 100여 만이다.) 자치정부도 세우게 되었으며 참정권도 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조선족을 많이 돌봐주었다.
필자가 1980년대 장춘에서 대학공부 할 때 소수민족비 2위안(1년이 지나 4위안이었음)을 받았다. 당시 한 달 소비가 5위안 내지 10위안이었으니 2~4위안이란 돈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족애들과 다른 민족애들은 매달 입쌀권(大米票)이 2근이었으나 조선족만은 8근이었다. 그 때 한족애들이 우리조선족들에게 잘 보여 입쌀권을 얻어먹으면서 “왜 니네 조선족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지 부럽다.”고 했으며 우리조선족들은 이로 인해 자호감을 느끼며 살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양심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은 좋다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중국정부에서 조선족들에게 밭을 적게 주었나, 일을 못하게 했나, 정치를 하지 말라고 했나, 도대체 무슨 차별을 받고 살아왔단 말인가?
조선족이 중국정부로부터 우대정책을 받고 살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선족은 개혁개방을 맞아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하여 내지와 연해도시에 진출하여 김치와 짠지 장사를 했고, 북조선과 보따리 장사를 하여 돈을 벌었다.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자 조선족이 다리역할을 했고 취직도 많이 해서 돈을 벌었다. 또한 한국 문이 열리게 되자 코리안드림으로 엄청난 돈이 조선족사회에 흘러들었다. 가짜친척초청으로 한국에 온 수가 굉장히 많은데 어찌되었든 조선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또한 연변의 한족들은 조선족이 한국에 많이 갈 수 있는 것에 대해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 현재 재한조선족이 22만이고 한족이 11만이나 되지만 한족은 재입국과 방문취업제 등 우대혜택이 없다.
또 조선족은 조선어와 한어 및 외국어 하나 더하면 3개국 언어를 구사하기에 우세한 점이 많다. 이도 조선족이 중국에서 살아온 특수요인으로 자연스레 얻은 이점이다.
여하튼 조선족은 중국에서 사는 것이 불행인 것이 아니라 행이다.
필자는 조선족이 중화인민공화국공민으로 조용하게 살아왔고 고요하던 조선족사회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 주인공은 한국과 한국인이라 생각한다. 그 근거로서 중한수교가 되기도 전에 한국인들이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에 올라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만세!”를 불렀고, 조선족을 만나 “여기가 본래 한국 땅이었다.”고 선교하고, 고고학자와 기자들이 ‘옛것’을 탐사하고 고찰하는데 조선족을 앞세우고, 조선족이 걸어온 길과 실질을 모르면서 한국과 중국이 축구할 경우 조선족이 중국을 응원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고, 언론들은 자기네 목적을 이루려고 조선족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차별을 받고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하는 등등의 일련의 한국인의 행위는 일부 어리숙한 조선족을 동요하게 만들었고 아울러 ‘북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 한국과 한국인은 의도적으로 조선족의 입장을 난감하게 만들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로서 구성원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만을 알고 있을 뿐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또 다른 하나의 소박한 진리는 모른다. 고로 한국인은 조선족을 민족문화에로 회귀하기를 바라고 밀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조선족을 이해 못해 ‘양모’와 ‘생모’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들고 도를 넘어 조선족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객관적으로 어떠하든 간에 판단은 우리조선족 자신에게 달렸다.
조선족은 한국이란 고국에 와서 돈을 엄청 많이 벌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거지(散居地)에서 살아온 조선족들이 우리말 우리문화를 모르던 것을 한국에 와서 배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우리조선족을 여러모로 폭넓게 끌어안을 그릇이 못 된다. 우리조선족의 삶의 터전은 고국인 한국이 아니라 역시 나고 자란 고향 중국이다.
고국에 와서 돈을 벌고 민족문화를 익히고 고향에 가서 사는 것도 역시 행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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