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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의논한다.”
청말 유명학자 공자진은 “성인은 말이 없고 현자는 말하고 바보는 의논한다.”는 명구를 남겼다.
성인은 말이 없이 몸소 실천행위를 보이는 사람들이고 현자는 성인들의 실천행위를 말로서 인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으로 예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를 사대 성인으로 혹은 노자까지 보태 오대 성인으로 평가하지만 필자는 공자를 성인보다 현자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공자는 ‘述而不作’, 즉 나는 선인들의 말씀을 되풀이 했을 뿐 스스로 지어낸 것이 없다는 겸손을 보인 것이 그의 인간성으로 평가받았고 따라서 후세사람들의 추앙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자는 성인보다 현자에 가깝다는 뜻이다.
《추한 중국인》의 저자 백양은 “중국역사에서 두 번의 문화흥성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춘추시대와 성당시기였다.”고 지적했다.
춘추시대는 사람마다 정치적인 속박이 없이 자신의 소신을 마음껏 피력할 수 있었다. 맹자 같은 사람은 왕과의 독대에서 왕을 마음껏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모가지가 날아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가가 급상승되었다. 또 그 시기는 이 나라 사람이 저 나라 재상이 되기도 하고 학문이 뛰어나고 판단력이 좋고 인간성이 좋으면 ‘국적’과 관계없이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면서 왕의 책사도 해먹을 수 있었다. 요즘처럼 누가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무슨 문장을 썼다고 몽둥이를 마구 흔들어대고 죽이지 못해 안달을 떠는 유치한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나 좋은 시대였는가?
성당 시기는 중국역사에서 유불도가 아주 조화롭게 공존한 시대였으며 그래서 중국문화가 크게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참 부러운 시대였다.
북송에 이르러 오랑캐한테 수모를 당하자 남송시기 주희가 나서서 신유학을 정리했고 그 영향에 의해 거의 천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중국은 문화침체기에 빠져들었고 ‘바보’들이 설치게 되었다.
정치가 도를 넘어 무게를 가지면 그에 따라 가장 빨리 희생양이 되는 것이 곧바로 문인들이다. 문인이 생존을 위해 ‘바보’로 전락되어 양심을 버리고 정권의 하수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명대의 유학자인 이탁오는 전통적인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자아중심의 혁신사상을 제창한 왕양명의 분파인 급진적인 태주학파(泰州學派)였다. 금욕주의·신분차별을 강요하는 예교(禮敎)를 부정했다. 결국 그는 반(反)유교적인 내용을 설교하여 정부의 박해를 받았다. 전제시대는 ‘바보’가 되지 않고 올바른 사람이 되면 이탁오와 같은 비운을 맞기 마련이다.
문혁 시기는 장춘교와 요문원이 대표적인 ‘바보’사례로 되었다. 그들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남을 의논하는 것을 장끼로 자신의 출세 길을 걸으려 하였다.
문혁은 우리조선족사회에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숱한 ‘바보’를 키워냈고 그 ‘바보’들이 같은 조선족을 죽이는데 앞장섰다. 유감스러운 것은 문혁이 지난지도 30년하고도 다섯 해를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조선족사회에 여전히 그 잔재현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하자면 현시대에도 반당반국가분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차원에서 판단하고 처리할 일이지 우리조선족사회지성인들이 나서서 같은 조선족누구누구를 ‘고깔모자’를 씌워 매장하려고 들어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 글 쓰는 조선족문인들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인식과 판단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다.
‘바보’가 어떤 의논을 펼치든지 일절 대응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다. 이 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몇몇 산재지구의 조선족문인을 높게 평가한다. 왜냐? 그들은 누가 어떤 ‘고깔모자’를 씌우려 들던 일절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얼굴이 가려워 같이 대응하노라면 서로 이전투구 식으로 체면을 구기게 되고 더욱이 승자와 패자가 없는 가치가 없는 싸움으로 정력만 소모하기 마련이다. 전에 내가 말했다시피 그럴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삼국유사를 한 폐이지 더 읽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한국 김훈 전직 작가는 “내가 글을 썼으면 독자들이 읽으면 그만이지 왜 내가 글에 대한 해석을 해야 하는가?”고 주장한다. 최인호 작가는 “작품은 마치 요리와 같은데 독자들이 맛있게 먹든지 아니면 맛이 없다고 먹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요리를 만든 주방장을 불러내 소금을 얼마 넣었냐? 설탕을 더 많이 넣지 그랬어. 하는 식으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나의 문장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어떤 의견을 갖고 댓글을 달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지 결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작자는 그런 것에 일일이 이해시키려고 애쓴다든가 그런 뜻이 아닌데 어떠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논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할 일이 많고도 많은데 하필 그런 것에 신경을 쓰겠는가! 그렇게 얼굴이 가려우면 글을 아예 쓰지 말든가!
두 번째는 글 쓰는 문인은 웬만해선 남의 글에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쓸데없이 ‘바보’가 될 필요가 없다. 물론 이것은 나 개인적인 생각이며 나는 여태껏 남의 글에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다. 개별적인 문인이 댓글을 달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냐고 나오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댓글 문화는 아직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토론보다 작자와 독자들 사이 혹은 문인과 문인 사이 잘못하면 서로 인신비방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충분하기에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은 스케일이 돼 먹은 문인이라면 타인의 관점에 대해 댓글이 아닌 또 하나의 문장으로 대응하되 절대 인신비방은 회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경에 계시는 유명인사가 나와 어떤 관점을 갖고 서로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학문적인 토론이 오갔을 뿐 피차간에 인신비방이 없었기에 며칠 전에 한국에서 만나 술 한 잔 나누고 대여섯 시간동안 이런저런 세상사에 관해 진지하게 말을 나눴다. 산재지역에 계시는 학자나 문인들은 한국에 오시면 나와 만나 술도 나누고 가치가 있는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글로에서 여태까지 조호길 학자의 글(조선 사람이 냉수를 마시고 중국인이 더운 물을 마시는데 대한 글)만큼 가치가 있는 문장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산재지구의 학자나 문인들은 되도록 ‘생산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비해 연변학자나 문인들은(물론 소수이지만) 아직도 특정인을 상대로 남을 의논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현시대는 관점과 사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적이 따로 없다. 만약 적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판단에 맡겨야지 우리끼리 죽이려고 드는 것은 올바른 태도와 행위가 아닐 것이다.
많지도 않는 조선족사회식구가 서로 적이 아닌 친구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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