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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신비
2015년 02월 14일 19시 04분  조회:5987  추천:0  작성자: 죽림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거론할 때 대부분 기자에 있는 세개의 대피라미드를 연상한다. 이들은 이집트의 제4왕조(기원전 2613-2494년) 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만이 이집트에서 건설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피라미드에 대한 신비를 해석하는데 중요하다. 이집트에는 1백40여개의 대소 피라미드가 건설됐으며, 현재 그 위치가 확인된 것만도 80여개가 된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이집트의 특이한 기후의 산물인 미라와 고대 이집트 인들의 내세관을 알아야 한다. 고대 초기 이집트에서 사망한 사람을 매장하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사막 경계 지역에서 시체를 약간 깊은 구덩이에 넣고 모래로 덮었을 뿐이다.


건조한 공기와 더운 모래의 접촉을 받은 시신에서 급속한 탈수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수의가 썪기 전에 자연적인 방법으로 미라가 만들어지곤 했다. 이집트인들은 우연히 육신이 보존된 미라를 발견하고 내세에서 생을 영위하기 위해 미라처럼 시신이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덩이가 커다란 무덤으로 변하고 관이 사용되자 시신은 모래와 직접 접촉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인공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공들여 미라를 만들어도 끊임 없이 불어 닥치는 사막의 바람이 무덤을 흩날려 버리고 재칼과 같은 동물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훼손하곤 했다. 그러므로 무덤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도 동시에 생각해야 했다.

피라미드 (2) 대피라미드가 비어있는 이유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19:50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337
 
 

왕조 시대로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진흙 벽돌로 상부가 편평하고 옆이 경사진 무덤 '마스타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피라미드의 기원이다. '마스타바'는 사자(죽은 사람)가 환생할 때까지 영원한 삶을 누리는 직사각형의 묘다.



마스타바의 지상부나 지하부에 몇개의 방이 있는데, 한 방에는 죽은 사람의 미라를 안치하고 다른 방에는 사자를 위한 물건들을 넣었다.



세계 최초로 돌을 가공해 만든 피라미드는 사카라 제3왕조(기원전 2천6백년경) 죠세르 왕 시대에 이루어졌다. 이 웅대한 건축물을 '피라미드 복합 건축물'이라고 부른다. 묘지는 물론 신전이나 부속 건물을 비롯해 장례와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구조다.


제4왕조에 이르면 피라미드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계단식 피라미드의 건축술을 숙지한 건축가들은 가장 단순하면서 순수한 형태로 하늘을 직접 향한 모습의 피라미드를 현실화시킨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바로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피라미드 건설은 4-5 왕조에 절정을 이루고 13 왕조까지 지속된다. 피라미드의 건설 시기는 이집트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절정기에 달할 때였다.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했고 중앙집권체제에서 사회는 안정돼 있었다.


이 시대가 5백년 쯤 계속되다 실질적인 지배자가 파라오에서 지방 제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파라오의 권위는 약해지고 피라미드는 약탈당하고 파괴된다. 심지어 자신이 건설하는 무덤의 부장품을 확보하기 위해 파라오 스스로가 선대 피라미드를 공개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쿠프왕의 대피라미드도 당시(기원전 2천년 이전) 약탈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폐단을 잘 알고 있는 후대의 파라오들은 이후 대피라미드와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지 않았다.

 

 

피라미드 (3) 세계의 중심에 위치-세계 대륙을 4등분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19:52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395
 
 
피라미드의 대명사는 이집트 쿠프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대피라미드(기원전 2천5백년 추정). 과학자들이 가장 많은 연구를 수행한 피라미드다. 대피라미드 옆에는 쿠프왕의 아들과 손자의 무덤으로 알려진 두 개의 피라미드가 우뚝 서있고, 왕비의 무덤이라는 작은 피라미드 6개가 3개씩 2줄로 배치됐다.



이 9개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서남쪽 가까이에 위치한 기자 지역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피라미드의 위치가 여러 면에서 지리학적인 ‘중심’이라는 점이다. 먼저 대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수직선(동경 31도)과 수평선(북위 30도)을 그리면 전세계 대륙 면적이 거의 4등분된다.

 


또 나일강 삼각주 지역의 끝부분을 원호로 연결할 때 대피라미드는 원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곳은 고대의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피라미드가 세계의 어떤 ‘중심’이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피라미드 (4) 현대 기술이 손 든 정밀성-밑변을 높이로 나눈 값은 π/2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19:54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414
 
 
대피라미드를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먼저 대피라미드의 엄청난 규모에 일종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구조물의 건축학적 정밀성을 확인하고 감탄하기에 이른다.


대피라미드의 네변 길이는 모두 2백30m 정도. 평균 2.5t의 무게와 어른 키만한 돌로 이렇게 길게 받침을 세우려면 아무래도 각 변의 길이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소숫점 첫째 자리에서 값의 차이가 날 뿐 거의 비슷하다. 또 각 밑변이 각각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고 밑변의 각 모서리가 90도를 이루는데, 무시할 정도로 오차가 작다.


현대의 건축학자들은 이런 정밀도를 가진 거대한 건물을 짓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밑변 하나의 길이를 높이(1백46.6m)로 나눈 값은 1.57. 원주율(3.1416)의 절반에 해당하는 이 수치까지 고려된다면 피라미드의 건축 과정은 더욱 복잡했을 것이다.

피라미드 (5) 지구 크기를 상징한다-43200의 비밀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19:55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457
 
 
과학자들은 대피라미드에서 측정된 각종 수치들을 여러모로 연관시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대피라미드에 숨겨진 천문학적 수치가 드러났다. 


먼저 과학자들은 피라미드가 독특한 단위를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재 보편적으로 알려진 1피라미드 단위는 지구의 남북극 거리를 2천만으로 나눈 수다. 이 단위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밑변 하나를 이 단위로 나눈 값은 약 365. 잘 알고 있듯이 이는 1년의 날짜다.


지구의 세차 운동과 연관된 수치도 발견됐다. 지구의 적도 둘레는 약 4만75km, 반지름은 약 6천3백78km. 그런데 이를 ‘4만3천2백’으로 나눠 보니 이상한 값이 나왔다. 먼저 적도둘레를 나누면 약 9백27m가 산출된다. 피라미드 네변의 합과 거의 유사한 값이다. 또 지구 반지름을 나눈 값은 약 1백47m. 피라미드 높이에 거의 일치한다. 피라미드의 둘레와 높이가 지구의 크기를 상징하는 셈이다. 문제는 ‘4만3천2백’이란 값이 어떻게 산출된 것이냐는 점이다. 


이 값은 세차 운동에서 발견되는 특정 값인 ‘4천3백20’을 10배한 수치다. 세차 운동은 지구 축이 약 2만6천년을 주기로 3백60도 회전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한 학자가 지구가 60도를 이동하려면 약 4천3백20년이 걸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침 4만3천2백을 비롯해 4천3백20, 4백32와 같은 수는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해 학자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4만3천2백’이란 수치를 피라미드 둘레와 높이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는데 사용했다.

피라미드 (6) 왕의 방에 담긴 수수께끼-북극성 관측 위해 오차까지 고려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19:57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485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장소는 일명 ‘왕의 방’이다. 밑면에서 3분의 1 떨어진 곳에 위치해 면도날을 재생시키고 부패를 막는 등 ‘피라미드 파워’를 일으킨다는 곳이다. 이곳에는 어떤 수치들이 숨겨져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왕의 방’의 가로와 세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건축 구성 비율이1:1.618, 즉 황금비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흔히 황금비는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보다 훨씬 이전에 건축된 피라미드에서 나타난 것이다.


황금비는 사람의 눈에 가장 조화스럽게 인식된다고 알려져 건축, 조각, 회화 등 예술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직사각형은 두변이 황금의 비로 분할돼 있을 때 가장 정돈된 느낌을 준다. 주변에서 흔히 사용되는 명함이나 담배갑, 엽서가 이 비율를 따라 만들어다.


기하학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값들도 발견된다. 피라미드를 왕의 방 밑바닥 방향에서 수평으로 자르면 수평면 면적이 피라미드 밑변 면적의 절반과 일치한다. 방 밑바닥의 대각선 길이는 피라미드 밑변 하나의 길이와 같다. 게다가 옆변 길이는 밑면 대각선 길이의 절반이다. 한편 왕의 방 북쪽 벽에는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가느다란 통로가 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이 북극성을 관찰하기 위해 만든 통로라고 주장했다. 피라미드가 세워진 당시의 별자리를 고려한다면 이곳에서 북극성을 보기 위해 피라미드는 정확히 북위 30도에 위치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피라미드의 위치는 북위 29도58분51초. 이 오차는 어떻게 해석돼야 하는가. 한편으로 북극성에서 발하는 빛이 공간에서 굴절되는 것을 고려해 일부러 약간 뒤에 만들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관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근소한 오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7) 새로운 기원설-오리온자리와 일치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19:59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530
 
 
대피라미드가 설립된 연대는 확실치 않다. 쿠푸왕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기원전 2천5백년 경에 설립됐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역사의 아버지’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투스(기원전 5세기)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한 승려로부터 듣고 기록한 내용에서 비롯된다. 달리 말해 헤로도투스가 잘못 알았다면 우리의 상식도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해석이 천문학 분야에서 제기됐다. 단서는 쿠푸왕과 아들, 손자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세 피라미드의 위치가 오리온 별자리 가운데 세 별의 위치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제시됐다. 현재 이 세 별은 기자의 남쪽 하늘에 있는데, 아래쪽 두 별(알 니탁, 알 닐람)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세 번째 별(민타카)은 그 선에서 약간 왼쪽, 즉 동쪽 방향으로 어긋나 있다.세 피라미드와 유사한 배치였다.

 


이 점에 착안한 어떤 천문학자는 피라미드를 만든 시기가 혹시 이 별들이 피라미드의 바로 위에 떠있던 때가 아닐까 추측했다. 이를 가정해 계산한 결과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약 1만4백50년이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 시기에 하늘의 은하수는 나일강의 위치에 거의 중첩돼 펼쳐져 있었다.

 

 


대피라미드 옆에 선 거대한 돌덩이 스핑크스도 이런 추측을 강화시켰다. 사자 모양을 한 스핑크스가 바라보는 쪽은 정동 방향. 태양은 낮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에 정동에서 뜬다. 고대인들은 보통 춘분점을 천체 시스템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이때를 태양의 1년 주기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파악하고 다른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렇다면 스핑크스는 왜 사자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춘분에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별자리의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스핑크스가 만들어진 당시 정동 방향에 사자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기원전 1만9백70년에서 기원전 8천8백10년 사이. 피라미드가 1만4백50년 경 만들어졌다는 설을 뒷받침해주는 수치다.

 

출 처 : 고대문명인터넷연구소

피라미드 (8) 공간의 미학, 황금비-자기 유사성 가진 조화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20:00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552
 
 
왕의 방’에서 발견된 황금비는 12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가 발견한 수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피보나치 수열은 연속적으로 배열된 수에서 앞의 두 숫자를 더해 다음 수가 배열되는 방식에 따른다. 즉 1, 1, 2(1+1), 3(1+2), 5(2+3), 8(3+5)…의 형태다. 이때 뒤로 갈수록 ‘앞의 수:뒤의 수’가 황금비와 유사하게 일치해간다.



황금비의 성격을 기하학적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왼쪽과 같이 먼저 하나의 직사각형을 그린다(변의 길이 a, b). 다음 긴변(b)으로 이뤄진 정사각형을 그려 붙인다. 여기다 a+b, (a+b)+b, (a+b+b)+b…인 정사각형을 계속 붙여 나간다. 이때 모든 직사각형에서 두변의 비율이 항상 최초의 직사각형 변의 비율(a:b)과 같을 수 있는데, 그 비율이 바로 황금비다. 이처럼 황금비는 자기 유사성을 가진다.



황금비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예를 보자. 정5각형의 대각선을 두 개 그릴 때 각 대각선은 황금비로 나뉜다.

 

피라미드 (9) 대피라미드 건축의 비밀 - 돌의 무게 6백만t 이상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20:02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586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정점에 위치한 기자 지역에 세계 최고(最古), 최대 규모이면서 가장 정밀한 석조 건축물이 우뚝 서있다. 주류 고고학계에서도 4천5백여년 전에 건축됐다고 인정하는 이 건축물이 과연 그 옛날 석기와 청동기만을 사용했을 미개인들이 만든 것일까.

 

 

많은 고고학자들은 당시가 절대왕권 체제로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시간을 무제한으로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피라미드의 건축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요점은 석기와 간단한 청동기 도구로 석회암을 채굴하고, 통나무와 지렛대, 그리고 윤활유를 사용해서 돌을 운반했으며, 완만한 경사로를 피라미드 상부까지 건설해서 돌을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언뜻 생각하기에 가능할 것 같아도 건축의 규모를 헤아려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사용된 돌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피라미드를 한변의 길이가 30cm인 정육면체 블록으로 쪼개면 지구 둘레의 3분의 2까지 늘어놓을 수 있다. 무게로 따지면 총 6백만t이 넘는다. 이정도 규모의 토목건축사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에 충분한 사회적 구조가 뒷받침됐음을 의미한다.



토목건축사업은 여러 기술과 산업들이 총집결돼 이루어지는 것으로 건축 당시 과학기술력의 전체적인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축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초첨단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대피라미드를 건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대피라미드 건축에 적용된 오차의 범위가 오눌날의 건축물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10) 현대 기술 뺨치는 정밀성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20:03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605
 
 
예를 들어 오늘날 가장 정밀한 건축물의 대표격인 파리 천문대와 그리니치 천문대는 각각 정확히 자오선(어떤 지점에서 정북과 정남을 따라 천구에 상상으로 그은 선)과 일치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실제로 측정한 결과 각 천문대는 자오선 방향에 대해 6호분과 9호분씩 틀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대피라미드는 3호분 남짓 어긋나 있을 뿐이다. 또 오늘날 레이저빔을 이용한 초정밀 수준기(평면의 수평 정도를 측정하는 기계)로 건설되는 건물의 수준 오차는 전체 규격의 0.2% 남짓인데 비해 대피라미드는 전체 밑면적에서 겨우 0.03% 정도의 오차를 보여준다.


즉 대피라미드 건설에 적용된 기술과 기능이 오늘날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일부 고고학자들은 당시 이집트인들의 기능적인 능력을 극찬하면서 그들이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건축의 정밀도가 전적으로 기능에만 의존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 당시에 매우 발달한 기술 수준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그들의 초인적인 기능을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대피라미드가 건설될 때 오늘날의 정밀 측정기에 버금가는 기기가 사용됐음에 틀림 없다.


이런 증거는 초고대에 구현된 다른 기술적 업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까마득한 옛날에 현재와 같은 수준의 문명이 존재했음을 확인시켜준다.

 

피라미드 (11) 선왕조 시대에 제작된 돌항아리의 신비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20:05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666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3천8백년 전에 건설되기 시작됐다고 한다. 즉 상·하 이집트가 통일돼 왕국이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대피라미드와 같은 초거대·초정밀 건축을 할 수 있는 문명이 이집트 땅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대 이집트 통일 왕국은 씨족사회와 부족사회, 그리고 다음 단계인 부족 국가 형태를 거치면서 더욱 발달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찬란한 수준의 고도 산업사회 붕괴 후에 다시 시작한 문명이었음이 명백하다.


이런 설명을 지지해주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대피라미드 건설 수준에 어울리는 정밀가공 기술이 그것이다. 정밀가공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증거물은 기원전 4천년 경 선왕조 시대에 발견되는 돌항아리다.


주류 고고학자들은 왕조 형성기 이전이 부족 국가의 신석기 시대였으므로 당시 신석기 항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항아리에 적용된 기술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항아리가 미개 문명의 뉘앙스를 풍기는 신석기 시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조시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돌항아리들은 현무암, 화강암, 섬록암과 같이 쇠보다 강한 암석을 깎아서 만든 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돌항아리들이 제례 의식을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특별히 제작한 수공업제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항아리의 수는 3만여개가 넘는다. 즉 그 옛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것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항아리가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돌항아리의 안팎 표면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 항아리를 회전시키며 가공한 것이 틀림없음을 증명해주는 미세한 동심원 모양의 가공 흔적이 발견됐다. 항아리 제작에 선반이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이는 우리 인류의 기술사에 일대 지각 변동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발견이다.


선반 작업은 물체를 고속으로 회전시키면서 절삭 공구로 안팎을 깎아내는 공정이다. 하지만 현무암같이 쇠보다 단단한 돌을 절삭하는 일은 오늘날의 특수한 공구로도 불가능하다. 설령 그런 용도의 절삭 공구가 개발된다고 해도 공구와 물체 사이에 높은 압력을 걸어줘야 한다. 또 물체가 초고속으로 회전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이집트학 학자 플린더스 피트리는 이런 가공에 최소한 2t 이상의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고 추정했다. 오늘날 석재 가공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큰 압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압력을 공구로부터 받는 돌덩어리를 과연 초고속으로 회전시킬 수 있을까. 이런 조건에 절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오늘날 기계 가공에 사용되는 고성능 모터같은 것이 필연적으로 요구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터는 오늘날처럼 전기에 의해 구동됐을까. 만일 그 옛날 이 모든 조건이 구비됐다면, 당시는 신석기 시대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 고도의 산업 사회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고도의 산업 사회를 가정하면, 6백만t의 돌들을 채석하고 운반하고 쌓아올린 기술의 수수께끼도 쉽게 풀린다.

피라미드 (12) 고대 이집트인의 독자기술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20:06
 
http://blog.naver.com/allmaster/8706700
 
 
피라미드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비록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피라미드에 많은 비밀이 간직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당시의 기술로만 건설된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논할 때마다 우선적으로 대두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신석기 후반으로 볼 수 있는 고대 이집트에서 어떻게 커다란 피라미드들을 건설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피라미드를 만든 공구와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이집트인이 사용한 공구는 단단한 돌덩어리, 나무에 묶는 원형 망치나 도끼류, 날카롭게 갈은 칼과 같은 돌 종류와 동과 같은 금속류로 만든 칼이나 가위다. 구리와 같은 연한 금속의 경우 현재의 합금과 같이 몇가지 불순물을 사용해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라는 가정도 있지만 연장의 대부분이 단단한 석재였다고 추측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원시적인 공구로 대형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돌항아리의 숫자와 가공 기술을 근거로 특수 기술을 가진 공구가 사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라미드의 건설에 사용된 돌덩어리의 거의 대부분이 석회암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석회암은 석회물질이 물밑에 쌓여 굳어진 퇴적암으로, 경도가 가장 무른 활석 다음으로 가공하기 쉬운 재료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초보적인 연장으로도 능히 자신들이 원하는 규모로 재단하거나 가공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는 50명도 채 안되는 인원과 3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0.75t에서 3t에 달하는 1백86개의 돌로 8층짜리 피라미드를 고대의 연장만으로 건설했다. 즉 고대인들이 충분히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피라미드 안에 단단한 화강암이 사용됐는데, 이것을 어떻게 가공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화강암도 돌의 형태와 결을 잘 알면 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석공들은 잘 알고 있다. 화강암이 석회암보다 단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강암은 6각의 얇은 판모양의 운모, 기둥 모양의 석영, 두꺼운 판모양의 장석 등 3가지 성분이 비균질적으로 섞여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화강암이 설탕처럼 쉽게 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한다.

피라미드 (13) 비탈길 타고 돌 운반 | *세계의 불가사의* 2004/12/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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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돌항아리가 만들어진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특수 기술을 사용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돌항아리는 현재도 이집트 일부 지역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법을 그대로 사용해 만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관광지에서 옛날 수법 그대로 고대 유물을 복제해 판매하는 것과 같이 이집트에서도 단단한 돌항아리의 속을 파내 관광객에게 팔고 있음을 볼 때 특수 기술을 사용했다는 설명은 다소 과장으로 보인다.


대형 돌들을 채석장에서 절단하는 방법론도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채석장에서 돌을 추출할 때 나무 쐐기를 박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쐐기의 부피가 증가해 간단하게 절단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집트의 채석장에서 수백t의 대형 돌기둥인 오벨리스크가 미완성인 채 발견됐는데, 이곳에 쐐기를 사용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렇다면 대형의 돌은 채석장에서 어떻게 기자 지역으로 옮겨졌을까. 기자의 대피라미드 석재는 기자 지역 외에 2곳의 채석장에서 공급됐다. 피라미드 외벽용으로 사용된 매끄러운 석회석은 기자 지역 근처의 카이로에서 50km 떨어진 투라에서 채석됐다.


그리고 피라미드 내부에 사용된 화강석은 카이로에서 9백km 떨어진 나일강의 첫번째 급류 부근에 있는 아스완에서 가져왔다. 평균 중량 2.5t, 큰 것은 70t이 되는 돌덩어리를 아스완에서 운반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거대한 거룻배로 돌을 운반하고, 항구에서 현장까지 썰매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대피라미드 남쪽에서 발견된 '제1 태양의 배'는 당시 이집트의 건조 능력을 보여준다. 현재 원형이 복원돼 전시되고 있는 이 배는 좌우측에 5명씩, 그리고 배 앞뒤에 1명씩 총 12명의 노젓는 사람에 의해 운행된 것으로 보인다. 배의 규모를 볼 때 총길이 42.3m, 폭 5.6m로서 한번에 약 1백50t의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 건설에 대한 가장 큰 논란거리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 원하는 높이까지 거대한 돌을 옮겼냐는 것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탈길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즉 피라미드 한쪽 옆면에 경사로를 만들고 지레를 설치해 썰매에 얹혀진 돌덩어리를 상부로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피라미드가 높아질수록 비탈길의 길이가 길어지는데, 이때 비탈길이 주저앉지 않도록 경사각은 항상 거의 10도를 유지했다. 실제로 대피라미드에 대한 근래의 조사에서 이런 증거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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