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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시에 관한 고견
2015년 02월 19일 16시 37분  조회:4670  추천:0  작성자: 죽림

하이퍼시에 관한 소고(小考)

-심상운의 평론집『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를 읽고

 

 

                                                              최 진 연

 

 

1. 하이퍼시 출현의 필연성

 

 

먼저 심상운 시인의 평론집『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의 출간을 축하한다.

 

이 평론집은 한국시사(詩史)나 세계 문학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론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나는 그의 시론이 보완되어져서 서울의 세계펜클럽대회(2012년) 때 소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시인들 앞에 내놓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하이퍼시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 시대의 필연적 산물로 보인다. 현대는 탈구조주의 내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지배하고 있다. 절대자, 절대자아, 절대가치, 권위주의, 중심주의 등이 부정되고 다양한 개성과 상대성이 지배하고 존중되는 현대는 예술 표현에 있어서도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절대유일의 재현(representation)이나 동일성을 거부하며 어느 것만을 절대시하지 않고, 복잡 다양한 현대사회를 수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 현대는 IT를 비롯한 새로운 전자기술의 발달로 A. 토플러가 예언한 ‘제3의 물결’이 산업 및 생활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황의 법칙’이 지배하는 반도체 기술의 진화가 야기하는 IT 등의 신기술은 혁신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식과 질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데, 이 변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종래의 아날로그문화에서 디지털문화로의 변혁을 의미한다. 전 세계의 모든 정보는 유‧무선인터넷과 PC, 스마트 폰 등으로 어느 곳에서나 거의 동시에 접속, 통신 또는 샘플링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 지식 정보(데이터)는 주지하다시피 0과 1의 2진법 형태의 비연속적 단속적 신호체계 즉 디지털 방식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디지털문화를 수용하고 적응하기 위해 예술분야에도 혁명적 변화 요구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시대적 특성을 배경한 예술의 변화는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술에 있어서 한국인 백남준이 열어놓은 비디오아트는 미적 상상력에 의해 디지털 기기와 기술을 채용 구성하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디지털아트로 발전하고 있음을 젊은 작가들의 작품전시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시인 작가들도 이 디지털문화의 거센 물결에 적응하기 위해 하이퍼텍스트문학을 시작한지 오래다. 심상운의 하이퍼시 및 시론의 출현은 이런 시대적 요청에 따른 필연적 산물이라 생각된다.

 

이 평론집은 하이퍼시의 성격, 그 작법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지금은 시작(詩作) 참여자가 소수이지만, 가령 문예부흥기에 고전주의 문학사조가 거세게 일어나 그 시대를 풍미한 것처럼 장차 디지털문화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때 하이퍼시(문학)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문학 유파로서 가장 지배적인 양식이 될 듯하다.

 

 

2. 하이퍼시론의 탄생 및 확산 과정

 

  심상운의 첫 시집 『고향 산천』이나 그 다음의『당신 또는 파란 풀잎』에 탈관념 등 하이퍼시가 보여주는 요소는 거의 없다. 특히 첫 시집은 역사의식과 토속성의 관념이 강해서 신군부 정권의 금서(禁書)가 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시문학』지에「한국 현대시의 동향과 새로움의 모색」이란 논문을 발표한① 뒤 ‘디지털리즘;이란 새로운 용어를 쓴 오진현 시인의 시론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오진현은 그의 시론집 『꽃의 문답법』(1999.1.4)과 『이상의 디지털리즘』(2005.4.15) 등에서 탈관념을 계속 주창해왔거니와, 그 무렵 그를 중심으로 시에서 관념을 배제해야 한다는 ‘탈관념’의 주장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조되고 있었다. 그 현상을 보다 못한 나는, 시가 관념 덩어리인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언어본질상 시에서 관념을 배제하기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관념도 중요한 시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글「탈 관념은 가능한가?」를『시문학』에 발표하였다(2006.7). 그 논문 말미에 밝혔듯이 관념의 중요성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관념’과 ‘탈관념’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누군가가 시단을 향해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진현이 내 논문의 근본취지를 간과했음인지 그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때 나는 ‘그 글을 쓰지 말 것을!’하는 일말의 후회도 했다. 어차피 “기표의 표류(데리다)나 기의의 미끄러짐(라캉), 거짓말 이론(에코), 커뮤니케이션은 끊임없는 오해의 과정에 불과하다(그래마스).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는 없다(발레리)”②는 등에 근거하면, 관념(의미)은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오해를 풀고 그 마음을 위무해주려고 화해자로 심상운도 청해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우리는 더 좋은 시를 쓰자는 마음에서 다를 수 없기 때문에 오해를 풀고 담소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 달의『시문학』에 오진현의 내 논문에 대한 다분히 감정적인 글과 함께 심상운의「탈관념시에 대한 이해」라는 논문이 실려 있었다.(2006.8), 오 시인의 글을 읽고 나는 두어 주 전의 만남이 생각나면서 허탈해졌다. 당시 해명하는 글을 다시 발표할까 하다가 가치 있는 일이 못 될 듯해서 참았다. 그 얼마 뒤 한 모임 끝에 심상운이 내게 말하기를, 내가 앞의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는 탈관념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거나 그에 관한 논문도 쓰지 못했을 것이라 했다.

 

이런 아픔을 거쳐 태어난 이 논문에서 심상운은, 내가 제기한 관념문제에 명료한 답을 제시해주었다. 관념(의미)과 탈관념(무의미)의 다름을 예문(例文)을 들어 설명한 요지는 대체로, 화자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간 것이면 관념이고 인지적 사실에 그치면 탈관념이라 하였다. 우선 관념과 탈관념의 구별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오 시인의 막연한 탈관념 주장에 비해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였고, 타당성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기의(記意)에 해당하는 의미를 인지언어학에서는 인지과정으로 본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의미란 일정한 사태가 환기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③ 이 견해는, 그가 관념과 탈관념 사이에 세운 구별의 담도 허물어뜨려버릴 것이다. 그가 탈관념의 예문(例文)으로 든 “방바닥이 차다.”는 분명히 ‘일정한 사태가 환기되는 상태’라는 의미(meaning)의 정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관념(의미)를 가진 문장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도 이 구별의 기준을 세웠지만 하이퍼시에 관념의 잔재를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④ 그래서 나는, 심상운의 ‘탈관념’ 개념을 가지면서도 관념을 부정할 수 없는 언어본질과 충돌하지 않는 용어로 ‘언어의 사물화’란 말을 써왔다. 요컨대 심상운이 설정한 탈관념의 기준에 따른다면 대상에 대한 인지단계를 넘어선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심상운은「디지털시에 대한 이해」란 논문(2006.11)에 이어서 하이퍼시론의 단초라 할「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라는 표제 논문을『시문학』에 발표한 것이 2008년.6월이었으니, 이런 일연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디지털시 하이퍼시에 관한 글을 쓴 게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하이퍼시의 특성과 작법을 좀 더 구체화한 논문「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를 한국현대시인협회 여름세미나에서 발표하였다(2008). 필자는 그때 협회가 지명한 질의자로서 ‘하이퍼시가 독자와의 소통(疏通)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회원들의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그 논문은 그해 『시문학』10월호에 발표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심상운이 오진현의 탈관념시론과 디지털시론을 보완해서 발전적으로 자기화했으며, 이 두 논문을 기초로 다시 하이퍼시론으로 진화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상운은 자신의 시론에 따라 최초로 ‘하이퍼시’라는 명칭으로 2008년『시문학』5월호에 '구멍가게집 여자' '바람소리' '이미지여행''북한산 레몬 향기' '미완성의 시‘ 등을 발표했다. 그때 김규화, 오남구(진현)도 작품을 함께 발표했으며, 이후 이 세 사람은 동인지를 따로 발간하지는 않았지만, 하이퍼시 동인으로 『시문학』을 통해서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 해 9월호 심상운의 작품은 '은백색 미확인 비행물체' '그림 또는 링크' '사각형 스크린' ’파란색기차' '헤트라이트‘ 등이었고, 2009년 1월호와 2010년 3월호에도 이어졌다. 그 시운동의 확산을 위해 『시문학』2009년 11월호에 전기 3인과 함께 최진연, 조명제, 이 솔, 송 시월이 참여하였고, 그 무렵 신규호, 손해일, 위상진 등 몇 사람이 더 참여하였다. 2010년 7월호에는 앞에 열거한 시인들에 더하여 신 진, 정연덕, 안광태, 고종목, 강영은, 김금아, 김기덕, 김은자, 김영찬 등 무려 17인이 참여하였다. 이것은 오로지 ‘현대시의 길닦기, 길잡기, 길트기’를 표방하고 있는『시문학』이 하이퍼시의 확산을 위한 특별한 배려 덕택이라 생각된다.

 

3.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의 유사성과 차별성

 

나는 우선 ‘디지털시와 하이퍼시가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살펴보았으나 그의 논문집 어느 글에도 그 차별성을 명시적으로 대비시켜 밝혀놓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탈관념시와 디지털시를 먼저 주창해온 오진현의 말을 들어봤다. “지금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시가 ‘기술 또는 '자동기술’하는 것이라면, 미래 디지털시대의 시는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염사(念寫) 또는 접사(接寫)의 ‘찍는다’는 행위로 구분 짓는다. (…) 그러므로 시인의 생각과 의식을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나는 언어 이전의 언어(사물언어)로 사물을 사진 찍듯이 찍는다.”⑤ 이것은 오진현의 ‘디지털리즘 선언’의 일부인데, 이 말은, 그의 탈관념시에 관한 설명 그대로이다. 즉 디지털시가 탈관념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지면 관계상 인용 비교 설명하지 못하나, 그의 작품에 있어서도 구별되지 않음을 그의 시 전집을 읽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그의 디지털시론의 핵심은, 대상에 대한 시점을 달리한 관찰이나 명상에 의한 직관으로 사진 찍듯이 시를 찍음으로써 탈관념의 시를 쓰자는 것이다. 그가 ‘탈관념시’를 ‘디지털리즘 선언’ 이후부터 ‘디지털시’라고 고쳐 부르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전통적인 시가 대체로 연속적인 사유의 산물이란 점에서 아날로그 방식이라 한다면, 그의 탈관념시는 단속적인 직관에 의해 찍는다는 점에서 디지털 방식이라는 데에 둔 듯하다,

 

심상운의 탈관념시론이나 디지털시론 역시 오진현의 경우처럼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심상운의 시론이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듯하다. 또 심상운의 논문집을 읽어보면 하이퍼시론 역시 디지털시론과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디지털시론에서 그는, 디지털(digital)이란 용어와 디지털시대의 문화감각 및 디지털의 컴퓨터 공학적 특성을 설명한 다음 현대시에 나타난 디지털적인 요소를 이상과 문덕수의 시에서 찾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오진현이 선언한 ‘디지털리즘’을 <디지털의 특성과 디지털시대의 감각에 호응하려는 시운동>이라고 의미규정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그는 디지털시가 되려면 순수영상언어를 지향하고, 통사론에 구애받지 않는 시적 공간 확장이 있어야 하며, 시인은 독자가 시를 완성시키는 위치에 비켜서야 한다는 것이다.⑥ 그리고 디지털시의 표현방법으로서 이상의 시에서 구현된 추상화 기법과 오진현의 염사와 접사의 기법, 사물성의 강조와 다시점의 순간포착에 의한 감각과 이미지 표현에 중점을 둔 언어단위들의 집합적 결합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 디지털시가 종래의 시와 다름은 정서나 감각의 변화가 아니라 표현기법이므로 초현실주의 시와 달리 종래의 아날로그적 정서와 감각을 투명하게 살려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들은 탈관념시의 특색과 다르지 않으며 하이퍼시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⑦

 

4. 상상과 공상을 바탕으로 한 가상현실의 공간 확대

 

이와 같이 하이퍼시와 디지털시의 차별성은 없어 보인다. 사이버 공간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현실성을 지적하면서 사이버시대의 시에 있어서 탈관념의 근거를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이미지의 실재성을 가스통 바술라르의 시학에서 찾은 그는. ‘의미의 예술’에서 ‘영상(이미지)의 예술’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한다. 디지털 공학적 세계에서 구현되는 현상을 탈관념의 원초적 언어로 쓰는 디지털시 쓰기에서 상상과 공상을 강조하는데, 이는 오진현의 탈관념시에서 영감(inspiration)과 관찰에 의한 ’직관‘을 강조한‘⑧ 것과 다른 면이라 하겠다. 상상과 공상(fancy)을 강조하는 점이 심상운의 하이퍼시론의 차별성으로 보인다. 심상운이 사물에 대한 감각과 인지에 그치는 ’관념의 그림자‘ ’지장수 같은 의미‘를 인정하는 감각적 이미지의 표현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시화(詩化)하자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언어(의미)창조로서 사물시(physical poetry)에서도 강조하는 바이고, 하이퍼시에도 그대로 강조되고 있다. 사실 참신한 감각적인 시 쓰기는 하이퍼시만이 아닌 모든 시에도 요청되는 전통적 명제라 할 것이다.

 

심상운은 즉물적 감각적 언어는 직관뿐 아니라 상상 내지 공상이란 사유(思惟)로도 얻게 됨을 시론과 작품을 통해서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공상이다. 한국문학에서 경시되어온 점을 환기한⑨ 그는, 시에서 공상을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시문학』(2010.7)에 발표된 그의 작품을 보자.

 

앉아 있는 그녀를 하얀 구름이 휩싸고

 

빨간 버스가 그녀와 구름을 싣고 달린다.

 

(중략)

 

도시를 빠져나온 빨간 버스는

 

돌고래들이 솟구치는 태평양 바다 위를 달린다.

  (후략)

  -심상운, 「파란 의자」 부분,

 

 

이런 표현은 현실세계에서 현실을 벗어난 공상의 산물이다. 그는 현실세계뿐 아니라 가상현실에서도 시적 공간을 공상에 의해 확장하고 있다. 문학에서 공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어본 사람이면 실감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상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그 소설뿐 아니라 그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7편이 평균 7억 달러쯤 벌어들였다니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도 문학에서 공상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심상운이 공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에 도입하여 시적 공간을 획기적으로 넓힌 최초의 시인이 아닌가 한다. 또 그는 종래의 ‘읽고 생각하는 시’에서 ‘보고 감각(感覺)하는 시’로 바꾸자는 오진현의 주장을 받아들여 하이퍼시에도 적용하고 있다. 오감(五感)에 의해 감각 인지되는 시를 써온 시인들에겐 그리 새로울 게 없으나, 그가 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울러 감각적인 시적 공간을 공상세계로 확장하고 있음은 일찍이 우리 시사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공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종래의 시에서 흔히 말하는 기상(奇想conceit)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범위에 현실과 가상현실의 제한이 없고 시편마다 가히 단골 메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공상은 기상과 다르다고 하겠다.

 

하이퍼시 읽기에서도 의미론적인 소통의 독해보다 읽고 느끼는 감성적 소통에 그쳐야 할 것이다. 읽고 느끼는 재미 이상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상과 공상을 통해서 현실에서 볼 수 없거나 있을 수 없는 세계를 영상언어의 투명한 이미지로 그려 보이는 것은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세계를 떠난 신선한 해방감을 주므로 환영하리라 생각된다.

 

또 그가 정서 결핍의 초현실주의시와 달리 하이퍼시에 ‘축축한 정서적 수분’이 공급하고 있다는 점은. 전기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하이퍼시의 장점이라 하겠다. 의미에서 벗어난 시에 정서마저 없게 된다면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무의미한 시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흐리게 만드는 관념을 제거하는 대신 “칸트의 ‘보편적주관성’에 암시되는 바처럼 객관성이 있는 정서”⑨를 받아들여 시를 투명하면서도 축축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은 하이퍼시가 독자들에게 환영받을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유희성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자꾸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은 내가 관념의 포로가 된 때문일까? 나는 어떻게 하면 심상운이 말하는 하이퍼시의 장점들을 살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의미)을 무리 없이 그 속에 녹여 넣을 수 있을까 애쓴다. 하이퍼시를 쓰려는 시인이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 생각해서『시문학』에 발표된(2009.11) 졸작 한 편을 내놓고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시인들과 함께 아이스크림 황제*를 읽어서인지 내 심장이 핑크빛 아이스크림이

 

되는 것을 보았다. 여름 태양보다 뜨겁게 운동장을 달구는 관중의 함성이 세상을

 

뒤덮는 나라에서 지하철 칸칸마다 하얗게 죽어서 밟히는 시간의 시체들을 보고

 

피라미 같은 낱말들의 떼죽음을 보자니, 눈사람 같은 내 사랑 아이스크림 황제를

 

위한 눈물이 났다.

 

 

그날 저녁 하나님과 불타는 인공위성을 생각하면서 돌아올 때 푸줏간의 고깃덩이들 틈에

 

어느 시인의 심장에서 튀어나온 듯한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만났다. 아침에 죽은 팝송 황제

 

마이클 잭슨의 새까만 안경과 하얀 페인트 얼굴의 입술에 칠한 빨강, 아이스크림 황제를

 

모르는 그 황제는 죽어서 더 날뛰면서 그 입술 색깔로 노래하고 있었다.

 

 

 

 새싹 밥이 소화되는 그날 밤, 낮에 본 지하철 공사장에 쌓인 철 빔들이 모두 일어서서

금강산에 울울한 적송의 숲을 이루고, 수십 개의 주사바늘이 꽂혔던 50kg으로 죽어서 더

 활기찬 그 황제를 위해 노래하는 나뭇잎들과 춤추는 새들, 흰 머리털과 아이스크림 황제

 생각에 하얗게 죽은 시간과 낱말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 제목

 

                                     - 최 진연,「아이스크림」전부

 

이 시가 하이퍼시로서의 특성을 갖췄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첫 연에서 이 시대에 외면당하고 있는 시와 시인의 처지를 창궐하는 스포츠 중심의 저질 문화와 대비하면서 눈사람처럼 녹아버리는 슬픔의 아이스크림 황제에 비유하고 있다. 이 비유의 표현가치가 인정된다면 심 상운이 하이퍼시에 “관념의 표현방식들-상징, 암시, 풍자 등“은 발붙일 수 없다.”⑩는 주장에 재론의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연에서는, ‘아이스크림 황제(시)’를 알 턱이 없을 팝송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사후에 더욱 애도와 사랑을 받는 모습과 대비되는 소외된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연에서도 머리가 희게 되도록 시를 써왔으나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시인의 처지를 마이클 잭슨의 경우와 대비시켜 형상화 한 것이다. 독자들이 읽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시 속에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기도 전에 관객 1억 명이 넘는 야구를 비롯하여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 때 국민의 절대적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는 육체(스포츠) 중심의 저급문화가 정신세계를 압살하는 이 시대에 설자리를 잃고 있는 문학을 비롯한 고급 문화예술의 비애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데아가 시의 전면(前面)을 가리지는 않고 있다고 본다. 심상운이 말하는 하이퍼시에 좀 덜 미칠지라도 나는 하이퍼시의 장점을 살려서 내 나름의 시를 쓴 것이다.

 

심상운은「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말미에 하이퍼시의 특징을 9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 가장 강조된 하나는 ‘다선구조’로 보인다. 하이퍼시의 발전을 위해 하는 말이지만, 나로서는 하이퍼시에서 종래 시에서와 같은 분명한 여러 개(多)의 선(線)을 찾기 어렵다.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문학에서 거의 무제한의 자유로운 접속 링크(link)는 인쇄텍스트 특성상 원천적으로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지만, 몇 개의 선으로 서로 이어지는 최소한의 동일성이나 통일성을 가진 구성단위(단어 문장)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문덕수 시인의 『우체부』가 보여주듯이 장시의 경우는 다선구조가 가능하겠지만, 보통의 단시에서는 사실상 뚜렷한 다선구조의 실현이 어렵지 않나 싶다. 그 때문에 하이퍼텍스트문학과 인쇄텍스트문학의 다른 점으로 참여자들(작자 독자)의 상호작용성,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 음향(소리) 동영상 이메일 링크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요소들이 편입되는 다매체성과 함께 비선형성 및 그로 인한 탈중심구조를 들고 있다.⑪고 생각된다. 하이퍼시 구조(構造)는 문덕수 시인이 그의 시에서 흔히 보여 온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심상운은 하이퍼시의 구성단위(Unit)들이 하나의 시스템(프로그램) 속에 전체로서 작용하면서 독립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모듈성(Modularity)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시의 구성단위들 사이에 존재하는 시인의 의식의 흐름을 말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들뢰즈의 리좀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하이퍼시의 구조는 다선구조라 하기보다 집합적 결합 또는 비선형구조⑫라고 함이 더 적합할 듯하다.

 

5. 맺는 말

 

우리는 심상운의 하이퍼시론과 그에 따른 새로운 시의 출현의 필연성과 그 탄생과정, 디지털시와 하이퍼시의 유사성과 차별성 등을 대강 살펴보았으며, 특히 이 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출현시킨 사실의 문학사적 의의도 생각해봤다. 이제 심상운을 포함한 하이퍼시 쓰기에 참여하는 시인들은 하이퍼텍스트문학의 장점들을 포함하는 하이퍼(건너 뜀, 초월)적 요소들을 인쇄 텍스트인 하이퍼시에 어떻게 좀 더 풍부히 그리고 정교하게 접목시킬까를 활발히 연구 논의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하이퍼시가 한국시단 전체와 세계문학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면서 심상운의 귀한 논문집의 출간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필자: 시인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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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① 한국현대시인협회, 『새는 휘파람소리로 날면서』, 샤문학, 2005, p 301

② 김윤찬, 「기호와 거짓말」, 『기호, 텍스트 그리고 삶』(신 현숙, 박 인철 편), 월인, 2006, p 10

③ Y.Tsuji 편, 임 지룡 등 옮김,『인지언어학 키워드 사전』, 한국문화사, p 6「개념화」부분

④ 심상운, 본 논문집 p 52 상단에 “그 반영(시, 언어) 속에는 시인 자신의 의식(관념)의 그림자가 들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수순한 탈관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라고 하였음.

⑤ 오진현,『시향 별책.1 』「디지털리즘 선언」글나무, 2003, 머리글

⑥ 심상운, 본 논문집, pp 47~48

⑦ 심상운, 앞의 책 p.113 「디지털시에 대한 이해」, 인용 부분

⑧ 최재서, 『문학원론』ⅩⅢ 부분, 春潮社, 단기 4290.7.5

⑨ 최재서, 「Ⅻ.정서(情緖)」, 앞의 책 P 179

⑩ 심상운, 앞의 책 P 48 인용문 중 ‘암시’는 여러 가지 비유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한다.

⑪ 유현주, 「무엇이 하이퍼텍스트를 인쇄텍스트와 구분하는가」,『하이퍼텍스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p 36

⑫ 앞의 책, pp19~20 내용 중 “하이퍼텍스트란 비선형적 글쓰기를 말한다.” 고 넬슨의 말이 인용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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