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홍규
시로 시작한 문학공부가 수필로 전향돼 수필을 몇편 써보느라 했지만 정작 수필이란 무엇인가고 생각해보니 별 할 말이 없는듯하다. 하긴 어지간한 문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가 문인이든 아니든 이른바 《수필》이란 글 한편쯤은 어렵잖게 써서 또 어렵잖게 발표까지 할수 있는게 지금 세월이 아닌가! 그만큼 수필은 널리 보급된듯하고 또 그래서 수필은 전과 달리 제 위치를 찾아서 시와 소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는듯하면서도 누구나 다 쓰고있다는데서 그 가치가 하락되고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수 없다.
정말로 수필은 아무나 다 쓸수 있는것인가?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와 똑같은 식의 물음을 던질수밖에 없는게 조금 서글프긴 하지만 그 물음을 한번 던져보게 된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러나 어이없게도 진부하다. 마치 사랑은 아무나 할수 있는것인지는 몰라도 진실한 사랑은 아무나 다할수 있는게 아니다, 라고 말할수 있는것처럼 수필다운 수필 또한 아무나 다 써낼수 있는것이 아니다, 라고 말해야 하기때문이다.
수필다운 수필의 창작을 위해서는 수필문학도 관념갱신을 해야 할것만 같다. 우리 문단에서 시는 20여년전부터 리론과 실천에서 모두 관념갱신을 시도했고 소설도 그럭저럭 새로운 창작방식을 모색하고 실천하며 그나마 성과를 이룩했다고 할수 있지만 수필은 자신의 위치를 정립한 시간부터 얼마 되지 않다보니 관념상 아직 도식화의 틀에 얽매여있는 부분이 적잖은것 같다.
가장 먼저 갱신하고 타파해야 할 부분은 《문이재도(文以載道)》, 이른바 문장은 반드시 어떤 도리나 철리, 리념 같은걸 담아야 한다는것이다. 《문이재도》는 수천년동안 이어져온 중국고전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고, 또 지금까지 작가들로 하여금 문학이 문학의 본연으로 문학의 제 위치로 회귀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의 하나로 되고있다. 이는 수필문학에서 가장 돌출하게 나타나고있다.
문학은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그것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창작될 때 그것은 어떤 도리를 설교하고 어떤 관념을 해석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세계를 펼쳐보이기 위한것이고, 작가의 이 세상에 대한 남다른 감수를 표현하기 위한것이며, 우리 인간들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떤 세계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것이고,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고난과 그 고난속에서 그걸 이겨내거나 좌절하는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한것이 아닌가. 유독 그 어떤 도리나 관념을 설교하기 위한게 아닐것이다. 도리나 관념을 전달하고 설교하고 강요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차라리 학문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많은 경우 저도 모르게 작품에 어떤 도리를 설명하고 어떤 철리적인것을 주입시키고 해야만 그 작품이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고 주제를 승화시켰다고 안심하는데 습관돼있는듯하다. 수필의 경우 한결 엄중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는 우리 문단뿐만아니라 중국문단 지어 한국문단에서까지 어느 정도 존재하는 현상인것 같다. 중국문화의 전통이 그렇게 만들었고 수필문학의 전통이 그렇게 만든것이다.
또 하나 갱신하고 수립해야 할 부분은 이른바 《진실》에 대한 인식이다. 《진실》이라는 단어만큼 문학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가장 권위적이고 또한 가장 허위적인것은 없을것이다. 특히 수필 혹은 산문문학에서 《진실》이라는것은 하나의 깨뜨릴수 없는 법칙이고 원칙이고 넘어서는 안될 경계선으로 돼왔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깨지고있는 추세다. 깨려고 덤비는 작가들이 있고 깨야 하는 정당성을 호소하는 비평가도 있고 또한 《진실》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와 비평가들도 적잖다.
사실상 《진실》이라는 그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작가가 매 한편의 수필작품에 적어놓은 사실이나 감정들은 모두 추억에 의한 지난 력사로서 아무리 《진실》하다고 해도 그것이 글로 씌여질 때는 주관적인 요소가 첨가될수밖에 없다. 더우기 기억 자체는 단편적이고 편면적이고 주관적일 때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진실》한것이라면 그 《진실성》은 의심스러운것일수밖에 없다. 례컨대 한가지 사건을 서술하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자의 혹은 타의로 빠뜨려놓을수도 있는데 매우 지엽적인 부분만 적어놓고 과연 그것을 《진실》하다고 할수 있을가. 그래서 수필에서의 《진실》이란 어떤 사실(《진실)이 아닌)에 대한 조합이고 상상이고 심지어는 허구로 될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진실》이라는것이 《허구》라는 개념과 함께 수필과 소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척도로 되고있다. 사실 소설과 수필의 구분은 소설은 《사실현장》을, 수필은 《심령현장 혹은 감정현장》을 설치하는데 있는바 수필에서의 《진실》은 심령의 진실이나 감정의 진실에 대한 추구로서 세부적인 사실의 진실성은 별개의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에서의 진실성원칙은 《진솔한 감정원칙》으로 리해해야 할것이다.
이상 두가지로 살펴본 수필관념의 갱신을 념두에 두고 수필이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제기해본다면, 수필은 정신세계로의 탐험이고 상상의 세계로의 려행이며 령혼세계로의 모험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작업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말하자면 한편의 수필을 창작하는 과정은 하나의 유토피아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수필다운 수필은 시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발굴이고 부각이며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표현이고 창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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