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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답사팀일행은 룡정시가지에서 3선 뻐스를 타고 약수동에서 하차했다. 이름 그대로 유명한 약수샘물터가 자리하고 있어 불러지게 된 지명이다. 여기에 “수침툰(水枕屯)”이란 마을패쪽이 보였다. 시가 숨 쉬고있는 마을이 분명하다. 시골 약수동은 대개 세상을 멀리하는 선비나 묵객들이 자주 찾았을 거고 그 약수가 흘러 홍진(红尘)을 멀리하는 소리에 어진 선비는 갈 길을 잃고 물소리를 베개 삼아 지친 몸을 던져 자아의 나라에서 즐겼을것이다. 무엇을 보았을가?…혹시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거다. 궁금한 일이어라.
언덕 올라서 얼마 걷지 않아 길 바로 오른편 잡초속에 허흥식시인의 묘비가 있다. 연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수수한 비석이 잠자고있는 주인이 분명 시인임을 말해준다. 시인은 룡정 태생으로서 농민과 농촌에 애착을 보이는 소박한 시가 돋보였다. 비석 뒤면에는 그의 대표작 《우리는 촌놈이다》가 새겨져있다. 비석은 미망인 박인숙녀사가 세웠다.
대포산도 장관이지만 대포산 정상에 서니 눈앞 광경이 장관이였다. 화룡, 룡정, 연길이 한눈에 안겨왔고 비암산, 마제산 그리고 해란강경기장, 모든것이 발아래에 있었다.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까닭이었을가. 대포산에 부는 바람은 열기 없이 시원했고 거세고 머리를 맑게 했다.
룡정에는 당시 간도 일본총령사관(옛터는 현 룡정시정부)이 있었다. 그때 룡정지역에서 화재가 련이어 발생했다. 1911년 5월 9일 심야, 룡정 일본총영사관과 일본인 집거구에 화재가 발생하여 90여채 가옥이 재더미로 되였다. 1916년 1월 16일 룡정에는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고 1922년 11월 27일 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간도총영사관은 전소하여 부득이 3년 6개월 후에 신축 건물로 옮겨갔다.
룡정 일본총령사관측은 풍수에 능한 사람을 청하여 방토를 구했더니 멀리 보이는 대포산 포신이 총령사관건물을 겨냥하고있으니 그 포신을 없애라는것이다. 일본군은 박격포로 대포산을 폭격하였으며 긴 포신은 끝내 끊어져나갔다.
. 칼럼 . 요절 문인 김혁 이상과 그의 친필 |
인터넷 서점으로 올해의 “리상 문학상수상작품집”을 구매했다. 일주일만에 도착한 책을 들고 생각이 갓길로 빠졌다. 정작 표지 옹근 전체를 커다랗게 장식한 녀수상자의 아릿다운 얼굴보다는 그 웃가녁에 덩그마니 그리고 자그맣게 박힌 시인 리상의 모습을 멀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1937년의 이른 봄, 일본 도꾜제국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이 악화된 한 시인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폐병의 절망을 안고 기생과 동거하며 난해한 초현실주의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를 써내 천재적 면모를 보였던, 카페 경영에 실패하고 절망끝에 건너간 도꾜에서 “멜론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생을 접고 만 리상(李箱)이다. 리상외에도 김소월, 라도향, 최서해, 강경애, 전혜린, 모파상, 뿌쉬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로요(路遥), 소홍(萧红), 고성(顾城), 왕소파(王小波)등 우림문단, 세계문단사에는 그 재능을 다 펴지못하고 일찍 스러진 “별”들이 그렇게도 많다. 요절 (夭折)여기서 요(夭)자는 무성하다, 절(折)은 부러지다는 뜻이다. 싱싱함과 향기를 채 뿌리지못하고 꺽이고 말았다는 그 뜻말에 조차 애통함이 깊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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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기행 “일송정, 높은 솔, 해란강 푸른 물”을 집필,련재하던 몇해전 답사차로 룡정 대포산을 오르다가 길녘에서 뜻밖에도 익숙한 이름의 묘소와 마주쳤다. 허흥식 시인의 유택(幽宅)이였다. 하냥 질박한 모습에 고향산천을 주제로 한 많은 수작들을 련줄로 펴낸 그와의 인연은 “연변일보”문화부에서 기자로 뛰던 시절 내가 편집한 그의 수필 한편이 향토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어졌었다. 그의 졸사(猝死)에 망연함을 금치못했던 당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른 풀잎속에 말없이 방치된 그 묘소앞에 가던 길을 멈추고 묵도를 드렸었다. 우리 문단에도 안타깝게 요절한 문인들이 적지 않다. 류연산, 윤림호, 박향숙, 남주길, 조은철, 윤광수… 병환으로, 사고로 애닯게 일찍이도 간 그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는것만으로도 눈시울이 젖어 오른다. 해외에서는 요절문인들에 대한 추모방식이 정례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주기를 꼭 챙겨 기념하고 요절문인 작품집도 내고있다. 우리 역시 작고문인들을 추모하고있지만 가족이나 몇몇 친구들의 작은 방식으로만 그칠뿐 보다 장중하고 조직적인 추모 방식은 결여되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생의 황홀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늘속 죽음에도 눈길을 주라”하고 어느 한 학자는 말 했다. 작고문인들에 대해 정례적으로 눈길을 돌리고 그이들이 우리 문단사에 남긴 업적을 기리는것은 문단의 전승과 발전에도 필수적인 례식이 아닐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이들을 추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이들이 남긴 작품을 읽는것일것이다. 2014년 3월 7일 - “청우재(聽雨齋)”에서 “도라지” 2015년 3월호 |
투사이고
시인이고 하는
당신을
나는
투사보다 먼저
윤동주 시인으로 알고 싶습니다.
투사란 의미는
쇠덩이로 주조된
너무 강한 형상의 표현이며
시인이란 뜻은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감정의 울림이기 때문입니다.
백의민족의 혈흔사책에는
투사의 이름은 두루 많아도
가장 처절한
암흑시기에
결백한 이념의 시세계를
구상한 그런 시인은
당신 혼자 아닌가 생각되어서입니다.
(이 작품은 1998년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나온 허흥식 시인의 시집 「용드레우물」에 수록되어 있으며 1991년 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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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드레우물 : 허흥식시집
북경 : 민족출판사, 1998
279 p. ; 23 cm.
710503002X
일반단행본
허흥식 약력: 1942년 길림성 화룡시 투도진 출생. 1963년 시《새벽》으로 대뷔. 시집《용드레우물》출간. 1997년 8월 타계. 수양버들 허홍식 오랑캐령 넘어 흰 옷이 흘린 즐벅한 땀속에 깊숙이 뿌리 박고 이끼 핀 돌틈새로 샘 길어 마시며 질긴 명줄 굵게 가꾼 먼 옛말이 아름드리 줄기로 선다 코신 신은 초록의 단오날은 호사스런 그네줄에 매여놓고 농악소리 기발처럼 흔들어 풍긴 민속놀이 재미가 실가지로 흔든다 밤새 울음 잔잔히 지르밟는 숫된 사랑의 부끄러운 숨소리 인생길 꽃수레에 태워주고 명랑한 달빛 풀어 병풍 두른 자애의 심사 푸른 잎 된다 오붓한 동네의 마알간 인심 한점 재티도 묻지 못하도록 하늘 쓸어내고 땅 닦아가며 한동이 탁주를 마셔 취한듯 좋은 사람들 부둥켜 안고 주정한다 |
[출처] 이해와 오해 ? 영화 「동주」를 보면서|작성자 신문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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