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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과 시
2015년 03월 04일 23시 06분  조회:4510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율곡이 생각하는 시는 개인 심성 수양의 방편”  


시선집 ‘정언묘선’ 에 시 문학관 드러나

전통적 시관 탈피 표현의 개연성 선호

 

     
▲ 율곡 이이

 


“이것은 무엇과 같으냐.”

“석류 껍질이 부서진 붉은 구슬을 싸고 있습니다.”

외할머니가 석류를 가리키며 한 질문에 세살 된 율곡이 한시를 인용하며 대답했던 이 대화는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유명한 일화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였던 대사상가 이이는 시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

한문학자인 조기영 박사는 ‘율곡사상연구’ 제 17집에 내놓은 논문에서 ‘율곡의 시문학관’을 제목으로 이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간다. 이이가 38세인 1573년에 펴낸 시선집 ‘정언묘선’(精言妙選)을 통해 시에 대한 그의 안목을 살펴본다.

 

필자는 본격적으로 율곡의 시문학관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의 문장관, 즉 ‘글’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율곡이 남긴 글을 통해 설명한다. 시에 대한 철학 또한 문장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도(道)가 구현된 것을 글이라고 이르니, 글이란 도를 꿰뚫는 그릇입니다. 어찌 이것으로써 아로새기고 꾸며 다듬는 기교로 삼고자 마음먹겠습니까? 출세에 눈 먼 분별없는 유생들은 문장과 구절 사이에서 찾고 들추지만 깊이 담겨있는 의미를 아는 실질이 없으며, 잔재주 부리는 하찮은 사람들은 기괴함을 다투고 수놓고 색칠하는 사이에 속에 쌓인 아름다운 색채가 겉으로 드러나는 실상이 없으니, 이미 국가가 글을 숭상하는 본래의 뜻을 잃고 말았습니다.’(율곡)

 

필자는 “율곡은 도가 구현된 것이 글이니 도가 글의 근본이고, 글이 도의 말단이라고 하였다. 곧 주자가 말한 ‘도본문말’의 입장에서 글을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도라는 근본을 추구하면 성현의 글이 되고, 말단을 추구하면 세상의 비속한 선비의 글이 된다고 하였다”고 설명한다. 현대적으로 풀이한다면 “문장의 스킬이나 글재주보다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과 뜻이 작문의 본질이 돼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율곡이 완성한 ‘정언묘선’은 율곡 자신의 시적 취향과 안목을 드러낸다. ‘정언묘선’은 정묘(精妙)한 언사(言辭)를 정선(精選)하였다는 뜻으로 상고시대의 고시로부터 송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문사의 정수인 시작품 가운데서 정묘한 것을 가려 뽑았다는 것이다. 정언묘선은 ‘원형이정인의예지(元亨利貞仁義禮智)’ 8편으로 구성됐으며 충담(沖澹)한 것에서부터 이아(爾雅)한 것에까지 가려 뽑았다고 한다.

 

필자는 율곡이 ‘원형이정인의예지(元亨利貞仁義禮智)’를 정언묘언 시선집의 기본 틀로 한 것에서 그의 시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언묘선의 편명을 원형이정과 인의예지로 한 것은 아마도 도본문말 및 관도지기(貫道之器)와 문이형도(文以形道)라는 시문학관을 지니고 있는 율곡이 천도(天道)와 인도(人道), 도심과 인심을 염두에 두고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바로 시가 개인의 심성 수양 및 명도(明道)의 방편이 되어야 한다는 시적 관점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도를 깨우치기가 쉽지 않듯이 시를 배우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율곡은 문장이 도를 꿰뚫고 도를 나타내는 그릇이라고 인식했듯이 도를 깨우치듯 시를 배워야만 수양과 명도에 보탬이 있을 거라고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시에 대한 율곡의 생각을 대변한다. 이같은 율곡의 생각이 시를 가려 뽑는 기준이 되었다는 것.

율곡은 ‘정언묘선’ 8편인 ‘원형이정인의예지(元亨利貞仁義禮智)’ 편에 대한 서문을 스스로 붙였는데, 서문마다 시편의 특징을 쉽고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8편 중 형(亨)을 주제로 한 ‘형자집’에 대한 율곡의 서문이다.

‘이 시집에 뽑아놓은 시는 한미(閒美)하고 청적(淸適)한 것을 위주로 하였다. 조용하고 침착하며 스스로 흡족하게 여기는 삶 속에서 흥에 겨워 표출되었으며, 생각만 한다고 해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집을 읽는다면 마음이 평정(平靜)하고 기운이 온화해져서 마치 작은 수레를 타고 내 뜻대로 화초가 있는 오솔길을 다니는 것과 같으리니, 세상의 권세와 재리(財利)와 명성과 영화가 시야에서 멀어질 것이다.’(율곡)

그러나 율곡은 시를 고르는데 있어 시에 대한 당대 선비들의 평가와 고정관념에 따르지 않았다.

 

필자는 “정언묘선에서 율곡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가지고 그 풍격에 해당하는 시작품을 정선하였다. 그 결과 이백과 두보, 주자와 염락의 시작품이 가장 많으리라는 상식에서 벗어나 같은 성당(盛唐) 시인인 위응물(韋應物)의 시작품을 가장 많이 실었다. 그 다음으로 이백과 두보의 순으로 많으며, 맹호연 유종원 황유 등을 비롯하여 도연명, 사영운, 유장경, 유우석, 상건, 가도, 주자, 구양수, 왕안석, 소동파 등의 시작품을 골라 실었다. 그리고 무명시인의 작품과 작자 미상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율곡 자신이 선호하는 시의 풍격과 그런 시도에 적합한 작품이면 가리거나 따지지 않고 실었다”며 시선의 특징을 설명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이로 볼 때 시를 선별하는 관점에 있어서 유가의 전통적인 시관이나 주자를 비롯한 도학적인 시관을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에 있어서 시인 개인의 성정, 문사의 영탄과 아울러 음일을 말하여 문학의 순수표현성을 인정했던 것처럼, 성정지정을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라면 시인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나 시대적 입장 등에 연연하지 않고 시작품이 함유하고 있는 표현의 개연성을 용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시 작품을 대하는 율곡의 태도를 이야기했다. 

 

강원도민일보/ 2009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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