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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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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홍용암
2015년 03월 15일 19시 17분  조회:4721  추천:0  작성자: 죽림

1970년 6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출생. 몰락가정 생활극난으로 대학 2학년에서 중퇴하고 상업에 진출. 후에 연변과학기술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졸업.

16세에 첫시집 "꽃무지개"를 출판한후 조문, 중문으로 중국, 조선, 한국에서 20여권의 저서 출판. 해내외 문학상 20여차 수상.

이밖에 중국에서 "중국100명개혁창업걸출인물", "중국당대 걸출한 인재", "중화창업영재"로 선정. 연변에서 "연길시10대우수청년", "연변10대청년창업새별", "연변청년5.4상장획득자"로 명명.

2002년 연변텔레비죤드라마제작중심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50돐을 맞으면서 시인이 걸어온 인생로정과 창업사를 반영한 텔레비드라마 "흰구름의 길"(상, 하집) 촬영제작.

중화인민공화국 공훈훈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훈장 획득.

현재 연변백운그룹 회장, 연변정치협상위원회 위원, 연변청년기업가련합회 부회장, 두만강지역국제합작개발추진회 부회장, 연변아동문학연구회 부회장, 연변조선민족전통례절문화원 부원장, 길림성동북아문화연구원 부원장, 연변장기협회 부주석(6단).

중국아세아태평양지역경제발전연구중심 고급연구원, 중국국제항업조직연구회 고급연구원, 중국화교상업학원 객원교수, 한국 서울게임대학 객원교수. 북경아시예원문화연구원 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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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암 시인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가 바쁜 탓이다. 그저 이메일을 통해 받은 시편 정도로 그를 안다. 

연변의 작가들을 통해 들은 풍월은 있다. 그는 아래 이력에서 보듯 70년 생이다. 그런 그가 5개 회사를 갖고 있는 연변 조선족의 거부가 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 우여곡절이 결국 그를 문화에 기여하게 하고 연변 문화인들의 풍요한 삶의 일부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연변에서 행해지는 여러 문화 행사에 대해서 많은 기부를 하면서 그 또한 문화인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주듯 틈틈이 시편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변 최초의 외국어 학교를 세우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기 속에서 무난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족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자치주라고 해서 완전한 자치체제도 아닌 이민족이 그만한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러한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엄청난 경계의 대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는 더욱 그들의 경계가 노골화 되어가고 있고, 주요 부처의 장은 중국 내 거주 교포들이 맡아 하지만, 최소한 서열 2위의 직 정도는 맡아 보는 것이 일상화하는 추세라고 하니, 본국이라 할 남북한에서의 연변에 대한 대응 태도는 어떤 것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홍용암, 필명 백운, 그야말로 조선적인 닉네임들이 아닌가? 이제 그가 이룬 대업이 중국 내 교포들의 생활과 문화적 토양을 굳건하게 하는 토대가 되도록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인민대표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중국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장의 말에 따르면 그와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공동으로 문예창작학과를 두고, 문학상 등을 제정하는 등에 대한 논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중국 내 공안 당국의 방해로 그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저항의 뿌리는 지속성을 갖고 뻗쳐 내려오는 데 우리는 너무도 작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의 등을 돌린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 마당에 남쪽 내부에서의 토착화된 지역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적 구심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시선을 저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로 돌려 바라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기업을 일으켜 민족 문화의 내적 자산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 미래의 희망은 우리 민족의 젊은 기상으로 꽃 피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의 시가 수작은 아닐지언정, 그의 시의 내면에 담긴 동화적 상상력은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 또한 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창작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던 그 날 

홍용암 

나는 그 어느 가장 청명한 
여름날의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순간적인 그 하루만 
사슴처럼 새처럼 사랑했다 
이튿날 헤여져야 했으니깐 
그 아름답게 사랑했던 하루 
그날 새벽 0시에 태어나 
자정 24시에 죽었다면 
나의 기억속에는 
다음날의 비애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 행복했던 하루만 
내 한생에 전부로 길이 남아 
그러면 나는 단 하루를 살아도 
행운스럽게 길한 날 태여나서 
유감 한점 없는 삶을 마칠 것이다.... 


꽃무덤 

무수한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초가을 공원 길거리에 
깨끗하게 늙은 어멈 한 분이 
떨어진 꽃잎을 쓸어모아 무져서는 
한무더기 꽃무덤을 만든다 
아무래도 무심히 지나칠수 없다 
어쩐지 그 한잎한잎의 꽃무덤이 
그 어멈이 스쳐지난 자취같이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날들을 
그윽한 향기속에 흩날렸을가... 


녀자 

가장 가냘픈건 
고독한 녀자다 
고독한 녀자보다 측은한건 
버림받은 녀자다 

버림받은 녀자보다 불쌍한건 
죽은 녀자다 

죽은 녀자보다 불행한건 
잊혀진 녀자일게다 까맣게... 


물고기 

륙지의 자그마한 개울물에 살던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가 번화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꾀죄죄한 개울을 떠나 
한번 그곳에 가서 보람있게 
버젓이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항구도시에 이르러 
사품치는 바다격류에 휘말려들자마자 
물고기는 그만 지각을 잃고말았다... 


욕 

인간들이 
서로 욕지거리 한다 
--개같은 것이! 

개들도 
물고 뜯을 땐 
개나라에서 
가장 험한 쌍욕을 할 것이다 
--인간같으니라구야 
에잇 퉷퉷... 


홍용암: 필명 백운(白云) 

1970년 6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동방룡촌에서 출생 
16세에 첫동시집 「꽃무지개」를 출판 
서정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 「려행자」,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 「사슴뿔 나무」등 출판 
전국, 성, 주 및 해외문학상 수차 수상 
현재 「청춘극장」신문사 사장, 「별나라」특약편집, 연길시외국어학교 등 
5개 회사의 리사장, 흑룡강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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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연식 기자 = 중국 연변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동포시인인 홍용암 씨의 시집 `다리를 놓자"가 지난 5월 말 6ㆍ15 공동성명 5주년을 기념해 북한에서 발행됐다고 중국동포 문학잡지 `도라지" 인터넷 판이 28일 보도했다.

중국 지린(吉林)성 지린시 조선족군중예술관이 발행하는 잡지 도라지 인터넷 판은 북한의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와 평양출판사 `통일문학" 편집국의 6ㆍ15 공동선언 5주년 특별기획으로 발행됐다고 전했다.

시집에는 홍씨가 초중고교 및 대학 시절 썼던 시 93수와 최근에 쓴 5수 등 모두 98수가 수록돼 있다.

사이트는 평양출판사가 장정에서 종이 선택에 이르기까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시집을 제작했다면서 "조선(북)의 문학잡품집 출판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훌륭하게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소개했다.

또 "조선에서 해외 조선인에게 시집을 찍어주는 특혜를 베풀어 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며 "조선에서 한 시인의 시집 4만 부를 찍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홍씨의 시에 대해 북한의 평론가 김성희씨는 "분열된 조국을 두고, 갈라진 겨레를 두고 사무치게 터져 나오는 `한"의 정서는 시집의 전반에 눈물의 강이 돼 흘러 넘친다"고 평했다.

시집 발행과 관련, 홍씨와 북한 작가동맹이 지난 2월 협상에 들어가 3월에 정식 합의서를 체결하고 5월 30일 발행했다고 사이트는 전했다.

한편 홍씨는 해외대표단 일원으로 6ㆍ15 남북 공동선언 발표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했다고 사이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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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연합뉴스) 김두환 기자 = 작년(2005년) 5월, 6.15공동선언 발표 5돌을 맞아 북한 측의 특별 배려로 시집 '다리를 놓자'를 펴냈던 중국 조선족 시인 겸 기업가인 홍용암(36)이 평양에서 두 번째 시집 '조국이 나를 부른다면'을 출간했다고 중국의 동포 문학잡지 '장백산' 인터넷 판이 29일 보도했다.

평양출판사는 지난해 장정에서 종이 선택에 이르기까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다리를 놓자' 초판 4만부를 출판했는데, 북한이 해외 동포의 시집을 찍어주는 특혜를 베푸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장백산에 따르면 지난 5월 6.15공동선언 발표 6돌을 맞아 북한에서 두 번째 시집 '조국이 나를 부른다면'을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작년 6월 평양에서 열렸던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후 중국으로 돌아와 그해 6월부터 7월까지 한 달 동안 창작한 70여 편의 시가 수록됐으며 시의 주제는 한반도 통일과 애국애족, 항미(抗美)에 관한 것들이다.

홍 씨는 내년 6월 6.15공동선언 발표 7돌을 맞아 북한에서 출판할 기념시집 '역사와 민족 앞에'를 이미 지난해 말 완성해 그 원고를 평양출판사에 넘겨 주었다고 잡지는 전했다.

특히 내년 1월에는 북한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후속편으로 홍 씨가 창작한 장편 서정서사시 '백두산'이 북한 정부가 특별지정한 헌정도서로 출판된다며 "한 해외동포의 시가 이처럼 국가의 큰 중시를 받기는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 잡지는 밝혔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산골에서 태어난 홍 씨는 연변과학기술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졸업했으며 연변백운그룹 회장으로 있으면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중국100명 개혁창업걸출인물', '중국당대 걸출한 인재', '중국당대우수기업가'로 선정됐으며 2002년 연변TV 드라마제작중심(센터)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돌을 맞아 홍씨가 걸어온 인생역정과 문학 성취, 창업사를 담은 TV드라마 '흰 구름의 길'(상.하)을 제작했다.

 



민혼의 시인과 민혼을 노래한 시조 

―홍용암 시조집 “역사와 민족 앞에”를 읽고

                                                         김춘택

 

  1. 민혼의 골물이 터져

 

  한 문인이 일정하게 주어진 시간에 문학작품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 문인으로서 가끔씩 이런 질문을 해올 때가 많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만들어 문학 작품을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 이 노릇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문학 작품 몇 편을 쓸 수도 있고 아예 한편도 못 쓸 수 있다.

  여기에는 장르적인문제가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소설을 쓰려면 많이 쓸 수 없을 것이며 시나 시조를 쓰자면 여러 편은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 내에 문학작품을 많이 쓸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재능과 열정이지 장르인 것은 아니다. 재능이 없고 열정이 없으면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져도 시 한수마저 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일전에 누군가 2년 사이에 시조 수백 수를 썼다고 해서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얼마나 차원이 높은 시조를 썼는지는 몰라도 대단하긴 대단했다. 그러던 와중에 홍용암 시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한 달 사이에 시조 126수나 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비결을 꼭 알고 싶었다. 다행이 홍시인의 그 126수 시조로 묶어진 시조집 “역사와 민족 앞에”를 읽게 되어 그 비결을 알게 되었다.

  비결이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도 있었겠지만 더는 막아낼 수는 없는 제방 같은 것이 터진 것이었다. 그것은 민혼이었다. 그의 시조에 내재던 민혼을 읽으면서 함께 민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갇혀서 넘치는 골물은 그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저절로 터진다. 이와 같이 홍시인의 마음속에 갇혀있던 민혼의 골물은 드디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런 것 보면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126수의 시조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리라.

 

  2. 민혼의 장르 시조에 관하여

 

  시조의 탄생은 고려 말이었다고는 하나 조선 시대에 와서 유형 되고 그 완전한 골격을 이루었으며 우리 민족의 문학유산 및 재부로 되었다. 시조를 사대부와 권력계층의 점유물로 치우쳐 보는 것과 양반집 부인이나 규방의 규수, 및 기생계층이 소일거리로나 프러포즈의 공구로 사용했다는 설에 필자는 극히 찬성하지 않는다. 시조가 시대의 국한을 받은 것일 뿐 절대 계급층의 소유물이나 세도가의 안방 여자들의 장난감은 아니었다.

  필자는 조선시대 우리 시조가 대체적으로 세 가지 부류의 문인들에게 속했다고 본다. 그 세 가지 부류의 문인들이란 애국자와 왕권의 버림을 받은 자 및 예술인, 그리고 유식한 여성들이나 기생(이들은 그 시대의 여성 문인들 셈이다.)들이었다.

  첫 번째 부류의 문인, 애국문인: 이들의 대표인물로는 김종서, 남이, 이순신 등이 있다. 이들도 역시 권력층이긴 하나 애국적인 충신이다. 이들의 시조는 민혼을 내재한 시조이며 오늘 날까지 민심을 격동케 한다. 이들 시조의 생명은 민혼으로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한다. 아쉽게도 이들은 전업적인 문인이 아니기에 민혼을 내재한 시조 작품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민혼을 부르짖는다는 것은 뼈를 깎는 충혼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며 스스로 자기 생명을 바쳐가는 절규이다.

  두 번째 부류의 문인, 권력층 및 예술인: 이들은 조선 시조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 간신들의 권모술수와 당파분쟁으로 하여 잠시 왕의 버림을 받은 자들과 일부의 예술인들이었다. 당파분쟁으로 잠시 권력층에서 물려난 자들은 대개 유배지나 향촌에서 임금을 그리며 권력 복귀를 꾀했다. 이들 대부분은 다시 권력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현재 남아온 시조의 대부분이 이들의 작품이기에 시조가 사대부나 권력계층의 점유물이라는 평을 받게 된다. 이외에 일부 예술인들이 시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윤선도이다.

  세 번째 부류의 문인, 여성문인: 시대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여염집 여성들 대부분은 글을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양반가의 여성들이 글을 좀 알고 있는 까닭으로 그들을 주축으로 자신들의 애환을 시조에 담았다. 하지만 양반가의 여성이라 해서 누구나 시조나 읊조리며 산 것은 아니다. 그와 반면에 글귀를 아는 기생들이 많은 시조 작품을 남겼다. 그 시대에 여자로서 시대의 제한을 덜 받은 것이 이 비천한 기생들이었다. 그 시절의 한다하는 남성문인들이 기생집의 단골이니 노랫가락이나 잘하고 시문에 뛰어난 기생들의 몸값이 높았다. 그러니 글이나 아는 기생들이 풍류의 시조나 써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분명하다. 그 대표인물로는 황진이다. 기생들의 시조작품은 기방으로 통해서 후세에 전해졌기에 양반가 여자들이 쓴 시조처럼 훼손도 적었다.

  이밖에도 산수를 노래한 시조들이나 효도나 인애를 노래한 시조들이 적지 않은데 그 창작자들의 계층 범위가 고르지 않아 필자는 예를 들지 않으며 또한 본고의 취지가 아니기에 그것들을 일일이 논하지 않는다.  

 

  3. 시조에 내재된 민혼을 읽으며

 

  홍용암시인은 조선시대의 김종서나 이순신에 못지않은 민혼시인이다. 그의 시조에 내재된 이미지는 민혼이다. 누구보다도 더 뜨거운 민혼이 그에게 있었기에 그의 시조들은 걷잡을 수 없는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의 시조들 또한 가치가 높은 작품들로 부상했다.

  아래에 그의 시조집 “역사와 민족 앞에”에 수록된 시조 몇 수를 읽으며 시조에 내조된 홍시인의 민혼을 감수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민혼을 다시 한 번 심는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락서산 지는 해는 저무는 내 인생이요, 핏빛 황혼 저녁놀은 타드는 내 심사라, 사무친 망향의 한이 오늘도 불타오르네.”(망향의 한)

  망향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망향의 아픔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지는 것은 순리로서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국경너머에, 분단선너머에, 두고 온 고향의 그리움은 저녁놀처럼 타고 이 몸이 죽어도 망향을 떨쳐버릴 수 없음을 절규한 것이다. 초, 중, 종장에 각개의 이미지를 만들어 이를 하나로 관통시킴으로서 읽는 자에게 커다란 아픔을 느끼게 한다.

  “함께 놀던 송아지들 어디론가 다 가고, 생면부지 얼굴들만 생소하다 나를 묻누?, 고향은 옛 고향이되 타향보다 차갑더라.”(고향 타향)

  귀향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귀향의 쓸쓸함을 상징한 듯 했지만 뒤늦게라도 돌아온 고향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사람만 늙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마저 생소하게 만든다. 나와 같이 어디로 뿔뿔이 흩어져간 고향친구들이나 작고한 고향사람들을 대신해 고향의 오늘을 살고 있는 생면부지 얼굴들은 나와 함께 자라오고 늙어온 사람들의 후손이기에 여전히 반가운 사람들이다. 중장에서의 생소함 이미지와 종장에서의 차갑다는 이미지는 고향애에 대한 따스함의 반전이다. 

  “산송장이 된 이 어시께 곤두백배 엎드려서, 피눈물로 해 올리는 마지막 네 큰절을, 제사 때 오지 못할 너 고별인사로 받아주마!”(제사)

  이산시조에 속한은 이 시조는 이산의 아픔에 몸부림치게 한다. 부모님에게 효도를 못하고 사는 몸은 산송장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이는 효도에 밝은 우리 민족의 속성이다. 죽은 자에게 네 번의 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불효에 뛰어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걸 고별인사로 받아준다는 구천에 계시는 부모님의 마음 또한 대견스럽다. 중장과 종장에서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로 맥을 이어주고 모순을 갈등시킨 기교가 돋보이며 이로써 이산의 아픔을 극치에 이르게 하였다.

  “미물 새도 남북으로 자유로이 오가건만, 만물영장 이 내 몸은 어이 가지 못하는가?, 이 한 몸 훨훨 새 되어 조국산천 날고 지고…”(새)

  분단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새들을 빌어서 통일의 염원을 갈망했다. 초장과 중장에서 새와 인간을 비교해 이념의 속박을 질책했고 종장에서 새로 둔갑한 시인이 한반도를 훨훨 날고 있음을 상상해 조속히 이루어질 남북통일을 노래했다.  

  “멧새는 멧새끼리 사슴이면 사슴끼리, 흰 옷 입은 우리도 백의동포 우리끼리, 좋구나! 한데 어울려 천만년 살고지고…”(끼리끼리)

  “6.15”선언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통일된 한반도를 미리 축복했다. 멧새(월남을 상징)들도 통일했고 사슴(독일을 상징)들도 통일했으니 우리 백의동포는 우리 멋대로 나라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대단한 착상이다. 우리의 통일은 기필코 시인의 의지와 같이 이루어짐은 필연적이다. 초장과 중장에서 이미 통일 된 두 나라와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한 우리를 비교하고 종장에서 우리의 통일은 그들의 통일보다 더 위대할 것이며 더없는 융성을 가져올 것을 가락으로 자랑했다.

  “순간을 살아도 빛나게 살리라, 천 백년을 산단 들 헛되이 살면 뭣하랴, 야공을 헤가르면서 번개처럼 살고 저”(번개)

  애국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남이의 귀뺨을 후려칠 정도로 애국충정이 담겨있다. 한 사람의 생은 역사에서 보면 번개보다 더 살 같은 존재이다. 그런 삶을 아무런 욕심도 없이 그냥 통일된 반도의 하늘이나 헤가르는 번개처럼 살겠다는 시인의 의지에 머리가 숙여진다.

  “그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삼도왜적, 임진전쟁 그 막장도 그 손으로 내렸도다! 전하라 불멸의 업적 천추만대 빛발치리.”(이순신)

  영웅 송 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이신순의 불멸의 업적을 노래했다. 대대손손 그의 업적을 전해서 한 민족의 부강발전을 기원하려는 시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계백장군 결사하던 거친 황산벌에, 신라의 소년장수 관창 목도 떨어졌네, 억만의 창생 목숨이 저 들풀과 같다하리.”(황산벌)

  역사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당나라를 끓어 들인 신라에 맞서는 백제의 계백장군을 노래하면서도 신라 소년장수 관창의 죽음을 헛되지 않음을 칭송한다. 신라의 외세를 끓여 들인 통일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통일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관창의 높은 기개를 추켜들고 억만 창생의 목숨이란 자고로 보잘 것 없으니 나라를 위해 죽고 민족을 위해 죽음이 별빛과 같은 것임을 강조했다. 초장과 중장에서 백제와 신라의 대결을 펼치고 계백과 관창이란 두 인물을 동시에 노래함이 새롭다.

  “인생은 자고로 누가 아니 죽으랴만,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수 있으랴, 우국충정 고이 간직해 청사에 길이 빛나리.”(인생)

  애족시조에 속하는 이 시조는 민혼 대표사상 격이다. 우리의 옛시조에 이런 풍이 많았으며 또한 시인이 옛 사람의 우국충정으로 돌아가서 한 민족에게 계시를 주려함이 틀림이 없다. 육체는 죽어도 민족을 위한 영혼만이 영원히 살아 있으려고 하는 시인의 민혼 여기서 다시 한 번 치하하고 싶다.

 

  민혼이 내재된 홍용암시인의 시조집 “역사와 민족 앞에”의 출간은 우리 시조단의 새로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시조에 조예가 깊지 못하고 또 몇 수를 써보지 못한 필자로서 요즘 우리 시조 단에서 평시조요, 엇시조요, 사설시조요 함에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오늘 홍시인의 고유 시조형식의 시조를 읽고 감내하는 바가 크다. 시조란 그래도 3장 6구의 45자가 기본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시조랍시고 기본 틀을 깨고 제 좋은 목소리를 하는 것은 제창할 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홍시인의 시조집 출간을 축하한다. 또한 그의 시조집이 우리 중국조선족시조 단이나 한반도 시조단의 큰 재부로 남기를 미리 기원하는 바이다.

 

흘러간 낭만의 시대를 다시 찾는 작업 

                                                                      흰 사슴

  1. 화 두

  한 작가에게 있어서 소중하게 써놓은 작품들을 20년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내놓게 된다는 것은 그 사유가 어떻든 간에 어딘가 불행한 일이다. 그것도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던 그날”이란 사랑시집의 거의 전반을 채우는 근 40수에 달하는 분량의 시들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플 것이다. 허구성을 띤 소설작품일 경우에는 20년 후에 빛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럭저럭 위안이 될 일이지만 즉흥성을 띤 시작품들이 20년이 썩 지난 후에 빛을 보았다는 것은 가히 접수하기조차 어려운 애수가 아닐 수 없다.

  장장 20년 만에 빛을 본 시들을 감상하는 일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한 단락의 추억의 소일거리로 될 수 있을 런지 모르겠지만, 평자에게 있어서 이제 다시 그 시들을 평론한다는 것은 일반경우 큰 소득이 없을 것임을 대체로 감안하는 바이다. 그래도 고집스레 그 시작품들에 대한 평론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쓰려는 일은 어쩌면 평자 나름대로 홍용암이란 시인의 초기성장과정을 알기 위한데 있지 않을까 하는 목적과 호기심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이미 서른 살 중턱을 넘어선 젊은 시인 ― 홍용암의 시작(詩作)발전과정을 알아보는 일에는 필요하고 충분할 것이라고 나는 소신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 평하는 이 시들은 홍용암시인의 20년 전후의 시작품들로서 “1985년∼1989년 작(作)”이라고 명백히 표명된 것들이다. 꼭 마치 “발레타인, 1884년”이란 상표가 붙은 양주병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의 그런 옛 시들이다. 오래 발효시킨 술이 좋은 술인 것처럼 20년 후에 드디어 시집으로 출간된 홍용암의 이 40수의 시들을 감상하고 음미하고 평하는 작업 역시 어쩌면 흘러간 그 순수와 낭만시대를 되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들 

  1985년부터 1989년 사이의 중국 조선족사회는 말 그대로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시절 홍용암은 금방 사춘기에 범접한 시절이고 또한 사춘기의 그 짜릿함을 겪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 어린 시인은 혁명적인 열광시대의 끝자락에서 낭만과 순수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절에 동년을 보내고 사춘기를 접한 것이다. 문학신동으로 불리었던 그는 이때 벌써 일정한 시작(詩作)재능을 소유, 발휘하고 있었고 또 남몰래 이성에 대해서도 빠금히 어섯눈을 뜨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했기에 그는 당시 자기 나름대로 새 기상을 맞이한 농촌청년들의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한 사랑 시들도 쓰게 되었다. 남보다 뛰어난 시재로 하여 그는 그 당시의 기성시인들도 무척 이루어내기 힘든 시작품들을 대담히 써낼 수 있었지만 이런저런 원인으로 하여 그때 발표되거나 시집으로 출간되지 못하였다.

  시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란 어떤 시대인가 하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 시대는 중국 조선족농촌에 오래 동안 기반을 갖추고 있던 생산 대라는 집체호가 깨지고 호도거리책임제의 시작을 맞이한 생기발랄한 시대이다. 이런 생기발랄한 시대를 접한 농촌청년들은 순박하면서도 열렬하고 도전적인 청춘과 사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 잘하는 처녀총각이 모범인물로 되고 사랑과 혼인에까지 그 영향, 그런 의식이 침투되었었다. 그러기에 아래위 논 처녀총각은 모내기경쟁을 하게 되고 또한 그 경쟁이 드디어 사랑으로 싹트고 열매를 맺는 그런 감동의 세월이었다.

  그런 세월에 나 어린 시인―홍용암이 쓴 사랑시작품들은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들을 적어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시작품들이 비록 여태 빛을 보지 못하고 20년간 숨겨져 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시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여 그 가치가 어느 정도 떨어져있지만, 조숙한 홍용암시인이 그 시절에 남보다 앞선 사유로 꾸준히 시작(詩作)을 해온 진지한 모습과 그 흔적을 평자는 찾아볼 수 있었으며 또한 저도 모르게 그 진한 감동의 시대를 다시 한 번 함께 가슴으로 느껴보는 그런 즐거운 작업의 일환이 되였음도 자명한 일이다.

  그럼 이제부터 평자와 함께 홍용암시인의 시작품속에 내재한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들을 좀 더 상세히 감수해보기로 하자.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1:

  “아래위 논 처녀총각/ 모내기 경쟁에/ 승벽도 많더니만/ 문득 총각이 다가와/ 넌지시 던지는 말―//  인물 곱고 맘씨 곱고/ 일솜씨 야무지여/ 마음에 들긴 드는데/ 옥의 티랄까 딱 한 가지 흠/ 아하, 키가 좀 작다나?!//  총각이 시물시물/ 건네는 농담에/ 처녀가 쌍까풀눈/ 곱게 흘기며/ 재치 있게 받는 말// 아이참, 싱겁기두/ 키가 작은데 뭐라나요?/ 고추는 작아도 맵고요/ 참새는 작아도 알을 낳고/ 제비는 작아도 강남간대요//”(‘아래위 논 처녀총각’ 전문)

  모내기철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이다. 아래위에 붙은 두 집의 논밭에서 처녀총각이 모내기를 한다. 그 모내기솜씨들이 어지간하지가 않다. 그래서 승벽심이 많은 두 처녀총각은 서로 뒤질세라 은근히 모내기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쉬는 참에 총각이 문득 다가와 처녀에게 넌지시 던지는 말이 매우 흥미롭고 또한 처녀가 맞받아주는 대답 역시 더욱 재미있다. 키가 작은 어여쁜 그 처녀가 바로 동네에서 으뜸가는 모내기 군이다. 거기에 반한 총각의 사랑고백은 어딘가 격장법이긴 하나 거기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야무진 처녀의 수완 또한 만만치가 않다. 작다고 예쁘지 않다는 법이 없고 사랑스럽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고추는 작아도 맵듯 참새는 작아도 알을 낳듯 제비는 작아도 강남으로 가듯이 키 작은 그 처녀의 오돌 참은 여간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모내기 잘하는 처녀총각의 사랑을 이렇게 기교적으로 재치 있게 다룬 것만으로도 그 당시 나 어린 홍시인의 시적재능을 충분히 보아내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사랑 시들은 이야기성이 짙고 유머성이 짙어 구독하고 나면 기분 좋은 감상이 된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2

  “티 없이 깨끗한/ 그대 눈동자―맑은 호수// 그 호수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눈물폭포// 울지 마오, 울지를 마오./ 쏟아지는 폭포수에 맑은 호수 싹―흐려지오.// 그로 하여 미여지는 이 내 가슴/ 내 그 호수를 더없이 아낀다오.//” (‘석별(2)’ 전문)

  티 없이 깨끗한 여인의 눈동자를 맑은 호수에 비유함이 아주 생동하다. 사내의 영혼을 빼앗아가는 눈동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눈동자―호수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은 눈물폭포이다. 그 눈물폭포가 사내의 마음―맑은 호수에 떨어진다. 그래서 사내의 마음이 혼탁 하는 것이다. 그 혼탁이란 간절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석별의 정이 얼마나 잘 표현된 시인가? 사랑하는 여자는 석별에 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이렇게 생동하게 에둘러간 기교가 돋보인다. 석별을 앞두고 흘리는 “그대”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시면서 미여지게 하고 행복하게 하거니, 그 눈물을 쏟아내는 “그대”의 눈동자―맑은 호수―그것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할 것임을 노래했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3

  “산기슭에 감도는 하얀 구름/ 갈라질 때 흔들던 임의 손수건/ 방울방울 눈물이 흠씬 슴배어/ 리별의 회포를 자아냅니다.// 보슬보슬 내리는 초록색 비는/ 임이 수건 쥐어짤 때 휘 뿌린 눈물/ 그 눈물 대지 우에 차고 넘치어/ 그리움도 새파랗게 돋아납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영롱한 이슬/ 촉촉이 눈물 맺힌 하얀 백일홍/ 슬픔에 흐느끼던 임의 그 모습/ 다시 보듯 가슴 뭉클 그립습니다.//” (‘그리움’ 전문)

  임과 헤어질 때 휘 뿌린 눈물이 산기슭에 감도는 하얀 구름에 방울방울 슴배어 자못 이별의 회포를 자아낸다. 이제 하얀 구름에 슴배인 그 눈물은 끝내 비가 되어 대지위에 가득 내리고 그곳에는 그리움도 새파랗게 돋아난다. 또 맑게 갠 날에는 햇빛에 영롱한 이슬이 반짝이는 하얀 백일홍이 피어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슬픔에 흐느끼던 임의 모습으로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 어린 시인이 그리움을 이렇게 환상적으로 표현함은 남다른 착상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하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4

  “당신과 나, 두 마음은/ 두 조각 초생 달이죠./ 당신도 초생 달/ 나도 초생 달// 당신과 나, 함께 있으면/ 저 하늘엔 보름달이 둥실 솟지요/ 당신과 내 마음 두 조각 초생 달/ 하나로 합쳐서 둥근달 되었죠.//  당신과 나, 떨어져 있으면/ 저 하늘엔 초생 달만 남지요/ 아마도 당신이 나만 홀로 남겨두고/ 멀리멀리 가버렸기 때문이던가요?!// 참말이지 당신과 나, 함께 있으면/ 달도 둥글고 내 맘도 밝지요/ 당신과 나, 떨어져 있으면/ 달도 처량하고 내 맘도 애달프죠.// 아, 그래서 외로울 땐 밤에 밤마다/ 월궁속의 상아아씨께 물어보아요./ 어쩌면 님과 나, 함께 있도록/ 영원히 이지러지지 않을 수 없는지.//” (‘달(2)’ 전문)

  떨어져 사랑하는 당신과 나의 두 마음은 두 조각 초생 달이라고 시인은 고집한다. 해서 당신과 나 떨어져 있으면 저 하늘엔 초생 달만 남게 되는데 그건 아마 당신이 나만 홀로 남겨두고 멀리멀리 가버렸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과 나 함께 있으면 달도 둥글고 내 마음도 밝게 되고, 당신과 나 떨어져 있으면 달도 처량하고 내 마음도 쓸쓸해진다. 그래서 외로울 땐 밤에 밤마다 월궁속의 상아아씨께 묻기를 ―어쩌면 님과 나 함께 있도록 영원히 이러지지 않을 수 없는 가고 말이다. 동화적인 이야기로 이별적인 사랑을 다룬 사랑 시로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5

  “햇솜같이 나긋한 그대의 흰 손/ 잡으면 금시 부서질 것 같아/ 조심스레 살그머니 쥐었습니다.// 탐스럽게 단물 오른 그대의 입술/ 빨면 스르르 녹아버릴 것 같아/ 조심스레 입술 살짝 대였습니다.// 청류처럼 아련한 그대의 허리/ 조이면 그 채로 휘어들 것 같아/ 조심스레 가분가분 안았습니다.// 들소처럼 우악진 나도 그대 앞에선/ 저도 몰래 온순하고 경건해지거니/ 천사인 그대와는 사랑을 조심스럽게.//” (‘천사와는 사랑을 조심스럽게’ 전문) 

  무릇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마돈나와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돈나를 제 몸처럼 사랑하는 사내로서는 햇솜같이 나긋한 그대의 손도 잘못 잡으면 부서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살그머니 쥐게 된다. 마돈나 같은 여자를 사랑할 때는 경건하게 해야 할 것이다. 들소처럼 우악진 나도 그 앞에선 저도 모르게 온순해지게 되는 것은 천사인 그대와의 귀중한 사랑을 혹시 실수라도 하여 자칫 부스러뜨릴까봐 우려해서이다. 그 누구에게나 자신이 사랑하는 마돈나가 있게 되게 되면 그를 목숨처럼 아끼게 된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도 자신이 사랑했던 슬람미 여인을 자신의 병거를 끄는 준마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6

  “임은 골랐죠. 참외 한 알/ 나도 골랐죠. 참외 한 알/ 참외 두알 사들고 돌아와/ 임이 한입 뚝- 떼여먹으니 시큼털털/ 내가 한입 뚝- 떼여먹으니 새콤달콤// 비싸게 주고 산걸 버리자니/ 너무너무 아까워 내가 말했죠./ ―고 시큼한 건 내가 먹죠./ 나는 워낙 시큼한 걸 좋아하니깐/ 그리고 요 달콤한 건 임이 자시죠.// 그러자 임이 손을 내저으며/ 시큼한 건 자기가 더 좋아한다네./ 그렇게 서로 쓴 외 먹겠다고/ 옹고집 부리며 밀고 당기다/ 임이 끝내 묘안을 내놓았죠.// ―자, 다툼 말고 이리하기요/ 우리 약속 벌써 왜 잊었소?/ 애초에 우리 둘이 다진 맹세/ 쓰고 단걸 같이하자 하잖았소?/ 지금 마침 쓴 외 한 알 생겼으니/ 우리 함께 똑같이 나누기요.// 나도 만세 두 손 들어 찬성했죠./ 쓴 외 한 알 똑같게 쪼개어/ 임이 절반 내가 절반 나눠먹었죠/ 정겹게 서로 마주 웃음 지으며// 참외 맛은 시큼텁텁 떫었지만/ 마음은 꿀보다 더 달콤했죠.//” (‘쓴 외 한 알’ 전문)

  참외장수를 만나게 되여 임하고 둘이서 참외를 사서 맛보는 풍경으로 시작된 사뭇 아름다운 시이다. 가난한 형편에 비싸게 주고 산걸 버리자니 너무 아깝고, 먹자니 괴로운 참외 한 개를 두고 임과 나는 실랑이를 벌린다. 새콤달콤한 것은 서로가 양보하고 시큼털털한 것을 자기가 먹겠다고 우기다가 애초에 고락을 같이하자던 둘 사이의 맹세가 떠오른다. 그래서 그 언약대로 쓴 참외를 둘이서 똑같이 절반씩 나누어먹으니 참외 맛은 비록 시큼텁텁 떫었지만 마음은 꿀보다 더 달콤했다는 이야기이다. 거짓 하나 없는 풋풋한 시의 이미지는 소박하면서도 진솔하여 심금을 울린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7

  “그대가 매달리는 강아지를/ 정겹게 어루쓸며 애무할 때/ 나는 몹시 그 강아지가 되고 싶었다오.// 그대가 아기를 귀여워/ 품에 꼭 그러안고 볼을 부빌 때/ 나는 다시 애기로 태어나고 싶었다오.// 그대가 라일락 한 송이 꺾어/ 뜨겁게 꽃망울에 입 맞출 때/ 나는 단박 그 꽃이 되고 싶었다오.// 무엇이든 그대의 끔찍한/ 사랑을 받는 것이기만 하면/ 나는 정말 그것이 부러웠다오.// 그토록 샘솟듯 불붙듯/ 사무치게 그대만을 사모하면서도/ 그대 사랑 못 받는 서글픈 나는.//” (‘짝사랑자의 고백’ 전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어쩌면 짝사랑일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더더욱 환상적으로 그리게 되고 갈망하게 되고 지어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일편단심 “그대”만을 사무치게 애모하지만 도리어 좀 체로 다가 갈수 없는 처지가 정말로 애처롭고 가련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더더욱 동경이 생기게 되고 집착이 생기게 되며 상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매달리는 강아지를 귀애할 때, “그대”가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아줄 때, “그대”가 라일락 한 송이 꺾어 뜨겁게 꽃망울에 입 맞출 때마다 나는 곧바로 그 강아지, 아기, 라일락꽃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프기만 하다. 그토록 혼신을 다하여 불붙듯 “그대” 하나만을 열연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대”의 사랑을 조금도 받지 못하는 서글픈 나는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 쓰라림을 간절히 하소연하는 시인의 고백은 또 얼마나 진솔한 것인가? 아픈 그 마음을, 아픈 그 충정을 이렇게 진솔하게 표현하기란 정말로 쉽지가 않다. 여기에서는 나 어린 시인의 순수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 자못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8

  “오마하고 약속하고 아니 왔기에/ 그대 위해 어머님 담그어 놓은/ 김치 맛 다 시고 변했다면서/ 총각은 편지에다 원망을 했네.// 총각의 편질 받고 다심한 처녀/ 사흘 후에 답장을 보내왔다네./ 김치 맛 다 변했다니 참 안됐군요./ 하지만 너무 속상해마시라요// 김치야 그 맛이 변하면/ 다시 담그면 그만이지만/ 정붙인 우리 두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야/ 그까짓 김치 맛쯤은 백번도 더 변하라지요.//” (‘편지’ 전문)

  새 색시가 온다고 어머님은 미리 만단의 준비를 갖추는 게 재래의 법도다. 또한 어머님의 그런 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때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어머님의 노여움 같은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아마 어머님은 처녀의 진정이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해서 총각이 처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오마하고 아니 왔기에 그대를 위해 어머님이 담그어 놓은 김치 맛이 다 시게 변했다고 쓴다. 그러자 다심한 처녀가 사흘 후에 보내온 답장은 오히려 신기하고 놀라울 정도로 시원스럽고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다.

  제3자의 각도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인의 자세가 가히 창조적이라고 할만하다. 어머님의 정성에 미안하다는 말 표현은 별로 없고 그 무슨 김치 맛이야 변하면 다시 담그면 그만이지만 사랑이 변하면 그게 바로 가장 큰일이란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건 사랑의 마음이다. 즉 우리의 드팀없는 사랑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모를 박는다. 참으로 소견머리가 있는 옹골찬 처녀의 형상이 돋보인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9

  “그대 눈은 까만 머루/ 꿀샘 같은 단 맛을 랑/ 누가 먼저 맛볼까?// 그대 눈은 밝은 진주/ 수정 같은 값진 보배/ 누가 몽땅 가질까?// 그대 눈은 맑은 호수/ 일엽편주 두둥실/ 누가 선참 띄울까?//  정녕―/ 그 머루, 그 진주, 그 돛배/ 그 임자는 누구???// 허―, 그야 물론/ 아무렴 나겠지 나!/ 나만 보면 생글 웃는/ 그 눈 보면 몰라?!!!//” (<<아무렴 나겠지>> 전문)

    자고로 동네의 일등처녀를 넘보는 총각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고로 그 일등처녀를 두고 마을총각들은 서로 내심 질투하고 경쟁한다. 그래서 누가 먼저 그대 눈―까만 머루를 맛보고, 누가 얼른 그대 눈―밝은 진주, 값진 그 보배를 몽땅 가지고, 누가 선참 그대 눈―맑은 호수에 두둥실 일엽편주를 띄워볼까 하고 내기를 건다.

  여럿의 내기 중에 억지를 부리는 자가 취득자가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의 가슴을 탕탕 친다. 나만 보면 생글 웃는 그 눈을 보면 모르냐고 능청을 부려도 유분수다. 아예 선수를 치는 그 능글맞음이 고약하면서도 부럽기도 하다.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아무렴 너니깐 콱―행복해보라고 언감생심 질투를 던져주고 싶은 기분이 돈다.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10

  “평소에 생각해둔 말, 차고 넘쳐도/ 정작 만나 그녀와 함께 거닐면/ 꾹― 잠근 자물쇠인 나를 두고/ 그래서 그녀는 벙어리라 합디다.// 그녀 얼굴 보고 싶어 바장이다가도/ 정작 만나 그녀와 마주서면/ 고개조차 못 드는 나를 두고/ 그래서 그녀는 뚝바우라 합디다.// 치솟는 애욕에 몸이 확확 달아도/ 정작 만나 그녀와 함께 있을 땐/ 손목 한번 못 쥐어보는 나를 두고/ 그래서 그녀는 멍텅구리라 합디다.//” (‘그녀는 나를 두고’ 전문)

  사랑의 순진성을 잘 표현한 시이다. 어찌나 어리숙하고 줄났는지 자기의 사랑 앞에 당당하게 나설 용기조차 없는 못난 “나”를 두고 그녀는 원망하며 벙어리, 뚝바우, 멍텅구리라고 부른다. 꾹― 잠긴 자물쇠인 “나”, 고개조차 못 쳐드는 “나”, 손목 한번 못 쥐여보는 “나”이기 때문에 그런 “나”를 좋아하는 그녀의 애간장도 여간만 끓어 번지는 것이 아니다. 순수의 시대에만 있는 시골총각의 순백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신선한 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상으로 홍용암시인의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 10점을 감수해보았다. 이 10점의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의 감동적 편린들을 슬그머니 조합을 해보니 20년의 세월 속에 묻혀버린 그 “아래위 논 처녀총각”시대가 환히 들여다보인다. 더욱 놀랍게 발견되는 것은 그때 겨우 15살이나 16, 17, 18세에 불과했을 나 어린 시인이 그 시대 청장년시인들도 무척 써내기 어려운 엉뚱한 시작(詩作)들을 저 혼자 말없이 뛰어나게 해냈다는 신기한 사실이다. 먼- 산을 쳐다보고 그림을 그려도 진달래만 잘 그리면 더 이상 바랄게 그 무엇이랴?!

 

  3. 흘러간 랑만의 뒤안길에 살아 숨 쉬는 말 묶음들

 

  홍용암시인이 20년 전에 쓴 사랑 시들은 이미지가 생생히 살아있고 그 낭만시대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말 묶음들이다. 이제 그런 랑만의 시대는 먼- 뒤안길로 아득히 사라져갔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제 단박 40고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그 낭만시대의 소중한 이야기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더욱 순수와 랑만이 다 깨진 요즘 세월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더욱 평자는 진작 서른 살 중턱을 넘어섰으나 아직도 혈혈단신으로서 연애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가끔가다 끝없는 짝사랑으로 가슴을 불태운다. 하지만 평자인 나도 분명 20년 전의 그 순수와 랑만의 시대를 누구보다 동경은 하지만 사실상 인제는 얼마 간직하고 있지 못하다. 시대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도 순수와 랑만이 다 깨진 오염된 오늘의 현시점에서 불신임한 사랑이나 도피적인 사랑의 충격을 받으면서 상기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마라톤식 사랑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때에 접하게 된 홍용암시인의 20년 전의 사랑 시들은 새삼스레 그 순수와 랑만의 시대를 다시금 상기하게 한다.

    홍용암시인의 사랑 시들은 흘러간 랑만의 뒤안길에 살아 숨 쉬는 말 묶음들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 시들을 읽고 나름대로 벌려온 나의 평은 어쩌면 흘러간 그 랑만의 시대를 다시 찾는 작업일 것이다. 문학작품들이란 시인이나 작자의 의지를 떠나서 읽는 자들에게 낭만과 즐거움을 주는 말 묶음들이 아니던가?!

 

     영원한 사랑의 숨소리

―홍용암의 소년시집“소년의 비밀”을 읽고

                                                     김춘택
 

  나는 숨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숨소리는 곧 생명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도 숨소리가 있고 식물에게도 숨소리가 있다. 인간의 숨소리는 단지 생명의 언어만 아니다. 인간의 숨소리에는 사랑의 언어도 내재해 있다. 동물의 심장은 뛴다. 생명의 순환으로 뛴다. 하지만 인간의 심장은 사랑이라는 존재를 만났을 때 더 세차게 뛰고 영혼을 노래한다.

  나는 소녀의 숨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또 소년의 숨소리도 듣기 좋아한다. 그것은 그들의 숨소리야말로 이 세상에서 티 없이 깨끗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숨소리를 자주 듣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가 이제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게 되고, 소녀소년들하고 함께 뛰놀고 호흡을 하던 그 시절을 너무 많이 떠나왔기 때문이다. 어쩜 소녀소년들의 숨소리를 망각하고 살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그 시절을 떠나 지금까지 들어온 숨소리는 삶의 욕망을 향해 치닫기에 드바쁜 사람들의 숨소리어서 그렇다고나 할까?

  바로 그렇게 내 삶에 바빠서 내 숨소리마저 거칠어지고 어떤 오물에 잔뜩 게 발려 진득진득할 때 나는 소녀소년들의 격동에 찬 아름다운 숨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 얼마나 오래만이고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렇다고 내가 소년, 소년들이 모여 사는 사춘기 그 시절로 되돌아 간 건 아니다. 오늘 내가 그 숨소리를 듣게 된 이유는 소녀소년들의 사춘기사랑을 담은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때문이다.

  비록 20년 전에 사춘기를 맞이한 홍용암 개인의 애수를 담은 시집이지만 20년 전, 소녀소년들의 숨소리를 듣는 데에는 큰 장애가 없다. 해서 불혹의 문턱을 넘을 이 시점에 우연하게 만난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은 나에게 좋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홍용암의“소년의 비밀”이란 이 시집을 읽는 내내 나는 청신한 공기를 마이고 있었다. 소녀소년들의 숨소리가 호흡하는 곳에는 청신한 공기만 있었기 때문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소녀소년들의 숨소리의 여운을 듣게 되어 행복하다. 그런 행복을 욕심스레 혼자 독차지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오늘 나는 이 평론을 쓴다.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에 들어있는 국부의 시들을 4개의 이미지로 분류하여 평하는 작업은 소녀소년들의 아름다운 숨소리를 여러분들에게 전달하는 사명이 아닐 수 없다.    

 

  1. 봄, 언제나 애수의 계절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에는 봄의 이미지를 다른 시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시집에 내재한 사춘기사랑을 노래한 시들 모두가 말 그대로 마음의 봄을 노래한 것들이기에 달리 봄의 이미지를 많이 빌지 않았음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꼭 봄의 이미지를 불러 평을 하려는 집착은 화두(話頭)를 잡으려는 아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 아래에 봄이라는 이미지를 빌려서 시작(詩作)을 한 시들을 보기로 하자.  

 “봄아/ 오지 말아!//  봄아 올 거면/ 가만히 올 거지//  겨우내 풋잠이 든/ 고요해진 소년의 다시 잦은/ 잔잔한 종 가슴은/ 왜 들깨우는 거냐?//  인적기 드문 들판 오솔길/ 만발한 민들레꽃 이파리에/ 아프게 달려있는 눈물/ 그 앞에 사색에 잠겨/ 하염없이 서있는 고독한 소년―//  해마다 이맘때면/ 애모뿐 한 소년의/ 울적한 심사에/ 남몰래 애간장 태우는 줄/ 아느냐 모르느냐?//(‘봄아 오지 말라’전문)”

  시의 시작을 봄더러 오지 말라고(1연) 강조한다. 말하려는 구실이 강조된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오라고(2연)라고 한 것은 말하려는 구실을 확실히 하려는 반역이다. 그 다음은 잔잔한 소년의 종 가슴을 왜 들깨우는 거냐?(3연)고 불평을 부린다. 말하려는 구실을 승화시키려는 의도적인 심사다. 민들레꽃 이파리에 아프게 달려있는 눈물, 그리고 그 앞에 하염없이 서있는 고독한 소년(4연)의 형상을 빌어 봄으로 다가온 소녀를 그렸다. 애모뿐 한 소년의 울적한 심사에 남몰래 애간장 태우는 줄 아느냐 모르냐?(마지막 연)고 질문하면서 한 소년의 마음에 봄바람처럼 불어온 소녀에 대해 애틋한 정을 연연한다. 이 시는 소박하면서 순수하고 깨끗한 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날은/ 내 마음이 아픈 날//  이날따라 추억이/ 더욱 새로워 나 홀로 봄 언덕에/ 조용히 나서/ 거닐어보는 날//  그러면/ 추억의 갈피갈피에/ 지나간 그 옛일이 되살아나//  남몰래/ 울적한 심사에/ 어쩐지/ 저 혼자 속 후련히 한바탕/ 울고 싶어지는 날//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날은/ 내 마음이 아픈 날//  잠자던/ 내 가슴의 호수를/ 세차게 / 휘저어놓고 울면서 떠난―//  잊지 못할/ 가버린 그 봄 소녀가/ 새삼스레/ 그리워지는 날…//(‘봄날은 내 마음이 아픈 날’전문)”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마음이 아픈 날이고, 외롭게 거닐어보는 날이고, 후련히 한바탕 울고 싶어지는 날이고, 가버린 봄 소녀가 새삼스레 그리워지는 날이다. 봄이 행복한 것은 겨우내 준비된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는 시인에게 봄이란 스치는 것이고 아득한 세월이 흐른 훗날에 미련으로만 아픈 봄이 된다. 전반 시에 어김없이, 더욱 새로워, 되살아나, 남몰래, 세차게, 가버린… 등과 같은 형용사와 동사들이 이음어로 씌어졌기에 이 시의 흐름은 청산을 울려내는 벽계수가 굴러 내리는 것 같다. 또한 그 때문에 이미지가 맛깔스럽기도 하다.    

 “해마다 어김없이 새봄은 오고/ 봄이 오면 민들레도 따라 피지만/ 한번 웃고 두 번 웃고 세 번 다시/ 웃을 줄 모르는 고독한 소년/ 소년의 눈물은 애달픈 눈물은/ 방울방울 꽃잎에 떨어진다네.//  풋내기 소년시절 바친 첫 순정/ 깨끗하고 순결하고 진지했어!/ 꾸다가 채 못 꾸고 깨여진 꿈은/ 가슴속에 한으로 남았어도/ 소중했던 그 시절 그 추억은/ 때때로 세차게 나를 울리네.//  그날의 애숭이 소년은 자라/ 커굴 진 사나이로 변하였건만/ 해마다 봄이면 들판에 나와/ 저 홀로 묵묵히 거닐 인다네./ 지나간 옛일을 돌이키면서/ 해마다 이 봄을 기념한다네.//(‘봄날의 애가’전문)”

  준비도 없이 꽃 봄을 만나고 그 꽃 봄을 보낸 소년이 성장의 계절을 거치고 커굴 진 사나이로 변하여도 그 애수에 젖은 꽃 봄을 잊을 수 없다. 그 누구에게 한번쯤은 있을 꽃 봄을 시인이 노래한 것이다. 이 시에는 조용함과 장중함이 깊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화창한 봄날/ 이제 겨우 번데기 벗어던진/ 꿈 가진 애 나비 한 마리//  요지경 세상이/ 하도나 신비하고 황홀해/ 도취된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갑자기/ 저어기 멀리 어느 한곳/ 필까 말까 수줍게 망울이 진/ 꽃봉오리 한 송이 보았다//  아침이슬 함함히 머금은/ 장미 빛 꽃망울 너무 어여뻐/ 애 나비 그리로 날아가려/ 힘껏 나래 저었건만//  파드득―/ 조금 하늘 날아올랐다/ 아뿔싸, 힘껏 땅에 곤두박질/ 아직은 여린 두 날개

그만 풀떡 풀쳤다//(‘봄날의 이야기’전문)”

  스스로 나방을 헤치고 나온 한 마리의 나비는 곧 시인이다. 그리고 요지경 세상에 필까 말까 수줍게 망울진 꽃봉오리 한 송이는 아름다운 소녀다. 아침이슬을 함함히 머금은 장미 빛 꽃망울 너무 어여뻐 탐내던 나비는 결국 여린 날개를 풀치고 만다. 이 시에서 강조된 이미지의 표현은 역시 준비도 없는 사랑이며 이른 사랑이다. 가히 창의적인 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상으로 봄을 주제로 한 홍용암의 시 네 점을 감상해보았다. 전반 시집 속에 다루어진 시들의 이미지들이 봄이라고 한다면 이 네 점의 시들은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것 같다. 봄을 다른 시작(詩作)이 좀 슬프긴 해도 그나마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빛을 발산하며 진한 감동을 준다.

 

  2. 별이 된 장미의 이미지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에는 별이나 장미의 이미지 같은 것도 그리 많지 않다. 소녀소년의 사랑을 다룬 시집으로서 기대 밖으로 예감되는 일이다. 전 시집에서 겨우 두 수 정도만 찾을 수 있는 아래의 이미지들도 대개 상징적으로 그 모습을 보일 뿐이다. 이런 점으로 하여 홍용암의 소녀소년 시들은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망각을 위해 나는/ 그 눈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쓸쓸히 떠나왔다//  그러자 그 눈은/ 내가 떠나온 하늘 우에/ 하나의 새별로 다시 떠올라/ 밤마다 반짝이었다//  천애지각 어디에 가나/ 그 별은 조용히 깜박이며/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나를 지켜보는 별’전문)

  사랑했던 소녀를 잊기 위해서 그 소녀의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쓸쓸히 떠나온 시인에게 소녀의 모습은 더 또렷해만 진다. 이제 소녀는 햇빛의 도움으로 멀리 떠난 시인을 볼 수 없으나 밤하늘의 별로 되어 천애지각 어디서나 조용히 깜빡이며 시인을 지켜본다. 이 시의 시작(詩作) 동기부터 놀랍다. 그리고 짤막한 말 묶음들 속에 내재된 이미지도 기대 이상이다. 

 “그 소녀의 고운 얼굴이/ 내 하늘의 전부였다/ 그렇게 언제나 날 내려다보며/ 정겹게 반짝이는 새별/ 그러던 그 하늘에/ 별이 흐릿하게 빛을 잃고/ 하염없이 비가 내리던 날/ 나는 그 하늘아래/ 외로운 목동이 되었다/ 구슬프게 피리를 불면서/ 느린 황소의 잔등에 올라앉아 / 오불꼬불 비탈길을 돌아가는―//  목동의 피리소리/ 은은히 하늘가에 울려가던 날/ 입에 피를 문 딱따구리 한 마리/ 어디론가 울면서 날아갔다.(‘애가’전문)”

  소녀의 얼굴이 시인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하늘이다. 그리고 소녀의 눈동자는 새별이다. 그러다가 하염없이 비가 내리던 날 시인은 그 하늘 아래 외로운 목동이 된다. 느린 황소의 잔등에 올라앉아 부는 목동의 피리소리를 듣고 입에 피를 문 딱따구리 한 마리 어디론가 날아간다고 한 것은 시인의 깊은 마음의 독백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퍽 환상적인 면과 신화적 이면을 갖고 있어 시의 상징을 이색적으로 드려준다.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에는 겨우 이 두 수의 별 이미지를 다룬 시가 있을 뿐이지만 별을 이미지를 다룬 그 어떤 시들을 능가하는 매력이 깃들어 있다. 이 두 시에서 별이란 존재는 모두 소녀이다. 그러기에 장미가 별이 된 것이며 장미를 사랑하던 시인이 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기어코 이런 시작(詩作)으로 시를 만들어간 시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뻔하다. 때문에“나를 지켜보는 별”에서는 소녀가 별이 되어서 날 지켜보고“애가”에서는 별이 된 소녀가 다시 입에 피를 문 딱따구리가 되어 울부짖으며 어디론가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별이 된 장미의 이미지를 다룬 이 두 시는 오래 동안 독자들의 가슴을 울려주기에 손색이 없다.

 

  3. 동년과 사춘기의 갈림길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에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시들은 동년에서 사춘기의 갈림길을 읊조린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동년으로 허물없이 지내왔던 소녀와 소년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생기게 된다. 그게 사랑인지 당사자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꼭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금과를 따 먹은 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감람나무 잎으로 앞을 가린 그런 현실을 소녀소년 시대를 겪고 있던 시인이 표현해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섯 살 난 귀염둥이 네가/ 아장아장 들판에 나왔을 적/ 그때는 내 너에게/ 민들레꽃 한 묶음 꺾어주었지//  그때 그 시절 네 작은 고사리 손에/ 내 꺾어준 아름다운 꽃 한 묶음/ 잊지 못할 그 꽃은 오빠가 네게 주는/ 깨끗한 마음의 꽃이었지//  헌데, 내 오늘 너에게/ 다시 꽃 한 묶음 안겨줄 적/ 네 얼굴은 어이 그리 빨갛고/ 내 가슴은 왜 이리 쿵쿵 뛰느냐?//  바라노니, 소녀야/ 내 내미는 꽃묶음 받을 적/ 향기만 맡지 말고 생각해보려무나./ 그 꽃은 무슨 꽃인지 아느냐?//(‘꽃 한 묶음’전문)”

  어릴 적 소녀에게 꺾어주었던 꽃은 오빠가 네가 주는 깨끗한 마음의 꽃이라고 강조하면서 오늘 날, 지금 이 시각에 꺾어주는 꽃은 꼭“불결”한 꽃으로 암시한다. 그러고는 능청맞게 네 얼굴은 왜 그리 빨갛고 내 가슴은 왜 이리 쿵쿵 뛰느냐고 수작을 걸고 향기만 맞지 말고 마음을 읽어달라고 생떼를 쓴다. 대비를 통해서 동년과 사춘기 사이의 강에 다리를 놓는 이 시는 꼭 마치 소녀와 소년이 문자유희 노는 것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처음으로 오빠에게/ 입술을 도적 맞혔을 적/ 금시 울먹울먹 해졌어요/“오빠”라는 게 이처럼 허락도 없이/ 갑자기 동생을 뽀뽀하는 법도 있나요?/ 너무도 억울했어요!/ 그보다도 부끄러웠어요./ 고개를 숙이고 외면한 채/ 감히 똑바로 오빠를/ 다시금 쳐다 볼 염도 못했어요./ 어느새 눈물이 방울져/ 주르륵 흘러내렸어요.(‘도적 맞힌 첫 입술’전문)”

  이 시에서 뽀뽀라는 것이 정조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년에서 사춘기로의 탈출을 꾀한다. 소년에게 첫 입술을 도적 맞힌 소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소녀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소녀와 소년의 사이에 섬으로 솟는다.

“어쩐지 감히/ 오빠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기 두려워요//  언제부터인가/ 취한 듯 굳어진 듯 황홀히/ 눈 한번 깜빡 않고/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상한 그 눈길―//  그 눈길은 너무도 뜨거워요/ 마음에 불꽃이 일어/ 모닥불 황황 솟는 오빠의 두 눈/ 방불히 그 눈에서/ 세찬 불길 확―/ 뿜겨져 나와/ 삽시간에 요 내 몸/ 활, 활, 활, 불태워버릴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이상해진 야릇한 눈빛/ 어쩐지 감히/ 오빠의 그 두 눈을/ 정말로 마주보기 두려워요.//  두려워요/ 제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요.(‘두려워요’전문)”

  너무도 뜨겁고, 삽시간에 요 내 몸을 활활 태워버릴 것 같은 오빠의 이상야릇한 눈빛이야말로 마주보기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눈길은 소녀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이 더 불안하다. 오빠의 눈빛이 언제부터 저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이 시에서의 핵심이다. 하기에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이 동년과 사춘기 사이에 놓인 공간이다.

  동년과 사춘기의 갈림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떠들어댄다.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머물러 있는 궁전이 아닌가 싶다. 소녀와 소년들이 동년의 문턱을 뛰어넘어 들어간 사춘기의 안방에는 많은 수수께끼와 곤혹들이 장난친다. 그런 황홀지경을 시인이 그려낸 노력은 대견스럽기만 하다. 

 

  4. 키스의 흔적

  사랑에는 흔적이 있다. 소녀소년들의 사춘기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그 흔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크게는 두 가지뿐이다. 그 하나는 마음속 깊이에 보이지 않게 낙인찍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입술에 찍히는 키스인데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립스틱인 것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달콤한 키스가 찍어준 장미 빛 립스틱은 퇴색할 줄을 모른다.

 “초가을 황혼/ 창백한 낙엽마냥/ 세차게 바르르 떠는/ 차디찬 내 입술에/ 쓰지도 달지도 않은/ 냉랭한 키스만 남겨주고/ 소년은 돌아섰어라 말없이…//  한 조각 내 마음/ 마지막 불빛마저 꺼가지고/ 그렇게도 우울하게/ 그렇게도 쓸쓸히/ 고독한 긴― 그림자/ 사라지던 그 언덕에/ 오늘도 나 홀로 서서/ 멍하니 못 박힘은/ 못 잊을 그때 그 정/ 추억이 서러우매…//(‘서러운 추억’전문)”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러운 추억이다. 그 서러운 추억이 곧 키스의 흔적으로 오래 남은 것이 아닌지 모른다. 창백한 낙엽마냥 세차게 바르르 떠는 차디찬 내 입술에 쓰지도 달지도 않은 냉랭한 키스만 남겨주고 소년은 말없이 돌아섰어도 마지막 불빛마저 꺼지고 그렇게도 우울하게 그렇게도 쓸쓸히 고독한 그림자 사라진 그 언덕에 오늘도 나 홀로 멍하니 못 박힘은 곧 떨쳐버릴 수 없는 첫 키스의 흔적이다. 인생이 다 흘러갈 진데 소녀가 어찌 잊으리라. 첫 키스의 그 흔적을…   

 “불타는 빨간 버들잎은/ 뜨거운 임의 입술//  사랑이 깃든 시내가/ 추억의 버드나무 아래로/ 나 홀로 조용히 거닐면/ 정서 깊은 내 얼굴 입가로/ 차분히 내려앉는 빨간 버들잎 하나

그제 날, 연정에 취해/ 콩콩 뛰는 내 가슴 감싸 안고/ 임이 내게 제일 처음 안겨주던//  달콤한 키스가 아니옵니까?//  오늘도 남몰래 찾아와/ 정처 없이 바장임은/ 못 잊을 그때 그 시절/ 애틋한 풋사랑의 미련으로/ 요 가슴 불태움이 아니옵니까?//(‘빨간 버들잎’전문)

  빨간 버들잎이 임의 뜨거운 입술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창의에 우선 감탄해야 할 것이다. 시인에 의하여 임의 입술로 상징된 버들잎이기에 사랑이 깃든 시내가 추억의 버드나무 아래에 나 홀로 조용히 거닐면 내 입가로 임의 입술들이 차분히 내린다. 이 시를 읽고 나면 플래시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대개 플래시작품들은 배경이 멈추어 있고 상징들만 움직이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는 시인의 입술은 색 바랜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빨간 버들잎은 옛 키스의 흔적으로 시인의 입술을 향해 날아 내리는 것이다. 갑작스레 그런 이미지를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위의 두 시에서 다룬 키스의 흔적은 감상적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입술들이 강열한 키스를 받고나면 장미 빛 립스틱이 빨갛게 살아난다. 이 세상에 키스의 신이 살고 있다면 분명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에 안방을 꾸렸을 것이다.           

 

  이상으로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에 들어있는 국부의 시들을 4개의 이미지로 분류하여 평하여 보았다. 이제 이 평을 마무리 작업하는 순간에도 소녀소년들의 아름다운 숨소리는 멈출 줄 모른다. 홍용암의 시집“소년의 비밀”속의 공기는 그처럼 청신하다. 해서 이 시집 속에는 소녀소년들의 뜨거운 숨소리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런 시집을 소유하고 있는 홍용암시인이 부럽다. 그 다음은 소녀소년 그 시절에 이루지 못한 그 아픈 사랑을 해온 홍용암시인에게 뒤늦게나마 위안을 보낸다. 내 할 말은 이미 서두에서 했고 또 내 수준에 넘치는 평이라는 작업으로 외람된 발설을 한 연고로 결말을 짧게 두서없이 접는다. 끝으로 진영한시인의“아카시아 소녀”로 결말을 대체한다.

 

어느 침실을 그리워하였기에

너는 조숙한 숙녀처럼

푸른 잎새는 어데 두고

하얀 꽃잎만 덩그런히 피웠단 말이냐

 

무엇이 그리도 서러워

불 꺼진 창밖으로

지축을 무너뜨릴 듯한 숨소리를

흘러나오게 하는 것인가

 

무엇이 그리도 안타까워

까-만 어둠 속으로

작은 가슴 고동케하는 속삭임으로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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