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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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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시모음
2015년 06월 17일 21시 11분  조회:4550  추천:0  작성자: 죽림
 

 

 

<냉이에 관한 시 모음> 

+ 냉이의 꽃말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 
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 
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 
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 
허기진 지아비 앞에 
더 떠서 밀어 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 
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 
냉이의 꽃말에 
바람도 슬쩍 비켜가는 들, 
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 
봄이라도 
냉이가 물어주는 밥상머리 안부를 듣고서야 
온전히 봄이다 

냉이꽃, 환한 꽃말이 밥상머리에 돋았다 
(김승해·시인, 1971-)


+ 냉이꽃 

냉이꽃이 피었다 
하늘 향해 
옹알이하는 냉이꽃 
말 거는 엄마에게 
대꾸하는 모습이네 
조잘대며 
찰랑거리며 핀 꽃 
알맞은 햇살이 등을 다독이는 날 
논둑 밭둑가에 나왔네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처음 보는 
아기처럼 
(김귀녀·시인, 1947-)


+ 냉이꽃 
  
쬐그만 한것이 
남새밭 모퉁이에서 
조막손을 흔드는 것 좀봐 
봄바람에 얼굴 간지럽다고 
생글생글 웃는 것 좀봐 
귀엽고 이쁘지 않니 
저기 저 꼬맹이 꽃 
(심순덕·시인, 1960-)


+ 냉이꽃

네가 등을 보인 뒤에 냉이꽃이 피었다
네 발자국 소리 나던 자리마다 냉이꽃이 피었다
약속도 미리 하지 않고 냉이꽃이 피었다
무엇 하러 피었나 물어보기 전에 냉이꽃이 피었다
쓸데없이 많이 냉이꽃이 피었다
내 이 아픈 게 다 낫고 나서 냉이꽃이 피었다
너의 집이 보이는 언덕빼기에 냉이꽃이 피었다
문득문득 울고 싶어서 냉이꽃이 피었다
눈물을 참으려다가 냉이꽃이 피었다
너도 없는데 냉이꽃이 피었다 
(안도현·시인, 1961-)


+ 냉이꽃 

무슨 자잘한 생각들이 모여서 
저리 우르르 피어났을까 
땀으로 배여 소금기 서걱거리는 속적삼 같이 
하얗게 피었구나 
함부로 박힌 돌멩이도 피하지 않고 
우리네 사투리가 닿는 곳이면 
어디나 피어나서는 
너를 볼 때마다 
유년의 기억들이 황급하게 달려와 
내 코끝을 매웁게 하는구나 
하찮은 바람에도 옹알옹알거리며 
이리저리 함부로 흔들리는 
세상일에는 참 서투른 꽃 

유년의 그 가시나처럼 
가만히 이름을 부르다 만다
(김영천·시인, 1948-)


+ 냉이꽃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사람의 발길 닿지 않은 외진 땅에 
냉이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도랑물 따라 흐르는 
맑은 바람처럼 
고운 여자사람의 
조그만 젖무덤처럼 
따뜻한 숨결로 출렁이는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은 소리 없는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가난한 이름들은 모두 
소리 없는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가난한 이름들은 모두 
소리 없는 노래입니다. 
(백창우·가수 시인, 1960-)


+ 진도 냉이 
  
진도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어느 땅이나 똑같은 봄나물이 아니여 
진도의 밭 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진도의 냉이를 캐고 싶다 
미풍에도 흐느끼는 신들린 냉이 
신들린 진도의 코딱지 나물을 캐고 싶다 
겨울이 추웠기에 오히려 색이 맑은 
진도산 봄나물의 희디흰 뿌리를 
내 오른 손금 위에 얹어 보고 싶다 
손금으로 파고드는 
진도의 
봄 시냇물 
풀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향아·시인, 1938-)


+ 냉이꽃 

어떤 이들은 삶이 너무 무겁다고 고민하고, 
어떤 이들은 가볍다고 서러워한다. 
같은 분량의 햇살이나 빗방울이 
한 사람에게는 코끼리처럼 힘들고, 
다른 이에게는 홀씨처럼 가볍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무게를 느끼는 건 다행이다. 
그건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무게에 무심하다면 
그건 읽혀지지 않은 채 낡아 
먼지 속에 갇힌 책뚜껑만큼 슬픈 일.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고단한가. 
견디고 싶은 멀미처럼, 
우리는 창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서 사랑은 바라보기다. 희망도 그러하다. 
그 잴 수 없는 무게를 우리는 매일 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외롭기만 하다. 
그저 외로우면서도 맑은 꽃 한 송이 피워 본다. 
버려진 쇳덩이 속에서 햇빛을 짤랑거리며 핀 냉이꽃. 
우리의 삶도, 죽음도, 사랑도 
꼭 저만큼 숭고하고 경건했으면 좋겠다.
(김수우·시인, 1959-) 


+ 나도 냉이다

길바닥 갈라진 틈을 보아 비집고 다붙어 
용쓰고 애쓰고 곁가지도 벋으며 
솔솔한 웃음기를 바람에 띄우면서 
초여름 햇살을 바라지하는 
거기 소문 없이 냉이 꽃이 피어 있다. 

곁에서 잊고 사는 이 땅의 이름이여.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서운해 할 겨를도 없이 
도시의 한 구석배기를 차지하고 
다물고 치뜨고 하늘을 바라고 
들어봐 안쓰럽게 밭은 소리를 외고 있다.
(강세화·시인, 1951-)


+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거듭난 것들이 모여 
논둑 밭둑 비로소 따뜻하게 합니다 
참나무 어린 잎 하나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저를 이기고 거듭난 것들이 모여 
차령산맥 밑에서 끝까지 봄이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 속에서 거듭납니다 
저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여 
이 세상을 아직 희망이게 합니다.
(도종환·시인, 1954-)


+ 냉이의 뿌리는 하얗다 

깊게깊게 뿌리내려서 겨울난 냉이 
그 푸릇한 새싹, 하얗고 긴 뿌리까지를 
된장 받쳐 뜨물에 끓여놓으면 
객지 나간 겨울 입맛이 돌아오곤 하였지 

위로 일곱 먹고 난 빈 젖만 빨고 커서 
쟈가 저리 부실하다고 그게 늘 걸린다고 
먼 산에 눈도 덜 녹았는데 
막내 좋아한다고 댓바람에 끓여온 냉잇국 

그 푸른 이파리 사이 
가늘고 기다란 흰머리 한 올 눈에 띄어 
눈치채실라 얼른 건져 감춰놓는데 
그러신다 냉이는 잔뿌리까지 먹는 거여 
...... 

대충 먹는 냉잇국 하얀 김이 어룽대는데 
세상 입맛 살맛 다 달아난 어느 겨울 끝 
두고두고 나를 푸르고 아프게 깨울 것이다 
차마 먹지 못한 당신의 그 실뿌리 하나 
(복효근·시인, 1962-)


+ 겨울 냉이 

폭풍한설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냉이는 자란다
낙엽과 지푸라기 아래 숨어 봄을 기다리는 냉이,
행여 들킬세라 등 돌리고 있는 냉이를
더듬더듬 찾아내어 검불을 뜯어낸다

봄 내음이 나는 냉이국을 먹으며
낙엽과 지푸라기 속에서도 목숨을 지켜
마침내 싹을 틔워낸 냉이를 생각한다
가파른 삶의 벼랑 위를 조심조심 걸으며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냉이를 보라
서슬 푸른 정신으로 살아야 하리라
서슬 푸른 눈으로 살아야 하리라

겨울 냉이가 자신을 이기듯이
몰래 숨어 자란 냉이가
온몸을 우려내어
시원한 된장 국물이 되듯이
우리도 누구엔가 시원한
국물이 되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수서원 돌담길에도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에도 숨어있을 냉이,
환한 한 마디의 말씀이
오랜 궁리와 연찬에서 솟아나듯이
청빙(淸氷)을 뚫고
겨울 냉이는 자란다
아니 자라야 한다
(고명수·시인, 1957-)
* 연찬(硏鑽): (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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