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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2015년 10월 08일 18시 15분  조회:4989  추천:0  작성자: 죽림
詩의 要素[Ⅱ]:이미지와 이미저리 /벽파 김철진 

3. 이미지 이미저리야!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이미지 이미저리야!' 하고 소리쳐 불러봐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일 뿐' 아무도 대답해 줄 이는 없습니다. 허니 우리가 찾아 나서야지요. 그럼 슬슬 찾아 나서 볼까요? 여기서도 무작정 찾아 나서기보다는 나침반이라도 하나 가지고 나서야 하겠지요. 

존 러스킨이란 작자는 우리 머리를 또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왜인고 하니, 그가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가장 중요한 정신 능력의 하나인 '상상력(想像力)'을 직관적(直觀的) 상상력과 연합적(聯合的) 상상력 그리고 정관적(靜觀的) 상상력으로 분류하였기 때문이지요. 
내야 뭐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직관적 상상력이란 '사물의 정신적·내면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것'을 뜻하며, 연합적 상상력이란 '이미지[心象]를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며, 정관적 상상력이란 '대상의 본질을 마음의 눈으로 조용히 관찰하여 나타나는 사상과 정서로 체험 전체를 통일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머리 아프지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도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문학아카데미)에서 빌려 왔지요. 
그렇다고 동문 선배인 박제천 시인이 저작권 운운이야 하겠습니까? 

그럼 이제 이미지를 사용한 시들을 살펴보기로 할까요? 
여러분 작년 흰눈 펑펑 쏟아지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늘이 쓰는 시가 좋아서 신선되어 눈 타고 하늘 오르신 미당 서정주 시인 아시죠? 그 미당 선생님ㅡ 내게는 은사님이시기에 ㅡ의 '국화 옆에서' 모르시는 분 있으시면 손 들어 보세요. 그 시 둘째 연 한번 먼저 볼까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여기서 시인은 가을에 노랗게 핀 '국화꽃'의 이미지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중년의 '누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이제는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중년의 누님이 지닌 '원숙한 아름다움'이 바로 시인이 상상력으로 노래한 '국화꽃의 아름다움'이지요. 

이 번에는 회화적 이미지를 많이 구사했던 김광균 시인의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설야(雪夜)'의 전체 6연 중 4연까지를 한번 살펴볼까요?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여기서 시인은 '눈[雪]'의 이미지를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과 '서글픈 옛 자취'로, 어둠 속에 '눈이 내리는 소리'를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이지요. 

이처럼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하여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일 뿐, 이미지 그 자체는 아니지요. 따라서 상상력은 어떠한 상상력이든 그 결과가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이미지가 됩니다. 
여러분, 제2강의 일화에서 드가에게 한 S.말라르메의 말 기억하시지요? 잊어버리신 분들은 돌아가셔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오세요. 집으로 아주 가시지는 말구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미저리를 찾아볼까요? 
이미저리는 하나의 시구(詩句)에서도 찾을 수 있고, 한 편의 시 전체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던 청각을 시각으로 변화시켜 표현한 시구인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의 <외인촌>)와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정한모의 <가을에>)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시구들은 잘 알고 계시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하셨을 테니까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서는 종소리의 청각을 푸른 빛깔로 시각화함으로써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였고,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에서는 종소리의 파장을 동그라미로 시각화함으로써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미지를 결합하여 만들어 내는 이미지군(群)이 이미저리가 되지요. 

그럼 이번에는 시 전체에서 이미저리를 찾아봐야 하겠는데, 본디 내가 주변머리도 없고 발도 마당발이 못 되고 겁도 많고 실력도 없다 보니 유명한 시인들의 글은 인용을 못 하겠고 해서 내 졸작 '얼굴'에서 찾아보기로 하겠으니 과히 허물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두 눈썹 
한 획 
가로 그으면 
은어(銀魚)떼처럼 
몰려 오는 빛살 
아침으로 모도아 고이 
영원에 뿌리면 
사랑으로 피는 
둥근 미소(微笑) 
오, 빛살도 미소도 
머무는 거울아 
어릴 적 내가 
꿈으로 써 둔 
시(詩)." 

여기에 대한 것은 평론가인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내 첫 시집의 발문에서 썼던 시평으로 대신하는 것이 더 신뢰성이 있을 것 같아 그로 대신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채롭기조차 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각적 심상들의 시적 결합을 통해 시인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맑고 깨끗한 것, 순수 그 자체이다. '얼굴'이라는 시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구체성이 '빛살'·'미소'·'거울' 등의 시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내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쑥스럽네요. 내 뒤퉁수 긁적이는 것 보이십니까? 동영상 이미지가 없어서 안타깝군요. 
아무튼 너무 길어졌지만 여기까지 읽어 오신 분들은 이제 다 끝났으니 내게 욕할 일만 남았겠군요. 그래도 이 부분은 워낙 중요한 부분이니 두어 번은 읽어보시고 이미지와 이미저리에 대해서 이해를 대충이라도 하고 넘어 가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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