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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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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구상문학관 內
구상문학관은 구상 시인의 생존 시기였던 2002년 10월 4일 개관했다.
예술의 전당을 설계하신 김석철 설계사가 설계했는데 전체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전시실이고 2층은 도서실과 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 도서실은 기증받은 책(2만 5천권)으로 구상시인의 서고를 재현했다 한쪽에는 열람실로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문학관 마당 한쪽에는 ‘그리스도폴의 강’ 시비가 있다. 2008년 10월 28일에 시비제막식이 있었다.
그리고 문학관 자리는 원래 집이 있던 자리로 ‘관수재’를 새로 복원하였다.
예전에 이중섭 화가도 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문학관 전시실에는 구상 시인의 흉상, 박정희대통령이 보낸 친필서한, 중광스님이 구상시인의 마음이라고 그려놓은 그림,
김기창 화백의 그림, 전국을 여행 다니면서 가져온 돌도 있고,
시인이 도자기류를 좋아해서 그런지 도자기류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중광스님이 빚은 도자기도 있다.
이외에 시인의 소장품과 작품,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적인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시인 구상(1919년 ~ 2004년)
그리스도폴의 강 구상시비.
시비는 (주)현대화섬 손상모 대표이사의 재정 지원으로 독특한 한글서체를 창조한 류영희 서예가가 글씨를 쓰고 석공예 명장 윤만걸씨가 제작했다.
구상(1919. 9.16-2005.5.11) 시인은 서울 이화동 출신이다.
어머니가 43세 되던 해에 구상시인을 낳았기 때문에 어릴 때 만득이라고 불렀다.
아버님이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욱사업을 하였고 형이 구대준 신부였다.
그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신부가 되려고 하였으나 문학을 하게 되었다.
6.25때는 종군작가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53년부터 74년 까지 왜관에서 기거를 했는데 이때 왜관사람들은 ‘병원집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후 서울에서 생활을 했는데 집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한강을 주제로 강 연재시를 계속 쓰다
63빌딩이 생기면서 ‘강’시를 못썼다고 한다.
중광 작품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성찰의 시다. 구상시인은 이렇게 평생을 기독교적 존재관으로 살며 그것을 투명한 시적예지로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건국신화와 선불교적 명상, 노장사상까지 포용하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에 두고 시를 써왔다.
맑고 투명한, 거기에다 사상적 통합을 시로써 이루어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k씨가족-이중섭 작-
구상 시인은 산보다 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시인이 자란 원산시 외곽에 있던 덕원이라는 마을 앞에는 마식령산맥으로부터 흘러와 송도원 바다로 흘러가는 적전강이 있었는데 구상 시인은 이 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해방감을 맛 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상 시인이 장성해 가면서 일반적인 경치나 풍경으로써의 강보다 인식의 대상으로써 강을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스도 폴이라는 가톨릭 성인의 설화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싯다르타》를 접한 게 영향이다. 거기 주인공들은 강을 회심의 수도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저러한 강에 대한 상념이 시인으로 하여금 강을 연작시의 소재로 삼게 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시인이 여의도에 살아 날마다 한강을 마주하고 있고, 시골집도 왜관이라 낙동강을 자주 접하는데서 오는 친근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은<강> 60편을 완성하면서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구상 시인은 또 하나 남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너무나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때문인지 문학은 항상 인생의 부차적인 것이요, 주된 것은 종교, 즉 구도요, 그 생활이었다. 그래서 구상 시인은 일본에 가서 대학에 입학할 때도 명치대학 문예과와 일본대학 종교과에 모두 합격하였는데 결국 종교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신심을 가다듬기 위하여 복음의 묵상서《나자렛예수》와 신심시선《말씀의 실상》을 펴냈다.
관수제
세계 200대 문인 반열에 오른 구상선생의 선양과 한국시문학에 끼친 업적을 보존하고 22년간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한 관수재를 복원하여 시인의 삶과 문학과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영원히 이어가고자 건립. 집필실이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들렀던 관수재는 관람객들에게 시인의 문학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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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숨막힐 듯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서운 속도경쟁과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쫓기듯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 인간다운 게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한번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첫(2003) 소설집 <건달> (나무와 숲)을 펴낸 소설가 구자명(임마쿨라타 46)씨는 물질 만능주의와 속도 지상주의가 판치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일까 라는 화두를 던진 게 이 소설집 이라며 이 책이 한번쯤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고 말했다. <건달>은 1997년 마흔이라는 늦깎이 나이로 작가세계 를 통해 등단한 구씨가 그동안 발표했던 중·단편 소설 7편을 모은 것으로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연작소설 건달 이 대표작이다. 구씨는 구상 시인의 딸로 대를 이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드문 경우. 소설 <건달>의 주인공 지대평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정적 의미의 건달이 아니라 뭔가를 기를 쓰고 성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기에 힘들여 일하지 않고 사는 유유자적한 인물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한번쯤 꿈꾸는 삶이기도 하죠. 구씨 작품에 대해 문학평론가 문흥술 교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은 물론 탄탄하면서도 흥미로운 서사 구조와 유려한 묘사를 겸비하고 있다 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삶이야말로 타락한 우리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고 평했다. 구씨는 이번 소설집 출간을 서둘렀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 아버지 구상 시인에게 첫 작품집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상 시인의 딸은 아버지의 문학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수사적 표현이 적어 따분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화려한 꽃이나 열매가 없는 아무 옷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나무의 미학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현란한 수사나 표현으로 독자들을 기만하지 않는 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점점 더 이해하게 됩니다. 구씨는 아주 지혜로우면서도 여유롭게 사는 자유인을 다룬 장편 소설을 구상 중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건달 결정판으로 왕건달 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 주인공처럼 그렇게 여유롭게 사느냐는 질문에 구씨는 바쁘게 사는 거나 그렇게 살고 싶은 거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면서 소설을 통해 작가인 나 자신에게도 한번 실험해보고 싶다 고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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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선생님의 따님이신 구자명 소설가
[출처] 구상시비 / 그리스도폴의강|작성자 사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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