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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 속의 "옥에 티"
2016년 01월 10일 04시 19분  조회:5467  추천:0  작성자: 죽림

명시(名詩) 속의 '옥에 티' 
-- 올바른 시어의 선택을 위하여 



요즘 들어 영화다운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기억에 남는 여운 있는 영화가 드물다. 그래도 작년에 본 <식스 센스>가 제일 나은 것 같다.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무렵 반전의 묘미를 가장 잘 살린 영화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나는 단연 <식스 센스>를 들고 싶다. 내내 공포 심리 영화로 일관하다가 일순간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바꿔 놓는 인도 출신 젊은 감독의 연출 역량은 탁월한 것이었다. 
그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마이크'가 떠오른다. 배우의 대사를 동시 녹음하기 위한 마이크가 화면에 비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소년이 공부하는 교실의 천장 가까이 내려온 마이크가 보이고, 심리학자 브루스 윌리스가 침대에 누운 소년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마이크가 화면에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글로 치자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편집이 소홀했다는 증거이다. 그 사소한 '옥에 티'가 지금도 내 마음에 걸린다. 예술 작품이 어디 절대적으로 완벽할 수야 있을까마는 적어도 눈에 거슬리는 아쉬운 대목을 그냥 지나치는 건 철저한 장인정신(匠人精神)에 어긋난다. 


어린 시절에 배운 두 편의 동요를 생각해 본다. 윤석중 선생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①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모이자. 
②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지금은 ①이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로 ②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으로 고쳐져서 노래로 불리고 있다. "학교 종이 땡땡 친다."에서 '치다'는 타동사이다. 타동사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학교 종을'이라고 해야 맞고, '학교 종이'라는 주어를 앞에 내세워야 한다면 '땡땡 울린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고쳐졌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대로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두 번째 동요에서 '담배 먹고 맴맴'을 '달래 먹고 맴맴'으로 고친 것에 대해서 나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동요가 쓰여진 시기가 1940년대쯤이 아닐까. 아기를 혼자 집에 놔두고 어른들이 외출한 그 심심하고 지루한 한나절을 견디다 못해 아기는 이것저것 장난감을 찾아보지만 그 시절엔 적당한 놀잇감이나 간식거리가 없었다. 나귀를 타고 장에 가야 하는 가난한 시골집이라 아기는 부엌도 기웃거려 보고, 사랑방도 기웃거려 본다. 부엌에서 풋고추를 발견한 아기는 냉큼 그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아, 매워라. 퉤퉤. 또 사랑에 건너가서 아기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맛있게 피우는 쌈지 담배― 곰방대나 기다란 담뱃대에 꾹꾹 눌러 담아 피우는 그것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아기는 거친 쌈지 담배를 무심코 입에 넣어본다. 에이 쓰고 매워라. 퉤퉤. 작자는 이와 같이 귀엽고 장난스러운 장면을 그 노래에서 그려내었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그냥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동요를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담배'가 그만 '달래'로 바뀌어버렸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린이가 어른 몰래 흡연하고 매워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한 어느 근엄한 교육학자의 고지식한 편견이 그렇게 고쳐 부르게 하였을 것 같다. 하지만 '달래'라는 봄나물을 혼자 집어먹고 맵다고 한다는 발상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봄나물이란 것이 밑반찬으로 항상 부엌에 마련돼 있다는 전제가 우습고 또한 고추와 맞먹을 정도로 과연 달래가 매운 것일까. 단순히 원작의 '담배'와 '달래'의 어감이 비슷한 데서 무책임하게 고쳤다는 혐의를 벗을 길이 없다. 
물론 담배란 피우는 것이지, 먹는 건 아니다. 항용 담배 피우는 일을 담배 먹는다고 일상적 대화에서는 허용된다 치더라도 그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나라 청소년의 흡연 문제를 염려하는 차원에서의 충정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차라리 '마늘 먹고 맴맴'으로 고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도 뜻 있을 것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 속의 서정적 자아는 김소월이라는 남성이 아니라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시어들도 여성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우리다,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눈물, 흘리우리다. 
어느 강의실에서 김종길 시인은 이 시의 전반적인 여성적 어조 및 분위기를 말하면서 딱 한 개의 시어 '죽어도'가 쌀 속의 뉘처럼 몹시 거슬린다고 지적하였다. '죽어도'라는 결사 항쟁(決死抗爭) 식의 표현은 지극히 남성적이며 표독한 어김을 풍긴다는 연유에서였다. 소월이 못내 다정다감한 듯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독한 일면도 간직하고 있었음은 그의 음독 자살에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여성적인 어휘들 속에 낀 이 '죽어도'를 어떻게 시 전체의 흐름을 다치지 않으면서 여성적 어휘로 대체할 수는 없을는지. 
김소월 시의 연구에 단연 뛰어난 업적을 보인 오하근씨의 저서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찾아서 나는 '허투로, 다말고'라는 독특한 소월의 어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투로'는 "아무렇지 않게 되는 대로", '다말고'는 "'모두 다 말고'에서 '모두'가 생략된 말이며, 다 그만두고"라는 뜻으로 밝혀져 있다. 덧붙여, 연구의 결과가 아직도 미지수라 할 시어 '즈려밟고'를 오하근씨는 "지레 밟다. 지리밟다. 발 밑에 있는 것을 힘주어 밟다."라고 밝혀 놓고 있는데 그 앞의 가벼운 동작의 표현인 '사뿐히'라는 말과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힘주어 밟다"는 의미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움을 떨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진달래꽃>의 끝 연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다말고/ 허투로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로 맺었더라면 '죽어도'의 서릿발 치는 느낌이 곱게 가셔지면서 시의 여성적 분위기를 일관되게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즐겨 거닐던 서강(西江) 일대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창냇벌을 꿰뚫고 흐르던 창내가 자취를 감추어 버릴 만큼, 오늘날 신촌(新村)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2년 후배인 정병욱씨가 1976년 《나라 사랑》23호에 발표한 회고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글 가운데 시인의 시작 태도에 대한 언급이 문득 눈길을 끈다. 

"그는 한 마디의 시어 때문에도 몇 달을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한 <또 다른 고향>에서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라는 구절에서 '풍화작용'이란 말을 놓고, 그것이 시어답지 못하다고 매우 불만스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두었지만, 끝내 만족하지를 않았다." 

국어 사전에는 '풍화 작용'의 뜻을 "지표의 암석이 공기·물·온도 따위에 의해 차츰 부서지는 작용. 결정수(結晶水)가 있는 결정 따위가 공기 중에서 차츰 수분을 잃고 부서져 가루로 변하는 작용"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십대 청년 시인으로서 과학에 주로 사용되는 말인 '풍화작용'이 지닌 미약한 정서의 함축성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이 충분히 짐작된다. 그는 단지 시에서 그 말 한 마디만 고쳐보려 하다가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 그 시어 하나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가령 그 한 줄의 시행을 "검은 바람에 곱게 바스러지는"으로 바꿔 썼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러면 '검은 바람'이 '어둠'을 함축하면서 동시에 풍화작용의 의미에도 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울러 '검은 바람'과 '백골'의 색채 이미지의 선명한 대비도 본질적 자아를 상징하는 백골과 현실적 존재인 '나'와의 갈등이라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데도 도움이 될 법하지 않을까.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검은 바람에 곱게 바스러지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고쳐 써 본 「또 다른 고향」 

윤동주의 대표시 중의 하나인 <간>의 마지막 연에서도 역시 미숙한 시어 하나가 눈에 걸린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침전하는 푸로메디어쓰. '침전'은 "액체 속에 섞인 작은 고체가 밑바닥에 가라앉음, 또는 그 앙금"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푸로메디어쓰가 그렇게 작은 고체 덩어리밖에 안 될까. 이십대 청년 윤동주가 <또 다른 고향>, <간> 두 편을 요즘의 신춘문예나 권위 있는 잡지의 신인상에 응모한다면… 아마 낙선하고 말 것이다. '풍화작용', '침전'과 같은 적확성(的確性)이 결여된 표현이 치명적 결점으로 지적되었을 게 뻔하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맷돌을 지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는 푸로메디어쓰. 

라고 퇴고해 볼 것을 청년 윤동주에게 나는 권하고 싶다. 


현대시는 문자의 옷을 입어야만 그 생명을 얻는다. 구어(口語)가 아니라 문어(文語)로 표현되는 점이 고대의 시가와 현대시가 다른 차이점일 것이다. 문장의 규칙이 현대시에서도 올바르게 지켜져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바른 문장 표현이 언어 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관점에서 근래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에서도 비문(非文)과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경계하는 문제를 매년 출제하고 있다. 요즘 세인들에게 회자(膾炙)되는 널리 알려진 시에서도 그런 어설픈 문장이 이따금 발견된다. 

①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②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①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로 고쳐져야 바르고, ②에서의 '群'이라는 한자는 '대열' 혹은 '무리'로 바뀌어졌으면 싶다. 이 시 전체는 모두 한글로 쓰여졌는데 굳이 '群'만 한자로 쓴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시가 발표된 시대상과 관련해서 혹시 '軍'이라는 이음동의어를 연상시키기 위한 시인의 조심스런 배려였을까. 
이 시는 한두 군데의 작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눈물 나게 통쾌한 시임에는 틀림없다. 극장에서까지 애국가를 상영하며 애국심을 강요하던 그 시절에 특히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라고 한 냉소적 베이소스(bathos) 표현 기법은 감히 당대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으리만큼 훌륭하다. 
유명한 시가 단지 유명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신성 불가침의 턱없이 높은 평가와 옹호를 받는 일은 이제 재고돼야 한다. 좋은 점은 장양되어야 하며 좋지 않은 결점은 제대로 바로잡는 바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시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어떠한 선입견도 배제하고 거울같이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작품을 대해야 마땅할 것이다. 시의 어법도 결국은 합리적, 보편적 상식과 바른 문장 표현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기본을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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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김소월

 

 

 

 

 

 

김소월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원작

 

 

 

 

 

 

93. 구름 속의 집 / 이채민 

 

 

 

 

 

 

이채민 시인 프로필

 

충남 논산 출생

2004 계간《미네르바》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첫 시집 《기다림은 별보다 반짝인다》

두번째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현재 계간미네르바 작가회장 및 편집위원

 

 

 

구름 속의 집

 

                              이채민

 

56층에서 살고 있다

가끔 지나가던 새털구름이 창틀에서 쉬어가고

관악산 연주대에 걸쳐 있던

삿갓구름이 주인 없는 거실에서

슬며시 앉았다 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인의 집이라 하지만

구름 위에서 시 쓰는 일도

땅에서 헤엄치는 것만큼 어렵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시는 이래저래 밥이 되긴 글렀다

구름 위의 집에서도 밥은

언제나 내가 한다

시를 팔아야 하는데

먹장구름이 안방에서 거실로

부엌으로 따라다닌다

 

 

이채민 시집 '동백을 뒤적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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