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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여, - 진짜배기 시인답게 좋은 시써라...
2016년 01월 10일 05시 07분  조회:4349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와 나쁜 시

박태일(시인, 교수)


1
시는 제도와 관습의 산물이다. 끊임없이 이어진 시공간적 단위의 구성원이 서로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인 것으로 믿어온 담론 구성물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둘레 주류 시론에서 말하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은 부분 개념이거나 역사적 정의에 머문다. 처음부터 시의 본질이니 순수한 시정신이니 호들갑을 떠는 일은 수사적 부풀림이거나, 특정 시관에 대한 배타적 우월성을 굳히기 위한 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한 자각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특정 시관을 금과옥조로 일반화시키는 잘못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시와 비시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너무 느슨해서 오히려 경계의 나눔이 불필요해 보일 정도다. 어떤 작품이 시냐 시가 아니냐는 물음이 어리석은 까닭이다. 그보다는 좋은 시인가 나쁜 시인가 하는, 특정한 시적 취향과 그 관점을 밝히고 그에 대한 정당성을 토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일이 생산적이다. 

(ㄱ)콩나물죽 
후룩후룩 먹으며
아버지 생각하였다
우리 아버지 돌아오시면
죽 안 먹으려니 하고

(ㄴ)새벽빛을 보고 싶어 
불을 켜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새벽빛에 젖고 싶어 
한없이 젖어들고 싶어……

푸르른 몸이여
여명의 마음이여.

(ㄱ)과 (ㄴ)은 둘 다 시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먼저 이 둘은 줄글 꼴로 쓰여진 예사로운 산문과는 다르다. 겉꼴에서부터 들쭉날쭉 글줄이 들고 난 가락글이다. 오늘날 가장 흔한, 그리고 가장 낯익은 시꼴이다. 그리고 둘 다 시집이라는 형태공간에 실려 있다. 그러하니 이 둘을 두고 시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남은 문제는 있다. 이 둘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나쁜가라는, 작품에 대한 호오․취향에 대한 물음이다. 이 둘이 시인가 시가 아닌가라는 물음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먼저 (ㄱ)을 좋은 시로 여기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시 속에 담겨 있는 현실감각을 눈여겨본 사람일 성싶다. 짐짓 배고픈 아이의 생각과 몸짓을 이음매로 내세운 가난이라는 현실이 짧은 시줄 속에 잘 옹글었다. 거기다 이 시는 나라잃은시기 1930년대 이른바 조선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일간지 지면에 실리지 못했던 작품 가운데 하나다. 조선의 빈궁 현실을 다루어 민족의식을 북돋울 수 있는 위험이 큰 작품으로 보였던 까닭이다. 이런 설명까지 덧붙인다면 (ㄱ)에 대한 독자의 호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명시인의 습작기 투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ㄴ)을 나쁜 시로 꼽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작품만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ㄴ)은 구체적인 삶과 겉돌아 추상적이다. 작품 내용도 어름하다. 반복법에 이끌린 영탄조마저 없었다면 이 시를 객쩍은 벌소리로 볼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이 작품은 그렇게 낮추어 보기 힘든 시다. 명망가 시인인 정현종의 것인 데다, 그에게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상금이 많은 시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인 까닭이다. 이런 무거운 사실을 일깨워준 뒤 다시 독자에게 (ㄴ)에 대한 호오를 물어보라. 이 작품을 벌소리에 가까운 것이라 여겼던 이도 마냥 생각을 지켜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에 지녔던 눈길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면 유명 문학상과 그 심사위원회의 식견, 그리고 시상 주체의 사회적․제도적 명성과 권위체계를 딛고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인이 떠맡기 힘든 일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좋은 시와 나쁜 시를 결정 짓는 취향의 요건 또한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시 자체에서 오는 것 못지 않게 시 바깥에도 있다. 어쩌면 시 바깥 요인이 더 결정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 작품은 문학사회의 거시 제도 안에서 마련한 미시전략의 결과다. 각급학교 문학교육, 등단방법, 문학상과 같은 다양한 인정기제나 제도적 틀, 대중매체나 저널 문화면의 명성 생산과 재생산, 또는 인맥․학맥․지맥과 같은 문화자본, 서점 유통 단위에서 나타나는 판매지수나 기호도 순위와 같은 중계회로의 소비전략이 그 내면화의 세부를 이룬다. 이른바 시의 역장이다. 
흔히 문학사회 안에서 시의 자리는 세 가지 역장을 보여준다. 고급시와 대중시, 그리고 교양시가 그것이다. 이 셋은 서로 다른 시적 취향과 목표를 겨냥한다. 그러면서 서로 긴장, 대립, 보족 관계를 거듭한다. 오늘날 우리시는 이러한 세 역장을 껴안고 있는 제도의 결과물이다. 좋은 시인가 나쁜 시인가 하는 잣대와 조건은 이 역장 안에서 다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여러 길항관계를 받아들일 때라야만 비로소 시에 대한 열린 개념 정의와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를 깔고서 좋은 시의 요건을 몇 가지로 들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나쁜 시의 모습 또한 자명해질 것이다. 

2
첫째, 좋은 시는 무엇보다 좋은 시인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좋은 시의 첫째 요건이 이것이다. 시인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크게 둘이 있다. 심리적 시인관과 사회적 시인관이다. 심리적 시인관이란 시인 안쪽에 시인이 됨직한 특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이럴 경우 시인은 보통 사람과 나뉘는 특별한 이로 여겨진다. 사회적 시인관은 이와 달리 시인은 사회 안쪽의 인정기제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이다. 이럴 경우 시인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다. 다만 시 창작 수련과 발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이를 뜻한다. 그가 시인일 수 있는 터무니는 등단 제도나 방식을 거쳤는가 아닌가에 있을 따름이다. 
우리 근대시사에서 좋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그 삶에서 흔히 특별한 면모를 지닌다. 때로 안타까운 요절이나 열정적 연애와 같은 비장함, 언어 바깥의 선정성으로 겉칠된 삶이 그것이다. 곧 특별한 삶에서 좋은 시가 나올 것이라는 소박한 인과론, 개성론의 틀은 시인 됨됨이에 타고난 각별함을 요구한다. 심리적 시인관을 밀 수 밖에 없다. 시작에 대한 즉흥성과 시인에 대한 예외성을 버릇처럼 요구하는 태도가 이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러나 좋은 시인은 세상의 그러한 조급한 기대와는 달리 끊임없이 시와, 언어와 다투는 이다. 그의 작품이 좋은 시 자리에 오를 개연성은 그만큼 크다. 
둘째, 언어를 중심으로 좋은 시의 요건을 따져 봄직하다. 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숱한 언어 관습 가운데 하나다. 그러면서 언어의 특이성과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갈래다. 드높은 언어 관습이자 진지한 말놀이인 셈이다. 이 점을 형식주의자의 생각에 따라 일탈이라 부르든 비틀기라 부르든 시가 언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한에서는 달라지기 힘든 자질이다. 따라서 좋은 시는 언어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그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무엇보다 언어는 자민족 중심적이다. 언어 활용의 가능성이란 바로 민족어의 가능성과 다르지 않다. 100년 남짓한 근대 시기 동안 우리시는 노래로 불려졌던 노래시가 아니라 눈으로 읽는 문자시로서 한글의 용례를 키우고 그 쓰임새를 세련시킨 공이 크다. 이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근대시의 전통이다. 좋은 시는 이러한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더욱 변화, 발전시킨 경우다. 따라서 우리 근대의 제국언어였던 일본식 한자 투에 갇혀 있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힘들다. 영어 공용어론이 솔솔 피어나고 있는 오늘날 눈길에서 볼 때도 이 점은 달라짐이 없다. 
글말이란 입말과 달리 본디부터 지식계층, 엘리트 문화물이다. 따라서 민족 구성원과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하는 언어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는 특권 문화로 떨어질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근대 민족국가의 민족다움을 재는 주요 상수 가운데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언어의 동질성이다. 그러나 오해 없기 바란다. 이 말의 요체는 추상적인 정치 이념의 동질성이나, 섣부른 민족혼과 같은 명분론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민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손쉽게 다가서서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는 뜻이다. 담긴 뜻의 깊고 얕음이나, 언어기법의 각별함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셋째, 표현?【? 본 좋은 시의 요건이다. 시는 무엇보다 언어의 긴밀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수필이나 소설과 달리 압축과 생략을 바탕으로 삼는다. 시는 줄여 써서 많이 말하는 길을 따르고, 소설은 늘여 써서 적게 말하는 길을 따른다. 이 둘의 차이를 힘껏 맞세운 자리에 시와 소설의 관습적 정당성이 있다. 시가 소설에 가까워져 번잡하고 느슨해지면 더는 오롯한 시의 자리를 내세우기 힘들다. 거꾸로 소설이 시처럼 줄이고 다듬어 말과 말 사이의 긴장을 애써 키우고, 생각을 건너뛴다면 더는 소설 자리를 고집하기 힘들다. 
그런데 압축과 생략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시적 요건이 뜻하는 궁극적인 자리는 어딘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반복불가능성, 곧 다르게 쓰여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른 표현이 그것이다. 이 점이 진지한 말놀이로서 시 창작의 즐거움이고, 시가 다른 갈래와 맞서 끊임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터무니다. 좋은 시란 바로 기지의 표현과 다른 반복불가능성을 실천하고자 한 작품이다. 다르게 쓰여질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 말에 힘이 실리고, 그 뜻에 환한 자장이 피어나고, 그 주체인 시인에 대한 외경이 솟아난다. 
그렇다면 이 점은 어떻게 확인하는가. 간단한 길이 있다. 해당 시의 특정 부분을 다르게 고쳐 보면 될 일이다. 이 경우 고쳐진 상태가 본디 시보다 더 좋아진다면 그 본디 시는 서툴고 나쁜 시다. 거꾸로 다른 이가 손을 대었을 때, 오히려 고쳐진 시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본디 시는 다르게 고쳐 쓰기 힘든 상태, 곧 반복불가능성에 가까이 다가선 경우겠다. 이른바 좋은 시인 셈이다. 아무리 명망을 얻고 있는 시인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쓰여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 그것이 일깨워주는 표현 가치를 포기한다면 하루아침에 범상한 시인으로 떨어지고 만다. 
넷째, 작품 내용에서 볼 때 좋은 시의 자질에 대해서는 이미 낯설게하기라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 일탈에 붙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개방, 곧 주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나 대거리라는 적극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손쉽게 이를 수 있는 생각이나 느낌, 이미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지의 세계를 겨냥한 시는 좋은 작품이 되기 힘들다. 널리 승인된 작품 내용이나 문화관습에 가까이 빌붙으려는 유행시, 특정한 내용만을 부풀리는 키치시와 같은 것들이다. 

사랑을 하며 산다는 건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삶에의 의미를 지니리라.

바람조차 내 삶의 큰 모습으로 와 닿고 
내가 아는 
정원의 꽃은 언제나 
눈물빛 하늘이지만, 

어디에서든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는 잊혀질 수 있다
사랑으로 죽어간 목숨조차
용서할 수 있으리라

시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어떤 이의 작품 가운데 한 부분이다. “사랑을 하면 산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드러냈다. 겉만 번지르하고 막연한 생각에 머물고 있다. 키치시라 일컬을 만큼 감상성도 두드러진다. 이런 작품의 가벼움과 얄팍함 속에는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범상한 감각만이 담겨 있 따름이다. 좋은 시란 적어도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서려는 작품에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다섯째, 독자 쪽에서 좋은 시의 요건을 살필 수 있다. 압축과 생락, 곧 줄여서 말하는 방식인 시는 독자 쪽에서 볼 때 늘여서 읽는 일을 근본 방식으로 한다. 늘여서 읽기 어려운 시, 뻔하고 빤하지 않아 한번에 쉽게 뜻이 잡히지 않은 시, 그것이 무엇인가를 거듭 고심하게 만드는 힘이 큰 작품이 좋은 시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거니와 적게 말하면서 많은 생각과 느낌을 일깨우고자 하는 역설적 갈래가 시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의 거듭 읽기와 독서시간의 지연, 곧 소급적 독서는 필연적이다. 좋은 시란 바로 이렇듯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작품 안에 묶어두는 힘이 강한 작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 힘은 여러 방향에서 작용한다. 작품 안일 수도 있고, 작품 바깥일 수도 있다. 문학교육이나 저널의 관심, 문학상과 같은 문학사회의 제도적 장치는 바깥 요인이다. 대중시에 가까울 수록 독자들은 작품 바깥에 의한 규정력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 읽기는 문화 훈련이다. 일상언어 활동과는 길이 다르다. 세련된 언어관습으로서 읽기 훈련과 그로 말미암은 내면화는 필수적이다. 독자에게 손쉽게 읽히지 않는 시란 그 훈련에 거듭 이끌어들이는 힘이 강한 시다. 그들이야말로 특정 세대독자나 당대 현실독자가 아니더라도 마침내 문학사나 문화 자체가 독자가 되는 시, 오래도록 독자사회로 열려 있을 좋은 시로 거듭난다. 

3
좋은 시란 시인된 됨됨이에서부터 언어를 거쳐 표현 방법과 인식 내용, 그리고 독자사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 위에서 나는 좋은 시를 좋은 시인이, 민족어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자리 위에서, 어쩌면 될성부르지 않은 반복불가능한 표현을 겨냥하며, 세계를 개방해주는 쪽으로, 멀리 독자를 묶어두는 힘이 강한 작품으로 규정했다. 여러 편차와 다채로운 맥락이 그 안에서 새로 마련되겠다. 그럼에도 좋은 시는 이러한 요건의 그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뜻하는 궁극은 마침내 하나다. 뜻있는 말놀이, 문화관습으로서 이르기 힘듦이 그것이다. 그 방위가 어디든 더욱 이르기 힘든 상태를 보여준 작품, 그것이 좋은 시다. 오늘날 문학사회의 환경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대중매체가 시의 취향을 이끈다. 디지털 기술에 따라 향유 방식도 바뀌고 있다. 시를 향한 취향의 높낮이나 경계, 기대지평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시의 자리가 시단을 이끌고 있다. 문학의 인정기제 또한 그에 맞물려 움직인다. 세련된 독서로서 시 비평과 연구의 경우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런 속에서도 시의 가능성, 곧 언어를 통한 창조적 가능성의 확대라는 쓰임새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좋은 시, 또는 시적인 것을 향한 헌신은 문학사회 안팎으로 지난날과는 견줄 수 없을 강도와 방향에서 요구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 당대시의 전통과 관습의 담장을 흔드는 좋은 시가 나올 개연성은 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독자사회가 시인들에게 시를 향한 다함없을 헌신을 한결같이 기대하는 시대 분위기,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는 처음이자 끝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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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산문에 기대어 / 송수권

     

 

 

 

 

 

 

 

 

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 그리메 : 그림자의 옛말

** 산다화 : 동백나무의 일종

 

송수권 시집 <산문에 기대어> 중에서

 

 

 

송수권 연보


1940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학곡리 1297번지 출생.

 

1959년 순천사범학교 졸업.

 

1962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山門)에 기대어≫ 등이 당선 등단.

 

1976년 지리산 노고단 ‘산상(山上) 시화전’ 개최.

 

1980년 제1시집 ≪산문에 기대어≫(문학사상사) 간행.

 

1982년 제2시집 ≪꿈꾸는 섬≫(문학과지성사) 간행.

 

1984년 제3시집 ≪아도(啞陶)≫(창작과비평사) 간행. 해방 후 최초로 ≪분단시선집≫ 편저.

 

1985년 중등학교 교감 자격증 취득.

 

1986년 산문집 ≪속(續) 산문에 기대어≫(오상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나남) 간행.

          금호문화예술상 수상.

 

1987년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1988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제5시집 ≪우리들의 땅≫(문학사상사) 간행. 시선집 ≪우리나라 풀이름 외기≫(문학사상사) 간행.

 

1989년 산문집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문학사상사) 간행.

 

1990년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1991년 역사기행집 ≪남도기행≫(시민) 간행. 한국현대시 100인 시선집 ≪지리산 뻐꾹새≫(미래사) 간행.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전원) 간행.

 

1992년 제7시집 ≪별밤지기≫(시와시학사) 간행.

 

1993년 서라벌문학상 수상.

 

1994년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문학사상사) 간행.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이사(감사).

 

1995년 30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연구관으로 명예퇴직.

 

1996년 남도 음식문화 기행 ≪남도의 맛과 멋≫(창공사) 간행. 제7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광주문학상 수상.

 

1998년 산문집 ≪빛세상≫(토우) 간행.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광주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출강.

          남도음식문화축제 심사위원. ≪무등일보≫ 편집위원.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시와시학사) 간행.

 

1999년 제1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객원교수 임용.

          우리 토속꽃 시집 ≪들꽃세상≫(혜화당) 간행. 육필시선집 ≪초록의 감옥≫(찾을모) 간행.

 

2000년 ≪태산풍류와 섬진강≫(토우) 간행.

 

2001년 제10시집 ≪파천무≫(문학과경계사) 간행.

          3인(고 이성선, 송수권, 나태주) 시집 ≪별 아래 잠든 시인≫(문학사상사) 간행.

 

2002년 산문집 ≪만다라의 바다≫(모아드림), 자선시집 ≪여승≫(모아드림) 간행(제 1~8 시집 정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정교수 발령.

 

2003년 제1회 영랑시문학상 수상. ≪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산문집 ≪아내의 맨발≫ 간행.

 

2005년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 매화 한그루 심고≫(시학), 비평집 ≪사랑의 몸시학≫  간행.

          논총 ≪송수권 시 깊이 읽기≫(나남), 민담시선집 ≪우리나라의 숲과 새들≫(고요아침) 간행.

          시 감상선집 ≪그대 그리운 날의 시≫(고요아침), 시창작실기론 ≪송수권의 체험적 시론≫  간행.

          김동리문학상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퇴임.

 

2006년 비평집 ≪그대, 그리운 날의 시≫, ≪상상력의 깊이와 시 읽기의 즐거움≫ 간행.

 

2007년 시선집 ≪시골길 또는 술통≫(종려나무), 산문집 ≪소리, 가락을 품다≫(열음사) 간행.

 

2008년 장편 동화집 ≪옹달샘 꽃누름≫(문학사상사) 간행. 한민족문화예술대상 수상.

 

2010년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 비평집 ≪체험적 시론≫ <시창작 실기론> 간행.

          지리산인산문학상, 만해님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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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석남꽃 꺾어 / 송수권 

         

 

 

 

 

 

 

 

 

 

석남꽃 꺾어

 

  

                                     송수권

 

 

 무슨 죄 있기 오가다

네 사는 집 불빛 창에 젖어

발이 멈출 때 있었나니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에도

네 모습 어리울 때 있었나니

 

  

늦은 밤 젖은 행주를 칠 때

찬그릇 마주칠 때 그 불빛 속

스푼들 딸그락거릴 때

딸그락거릴 때

행여 돌아서서 너도 몰래

눈물 글썽인 적 있었을까

 

 

우리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 데 없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는 그 언덕들

석남꽃이라는데…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

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 들고

밤이슬 풀 비린내 옷자락 적시어 가며

네 집에 들리라.

 

 

 

송수권 시집 <별밤지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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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 [한밤중 詩 한쪼박 드리매]- 보리가 팰 때쯤 2016-04-05 0 4313
1308 [화창한 봄날, 싱숭생숭 詩 한꼭지]-나는 아침에게... 2016-04-05 0 4659
1307 아시아의 등불 - 인도 詩聖 타고르 2016-04-05 0 4830
1306 한국 詩人 김억 / 인도 詩人 타고르 2016-04-04 0 6971
1305 인도 詩人 타고르 / 한국 詩人 한용운 2016-04-04 0 4578
1304 [봄비가 부슬부슬 오는 이 아침 詩 읊다]- 쉼보르스카 2016-04-04 0 4588
1303 [이 계절의 詩 한숲 거닐다]- 사려니 숲길 2016-04-04 0 4484
1302 [월요일 첫 아침 詩 한잔 드이소잉]- 하루 2016-04-04 0 4178
1301 [청명날 드리는 詩 한컵]- 황무지 2016-04-04 0 4622
1300 <작은 것> 시모음 2016-04-04 0 4409
1299 詩와 思愛와 그리고 그림과... 2016-04-03 0 5284
1298 詩, 역시 한줄도 너무 길다... 2016-04-03 0 5865
1297 詩, 한줄도 너무 길다... 2016-04-03 0 4400
1296 [이 계절 꽃 詩 한다발 드리꾸매]- 벚꽃 시묶음 2016-04-03 0 5348
1295 <할머니> 시모음 2016-04-02 0 4348
1294 {童心童詩}- 텃밭에서(詩를 쉽게 쓰라...) 2016-04-02 0 4773
1293 {童心童詩} - 꽃이름 부르면 2016-04-02 0 3917
1292 <발> 시모음 2016-04-02 0 4511
1291 도종환 시모음 2016-04-02 0 5189
1290 [이 계절의 꽃 - 동백꽃] 시모음 2016-04-02 0 5213
1289 이런 詩도 없다? 있다!... 2016-04-02 0 4051
1288 [한밤중 아롱다롱 詩한컷 보내드리꾸이]- 모란 동백 2016-04-02 0 4419
1287 [머리를 동여매고 하는 詩공부]- 자연, 인위적 언어 2016-04-02 0 4245
1286 [머리가 시원한 詩공부]- 죽은자는 말이 없다... 2016-04-01 0 4040
1285 [머리 아픈 詩 공부]- 문학과 련애 2016-04-01 0 5152
1284 [싱숭생숭 봄날 아롱다롱 봄, 풀꽃 詩 한 졸가리] - 풀꽃 2016-03-31 0 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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