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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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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07일 08시 01분  조회:4623  추천:0  작성자: 죽림

 

 

제2장 시를 쓰기 전에

 

1) 시 쓰기의 3다(三多)

 

시를 쓰려는 사람은 우선 세 가지를 많이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많이 써야 한다. 흔히 <시 쓰기의 삼다(三多: 多讀 多書 多思)>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많이 읽는 거야 시인이 아니더라도 많이 읽을 수 있다.그러나 적어도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남의 시를 읽을 때는 다음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한다.

 

첫째,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아 무었을 어떻게 말해 놓았는지 살펴보라.

둘째, 남의 시에서 세련된 표현을 곰곰이 새기면서 익숙해지도록 해보라.

셋째, 만일 내가 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라.

넷째, 내가 말할 바를 찾아서 그와 비슷한 어법으로 만들어 보라.

그러면 <모방이 아니냐.>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 화가가 그림 공부를 할 때 잘 그려진 그림을 모델로 놓고 그대로 그려 보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시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그의<시학>에서 <

 

문학은 모방이다.>라고 했다. 시를 공부할 때도 모방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어떤 시인은 남의 시를 읽고 있다가 그 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시가 잘써진다는 사람도 있다. 시를 지어 보려는 사람은 남의 작품을 읽어 보지 않고는 시를 쓸 수가 없다. 시를 읽어야 그런 세계, 그런 어법, 그런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곤 <나도 그처럼 감동적인 시를 멋지게 써 보아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우선 많이 읽도록 하라. 그리고 많이 생각하라.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독특한 시 세계가 형성될 것이다.


2)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사실 시를 읽고 좋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될 가능성과 소질이 있다. 그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시인과는 다르다.19세기말 영국의 시인이던 워즈워드는 <시는 감정의 자연적인 발로>라고 했다. 사실 그 무렵의 시는 그랬다. 김 소월의 시가 그랬고 19세기 낭만파 시인들의 시가 대부분 그랬다. 타는 듯한 노을을 보고<아! 노을!>하고 느낌만을 표현해도 시라 했다. 시인 중 아직 그런 것도 시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가끔 내게 어떤 자연을 보고 즉흥시를 읊으라는 사람이 있다. 마치 가수가 흥이 나면 노래하듯 시를 읊으라는 사람도 있다. 이조 시대 자연이나 읊조리며 감탄하던때의 이야기다. 이 시대엔 사정이 좀 다르다.

현대의 시인은 자신의 사상을 <시를 위해 재편성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즉 현대시란 그냥 감정이나 느낌을 쓰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나 느낌을 <지성>을 빌려 표현하고 구성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어떤 시를 평할 때 <언어는 거칠지만 내용은 훌륭한 시>라는 평자의 말을 읽을 때가 있다. 이 또한 모순이다. 언어의 진수를 마스터하지 못한 시인은 있을 수 없다.시세계가 아무리 깊고, 인생체험이 아무리 많고,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을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롭게 구성하여 시로 승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보며 공부해 보자.


설산의 한 귀퉁이

어느 날 딱딱한 옹이 한둘 박히더니

사바 속 기우와는 달리 연일

아침 무렵이면 부드러운 온기라도 된 듯

조용조용 하산을 서두르고

본의 아니게 운명지어진

고사목들이 여전히

근지럼증만 더해가는 뿌리엘랑

약간의 수액을 찍어 바르고서

못내 그리운 곳 바라다보지만

........중략....

까막까치는 왜 저리 깊이 울고

--까막까치 우는 날은 --


따온 시는 <솟대문학 봄호>에 실린 시이다. 이 시에서 시의 구성상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작자는 실망하지 말라. 본인의 시로 공부하니 더 기분 좋게 생각하라.)

 

첫째,<설산의 한 귀퉁이>로 시작된 이 시는 시의 끝부분<왜 저리 깊이 울고>까지 왔을 때까지 말이 계속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이 어느 말이 주어이고 어느 말이 술어에 해당되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시를 쓴 작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문장은 되도록 단문(Simple Sentence)으로 만들어야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가능한 한 단문으로 짧게 끊어 쓰도록 연습해야 한다. 아마도 어느 날 오기 시작한 본인의 육체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느끼지만 사실 나도 이 시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둘째, 이 시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설산. 딱딱한 옹이. 사바. 아침. 부드러운 온기. 하산.운명. 고사목. 근지럼증. 뿌리. 그리움. 우는 까막까치)가 복합적으로 등장해 읽는 사람의 사고(思考)에 혼돈을 주고 있다. 언어끼리 무엇인가 이어 주는 고리가 없다. 읽는 사람이 어느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야 좋을 지도 알 수 없다.그래서 독자는 작자가 무었을 쓰려 했는지 그 의도를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셋째, 참신한 시어(詩語)를 선택하는 데 실패했다. 예를 들어 설산(雪山)이라든가, 불교 용어로<석존이 교화하는 정토인 인간의 속세계>를 의미하는 사바(娑婆) 등 관념어를 남용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장이 딱딱해 한눈에 안 들어 오게 했다는 말이다. 시인들은 이런 경우를 <작자가 그런 어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썼다고 말하기도 한다.

 

넷째, 현장감(Reality)의 결여다. 어떤 이미지의 구체적 현장감이 없다는 말이다. 설산만 해도 그렇다. 설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눈이 내려 이미 덮인 산, 눈이 내리고 있는 산, 그것도 눈이 펑펑 내리는지 아니면 소슬소슬 내리는 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다르다. 시는 보다 구체적으로 써야 감동을 준다. 애매모호하게 써서는 안 된다. 또 전호에 이야기 했듯이 눈이 내리는 상황의 설명도 작자가 이야기 하려는 의도에 맞추어 표현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지금부터 실제로 시 쓰기 연습을 한번 해 보자.


3)시 쓰기의 실제 연습

 

위의 시에서 모태가 되는 <눈 내리는 산>과 <사바세계의 고난>과 연관지어 어떻게 쓸것인가 실제 연습을 한번 해 보자.(나라면 아마 이런 과정을 거처 이렇게 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정도가 아님은 밝혀 둔다. 한 예에 불과하지 결코 이것이 교과서가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어느 겨울, 산에 갔다가 눈보라가 휘날리고 앙상한 가지가 바람에 휘청 이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소위 설산이다. 여름에 새끼를 키우기 위하여 둥지를 틀던 까치집은 비어 있고 산은 을씨년스럽기도 하며 또 외롭기도 할 것이다. 그런 상태가 강렬하여 시로 옮겨 놓고 싶었다 하자. 그러나 눈 내리는 상황만 쓰면 아무리 최상의 표현을 해도 시가 잘 안된다. 그러나 여기에 이야기 하려는 의도를 담으면 시가 꼴을 갖출 수 있다.

 

즉,<사바세계>의 한 단면이나 필자가 표현하고 싶은 말을 <눈 내리는 상황>에 오버 랩시키면 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부터 시인의 상상력과 지성이 작용할 때다. 그 상상은 시인에 따라 아주 다를 수가 있다. 실연한 사람이라면 <나를 버리고 떠난 쌀쌀한 연인>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에 따라 시각은 크게 다를 수 있다.바로 그 시각의 차이가 시인의 철학과 능력의 차이이며 시인 각자의 시 세계 차이다. 시인 이 보는 시각에 따라 상황 전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위의 경우 상상과 사고의 한 예를 보자.

지금 눈이 내리는 산은 한여름 동안 잎이 무성하던 초록의 산이 아니다. 까치며 매미들이 찾아 들던 푸른 산이 아니다. 지금은 이미 모두 떠나 삭막한 모습이다. 마치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를 열심히 키우던 젊고 푸른 날이 있었지만 이제 자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 외로움에 떨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은가. 아무도 돌보지 않아 버려진채 이제는 죽음이나 기다리는 외로운 할머니를 연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눈 내리는 이 산의 황량함을 외로운 할머니의 쓸쓸함과 대비 시켜 우리들이 자칫 잊고 있을 지도 모르는 노인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를 만들면 되지 않겠나. 여기 까지 만이라도 생각이 미치면 이제 그런 방향으로 시가 구체화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시 쓰기로 들어가자. 우선 현장감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라도 부러뜨릴 듯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것을 되도록 강렬하고 어떤 느낌이 오도록 그려 보자.


바람이 사정없이 산등성이로 윙윙 분다

나뭇가지가 꺾일 듯 분다

눈보라가 치는 을씨년스러운 산


이렇게 써 보았다. 말은 되지만 맥이 없다. 표현이 아니고 그저 설명이 되었다. 이러면 시가 되지 않는다. 표현법이 잘못된 것이다.(표현법에 관한 설명은 추후 다시 하겠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해 보았다.(거듭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예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바람이 산등성이를 달린다

휘파람을 불며 눈을 몰고 달린다

빈 까치집에 숨으려는 눈마저

사정없이 끌어내며 달린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어떤가. 눈보라가 심하게 부는 <설산>이 현장감이 있게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바람이 산등성이에 부는 것이 아니라 <달린다>고 표현했으며,그것도 휘파람을 불며, 눈을 <몰고> 달린다고 했다. 빈 까치집에 숨으려는 눈마저 사정없이 <끌어내며> 달린다고 표현했다. 설산 중에서도 눈보라가 날리는 차디찬 산이 그런대로 표현은 된 셈이다. 그렇다고 시가 되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이제 <사바세계>의 이야기 중 보다 구체적인 <외로운 할머니>를 헐벗은 나무로 비유해 보기로 하자. 쓰고 싶은 의도로 끌고 가는 것이다. 비유할 나무는 무엇이라도 좋다. 상수리나무나 참나무도 좋다. 발음이 그럴싸한 자작나무로 선택해 보자. 그러면 이

런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다.


바람에 못이긴 자작나무도

어느 양로원의 할머니처럼

서로의 가지를 부벼 보지만

마른기침 쿨럭이는

할머니의 어깨 같은 가지는

그만 찬바람에 꺾인다.


그러고 보면 위의 바람 부는 표현은 결국 어느 양로원의 외로운 할머니를 표현하기 위한 형용사 역할을 한 셈이다. 바로 이점이 중요한 것이다.<시인이 보고 느끼는 어떤 상황이 아무리 감격적이라 해도 그 상황 표현이 어떤 의미를 담기 위한 형용사적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시가 강렬해 진다.>그리고 읽는 사람에게 어떤 느낌이나 감흥을 줄 수 있다.이제는 할머니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나무에 비유하면 족하다. 독자도 다음엔 무슨 말이 이어질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잎이 무성하던 날

까치가 둥지를 틀면

우리의 가슴에 새끼를 품듯

그렇게 숨을 멈추던 자작나무

때로는 나뭇잎이 만든 그늘에

매미라도 숨어들면

바람에 서걱이는 나뭇잎 달래며

소리에 취하던 자작나무


이 부분의 표현법도 주의해 보기 바란다. 즉, 우리 부모 세대들이 우리를 키울 때 그렇게 했다는 표현을 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면 시의 결론은 이미 유출된 것이다.


바람에 채이면서

먼 하늘 바라보는 할머니

내세를 믿듯 봄을 그린다


이제 보자. 눈보라가 휘날리며 바람이 부는 상태라든가, 여름날 까치 이야기는 우리<사바세계>의 노인 이야기를 위한 시 전개의 한 부분일 뿐이다. 고심하며 눈 내리는 <설산>을 그리는 것이나 눈보라에 떨고 있는 <자작나무>등 모든 자연 상태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 한 것은 그저 외로운 노인을 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4) 시어 선택의 중요성

 

결론을 내리자. 감정의 표현이나 사상(思想)의 문제가 아니라 <시를 위한 재편성 작업>을 보다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 호에 이야기했듯이 작자가 이야기하려는 의도대로 쉽게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제 위의 시를 행 가름 하고 제목을 붙여 보자.


겨울, 자작나무


바람이 산등성이를 달린다

휘파람을 불며 눈을 몰고 달린다

빈 까치집에 숨으려는 눈마저

사정없이 끌어내며 달린다

바람에 못이긴 자작나무도

어느 양로원의 할머니처럼

서로의 가지를 부벼 보지만

마른기침 쿨럭이는

할머니의 어깨 같은 가지는

그만 찬바람에 꺾인다

잎이 무성하던 날

까치가 둥지를 틀면

우리의 가슴에 새끼를 품듯

그렇게 숨을 멈추던 자작나무

때로는 나뭇잎이 만든 그늘에

매미라도 숨어들면

바람에 서걱이는 나뭇잎 달래며

소리에 취하던 자작나무

바람에 채이면서

먼 하늘 바라보는 할머니

내세를 믿듯 봄을 그린다


시의 꼴이 된 듯싶다. 행을 두 행으로 갈라 보았다. 왜 그곳에서 갈랐는가를 독자는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라. 제목도<겨울, 자작나무>라고 해 보았다. 왜 <겨울> 다음에 <,>를 찍고<자작나무>라 했는지 생각해 보라.독자가 다른 제목을 붙이고 싶으면 붙여 보라. 행도 다시 갈라 보면서 어떤 느낌이 오나 보라. 표현도 다른 좋은 표현이 있다고 생각되면 다시 해 보라. 눈 내리는 산을 다른 시각에서 다른 각도로 보고 다른 시를 한번 지어 보라. 그와 같은 발상과 사고로 시를 공부해 보라.

 

다른 예를 보자.

..........

내 생애 열 번의 절망이 있었다면

열 번의 희망 또한 있었을 것이다

푸른 흑백필름 같이 해는 설핏 지고

머지않아 플랫폼으로 서울행 기차가

도착할 것이다

나 이제 돌아가서

눈 오는 서울 거리를 걸으며 말하리라

나에게 열한 번째의 희망이 있다고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웠다고

........

-- 황인철<여행은 끝나고>의 일부--


따온 시 역시 <솟대문학 봄호>의 초대시에서 뽑은 것이다. 이 시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를 보자. 우리가 일상생활에 흔히 사용하는 말로 굳이 어려운 시어를 구사하려는 흔적이 없다. 이 점을 주의해 보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시를 돋보이려고 어떤 형용사나 수식어도 쓰지 않았다는 데도 주의를 기울여 보라.

 

그럼에도 시인은 <내 생애 열 번의 절망>과 그 다음 <열 번의 희망>이라는 평이한 말을 대조(對照:Contrast)시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삶에 끝없이 반복되는 <좌절과 재기>를 생동감이 있게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 <열한 번 째>라는 표현으로 반전시키며 <누군가 그리웠다>고 아픔을 노래했다.

사실 희망이니 절망이니 하는 표현은 관념적이라 하여 시를 좀 쓴다는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 관념어도 이렇게 배치하고 보니 이미 여기에서는 희망이니 절망이란 말이 관념어가 아닌 셈이 되었다. 즉, 언어를 어느 때 어디에 적절히 배치하며 어떻게 쓰느냐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가 지는데 <푸른 흑백 필름같이 설핏>진다는 표현을 대하니 어떤가. 이렇게 참신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감성을 키워야 한다.

또 이 시가 짧은 단문으로 처리되어 있는 점을 주목하기 바란다. 함축된 의미를 되도록 짧게 끊어 쓸 때 읽는 사람이 바로 시 속에 숨겨진 내재율을 쉽게 느끼고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시인이 노래하려는 이미지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시는 바로 이

렇게 써야 한다.

 

작자는 이미 기성 문단에 얼굴을 내민 사람이고 상당한 수준의 시 공부를 한 사람이니 이제 시 공부를 하는 독자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를 읽는 사람이 작자가 의도하는 바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잘 구성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서 예

문으로 든다. 한 주제를 끌고 나가며 논리성 있게 구성한 수법도 뛰어 나다.

 

이런 점을 유의하여 독자들이 그동안 썼던 시들을 다시 한번 수정해 보기 바란다. 시인이 넘쳐흐르는 현실이지만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다만 훌륭한 시인이 되기 위해 처음 이야기한 삼다(三多)를 잊지 말고 이행하길 바란다. 끝으로 문 덕수 선생님의 말씀을 옮긴다.<문학은 평생을 하는 것. 게으르지도 서두르지도 말라.> (*)

 

 

 

제3장 시 표현법의 중요성


1) 시는 표현이다


흔히 '시는 표현'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방법으로 수사(修辭)하여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훌륭한 시인은 적절한 수사법을 동원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대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의외로 산문을 풀어 놓거나 줄 바꿈이나 한 듯한 시를 쓰는 사람을 자주 대하게 된다. 특히 요즈음 산문시가 마치 유행처럼 되어 글들을 풀어 놓은 경우도 자주 본다. 그러나 산문시도 어디까지나 산문의 형태를 보였을 뿐, 형식이나 내용은 설명이 아니고 표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생각을 노래하더라도 내용도 내용이지만 시로서의 함축성과 표현이 있어야 한다. 예를 보자.

 

......신작로에는 옛날처럼 달맞이꽃이 와악 울고 싶도록 피었습니다. 길 잃은 고추잠자리가 한 마리 무릎을 접고 앉았다가 이내 별들이 묻어 올만큼 높이 치솟았습니다.........(하 략)


--함동선의 <눈감으면 보이는 어머니>중 일부--

 

따 온 시는 함동선 시인의 최근 시집 중 한 부분이다. 상당히 긴 산문시이다. 어머니를 북에 남기고 온 시인이 유년시절을 그리며 <길가의 달맞이꽃과 하늘로 나르는 고추잠자리>를 표현한 대목이다. 달맞이꽃이 <와악 울고 싶도록>피었고 고추잠자리가

<무릎을 접고> 앉았다가 <별들이 묻어올 만큼>높이 날랐다는 표현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또 보자.

 

내 곁에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앉는다 향수(香水)보다 진한 속초나

군산 부둣가의 비린내와 묵은 땟자국 같은 내 백목가루 냄새가 어울려

한동안 부부처럼 앉는다 같은 버스 같은 속도 같은 소음 속에서 흔들

린다..........(하략)


-- 문덕수의 <운명> 중 첫연 --

 

문덕수 시인의 최근 시집 중 <운명>이란 제목의 시이다. 서로 모르는 다른 사람이 생선내와 백묵 가루 냄새가 <한동안 부부처럼 앉는다>라는 대조적 표현은 어떠한가. 산문시도 이렇게 훌륭한 표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다운 시가 되는 법이다. 시 표현이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자유시라고 하더라도 시는 화려하게 장식된 산문이 아니다. 아름다운 말을 줄만 끊어 놓는다고 시가 될 수는 없다.


2)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시란 어떤 면에서 보면 사물을 인식하고 사물의 모습을 들어내는 것이다. 만일 시인이 산을 노래한다고 보자. 어떤 시인은 산의 빛깔에 초점을 맞출 테고, 어떤 시인은 꽃이라든가 나무를 노래할 것이다. 또 어떤 시인은 산에 숨겨진 문화를, 또는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에로티즘을 노래할 수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인 개인의 특성이다. 그러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던 간에 그 표현은 공감과 아름다움, 더 나아가서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사물을 어떻게 들어내야 하는가를 보자. 우선 다음 방법으로 시 쓰기를 전개시켜 보라.


첫째, 눈에 보이는 것이나 또는 어떤 관념을 그대로 그려 본다.

둘째, 눈에 보이는 것의 의미를 캐면서 그려 본다.

셋째,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려 본다.

예문을 보면서 검토해 보자.


예문 1>

.그녀의 눈은 아름답다.

.그 아이는 예뿐 옷을 입고 있다.

.산이 매우 푸르다.

.산마을에 비가 내린다

.한 겨울 집 모퉁이 양지 바른 곳

.파란 강물이 흐르는데


예문 2>

.그녀의 눈은 밤하늘의 별 같다.

.그녀는 얼음 같다.

.바람은 피리 소리를 내며 산등성이를 달린다

.강낭콩보다 더 푸른 물결 위에

.장독대 옆에 쪼그리고 앉은 앵두나무


예문 3>

.그녀의 눈은 터널 같다.

.예리한 강이 흐른다.

.하루에 한 마리씩 죽음을 먹어 치운다

.서슬 시퍼런 절벽을 기어올랐습니다.

.음성은 전염병처럼 나를 엄습하고

.조니 워커처럼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예문 1의 문장은 단지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든가, 산이 <푸르다>든가, 산마을에 비가 <내린다>는 등 어떤 상태나 사물을 그저 그려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예문 2의 문장은 그녀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아름답다든가, 그녀가 <얼음처럼> 차다든가, 산등성이에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피리 소리>를 내며 <달린다>든가 물결이 <강낭콩보다 더>푸르고, 앵두나무가 장독대 옆에 <쪼그리고> 있다는 직유 또는 은유적인 방법을 동원해표현한 것이다.

반면 예문 3의 표현은 그 비유나 상상이 지나쳐 무었을 이야기하려 했는지 이해가 잘 안되는 표현의 예이다. 읽는 사람이 왜 <눈이 터널 같다>고 표현했는지 어찌하여 강을 <예리하다>고 했는지, 왜 하루에 죽음을 <한 마리씩 먹는다>고 했는지, 절벽은 과연 <서슬 시퍼런> 것인지, 어찌하여 음성이 <전염병처럼> 엄습한다고 생각하는지, 조니 워커는 꼭 누군가를 <기쁘게만>하는지 아리송하다.

즉, 예문 1 의 것은 사물을 그대로 풀어 놓은 것이고, 예문2 의 것은 상상력이 작용한 문장이다. 그러나 예문 3의 것은 상상력은 작용했지만 그 비유나 상상이 지극히 객관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비약되어 독자가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줄 수 없는 표현이다. 혹자는 그것이 상징적인 표현법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또는 일상의 규칙이나 관념을 파괴한 표현법이라고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 규칙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규칙을 알고 있는 사람뿐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시의 표현도 최소한의 규칙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규칙을 파괴하고 싶을 때도 어떤 한계를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시란 말장난이 아니다. 또 시란 있는 것 또는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물이나 생각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나 매력 또는 아름다움을 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위의 표현 중 예문 1과 2가 다름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고, 3의 것이 왜 잘못된 표현인가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문 2의 표현과 같이 상상력이 작용한 표현에 관한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문 1같은 표현법을 시에서 쓸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시어로써 그 맛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때때로 유능한 시인들이 예문 1과 같은 단순 사실의 나열로

깊은 뜻을 숨긴 좋은 시를 쓰는 경우를 종종 대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예문 3과같이 비유가 지나치거나 혹은 말장난 같은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다. 철학 부재라고 비난당할 여지도 있을 뿐더러, 또 그런 표현법은 시의 주제나 앞뒤 문장을 긴밀히 연결시킬 수 있는 고도의 표현 기술이 요구되니 습작기에 있는 사람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의 작품을 읽을 때도 예문1과 2 또는 예문 3의 차이를 알고 읽으면 표현의 섬세함과 그 깊이에 빨리 접근할 수 있다. 대체로 우수한 시인과 그렇지 못한 시인의 평가가 여기서 판가름되기 일쑤다. 왜냐 하면 시의 맛이 2번과 같은 형상화 단계에서 그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표현법에 눈을 뜨고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잘된 표현 몇 가지를 예로 들겠다.

 

우선 예문 1의 표현법으로도 성공한 시의 경우를 보자.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 난다

........

바람보다 먼저 일어 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김수영의 <풀>중에서--

 

담담한 표현이지만 의미는 얼마나 강렬한가. 군사 정권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을 때의 시다. 여기에서의 <풀>은 민중을 의미하며,<바람>은 독재 정권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예문 1과 같은 서술적 표현만으로도 강렬한 내면세계를 보여 주는 시는 이미

수준 이상의 작품이다. 여기 어려운 말이나 이해하기 난삽한 문장이 있나 찾아보라. 논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나 눈여겨보라.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 서정주의 <화사>중에서---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이>라고 했다. 논리의비약이 있는가 보라. 서정주의 시는 시의 리듬에서도 거의 완벽한 셈이다. 자유시라고 리듬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시도 시적 리듬은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산문시라도 음악과 같은 리듬이 있어야 좋은 시라 하겠다.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엘리베이터

자판기 커피 마시고

전화 받다 구내식당

서류 뒤적이다 소주 마시고 지하철

오늘도 바람은 부는데

이웃집 김 대리가

결이 곱던 은행의 김 대리가

교통사고로 이승을 빠져나갔단다.


---이길원의 <두더지> 전문--

 

현대인의 생활을 예문 1과 같은 표현법으로 담담하게 나열했다. 현대인의 나약한 삶과 허무, 그리고 산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그 속에 숨기고 있다. 이처럼 예문 1과 같은 표현법은 그 속에 어떤 철학을 담지 않으면 시로서의

효과가 떨어진다. 평면적인 표현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3) 이미지가 형성되어야


이제 예문 2와 같은 표현법으로 쓴 시의 경우를 보자. 대부분 자주 읽혀지는 좋은 시라고 평가되는 시들이 이런 부류에 들어간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익히고 연습해야 하는 표현법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 중에서-

 

나그네를 <구름에 달 가듯 간다>고 표현하니 어떤 기분이 드나. 이렇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써야 한다. 사실 이와 같은 표현은 단숨에 나오지도 않는다. 시인들은 끊임없이 이와 같은 적절한 표현을 하기 위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선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 뒤쫓는다.


-문덕수의 <선에 관한 소묘> 중에서-

 

선이 <달아 나고> 또<실뱀처럼> 뒤 쫒는다는 표현은 어떤가. 이렇게 상상을 자아낼 수 있도록 표현해야 맛이 나는 법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지고지순의 말을

아직 한번도 똑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눈빛의 반벙어리로

이렇게 짧은 한 세상을 가슴 치듯 살고 있음은

내 입속의 혀가 조금은 짧기 때문이다

내 입속의 혀에 너무 많은 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김용오의 <두 사람에 관한 성찰>전문--

 

입속의 혀가 <짧으며> 입속의 혀에 <많은 때가 묻어 있다>는 표현을 보라. 어떻게 쓸 때 맛이 나는지 생각해 보라.

 

동백꽃 봉우리가 다하지 못한 몸짓

바닷물이 받아서 웅얼거리는 소리


---서정주의<봄추위>중에서---

 

동백꽃 봉우리가 다하지 못한 <몸짓>을 바닷물이 받아서 <웅얼거린다>는 표현은 어떤가.

 

음악은 가슴 깊숙이

날카로운 쟁기를 대고

밭을 갈고 있다


--문효치의 <음악> 중에서--

 

쟁기가 <날카롭다>는 비유에 무리가 있나 보라. 훌륭한 시인은 음악을 표현할 때도 음악이 <깊은 감동을 준다>든가 또는 <아름답다>는 등의 상투적 표현을 하지 않는다.이렇게 <날카로운 쟁기가 밭을 가는 것처럼>가슴을 파고든다고 표현한다.

또 보자. 예문 3의 경우와 흡사하나 공감을 주는 좋은 시를 보자.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 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최승호의 <공장지대>중에서--

 

공업지역에서 무뇌아를 낳은 사실이 사회 문제가 되었을 무렵 쓴 환경시이다.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라고 표현했지 <내 몸은 공장이다>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단어 한자에도 이 처럼 상식적 논리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보면 예문 3과 비슷하다 하겠지만 앞뒤 문장의 연계를 보면 예문 2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듯했다.


- T.S.엘리어트의 <황무지> 중에서-

 

모더니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T.S. 엘리어트의 <황무지>의 첫 연이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며 <겨울이 오히려 따듯했다>는 표현은 어떠한가. 소위 잘 지어졌다는 시들을 보면 예문 2의 경우와 같은 표현이 대부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예문 2와 같은 표현을 많이 익히도록 하라. 또 어떻게 써야 제 맛이 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시를 써 보라. 단 한편을 써도 제대로 된 시를 써라. 좋은 시를 쓰는 솟대 문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빈다.(*)

 

 

 

제4장 리듬의 중요성


1) 시의 음악성


시에도 음악성이 있어야 한다. 20년 전쯤이다. 박 목월선생님이 술좌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시와 음악과 그림은 회로가 같아 시를 좋아하면 음악도 그림도 다 좋아 하지.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시를 좋아해." 사실이다. 시인치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시인이 있던가? 음악성이 있는 시인은 시를 쓸 때도 운율이나 가락에 자연히 리듬을 타게 된다. 그래서 보다 수월하게 읽힌다.우선 자신이 써 놓은 시를 큰소리로 낭송해 보라. 숨이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리듬이 맞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탁하게 읽힌다거나 발음이 어색해지면 이 역시 언어 선택이 잘못된 경우이다

 

다시 말해 시를 쓸 때도 음악성, 즉 리듬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읽을 때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 부드럽게, 운율이 맞도록 써야 맛이 난다. 낭송할 때도 막힘이 없도록, 마치 물 흐르듯 유연하게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요즈음 산문시가 유행이지만 산문시에도 내재율이 있을 것이다. 한국어로 쓴 시만 리듬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영시는 특히 더 그렇다. 우리 시가 글자 수로 리듬을 맞춘 음수율(音數律)과 박자로 리듬을 맞춘 음보율(音步律)로 보듯이 영시도 단어의 구성이나수의 배치로 맞춘다고 보면 된다. 영시의 한 예를 보자.

 

Like as the waves make towards the pebbled shore,

So do our minutes hasten to their end;

Each changing place with that which goes before,

In sequent toil all forwards do contend.

 

조약돌 깔린 해안을 파도가 달리듯

우리의 시간도 종말을 향해 서둔다

앞에 간 것과 서로의 자리를 바꾸며

꼬리이어 뒤쫓으며 앞으로만 간다

 

시간의 흐름을 파도에 비유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형식인 14행시 중 일부이다. 이 시의 어미를 보라. 1행의 shore와 3행의 before. 2행의 end와 4행의 contend를 보라.그리고 1행과 3행, 2행과 4행의 글자 수도 비교해 보라. 영시도 이렇게 읽을 때의 리듬을 중요시했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 시를 읽을 때 발음이 주는 유연성과 단어의 배열이 주는 부드러움을 느낄 것이다. 번역도 리듬을 맞추어 해 보았다.한국어로 쓰인 우리의 시는 영시보다도 더 리듬을 중요시 했다.우리의 전통 가락인

시조는 엄격히 자수를 제한해 가며 함축성 있는 표현을 요구했다. 혹자는 요즈음 현대시에 그런 리듬의 규칙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진정 규칙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규칙을 알고 있는 사람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2) 자유시를 쓰기 전에 정형시의 음률을 익혀라


흔히 7.5조니 8.5조, 4.3.4조, 3.3.4.조니 하며 글자 수를 가지고 음률을 맞추는 것이 낡은 듯 보이나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산문시도 마찬가지이다. 산문시의 긴 문장도 읽을 때 호흡이 막힌다거나 끊김이 있다면 리듬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복잡한 시 리듬의 규칙이나 음악적 박자론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아주 기본적인 규칙은 알고 있어야 한다. 간혹 요즈음 시를 쓰는 사람 중에서 전혀 리듬을 무시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자주 읽혀지는 좋은 시들을 보면 대체로 시적 리듬에 충실했다는 점을 밝혀 두겠다. 미당 서 정주 선생님의 경우만 보아도 전통 음율(7.5조 또는 3.3.4조 4.3.4조 4.4조)에 충실한 시를 쓴다. 그의 <동천>을 예로 보자.

 

내 마음 속 / 우리 님의 / 고운 눈 눈썹

즈문 밤의 / 꿈으로 /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 옴기어 /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 나르는 /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 시늉하며 / 비끼어 가네

 

4.4.5/ 4.3.5/ 4.3.5/ 4.3.5/ 4.4.5 의 전형적인 음수율로 7.5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리 내 읽어 보라. 읽는 데 부드러움을 느낄 것이다.

 

김영랑(1903~1950)의 시도 한번 보자. 아직 시조의 영향을 받던 시대이지만 그도 7.5조 또는 4.4조의 변형된 리듬의 혼합형을 사용했다. 리듬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파격을보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보자.

 

모란이 / 피기 까지는

나는 아즉 / 나의 봄을 / 기둘리고 / 있을테요

모란이 / 뚝 뚝 / 떨어져 / 버린 날

나는 비로소 / 봄을 여윈 / 서름에 / 잠길 테요

5월 어느날 / 그 하로 /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 꽃잎마저 / 시들어 / 버리고는

천지의 / 모란은 / 자최도 / 없어지고

뻗쳐오르든 / 내 보람 / 서운케 / 무너졌느니

모란이 / 지고 말면 / 그 뿐 / 내 한해는 /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 한양 섭섭해 / 우웁내다

모란이 /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 기둘리고 / 있을테요 / 찬란한 / 슬픔의 봄을

 

이 시가 발표될 1934년 당시는 4.4조나 7.5 조에 익숙해 있을 때이니 당시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굳이 이 시를 일부러 한 음보씩< / >을 그으면서 글자 수를 나누어 본 이유는 이 시도 7.5조나 3.3.4 또는 4.3.4

아니면 4.4 조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질 않았다는 점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3행의 <뚝뚝>도 장음이므로 <뚜욱뚝>의 음보로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동주 시인의 경우도 마치 아기가 숨을 쉬듯 조용히 흐르는 특이한 리듬을 볼 수 있다.

그의 시 중<십자가>를 보자.

 

쫒아 오던 / 햿빛인데

지금 교회당 / 꼭대기

십자가에 / 걸리었읍니다


첨탑이 / 저렇게도 / 높은데

어떻게 / 올라갈 수 / 있을까요


종소리도 / 들려오지 /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 서성이다가


괴로웠던/사나이

행복한 /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 드리우고

어두워 가는 / 하늘밑에

조용히 / 흘리겠습니다

 

음보율에 충실한 시다. 정형시 못지않게 자수와 박자에 의한 리듬의 정형화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시에 대한 우리의 리듬은 시조의 가락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긴 산문시의 경우도 4.4 조나 7.5조 또는 3.3.4 조로 마치 시조라도 쓰듯 자수나 박자를 맞춘다면막힘없이 읽히는 시를 쓸 수 있다. 시를 쓸 때 그 의미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읽힐 때의 운율도 생각해야 한다. 좀 더 실례를 들겠다.

 

어지간히 구성진 / 노래 끝에도 / 눈물나지 / 않던 것이 /

문득 머언 / 들판을 / 서성이는 / 구름 그림자에 / 눈물져 / 울 줄이야.


사람들아 / 사람들아./

우리 마음 /그림자는, / 드디어 / 마음에도 / 등을 넘어 / 내려오는 / 눈물이 /

아니란 / 말인가.


---박재삼의<사람들아.사람들아>일부--

 

대부분 잘 읽혀지는 시들의 경우를 보면 이렇게 우리 시조의 가락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7.5조 4.4조 3.3.4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위의 박재삼 시인의 경우처럼 때로는 7.5조였다가, 4.4조 3.3.4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구사했다는

점이다.


3) 시행과 운율


시행 역시 운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통 시행을 <운율적으로 짜여진 줄>이라고 말하는 것도 시행이 운율과 상당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유시나 산문시에는 시행이 운율과 더불어 이미지나 의미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시를 쓰는데 낱말이나 표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그보다 행을 어떻게가르고 몇 행을 모아 1연을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에도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시를 쓰는 데 이런 점이 큰 과제이다. 1행을 한 센텐스로 할 것인가 아니면 2행을 한 센텐스로 하느냐 아니면 3행 혹은 4행이냐 5행이냐에 따라 리듬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한행을 체언으로 끝나게 할 것인가 부사형이나 접속형으로 끝나게 할 것

이냐 하는 문제도 고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보자.

 

늦겨울 / 눈밭에 / 아편꽃과 / 세월을 / 묻어 두겠오

이른 봄쯤, / 아편 술로 / 무루 익어 / 있을 것이오

목발 지닌 / 새들은 / 한 모금씩 / 축이고 / 날아 오르시오


--유영금의<비문>전문--

 

삶과 죽음과 절망을 해체적으로 묘사한 단 3행의 이 시는 3.3.4.3.5의 첫 행과 4.4.4.5 그리고 4.3.4.3.5의 음수의 리듬에 단 3행으로 그 의미를 함축했다. 물론 시인 스스로 리듬을 생각하고 자수를 맞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3행을 한 연으로 묶은 점도 뛰어나다. 이와 같이 리듬을 맞출 때 마치 구성진 노래라도 듣듯 정겨운 법이다.

그렇다고 정형시의 행 구분처럼 틀에 맞추어 넣거나 기계적인 구분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행 구분에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정형시의 틀에서도 변조를 일으켜 생기를 돋우도록 해야 한다. 같은 내용의 표현이지만 행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자에게 주는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다.

예를 하나 보자.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김 소월의 <가는 길> 1연과 2연을 붙여 보았다. 실제의 이별의 갈등이나 현장감이 떨어 지고 맥이 없다. 원본대로 행 구분을 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와 같이 1행을 3행으로 나누어 1연으로 만들어 보았다.7.5조이기는 하나 7.5조의 1행과 7.5조의 3행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7.5조의 3음보격을 1행으로 처리 하는 것은 틀에 맞추는 기계적 처리이므로 완전히 감정을 죽이고 만다. 왜냐하면 7.5조의 3음 보격을 1행으로 배열해 놓고 읽어 보면 리듬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져 실제로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이라는 심리적 갈등과 감정의 기복이 리듬의 속도에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리듬이 시의 행을 구분하는 요인임은 틀림없다. 다시 말하면 음의 수나 박자를 함께 고려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단락을 나눈 셈이다.

 

시인 문덕수(文德守)선생님은 "리듬이 단지 형식적이며 기계적인 음수나 음보의 단위가 아니라 그것이 그대로 감정 또는 시상의 표현"이라고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서 “시에 있어서 리듬이나 음악의 요소는 그 자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사상에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김춘수(金春洙)시인은 시의 행을 "의미의 한 단위 또는 이미지의 한 단락"이라고 말한 바 있다.행이 의미의 한 단위라는 것은 앞에서 예로 본 소월의 시에서도 나타났다.의미의 한 단위라고 하더라도 리듬과 밀착되어 있고 그런 경우에는 리듬의 한 단위가 곧 의미의 한 단위라고 할 수 있다.리듬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의 쟈유시에 와서는 오히려 "의미의 한 단위" 또는"이미지의 한 단락"이라는 쪽에 더 치중해 행을 가르고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쓸 때도 글자 수를 어떻게 배열하고 어디쯤에서 행을 가르고 어느 대목에서 이미지나 또는 의미를 구분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사실 이 과정이 시 쓰기의 상당 부분을 차

지하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4) 그렇다고 규칙에 얽매이지 마라


결론을 내리겠다. 자유시를 쓰기 전에 정형시부터 먼저 써 보는 과정을 밟는 것이 좋다. 앞에서 말했듯이 정형시라면 우리의 시조를 말한다. 시조를 먼저 써 보라는 말은 시조 시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시조가 가지고 있는 정형적 구조를 익혀 형식적 규제를 터득하는 것이 곧, 자유시의 전체적 토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언급한대로 행수를 미리 정해 놓고 자수율, 즉 7.5조니 4.4조 8.5조를 지키면서 시를 써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가령 4.4조 4행시, 7.5조 10행시, 8.5조 5행시, 또는 서양의 소네트 형식인 14행시 같은 것을 써 보는 것이 형식의 훈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음수의 제한과 리듬의 제한 속에 들어가 봄으로써 사상과 감정과 리듬의 조화, 사상 및 감정이 리듬에 미치는 영향, 반대로 리듬이 사상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구조적으로 터득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압축과 생략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압축과 생략은 산문과는 다른 시의 본질적인 부분인데 이런 면은 은유나 상징과 같은 비유에서도 가능하지만 율격에서 받는 형식적인 통제에서도 가능하다. 아무리 사상과 감정이 풍부하더라도 리듬을 지키려고 하면 부득이 리듬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필요 없는 부분은 배제되고 필요한 부분들은 압축 또는 요약되기 마련이다. 즉, 운율의 묘미를 체험함으로써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자유시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자유시를 쓰다 보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행을 나누고, 나눈 행을 모아서 연을 만드는 형식적 구속이 따르는 것이다. 그 때 내재율의 적절한 조화도 요구된다. 자유시라고 해서 리듬에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렇다고 글자의 수나 박자 등에 얽매여 지나치게 리듬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이런 규칙을 알고 흐름에 맞추면 되지 리듬에 얽매여 좋은 시상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규칙을 알고 있으라. 그래야만 과감히 규칙을 깰 수도 있다. 시는 형식적 구속과 그것에 저항하는 정신과의 갈등에서 창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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