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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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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파>>냐?! <<미래파>>냐!?...
2016년 01월 20일 20시 56분  조회:3999  추천:0  작성자: 죽림

詩의 계절,

‘無詩’의 사회…

시인들, 詩를 이야기하다




 
◆ 1=지난 토요일 한 식당 여주인에게 ‘이육사 시인을 아느냐’고 물어봤다. ‘모른다’고 했다. ‘평소 시를 읽느냐’고 물었다. ‘사는 게 지랄맞아 그럴 겨를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되면 시를 읽겠냐’고 되물었다. 그냥 웃었다. ‘만약 손자가 할매를 위해 시를 적어오면 그때는 읽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건 당연히 가슴에 넣고 다녀야지’라고 깔깔댔다. 그 여사장은 시보다 노래가사가 훨씬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여성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노사연의 노래 ‘바램’의 한 구절을 알려주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한 시인 지망생이 지갑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둔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의 한 구절을 읽어준다.

‘(초략)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대뜸 ‘그런 달달한 시는 시도 아니다’며 대구에서 암약(?)하고 있는 김하늘 시인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플로럴 폼이 녹는 시간’이란 시의 초입을 들이민다.

‘73일 동안 내 발목은 라피아로 감겨있었지, 장미 한 송이를 아랫배에 심던 날부터 우리는 서핑 보드 위에서 석류를 핥았지…’

현재 대한민국에는 ‘바램·소주병·플로럴 폼’이 공존한다. 셋은 소통일까, 불통일까?

쉬운 시 군단은 ‘서정시파’,
어려운 시 군단은 ‘미래파’로 불린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시는 무한히 다양해졌다. 일제강점기 김소월의 ‘진달래꽃’, 박목월의 ‘나그네’와 같은 서정시 일색의 세상에도 한국 모더니즘 시학의 도입자로 불리는 김기림 시인은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는 지금 봐도 세련된 ‘나비와 바다’란 시를 적었다. 그때 1934년 발표된 국내에서 가장 난해한 시로 평가받는 이상의 ‘오감도’도 공존했다.


◆ 2=이제 한국에선 시보다 시인이 더 세다. 시가 시인한테 휘둘린다. 대구에만 대구문협, 대구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에 가입된 시인이 700여명. 비회원까지 합치면 1천명이 넘을 것 같다. 1950년대 중반 대구의 인구는 65만여명. 시인은 고작 30여명. 60년 사이에 30배 이상 폭증했다. 시인의 양적팽창, 하지만 시문학은 질적하락 중이란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애독자로 남아 있어도 될 감성파 시민들이 창작대중화에 편승, 너도나도 시인으로 양산된 것. 독자가 시인이 된 탓일까. 도무지 남의 시집을 사 읽지 않는다. 시집은 사는 게 아니고 ‘선물로 받는 것’으로 통용된 지 오래다.

일제도 가고 독재도 사라졌다. 국부(國父)·지사·혁명가적 시인도 필요치 않단다. 거대담론·시대정신 부재의 틈으로 ‘인터넷 디지털공화국’이 스며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시정신은 갈수록 세속화돼 ‘취향’ 수준으로 퇴락해버렸다. 시 아니라도 감동 주는 게 지천으로 깔렸다.



* 3=매년 11월1일은 ‘시와 시인의 날’. 1908년 이날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시(신체시)로 일컬어지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소년’지에 발표한 것을 기념하여 87년 처음 정해졌다. 107년 역사의 한국 현대시. 숱한 시인이 명멸했다.



◆4=예전엔 독자가 ‘별(시인)’을 뒤에서 빛내주었다. 그래서 독자까지 빛났다. 어느 날부터 그 독자도 나도 시인이라며 대거 별이 되었다. 이제 모두 별이다. 독자가 사라진 하늘(시단), 별은 더이상 빛이 없다. 새 독자는 없고 새 시인뿐이다. 시인만의 시행사만 난무한다. 독자로 남는게 더 행복했을 ‘무늬만 시인’들은 ‘8학군 시인’들로부터 한없이 멸시당하고 있다. 시인들끼리 잔치일뿐 일상은 시와 무관하게 돌아간다. 집나간 한 명의 독자가 시인보다 그리운 시절이다. 무시(無詩)의 시대, 무시(無視)의 시대다.

이제 그 무시의 틈속으로 들어가 볼 때가 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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