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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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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대지이미지
2016년 03월 12일 03시 03분  조회:4024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시환의 시법 : 부드럽게 생동하는 이미지들

-③대지 이미지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거나 산 정상에 서 있으면 바람의 노래가 들린다. 바람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발 아래 땅으로 불어온다. 땅은 바람이 실어준 씨앗들을 품속에 품고 싹을 틔운다. 봄에 발아한 싹들이 대지의 흙을 뚫고 올라와서 뾰족한 싹을 내민다. 연초록색이거나 흰색의 싹은 떡잎과 대궁이로 이루어져 있다. 대지의 알맞은 온도와 습도, 양분을 먹고 그렇게 싹을 틔웠다. 땅은 어머니의 품이요,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곳이다. 인간이 흙에서 온 것처럼 식물들은 흙속에서 자란다. 꽃과 과일, 나무들이 뿌리를 박고 서있는 땅은 생명을 품은 하나의 둥글고 큰 자궁이다. 이 식물들 사이에 동물들은 은신처를 마련하거나 그것을 뜯어먹으며 살고 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관계 속에서 공존한다. 하늘에는 나는 새들이 있다. 이 새들은 나무나 풀숲에 둥지를 튼다. 천지창조의 사흗날에 지어진 땅은 태초의 조상 아담으로 인해 저주를 받는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기 3:17-19) 그 신의 저주는 아담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어야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노동의 고역을 말한다. 그러니 인간에게는 곡식을 얻기 위해 땅에 돋아나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시름해야 하는 고통이 뒤따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인간에게 먹이가 되는 풀과 그것을 방해하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대결은 인간 노동의 역사이다. 그렇게 살다가 인간은 결국 대지의 품에 안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인 하와/에바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니 대지는 어머니이며 여성이다. 여성의 자궁이 생명을 잉태하는 집이듯이 대지는 인간과 동식물의 집이다. 이것이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대지와 인간의 관계이다. 이 땅에서 나는 소출을 신께 바치고 제사 드리는 관습이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대지를 매개로 한 인간과 신의 관계는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가진다.

환경(environment)이 문명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 개념이라면 생태(ecology)는 어른스트 헥켈(Ernst Heinrich Haeckel, 1834-1919:독일의 생물학자)에게는 자연의 동물, 물, 구름, 바람 등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는가의 문제였다. 그는 정신과 물질의 일원론의 입장에서 생태학을 시작하였으며 유물론적인 경향이 강하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진화의 최초의 무구조 원형질괴인 모네라의 고안이나 진화의 계통도를 그린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의 주장은 성경적 천지창조와는 반대되며 진화론의 입장에 서 있고 우주만물을 하나의 유기체로서 보고 있다. ecology가 환경을 보호하는데 관심을 가진 정치적 행위라면 Ecology는 지켜야 할 큰 집으로서의 지구를 의미한다. 한편 표층생태학(Shallow Ecology)은 환경보호, 환경개발, 환경공학 등 인간 중심의 환경인 반면에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은 인간 중심이 아닌 생물 중심이며 삼라만상주의를 표방하면서 여기에는 인간도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생물로 파악하고 있다. 대지를 이루고 있는 지구, 자연, 동식물, 물, 구름, 바람에 대한 생태학자들의 견해들도 있지만 이시환 시인은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헥켈의 입장과 유사하며 인간을 비롯한 자연의 동식물, 물, 구름 , 바람 등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생멸을 거듭하면서 유기 순환하는 존재이며, 만상동귀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이시환 시인에게 삼라만상은 묵언의 대화자이다. 그러니 그가 벌판이나 들판과 광야와 사막에 서 있을지라도 이 모든 것들과 친밀하다. 거기에 있는 바위나 돌, 동식물들과도 친밀하다. 가톨릭의 성 프란체스코처럼 빚어진 모든 것과 대화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상화하기보다 그것들을 하나의 존재자로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시인의 자세는 그의 시에서 대지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미지는 하나의 큰 연쇄고리를 가지며, 이시환의 시에서 이들 이미지들의 집합체인 이미저리를 이루는 내용은 산, 벌판, 들판, 광야, 사막 등으로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다. 먼저, 대지에 솟아오른 「山」을 읽어보자.

 

손끝에 와 닿는 당신의 두 개의 젖꼭지. 그 꼭지와 꼭지 사이의 폭과 골이 당신의 비밀을 말해주지만 가늠할 수 없는 그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사내들의 곤두박질. 그 때마다 제 목을 뽑아 뿌리는 치마폭 사이의 선붉은 꽃잎 골골이 깔리고 누워 잠든 바람마저 눈을 뜨면 이 내 가슴 속, 속살을 비집고 우뚝 솟은 산 하나. 그 허리춤에선 스멀스멀 풍문처럼 안개만 피어오르고.

-「山」전문,『안암동日記』에서

 

시인의 눈은 산의 모습을 두러누워 있는 여성의 이미지와 겹치고 있다. 산봉우리를 여성의 젖가슴에 비유하였고, 그런 산이 남성들이 탐하는 곳이기도 하나 어느 새 산은 시적 화자의 가슴 속에 우뚝 솟은 산으로 병치되고 있다. 산의 두 골짜기는 당신이 지니고 있는 비밀의 샘일 터 그 깊은 생명의 뿌리에로 뭇 사내들이 곤두박질한다. 그러면 산의 치마폭 사이로 선붉은 꽃잎을 뿌린다. 산인 당신의 환희의 감탄이 메아리치면 잠자고 있던 바람이 잠을 깬다. 그 때 나의 가슴 속에도 우뚝 산 하나가 솟아오른다. 그러므로 나와 당신으로 관계 맺은 산과 시적화자 나는 연인의 관계가 되고 이 관계는 뭇 사내들처럼 육적이거나 탐욕적이지 않은 영적인 관계의 연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산과 뭇사내들/나와 산의 두 관계가 겹쳐지고 있다. 전자의 관계가 감각적이고 육신의 관계라면 후자의 관계는 본질적이며 영적인 관계이다. 전자는 색슈얼리티의 표현이며 후자는 영적인 교감일 것이다. 그러니 나와 산의 관계는 하나의 풍문처럼 안개 속에 가려진 내밀한 관계인 것이다. 산은 그러니 여인이며 어머니이다. 시적 화자인 나와 뭇사내들을 깃들게 하는 품이며 어머니이다. 이는 한 여성이 여성과 어머니의 두 역할을 동시에 지니듯이 대지의 우뚝 솟은 산이 지니는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 「내 가슴 속의 산」에는 시적 화자인 나의 고통을 품어주는 당신으로 표현되어서 『안암동日記』의 「山」과는 다른, 보다 내적이며 영적인 존재로서의 산으로 변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심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멀리 땅을 굽어보다가 굽어보다가

문득 문득 줄달음쳐 가는 곳이 있네.

 

시를 쓰다가 되려

마음 혼란스러워질 때,

사람 사이 믿음이 깨어지고

세상사 더욱 어지러워질 때,

내 허파가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며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문득 문득 줄달음쳐 가는 곳이 있네.

 

그런 나를 안아 주며

그런 너를 품어 주며

늘 그 자리 그 빛깔로 서 있는

우람한 당신이 내 안에 있네.

 

무심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멀리 땅을 굽어보다가 굽어보다가

문득 문득 줄달음쳐 가는 산 중의 산

세상 침묵을 품어 안고 사는

네가 내 안에 있네.

 

-「내 가슴 속의 산」전문,『상선암 가는 길』에서

 

이 시에서 산은 여성이미지에서 탈피 되어 ‘우람한’ 남성이미지로 변화되어 있다. 너로 불리는 산은 내가 시쓰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믿음이 깨어질 때, 세상사 어지러울 때에 허파가 썩는 고통을 겪어 견딜 수 없을 때 피신처인 그곳으로 줄달음 쳐서 그 품에 안긴다. 너는 고통 중에 있는 나와 너, 우리를 품어주는 너이다. 그런 너는 나의 가슴에 고요히 존재한다. 고요는 바로 『상선암 가는 길』의 내적 여정과 묵상과 관상의 자세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이시환의 아포리즘에서 밝히듯이 ‘나의 경전은 내가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저 산이다’와 같다. 산은 묵언의 경전이다. 그런 산은 생명력을 지닌다. 침묵 속에 움직인다. 정중동(靜中動)의 산은 곧 내 마음의 지속적인 동적 움직임이다. 이 동적 움직임은 침묵과 고요 중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의 시적 작업이 묵상이나 관상, 구도 여정으로 이어지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張家界를 빠져나오며」에는 이 정중동의 이미지를 장가계의 돌산 숲으로 표현하고 있다.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듯/바다가 솟아올라/깊고 깊은 산이 되었는가//실로 오랜 세월,/안개에 가리우고 구름에 덮이어서/알몸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던 네가,//오늘은 비로소 한 마리 거대한 地鬼가 되어/꼬리는 깊은 산정호수에 두고,/머리는 구름 밖으로 내민 채 꿈틀대는구나.//나는 분명 그런 너를 보았으나/보지 아니한 것으로 하리라./가슴 속에 다 묻어두고 내가 죽는 날까지/침묵을, 침묵을 지키리라.//내 입을 여는 순간,/네가, 네가 굳어버린 돌산 숲이 될까/두렵기 때문이리라.

 

-「張家界를 빠져나오며」전문,『백년완주를 마시며』에서

 

여행지 중국의 장가계에서 돌산의 숲으로 이루어진 그 모습을 한 마리 지귀가 오랜 세월 정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비로소 한 마리의 거대한 지귀로 꿈틀대는 형상으로 활유법을 써서 표현한 이 시는 실로 장엄한 자연의 정적인 산을 동적으로 바꾸어 놓고[置換]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그 꿈틀대는 지귀를 보지 않았다고 침묵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시적 화자가 입을 여는 순간 돌산으로 굳어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실제 돌산 숲으로 존재하는 장가계의 모습을 꿈틀대는 지귀로 보고 있지만 굳어버린 돌산 숲의 그 침묵에 초점을 두고 시인은 트릭을 쓴 것이리라. 마지막연의 트릭이 돋보이는 시이다. 돌산 숲의 침묵이 지귀로 꿈틀대는 것은 침묵의 정중동을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대지에 우뚝 솟아 늘 말없이 서 있는 산은 움직임이 없어 보이나 오랜 시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으로서의 산이 지니는 침묵을 노래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대지의 첨탑인 산과 산 아래 넓게 동서남북으로 내달리는 광야, 벌판, 들판은 이시환 시에서 메마르고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 푸른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곳, 절망 속의 침몰하는 세상을 일으켜 세우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오늘같이 할 일 없는 날엔/예술의 전당 대신 마른 겨울들판으로 가자./오늘같이 무료한 날엔/사람소리 들리지 않는 허허벌판으로 가자./눈발이 비치는가 싶더니/빗방울이 어깨를 적시고,/빗방울이 눈썹을 적시는가 싶더니/싸락눈이 머리를 희끗하게 덮는/그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가자./그곳 마른 풀섶 더미 위로,/그곳 쌓인 낙엽 위로,/그곳 내가 걷는 길의 고적함 속으로/저들이 곤두박질치며 부려놓은,/짧은 한 악장의 장중한 화음을 들어보시라./저들끼리 밀고 당기고, 질질 끌고 잡아채며,/점점 세게, 아주 여리게, 사라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소생하는,/허허벌판에 부려지는 화음이 범상치가 않구나./죽어가는 한 세상을 부여잡고/그리 통곡을 하는 것이냐?/이 들판 저 산천에/푸른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냐?/싸락눈이 섞여 내리는 겨울비가/부려놓은, 오늘의 짧은 한 악장의 화음이/절뚝이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네./침몰하는 세상을 다시 붙들어 일으키네.

 

-「겨울비」, 『백년완주를 마시며』에서

 

김준오는『시론』에서 이미지를 ‘관념과 사물이 만나는 곳이며, 관념의 육화’라고 하였다. 그리고 상상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이미지들을 결합시키는 심상형성기관(image-maker)으로서 표현론에서 비평개념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문학적 용법으로서 이미지의 정의를 한 편의 시나 기타 문학작품 속에서 감각․지각의 모든 대상과 특질, 협의의 의미로 시각적 대상과 장면의 요소, 가장 일반적으로 비유적 언어(figurative language), 특히 은유와 직유의 보조관념을 의미한다고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이미지는 시의 본질적 구성요소로서 시의 의미와 구조와 효과를 분석하는 중요한 시법이며, 의미 전달기능에 있어서 관념의 육화이다. 이시환의 「겨울비」는 예술의 전당과 겨울들판이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인위적인 예술을 꿈꾸기보다 자연의 겨울들판에서 그는 장중한 연주를 듣는다. 그 연주는 대중의 구미에 맞추어 돈에 팔리어 소비되며 일회성을 가진 예술이 아니라 영속적이며 대지의 소리이며 연주이다. 그러니 대중의 구미에 맞추어 돈으로 팔리거나 소비되지 않는다. 거래되지 않지만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생명력은 죽어가는 한 세상을 부여잡으며 통곡을 하기도 하고 푸른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거나 절뚝이는 자신과 침몰하는 세상을 다시 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대지가 지니는 생명력에서 온다. 이 시에서 대지의 벌판은 소생의 공간이다. 그것은 대지에 나리는 눈발과 빗방울, 싸락눈, 젖은 풀잎과 쌓인 낙엽이다. 예술의 전당식 예술을 거부하는 그의 관념에 콘트라스트의 반대급부에는 생명의 대지가 이미지를 입고 꿈틀댄다. 그는 벌판에서 서서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생명체들과 자연물의 생멸 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분다./얼어붙은 밤하늘에 별들을 쏟아 놓으며/바람이 분다./더러 언 땅에 뿌리내린/크고 작은 생명의 꽃들을 쓸어 가면서도/바람이 분다./그리 바람이 부는 동안은/돌에서도 온갖 꽃들이 피었다 진다./바람이 분다./내 가슴 속 깊은 하늘에도 별들이 총총 박혀 있고,/내 가슴 속 황량한 벌판에도/줄지은 풀꽃들이 눈물을 달고 있다./바람이 분다.

 

-「벌판에 서서」, 『바람 소리에 귀를 묻고』에서

 

바람은 대지를 감돌아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불어온다. 이 바람으로 대지는 생물들을 키운다. 생명력을 지니게 하는 이 바람과 대지는 서로 공조한다. 그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가슴 속에 황량한 벌판을 바라본다. 이 황량한 벌판에는 줄지어 피어있는 꽃들이 눈물을 가득 달고 있다. 그의 심상 풍경은 슬픔으로 젖어있다. 이 대지와 바람이 시인의 슬픔을 어떻게 생명력을 지닌 삶으로 다시 소생 시켜줄 것인가.

그러나 벌판과 들판은 시인의 고통스런 내면을 치유시켜준다. 대지의 인간이 신의 노여움으로 대지의 저주를 받았다. 그 저주는 대지에 끊임없이 나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상징되고 있다. 인간이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싸워야 한다는 의미는 삶에는 그것을 극복하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대지의 저주는 인간에게 삶의 고역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삶은 고해(苦海)라고 하듯이 인간은 대지에서 땅을 부쳐 먹고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역에 시달린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 인간은 그 운명에 지지만은 않는다. 인간이 그 대지의 품에 안김으로써 대지의 저주라는 신의 옹박([呪縛(주박)]으로부터 해방의 길을 모색한다. 시인 이시환이 지닌 고통은 그만이 겪는 것이 아니다. 이 지상에 살아가는, 대지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 모두의 고통이다. 그러니 그는 그런 고통 속에 있는 자들에게 그 고통으로부터의 놓여나는 방법을 다시 대지에서 찾았다. 대지의 품에 안기는 것,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고해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며 그 길에 대지와 자연, 삼라만상이 함께 해준다. 이시환의 대지의 이미지는 그의 이와 같은 관념의 세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묵상과 관상의 관념적 세계를 삼라만상을 통하여 시각적인 이미지로 바꾸어낸 산물이다. 비움의 여정은 사막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고, 사막은 대지가 지닌 극복의 땅이다. 사막은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곳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극한의 땅이고 거기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정화하고 비우는 여정을 걷는다. 시인은 이런 여정을 사막의 이미지를 통하여 그의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일 년 삼백 육십오 일 내내/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이곳에/서 있는 산은 서 있는 채로/누워 있는 돌은 누운 채로/깨어지며 부서지며/모래알이 되어가는/숨 막히는 이곳에/아지랑이 피어오르고/간간이 바람 불어/모래알 날리며/뜨거운 햇살 내려 쌓이네./수수만 년 전부터/그리 실려 가고/그리 실려 온/바람도 쌓이고/적막도 쌓이고/ 별빛도 쌓여서/웅장한 성城 가운데/성을 이루고/화려한 궁전 가운데/궁전을 지었네그려./나는/그 성에 갇혀/깨끗한 모래알로/긴 머릴 감고,/나는/그 궁전에 갇혀/순결한 모래알로/구석구석 알몸을 씻네./검은 돌은/검은 모래 만들고/붉은 돌은/붉은 모래 만들고/흰 돌은/흰 모래를 만들어내는/이곳 단단한/시간에 갇혀/나는 미라가 되고/이곳 차디찬/적막에 갇혀/그조차 무너지고 부서지며/마침내/진토(塵土) 되어/가볍게 바람에 쓸려가고/가볍게 별빛에 밀려오네.

 

-「사하라 사막에 서서」, 『몽산포 밤바다』에서

 

하나의 돌멩이가 비바람에 부서져 모래알에 되어 구르듯이 시인은 단단한 시간에 갇혀 미라가 된다. 그 미라가 무너지고 부서진다. 그 전에 시인은 순결하고 깨끗한 모래알로 머리를 감고 알몸을 씻는다. 이것은 자기 정화의식이며 이 정화의식 후에 미이라가 되는 것이니 자기 순장의식이다. 여기에서 궁전이란 사막 한 가운데 세워진 영혼의 궁전일 것이다. 이 궁전 속에서 시인은 자기 정화를 거친 순장의식을 한다. 그 만큼 사막의 고요가 시인의 영혼을 그렇게 벼리는 것이다. 완전히 정화된 영혼은 그야말로 욕망이 불러온 고통으로부터 놓여난다. 번뇌의 타오르는 불꽃이 소멸된다. 그러니 정화 이전의 나는 죽어서 미이라가 된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정화 이전의 나의 순장인 셈이다. 그리고 긴 머리를 감는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는 여성이고 남성 상징인 성과 궁전은 대지인 사막이다. 이시환 시인의 대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철없이 사막 투어를 떠나네.

얼굴엔 선크림을 바르고

머리엔 창이 긴 모자를 눌러쓰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까지 끼고서

그야말로 철없이 사막 투어를 떠나네.

 

그곳 어디쯤에 서서

그곳 어디쯤을 바라보지만

그것은 분명 수억 수천 년의 세월이 빚어온

한 말씀의 성(城)이요,

그 성의 한 순간 영화인 것을.

 

아직도 곳곳에 솟아있는

오만한 바윗덩이 부서지고 부셔져서

내 살 같고 내 피 같은 모래알이 되고,

그것들은 다시 바람에 쓸리고 쓸리면서

오늘, 어머니의 젖무덤 같고

궁둥짝 같고

깊은 배꼽 같고

긴 다리 사이 같은

 

모래뿐인 세상,

적막뿐인 세상 그 한 가운데에 서서

머리 위로는

쏟아지는 햇살로 흥건하게 샤워하고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어둠으로는

머릴 감으면서

나는 비로소 눈물,

눈물을 쏟아놓네.

 

아, 고갤 들어 보라.

살아 숨 쉬는, 저 고단한 것들의 끝

실오리 같은 주검마저도 포근하게 다 끌어안고,

혈기왕성한 이 육신의 즙조차 야금야금 빨아 마시는

모래뿐인 세상의 중심에

맹수처럼 웅크린 적막이 나를 노려보네.

 

한낱, 그 뜨거운 시선에 갇힌

두려움 탓일까?

모래 위에 찍힌 내 발길의

시작과 끝이 겹쳐 보이는 탓일까?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이

마침내 물결쳐가며

머리 위로는

숱한 별들을 닦아 내놓고

발밑으로는

깨끗한 모래톱을 펼쳐 내놓는 이곳에서

숨조차 멎어버릴 것 같은,

그 눈빛 속으로

내가, 내가 드러눕네.

 

-「사막 투어」, 『눈물 모순』에서

 

사막 시편의 절창이라 할 수 있는 이 시에는 제목 밑에 “무엇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가? 태양의 두터운 입술도, 바람의 격렬한 포옹도 아니다. 오로지 내 살 같고 내 피 같은 모래알뿐인 사막의 깨끗한 적막이다. 그것은 내 생명의 즙을 빨아 마시지만 내 터럭 같은 주검조차도 포근하게 끌어안는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사막의 깨끗한 적막은 나의 살이요 나의 피라는 의미는 이 적막에서 오는 영적 고요가 정화의식이란 의미이고, 그것은 사막과 같은 세상으로부터 놓여나는 나의 영혼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대지의 저주로부터 놓여나는 것도 대지인 사막 속에서 이루어진다. 마음의 가시덩쿨이나 엉겅퀴를 극복하는 길은 영혼을 정화시키고 재생되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시환 시인의 대지는 사막을 통해정화와 재생을 가져다주는 생명력을 지닌다. 그것은 시인의 내적 고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사막의 적요는 그 내적 고요의 정점에 있을 걸로 생각된다. 정화와 재생으로 새로 태어난 영혼은 부드럽고 생동감을 지니며 수평적이다. 그래서 함박눈처럼 포근하게 대지를 덮고 대지의 낮은 곳으로 내려와 대지에다 입 맞춘다. 대지인 당신을 위해서라면 젖은 땅, 언 땅 어디라도 서슴없이 달려갈 각오가 되어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당신에게로 곧장 달려 갈 수 있다는 그것과 당신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이마에, 손등에, 목덜미 어디에서든 입술을 부비고 가녀린 몸짓으로 나부끼다가 한 방울의 물이라도 구름이라도 될 수 있다는 그것뿐이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다만, 우리들의 촉각을 마비시키는 추위가 엄습해오는 길목으로 돌아서서 겨울나무 가지 끝 당신의 가슴에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그것과 당신을 위해서라면 충실한 從의 몸으로 서슴없이 달려가 젖은 땅, 얼어붙은 이 땅 어디에서든 쾌히 엎드릴 수 있다는 그것뿐이옵니다. 나는 언제나 그런 나에 불과 합니다. 나는 나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박눈」, 『안암동日記』에서

 

함박눈=나’인 이 시에서 당신은 대지이며 함박눈은 시적 화자 ‘나’와 동일한 존재이다. 대지인 당신의 이마와 손등, 목덜미에 입술을 부비겠다는 ‘나’, 대지인 당신을 위해서라면 충실한 종의 몸으로 달려가서 엎드리겠다는 함박눈 나의 사랑의 맹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함박눈인 나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나’가 나일 수 있는 본질은 함박눈이 지니는 본질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대지인 당신을 위해서 충복이 되는 것이 나의 소명이다. 이시환의 대지의 이미지는 대지와 길항하는 인간의 고통을 대지를 매개로 정화와 재생을 이루어 대지와 화합하며 대지에 발을 딛고 대지를 사랑하는 자세로 귀결된다. 거기에는 나라는 주체의 자기 비움이 사막의 내적 고요 속에서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시환 시인의 묵상, 관상에 이르는 관념의 세계가 대지의 이미지를 통하여 사막에서 절정에 이르고, 거기에서 가시덩쿨과 엉겅퀴와 같은 부정적인 내외적 원인으로 야기된 고통과 싸워서 승리하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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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 [또 詩공부]- 틀에 박힌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기 2016-04-08 0 6906
1322 [한밤중 詩 한컵 드리꾸매]- 동물의 왕국 2016-04-08 0 4265
1321 <악기> 시모음 2016-04-07 0 4763
1320 ... 2016-04-07 0 5024
1319 ... 2016-04-07 0 4582
1318 [머리 뗑하게 하는 詩공부]- 詩作 첫줄 어떻게 쓰나 2016-04-07 0 4261
1317 [싱숭생숭 진달래 피는 봄날 詩 한송이]- 진달래 2016-04-07 0 4622
1316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아침, 詩 한송이]- 철쭉 2016-04-07 0 4182
1315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2016-04-07 0 4537
1314 詩의 씨앗 2016-04-07 0 4450
1313 멕시코 시인 - 옥타비오 파스 2016-04-06 0 4588
1312 꽃과 그늘 사이... 2016-04-06 0 4534
1311 詩人의 손은 어디에... 2016-04-06 0 4386
1310 詩지기가 만났던 <남도의 시인> - 송수권 타계 2016-04-05 0 4515
1309 [한밤중 詩 한쪼박 드리매]- 보리가 팰 때쯤 2016-04-05 0 4436
1308 [화창한 봄날, 싱숭생숭 詩 한꼭지]-나는 아침에게... 2016-04-05 0 4815
1307 아시아의 등불 - 인도 詩聖 타고르 2016-04-05 0 4963
1306 한국 詩人 김억 / 인도 詩人 타고르 2016-04-04 0 7078
1305 인도 詩人 타고르 / 한국 詩人 한용운 2016-04-04 0 4700
1304 [봄비가 부슬부슬 오는 이 아침 詩 읊다]- 쉼보르스카 2016-04-04 0 4713
1303 [이 계절의 詩 한숲 거닐다]- 사려니 숲길 2016-04-04 0 4650
1302 [월요일 첫 아침 詩 한잔 드이소잉]- 하루 2016-04-04 0 4229
1301 [청명날 드리는 詩 한컵]- 황무지 2016-04-04 0 4691
1300 <작은 것> 시모음 2016-04-04 0 4586
1299 詩와 思愛와 그리고 그림과... 2016-04-03 0 5310
1298 詩, 역시 한줄도 너무 길다... 2016-04-03 0 6083
1297 詩, 한줄도 너무 길다... 2016-04-03 0 4544
1296 [이 계절 꽃 詩 한다발 드리꾸매]- 벚꽃 시묶음 2016-04-03 0 5495
1295 <할머니> 시모음 2016-04-02 0 4398
1294 {童心童詩}- 텃밭에서(詩를 쉽게 쓰라...) 2016-04-02 0 4807
1293 {童心童詩} - 꽃이름 부르면 2016-04-02 0 4101
1292 <발> 시모음 2016-04-02 0 4688
1291 도종환 시모음 2016-04-02 0 5377
1290 [이 계절의 꽃 - 동백꽃] 시모음 2016-04-02 0 5414
1289 이런 詩도 없다? 있다!... 2016-04-02 0 4104
1288 [한밤중 아롱다롱 詩한컷 보내드리꾸이]- 모란 동백 2016-04-02 0 4567
1287 [머리를 동여매고 하는 詩공부]- 자연, 인위적 언어 2016-04-02 0 4292
1286 [머리가 시원한 詩공부]- 죽은자는 말이 없다... 2016-04-01 0 4114
1285 [머리 아픈 詩 공부]- 문학과 련애 2016-04-01 0 5320
1284 [싱숭생숭 봄날 아롱다롱 봄, 풀꽃 詩 한 졸가리] - 풀꽃 2016-03-31 0 3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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