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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 꽃 詩 한다발 드리꾸매]- 벚꽃 시묶음
2016년 04월 03일 08시 22분  조회:5364  추천:0  작성자: 죽림




벚꽃

김영월



요절한 시인의 짧은 생애다

흰빛이 눈부시게 떨린다

살아서 황홀했고 죽어서 깨끗하다



벚꽃이 감기 들겠네


김영월


비가 그친 저녁

더 어두워지는 하늘가

이 쌀쌀한 바람에

여린 꽃망울들이 어쩌지 못하고

그만 감기 들겠네

그 겨울 지나, 겨우 꽃눈이 트이고

가슴 설레는데

아무도 보는 이 없고

꽃샘추위만 달려드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네

좀더 따스하고 다정하길 바랬네

윤중로 벚꽃 잎은 바람에 휘날려

여의도 샛강으로 떨어지고

공공근로자 아주머니의

좁은 어깨 위에 몸을 눕히네

김정희 -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

대낮에

꽃 양산이 즐비한 거리를 늙은 고양이처럼 걸었다

바람이 불었다

내 좁은 흉곽으로 經들이 떨어져 내렸다

시간이 흘러도 읽어내지 못하는 까막눈을

새들이 꺼내 물고 네거리 쪽으로 갔다

길고 긴 詩句를 받아 적는지

한 떠돌이가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디에도

우리가 지나 온 길보다 더 긴 시구를 가진 시는 없다*

나는 꽃 핀 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유랑하는 청춘들의 푸른 이마를 적시며

행상꾼의 생선 비린내를 몰며

삼라만상 狂氣들을 덮으며 흘러가는 經들 위로

다시 발을 얹었다

네게로 가기 위해

(* 존 버거의 시 '이별'에서 차용)



벚꽃, 그녀에게

김종제



누군가를 저렇게 간절히 원하다가

상사병으로 밤새 앓아 누워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적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원망하다가

눈물 하루종일 가득 흘려

깊은 강물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목 빼고 기다리다가

검은머리 한 세월

파뿌리 흰머리가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못 잊어 그리워하다가

붉은 목숨 내놓고

앞만 보고 행진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찾아다니며

사막의 빙하의 길

오래 걸어 신 다 닳아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단 며칠이라도 얼굴 보여주려고

이 세상 태어나기를 원한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몸 눕혀 불길로 공양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목숨 바쳐

순교자의 흰 피를 뿌려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말없는 눈빛으로 다가가

속 깊은 우물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천년 만년 바람 불고 눈비가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절대적인 꿈과 희망이 되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전율이 감도는

노래와 춤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어제 벚꽃, 그녀에게

숨김없이 옷을 다 벗고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



벚꽃

김태인



우리 마을 해님은

뻥튀기 아저씨

골목길 친구들이

배고프면 먹으라고

아무도 모르게

강냉이를 튀겼어요



벚꽃처럼 져내려도

김하인



남녀가 같이 있는 것만큼 기쁜 일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기만 한다면

달도 해도 맘대로 방 안에서 띄우고 저물게 할 것입니다.

서로 그리워만 한다면 함께 누운 곳마다 수풀 생기고

산과 계곡이 낳아지고

냇물과 강이 분만된

새 세상이 매일 아침처럼 돋고 저녁처럼 지는 것을 함께 볼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사랑으로만 살기 원했듯 사랑만으로 죽는 것도 좋습니다.

벚꽃처럼 화려한 절정에서 한꺼번에 이 세상 모든 게 져내려도 좋습니다.

함께 있어서 좋은 관계만큼 아름다운 꽃나무도 없고 향기롭게 설레는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산벚꽃나무


나태주


뒤로 물러서려다가

기우뚱

벼랑 위에 까치발

재겨 딛고

어렵사리 산벚꽃나무

몸을 열었다

알몸에 연분홍빛

홑치마 저고리 차림

바람에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밤벚꽃

도혜숙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인데

벚꽃은 피고 있었다

와∼

벚꽃이 팝콘 같다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갑자기 까르르 웃는

벚꽃

다시 보니 참

흐드러지게 먹음직스럽다

///////////////////////////////////////////////////////

<벚꽃 시모음>

== 꽃비를 맞으며 ==

저 꽃양산 누굴 위해
저리 활짝 펴들고 섰을까
하염없이 꽃잎 뿌리며
봄볕에 말 붙여 오는 벚나무

저 곤한 발자국들
그 까뭇한 속 활짝 펴지도록
다가가서
하얀 꽃양산 곱게 씌워주렴


(이영균·시인, 1954-)


== 꽃 다비 ==

4월 저 벚나무
꽃불 탑이다

사리 몇 알 얻으려고
소신공양 중이다


(임보·시인, 1940-)


== 벚꽃이 훌훌 ==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던지고
연초록빛 새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태주·시인, 1945-)


== 나는 빗자루를 던져 버렸다. ==

아침 공양을 마치고
모두를 마당을 씁니다.

전날 몹시 분 바람 덕에
분홍빛 벚꽃잎이 마당 가득 피었습니다.

옹기종기 입을 맞춰 노래하고 있습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어여쁜 꽃잎을
그 고운 살결을 도저히 쓸어낼 수 없습니다.


(원성·스님, 1973-)


== 벚꽃 활짝 피던 날 ==

그대처럼
어여쁘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누가 나를 반기겠습니까

어쩌자고
어떻게 하려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입니까

유혹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내 가슴을 왜 불타게만 합니까

그대를 바라봄이 행복합니다
그대의 향기에 온몸이 감싸입니다
그대로 인해 내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술렁대고 있습니다

그대는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온몸으로 노래하는데
나는 무엇을 그대에게
노래해야 합니까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산벚꽃 그늘 아래 - 취밭목 ==

저건 소리 없는 아우성 같지만
실은, 너에게 보이려는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저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저렇게 환히 웃기까지의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 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낭히 시라도 몇 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 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봐
글쎄, 금방 글썽글썽해져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권경업·시인, 경북 안동 출생)


==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이기철·시인, 1943-)


== 벚꽃 지는 날에 ==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 알 수 없는 눈물이
푸른 하늘에 글썽일 때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바람으로 벽을 세우는 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물결은 늘 내 알량한 의지의 바깥으로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서
세상 밖에서 살 때가 있다

그래도 기차표를 사듯 날마다
손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고
계산을 하고 살아가지만
오늘도 저 큰 세상 안에서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는 없다

누구를 향한 그리움마저도 떠나
텅 빈 오늘
짧은 속눈썹에 어리는 물기는
아마 저 벚나무 아래 쏟아지는
눈부시게 하얀 꽃잎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승동·시인, 1957-)


== 벚꽃, 지다 ==

꽃샘추위 심술
슬그머니 뿌리치고
나 보란 듯이
수많은 알갱이
하얀 불씨로 피어나

한밤중에도
환히 불 밝히며
엊그제까지만 해도
가지가 출렁일 듯
빛이 번성하더니

밤새 내린 가랑비
한줄기 봄바람도 못 이겨
아롱아롱 슬픔의
눈(雪)으로 내려

갓난아기
앙증맞은 손톱 같은
작디작은 이파리들
소복소복 꽃길 되어
뭇 사람들의 억센
발길 아래 스러지더니

아,
어느새 벚꽃 가지마다
연초록 눈부신
잎새들 무성하여라


(정연복·시인, 1957-)


///////////////////////////////////////////////////////



 

곽진구 - 벚꽃나무의 둘레가

 

 

 

 

 

 

 

 

벚꽃나무의 둘레가 눈부시다

 

무엇이 저렇게

 

내 눈을 못 뜰 만치

 

눈부시게 다가오는가 싶었더니

 

 

꽃 속에 숨어 있는,

 

어느 새 성장한 여인이 되어버린

 

딸애가,

 

오 귀여운 딸애가

 

주변의 예쁜 풍경을 거느리고

 

활짝 웃고 있지 않는가

 

 

항상 품안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한 그루의 벚꽃!

 

주변이

 

꽃의 살처럼 느껴졌다

 

 

 

 

 

 

 

 

 

 

 

 

권복례 - 벚꽃

 

 

 

 

 

 

 

 

그 깊은 곳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그곳에서 너는 참 고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왔구나

 

화장을 한 듯 안한 듯한 모습으로

 

너는 무슨 표 화장품으로 화장을 했니

 

나는 참존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단다

 

그리고 나는 빨간 립스틱은 바르지 않는단다

 

왜냐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면 내가 바라보아도

 

내가 아닌 듯 하거든

 

그래서 나는 아주 연한 립스틱으로 입술을 마무리하지

 

바라보아도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 너처럼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구나

 

너 그 깊은 곳에서 무엇으로 치장을 했는지

 

나만 살그머니 가르쳐주지 않으련

 

 

 

 

 

 

 

 

 

 

 

 

권오범 - 벚꽃

 

 

 

 

 

 

 

어떤 감미로운 속삭임으로

 

자릿자릿 구워삶았기에

 

춘정이 떼로 발동했을까

 

 

튀밥 튀듯 폭발한 하얀 오르가슴 쫓아

 

겨우내 오금이 쑤시던 꿀벌들

 

실속 차리느라 살판난 강가

 

 

꽃샘이 끼어들도록 방관하더니

 

본분 잃지 않고 서두르는 걸 보면

 

봄바람아, 너 정말 오지랖 넓다

 

 

 

 

 

 

 

 

 

 

 

 

김기택 - 밤 벚꽃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떨어지는 일에 취한 듯 닥치는 대로 때리며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 얼굴 희고 입술 붉은 지금

 

몸을 때리고 마음을 때려, 문득 진저리치며 어깨를 끌어 안도록

 

천년을 건너온 매질처럼 소리 안 나게 밤 벚꽃 떨어진다.

 

 

 

화끈한 누드쇼 이끌고 방방곡곡

 

사람사태 나도록 쏘삭거리는 일

 

참말로 잘하는 짓이다

 

 

 

 

 

 

 

 

 

 

 

 

김영남 - 저 벚꽃의 그리움으로

 

 

 

 

 

 

 

 

벚꽃 소리 없이 피어

 

몸이 몹시 시끄러운 이런 봄날에는

 

문 닫아걸고 아침도 안 먹고 누워있겠네

 

 

 

 

한 그리움이 다 큰 그리움을 낳게 되고…

 

그런 그리움을 누워서 낳아보고 앉아서 낳아보다가

 

마침내는 울어버리겠네. 소식 끊어진 H를 생각하며

 

그러다가 오늘의 그리움을 어제의 그리움으로 바꾸어보고

 

어제의 그리움을 땅이 일어나도록 꺼내겠네. 저 벚꽃처럼

 

 

 

 

아름답게 꺼낼 수 없다면

 

머리를 쥐어뜯어 꽃잎처럼 바람에 흩뿌리겠네

 

뿌리다가 창가로 보내겠네

 

 

 

 

꽃이 소리 없이 사라질까 봐

 

세상이 몹시 성가신 이런 봄날에는

 

냉장고라도 보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쓰겠네

 

저 벚꽃의 그리움으로

 

 

 

 

 

 

 

 

 

 

 

 

김영월 - 벚꽃

 

 

 

 

 

 

 

 

요절한 시인의 짧은 생애다

 

흰빛이 눈부시게 떨린다

 

살아서 황홀했고 죽어서 깨끗하다

 

 

 

 

 

 

김영월 - 벚꽃이 감기 들겠네

 

 

 

 

비가 그친 저녁

 

더 어두워지는 하늘가

 

이 쌀쌀한 바람에

 

여린 꽃망울들이 어쩌지 못하고

 

그만 감기 들겠네

 

 

그 겨울 지나, 겨우 꽃눈이 트이고

 

가슴 설레는데

 

아무도 보는 이 없고

 

꽃샘추위만 달려드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네

 

좀더 따스하고 다정하길 바랬네

 

 

윤중로 벚꽃 잎은 바람에 휘날려

 

여의도 샛강으로 떨어지고

 

공공근로자 아주머니의

 

좁은 어깨 위에 몸을 눕히네

 

 

 

 

 

 

 

 

 

 

김정희 -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

 

 

 

 

 

 

 

대낮에

 

꽃 양산이 즐비한 거리를 늙은 고양이처럼 걸었다

 

바람이 불었다

 

내 좁은 흉곽으로 經들이 떨어져 내렸다

 

시간이 흘러도 읽어내지 못하는 까막눈을

 

새들이 꺼내 물고 네거리 쪽으로 갔다

 

길고 긴 詩句를 받아 적는지

 

한 떠돌이가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디에도

 

우리가 지나 온 길보다 더 긴 시구를 가진 시는 없다*

 

나는 꽃 핀 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유랑하는 청춘들의 푸른 이마를 적시며

 

행상꾼의 생선 비린내를 몰며

 

삼라만상 狂氣들을 덮으며 흘러가는 經들 위로

 

다시 발을 얹었다

 

네게로 가기 위해

 

(* 존 버거의 시 '이별'에서 차용)

 

 

 

 

 

 

 

 

 

 

 

 

김종제 - 벚꽃, 그녀에게

 

 

 

 

 

 

 

누군가를 저렇게 간절히 원하다가

 

상사병으로 밤새 앓아 누워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적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원망하다가

 

눈물 하루종일 가득 흘려

 

깊은 강물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목 빼고 기다리다가

 

검은머리 한 세월

 

파뿌리 흰머리가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못 잊어 그리워하다가

 

붉은 목숨 내놓고

 

앞만 보고 행진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찾아다니며

 

사막의 빙하의 길

 

오래 걸어 신 다 닳아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단 며칠이라도 얼굴 보여주려고

 

이 세상 태어나기를 원한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몸 눕혀 불길로 공양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목숨 바쳐

 

순교자의 흰 피를 뿌려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말없는 눈빛으로 다가가

 

속 깊은 우물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천년 만년 바람 불고 눈비가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절대적인 꿈과 희망이 되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전율이 감도는

 

노래와 춤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어제 벚꽃, 그녀에게

 

숨김없이 옷을 다 벗고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

 

 

 

 

 

 

 

 

 

 

 

 

김태인 - 벚꽃

 

 

 

 

 

 

 

 

우리 마을 해님은

 

뻥튀기 아저씨

 

 

골목길 친구들이

 

배고프면 먹으라고

 

 

아무도 모르게

 

강냉이를 튀겼어요

 

 

 

 

 

 

 

 

 

 

 

 

김하인 - 벚꽃처럼 져내려도

 

 

 

 

 

 

 

남녀가 같이 있는 것만큼 기쁜 일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기만 한다면

 

달도 해도 맘대로 방 안에서 띄우고 저물게 할 것입니다.

 

서로 그리워만 한다면 함께 누운 곳마다 수풀 생기고

 

산과 계곡이 낳아지고

 

냇물과 강이 분만된

 

새 세상이 매일 아침처럼 돋고 저녁처럼 지는 것을 함께 볼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사랑으로만 살기 원했듯 사랑만으로 죽는 것도 좋습니다.

 

벚꽃처럼 화려한 절정에서 한꺼번에 이 세상 모든 게 져내려도 좋습니다.

 

함께 있어서 좋은 관계만큼 아름다운 꽃나무도 없고 향기롭게 설레는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나태주 - 산벚꽃나무

 

 

 

 

 

 

 

뒤로 물러서려다가

 

기우뚱

 

 

벼랑 위에 까치발

 

재겨 딛고

 

 

어렵사리 산벚꽃나무

 

몸을 열었다

 

 

알몸에 연분홍빛

 

홑치마 저고리 차림

 

 

바람에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도혜숙 - 밤벚꽃

 

 

 

 

 

 

 

 

해는 이미

 

져버린 지 오래인데

 

벚꽃은 피고 있었다

 

 

와∼

 

벚꽃이 팝콘 같다

 

 

아이들 떠들썩한 소리에

 

갑자기 까르르 웃는

 

벚꽃

 

 

다시 보니 참

 

흐드러지게 먹음직스럽다

 

 

 

 

 

 

 

 

 

 

 

 

목필균 - 벚꽃나무

 

 

 

 

 

 

 

 

잎새도 없이 꽃피운 것이 죄라고

 

봄비는 그리도 차게 내렸는데

 

 

바람에 흔들리고

 

허튼 기침소리로 자지러지더니

 

하얗게 꽃잎 다 떨구고 서서

 

 

흥건히 젖은 몸 아프다 할 새 없이

 

연둣빛 여린 잎새 무성히도 꺼내드네

 

 

 

 

 

 

 

 

 

 

 

 

박상희 - 벚꽃

 

 

 

 

 

 

 

 

봄빛의 따스함이

 

이토록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겨울 냉기를

 

하얗게 부풀려 튀긴 팝콘

 

 

팝콘 같기도 하고

 

하얀 눈꽃 같기도 한

 

순결한 평화가 나뭇가지에 깃들인다

 

 

그 평화는 아름다운 꽃무리가 되어

 

가슴 가득 피어오른다

 

사람들이 거니는 가로수의 빛난 평화를

 

 

4월의 군중과 함께 피어나는 벚꽃은

 

말끔히 씻기어 줄

 

젊은 날의 고뇌

 

 

 

 

박이화 - 정오의 벚꽃

 

 

 

벗을수록 아름다운 나무가 있네

 

검은 스타킹에

 

풍만한 상체 다 드러낸

 

누드의 나무

 

이제 저 구겨진 햇살 위로

 

티타임의 정사가 있을 거네

 

보라!

 

바람 앞에 훨훨 다 벗어 던지고

 

봄날의 화폭 속에

 

나른하게 드러누운

 

저 고야의 마야부인을

 

 

 

 

 

 

 

 

 

 

 

 

박인걸 - 벚꽃

 

 

 

 

 

 

 

벚꽃나무의 영혼이

 

꽃으로 부활하여

 

가지 위를 맴돌다

 

홀연히 사라진다.

 

 

꽃다움의 극치는

 

원죄가 없어서일까

 

흠도 티도 없는

 

꽃의 원조로구나

 

 

탐욕과 이기를 버리면

 

얼굴에 꽃이 피고

 

미움만 버려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

 

 

해맑음과 눈부심이

 

강하게 刺戟할 때

 

꽃과 마주한 나는

 

큰 부끄러움을 느낀다.

 

 

 

 

 

 

 

 

 

 

박인혜 - 벚꽃 축제

 

 

 

 

 

 

 

겨우내

 

비밀스레 숨어있던

 

그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벚꽃 세상을 만들었다

 

 

벚꽃을 닮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벚꽃은 꽃잎을 바람에 날리며 환영해준다

 

 

벚꽃의 세상이다

 

 

벚꽃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벚꽃 같은 사랑을 피고자 하는 연인들이 모여든다

 

벚꽃 닮은 강아지가 뛰어다닌다

 

벚꽃나무와 함께 아이들이 웃는다

 

 

벚꽃 세상의 사람들이

 

벚꽃 아래에서

 

벚꽃처럼 즐거워한다

 

벚꽃 세상에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은

 

벚꽃처럼 아름답다

 

 

 

 

 

 

 

 

 

 

 

 

박해람 - 벚꽃 나무 주소

 

 

 

 

 

 

 

 

벚꽃 나무의 고향은

 

저 쪽 겨울이다.

 

겉과 속의 모양이 서로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들이다

 

봄에 휘날리는 저 벚꽃 눈발도

 

겨울 내내 얼려두었던 벚꽃나무의

 

수취불명의 주소들이다

 

겨울동안 이승에서 조용히 눈감는 벚꽃 나무

 

모든 주소를 꽁꽁 닫아두고

 

흰빛으로 쌓였던 그동안의 주소들을 지금

 

저렇게 찢어 날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죽은 이의 앞으로 도착한

 

여러 통의 우편물을 들고

 

내가 이 봄날에 남아 하는 일이란

 

그저 펄펄 날리는 환 한 날들에 취해

 

떨어져 내리는 저 봄날의 차편을 놓치는 것이다

 

 

벚꽃 나무와 그 꽃이 다른 객지를 떠돌 듯

 

몸과 마음도 사실 그 주소가 다르다

 

그러나 가끔 이 존재도 없이 설레는 마음이

 

나를 잠깐 환하게 하는 때

 

벚꽃이 피는 이 주소는 지금 봄날이다

.

 

 

 

 

 

 

 

 

 

 

 

송연우 - 벚꽃

 

 

 

 

 

 

 

 

봄의 고갯길에서

 

휘날리는 꽃잎 잡으려다가 깨뜨렸던

 

내 유년의 정강이 흉터 속으로

 

나는 독감처럼 오래된 허무를 앓는다

 

 

예나 제나

 

변함없이 화사한

 

슬픔,

 

낯익어라

 

 

 

 

 

 

 

 

 

 

 

 

송 인 - 벚꽃

 

 

 

 

 

 

 

 

와싱톤의 봄은

 

포토맥 강변에서

 

벚꽃을 피우면서 온다

 

아직도 겨울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봄은 타이덜 베이슨에*

 

화사한 병풍을 둘러친다

 

 

벚꽃이 웃기 시작할 때부터

 

춤출 때까지

 

사람들은 호숫가로 몰려와서는

 

강물의 맑음은 보지 못하고

 

짧은 생명의 화려함만 보고

 

즐긴다

 

 

아름다움은 짧은 춤으로 말하고

 

이별은 쉬운 손짓으로 말한다

 

 

꽃은 바람을 싫어하고

 

향기가 없음을 색깔로 감춘다

 

 

단지 며칠 동안의 생명을

 

하루 하루 긴 추억으로 새긴다

 

 

호수 위에 꽃잎이 세계를 그릴 때

 

비로소 사람들은 호수를 바라보게 되지만

 

또 다시 다른 꽃을 찾아 나선다

 

 

제퍼슨은 서서 꽃의 역사를 바라보고

 

링컨은 앉아서 인간의 역사를 바라본다

 

 

 

 

 

 

 

 

 

 

 

 

신경림 - 그 길은 아름답다

 

 

 

 

 

 

 

 

산벗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렸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을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 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안도현 - 벚나무는 건달같이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안영희 - 벚꽃

 

 

 

 

온몸

 

꽃으로 불 밝힌

 

4월 들판

 

 

눈먼

 

그리움

 

 

누가

 

내 눈의 불빛을 꺼다오.

 

 

 

 

 

 

 

 

 

 

 

 

안재동 - 벚꽃

 

 

 

 

 

 

 

 

천지(天地)에 저뿐인 양

 

옷고름 마구 풀어헤친다

 

 

수줍음일랑 죄다

 

땅 밑으로 숨기고

 

백옥같이 흰 살결 드러내

 

하늘에 얼싸 안긴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자태

 

찬란도 단아도

 

이르기 부족한 말

 

 

수십 여일 짧은 생

 

마른 장작 타듯 일순 화르르

 

온몸을 아낌없이 태우며

 

세상천지를 밝히는

 

뜨거운 사랑의 불꽃

 

 

아무리 아름다워도

 

찰나에 시들 운명,

 

순응이나 하듯

 

봄비와 산들바람을 벗삼아

 

홀연히 떠나버린 자리에

 

오버랩되는

 

고즈넉한 그리움

 

 

 

 

 

 

 

 

 

 

 

 

오세영 - 벚꽃

 

 

 

 

 

 

 

 

죽음은 다시 죽을 수 없음으로

 

영원하다.

 

이 지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毒杯)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종말을 거부하는 죽음의 의식(儀式),

 

정사(情死)의

 

미학.

 

 

 

 

 

 

 

 

 

 

 

 

오희정 - 벚꽃 축제

 

 

 

 

 

 

 

여한 없이 핀 가지마다

 

눈이 즐겁고

 

 

반쯤 벙글어

 

손을 꼽게 하는 나무도 있구나

 

 

한두 송이 피우다

 

이내, 지우는 나무 아래 섰다

 

 

내 생은

 

어느 나무로 피고 있는가?

 

 

 

 

 

 

 

 

 

 

 

 

용혜원 - 벚꽃이 필 때

 

 

 

 

 

 

 

꽃봉오리가

 

봄 문을

 

살짝 열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더니

 

 

봄비에 젖고

 

따사로운 햇살을 견디다 못해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봄소식을 전하고자

 

향기를 내뿜더니

 

깔깔깔 웃어 제치는 소리가

 

온 하늘에 가득하다

 

 

나는 봄마다

 

사랑을

 

표현할 수 없거늘

 

너는 어찌

 

봄마다

 

더욱더 화려하게

 

사랑에 몸을 던져

 

빠져버릴 수가 있는가

 

 

신바람 나게 피어나는

 

벚꽃들 속에

 

스며 나오는 사랑의 고백

 

나도 사랑하면 안 될까

 

 

 

 

 

 

 

 

 

 

 

 

용혜원 - 벚꽃

 

 

 

 

 

 

 

 

봄날

 

벚꽃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무엇이 그리도 좋아

 

자지러지게 웃는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대는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기쁜지

 

행복한 웃음이 피어난다

 

 

 

 

 

 

 

 

 

 

 

 

유봉희 - 벚꽃 속으로

 

 

 

 

 

 

 

 

첫사랑의 확인

 

눈감아도 환한

 

 

잠깐 사이에

 

잠깐 사이로

 

꽃잎 떨어져

 

 

떨어져도 환한 꽃잎

 

살짝 찍는 마침표

 

 

 

 

 

 

유응교 - 벚꽃의 꿈

 

 

 

 

가야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이 부신가.

 

 

일시에 큰소리로 환하게 웃고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삶이 좋아라.

 

 

끈적이며 모질도록 애착을 갖고

 

지저분한 추억들을 남기려는가.

 

 

하늘 아래 봄볕 속에 꿈을 남기고

 

바람 따라 떠나가는 삶이 좋아라

 

 

 

 

 

 

 

 

 

 

 

 

유하 - 뒤늦은 편지

 

 

 

 

 

 

 

 

늘상 길 위에서 흠뻑 비를 맞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났다라면,

 

매양 한 발씩 마음이 늦는 게 탈입니다

 

사랑하는 데 지치지 말라는 당신의 음성도

 

내가 마음을 일으켰을 땐 이미 그곳에 없었습니다

 

벚꽃으로 만개한 봄날의 생도

 

도착했을 땐 어느덧 잔설로 진 후였지요

 

쉼 없이 날갯짓을 하는 벌새만이

 

꿈을 음미할 수 있는 靜止의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 후회처럼 소낙비를 맞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예비된 게 없어요

 

사랑도 감동도, 예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아무도 없는 들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게으른 몽상만이 내겐, 비를 그을 수 없는 우산이었어요

 

푸르른 날이 언제 내 방을 다녀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어둑한 귀가 길, 다 늦은 마음으로 비를 맞습니다

 

 

 

 

 

 

 

 

 

 

 

 

유홍준 - 벚꽃나무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도덕이라는 거, 뭐 별거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 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화르르 화르르 꽃잎들이 날린다 아름답다 무심한 발바닥도 더러는 죄 지을 때가 있다 머리끝 생각이 어떤 경로를 따라 발바닥까지 전달되는지...... 그런 거 관심 없다 굳이 알 필요 없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깡그리 다 엉터리, 그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걷어차고 싶어진다 세일로 파는 다섯개들이 라면 한 봉지를 사서 들고 허적허적 돌아가는 길, 내 한 쪽 손잡은 딸아이가 재밌어서 즐거워서 자꾸만 한 번 더 걷어차 보라고 한다

 

 

 

 

 

 

 

 

 

 

 

이국헌 - 벚꽃 유감

 

 

 

 

 

 

 

어제 봤던 벚꽃

 

밤 내내 내린 비에

 

후드득 떨어져 버렸다

 

나 보기 싫다

 

눈물도 보이기 싫다

 

아침에 눈물 싹싹 훔치고

 

봄바람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다려 달라는 소리도

 

눈길 주지도 못했다

 

봄빛은 등을 두드리며

 

길 떠나라 따갑게 때린다

 

 

 

 

 

 

 

 

 

 

이기철 -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 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이남일 - 벚꽃이 질 때

 

 

 

 

 

 

벚꽃잎 사이로

 

환한 햇살이 쏟아질 때마다

 

그대는 속삭인다.

 

당신의 눈길은 참 아름답다고

 

 

벚꽃 나룻길 너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대는 속삭인다.

 

당신의 손짓이 그리울 거라고

 

 

강물 위에 벚꽃잎 질 때마다

 

흔들리는 몸짓으로

 

그대는 나즉이 속삭인다.

 

다시 올 때까지

 

내 향기 가슴에 담아두라고

 

 

 

 

 

 

 

 

 

 

 

이몽희 - 벚꽃

 

 

 

 

 

 

 

봄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꽃잎을 들어 보이며

 

내가 하는 말

 

단 한마디 말

 

 

올해도 알아듣고

 

마주 웃어주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채

 

 

펼쳤던 자리를

 

거두고 돌아가니

 

빈 꽃자리마다 눈물 어린다

 

 

세물나루

 

십릿길

 

깊어가는 봄

 

 

 

 

 

 

 

 

 

 

이영진 - 벚꽃이 진 자리에

 

 

 

 

 

 

 

허공에 비가 지나가고 난 흔적,

 

창 밖을 가득 채웠던 벚꽃이 씻은 듯 사라졌다.

 

꽃이 사라지면 혼란도 사라지는 것인지

 

목 위로 차오르던 것들이 제 자리로 내려 앉았다.

 

 

본래 제 자리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꽃이 지고 난 다음에야 확인되는 가슴 속의 자리 하나.

 

꽃이 피어 있던 봄 내내 보이지 않던 그 자리에

 

시내 버스들이 밀려 들어 긴 정체를 만들고

 

나는 갑자기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부럽다

.

 

 

 

 

 

 

 

 

 

 

이외수 - 벚꽃

 

 

 

 

 

 

 

 

오늘 햇빛 이렇게 화사한 마을

 

빵 한 조각을 먹는다

 

아 부끄러워라

 

나는 왜 사나.

 

 

 

 

 

 

 

 

 

 

 

이재기 - 벚꽃

 

 

 

 

 

 

 

 

백설기 떡잎 같은 눈

 

봄날 4월 나뭇가지에

 

온 세상의 나무를 네가 덮었구나

 

 

선녀 날개옷 자태인 양

 

우아한 은빛 날개 펼치며

 

송이송이 아름드리 얹혀 있구나

 

 

희지 못해 눈부심이

 

휑한 마음 눈을 뜨게 하고

 

꽃잎에 아롱진 너의 심성

 

아침 이슬처럼 청롱하구나

 

 

사랑하련다

 

 

백옥 같이 밝고

 

선녀 같이 고운 듯

 

희망 가득 찬 4월의 꽃이기에

 

 

 

 

 

 

 

 

 

 

이효녕 - 벚꽃이 지는 시간

 

 

 

 

 

 

 

내가 활짝 핀 벚꽃을 바라보는 동안

 

몇 마리 새들이 가지 위로 날아다니고

 

시간이 가는 게 너무나 안타깝게 만드는 바람

 

향기는 향기대로 따로 날리면서

 

사랑의 꿈 환한 빛으로 채색되어

 

허공의 촛불을 밝혀 곁에 둡니다

 

 

그대 어둠에 있을 때

 

아픔 참아 환희 밝혀주고픈 마음이라면

 

수많은 사연 접고 그대 맘 깊은 곳까지

 

사랑으로 받치고 싶었지요

 

 

세월 속에 꽃 피어나고

 

다시 꽃이 지는 날 밤이면

 

그대 앞에 난 촛불이 되어

 

찬란한 이별의 길을 밝히지요

 

 

마치 꿈속의 아늑함이

 

감돌아나는 것을 바라보다가

 

빛나는 눈빛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영혼의 쉴 곳을 찾는 줄도 모르는 채

 

거리에 꽃잎이 날리는 시간

 

내 마음이 잠든 꿈을 찾아 갑니다

 

 

 

 

 

 

 

 

 

 

 

이향아 - 벚꽃잎이

 

 

 

 

 

 

 

벚꽃잎이 머얼리서 하늘하늘 떨리었다

 

떨다가 하필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 눈길이 내 앞을 운명처럼 막았다

 

가슴이 막히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흐느끼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벚꽃잎은 계속 지고 있었다

 

 

 

 

 

 

 

 

 

 

 

장석주 - 활짝 핀 벚꽃 아래서

 

 

 

 

 

 

 

 

두개골 속에 꽃봉오리들이 툭, 툭, 터지는 소리가

 

벼락치고,

 

네 입술이 기르던 애벌레가

 

나방이 되어 날아간다.

 

 

 

 

 

네 입술,

 

네 둥근 젖,

 

네 흰 이마,

 

네 검은 머리칼,

 

네 젖은 어깨,

 

네 샅,

 

네 꽃피던 자궁,

 

네 모든 게 천천히 지워진다, 일찍이

 

내 이럴 줄 알았다,

 

벚꽃 폭설 아래 나 혼자 걸으면

 

벚꽃 흰 눈 몇 점 머리에 이고

 

네가 나와 마주치고도

 

저문 강 쳐다보듯 무심할 줄을.

 

에움길 돌아 돌아가면

 

우리가 미처 살아내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직도 매캐한 슬픔이 피우는

 

연기 속에 자욱하다.

 

 

 

 

 

숯으로 네 눈썹을 그리던

 

푸른 밤들이 여전하다.

 

깨진 거울과 빈 밥그릇,

 

곰팡이 슨 산수화 한 점과 함께

 

언 호수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묵은 가지마다 햇빛이 팝콘처럼 부풀고

 

핏속에는 웃음과 한숨과 입김들이

 

한뻐번에 피어난다.

 

내 핏속에 잠자던 호랑이들이

 

미쳐 날뛴다.

 

 

 

 

 

 

 

 

 

 

 

장지현 - 꽃비가 되는 아름다운 이별

 

 

 

 

 

 

 

 

 

활짝 피어났던 벚꽃의 향기도

 

짧은 사랑을 위한 시들음을 하늬바람

 

못내 서운한 마음이 서린 꽃잎을

 

흔들어 떨어지는 꽃비의 상큼한 향기가 남아

 

주린 내 영혼의 감성을 흔드는 봄날

 

쉼 없이 꽃잎을 쪼아대는 노랑부리멧새도

 

마지막 보냄에 가슴채운 그리움을 나눔이라

 

 

한나절 뜨거워지는 햇살에 눈을 감는 꽃잎

 

기다린 보람을 피운 봄빛 사랑에 알알이 맺힐

 

열정의 분신에 가슴 놓이는 시간 속에 더욱 다지는

 

생존의 아름다운 꿈을 피워내는 인고의 견딤은 아직도

 

내일을 향한 꽃잎 진자리 연초록 곱게 피움에

 

삶의 경이로운 삶의 진정한 길을 스스로 알아 깨어나는

 

자연자정의 물결엔 희망을 가득 채워 가리라

 

 

 

 

 

 

 

 

 

 

 

 

최정례 -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그는 산벚꽃나무와 여자 그림자 하나 데리고 살지요

 

그는 돈도 없고 처자도 없고 집도 없고 그는 늙었지요

 

바위 구멍 굴딱지 같은 곳에서 기어나와 한참을 앉아 있지요

 

서성거리지요

 

산벚꽃나무 기운없이 늘어진 걸 보니 봄이 왔지요

 

냄비를 부시다 말고

 

앓아 누운 여자 그림자를 안아다

 

양지 쪽에 눕히고

 

햇빛을 깔고 햇빛을 덮어주고

 

종잇장같이 얇은 그녀도 하얗게 늙어가지요

 

산벚꽃나무 장님처녀 눈곱 달듯

 

한두 송이 꽃 매달지요

 

그녀의 이마가 그녀의 볼이 따뜻하지요

 

아니 차디차지요

 

이 봄은 믿을 수가 없지요

 

그녀를 눕혔던 자리 아지랭이 피어오르고

 

그녀가 천천히 날아가지요

 

산벚꽃나무 너무 늙어 겨우 꽃잎

 

두 장 매달았다 떨구지요

 

또 봄은 가지요

 

그녀는 세상에 없는 여자고

 

그래도 그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지요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황지우 - 수은등 아래 벚꽃

 

 

 

 

 

 

 

 

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이제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출처] 벚꽃을 노래함 (산과 들에 부는 바람) |작성자 산과들

 

 

 

벚꽃

 

작자 미상

 

 

길가 가로수

벚꽃 주저리 주저리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아침 이슬 먹음은

울먹울먹 눈물담고

울멍울멍 물방울들

 

 

 

아침 찬란한

둥근 태양 떠올라

몇시간 후면 처연득히

벚꽃들 언제 그랬냐고

 

 

예쁜척 도도한

아름다운 자태 보노라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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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443 누구룰 위하여 종은 울리나... 2016-05-19 0 4092
1442 {자료}- 김철 시인 / 김응준 시인 2016-05-18 0 7170
1441 시문학 부흥의 묘약은 어디?... 2016-05-18 0 4062
1440 이승의 버스가 씨근거리고... 새가 된 꽃이라며... 2016-05-18 0 4683
1439 [한밤중 詩와 함께]- 배꼽 2016-05-18 0 4038
1438 詩論을 알면 시쓰기 힘들다... 2016-05-17 0 4381
1437 55년만에 발굴된 민족시인 - 심련수 / ... 2016-05-16 0 5198
1436 詩人과 詩 그리고 갱신의 길 / ... 2016-05-16 0 4597
1435 詩의 언어는 과학적 언어가 아니다 2016-05-16 0 4471
1434 순화된 언어속에서 건져 올리는 낯설기라야 가치 있다 2016-05-16 0 4208
1433 [초저녘 詩 읊다]- 초승달 카페 // 송몽규를 다시 떠올리다 2016-05-16 0 4483
1432 詩의 언어는 음악적이여야... 2016-05-16 0 4620
1431 그 새벽, 시인이 서 있는 곳은,ㅡ 2016-05-16 0 4899
1430 동심이라는 이름의 마법 2016-05-16 0 4859
1429 비긋는 아침, 당신의 고해소는 어디?... 2016-05-16 0 4215
1428 교훈조의 詩는 좋은 詩가 아니다 2016-05-15 0 4810
1427 잊혀진 시인 찾아서 - 설창수 시인 2016-05-14 0 4755
1426 잊혀진 시인 찾아서 - 김종한 시인 2016-05-14 0 5389
1425 동시인 김득만 "365밤 동요동시" 출간 2016-05-14 0 4812
1424 사랑의 방정식 2016-05-14 0 4663
1423 울음상점에서 만나다... 2016-05-13 0 4388
1422 시인의 몸에 몇개의 지문이 없다... 있다... 2016-05-13 0 4688
1421 시작의 첫 줄에 마음 써라... 2016-05-12 0 4217
1420 시의 이미지는 진화한다... 2016-05-12 0 5061
1419 [안개 푹 설레이는 아침 시 한컷]- 옛 엽서 2016-05-12 0 4432
1418 왁자지껄한 평화속에서 꽃 피우라... 2016-05-11 0 3922
1417 아이는 삶으로 뛰여든다... 2016-05-10 0 4114
1416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2016-05-10 0 4232
1415 살구나무에 몸을 비벼본다... 2016-05-10 0 4511
1414 하이쿠 = 17자 2016-05-10 0 4350
1413 구체시 = 구상시 2016-05-10 0 4720
1412 혁명시인 - 김남주 시모음 2016-05-07 1 4905
1411 민족시인- 김남주를 알아보기 2016-05-07 0 5447
1410 [한밤중 詩 읊다]- 우리 엄니 2016-05-07 0 4669
1409 눈(안眼)인가 눈(설雪)인가... 2016-05-07 0 4407
1408 {이것도 詩라고 하는데...} 5월이 시작되다... 2016-05-07 0 4094
1407 詩人은 언어의 마술사이다... 2016-05-06 0 4133
1406 詩人은 현대의 돈키호테이다... 2016-05-06 0 4506
1405 詩人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2016-05-06 0 6657
1404 詩人은 골목길을 좋아한다... 2016-05-06 0 5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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