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2016년 04월 21일 08시 17분  조회:4118  추천:0  작성자: 죽림

작가 조정래의 부인은 시인 김초혜. 조정래는 시인이 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시인 부인을 '떠받들고' 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대학 시절 그가 시인을 꿈꾸며, 1년여의 습작기간을 가지다 결국 소설로 돌아섰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이야기다.

신작 <핑퐁>(창비. 2006)을 발표하며, 독자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설가 박민규. 그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며 "언어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영역이 시"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도 습작 수준이지만 몰래 시를 쓰고 있다고 고백한다.

역사소설의 대가로 군림한 원로작가와,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고 있는 인기작가들. 소설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왜 시에 대한 '연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소설가가 흠모하는 시인, 그리고 그 시인이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문태준의 시를 통해서라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같다. 동서문학상(2004), 노작문학상(2004), 유심작품상(2004), 미당문학상(2005), 소월시문학상(2006) 등 내노라하는 상은 모두 '석권'하다시피 한 그이니, 시인 '대표' 삼아 그의 시를 살피는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여기 문태준의 시 한편이 있다.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老母')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이제 입가에 자글자글한 주름만이 남은 노모. 시인은 그녀의 주름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가 거진 다 빠져, 음식을 씹기 위해 열심히 움직거리는 입모양도 사랑스럽다고.

단 7행으로, 시인은 노모가 살아온 삶과, 자신이 그녀에게 품은 존경과 애정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골짜기'가 노모의 입가에 깊이 패인 주름을 연상시키고, '산새 소리'가 노모가 사는 곳을 짐작시킨다.

바로 이것이 소설가가 시인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닐까. 소설로 썼다면, 몇백매를 훌쩍 넘길 한 여인의 삶을, 2,3개의 시어로 표현해내는 '함축성' 말이다.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다면, 또 한편의 시를 살펴보자.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5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극빈')

열무를 심어 꽃을 얻기까지 그 계절의 변화와, 채소밭에 꽃을 가꾸냐는 사람들과의 문답, 어렵게 얻은 꽃을 보금자리 삼은 나비에 대한 '귀여운' 시기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추 . 한 편의 시에 이 많은 것을 녹아내리는 힘.

그 `응집력`이야 말로, 박민규의 표현을 빌자면 '작은 이야기(小說)를 길게 써야하는' 소설가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힘이 아닐런지.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엔 이처럼 소설가들이 '군침'을 흘릴, 시들이 가득하다. 삶과 사람, 이 방대한 주제를 한 편의 시로 '압축'해내는 시인의, 절정에 오른 능력을 보여주는 문장 하나가 있다.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자루' 중)

자루는 무얼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고, 시인을 무얼 써도 시가 된다.

(사진 = KBS 제공)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
335. 충치 / 이운룡












충치

이 운 룡

어금니 하나를 뽑아 버렸다
아픔 한 점이 빠져나갔다
욱신욱신 들쑤시던 놈,
알게 모르게 파 먹은
벌레가 남긴 그 자리,
아픔이 응혈진 말을 악물고 있다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런 사기질의 벌레가 득실거려
아픔 밑에 허탈도 패이지만
그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나의 그림자,

그 자리에 새로 아픔 몇 점
무덤을 파고 들앉아
바늘 신경으로 솟아올랐다
집게란 것이 닿기만 하면
실핏줄이 뿌리째 까무러치고
전 생애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젖니를 뽑았을 때에는 순전히
젖빛의 피가 흘러서
푸른 하늘에 번지고 있었건만.


이운룡 시집 <산불 ‧ 산불> 중에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03 詩人은 풀잎같은 존재이다... 2016-10-01 0 4673
1602 詩는 늘 등뒤에서 울고지고... 2016-10-01 0 4631
1601 詩속에는 시작과 시간이 흐른다... 2016-10-01 0 3869
1600 詩는 피해자와 비피해자의 그림자 2016-10-01 0 4283
1599 詩는 "어떤 음계에서"의 암시투성이다... 2016-10-01 0 4740
1598 80년대이래 중국 詩歌 관련하여 2016-10-01 0 4093
1597 연변이 낳은 걸출한 서정시인 ㅡ 윤동주 2016-09-30 0 4510
1596 나는 사람이 아니고 개다... 2016-09-29 0 4268
1595 중국 조선족 시인 시묶음 2016-08-25 0 6048
1594 詩리론은 쉬운것, 아리송한것, 어려운것들의 따위... 2016-08-24 0 4760
1593 詩창작은 곧 "자기표현"이다... 2016-08-24 0 4699
1592 詩는 "어떤 음계에서"의 암시투성이다... 2016-08-22 0 4489
1591 詩적 장치속에 상징이라는 눔이 있다는것... 2016-08-22 0 4258
1590 詩는 <<그저 그런...>>것, 젠장칠,ㅡ ... 2016-08-22 0 4373
1589 정지용 시인과 향수 2016-08-18 0 4133
1588 詩作을 할때 위장술(아이러니)을 변덕스럽게 사용하라... 2016-08-18 0 4628
1587 詩作할때 <<...것들>>로 잘 장식하라... 2016-08-17 0 4544
1586 詩作을 할때 살아있는 은유를 포획하라... 2016-08-16 0 4780
1585 詩人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련금사... 2016-08-12 0 5074
1584 詩作을 할때 죽은 비유를 멀리하고 배척하라... 2016-08-11 0 4461
1583 詩作에서 어려운 리론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싹을 티우라... 2016-08-10 0 4780
1582 인습적인것들을 사용하면 좋은 詩가 될수 없다... 2016-08-09 0 4851
1581 좋은 詩들을 많이 읽고, 詩를 쓰고 싶은대로 쓰라... 2016-08-08 0 4394
1580 83세의 한국 아동문학가 - 신현득 童心에 살다... 2016-08-04 0 4389
1579 복습, 예습하는 詩공부하기... 2016-08-04 0 4321
1578 밤중에만 詩공부하는 눔이라구라... 2016-08-04 0 4266
1577 재다시 현대시 공부하기... 2016-08-04 0 4562
1576 다시 詩공부합니다... 2016-08-04 0 4072
1575 詩作하는데는 시험도 숙제도 없다... 2016-08-04 0 4217
1574 詩에서 작은 이미지 하나로 시전체분위기를 만들라... 2016-08-04 0 4355
1573 詩人은 이미지에게 일을 시킬줄 알아야... 2016-08-02 0 4083
1572 詩人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언어의 그림 곧 이미지이다... 2016-08-01 0 4712
1571 詩는 말하는 그림, 그림은 말없는 詩... 2016-08-01 0 4271
1570 검정 망아지가 큰 검정 馬(말)인 韓春을 그리다... 2016-07-30 0 4103
1569 한국 현대시 100년을 빛낸 시집 5권 2016-07-29 1 5239
1568 한국문학 100년을 빛낸 기념비적 작품들 2016-07-29 0 4059
1567 한국 현대시 100년을 돌아보다... 2016-07-29 0 6187
1566 중국 현대시의 일단면/李陸史 2016-07-29 0 4868
1565 한국 시인 중국 기행 시모음/중국 현대시 개요 2016-07-29 0 4920
1564 詩의 생명이며 극치는 곧 이미지이다... 2016-07-29 0 3846
‹처음  이전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